이 세상의 대부분은 심는대로 거둔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이다.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 열매가 맺힌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다. 그러나 심지 않고 거두려는 곳도 있다. 대학병원에서 정교수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를 그린 의학드라마는 ‘하얀 거탑’의 일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 출세욕에 가득 찬 주인공인 조교수가 고가의 그림을 실세 정교수에게 선물로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림을 돌려보낼지 받을지를 놓고 정교수 부부간에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공짜이니 그냥 받자”는 부인에게 정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는 법이야.”
그렇다. 공짜는 가장 비싼 것이다. 공짜가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역설적인 이치는 신문 사회면을 조금만 들춰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농촌지역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침구나 건강용품을 실제 가격보다 수십 배 비싼 값에 떠안기는 사기 상술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내거는 미끼가 바로 공짜다. 무료공연이나 공짜선물로 유인한 뒤 인정에 호소해서 안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이들의 수법이다. 이 낚시밥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든다.
공짜의 무서움을 몰랐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시골 노인들뿐만이 아니다. 가끔 보도되는 ‘뇌물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뒤늦은 후회는 뼈에 더욱 사무칠 것이다. 공돈의 올무에 걸려 수십 년간 공을 들여 얻은 권력과 지위와 명예를 하루 아침에 내놓으려면 얼마나 속이 쓰릴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우리 나라 일부 정치인들의 요즘 행태를 보면, 수령자로서뿐만 아니라 공여자로서도 공짜의 달콤함에 푹 절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정책에 공짜라는 달콤한 포장을 씌워 국민들을 현혹하는 ‘정치상술’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정치인들이 우리 정치인들을 당해낼 수 있을까 싶다. 무상급식과 무상의료 등 무상복지 시리즈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표를 얻기 위한 계산에 취해 나라 곳간이나 미래세대의 부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인들의 지금 모습이다.
현 세대가 공짜를 앞세운 정치상술에 계속 놀아날 경우, 후손들은 빈껍데기 연금과 파탄 난 재정, 제로 성장이 체질화된 허약한 경제를 유산으로 받게 된다. “공짜에 취해 나라를 거덜 내먹은 세대”라는 역사적 평가를 면하려면, 얄팍한 정치상술에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표와 여론으로 정치인들에게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이제 이같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