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위한 씀씀이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교육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자녀 학업을 위하여 돈을 많이 쓴다고 해서 돈을 쓴 만큼 아이들의 학업이 일취월장 할 수 있다면야 돈 많은 분들은 얼마나 좋겠는가? 공부란 돈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돈과 관련하여 자녀들의 학업을 얘기하다 보면 저는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 일은 해방 직후에 있었던 일화이니다. 패전과 더불어 일본인들이 귀국채비를 서두르고 있을 무렵 경상도의 한 커다란 기업체에서는 일본인 사장과 한국인 한 사람이 마주 앉아 사업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장과 일을 마무리 짓는다고 해서 그 한국인의 지위가 높았던 것은 아니고 그는 말단에서 수위 겸 잡부 노릇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과 달리 진실하고 부지런했기 때문에 사장은 그와 더불어 자기의 마지막 일을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국 채비가 끝나자 일본인 사장은 그 한국인에게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재산 반출이 불가능 했던 당시로서 그 한국인이 마음만 먹었다면 엄청난 재산을 얻을 수도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냉정하게 자기의 소원을 일본인 사장에게 말했다. 소원의 내용은 다름 아닌 "나에게 어린 자식이 있는데 남에 비해 과히 못나지 않았으니 일본에 돌아가는 길에 내 자식이 원 없이 공부나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일본인 사장은 그의 높은 뜻에 감동해서 복잡한 경황 중에도 그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버지의 소원대로 원없이 공부를 시켜주었고 그 아들도 아버지와 일본인 사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금의환향 했다. 그 학생은 누구나 다 알만큼 성공을 해서 연년에는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바도 있다.
저는 이 미담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일본인 사장이 소원을 물었을 때 그 한국인이 돈을 탐내서 재산을 원했더라면 그 당대에는 호의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그 사람이 한 회사의 말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식도 아버지 보다 결코 더 낳을 것이 없는, 그저 한 세상 수모나 당하고 사는 그런 서글픈 유산이나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옛 말에 이르기를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은 한권의 책을 물려주느니만 못하다."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선대가 겪은 민족적 오욕과 개인적 수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자식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며, 그것만이 우리를 영원히 살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