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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학교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 선상에서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 예로 검찰이 최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소환하려 하였다. 그러자 구원파 신도들이 ‘인간 바리케이드’를 친 후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그가 헌금을 강요해 사업자금으로 충당했다는 비리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지만 한 번 이 믿음의 단계에 들어간 사람들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배경에는 정서의 근저에 '믿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인간에게 이 ‘믿음’이란 무엇일까.

최근에 나마이클 맥과이어가 쓴 '믿음의 배신'이라는 책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믿음’의 신화를 철저히 깨부수는 도발을 감행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어느 날 ‘믿음’을 믿지 못하게 된다. “내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다”라고 믿는 한 환자 때문이다. 의사는 친부모라는 수많은 증거들을 제시했다. 정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이 환자는 믿음을 바꾸지 않았다. 믿음의 기반이 너무도 약하고 맹목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저자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이후 18년간 ‘인간의 믿음’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세인트키츠네비스 섬에서 버빗 원숭이를 관찰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두목 원숭이는 뇌 속에 ‘세로토닌’이란 물질이 많이 분비되는 반면 부하 원숭이들은 이 물질의 분비가 적었다. 세로토닌 분비가 많은 두목 원숭이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행동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하 원숭이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저자는 뇌의 활동이 감정, 나아가 믿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 후 뇌의 속성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실제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장치로 뇌를 분석해 보니 믿음이 클 때는 전전두엽 피질이 활성화 됐고, 불신이 클 때는 대뇌변연계가 활성화됐다. 믿음 유무에 따라 뇌 활동에 차이를 보인 셈이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인간의 믿음은 타고난 뇌의 기본 특성 때문”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뇌 속 정보는 1000분의 1초 단위로 이동한다. 복잡한 정보가 들어오면 뇌는 천천히 움직이고 정보처리 속도도 느려진다. 모호함과 불확실성 탓에 생각할 게 많기 때문이다. 에너지도 다량으로 소비된다. 이때 뇌는 복잡한 정보를 단순화 해 하나의 믿음으로 묶어버림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여 생리학적으로 ‘유쾌한’ 상태가 되려고 한다.

이미 구축한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믿음 시스템’을 부정하는 다른 정보가 뇌에 들어오면 ‘믿음 보전 편향(Belief Perseverance)’이 일어난다. 해당 정보를 거부함으로써 현재의 효율적 시스템을 지켜내려는 것이다. 이는 실험에서도 드러났다. 한정된 문장만 말하는 컴퓨터와 대학생을 채팅하게 하면서 채팅 상대가 컴퓨터임을 숨겼다. 90%의 대학생은 인간과 채팅했다고 생각했다. 상대자는 컴퓨터란 증거를 들이대도 학생의 80%는 이를 거부했다. 자신의 믿음이 틀렸다는 증거보다는 그것을 강화하는 증거를 선별해 기억하는 뇌의 ‘착각 상관’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뇌 기능은 하루 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뇌의 에너지 사용을 효율화하는 방식으로 빠른 판단을 내리고 상대방과 융화해 집단사회를 형성시켰다. 따라서 ‘지능보다는 믿음이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시스템은 현대에 더욱 공고해졌다. 정보화 시대에 살다보니 뇌에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많아진 것이다. 이에 뇌는 본능적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심도있게 분석하기보다는 효율적으로 단순하게 변환된 형태, 즉 ‘믿음’으로 저장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런 믿음이 인류에게 큰 고통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비타협적 믿음은 수많은 사회 갈등을 양산시킨다. 또 삶 속에서 실질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에 의존할 경우 개인적 고통은 커질 수 있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끊임없는 의심’을 주문한다. 자신을 최대한 의심하는 한편 교육을 통해 뇌 작동 원리를 인지하고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꿰어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나라 교육시스템에 지금 문제가 발생하였다. 한마디로 '일반고의 위기'라는 현상이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으로 인하여 일반고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강남에서도 학부모들은 일반고 가느니 지역단위 자사고 입학을 위하여 경기도에 위장 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다는 믿음이 뇌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교사는 성적이 뒤처진 학생이 많아 학교 분위기는 엉망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결과 실제로 많은 공립 일반고에서는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는커녕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는 교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사 스스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다. 서울의 공립 일반고인 C학교 최모 교사는 “잠깐 거치는 곳으로 생각하니 열정이 없다”며, 학생도 그걸 안다고 학교의 분위기를 전했다.

교사가 수업 내내 교사는 ‘내가 너희한테 뭘 기대하겠느냐’며 대충 설명하고, 학생은 ‘교사가 우릴 무시하니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뻗대는 것이라 덧붙였다. 정규 수업이 이럴 정도라니 동아리나 방과후 활동을 교사가 적극적으로 이끄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는 “공립 일반고가 학생과 학부모의 기피 대상이 된 건 꼭 우수 학생이 적어서만은 아니다”며 “전문성을 축적해 온 학교와 달리 시스템이 부실한 학교가 많은데, 이런 곳에 우수학생을 보내면 학교가 사는 게 아니라 애들만 희생양이 되는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같은 현실을 보면서 실제로 일반고 교육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전적으로 시스템에만 문제가 있다는 믿음은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일반고이면서 명문고의 위상을 유지하는 학교도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 구성원인 교장을 비롯하여 교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따라 '학교에 대한 믿음'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신뢰 관계, 즉 학교에 대한 믿음이 축적되지 않는 한 교육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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