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이 바다 이야기이고 선장 이야기이다. 미국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앨라배마'호는 지난 2009년 아프리카에 전달할 구호품을 싣고 가다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해적들에게 피랍됐다. 이 배엔 리차드 필립스 선장 외에 19명의 선원들이 타고 있었다. 선원 모두가 사살 당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필립스 선장은 해적들에게 말했다. "내가 선장이다. 나를 인질로 잡아라." 필립스 선장은 고비 때마다 용기와 기지를 발휘, 선원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그 사이 미군 특수부대가 출동했고, 해적들은 필립스 선장만을 태운 채 배에서 보트로 탈출했다. 결국 해적들은 미군에 의해 사살됐고, 필립스 선장도 극적으로 구조됐다는 실화이다.
이같은 필립스 선장의 영웅담은 지난해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캡틴 필립스(Captain Phillips)'로 제작돼 국내에도 소개됐다. 절체절명의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과 판단력, 무엇보다 선원들의 생명을 위해 인질을 자처한 용기는 선장의 덕목, 나아가 리더의 자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 시대는 참 선장을 원하고 있다. 선장의 참모습은 '세월호 선장'이 아니다 모든 조직은 하나의 선채와 같다. 학교도 기업도 공공기관도 국가도 마찬가지로 선채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난 가끔 아이들에게 이 학교의 선장은 교장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지난 4월 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엔 안타깝게도 '캡틴'이 없었다.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었던 450여명 승객들을 남겨둔 채 선장은 몇몇 선원들과 함께 속옷바람으로 가장 먼저 탈출했다. 물론 세월호 침몰이 선장과 선원들의 직접적 잘못이고, 그 참사의 원인 역시 훨씬 복합적이다. 그렇다 해도 이 배에 온전한 '캡틴'이 있었다면,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는 엉뚱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혹은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다면, 분명 귀중한 생명 몇은 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만이 남는다.
우리 나라는 삼면이 바다이다. 연근해와 원양에선 6,188명의 선장을 비롯해 총 3만8,783명(지난해 말 기준)의 선원들이 배 위에 몸을 싣고 바다를 누비고 있다. 특히 선장은 '마도로스'란 이름처럼 선망의 대상이자, 낭만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이 역사도 무너뜨렸다. 한 연안여객선 선장은 "선장이란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고 많은 동경도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 가서 선장이라고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자괴감을 토로했다. 캡틴의 부재. 이건 어쩌면 세월호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리더가 없는, 리더십이 사라진 조직,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일 수도 있다. 필립스 선장같은 책임감 있는 선장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소원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