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의 바람직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양극화되는 사회를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잘 되는 사람은 계속 잘되고 안 되는 사람은 계속 안 되는 세상. 그런데 사람들은 경제적인 양극화만 걱정하는 모양이다. 그보다 더 걱정은 뇌의 양극화가 아닐까? 아무런 의욕이 없이 사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눈빛이 흐려 있기에 그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돈을 벌고 성공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말이 유창하고 논리적이며, 유머러스하고 설득력이 있다. 행동도 민첩하고 상황 판단이 무척 빠르다. 또한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만큼 뇌가 활성화돼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만큼 뇌도 더 활성화되기 마련이다. 뇌를 많이 쓰면 경쟁력도 생기고 성공하게 되며 젊음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을 신념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 이유는 뇌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뇌의 양극화가 경제적 양극화, 결국은 사회적 양극화를 만들어 간다. 뇌가 충실해야 한다. 뇌가 가난하면 사는 형편도 가난해진다. 형편이 좋아야 남도 돌보고 인간 관계도 부드러워질 텐데 그렇지 못하면 몸은 늙어가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형편이 어려을수록 공부하는 수 밖에 없다. 지금부터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나중에는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독하게 공부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본 사람, 독하게 해 본 사람만이 인생을 즐길 자격이 있다는게 이 세상이 증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왜 나이 든 후에도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나이 든 후에 왜 공부가 더 잘 되는지 알게 됐다.
공부로 창조적 인재, 즉 창재가 돼야 불확실한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남은 건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가이다. 그러나 마음먹는 것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작심삼일을 극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공부의 의미를 찾는 일은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가난한 삷의 탈피는 공부에 있음을 믿는다면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다를 것이다. 문제가 생길때마다 사회만 탓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 자세로 하루를 열면 조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낼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