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날마다 말을 많이 하면서 직업을 수행한다. 질문이 대부분이며 격려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비난하는 말도 가끔 하게 된다. 때문에 습관화된 생활 속에서 큰 의미 없이 한 말이 아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경우도 가끔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한 교사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이를 지적하여 주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조사해 보면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박하고 따뜻한 작품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안진 시인 역시 어린 시절 선생님이 아무 생각없이 던진 한 마디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시골 촌뜨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는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용기를 내어 오랫동안 별러오던 질문을 했다. 소월의 시「산유화」에 관한 질문이었다. 또래 소녀들보다 훨씬 성숙한 감성과 안목으로 이미 나름대로의 작품관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소월의 시를 특히 사랑했던 모양이다.
“선생님, 소월은 왜 봄 여름 가을이라는 계절의 순서를 무시하고 ‘갈 봄 여름 없이’라고 했습니까?”
도회지 아이들 속에서 위축되기만 했던 사투리 소녀로서는 엄청난 용기였고, 소녀가 한 생각으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못지않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질문을 마친 어린 유안진 시인은 얼마나 대단한 칭찬을 듣게 될지 방망이질 치는 가슴으로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많은 학생들 앞에서 그녀를 톡톡히 망신시켰다는 것이다.
“그게 뭐 이상하냐? 소월 마음이지.”
도대체 왜 그런 것이 궁금한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선생님의 대답에 1학년에서 3학년까지의 학생들이 함께 섞인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로 변해버렸고, 뛰어난 문학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칭찬을 들을 줄 알았던 소녀는 그 이후로 다시는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대인공포증 증세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를 미리 생각하는 콤플렉스까지 가지게 되었다니 그 상처를 알 수 있다.
이런 경험때문인지 어려서의 씁쓸한 경험을 잊지 못해 유안진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도 절대로 무안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비록 학생의 질문이나 생각이 너무 터무니없고 어처구니 없을지라도 자신이 던진 한마디 말에 상처입고 움츠러들 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그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반성이 없이 자기 오류를 수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묻는 길 외에 없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선생님을 향하여 자유롭게 기술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