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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청해진 대사 장보고 유적지 답사 기행문







(1) 석도진 도착
광주에서 이모같은 3년 선배 최경미 샘과 같이 열시에 출발하여 인천에 두시에 도착, 무려 네시간을 기다려 출국수속과 탑선, 지루한 첫날이었다. 올 여름방학에는 무려 넷째주에 걸쳐 네 번의 각종 연수를 빡빡하게 잡아논 나로서는 중국 여행이 탈출구요 피서였건만. 너무 더워 힘들었다.

밤새 너울너울 출렁이는 뱃간에서 에어컨 감기에 시달리다 13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석도항, 잔잔한 바다 물결과 환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통해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은 안전하고 큰 배로도 13시간이나 걸렸는데, 먼 옛날 신라시대에는 돛단배 수준의 작은 배 한척으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땅에 도착하여 한국인의 기상을 떨쳤던 장보고 대사의 위대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동 반도는 강태공, 제갈량(와룡선생이라 부름), 공자의 고향으로 중국을 알려면 먼저 산동 반도부터 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내에서 산동 반도는 매우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첫날의 일정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방으로 선남선녀 5,000명을 출발시킨 성산두 유적과 봉래각, 등주산성, 고선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이었는데 한 코스를 보기위해 3-4시간의 장시간을 버스로 이동하면서 중국 영토의 광활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기다렸던 현지식 중국 전통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역시 중국 음식은 기름지고 향이 많아 부담스러웠지만, 대부분 선생님들은 맛있게들 먹었다.

나는 작년에 백두산 등정에 이어 두 번째 중국 방문인데 역시 발에 땀이 나게 뛰어 다니며 하나라도 더 보려고 오도방정을 떨었다. 룸메이트 거제 외포중 선생님은 정말 성실하여 매일 아침 재래시장에서 저울로 과일을 흥정하며 같이 즐거워 했고, 3조 리차드 기어랑 일행 모두 친해졌다. 임답도 넉넉하고 여행가방에 가져간 소주팩 20여개를 다 없앤 전남체고 김옥태샘의 노익장도 놀라웠다.

식사 후 봉래시, 등주산성, 고선 박물관을 견학하였는데 봉래라는 이름은 옛날 신선들이 살았다는 전설 속의 바다 가운데 있는 산의 이름이라고 했다. 다리가 저린 밤늦은 시간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빡빡한 여행 일정 때문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지쳐있었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곧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2) 태산, 강태공 사당, 순마갱, 제나라 역사박물관, 고차 박물관 
셋째 날은 영성.위해.봉래.유방을 거쳐 나와 가장 많은 코스를 견학했다.   강태공 사당으로 이동하면서 선생님 각자가 일일이 자기 소개를 하게 한 박 철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강태공이 낚시꾼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강태공은 제나라의 군사가였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사박물관에는 은나라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유물과 갑골문자, 강태공이 나라를 다스렸던 3가지 방법인 治國方略이 있었다. 제경공 순마갱에는 제경공이 평소에 말을 좋아하여 600여 마리의 말을 순장했는데 그 중 108마리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고차박물관에는 중국 고대 차량이 진열된 곳으로 중국 차량의 발전상과 제조기술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긴긴 여행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버스 창밖으로 중국 전통의 농가와 대규모의 옥수수 밭을 보았다. '저렇게 큰 옥수수 밭을 어떻게 심고 가꿀 수 있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치박,태안, 청주를 거치며 인적드문 수 개의 휴게소를 들르며 중국 영토의 광활함에 다시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시조에서 태산은 굉장히 높은 산 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와보니 해발 1545미터의 그렇게 높지는 않은 산이었다. 셔틀버스로 한 30여분을 그리고 케이블카로 20분정도 타고서 안개가 자욱한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높은 산 위에도 온갖 사찰과 수많은 시설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제의 제사를 위해 이 걸 짓다가 죽었을까?. 비가 오는 중간 중간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인들과 흥정을 할 때는 무조건 물건 값을 깎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역시 상인마다 또한 흥정을 여러 번 할 때마다 물건 값은 천차만별이었고 물건을 흥정하는 것도 중국 여행의 쏠쏠한 재미가 되었다. 태산에 있는 사찰에는 향을 피우고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부부간에 서로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뜻의 부부열쇠 꾸러미가 많이 있었다.

(3) 적산법화원, 장보고 기념관
이 번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적산법화원을 견학하는 날, 버스로 이동 중 장보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외대 교수님께서 장보고에 대한 설명과 함께 관련 비디오를 시청했는데, 1호차 맨 앞에서 두 번째 버스좌석을 줄기차게 고수했던 나는 장보고 박사가 되어 버렸다. 역시 장보고는 당대 최고의 무역상이며 21세기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야할 우리들에게 삶의 방향과 큰 꿈을 제시해준 위대한 인물이었다.

적산법화원은 남․여승과 선종과 교종의 승려가 같이 상주하는 곳으로 산동 지역 신라인의 敎化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고 신라에서 당으로 들어오는 신라인들의 사교처로서의 기능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신라초와 신라산의 애절한 전설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장보고 기념관과 기념탑을 견학하고 느낀 것은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장보고는 우리들에게 위대한 세계시민이 되는 길을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길이 한국으로 통하도록 우리의 국력을 더욱 신장시키고 국제적인 마인드와 감각을 키워야한다는 것이었다.

(4) 화동 페리호 승선 및 인천항 도착
5일간의 빡빡한 여행 일정을 마치고 후련하게 승선을 했다. 여행은 사람들을 가장 빨리 친밀하게 하는 것 같다. 코골이랑 같은 선실에서 잠을 잔 세 명의 좋은 선생님과 각 지방에서 올라온 낯선 선생님들은 어느 새 친해져서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안에서 또는 겁 없는 갈매기랑 갑판 위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더운 날씨여서 끌수는 없는 여객선의 밤샘 에어컨을 신문지로도 막아보았지만 온종일 쐰 에어컨 감기에 걸려 집에 돌아온지 10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메이드인 차이나 감기를 달고 산다. 이번에 느낀 정말 놀라운 사실은 장보고에 대해 가장 체계적인 기록을 남긴 “두목”, 장보고에 은혜를 입어 적산 법화원의 유적을 건립하게한 일본인 “엔닌스님”, 미국의 역사학자 “라이샤워”, “김문경” 숭실대 명예교수, <해신>의 저자 “최인호”를 다시 보게 되었고, 해상무역왕과 바다의 신 장보고 유적지 답사를 하고 느낀 것은 그동안 축소되고 왜곡된 장보고의 탁월한 업적을 재평가하고 오늘의 시대적인 상황에 재조명하여 장보고가 그랬듯이 세계 속의 '파워코리아'를 만드는데 유자마을 시골 역사교사인 나도 一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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