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SBS대기획 36부작 ‘제중원’이 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제중원’은 첫 방송 시청률 15.1%(AGB 닐슨 미디어리서치)로 월·화드라마 선두를 차지했다. 16%대로 차오르는가 싶더니, 후반부에 가면서 시청률이 한자릿수로 추락, 쓸쓸한 퇴장을 하게 됐다. 중앙일보가 유일하게 종영소식을 전했을 뿐이다.
‘아이리스’나 ‘추노’처럼 2편 제작 예정은 당연히 없지만, 그러나 ‘제중원’의 드라마사적 가치조차 폄하되어선 안될 것이다. 일단 제작비 100억 원대의 블록버스터라는 점, 백정을 주인공으로 한 ‘천민사극’이라는 점은 결코 만만치 않은 ‘제중원’의 가치라 할만하다.
백정의 의사되기, 의사로서의 본격활동 등 의학드라마 표방은 명암을 극명하게 갈랐다. 제법 실감나는 수술 장면 등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모든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지는 못했다. 요컨대 세대간, 계층간, 남녀간 구분이 뚜렷하게 나뉘어 시청자들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해진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좌절하는 ‘88만원 세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는 제작진 기획의도가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는 미지수다. 그러고 보면 기획의도부터 포커스를 잘못 맞췄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느슨한 전개과정이 그렇다.
기실 백정 소근개의 양반 황정으로서의 살기는 극적 긴장감과 함께 좌절 극복의 성공이라는 대리만족에 값했다. 신분보다 돈이 그걸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지금도 반드시 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그럴 듯한 얘기다.
느슨한 전개과정은 주로 황정(박용우)과 유석란(한혜진)의 사랑 쌓아가기에서 드러났다. 신분의 벽이 높던 시절의 사랑이라 뭔가 스피디하면서도 극적일 법한데도 그리 실감나지 않은 것. 더우기 백도양(연정훈)과의 삼각관계 전선이 형성되어 있음에도 너무 ‘아름답게’만 그려보여 아쉽다.
박용우나 연정훈의 캐릭터에 부합하는 적절한 연기가 빛을 거의 발하지 못한 것도 느슨한 전개, 그로 인한 시청률 저조와 관련있어 보인다. 특히 사극이 처음인 연정훈은 과도기적 난세에 처한 양반 군상의 천변만화하는 입체적 인물형을 무난하게 소화해내 인상적이었다.
한편 ‘제중원’ 역시 여느 사극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아버지를 ‘아버님’이라 부르는 등 수시로 죽이는 잘못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아다시피 ‘아버님’은 죽은 자신의 아버지, 친구나 남편의 살아있는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다.
무분별한 언어사용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가령 “까칠한 사이”(30회 4월 13일 방송), “둘이 쫑났으니까 이리 온게지”(33회 4월 26일 방송) 등이 그렇다. 당대의 언어를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현대의 속어 내지 은어사용은 사극제작에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고 계획대로 36부작을 방송한 것은 상업방송 SBS로선 장한 일이다. 하지만 2009 대하사극 ‘자명고’에 이은 ‘제중원’ 실패가 주는 교훈은 결코 소홀히 해선 안 될 대목이다. SBS를 위해서가 아니다. 대하사극은 ‘같잖은’ 그냥 드라마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