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교육부는 하루 5만여 명의 아동이 상습적으로 무단결석을 일삼는 고질병을 치유하고자 지난해 10월 '12주內 즉결재판'이라는 시행령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행령 발효 후 첫 사례, 즉 올 2월 26일 에섹스 지역 서록(Thurrock) 지방교육청의 고발로 진행된 학부모 10명에 대한 재판은 '해프닝'으로 끝나버려 결석 근절대책의 한계만을 드러냈다.
법정에는 고작 4명만이 출두했고 나머지 6명은 출두장을 못 받았다, 몸이 아프다, 깜박 잊었다는 등의 이유를 내걸었고 출두한 학부모 중에는 변호사를 데리고 와서 '마약과 교내폭력이 횡횡하는 학교보다 집에서 하는 교육이 낫다'며 항변하는 지경이었다.
영국 교육부는 이미 지난해 아이들이 상습적으로 무단결석을 할 경우 학부모에게 '최고 500만원의 벌금형 또는 3개월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극약처방을 발표했었다. 그리고 그해 4월 옥스퍼드 지방교육청이 고발한 5명의 자녀를 둔 홀어머니가 형무소에 들어감으로서 그 교육부 시행령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작년과는 달리 이번 재판이 문제가 된 것은 방법론상의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교육부 시행령'은 민사법의 사안인데 교육부가 지방교육청과 법원에 의뢰한 '즉심 재판'은 '형사법'의 테두리에서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민법의 사안들은 불화를 해결할 장기간의 '수정유예기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시행령은 '12주간 내 즉결'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이 시한은 '민사법 사안'을 처리하기에는 너무 짧다.
지난해 4월 옥스퍼드 지방법원의 실형 선고는 그 학부모에게 2년간의 수정유예기간이 주어졌었고 그 '수정명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결과의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이번에 고소를 한 서록 지방교육청 플레쳐 장학관은 "이번 고소는 실패했다"고 자인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법원의 자세를 비판하고 "앞으로 중앙정부의 교육부와 협의해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무단결석 처벌법에 대처하는 학부모회'의 대변인 루이스 하베이 씨는 이번 재판을 '촌극'이라고 비유하고 "정부의 '원칙일괄적용(Zero tolerance)은 이미 자녀들 등교문제로 고투하고 있는 학부모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 넣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반 루이스 교육부 청소년 부문 장관은 문제의 근원이나 사실 파악을 못하고 있고 정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이번 재판에 출두해 무죄를 주장한 트레시 혼스비 씨는 "내 아이가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으며 그 학교에서는 마약이 상습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차라리 내 딸은 집에서 교육시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법정을 나선 그는 "이 나라의 교육시스템은 엉망이다"라며 현 교육시스템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달리 지방교육청 플레쳐 씨는 "그 학교가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학교 질서 유지를 위해 안전요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교내폭력이라든가 마약은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부정했다.여기에 학교 교사들은 "이미 그런 가정의 부모들은 아이들 문제로 고투하고 있는데 형법을 적용해 전과자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또 '무단결석 처벌법에 대처하는 학부모회'도 "형무소들은 비좁다고 아우성인 마당에 학부모까지 범죄자로 만드는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형무소 수감자 일인당 연간 수용비용이 3만 파운드(약 6천 만원)나 드는데 그 돈으로 차라리 아이들 등교 문제로 고투하는 학부모를
지원해야 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지난해 4월, 옥스퍼드 지방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된 홀어머니가 학령기인 16세 큰딸에게 5살 된 막내를 잘 돌봐 달라는 전화를 함으로써 큰딸은 학교를 빠져야 되는 또 다른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사회보장제도에서 이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며 지방정부의 또 다른 경비가 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부모를 구속한다'는 교육부의 강경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 교육부 대변인은 이번 시행령의 집행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남은 문제는 법무부와 상의해 개선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반 루이스씨 교육부 청소년 부문 장관은 "이 시행령이 발표되고 나서 지난 12월 한 달 사이 1만 2천여명의 아동이 길거리에서 적발됐고 아동의 학교 출석률도 높아지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한 교육부는 지난 해 여름, 수업시간에 길거리를 배회하는 학령기 아동에 대한 불심검문을 실시해 해당 지역 청소년 범죄율이 11%나 줄었다는 보고서를 2월 27일 제출했다.
영국은 무단결석을 줄이고자 상습 무단결석 아동의 학부모에게 학교장이 최고 10만원의 즉석 벌금도 물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봅 카스터 전국중등학교장협회 부의장은 "학교와 학부모간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벌금이라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는 어렵다"며 제도 시행에 난색을 표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