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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D · H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사랑'을 읽고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1928년 미국의 플로렌스에서 발간된 로렌스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고국인 영국에서 외설 혐의로 출판이 어렵게 되어 미국에서 펴낸 것이다. 더욱이 판매금지까지 당했으니 유명세는 예약된거나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도 외설 혐의로 서점에 깔린 책들이 회수되고,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가 기소된 ‘내게 거짓말을 해봐’(장정일 지음) 등의 사례가 있다.

  우선 이 소설이 돋보이는 것은 그 시대까지만 해도 터부시되고 심지어 죄악시되었던 섹스에 대한 과감한 까발리기이다. 그것은, 그러나 그냥 외설이 아니다. 외설과 예술은 깻잎 한 장 차이라는 우스개 말도 있지만, 단순히 벗기는 것이 아니라 이즘(-ism)을 깔고 하기 때문 그것의 구분이 가능함을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생명주의(vitalism)가 그것이다. 섹스를 생명탄생의 근원으로 보고 있는 것.

  로렌스는 소설의 서문에서 현대를 인식의 시대라고 말한다. 특히 섹스에 있어서의 행위를 올바른 사고(思考)와 인식으로 가져야 한다며 그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로렌스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이 성행위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견해도 없으면서 죽자 사자 그짓만을 해오니까 오늘날 성(性)이 타락되었다며, 구제방법은 오로지 지적 인식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성행위에 대한 지적 인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습관에 의한 기계적 행위가 아니라 꿈뜰거리는 하나의 생명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섹스를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매개나 도구로 삼지는 않는다. 로렌스에게 섹스란 단지 성적 흥분의 체험만이 아니라 우주와 만물에 존재하는 미세한 내 자신 생명에의 눈 뜨임이다. 섹스를 생명의 뿌리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코니가 그 섹스관 구현을 위한 캐릭터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확실히 코니는 멜라스를 만나면서는 반드시 성희(性戱)가 아닌 새로운 삶에의 만족감에 충만해 있다. 코니는 멜라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란 훌륭한 거예요. 자기가 살고 있다고 느끼고 창조의 중심에 자기 가 있다고 느끼니까요.”

  코니를 통한 작가의 그런 이즘이 한편으론 간통 또는 불륜에 불과한 것을 커버해주고 있음이다. 이를테면 코니는 무죄인 셈이다.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가 행복 추구에 있는 것일 때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것이 힘을 얻는 것은 섹스를 자연에 귀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친화를 통해 새로운 생명의식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물론 로렌스의 그런 세계는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절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기계주의에 의해 생명력을 잃어가는 인간을 물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 작가였으니까. 로렌스는 코니와 멜라스를 통해서 진실로 생명있는 인간과 인간의 결합을 희구했다. 내가 대학 2학년때 읽었던 ‘채털리부인의 사랑’을 못 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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