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公私)는 분명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공과 사를 무 자르듯이 구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혈연, 지연, 학연, 세상을 살면서 이리 저리 얽히고 설킨 많은 인연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속된 말로 고향에서는 벼슬살이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물론 일상적인 삶에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정이 없다면, 세상은 삭막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정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에 그렇다.
그러나 지도자는 다르다. 지도자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일 지도자가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대의를 그르친다면 어느 누가 그 지도자를 믿고 따르겠는가.
옛날 중국 촉나라 제갈공명 휘하에 '마속'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촉나라가 위나라의 조조와 국운을 건 전투가 벌어져, 공명은 마속에게 가정이라는 곳의 산기슭에 진을 치고 조조군을 막도록 명령하였다. 현장에 도착한 마속은 군령을 어기고, 적을 유인하여 역공을 펼 의도로 산 위에 진을 쳤다가 크게 패하고 만다.
공명은 군령을 어기고 전투에 패한 마속을 처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속은 자기와 막역한 사이인 마량의 아우이기도 하고, 유능한 장수로 지난날 여러 전투에서 큰 공적을 세운 바가 있기에 그의 처형을 말리는 이도 많았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공명이 마속을 살려 줄 생각만 있었다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공명은 대의를 바로 잡으려면 아끼는 사람일수록 인정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를 형장으로 보낸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공명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자리에 엎드려 울었다고 전한다. 여기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 울면서 마속을 벤다)'이란 고사성어가 유래하고 있다.
마속은 공명의 진심을 헤아려 사죄의 글을 올렸고, 공명은 마속의 처자식을 평생 돌봐주었다고 전한다. 대의를 위하여 사사로운 인정에 끌리지 않은 공명과 그의 고충을 이해하고 기꺼이 따른 마속. 그들은 공과 사를 분명히 한 사람들이다.
바야흐로 교육계에 인사철이 다가오고 있다. 대단한 힘을 가진 '고위직'에서 작은 학교의 부장이나 담임을 배정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교육계 전체에서 큰 규모의 인사가 이루어지는 때가 요즈음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항상 끊이지 않는 것이 인사에 관한 뒷이야기다. 큰 책임과 권한이 따르는 자리야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고, 작은 규모의 직장에서 별 것 아닌 자리를 나누는 데도 인사가 끝난 뒤에는 언제나 이런저런 뒷말이 무성한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때일수록 크고 작은 조직을 막론하고, 인사권을 가진 지도자는 모름지기 울면서 마속을 벤 제갈공명의 심정을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