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교육정책은 국민 모두의 장래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만큼, 장기 효과를 내다보고 공동체적 합의를 바탕으로 결정되고, 초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한 정권 내에서의 장관의 경질이 교육정책의 변화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되며, 더 나아가 정권 변화가 급격한 교육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국가 교육목표와 정책 기조를 초당적, 초정권적 차원에서 설정하고 합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으로서 상설 협의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은 교육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한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인적자원부 이외의 별도 교육개혁추진 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임의 설치·운영하는 것은 몇가지 점에서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우선 국가 교육정책 주무 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 외에 별도의 정책개발 기관의 설치는 국가 기구의 중복을 가져오는 것이며, 이 기구가 한시적 임의 기구로 설치되고 설치될 때마다 상이한 이름을 달고 나와 국민에게 혼란을 주기 쉽고, 새로운 기구는 그 자체의 역할과 업적을 위해서 임기 내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새로운 변화를 무리하게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3일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교육혁신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정책방향을 제시하였다. 이 교육혁신위원회 설치는 교육혁신의 일관성 계속성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법적 근거를 둔 기구로, 교원과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주체와 교육전문가, 교육행정가, 시민사회단체 관련자 등 '교육당사자'가 대표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의 교육혁신 기구를 설치하겠다는 대통령당선자의 대선 공약 사항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우선 이 기구의 조직에 있어 초정파적 인사가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과, 교육개혁정책을 대통령이 직접 챙길 수 있도록 그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 기구가 역대 정권의 한시적 임의기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국가 교육정책의 방향타 구실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중요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 기구는 국가 미래에 대한 장기비전의 실현을 견인할 국가 교육목표와 주요 교육정책 현안에 국민적 합의기반을 형성하는데 중심을 둔 심의기능을 중요하게 담당하도록 하여야 한다. 최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교육정책의 큰 문제는 20-30년 앞을 내다보고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할 교육정책이 집단간의 상반된 입장과 이해다툼으로 그 중심을 잃어, 학교교육과 교육정책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데 있다.
학교교육과 교육정책에 믿음이 생기게 하는 일은 교육개혁의 관건적 요소이며, 그 첩경은 교육현안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과 심의로 국민적 합의기반을 넓히는 일이다. 이 기능은 교육인적자원부와 업무중복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교육인적자원부가 보다 신뢰롭게 정책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선도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기구는 임의기구가 아닌 법적 근거를 가진 상설기구로서 설치되어야 한다. 방송위원회나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법적 위상을 갖는 상설기구가 바람직하다. 기구의 명칭은 국가 교육혁신위원회 또는 국가교육심의회로 하고, 이 위원회의 구성은 국정에 참여하고 있는 정파와 교육계 및 산업계, 학부모 단체에서 추천한 대표들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주무부처는 우선 관계법령을 제정하는 작업을 착수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추진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유념해야 할 것은 포용과 절충적 입장에서 상반되는 입장들을 조율하고 통합하여 가급적 대다수가 호응하여 나설 수 있게 하고, 국가 교육정책이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 끼리만의 대화와 협의로 집행되는 정책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로부터 쉽사리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국민적 합의기반을 갖춘 교육정책을 추구할수록 그 정책은 국부적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좋은 정책일 수 있다. 지엽적·국부적 이해를 우선하는 생각이 전체의 합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교육혁신위원회를 설치한다면 이러한 점을 크게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