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11월 8일부터 12월 6일 현재까지 신문기사를 통해 알려진 청소년 자살은 총 7건으로 그중 2건은 다행히도 자살 시도에 그친 경우인데 1건은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고 다른 1건은 투신했으나 장애물 등의 영향으로 목숨을 잃지 않은 경우이다.
교급별로 보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각각 2건이었고 재수생이 1건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성별로는 남학생이 5건이었고 여학생이 2건이었다. 외형적으로 밝혀진 원인에 있어서는 학업부담과 수능 및 학교 성적문제 등 학업과 관계된 경우가 4건이었고 왕따가 1건, 부모와의 갈등이 1건, 이성문제(교사 짝사랑)가 1건으로 나타났다. 지역적으로 구분해보면 서울은 한 건도 없었으며 7건 모두 지방에서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선 7건 중 무려 4건이 학업과 관계된 자살이었다는 점은 수능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한 달 동안의 분위기를 고려해볼 때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결과일 수 있다고 하겠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하는 막연하고도 획일적인 집단적 통제력에 의해 상상력과 창조력이 가장
풍부하게 성장해야할 청소년이라고 하는 중요한 시기가 유린당하고 있다는 한국사회의 부인할 수 없는 일상적 모습은 이와 같은 결과를 이미 예상할 수 있는 표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4건 중 학업부담에 의한 초등학교 자살과 중학교 자살이 각각 1건씩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대입에 기인하고 있는 학업 부담은 이미 그 정도를 넘어 점차 초·중학교 청소년들에게도 커다란 정신적 압박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모와의 갈등에 의한 자살은 1건이었지만 갈등의 원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것이 학업 때문인지, 아니면 기타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소년 일탈문제들이 부모를 비롯한 가족 내부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하는 기존의 연구결과들을 고려해본다면 청소년 자살의 원인 또한 민감한 청소년들의 심리적 상태를 고려하지 못하는 가족구성원들의 무관심 등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건을 차지하고 있는 왕따에 의한 자살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학교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이를 견디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이 경우에는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학교라고 하는 테두리 안에서 발생한 것으로써 청소년들을 담고 있는 공교육의 기능적 문제점을 직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청소년의 일기장을 보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잘하고 싶었는데...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저 세상에 가서 똑같이 해주겠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곧 공적 제도로서의 학교가 올바른 인성계발이라고 하는 본질적 기능성을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이건 상실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경우는 이성교제와 관계된 사례이다. 서구사회와는 달리 한국의 경우에는 이성문제에 의한 자살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점차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성관념도 매우 개방적이며 개인주의적인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최근의 경향성을 볼 때 앞으로 이성문제에 의한 자살이 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 사례에 있어서는 교사에 대한 짝사랑과 그로 인한 오해의 결과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청소년의 심리적 갈등문제를 해소시켜줄 수 있는 상담이나 여타 관련 프로그램 등과 같은 장치의 부재 또는 비효율성이 부차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 한달 동안의 청소년 자살 원인은 외형적으로는 4 가지 정도로 축약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이들 4 가지 원인들을 발생시킨 또 다른 원인은 없는가 라고 하는 부분이다. 즉, 대입으로부터의 압박감을 경험하고, 부모와 갈등을 겪으며,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개인적으로는 이성문제에 고민스러워 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을 탄생시킨 또 다른 원인은 없는가 라고 하는 부분이다.
혹 그 원인이 대입을 무작정 강조하고, 배타적 편가르기를 상례화하며, 또한 부모 자식간의 이질성을 촉발시키고, 성의식을 왜곡되어지게 하는 오늘날의 한국 기성사회가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성해볼 문제이다. 문제는 청소년 자살이 아니라 자살을 자극하는 기성 사회에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