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학생들은 평균점수가 하락해 속았다는 생각과 허탈감에 빠져 있고, 학부모들은 논술시험이나 구술면접 대비를 위해 적게는 몇십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원대의 족집게 과외(?)를 시키고 있다. 교사들도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불만에 차 있고, 사설 입시기관들은 이때를 기회로 잡아 각종 입시분석자료를 앞다투어 내놓으며 공교육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
한편, 신문·방송 등 언론은 그러한 입시분석 자료를 아무런 여과나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해 전국을 대수능 난이도 혼란에 빠뜨리고 결과적으로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에 교육당국은 이번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난이도는 실패하지 않았으며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라는 정책을 입안한 전임자들과 학생들에게 그 탓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교 현장에서는 대학에 가려면 고교 4학년(?)을 거쳐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에 필요한 창의성을 지닌 인재 양성과 특기·적성·흥미·능력에 따라 학습할 수 있는 새로운 학교 문화를 창조하겠다는 교육당국은 오늘의 이와 같은 교육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개혁이 추구하고 있는 네 가지 가치요소 즉, 교육의 평등성, 수월성, 효율성, 선택성을 어떻게 살려 나갈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지난 10년간 실시해온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격과 기능을 미국의 STA나 ACT, 영국의 GCE, 독일의 아바투어, 프랑스의 바까로레 등과 비교 분석해 우리 실정에 맞게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에서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 제도에 대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격을 도입 초기의 근본 취지를 되살려 대학에서의 학업 수행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일종의 자격시험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수능 시험의 총점보다는 영역별 점수를 중심으로 대학 입학 지망 여부를 결정짓는 방식을 도입한다. 마치, TOEFL 시험 성적처럼 각 개인의 수능시험 점수를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 대학에서는 자기 대학의 어느 계열은 수능영역 점수 몇 점 이상을 요구한다고 사전에 공지하고, 학생들은 자기 점수에 맞는 대학에 응시해 대학별로 다양한 입학전형을 치르면 될 것이다.
둘째,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문항을 지식평가 위주에서 종합적인 사고력과 논리력, 창의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교과별(통합교과) 내용 중심의 학력을 측정하는 한, 입시를 위한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어떻게(How) 평가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What) 평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논리력과 창의력, 사고력을 측정할 수 있는 수능 출제문항 개발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셋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현재처럼 국가 수준에서 획일적으로 실시할 것이 아니라 공공 전담기관에서 연중 지속적으로 기획, 개발, 실시,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 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공인되고 있는 TOEIC이나 TOEFL 시험제도와 같은 방식을 원용해도 좋을
것이다. 수능시험이 이처럼 개선된다면 7차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종합적인 사고력과 논리력을 지니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해 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