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잊지 못할 스승이 여러분 계시다. 그 분들이 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를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셨기 때문이다. 코흘리개 어린시절 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나의 가슴에 남아있는 기억은 대부분 나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 준 말들 뿐이다. 아마도 좋은 것만을 생각하려는 습성 때문이리라. 기억에 남는 스승의 존함을 떠올리자면, 초등학교 때에 조도영 선생님, 중학교 때의 양현순 선생님, 맹주남 선생님, 윤인영 선생님, 고등학교 때에 이계형 선생님이시다. 대학 및 대학원 시절엔 한영목 선생님, 조희웅 선생님, 조흥욱 선생님, 이수자 선생님의 말씀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나의 학식이 여러모로 부족하고 미흡하였음에도 끝까지 나를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신 스승님들이시다.
"봉희야, 늘 열심히 성실히 하는구나. 그래 넌 이담에 큰 사람이 될거야."
"제법 글을 열심히 쓰는구나. 더욱 열심히 노력해 보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겠다."
"그래. 늘 성실한 모습 보여줘서 참 기쁘다. 너의 꿈을 마음껏 키워보렴. "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넌 성실로써 끝까지 밀고 나가면 분명 좋은 결실이 있을 겁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어쩌면 나는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 아닐까?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뛰어난 조각가였다. 자기가 만든 여자 조각상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그 조각이 진짜 여인이 되었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는 의미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다.
어찌보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훌륭한 스승의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를 키웠고, 나의 인생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마치 궤도를 이탈할 때마다 스승님들이 던진 말 한마디가 삶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한 강력한 힘이었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정(認定)해 준다는 것, 지지(支持)해 준다는 것, 그것은 확실히 그렇게 될 거라는 믿는 일이다. 스승이 제자를. 부모가 자식을 확실하게 믿어주는 것만큼 멋진 일이 또 있을까? 믿어준다는 것, 때론 지지해 준다는 것은 한 인생을 새롭게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농촌에 살던 나의 어린시절은 참으로 힘겨운 나날이었다. 머리가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가정 환경도 그리 좋지 않았다. 또 성격도 유달리 소극적이어서 선생님의 눈에 띄지도 못했다. 나 나름대로 성실한 학교 생활을 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늘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인이 되곤 했었다. 친구들은 곧이 곧대로 선생님의 말만 잘 따르는 나를 범생이로 놀리기에 이르렀고, 그들 집단에서 일종의 왕따나 따돌림 같은 것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외롭고 힘겨운 삶이었다. 더욱이 가난한 농촌 생활이 그러했던 것처럼 빈곤한 생활의 연속이었고 언제나 희망을 찾아보긴 힘든 상황이었다. 부모님의 농삿일을 돕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 속에서 그래도 나를 인정해 주신 분들은 학교의 스승이셨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을 지지해 주거나 칭찬하는 일에는 늘 인색하신 분이셨다. 우등 상장을 타와도 별 표정이 없는 분들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의 좋은 점만을 보아주시는 선생님의 미소와 말씀은 언제나 내겐 삶의 활력소였다. 어찌보면 나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좋은 스승을 만남으로 인해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내가 성장했고 그로 인해 오늘의 내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가장 힘들었 때에 관심으로 던져준 따뜻한 말 한마디는 두고 두고 기억되기 마련이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학과를 선택하던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과목은 국사 과목이었기에 당연히 대학은 역사학과로 가는 것으로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역사 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전국에 그리 많지 않았다. 또 명문 대학은 내 능력으로는 감히 엄두도 못낼 처지였다. 결국, 나는 역사학과가 아닌 국어교육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교직은 그리 인기가 없는 시절이었다. 다른 학과에 진학하자, 많은 친구들은 생뚱맞게 웬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느냐면서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쏟아지는 나에 대한 관심에 사실 난처했고 미래에 대한 큰 기대감으로 불안하기까지 했다. 대학에서 잘 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불투명한 미래였다. 그 때 한 선생님께서 내게 다가와 따뜻한 덕담을 해 주셨다.
"대학 입학을 축하해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는 겁니다. 국어교육과에서 열심히 해서 훌륭한 교육자가 되어 보세요. 내가 보기엔 적성에 잘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위대한 것이었다. 나의 일생을 바꾸어 놓았기에 때문이다. 내가 바로 교육자로서 교육 현장에 이렇게 설 수 있게 되엇으니 말이다.
남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주기는 커녕, 온갖 험담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요즘 세태다. 사람은 누구나 멋지다고, 똑똑하다고, 좋다고 인정받길 원한다. 이 뿌리 깊은 본능 때문에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좌절에서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있다는 말처럼, 인정과 칭찬이 있는 곳에 아름다운 인생, 멋진 인생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훌륭한 스승님,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일까? 이미 세상을 떠난 스승님도 계시고, 어느 곳에 계시는 지 잘 알수 없는 선생님도 계시다. 내 인생을 이끈 여러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기에 오늘도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분명 그 분들께 많은 것을 배웠다. 또 그 사실을 경험하고 있고 목도하고 있다. 매사에 이웃과 동료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따스한 칭찬과 인정으로 격려하는 삶, 내가 평생 해야할 내 몫이자 사명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엔 어려운 가정 환경에 지쳐 힘겹게 살아가는 학생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좋은 생각, 좋은 말 한 마디를 나름대로 찾아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다시금 희망의 말 한마디를 은근히 던져본다.
"그래~! 넌 좋은 교사가 분명 될 수 있어. 학생들이 존경할 수 있는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을거야. 다시금 노력해 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