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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향로봉을 오르며


오래 만에 가족이 함께하는 산행이다. 고로쇠 맛도 볼 겸 배내골 향로봉 코스를 잡았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새벽에 동이 틀 무렵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추어 집을 떠난다. 그래야만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찻길도 산길도 밀리지 않아 너무 좋다. 아무도 밟지 않은 아침 이슬을 맞으며 걷는 산행의 묘미, 생각하며 이야기하며 즐겁게 등산의 진미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새벽 여섯시에 집을 출발하여 능동산의 도로 능선에 도착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산속이라서인지 냉기가 차창 안으로 엄습해온다. 산골의 칼바람이 매섭다. 이천 분교를 지나 선리 마을 입구 산 밑 마지막 마을 회관에 차를 주차하고 산을 오른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산을 찾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조금은 수줍고 설레는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시골 풍경이 너무 정겹다. 장닭의 울음소리가 심신유곡을 일깨운다. 아침밥을 준비하느라 산골초가의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산수화에 하얀 덧칠을 한다. 골목길을 돌아서니 돌담을 타고 넘어오는 구수한 시골 된장찌개 냄새가 코끝을 깨운다. 개울가에 이르니 수양버들이 가지 사이로 솜털의 연초록 이파리들이 물길을 내느라 분주하다. 깔치 논둑 양지 바른 곳에 냉이가 수줍은 듯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하산 길에 캐어가 냉이 국을 끓여 봐. 향긋한 봄내음에 금방 입맛이 돌아올 텐데.

능선가까이에 이르니 장끼들이 이쪽 계곡에서 저쪽 계곡으로 자태를 뽐내며 날아오른다. 그런데 까투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아마도 암놈을 숨겨두고 보호하기 위해 유도비상을 하는 모양이다. 오랜 만에 아스팔트 공간을 벗어나 한 폭의 산수화속의 신선이 된 기분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광이 어디 있을까?

겨울의 산행은 쓸쓸하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하거나 둘 이상이 되어야 공허함을 달랠 수 있다. 능선 아래로는 낙엽수가 많아 나목의 모습이 쓸쓸함을 더한다. 그러나 이쪽 아래 계곡에는 만산홍엽이 겨우내 내리 쌓여 푹신한 융단을 깊이 깔아 놓았다. 어린애 마냥 아내가 뒤를 따라 함께 뛰어 들었다. 떡갈나무 잎의 향이 상큼하다. 순수 자연산 향수다. 허리까지 푹 파묻힌다. 따스한 아침햇살이 이 융단 속에 한숨 자고 놀다 가라 유혹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재촉한다. 정상 가까이에 이르니 때 아닌 눈발이 우릴 반긴다. 경칩도 지나고 봄이 분주히 채비를 하는 이때에 웬 눈발인가. 산 아래 찾아 온 봄을 시샘하는가 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맞으며 생각 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이 눈을 밟으며 정상을 향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매사에 앞서 행하면 이런 운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정상 가까이에 이르니 산양의 배설물이 바위 구석구석에 여기저기에 쌓여있다. 산양의 놀이터를 우리가 짓밟고 방해해서 정말 미안하다. 가파른 바위 길에는 밧줄을 타고 올라야 했다. 스릴을 느끼며 향로봉(976m)정상에 오르니 천황산과 신불산이 좌의정 우의정 되어 양옆에 펼쳐진다. 오늘하루 나는 ‘신선이고 왕이로소이다.’ 오른쪽 편 아래에는 새로 건설된 밀양댐이 아침햇살을 받아 옥색 빛을 발한다. 눈이 부신다. 훼손되지 않은 원시림속의 아름다운 정경들이다. 어디서든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가슴이 탁 트인다.

하산 길은 여유롭다. 오를 때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다. 욕심을 부린 탓일까? 긴장이 풀린 탓일까? 잔설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으며 아래로 낙엽방석에 미끄러졌다. 불현듯 온몸에 따스한 촉감이 느껴진다. 조심스레 낙엽을 들추니 연두색 새싹이 고개를 내민다. 애처롭지만 아름다운 자태다. 우리는 누구보다 산속 봄의 전령을 먼저 훔쳐본 것이다. 아랫마을 우체통에 산골의 봄소식을 전해야지.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에 와 닿는 산바람은 분명 미풍이다.

가족과 함께한 산행이여서인지 즐겁고 몸도 날아갈듯 가볍다. 내친김에 제5회 배내골 고로쇠 축제가 열리는 원동면 대리 고점마을 사거리로 향했다. 쌀쌀한 날씨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하는 훈훈한 축제다. 모처럼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어 좋다. 태고의 비경과 깨끗함을 자랑하는 배내골에서 나오는 신비의 물 고로쇠 한잔 이 심신을 한결 여유롭게 한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 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이다. 고로쇠라는 이름은 뼈에 이롭다는 뜻의 한자어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농민지도자 부인회에서 제공하는 2천원짜리 푸짐한 국수 한 그릇이 어릴 적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바로 그 국수 맛이다. 밀양댐을 한 바퀴 돌아 배내골을 달린다.

산은 이렇게 말이 없어도 기다림과 견딤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자신감과 지혜 그리고 삶의 철학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분명 산은 이렇게 우리의 오랜 친구이며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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