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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추억 산행

높고 푸른 하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늦은 가을. 모처럼 초등학교 동기생부부가 가을 산행을 하기로 했다. 모두들 가을 억새를 찾아 유명산을 간다기에 우린 거꾸로 사람이 붐비지 않는 조용한 산행을 하기로 했다. 작은 산사가 있는, 어릴 적 추억이 담겨 있는 대운산을 택했다. 50여 년 전 그 기억들을 더듬으며, 어릴 적 한걸음에 내달리던 그 길을 따라 추억여행을, 어쩔 수 없이 어린 두 손주 녀석도 함께 했다.

길가엔 농부들의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들판의 황금색은 농부가 땀으로 빚어낸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힘들어하는 모습이지만 열심히 땀 흘리는 농부의 모습이, 구리 빛 피부가 건강하고 아름답다. 사람은 움직이고 열심히 활동하는데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바람결에 묻어나는 풀꽃들의 향기가 너무도 상큼하다. 길가엔 감나무들이 붉은 감을 주렁주렁 매단 채 우리를 반긴다. 가까이 손길이 닿는 자리지만 그대로 달려있다. 세상이 그렇게 야박하게 변했다지만 아직 시골에는 순수가 남아 있어 좋다. 손주 녀석이 “할아버지 감”하고 소리친다. 순간 ‘우리 어릴 적엔 감 서리해서 저걸 그냥 놓아두지 않았는데 말이야’ 하는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이 단풍잎처럼 화끈 달아오른다. 욕심 많은 세상이라지만 아무도 탐내지 않으면 이렇게 살맛날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배우게 하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다.

계곡의 물 흐름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가을 가뭄에 실개울이다. 산의 향기도 아름다움도, 돌 하나 나무 한그루 모두 옛 그대로인데, 우린 이렇게 60대 촌로가 되었구나. 긴 세월 다진 우정이어서인지 언제나 변함이 없고, 믿음직하고 편안한 분위기다. 우정은 오랜 시간 공들여 서로 닮아가는 모습인가보다. 영원히 변치 않은 동기생부부의 마음은 예나지금이나 그대로인데, 그러나 반백에, 인생계급장에 벗들은 옛 어릴 적 모습이 아니구나. 지금 우린 고운 단풍들이 어우러진 이 가을에, 먼 옛날 어린 시절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을 뒤적이고 있는 것이다. 옛날의 흑백영상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함께한 두 손주 녀석이 어릴 적 우리를 보는 것 같아 추억여행을 실감하게 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들어 하며, 그러나 낙엽이 뒹구는 오솔길을 투들 투들, 우리의 옛 추억의 모습들을 그대로 닮은 것 같구나.

한참 고비를 넘겼는지 이젠 잡았던 손을 놓고 갈지자로 혼자서 잘도 가는구나. 혹시나 낭떠러지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조바심 내며 따라가지만 한 번씩 우리 일행을 돌아보고 생글 생글 미소를 짓는다. 난데없이 다람쥐 한 마리가 친구하자며 두 녀석을 마중 나와 안내를 한다. 이렇게 사람이 자연과 함께 풍경이 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맑은 가을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가을하늘을 올려다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잘 되질 않았는데. 이 녀석들이 커서 우리와 함께한 환상적인 이 가을산행을 추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구비를 돌아가니 내원암이 너른 가슴으로 우릴 반긴다. 노란 은행 나뭇잎들이 경내를 금빛으로 물들인다. 주위의 산세와 오색단풍들이 함께 어우러져 절 안 정경이 더욱 정겹다. 경내의 감로수가 모두의 심신을 여유롭게 한다. 잠시나마 속세를 떠나니 모두가 신선이고 천국이다. 신선들의 아름다운 옛이야기들이 풍경소리 되어 들려오는 것 같다. 이렇게 산사의 가을은 깊어가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마음 가는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이 사색과 풍요로움이 더하여 완연한 황금빛 가을 산행이다. 유서 깊은 지리산 설악산도 좋지만 내 고향 오솔길, 코 흘리게 어린 시절 한걸음에 내달리던 그 길을 따라 추억하나 건졌으니 분명 의미 있는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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