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년 넘게 학생들 문예지도를 해오고 있다. 그 흔한 부장교사 한번 하지 않고(올해의 경우 교장 및 여러 선생님 권유로 어문학부장을 경력 23년만에 처음 맡았지만) 국어선생으로서 수업외 오로지 해오고 있는 일이 백일장 참가 등 문예지도이다.
학생들 글솜씨가 일취월장하는걸 보며 뿌듯한 기분과 문인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특히 학생들이 이런저런 백일장에 참가하여 상을 받을 때는 나의 일처럼 기쁘기 한량 없다. 또 교내백일장 등에서 제법 쓴 학생 글을 발견하는 것은 나만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백일장 참가학생 경비를 빼는 과정에서 그런 마음은 싹 가시고 만다. 지난 해 10월 나는 그런 점을 신문지면을 통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오만정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학생경비지출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7개월 여가 지난 지금도 교사에게 일단 경비를 주고 정산하는, 소위 '임시전도'가 대한민국 교사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고, 의욕적인 학생지도를 가로막고 있다. 심지어 간식비 4천원에 대한 영수증을 첨부하라고 한다. 자판기를 통해 음료수 사먹은 영수증을 어디서 가져오라는 말인가?
원거리 경우 교사 승용차로 학생들을 인솔하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학생경비는 대중교통을 전제로 지출된다며 현지 시내버스 차비까지 얼마인지 정산서에 기재하라고 한다. 행정실에선 우리가 "회계 업무에는 장선생님보다 더 밝으니 하라는 대로 해달라"고 말하지만, 나로선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경비를 직접 주고 도장을 받아 처리하는 방식도 있기 때문이다. 행정실에서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지금 담당자가 오기 전 전임자도 그랬고 전임 학교에서도 그런 방식이었다. 또 그 이전 전임 학교에서도 그랬다. 20년 넘게 백일장에 참가하면서 임시전도니 하며 교사를 무슨 수금사원처럼 대하는 이런 황당한 일을 겪는 건 거의 처음이다.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다. 관내는 학생들 도장을 받아 처리해도 되고 관외의 경우 임시전도를 하는 경비지출이 그것이다. 행정실에선 교사가 직접 인솔하여 가는 경우 임시전도를 한다지만, 아무리 가까운 시내도 학생들끼리만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우리같은 실업고에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전라북도 교육청에서는 실태 파악후 하루 빨리 명쾌한 답을 주기 바란다. 소위 임시전도가 회계법 등에 규정된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교육활동 위축시키는 '악법'은 빨리 고쳐져야 할 것이다. 일정기간까지 답이 없을 때 나는 교육부총리 나아가 대통령에게 질의해서라도 분명히 알고 넘어갈 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활동에 드는 경비를, 수업료 납부와 함께 일정한 권리가 생기는 교육의 한 주체인 학생에게 직접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 세금인 학교예산을 허투루 쓰자는게 아니다. 왜 교사가 학교외 학생지도를 하는데 4천원어치 간식비 영수증따위를 일일이 챙겨야 하느냐는 것이다.
굳이 따지면 백일장 등에도 수학여행처럼 행정실 직원이 동행하여 그런 일을 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입만 열면 개혁이니 혁신을 떠들어대는데, 도대체 무엇이 개혁이고 혁신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