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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창가에서> 학교를 믿고 맡겨라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내 논 '학교 생활 규정 예시안'을 보면 체벌을 허용하면서 구체적인 방법, 절차 등을 제시한 부분이 있다. 이에 따르면 체벌할 때, 초등학생은 지름 1cm 안팎, 길이 50cm 이하의 직선형 나무를, 중·고생은 지름 1.5cm, 길이 60cm 이하의 직선형 나무를 사용해야 한다. 체벌 부위는 남학생은 엉덩이, 여학생은 허벅지다. 횟수는 초등학생은 5회 이내, 중·고생은 10회 이내로 제한된다.

체벌은 다른 학생이 없는 별도의 장소에서 교감이나 생활지도부장 등 제3자를 배석시킨 상태에서 실시해야 한다. 요즘 학생 생활지도가 얼마나 어려우면 이런 고육책이 나왔을까. 이해가 가지만 이것으로 체벌 문제가 해결되고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좋아진다고 믿기는 어렵다.

첫째, 이번 조치는 선생님에 대한 불신이 그 저변에 깔려있다. 학생 생활 규정을 제정할 때 학부모와 학생이 반드시 참여하도록 하고 개정할 때는 학교운영위원회와 학생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으며 학생에게 대체벌 요구권과 벌점에 대한 이의 신청권을 부여한 것은 일견 학생 인권을 존중한 조치로 평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교사에 대한 철저한 불신에서 출발한 것으로 교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겨줄 수 있다.

둘째, 이러한 규정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 간다. 오히려 사제간에 분쟁의 소지만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문제를 같이 풀어갈 학부모, 교사, 학생간에는 학교 교육에 대한 현격한 인식차가 존재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학생들의 교칙 준수에 대하여 '잘 지킨다'는
응답이 학부모 63%, 교사 18%, 학생 20%로 나타났고, 생활지도 시 '잘 따른다'는 응답이 학부모 47%, 교사 14%, 학생 11%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학부모는 사실과 달리 자녀가 학교에서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만 믿고 있다.

셋째, 섣부른 인권교육이 교육의 획일성을 부르고 있다. 학교실정에 맞게 하라고 하면서 매의 두께와 길이를 정해주고 체벌의 횟수까지 정해주는 이 친절함(?)에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 안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시안'에 불과하다고 할지 모르나 일단 교육부 안을 내려보내면 전국의 모든 학교가 그것을 금과옥조로 삼아 베끼고 거기에 무슨 무슨 학교 규정이란 이름만 붙여온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다.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가장 마음 편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조심성 없이 자녀교육에 '인권'을 끌어들이고 있다. 부모 자녀 관계에 '평등'을 끌어들이거나 '자유'의 논리를 적용하는 일은 본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사와 학생은 사람과 사람으로서 평등한 것이지 교육자와 피교육자라는 점에서 평등한 것이 아니다. 교육은 협상과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강제와 억압을 제거해버리면 아이들이 저절로 자란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학생이 선생님들의 지도를 따르지 않으면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학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하고, 싫은 것은 안 해도 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렇다 할만한 제재 수단이 없는 교사들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 부모들은 자식을 학교에 보내면서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선생님께 매 맞고 돌아와서도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다. 이야기했다가는 또 부모님으로부터 불호령이 내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체벌 예찬론을 펴는 것이 아니다. 옛날 부모님들은 그렇게 학교 선생님을 신뢰하고 두둔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체벌문제는 전적으로 교사에게 맡겨야 한다. 문제가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든 나무가 있다해서 숲에 불을 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교사의 지도방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학교는 재판하는 곳이 아니고 교육하는 곳이며 선생님은 재판관이 아니라 교육하는 사람이다. 인간교육은 스승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자식을 학교에 보냈으면 교사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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