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성교육과 열린교육의 정착을 위해 중간·기말시험 방식의 교육평가를 교육현장에서 아예 몰아내고 수행평가로 대체하자는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요즈음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수행평가 바람은 힘을 잃고 종전의 교육평가 방식이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지필 위주의 현행 교육평가 방식은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하등의 비판이나 검증 없이 당연시되고 있다. 0점을 맞은 학생이 평가결과가 부모에게 통지돼 꾸중을 들을까 봐 시험지에 불을 붙여 일어난 모 초등학교 화재사건,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 학생들의 가출, 자살 등의 문제들이 아무리 큰 활자로 지상에 보도돼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학교교육에 대해 비판하는 학자가 많다. 그 중에서도 실버먼의 `교육의 위기', 일리치의 `학교 없는 사회', 라이머의 `학교는 죽었다'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콤보스는 평가에 대해 말하기를 출제와 채점이 경쟁심을 북돋우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갖게 하며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시험을 가르치고 언제나 정답을 맞추려는 습관을 기르는 교육에 치중하게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평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몸집이 크다, 작다' `말을 잘한다, 못한다' 등으로 비교를 받게 되며 학교에 들어가면 월말평가, 기말평가, 형성평가, 진단평가, 총괄평가 등 매일 매일의 학교생활 속에서 평가의 곤욕으로 학생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평가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평가는 제 惡의 근원'이라고 극언하기도 한다.
물론 평가는 방법은 학생의 학력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즉 학업성취와 정적 상관이 있어 평가를 많이 할수록 학생들의 학력이 향상되고 평가의 예고가 학습동기를 유발시키며 학생이 평가문항을 읽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잔존 흔적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평가의 결과는 자기확인, 긍정적 자아개념, 타인에 대한 가치부여, 사회적 위계질서 등과 같은 잠재적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객관화를 지향하는 평가의 속성상 창의력이나 인성 보다 주로 지식에 치중한다던가 점수나 순위 결정에 집착하게 하는 등 교육적 역기능이 더 크다. 더욱이 학력관리가 점수 올리기 작전처럼 수행되면 결국 학교교육을 망치는 꼴이 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평가는 학력의 결함요소를 찾기 위한 진단평가나 학습과정으로서의 형성평가, 학업성취의 도달여부를 확인하는 총괄평가가 대표적 유형이나 일선학교에서의 큰 문제점은 형성평가, 월말, 기말평가 결과를 총괄평가의 성격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교사들은 학력평가가 지식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 탐구력, 분석력, 종합력 등 고등정신 기능을 잴 수 있도록 평가문항을 제작해야 한다. 토를러가 제시한 바와 같이 `학력'이란 학습에 의해 `획득된 힘'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는 지식 생산능력인 `학습력'이라는 올바른 개념 정착이 필요하다.
미래사회가 원하는 창의력 있는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 초·중등 학교에서 관습적 획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평가 방식에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