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화)

  • 구름많음동두천 27.7℃
  • 흐림강릉 29.4℃
  • 구름조금서울 29.1℃
  • 구름조금대전 30.2℃
  • 맑음대구 32.3℃
  • 연무울산 29.4℃
  • 맑음광주 31.6℃
  • 구름조금부산 26.6℃
  • 구름조금고창 32.1℃
  • 맑음제주 29.6℃
  • 흐림강화 26.9℃
  • 구름많음보은 28.2℃
  • 구름조금금산 30.3℃
  • 구름많음강진군 30.8℃
  • 구름조금경주시 32.9℃
  • 구름조금거제 28.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작은이야기> 과거로의 여행

토요일 오후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교정의 뜨락을 가득 메웠던 봄볕을 저만치 밀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의 주인공이 생각나지 않아 머뭇거리던 나는 "××초등교에 다닌 제잡니다"라는 말에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전화를 끊는 순간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곳의 모습이 갑자기 보고 싶었다. `그렇다. 내일 모든 걸 다 털어 버리고 떠나리라.'

다음날 아침 난 가벼운 등산복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승용차로 몇 시간을 달렸을까. 험한 산허리를 돌아 끊어질 듯 이어졌던 옛길의 정취는 사라지고 새로 뚫린 낯선 길이 어색하게 나를 맞는다. 산모롱이를 돌 때마다 낯선 나그네의 헛기침 소리에 놀란 산새들의 날갯짓 소리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발령장을 받고 부임하던 날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님과 난 20여 리 이 길을 걸어서 가야만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 같은 걱정과 안쓰러움이 주름진 얼굴에 땀방울 되어 흐르던 그 날의 기억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나의 눈은 먼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덧 나의 발길은 학교 교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굳게 잠긴 교문에는 녹슨 자물쇠가 걸려 있고 조그만 안내판 하나가 이미 폐교됐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누가 이렇게 갈 수 없는 곳으로 만든 것일까.' 아이들의 재잘거리던 모습도 찾을 길 없었다. 그렇게 흩어진 상념의 조각들을 모으며 옛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없어 유독 외로움을 타던 영미, 10여 리의 먼 길을 하루도 빠짐 없이 다니던 철호, 신문지에 둘둘만 옥수수를 내밀며 겸연쩍게 웃던 기원이…아이들은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고사리 손으로 냇가의 돌맹이를 날라 쌓았던 담장,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만든 분수대, 수많은 야생화를 심고 가꾸던 교재원, 땀 흘리며 공부하던 교실과 칠판도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다.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있는 동안 갑자기 등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향 사랑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이장님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손을 놓지 못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어느덧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고 저녁 어스름에 묻힌 쓸쓸한 교정이 갈길 바쁜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그 옛날 이 곳에 나를 두고 떠나시던 아버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 내 마음은 천근처럼 무거웠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