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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00 교단문학상 동화-가작> 다롱이와 참새

민수는 6학년이 되고 체육이 더욱 싫어졌다.
시간마다 운동장 돌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몸이 뚱뚱하고 동작이 느린 민수는 너무 힘이 들었다. 체육이 든 날은 학교에 가는 발걸음조차 무거웠다.

어느 날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민수야! 체육이 그렇게 싫으냐? 그렇게 힘이 들어?"
"어머니 내 일기장 보셨군요. 부끄럽게. 달리기요? 참 싫어요. 체육선생님은 수업 전에 운동장 세 바퀴 뛰기를 꼭 시킨단 말이에요. 얼마나 힘이 든다구요. 그 때마다 내가 꼴찌나 다름이 없어요"
"그래. 무척 힘이 들겠구나.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 것을 안할 수도 없잖니?"
"그렇지요. 그러나 무척 힘들어요."
옆에서 신문을 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웃는 얼굴로 민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그럼 나와 같이 운동을 하자. 마침 잘 됐구나. 우리 아침마다 마을을 한 바퀴씩 도는 것이 어떨까? 처음에는 힘이 들겠지만 점점 나아질
거야."
"……."

아버지 말씀에 앞이 깜깜하였다. 운동 부족으로 배가 나와 운동을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민수는 체육 시간에 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아침마다 달릴 생각을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 아빠와 같이 운동을 하면 더욱 좋겠구나. 노력하여 못 이룰 일이 없잖니? 그거 참 좋겠네."
"그래. 민수야, 약속하는 거야."
어머니께서 옆에서 거드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약속을 하고 민수는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이었다. 아직 밝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께서 깨웠다. 모르는 척 돌아누우니 이불을 다걷어치우고 막 일으켜 세웠다. 눈을 비비고 마당으로 내려서니 다롱이가 반갑다고 펄쩍펄쩍 뛰어 올랐다. 마치 같이 뛰고 싶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따라 나서려고 하였다.

"야! 너는 안돼! 집에 있어."
다롱이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마루 밑의 제 집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나섰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골목을 가로등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집 골목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언덕길이 나타났다. 얼마를 달리지 못해서 숨이 찼다. 다리도 아팠다. 숨이 턱까지 찼다. 더 뛸 수가 없었다.

"아버지이! 좀 쉬었다 가요! 너무 힘들어요."
"야, 아직 반도 못 뛰어 그러면 어쩌냐? 힘을 내, 뛰어!"
손을 잡은 아버지는 민수를 끌다시피 하며 뛰었다. 평평한 길이 나왔다. 좀 나았다. 호흡과 발을 맞추어 천천히 뛰었다. 얼굴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에 눈이 따가웠다.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아버지의 뒤를 따라 뛰었다. 입으로 들어오는 땀이 짭찔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뛰기를 멈추고 좀 쉬자고 했다. 민수는 따라서 쉬었다. 길옆에 넓적한 바위가 있어 앉아 쉬기가 좋았다. 아버지 입에서 입김이 담배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민수야! 우리 남자끼리의 약속이다. 너의 어머니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는 거야. 자 약속!"
"예, 좋아요. 어머니에게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겠지요."
아버지와 악수를 하며 굳게 약속을 하였다.
아버지는 일어서며 재촉을 하였다.
"자, 또 뛰자."
"조금만 더 쉬지요."
몇 번을 쉬고서야 마을을 다 돌았다.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집에 도착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는데 어머니께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어이구, 부자간에 운동하니 보기에 좋네요."
"그럼, 보라고 앞으로 열심히 할 테니까."
"작심삼일이나 되지 말아요."
"어허, 우리 부자를 어떻게 보고하는 소리야. 두고 보라고."
이렇게 시작한 달리기를 아버지와 아침마다 며칠을 계속하였다. 처음에는 힘이 들어 포기하려고도 했으나 참고 열심히 뛰었다. 학교에 가면 피곤하였다. 공부 시간에 졸다가 선생님께 꾸중도 들었다. 그러나 체육시간에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을을 한 바퀴씩 도는데 운동장 세 바퀴쯤이야 싶어 열심히 뛰었다. 뛰다 보니 민수 뒤에도 몇 명이 달리고 있었다. 먼저 들어와 숨쉬기를 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날이 지나면서 민수가 아버지를 깨우는 날도 있었다. 하루쯤 쉬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약속을 생각하며 참고 일어났다. 마을을 돌다가 쉬고 싶은 것도 참고 뛰었다. 석 달이 지났다. 6월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출장을 가신 날이었다. 혼자서 운동하기 싫어 하루를 쉴까 했지만 어머니 성화가 대단하였다.

"민수야! 어서 운동을 해야지. 뭐하고 있니?"
"오늘은 하루 쉬면 안될까요?"
"무슨 소리야! 마음이 약해지면 안되지. 어서 운동을 하고 와. 그런데 오늘은 외롭겠구나. 참, 다롱이를 데리고 뛰면 어떨까? 재미있을 거야."

"참 그러네요. 다롱이와 함께 뛰면 재미도 있을 것을…."
민수는 다롱이의 목에 끈을 묶어서 대문을 나셨다. 다롱이는 같이 운동을 하는 것을 알았는지 꼬리를 흔들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아침의 공기는 매우 상쾌했다. 다롱이는 생각보다 잘 뛰었다. 다롱이가 오히려 민수를 끌고 있었다. 더 빨랐다. 끈이 당겨져 목이 졸려 숨을 몰아쉬는 것이 불쌍했다. 끈을 풀어 주었다. 신이나 앞서 막 뛰었다. 다른 날보다 더 숨이 가쁘게 뛰어야 되었다. 민수와 다롱이의 거리는 좁혀졌다 멀어졌다 하였다. 앞에서 달려가던 다롱이는 나무나 바위가 있으면 냄새를 맡고 오줌을 누었다. 그러면 거리가 좁혀졌다. 매일 아침 쉬던 바위에 걸터앉았다. 앞서 달려가던 다롱이는 민수가 오지 않자 뒤돌아 달려왔다. 바위 옆에 다가와 냄새를 맡더니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찍!' 오줌을 누었다.

"야 임마, 너는 아무데서나 오줌을 누면 어쩌니? 노상 방뇨하면 벌금이 얼마인지 알기나 하니?"
다롱이는 자기를 예쁘다는 소리로 들었는지 꼬리를 흔들며 민수에게 덤벼들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내리막길을 지나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타났다. 이 나무는 동네에 나이가 제일 많은 순이 할아버지도 나이가 얼마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아는 사림이 없었다. 조선 시대 누가 심었다는 말도 있었고, 고려 시대에 어떤 스님이 심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밑둥치는 어른 세 사람이 안아도 남을 정도로 컸다. 나무의 속이 비어서 그 속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단오 때에는 그네가 매이기도 하였다.

여름이 되면 이 나무에는 매미들의 합창 소리로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새들도 보금자리를 틀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리고 더운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도 주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이 나무가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우리의 국토가 왜구의 발에 밟히는 것이 안타까워 이
나무가 울었다는 전설도 있었다. 또 6.25 사변 때는 이 나무가 지켜주어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치지 않았다고 하여 십 여 년 전까지 마을에서 당고사를 정성껏 올렸다고 하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느티나무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제 누가 깔고 있다가 두고 간 자리가 하나 외롭게 놓여 있었다. 나무 밑을 지나오려는데 길바닥에 움직이는 무엇이 있었다. 주먹만하였다. 달리기를 멈추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린 참새였다. 부리의 근처에 아직 노란 색이 남아 있었다. 어쩌다 나무에서 떨어졌는지 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조금씩 퍼드덕거리고 있었다.

'어이구 불쌍해라. 내가 치료를 해주어야겠구나.'
얼른 다가가 집으려 하였다. 그 때 다롱이가 참새를 덮썩 물었다. 어느 새 달려왔는지 다롱이의 동작은 너무 날래어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정말 빠른 동작이었다.

"야! 다롱아! 너, 너, 그 참새……."
얼마나 빠르게 달려가는지 민수의 말소리는 다롱이의 꼬리에도 미치지 못할 듯하였다. 치켜세운 꼬리가 멀어지더니 금방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힘없이 뛰면서 투덜거렸다.
'에이 이놈의 다롱이 집에 가서 보자. 그냥 안 둘 테다. 내가 흥부는 아니지만 불쌍한 참새를 치료해 주고 싶었는데 천당으로 보내버리다니.'
민수는 다롱이가 꼬리를 감춘 골목길을 숨이 차게 달렸다. 대문을 박차고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마당에서 놀던 다롱이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왔다.
"야! 너 임마!"
발로 걷어찼다. 턱이 맞으면서 '퍽!' 소리가 났다.
"깨갱! 깨갱깽! 깨갱깽!"
민수에게 차인 다롱이는 머리를 흔들며 마루 밑으로 쫓게 들어갔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두리번거리는데 옆에 마당비가 눈에 띠였다. 민수는 얼른 집어들고 마루를 쾅쾅 치며 소리를 질렀다.

"너, 이리 나오지 못해! 임마! 모처럼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네가 그 불쌍한 어린 참새를……. 너 임마, 빨리 나와!"
그 때 부엌에서 다롱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머니께서 나오시며 말씀하셨다.
"얘, 민수야! 왜 그러니? 달리기 잘하고 와서는 다롱이를 왜 못살게 구니?"
"글쎄, 이놈이 내가 본……."
"오늘 아침이 다롱이는 참 착한 일을 했단다."
"무슨 소리여요. 오늘 아침에 다롱이를 데리고 갔기 때문에 싹 망쳤단 말이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오늘 다롱이는 참 좋은 일을 하였단다. 글쎄 수돗가에 갔는데 내 앞에 새를 물어다 놓잖니. 그것도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어린 참새를."
"예? 참새를요?"
"그래, 틀림없는 참새였어."
"……?"
민수는 어머니의 말씀에 귀를 의심하였다.

벌써 하늘 나라로 갔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참새를 그냥 물고 오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멍하니 서있는 민수를 바라보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얘야, 궁금하면 어서 방에 들어가 보렴. 아랫목에."
"예, 정말이지요?"
민수는 마음이 급했다. 운동화가 잘 벗겨지지 않아 흔들다 보니 한쪽은 마당가운데로 날아갔다. 안방으로 달려들어갔다. 방석에 수건으로 덮여진 것이 보였다. 살며시 들쳐 보니 어린 참새가 있었다. 숨을 할딱이며 누워 있었다. 가만히 얼굴에 대보니 따뜻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온기가 있었다.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다. 살그머니 수건을 도로 덮어 주고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 정말 저 참새를 다롱이가 물고 왔어요? 정말요?"
"그래, 얼마나 신통한지 모른단다. 내가 빨래를 하는데 갖다 주고는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더구나. 얼마나 귀엽던지."

민수는 머리를 갸웃하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수돗가에서 물을 먹으려던 다롱이가 겁을 먹었는지 꼬리를 내리며 마루 밑으로 쫓겨 들어갔다. "야, 다롱아, 이리 나와 봐.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응? 어서 나와 봐."
그러나 다롱이는 마루 밑의 제 집에 엎드려 눈만 끔벅이며 나오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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