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등 국립대가 고교평준화, 대입정책, 총장 선출방식, 전문대학원 전환 등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딴지'를 걸자 대학의 자율성이 우선이냐, 국립대의 사회적 책무성이 우선이냐에 대한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전국 국립대가 총장 선거의 선관위 위탁 관리 등에 강력 반발한 데 이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본고사 논쟁'으로 당정과 갈등을 겪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 '고교평준화 재고' 지론을 또 들고 나온 것.
국립대 법인화나 회계 통합 등도 교육부는 "더 많은 자율권을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반면 국립대는 "대학을 더 옥죄고 간섭하려는 것"이라고 정반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가 정부 시책을 거스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은 지위나 위치를 망각한 처사라는 주장과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대학 본연의 역할이라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이런 해묵은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교육계가 미봉책으로 문제를 덮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 참에 건설적인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국립대, "왜 자율성 침해하나" =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는 교육부가 입시정책이나 총장 선출방식 등에 '간섭한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즉, 총장 선거의 선관위 위탁을 규정한 교육공무원법은 대학 자치와 자율을 침해하는 만큼 원상복귀 법안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대학회계 제도도 "국립대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인상하는 조치로, 국민 부담을 가중하고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논리를 내놨다.
또 본고사ㆍ고교등급제ㆍ기여입학제를 금지한 '3불 정책'에 대해 원칙적인 찬성 반응을 밝히면서도 "서울대 입시안 파동은 대학의 순수한 교육적 개혁 조치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호도한 것으로 대학 자율성 침해"라고 짚고 넘어갔다.
기회 있을 때마다 '평준화 보완 및 재고' 주장을 해 교육계에 계속 파장을 일으켰던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이 문제를 또 건드렸다.
정 총장은 18일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주최 강연에서 "교육의 목적은 한편으로는 가르치는 데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솎아내는 데도 있는 만큼 국가 발전을 위해 고교평준화 제도를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대 의대는 의학전문대학원 전환을 압도적 표차로 거부하면서 교육부가 전환을 '강요ㆍ압박'했다고 폭로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정부는 권유하는 '수준'이지만 대학에서는 '강요'로 받아들여진다"며 "대학 자율권을 침해하는 데도 정부 시책이니까 국립대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독재정권에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따졌다.
◇ 교육부, "왜 책무성 외면하나" = 교육부는 직접 표현은 자제하면서도 서울대 가 '고매한 상아탑'에 갖혀 '자기중심적 행보'만 보이고 있다고 불만이다.
의학대학원 전환과 법인화, 총장 선임 방식은 대학 자율로 결정하되 '권유'하는 수준임에도 '협박'이라도 한 것처럼 과민반응하고 있으며 법인화 등은 국립대의 자율성을 높여주려는 조치인데도 오히려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처럼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총장 선거의 선관위 위탁은 전체 사회의 공명 선거 풍토 조성 차원에서 '관리'만 위탁하는 것이고, 교육부가 추진하는 간선제도 학내외 인사가 참여하는 추천위원회에서 총장을 선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대학구성원 과반수가 동의하는 경우 직선제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학 자율권을 보장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감을 비롯, 모든 공직 선거에 선관위가 개입하는 데 유독 국립대 총장만 안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법인화와 대학회계 도입도 인사, 예산, 조직 등에서 국립대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취지라고 설명했다.
예산만 해도 대학이 요구하면 교육부가 이를 취합ㆍ정리해 기획예산처에 심의를 의뢰하고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앞으로 의사결정기구가 될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고 급여ㆍ인사 체계도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대신 법인화에 따른 고용 불안 등에 대해서는 고용승계 보장, 공무원연금 혜택 부여 등을 통해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최근 대국민 담화에서 "대학 학생 선발권은 사회적 책무성이 바탕이 돼야 하고, 입학전형이 대다수 학교와 학생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선도대학'은 교육ㆍ사회적 파장에 대해 정부 이상으로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