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5 (금)

  • 흐림동두천 29.3℃
  • 흐림강릉 30.6℃
  • 흐림서울 32.3℃
  • 구름많음대전 30.7℃
  • 구름조금대구 32.7℃
  • 구름많음울산 30.7℃
  • 구름조금광주 31.8℃
  • 맑음부산 32.0℃
  • 구름조금고창 32.7℃
  • 구름조금제주 31.6℃
  • 흐림강화 30.0℃
  • 흐림보은 29.2℃
  • 구름많음금산 31.4℃
  • 구름조금강진군 31.5℃
  • 맑음경주시 32.0℃
  • 맑음거제 31.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현장

<교단문학상 소설 당선작> 1999, 학교, 겨울

힘을 제압하는 것은 속도.

-한 이온음료 TV 광고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도로는 양재동에서 가락시장까지 이어지는 양재 대로다. 그 길은 편도 4차선의 널찍한, 그래서인지 잘 막히지도 않는 쌔끈한 도로다. 게다가 음주 단속하는 짭새도 보이지 않는다. 나와 친구는 일주일에 몇 번씩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 이 길을 X나 달린다. 지금은 새벽 1시 30분. 나는 오늘도 이 길을 달리기 위해 나왔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후, 후, 오늘은 바로, 내 오토바이가 생긴 날이기 때문이다. 방학 내내 중국 집에서 스쿠터를 몰며 꼰대 몰래 철가방 알바를 한 대가다. 내 다이어리에 스크랩되어있는 정말 죽여주는 가와사키나 야마하는 아니지만 이래봬도 125씨씨짜리 경주용이다. 무늬만 경주용이라고 대석이 새낀 씹었지만 뒤 안장을 파이프로 용접해서 멋지게 올리고 바퀴에 번쩍거리는 야광 후레쉬에, 앞좌석에는 커다란 스피커까지 달아논 내 타이지를(타이지는 내 오토바이의 이름이다. 내가 X나게 좋아하는 엑스제펜 멤버중의 이름을 땄다) 보고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물론 소음기는 떼어버렸다. 아파트 전체를 울리는 그드등, 그드등 거리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는 타이지의 베이스 기타 음만큼이나 나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주인인 송씨 아저씨가 고맙게 느껴졌다. 비록 중고이긴 하지만 이런 쌈박한 오토바이를 내가 원하는 옵션을 다 달아주면서 단돈 50만원에 팔다니, 아주 드물지만 가끔 맘에 드는 어른이 이 세상에 있기도 하다.

어느덧 양재 사거리에 도착했다. 나는 인도 가까이 오토바이를 대고 숨을 고른다. 신호등을 계산하고 출발해야지만 멈추지 않고 가락시장까지 달릴 수 있다. 이제 쪽팔리게 중국집 스쿠터로 아파트 안을 돌거나 애걸복걸해서 단 몇 십분 친구 오토바이를 감질나게 빌려 타야만 했던 지난날의 서러움을 씻을 수 있게 됐다. 대학로에서 비싼 오토바이에 기집애들을 태우고 달리던 놈들도 이젠 부럽지 않다. 만나면 맨 날 징징대기만 하고 자존심만 X나
세우는 기집애들보다 나를 희열의 끝까지 데려가는 오토바이가 훨 낫다. 타이지가 이제 내 깔이다. 내 깔에 손대는 놈은 누구든 간에 죽여 버릴 꺼다.

나는 타이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몸체를 한번 어루만졌다. 신호가 바뀌었다. 동시에 나는 양 손목으로 힘차게 엑셀을 땡겼다. 타이지가 멍에에서 풀어진 들소처럼 퉁하고 튀어 나갔다. 머리카락이 뒤로 젖혀졌다. 웅 웅 바람소리가 들린다. 밤을 깨뜨리는 엔진 소리와 바람소리. 내 모든 신경은 생선처럼 파득거린다. 헬멧은 없다. 그건 속도를 겁내는 비겁한 놈들이나 쓰는 거다. 가죽 잠바는 돈이 없어 아쉽지만 다음 달로 미루었다. 나는 살갗을 벗겨버릴 것만 같은 힘찬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즐긴다.

내 앞에 있는 검은 색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나는 아슬아슬하게 비켜간다. 뒷좌석에 앉은 머리가 벗겨진 배불뚝이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씨부렁거리는 것이 빽 밀러에 보인다. 나는 지그재그로 운전을 하면서 다이너스티를 희롱한다. 나는 고급 차를 보면 가끔 이런 장난을 한다. 소위 성공했다는 저런 새끼들이 테레비에 나와 점잔떠는 것을 보면 속이 메스껍다. 국민을 위해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들이 룸싸롱에서 영계만 찾지…

일찌감치 학교는 접고 룸싸롱에서 삐끼하는 친구 놈에게 다 들은 얘기다. 씨팔 나도 학교 때려치우고 삐끼나 할까, 삐끼 수입이 우리학교 선생 수입보다 낫다는 데. 오토바이 타는 것을 말리던 담임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말라는 담임의 말에 픽하고 코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당신은 언제 어디에 목숨이나 걸어본 적 있어?’ 부모말 잘 듣고 착실히 공부만 한 범생이들. 그것이 대부분 선생들의 인생이다. 그들이 우릴 어떻게 이해해. 이 X같은 세상에 이제 목숨 걸만한 것이 무엇이 남았냐 말이다. 난 지금 이 순간 타이지에 목숨 걸 꺼다.

괜히 화가 나서 손목에 더 힘을 준다. ‘속도계는 고칠 필요 없지?’송사장이 웃으며 말한 얼굴이 생각난다. 속도계는 고장나 있었다. ‘그럼요’ 나는 웃으며 말했었다. 내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의 세기. 한 선으로 그어지는 가로등의 조명. 터질 듯한 엔진소리. 이것이 바로 속도계다. ‘자 이제 너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줘 봐.’ 나는 타이지에 속삭인다. 어깨를 바짝 앞으로 누이고 속도를 높인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맞바람이 친다. 몇 대의 차가 위잉하는 소리를 내며 내 뒤로 뒤쳐진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나는 내 뒤로 획획 지나가는 세상과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게 소리친다. 세상 모든 사물들이 줄어들어 하나의 점으로 축소된다. 나는 지상으로부터 탈출하여 블랙홀 같은 그 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점을 통과하면 새로운 세계가 나를 기다릴 것 같다. 나는 손목을 더 안으로 당긴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난다. 종아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밑을 보니 실린더와 함께 내 다리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뜨겁다.’라고 느낀 순간, 앞 미간에 무언가가 다가온다. 고개를 위로 올리자 DEAWOO라는 영문자가 커다랗게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쿵 소리와 함께 나는 타이지로부터 솟구쳐 하늘을 난다. 시팔, 서울 밤하늘 한번 근사하구나.

교사(敎師):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소정의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거나 돌 보는 사람
-‘동아 새 국어 사전’ 중에서-

띠르르.. 아침 보충 수업을 막 끝내고 돌아와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허리가 휘청거려 분필이 잔뜩 묻은 손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깨우며 소리를 질러대느라 턱이 다 아파 온다. 까마귀가 파먹은 듯한 54개의 눈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아침도 굶어가며 수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퍼져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면서 수업을 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 하긴 아이들도 전날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고 다음날 아침도 굶고 7시30분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이 고역일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고 그래서 지금 선생이나마 되지 않았는가.

이놈들은 공부를 못해서 사회에서 겪을 불평등과 설움을 아직 모르고 있다. 고졸과 대졸, 명문대와 비명문대를 가르는 편리하고 명징(明澄)한 잣대. 이놈의 사회는 그 잣대로 그들의 삶에 정육점의 고기처럼 지우기 힘든 낙인을 찍는다는 것을 아이들은 몸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르르 따르르. 계속 울리는 전화벨은 불편한 내 심기를 계속 긁고 있다. 때론 혼란스럽다. 교사란 학생들에게 이상을 가르쳐야 옳은 건지, 아니면 냉엄한 현실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 옳은 건지. 하긴 교사가 어떤 방향으로 가르치든 욕을 먹는 건 마찬가지다. 재밌고 유익한 수업. 그거 나도 할 줄 안다. 하지만 그런 수업은 쫓기는 진도에, 50명이 넘는 학급 인원에, 학교 시험 에 반영이 안되면 관심도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외면 당하기만 한다. 아이들 특유의 감성이 흘러 넘쳐야 할 문학 시간에 수능 대비 문제집만 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맥이 빠져 버린다. 시를 수능이라는 도마에 놓고 갈가리 찢는 문학 백정. 그것이 지금 나의 모습이다.

“김선생, 전화 좀 받으세요. 선생님 반 학부모라는데요?”
동료 교사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어 전화를 받는다.
“예 제가 광석이 담임입니다. 네! 아니 어쩌다가…… 어느 병원인데요? 많이 다치진, 그래요? 결석계는 차후에 진단서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오늘 제가 가보죠. 너무 걱정마십시요.”

나는 전화를 집어던지듯이 끊었다.
이런 썩을 놈. 광석이 이 자식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오토바이 타는 것은 인구 억제 정책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놈을 앉혀 두고 농담 반으로 말했건만 결국 이놈이 미친 짓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감각적인 것에 목숨거는 놈들을 나는 경멸한다. 결국 감각의 말로는 항상 이런 식이지 않는가? 기계 음 천지인 테크노 음악, 저속한 랩 가사. 폭력과 성으로 도배를 한 일본 만화. 난 이 땅의 십대들이 이런 문화 속에서 커서 뭐가 될지 걱정이다. 여학생 반에서도 시 프린트를 나눠주고 낭송 좀 시키려면 재미없다고 우 우 거린다. 정신적인 깊이가 점점 없어지는 애들에게 정이 떨어진다.

“뭔 전화요?”
옆 좌석의 한문 선생인 지선생이 묻는다.
“광석이가 또 사고를 쳤어요. 오토바이로 트럭을 박았다는 군요. 아마 이마를 크게 다친 것 같아요. 게다가 왼쪽 다리는 화상까지 입었대요. 중고 오토바이를 샀는데 그게 아마 엉터리였던 모양이에요. 실린더가 폭발해 일어난 사곤가 본데, 판 사람이 아주 나쁜 놈이지, 애들이라고 고철 덩어리를 팔고 말이에요. 부모가 오토바이 가게 주인을 고소한다고 난리예요.”

“호오. 트럭을 오토바이로 박아요? 거 완전히 당랑거철(螳螂拒撤)이네요. 요즘 애들 지몸 아까운 줄 모르고, 깡통처럼 굴리는 애들이 많다니까요.”

지선생과 말하는 사이, 반장이 온다.
“어제 청소 도망간 애들 명단입니다.”
반장은 의젓한 얼굴로 나에게 미소를 보내며 종이 쪽지를 내민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놈이다. 공부도 잘하고 시키는 일도 책임감 있게 잘한다. 거친 반 아이들이 투정을 부려도 묵묵히 참는다. 이런 아이 하나 때문에 교사할 맛이 난다. 어디 볼까? 매일 그놈이 그놈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 우리반의 암적인 존재들. 흡연하다가 걸려서 반성 좀 하라고 청소를 시켰더니 그것조차 하지 않고 날랐다. 솟구치는 울화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알았다. 수고했다 가봐라."
나는 구석에 있는 굵직한 몽둥이를 집어든다. 저번 주 토요일에 등산을 갔다가 마련해온 것이다. 체벌을 금하라고? 교육부 양반들. 웃기지 마쇼. 나도 한때는 열렬한 체벌 반대론자였다오. 걸핏하면 아이들의 아구창을 날리던 고등학교 때의 학생부 선생들의 악몽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교사가 된다면 결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만은 그 악몽을 대물림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들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담임 첫 해에 끝끝내 매를 들지 않은 나에게 돌아온 것 은 수시로 담임에게 개기는 반 아이들의 태도와 통제할 수 없는 수업 시간, 그리고 배신감이었다. 결국 말이 안 먹히는 놈들에게까지 인간적인 호의를 베풀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반 질서가 무너지자 오히려 몇몇 아이들은 날 찾아와서 좀 때려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몽둥이를 들고 벌떡 일어나다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수행평가 과제물 더미가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진다. 짜증이 목구멍까지 치달아 온다. 이 놈의 수행 평가 때문에 일이 배가 늘었다. 도대체 한 반에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무슨 수로 객관적으로 평가한단 말이다. 교육부 정책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건 숫제 총도 안주고 적과 싸우라는 꼴과 마찬가지다. 적이라? 후 후, 내 스스로의 비유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럼 아이들은 적이란 말인가? 하긴 애들이나 나나 서로에게 적대감을 느낄 때도 있으니까. 자, 그럼 가볼까. 적들을 진압하러. 나는 몽둥이를 어깨에 매고 교실로 진격한다.

캘리포니아는 아름다운 곳이야. '낙원에 가까이 있는 섬'이란 말에서 유래한 지명처럼 아름다운 곳이지. 비옥한 계곡지대와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사막, 콜로라도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아름다운 롱비치와 산타모니카가 있는 곳이지.

-박상우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중에서-

차렷! 경롓!
오늘따라 껄렁대며 무성의하게 인사하는 아이들이 없다. 담임이 몽둥이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담임은 독이 어린 눈으로 교단 앞에 섰다. 그리고 내가 적어 준 명단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다. 대석이 새끼가 천천히 일어나서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그런 모습이 담임의 신경을 더 거슬리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놈이 담임에게 보일 수 있는 반항의 모습은 기껏해야 그것뿐이니까. 담임은 확실히 화가 났다.

“너 이 새끼 뭐야 그 태도가. 엎드려!”
담임은 몽둥이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대석의 아랫도리를 내리친다. 두 세대 버텨보지만 대석은 무너진다. 오늘 맞은 아이들은 모두 다섯 명. 우리 반의 골통들이다. 한 명 두 명 나가자빠지고 그것을 보는 애들은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똑바로 앉아 있다. 옆을 보니 내 짝인 정호 자식은 그 와중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짜증이 난다. 왜 저들의 부모들은 저런 애들을 인문계로 보냈을까? 이해할 수가 없다. 난 저런 놈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현실이 너무 싫다. 우리 나라에 영국의 이튼 고교 같은 고급 사립학교가 없는 것이 나에겐 불만이다. 영국은 그 학교 출신들이 나라를 다 이끌어 나간다는데, 나 같은 고급 인재와 연합고사 100점을 간신히 넘은 저런 골통들과 같은 교실에서 같은 수준으로 공부하는 우리 나라 고등학교의 현실 자체가 모순이다.

마음 같으면 휴학하고 싶다. 수능에 필요도 없는 것까지 일일이 가르치는 학교선생보다는 시원한 에어컨에 요점만 딱딱 찍어 가르치는 학원선생이 훨 낫다. 내신 때문에 학교를 다니긴 해도 갈수록 학교가 지겨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저 선생들의 비위나 맞춰 주면서 3년을 버틸 뿐이다.

“너 또 눈은 왜 그래? 너 어제 또 싸웠지? 이 새끼 네가 깡패냐 맨날 싸움질이나 하고.”
담임이 대석이를 다그친다. 그러고 보니 대석의 왼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다.
“선생님이 어제 나 싸우는 거 봤어요?”
대석이가 세게 나온다. 멍청한 자식. 더 맞기나 하지. 담임의 손이 대석의 오른쪽 뺨을 올려 부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누가 반 모둠일기에 이런 글을 써 놨다.

‘하루라도 매를 맞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아무래도 애들이 컴퓨터 게임 하다가 반 컴퓨터를 고장낸 것을 말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이다. 그 이야기까지 했다가는 담임의 화에 기름을 붓는 일일 테니까. 수업시간에 쓰지도 않는 컴퓨터를 뭐하러 갔다 놨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에어컨이나 놔 줄 것이지. 나는 오늘 조회가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책상에서 몰래 단어장을 꺼냈다. un-ortho-dox 이단의. 정통이 아닌…

후. 난 공부가 좋다. 새로운 세계를 배워나가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공부한 뒤에 남는 뿌듯한 지식의 여운이 날 항상 들뜨게 한다. 이 나라에서는 공부란 앞으로의 풍요로운 나의 삶을 보장해 주는 든든한 무기란 것을 나는 알고있다. 난 특히 영어를 좋아한다. 미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다. 할리우드. 아이비리그. 윌스트리트. 막강한 군사력. 순수한 자본주의의 나라. 남의 눈치 안보고 살 수 있는 나라.

나는 그런 미국에 갈 거다. 아버지 차가 외제차라고 담임에게 그 차 타고 다니지 말라고 지적 받는 이런 쫀쫀한 나라가 나는 싫다. 구닥다리 유교적인 관습에 얽매여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나라. 그렇다고 영국처럼 멋진 전통이 살아 있지도 못한 나라. 편협한 민족주의에 기껏해야 한일전 축구에나 열광하는 이 나라의 오강통만한 소견머리. 나라가 작으면 통도 작아지는 건가.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내 공부의 이유는 그거다. 이 나라를 뜨는 거. 서울대에 붙으면 곧바로 유학을 보내주기로 아버지는 나와 약속했다. 나는 미국에 가면 아예 거기서 눌러 살 적정이다. 그리고 성공해서 영화에서 보는 넓은 잔디밭과 차고와 수영장이 있는 멋진 집에 살거다. 그렇게 되면 물론 곰팡이 냄새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거고.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대석이가 주먹으로 유리창을 깼다. 주먹에 피가 흐른다. 담임은 놀라 커다랗게 눈을 뜬다.

“이놈의 학교 때려치면 될 거 아냐!”
대석이 교실 밖으로 뛰어나간다. “거기 안서!” 담임이 뒤쫓아 뛰쳐나간다. 아이들은 휘파람을 불며 대석이를 응원한다. 옆을 보니 그 와중에도 정호는 세상 모르고 졸고 있다.
아! 정말 이런 한심한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나?


무한한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 인터넷 포탈 사이트 배너 중에서-

투투투… 총소리에 깜짝 놀라 퍼뜩 눈을 떴다. 깜박 졸았나 보다. 조는 잠깐 사이에 저그족이 밀려오는 꿈을 꾸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다. 다시 베틀넷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마지막으로 새벽 2시전에 잠자리에 든 지가 언제지? 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동호회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섯 명과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테란을 선택하고 devill3이란 아이디를 가진 다른 한 명과 동맹을 맺었다. 난 테란이 좋다. 무엇보다 지구 생명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고 테란이 거느리고 있는 화려한 무기를 지닌 유닛들이 맘에 든다. 이제 베럭스를 건설하고 기본 자원을 캐는 유닛이 미네랄을 150까지 만들 때까지 기다린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이 밤에 누굴까? 받을까? 말까? 나는 받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어제 인터넷 채팅 방에서 만난 그 계집애일지도 모른다. 걔가 먼저 번개팅을 하자고 제의했고 나는 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만난 애들이 벌써 10명 가량이나 된다. 길거리에서 헌팅하기는 어렵지만 채팅으로는 하루에 열 명도 꼬실 수 있다. 채팅으로 만나러 나오는 여자 애들은 대개 그저 그런 애들이다. 좀 얼굴이 받쳐 주면 발랑 까진 애들이거나 얼굴이 안돼서 채팅으로 남자를 구하는 폭탄이거나. 걔네 들이나 나나 어차피 하루 즐기려고 나오는 거니까 굳이 호적등본까지 따질 건 없지만 요즘은 그런 만남들이 지겨워진다.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마음을 바꾼다. 나에겐 지금 여자보다 저그족을 부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플라이 포트를 만들고 벙커를 짓고 머린을 상주시켜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 이제 공격에 나설 차례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난 지금부터 이 사이버 공간에서 최첨단의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된다. 그리고 첨단 무기로 중무장한 군대는 모두 나의 지휘를 따른다. 이 시간만큼은 더 이상 학교에서 꼴찌라고 선생들과 애들한테 무시당하는 열등생 박정호가 아니다. 여기서는 내가 왕이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마음에 가득 차는 유일한 시간이다. 옛날 사람들은 게임 없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게임 없는 세상을 상상하니 끔찍하기조차 하다.

이런, 저그족의 공격이 파상적으로 시작되었다. 전화 때문에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적에게 선제공격을 당한 것이다. 상대편이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꽤 고수임이 틀림없다. 저그족의 유닛들이 몰려오고 있다. 나의 유닛들과 벙커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오싹해진다. 마치 나 홀로 산소도 없는 차가운 혹성의 분화구에 떨어진 느낌이다. 우리편이 점점 밀린다. 태란의 벙커들이 무너지고 있다. 미네랄이 부족하다. 테란의 유닛들이 손도 못쓰고 무너지고 있다. 어떻게 한다? 히드라리스크가 산성 침으로 우리편의 머린들을 녹여 버리고 있다.

갑자기 공포감이 밀려온다. 내 턱밑까지 적의 군대가 쳐들어올 것 같아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갑자기 마우스를 움직이는 오른 손에 경련이 온다. 왜 이럴까?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눈알도 자유롭게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아프다. 동공이 풀리는 느낌이다. 갑자기 밀려오는 무서움에 나는 엉겁결에 컴퓨터의 파워를 눌러 꺼 버린다.

순식간에 방안에는 정적이 흐르고 주위는 캄캄해진다. 과학 실험실에서 본 어둠 상자에 갇힌 기분이 든다. 나는 갑자기 닥친 어둠이 무서워 벽을 더듬어 불을 켠다. 확하고 어질러진 내방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책상에 놓인 생수 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다. 물이 흘러 때묻은 런닝을 적신다.

나는 벽에 걸린 거울을 본다. 까칠해진 피부. 핏발 선 눈동자. 헝클어진 머리. 거기에는 다시 무기력한 18살의 박정호가 나를 보고 있다. 넌 누구니? 그가 나에게 묻고 있다. 거울 속의 그가 갑자기 싫어진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회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회전목마를 탄 것처럼 천장의 격자무늬가 빙빙 돈다.

‘그래 요즘 컴퓨터를 너무 많이 만졌어. 주말이면 거의 전부를, 평일에도 서너 시간을 컴퓨터를 끼고 살았잖아. 잠이 부족한 거야. 지금의 나는.’

내 팔을 만져본다. 물렁거린다. 요즘은 운동도 안해 근육이 와해되는 느낌이다. 침대 밑에 농구공을 꺼낸지도 한참이 된다.

‘이제 게임은 그만 하자.’
오늘 우편함에서 꺼내 본 전화요금 통지서에 적힌 금액은 이십 만원이 넘었다. 나는 엄마가 볼까봐 통지서를 잘게 잘게 찢어 버렸다. 하지만 얼마 후에 엄마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미쳤지’
나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의 휴즈선을 뽑아 둘둘 말아 침대 밑에 박아 버렸다. 그리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제 자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중간고사시험 첫날이다. 잠을 자야 맑은 정신으로 그나마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둘둘 말고 몸을 웅크렸다. 쿠쿵 쿠쿵…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유닛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베개로 머리를 눌러보지만 귀를 막을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쿠쿵 쿠쿠쿵, 몸을 뒤틀어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보았다. 천장에는 지금 테란과 저그의 싸움이 한창이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심장 고동 소리가 귀에까지 들린다. 몸 전체는 무거운 돌덩이에 눌린 듯이 피곤을 느끼지만 정신은 오히려 깨어나고 있다. 눈은 감았지만 내 정신 속에서 테란과 저그의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모든 신경이 오돌오돌 깨어나 나의 잠을 방해한다. 쇠사슬로 나의 몸이 칭칭 감겨 쥐어 오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침대 밑에 손을 뻗쳐 휴즈선을 집었다. 그리고 황급히 컴퓨터에 다시 이었다. 컴퓨터의 파워를 누르자 위잉하는 낯익은 소리가 들린다.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제야 나는 나를 짓누르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해방된다. 심장 박동이 차츰 느려진다. 나는 손바닥의 땀을 런닝에 슥 닦고 마우스를 손으로 거머쥔다. 자 이번엔 누구와 한 번 싸워 볼까?

태주:임마, 산다는 건 장난이 아냐.
도시에서 깡패로 산다는 건… 더 그렇구.

-영화 ‘넘버 3’ 중에서-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난다. 눈깔이 터졌나. 상가 유리창에 눈을 두룩거려보지만 이상은 없는 것 같다. 분하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당했다. 내가 중삐리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면 개쪽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에게 맞장 뜨자는 놈들이 많아질 것이다. 어제 그 X만한 새끼랑 마주쳤던 그 뚝방 길을 돌아 동네를 한시간이나 헤메였건만 찾지 못했다.

어제 일이었다. 게임방 갈 돈이나 마련하려고 지나가던 중삐리 하나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갔었다. 순순히 지갑을 꺼내는 그 새끼의 태도에 방심한 게 잘못이었다. 벽에 기대에 딴 곳을 잠깐 바라 본 순간 놈의 주먹이 내 왼쪽 눈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어버려 뛰어가는 놈을 뒤쫓아갈 생각조차 못했다. 싸움의 세계는 이런 것이다. 아무리 약한 놈이라 할지라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오늘 그 새끼를 잡으려고 부근에 있는 중학교 주위를 빙빙 돌았지만 발견 못하고 지금 다리 품만 팔고 있는 것이다.

걷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도 내 짜증에 부채질을 한다. 담탱이에게 맞은 허벅다리가 걸을 때마다 욱신거린다. 유리 파편에 찔린 주먹도 따갑고 쓰라리다. 오늘은 재수 X나게 없는 날이다. 담탱이에게 맞을 때의 공포가 되살아난다. 담탱이의 매질은 초보다. 그래서 더 겁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들에게 수없이 맞아본 경험으로 안다. 때리는 것에 관록이 붙은 교사는 힘들이지 않고도 짝짝 살에 붙게 때린다. X나 아프지만 근육이나 뼈를 다치게 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뒷 끝이 좋은 것이다. 하지만 담탱이같은 초보가 힘으로만 때리는 요령 없는 매에 잘못 맞으면 힘줄이나 뼈를 다치게 된다. 그런 무지막지한 매가 멈추지 않으면 공포심이 밀려온다. 뒷 모가지에 소름이 돋는 공포. 나한테 맨 날 맞은 은수새끼도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난 그런 공포가 좋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와 박 터지게 싸우면서 그 공포를 맛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맞장 뜨기 바로 직전에, 서로의 눈을 쏘아보면서, 때론 상대방이 든 벽돌이나 각목을 보면서 얼굴 근육이 근질거릴 정도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나는 즐긴다. 그리고 그 심장이 터질 듯한 시간이 지나가고 상대방의 턱이 깨지고 내 주먹 가득히 다른 놈의 살덩이가 뭉개질 때의 쾌감. 그렇게 누군가를 짓밟을 때 가슴 켠켠이 쌓여 있던 온갖 체증은 싹 가신다.

내가 처음으로 싸움에 눈을 떴을 때는 초등학교 6학년 때다. 그 때도 역시 학교에 오면 담임에게 맞는 게 일이었다. 그날도 기집애들 필통에 바퀴벌레를 넣었다는 이유로 담임에게 양 볼을 쥐어 터진 후에 교문을 나오는 길이었다. 그 때 새로 전학을 와서 6학년들을 제압하고 있던 덩치가 중학교 3학년 정도는 되어 보이는 놈이랑 붙었었다. 그 놈의 억센 손에 멱살을 잡힌 채 버둥거리다가 나는 그놈의 머리를 잡고는 한쪽 귀를 물어뜯어 버렸다. 내 입안에서 느껴지는 찝찔한 핏물의 내음.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 앞날을 결정지어 버렸다.

‘그래 커서 멋진 갱이 되는 거야.’
영웅 본색의 주윤발처럼 총알구멍이 있는 바바리를 걸치고 양손에 권총을 든 채 피칠갑을 하고 거리를 누비는 멋진 갱. 나는 그 후로 갱들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갱 영화와 일본 만화에 빠졌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건달들의 대사와 몸짓하나 하나는 나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나라 최고의 건달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 나갔다. 신창원 같은 강도도 영웅이 되는 세상인데, 나라고 존경받는 건달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내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싸움은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싸움은 힘보다는 악과 깡으로 하는 거다. 내가 작은 키에도 우리 학교 짱이 된 것이 물 불 안 가리고 덤비는 깡다구 때문이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밀려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던져 버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만의 것이다. 고로 난 천성적인 싸움꾼이다. 그런 날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제 X만한 새끼한테 어이없이 당한 것이다.

어제일을 떠올리자 다시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 저기 낯익은 새끼가 보인다. 은수 새끼다. 벼엉신 같은 놈. 난 온수 새끼가 싫다. 언젠가 내가 왜 그 새끼를 싫어하는지 잠깐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새끼를 X나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끼가
싫어질 때마다 싫증날 때까지 조지면 되는 것이다. 주먹질은 사람의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그러므로 이유 따윈 필요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쌈이 벌어질 때마다 선생들이 하는 지겨운 질문이 있다. ‘왜 싸웠어?’ 그건 ‘넌 왜 사니?’라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스페인 놈들이 소를 칼로 서서히 죽이면서 열광하지 않는가? 유혈이 낭자하게 싸우는 권투도 어차피 스포츠란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일 뿐이다. 걔네 들이나 나나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좀 더 표현이 솔직한 것뿐이다. 은수 새끼가 나를 봤다. 은수 새끼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는 것이 멀리서도 보인다. 병신 새끼. 짜증이 난다. 난 저런 약한 놈들을 보면 더 밟아주고 싶다. 은수 새끼가 내 앞에서 강아지처럼 오줌을 지리며 꼬리를 내릴수록 나는 저 새끼를 더 패고 싶어지는 것이다. 캭. 나는 침을 탁 뱉고 은수에게 가기 시작했다.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그리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타버리는 쪽이 훨씬 좋다는 것을.

-커트코베인의 ‘자살노트’ 중에서-

대석이 새끼가 나를 봤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어쩌지. 차라리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것이 덜 맞지 않을까? 갑자기 나의 머리는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내 앞의 사물들이 하얗게 탈색되고 있다. 헉. 대석이가 길을 건너 내 쪽으로 오고 있다. 두렵다. 공포가 화염처럼 내 숨을 턱턱 막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을 더듬는다. 그 안에서 육교 위에서 산, 칼집을 누르면 칼날이 툭 튀어나오는 나이프와 공사장에서 가져온 벽돌 조각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나는 그것들을 벌써 2년째 가방 안에 가지고 다닌다. 아 아, 그것으로 대석이를 찌르고 때리는 상상을 얼마나 했던가.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것을 사용해 보지 못했다.

대석이가 어떤 놈인가. 중학교 1학년 때 그와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난 그놈을 잘 안다. 남자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었던 학교에서 대석이가 매점 뒤에서 고등학교 유도부 형에게 삥을 뜯겼을 때, 대석이는 감히 그 형과 맞장을 떴었다. 당연히 대석이가 나가 떨어졌었다. 하지만 대석이는 쉬는 시간마다 그 형에게 찾아가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맞으면서도 끝까지 개겼고, 마지막 쉬는 시간에는 숨기고 간 커터 칼로 그 형의 얼굴을 대각선으로 그어 버렸다. 선생님들마저 혀를 내두른 대석의 살무사 같은 독기. 난 그 독기가 너무나 무섭다. 그런 대석이에 대한 살벌한 기억들로 인해 나의 전의(戰意)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책가방 속에서 얼른 손을 뺐다.

“야 뭐하냐.”
대석이 나의 턱을 손끝으로 강아지처럼 쓰다듬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어, 그냥, 집. 집에 가는 길이야.”
“야. 니네 누나 잘 있냐. 니네 누나 몸매 짱이던데. 소개 좀 시켜주라.”
대석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계속 건딘다. 전에 길에서 마주쳤을 때 누나를 눈여겨 본 모양이었다. 순간 대석이에 대한 증오심이 내 온몸을 휘감는다. 이번만은. 이번만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대석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칵하고 침을 뱉고 나의 멱살을 잡는다.
“아 X만한 새끼가 내 말을 씹어. 이 시발 놈 나 따라와.”
대석은 나의 머리칼을 잡고 나를 골목으로 끌로 들어간다. 지나가는 사람 몇 몇이 대석의 시퍼런 서슬에 놀라 걱정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구제 해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눈빛을 보낸 모든 사람이 그랬으니까. 대석은 골목으로 나를 끌고 가자마자 나의 턱을 주먹으로 갈긴다. 나의 입안이 찝찔한 핏물과 함께 날카로운 통증으로 금방 가득해진다. 이제는 일상화된 아픔. 하지만 그 아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내 자신에 대한 미움과 수치심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소리친다. 이번만은. 이번만은. 대석의 주먹과 짓밟힘이 계속된다. 나는 고개를 막고 주저앉아 그 매를 받으면서도 내 스스로에게 계속 외친다. 그래, 이번만은. 이번만은. 얼마를 맞았을까. 대석은 때리는 것을 멈추고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야 돈 좀 내놔 봐. 겜방엘 좀 가게.”
나는 한 손으로 쏟아져 나오는 코피를 막으며 가방 손에 다른 손을 넣었다. 지갑 옆의 벽돌이 내 손에 걸렸다. 순간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항상 우울한 내 표정을 보며 걱정하는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벽돌을 힘껏 쥐었다. 이번만은, 이번만은.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새끼 죽어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벽돌을 쥔 손을 대석이가 있는 쪽으로 휘둘렀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내 손 가득히 물컹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리고 눈을 뜨자 ‘억’하는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대석이가 큰 대자로 쓰러져 있었다.

‘내가 그를 쓰러뜨렸다. 내가 해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신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잡는 대석이의 움직임을 본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두려움이 다시금 나를 엄습했다. 대석이 금새 벌떡 일어나 숨기고 있는 칼로 나를 그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대석을 타고 앉아 벽돌로 대석의 머리를 다시 한번 찍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대석이의 팔다리가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벽돌을 버리고 골목을 뛰쳐나왔다. 겁이 나서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있는 힘을 다해 내가 사는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아무도 없는 싸늘한 철창에 갇혀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 옥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에 있는 물탱크 사이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내가 한알 한알 모은 '콘택600' 50알이 있다. 나는 대석이에게 린치를 당할 때마다 옥상에 올라가 그 약을 손에 쥐고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콘택 600' 50알은 그곳에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래 오늘 그곳으로 가는 거야. 날 괴롭히는 누구도 쫓아오지 못하는 곳’
어차피 이 세상에는 미련 따위는 없었다. 다만 엄마의 슬픈 표정이 눈에 밟힐 뿐이다. 대석이 보다 더 미운 것은 아이들과 담임이다. 며칠 전 담임이 복도를 지나가다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음수야 요즘 어때? 뭐 어려운 점 없나?”
“예 없습니다.”
“너 요즘, 성적이 떨어지는데 성적 좀 올려라.”
“예”

형식적인 담임의 말투는 날 무시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소외감만을 주었다. 차라리 묻지나 말았으면 담임에 대한 배신감은 없었을 것이다. 의례적인 관심. 의례적인 상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담실. 전부 ‘없다’라고 쓸 수밖에 없는 폭력설문 조사서. 학교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평소에 성실하고 매사에 침착한…’ 등으로 써 주는 학생생활기록부의 몇 마디뿐이 없었다.

반아이 놈들은 대석이보다 더 나쁜 놈들이다. 내가 대석이에게 당하는 것을 외면했다고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나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 아이들은 내가 대석이에게 맨날 당하는 것을 알자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오히려 대석이처럼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를 병신 취급하고 왕따를 시킨다. 나에게 무엇을 빌려주는 자그마한 친절도 대석의 눈치를 보면서 베푸는 비겁한 놈들. 그 똥개근성들. 나는 그들이 대석이 보다 더 밉다. 아아 사람이란 존재가 너무나 무섭고 싫다.

난 약을 한 움큼 입에다 털어넣는다. 그리고 물탱크 옆에 새어나오는 물을 손으로 받아 약을 삼킨다. 땅바닥에 떨어진 몇 개의 알록달록한 캡슐들. 예쁘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이렇게 작고 예뻤을까? 그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황지우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중에서-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오고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턱이 덜덜 떨릴 만큼 아침 날씨가 매서워졌다. 1999년의 마지막 애국조회 시간이다. 11월의 차갑고 높은 초겨울 하늘은 나에게 또 다시 한해가 실없이 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 11월은, 아침에 일어나면 문득 가슴이 휑하게 비는 듯한 느낌이 많아지는 달이다.

"똑바로 서지 못해!”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학생부 선생의 고함소리는 잠깐의 감상마저도 방해한다. 나는 단상 옆에 서서 패잔병처럼 줄 서 있는 우리 반 놈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이렇게 힘이 없어 보이는 젊은 군중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오직 앞에 있는 반장만이 대열에서 한 발자국 나와 열중쉬어 자세로 허리를 꼿곳이 펴고 서 있다. 저놈은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함이 없다. 하지만 반장의 그런 모습을 대할수록 어쩐지 정이 안가는 것은 왜일까? 반장을 볼 때마다 어떤 이질감 같은 것이 느낀다. 사리 분별은 확실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계산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은수 녀석은 중간쯤에 서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내 간덩이를 한번 들었다 놓은 놈이다. 사람 속은 정말 한길을 모르나 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