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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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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다랭이마을 봄 이야기

유채꽃 물결 사이로 속살대는 아이들 웃음소리 연둣빛으로 피어 하늘로 오른다. 그 웃음은 옥빛 바다에 내려앉아 윤슬에 물들어 다시 은빛 나비처럼 팔랑거린다.

 

다랭이마을 걷는 아이들은 옥색 바다를 너무 예쁘다고 한다. 다랭이마을 바다, 동해는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바다라면 남해는 부드럽게 넘실대며 안아주는 바다이다. 하지만 가천마을 바다는 태평양을 마주 보고 있어 태풍의 진로에 들어 풍랑이 높은 날이 많다.

 

 

하루 전날 비가 내렸다. 아이들 눈빛은 날씨가 좋아지길 비는 모양이었다. 그 바람을 들어준 듯 아침 날씨는 참 미쁘다. 다랭이마을로 가는 길 차창 밖 빈 논밭에는 연둣빛이 가득하고 벚나무 들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다. 찻길에서 내려다뵈는 108계단 680여 개 이상의 다랭이 논에는 유채와 마늘이 자라고 있다. 연둣빛 들녘, 코발트빛 하늘, 옥색 바다와 대비되는 유채꽃밭은 유난히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리고 해풍이 불 때마다 윤기를 자르르 발하며 일렁이는 마늘밭의 물결이 봄이 한창임을 알린다.

 

‘유채꽃 향기가 너무 강해요’란 한 아이의 말에 현기증이 일어난다. 다랭이마을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층층 겹친 곡선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말을 쉽게 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300여 년 3대를 거처 만들어진 다랭이논들의 어울림은 부드러운 곡선과 더불어 집체 예술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2005년 국가 명승 제25호로 지정되었고, CNN에서 운영하는 〈CNN GO〉는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로 이 마을을 선정했다.

 

내리막길을 걸어 가천 미륵불 암수바위를 돌아 바래길에 접어든다. 길 아래 해안은 절벽이고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가 바위에 부서진다. 이 거친 파도와 화강암의 바위 때문에 다랭이마을은 조각배조차 정박할 공간이 없다. 더구나 태풍도 잦아 배의 쉼터가 되지 못해 남해에서 선착장이 없는 유일한 갯마을이다. 이런 환경은 마을의 지붕들이 나지막하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매서운 바람에 번뜻한 집들이 남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바래는 남해 사투리로 바다에 조개를 캐거나 해조류를 채취하러 가는 것을 '바래간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갯벌로 가던 길을 이어 만든 길이 바래길이며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자리매김했다.

 

가천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중기에 이르러 가천(加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랑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라고 설명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다랭이’ 또는 ‘달뱅이’라고 불리며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예술로 승화되어 만든 계단식 논이 바로 다랭이논이다. 이 마을에서 농사는 지금도 기계가 들어갈 수 없어 여전히 소와 쟁기로 이용하여 농사일을 한다. 점층이 겹쳐진 손바닥만 한 논들은 언덕 위에서부터 마을을 둘러싸고 바다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길, 집, 논 등 모든 것이 산허리를 따라 구불거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곡선 위의 오선지 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아이들에게 삿갓배미와 밥무덤을 설명한다. 삿갓배미는 ‘작은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 해서 삿갓다랭이 또는 죽이나 밥 한 그릇과 바꿀 정도로 작다해서 죽배미나 밥배미로 불려 지금에 이른다.

 

다랭이마을에는 또 다른 특별한 민속자료가 있는데 바로 밥무덤이다. 밥무덤은 마을의 중앙과 동·서쪽 세 군데에 있다. 중앙에 있는 것은 삼층탑 모양의 조형물로 밑변 180cm, 높이 162cm나 된다.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에 있는 것은 돌을 쌓아 감실처럼 만든 것이다. 밥무덤은 굴뚝처럼 생겼으며 제사를 지낼 때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덮어두는 것이다. 제물로 넣은 밥을 쥐,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치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바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을 안길 반대편에서 다랭이마을을 바라보며 지겟길과 망수, 똥배에 대하여도 알려준다. 지게는 가천마을 사람들이 가파르고 좁은 산길에 인력으로 나무며 거름을 옮기는 운송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 무게는 오롯이 어깨에 파고들어 허리를 짓누르는 노동이 필요하였다.

 

산허리 중턱에서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망수상을 바라본다. 망수는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물고기 떼를 관찰하고 알려주는 망을 보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넓은 바다에서 물고기 떼를 알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똥배 이야기는 아이들이 무척 흥미 있어 한다. 오래전, 이 다랭이마을에서 농사를 위해선 거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양이 모자라서 조그만 배에 장군을 싣고 멀리 바다 건너 여수 시내까지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돈을 주고 인분을 장군에 담아 배를 타고 건너와 전답에 뿌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기 잡는 배가 아닌 똥배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니 아이들은 웃는다.

 

지겟길 정자에서 남해 사투리를 심어 한마디 건넨다. 이 다랭이논을 만든 사람은 어떤 말을 하였을까? 아마 심들어서 쌔가 빠지고 허리가 분질라 질 것이라고 하자 잘 못 알아듣는다. 지금 남해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남해 사투리도 잊혀 가고 그 사투리와 어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뿐이다.

 

다랭이마을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척박한 환경을 탓하며 좌절과 숙명론에 빠지는 대신 약점을 특색과 장점으로 살리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천형’의 땅에서 ‘천혜’의 땅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을 훼손하거나 망가뜨리지도 않았다.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다랭이마을의 원천적인 경쟁력이자 매력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먼 옛날 농토 한 뼘이 아쉬워 산비탈을 깎아 만들었다는 계단식 논과 마을의 풍광은 여전하고, 오늘도 남쪽 바다는 변함없이 새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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