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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 향수 중 일부분이다. 이 시를 보면 고향에 대한 평화로운 그리움이 가득하며 그곳은 영원한 우리의 본향임을 들려준다. 더구나 설이 다가오니 더 살아 오른다.

 

우리의 삶과 고향, 시간은 가고 흐르지만 기억은 쌓인다. 그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추억이라고도 한다. 향수(鄕愁)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상처나 슬픔조차도 지나간 것이기에 아름답다.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는 고향, 마음의 고향은 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에 자리하고, 향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게 한다.

 

 

설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을 묻는다면 ‘추석’ 혹은 ‘설날’이라고 답한다. 설날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 여기서 설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왜 설날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을까? 그리고 ‘까치 까치설날은 왜 어저께일까?’이다.

 

설날은 음력 1월 1일로, 명칭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설의 용어가 과거에는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사용됐다고 풀이돼 있다. 날짜를 헤아리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설날을 한번 쇠면 1년이 지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1년마다 나이를 먹기 때문에 설은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했다는 설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이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해석은 ‘낯설다’의 의미다. 옛날 사람들은 한 해가 바뀐 것을 낯설게 여겼고 ‘낯선 날’이 설날이 됐다는 해석이다. 이외에도 ‘한 해를 새로 새운다하여 선날’이나 ‘늙어가는 처지가 서글프다고 생각해서 서글픈 날’ 등 다양한 해석으로 존재했다.

 

 

그러면 까치설은 무슨 뜻일까?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노랫말은 윤극영 시인이 지은 익숙한 동요로 설날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까치와 설날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도 많은 설들이 존재한다.

 

우선 동요에 나오는 까치가 동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무속·민속 연구 권위자 고 서정범 교수는 ‘아치설’에서 변형된 것이라고 했다. 아치설은 ‘작다’는 뜻의 순우리말인 ‘아치’와 ‘설’이 합친 것으로 섣달그믐날을 지칭하는 말이다. 서정범 교수는 세월이 흘러 아치가 발음이 유사한 까치로 변했다고 주장을 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설화에 나온다.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작당해 왕을 죽이려 하였으나 까치와 쥐, 돼지, 용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 은혜를 입은 왕은 공을 인정해, 이들 동물에게 십이지신에 넣어줬지만 까치의 자리가 없었다. 이에 왕은 새해가 시작하는 날(설날) 전날을 까치의 날로 정하였고 까치설이 생겼다는 설이다. 그리고 까치가 일본을 비유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윤극영 시인이 동요를 만든 시기는 일제 강점기다. 당시 일제는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여겼지만, 우리는 늦은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지냈다. 우리보다 빠른 ‘일제의 설날’을 ‘까치설’로 비유했고 일본을 까치로 비유했는지에 대한 해석은 없다.

 

 

설날이 설날로 자리 잡기에는 많은 사연이 있었다. 설날은 본래 음력 1월 1일인 정월 초하루를 일컫는다. 지금은 태양력(양력)을 사용하지만, 과거 우리 조상은 달을 주기로 시간의 흐름을 정하는 음력을 사용했다. 음력 새해 첫 달 첫날이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첫날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었다.

 

1896년 고종황제는 태양력을 수용했지만, 조상들은 설 차례와 새해 인사 등을 나누는 신성한 날인 설날을 계속해서 기념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을 펼치며 설날 등 고유 명절을 억압하고 일본의 명절과 행사 의식을 강요했다.

 

양력과세는 광복 후에도 이어졌다. 전통 설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의 ‘신정(新正)’과 ‘오래된 정월’이라는 뜻의 ‘구정(舊正)’이란 표현은 이러한 배경 속 탄생했다. 이후 1949년 양력 1월 1일이 3일 설 연휴로 지정됐고, 설은 오랜 세월 공휴일 및 비공휴일 문제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그러던 차 현대의 정부에서는 신정과 구정 연휴를 두 번 쉬는 ‘이중과세(二重過歲)’ 등 행정 낭비라는 이유로 1980년대에 들어서 ‘조상의 날’, ‘민속의 날’로 음력 정월 초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드디어 1989년 민족 고유 명절 ‘설날’은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정부가 음력 1월 1일 ‘민속의 날’을 설로 복원하고 3일 연휴를 결정했다. 그렇게 설날을 설날로 부르지 못한 설움의 역사는 회복됐다. 이후 1999년 신정은 이틀에서 하루 연휴로 줄어들며 지금의 설날 형태가 갖춰졌다.

 

 

설날에는 잊혀가는 조상의 지혜가 있다. 전통적인 새해 첫 달 첫날의 설날 명절에 행하는 모든 의식에 한 해를 잘 지내고자 하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웃어른께 세배드리고 일가친척과 친지를 만나면 덕담을 주고받으며 어린아이는 윷놀이와 널뛰기, 연날리기를 했다. 이러한 설날 놀이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데 보름날 연은 액연이라는 의미로 멀리 날려 보내기도 했다.

 

또한 지금은 잘 찾아보기 어렵지만 ‘복조리’를 걸어두는 것도 새해 대표적인 의식 중 하나였다. 정월 초하루에 파는 조리는 특별히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여 복조리로 불렸는데 각 가정은 초하루 전날 밤부터 조리 장수로부터 1년 동안의 복조리를 구매했다. 쌀을 이는 도구로 그해의 행복을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생긴 풍속으로 조리를 몇 개 묶어 방 귀퉁이나 부엌에 매달아 뒀다. 신년 토정비결을 보는 것 역시 전통적인 새해 풍습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하여 쉽게 보기도 한다.

 

 

이런 설의 모습도 세대가 바뀌면서 변하고 있다. 그러면 요즘 설 모습은 어떨까? 전통적인 개념의 대가족 형태에서 핵가족, 1인 가구 시대로 변하며 설 명절에 대한 의미도 변했다. 1인 가구와 핵 개인의 시대에 설날은 길고 긴 연휴 중 하나로, 조상보다는 현재 가족 또는 내 행복을 위해 사용하는 의미가 됐다. 이러한 경향은 부모님을 뵈러 고향으로 내려가는 이보다 부모님이 직접 서울의 자식을 보러 오거나 연휴 기간 해외 방문객 수 증가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한 고속도로가 아닌 해외로 떠나기 위한 이들로 공항이 붐비는 것이다. 여행업계에서 설날을 비롯한 명절 연휴는 대목 중의 대목이다. 특히 해외로 여행객을 위해 1월 초부터 홈쇼핑 등에서는 ‘반값’ 해외 항공권과 특가 상품 판매가 쏟아진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혼행족’, 반려동물과 함께 떠나는 이를 위한 상품 등은 지금의 2030 MZ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특징이다. 한술 더 떠 설날은 숙박업계에도 대목 중 하나인데 여행을 떠나기 위해 반려동물을 맡기기 위한 반려동물 호텔의 인기 역시 최근의 현상이다. 즉 현대인에게 설을 포함한 명절의 의미는 휴일이라는 인식이 더 강화되고 있다. 명절에 꼭 시댁이나 친정을 방문하지 않는 딩크족 젊은 부부, 직장인 1인 가구 등 에게는 바쁘고 지친 일상 속 휴식의 개념인 것이다.

 

그래도 설하면 잊히지 않는 것이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이다. 그 모습은 어떨까? 굽은 허리 부여잡고 들깨 한 말, 서리태 한 자루, 된장이며 고추장까지 어머니는 보자기를 싼다.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 걸린 까치 소리에 이른 아침부터 재 너머로 눈길이 간다. 산모퉁이를 돌아는 왔을까? 아궁이 앞 어렴풋한 졸음 결에 아이들의 왁자지껄 ‘할머니!’ 소리에 마음은 벌써 문지방을 넘어선다. 야속한 해가 한달음 넘어가는 오후, 붙들고 싶어도 어느새 해는 산 중턱을 달린다. "어서들 가라!" 등 떠미는 엄마 손길에 아이들 발걸음은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서고, 대문간에 기대선 엄마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내년엔 다시 볼 수 있을지 신작로 끝 굽은 길이 야속하다. 그래그래 잘 살거라! 내가 조금만 더 살면 되지! 까치설날 그 낭구에 까치 떼 몰려와 벌써 저리도 짖어대건만, 마음이 타서 하얀 머리 된 울 엄마는 다시 오지 않는다.

 

설날은 그저 전통 명절이 아니다. 수구초심이라고 추억과 향수가 숨 쉬는 날이다. 함께 모여서 서로를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나누는 날이다. 설날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와 같다. 과거에는 조상의 은혜를 기리고, 현재는 함께 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미래에는 새로운 희망과 다짐을 품는다. 비록 지금은 바쁜 일상과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설날의 모습이 달라졌을지라도, 그 의미만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 설날은 단순한 명절을 넘어 위안과 회복을 선물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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