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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대한민국, 한강 노벨 문학상 작가 탄생은 한강의 기적인가

현대 산문의 혁신가, 아시아에서 다섯번 째 수상자
일본, '아시아 첫 여성 작가 수상'에 주목
한자어 번역 힘들어 단어마다 사전 찾아가며 원작 살린 번역
K- 문화의 발전 계기가 되길 기원

 

 

10일 오후 8시 경, 일본 NHK웹사이트에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54)이 선정되었다는 생방송을 진행하였다. 내 가슴이 뛰어 아내에게 먼저 이 소식을 전하니 '정말로?'라는 답변이었다. 나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감개무량했다. 이 시각, 한국에서는 기자는 물론 어느 방송·언론사도 이 사실을 속보로 보도하지 않았고, 작가 자신도 몰랐다는 사실을 후에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

 

더군다나 누가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몇년은 들린 후에 수상자로 선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이번 문학상 결과는 흔한 낌새도 없었다. 일인당 독서량은 일년에 네권이 안되며, 그나마 베스트셀러는 학생 참고서와 수학 문제집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은 수상하게 되었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만큼 올해도 노벨상은 우리의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일본은 우리와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가 혹시나 수상자가 아닌가 하는 관심사가 대단하여 기대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독자 중에는 한강이 쓴 번역서를 들고 자신은 한강이 이번에 수상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 독자는 어느 기자보다도, 어떤 도박사보다도 예감력이 아주 높은 사람이 아닌가.

 

외신들도 "한강의 수상은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surprise) 결과"라는 반응을 내놨다. 뉴욕타임스(NYT)는 발표 전, 도박사들은 '중국의 프란츠 카프카'로 불리는 여성 작가 찬쉐(残雪)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았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매체인 피가로도 미국의 토머스 핀천, 프랑스의 미셸 우엘벡 등 유력 후보 명단에 한강의 이름은 없었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국 가디언은 "한강은 가부장제·폭력·슬픔·인간애 등의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했다"고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201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았고 일본에서도 'K-문학'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며 "한강은 그중에서도 보편성과 문학성에서 선두를 달렸다"고 평가, 한국문학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50대 아시아 여성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기존 노벨문학상의 공식을 깬 ‘파격’인 동시에 시대에 따른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랜 기간 ‘서구권, 60대 이상의 남성 작가’에게 치우쳤던 노벨문학상의 관심이 아시아 지역, 여성, 활발히 활동하는 비교적 젊은 작가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의 국제 부문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한국인 최초로 받는 등 부커상과 인연이 깊다. 부커상과의 인터뷰에서 "내 작품이 다른 문화권의 넓은 독자층에 닿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여성 최초, 한국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 이래 두 번째의 노벨상 수상자이다. 필자는 5년 전부터 한강의 소설을 눈여겨 보면서 작가 관련 글을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겼다. 첫째가 한 젊은 작가의 미래(2019.9.8)이며, 둘째, 장흥이 부른다(2018.9.2), 셋째, 한강, 100년 뒤 소설(2019.5.26), 넷째, 한강작가, 메디치 외국문학상(2023.11.10)이다.

 

작가가 가장 주목받았던 때는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부커상 인터네셔널 부문’을 수상함으로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역대 최연소 수상이었다. 이 무렵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번역이었다. 원작이 아무리 뛰어나도 한국어 작품의 미묘한 뉘앙스와 의미를 살려주는 좋은 번역이 없다면 이런 평가를 받기 힘들다.  

 

이같은 상황에서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힘이 아주 컸다. 그는 오래 전부터 한국 현대소설에 흥미를 갖고 영국에 한국소설을 알리기 위한 일에 적극적이었다.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번역자가 되기로 결심, 데보라 스미스는 영국에 한국 작품을 소개하는 전문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어를 독학으로 시작하여 한국에 유학까지 하였으며, 런던대 동양 아프리카대(SOAS)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데보라 스미스는 5월 16일, 한강 작가와 함께 ‘2016년 맨부커상 인터네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채식주의자』 번역은 내 인생의 가장 멋진 경험 중 하나”였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국문학을 번역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묻는 질문에 사람들끼리의 관계에 관한 문장으로 특히 존칭을 써야 하는 높임말이나 호칭들이 매우 복잡했다고 전한다. 친언니가 아닌데도 언니라고 부른다거나 선배와 후배의 호칭들, 특히 회사에서 직급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장, 회장, 이사, 팀 장, 과장, 부장, 차장 등 영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기에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어 단어 중 아무리 해도 번역할 수 없는 단어가 많았는데, 한자어를 번역하는 게 힘들 때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가장 힘든 건 콩글리시를 번역하는 일이며, 한 작가가 핸드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영어에서는 핸드폰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서 쉽지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단어마다 사전을 찾아가며 원작을 살린 번역이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작가의 성장 배경에는 가족과 자연환경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는 장흥 출신으로 200여권의 작품을 쓴 한승원(85) 소설가다. 한 작가는 11일 장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이는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나는 나름대로 애들에게 고향을 심어주고 싶었다"며 "여름·겨울방학에는 아이들을 장흥에 내려보냈다. 당시 장흥에는 어머니와 우리 형님이 농사를 짓고 김 양식을 했는데 강이도 방학엔 모기에 물리고 감기에 걸려가며 이 일을 도왔다"고 말했다.  또 "아마 아이들의 마음에는 김을 수작업으로 돕던 장흥의 정서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가는 어린 시절 지천에 널린 아버지의 책과 더불어 자랐다.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니 현실의 세계가 절대적이지 않았고, 그렇게 두 세계에서 살 수 있었던 점이 유년기의 나를 도와줬다”고 고백하였다. 장흥은 한강을 비롯해 한승원, 이청준, 이승우, 송기숙 등 걸출한 현대문학 작가들을 배출한 '문학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백광홍, 백광훈, 위백규 등 유수한 문인들이 장흥에서 활동을 했고, 이런 문맥을 이어 현재 다수의 소설가와 김녹촌, 김제현, 김영남, 이대흠 등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와 시인들이 이어받았다.

 

극단적인 섭생 거부를 통해 인류의 육식 문명을 그로테스크하게 비판한 『채식주의자』, 특히 한강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 한승원 씨의 어깨너머로 전해들은 80년 광주의 비극이 그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광주의 아픔과 정면 대결한 2014년 장편 『소년이 온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소설의 재료로 삼아 왔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면서도 시적인 소설을 써 왔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사유는 그의 문학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소설을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무렵. 대학 시절 습작기를 거쳐 출판사에 취직한 뒤 3∼4시간씩만 자면서 글을 썼다. 작가 자신은 뜨거움이나 열정보다 끈기로 소설을 써왔다고 자평했다.

 

필자는 1987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노벨상 수상자 관련 자료를 모으고 관련 리포트를 몇 차례 정리하면서 우리와 한 차원 다른 출판계와 독서하는 문화를 비교하면서 들여다 볼 기회가 많았다.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문고본 구독자가 많으며, 각종 사전류 활용, 출판문화의 다양성과 평소에 도서관을 찾는 고령자들의 모습도 많이 관찰하였다. 신문 발행 부수는 한국과 너무나 큰 차이가 보인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출판사가 활기를 얻고, 서점에는 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한국 전체가 축제의 분위기가 되는 것 같다. 노벨상 수상 소식을 학수고대 기다렸던 국민들도 이 기회가 냄비처럼 식지 아니하고 지속적인 책 읽기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현재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려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지원은 빈약하다 할 수 있다. 외국인 번역가를 대상으로 한국문학번역원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는 법안을 지난해 초 국회에 상정했으나 무관심 속에 자동 폐기됐으니 말이다. 정치인들이 인문학을 공부하여야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전 영역에서 정치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장래 K- 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이번 기회를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과 정부 당국, 국회가 이 사실을 잘 알고 대처한다면 한강의 기적은 또 다른 과학분야에서도 계속될 것이라 확신한다.

 

▲ 한강 프로필·문학상

 

1970 광주 출생

광주효동초등학교 재학 중 전학

서울 풍문여고·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4 서울신문 '붉은 닻' 등단

2005 제29회 이상문학상

2016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소설 '채식주의자')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2023 메디치 외국문학상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2024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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