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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방과후 재테크] 경제적 자유보다는 경제적 여유를

 

선생님들의 재무관리 상담을 진행하면 재무 목표를 묻습니다. 최근 몇 년간 재무 목표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단어는 ‘내 집 마련’과 ‘경제적 자유’이었습니다. 매년 치솟는 집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이 실현되기 어려워 집을 향한 열망은 더욱 강해지고, 교직 환경이 어렵고 불안해지다 보니 쉬고 싶다는 마음이 경제적 자유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2021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만 25~39세 253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기 은퇴에 대한 인식 및 자산관리 방법’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MZ세대의 ‘경제적 자유’에 대한 관심은 비단 교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설문에서 2030, MZ세대들은 현재의 삶을 즐기는 ‘욜로족’보다 빠른 시간에 큰 자산을 만들어 조기 은퇴하는 ‘파이어족’을 더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32.6%만이 ‘욜로족’을 선택한 것과 달리 무려 67.4%의 응답자가 ‘파이어족’을 선택했습니다.

 

자세히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파이어족을 희망하는 MZ세대들은 평균 51세에 조기 은퇴를 희망하였으며 그리고 이른 은퇴를 위해서 평균 13.7억 원의 자산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욜로족? 파이어족?

 

흔히 은퇴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투자수익률을 고려했을 때 은퇴 시 마련된 자산의 4%를 생활비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얘기합니다. 자산 13.7억 원을 기준으로 생활비를 계산하면 연 5480만 원, 월 단위 환산 시 457만 원 정도가 나옵니다.

 

실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20년가량 투자해서 13.7억 원의 자산을 모으려면, 투자수익률을 8%로 가정할 때 월 250만 원가량을 꾸준히 모아야 합니다. 만약 투자수익률을 5%로 계산하면 월 투자액은 350만 원까지 늘어납니다. 투자수익률 3%인 경우는 450만 원이 됩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재무 목표를 위해 달리기 전 우선 투자수익률 8%, 매달 250만 원씩 꾸준히 모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한번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투자계의 바이블 ‘투자의 네 기둥(윌리엄 번스타인)’을 읽어보면 투자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투자 원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면, 은행 저축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원한다면 원금손실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원하는 투자수익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원금손실의 가능성과 폭은 더욱 커진다는 것입니다. 투자수익률 8%는 절대 쉽게 올릴 수 없습니다. 원금손실이 큰 자산에 투자해야만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입니다.

 

주변 선생님들이 주식 투자하는 모습을 보면 종종 원금손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주식 시장은 하루에도 몇 프로씩 오르락 내리락하고 심지어 10%의 등락이 심심치않게 일어나는데 이렇게 손실이 발생할 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원금손실을 감내하지 못하는 분들은 주식투자를 오랫동안 지속하기 힘들고, 손실 났을 때 시장을 떠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8%와 같은 높은 투자 수익률을 바란다면 나의 투자성향이 원금손실을 감내하기에 적합한지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매년 3000만원(월평균 250만원)씩 꼬박꼬박 모으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맞벌이 부부라해도 2030 선생님의 경우 앞으로 해결해야할 생애 이벤트를 많기 때문입니다. 차량 구입, 결혼, 전세집 혹은 내집 장만, 육아, 자녀 교육 등 돈 쓸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고약한 특징 중 하나는 차량이 되든 집이 되든, 심지어 육아 및 자녀 교육까지 모든 것에 등급이 매겨져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몇 백만원 차이로 등급이 나뉘고, 더 높은 등급으로 소비자를 계속 유혹합니다. 부동산이든 육아용품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를 향한 마수에 걸려 예상치못한 지출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생애이벤트에만 돈을 써도 만만치 않은데 그런 유혹까지 모두 뿌리치고 매년 3000만원을 모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서 발행한 ‘2023 KB골든라이프 보고서(조사 대상: 전국 주요 도시 거주, 20~79세, 3000명)’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후 적정생활비는 369만 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가구 소득과 지출, 저축 여력 등을 고려할 때 참여한 사람들이 실제 노후 생활비로 조달할 수 있는 돈은 월 212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최소 생활비인 251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입니다.

더욱이 은퇴 전, 희망 은퇴 나이는 평균 65세였지만 실제 은퇴 나이는 55세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적정생활비 369만 원에 비해 부족한 노후 생활비를 조달하려면 더 오래 일해야 하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그렇지 못하는 환경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 은퇴 예정인 분들의 경우 결혼, 내 집 장만, 자녀 교육 등 중요한 재무적 생애 이벤트를 완수하느라 노후 준비가 미흡한 탓일 겁니다. 2030의 경우 결혼, 내 집 장만, 자녀 교육 등의 중요 생애 이벤트 중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경제적 자유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가치 판단의 영역이라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제적 자유라는 토끼와 주요 생애 이벤트라는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선택지 중간 어딘가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 자유의 개념이 아닌 경제적 여유를 제안해 봅니다.

 

50세 은퇴라는 쉽지 않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높은 투자 리스트를 감내하기보다 더 늦은 은퇴, 더 낮은 투자수익률을 기대하며 안정적인 워라밸과 투자를 추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의미에서 워라인밸(Work-Life-Investment Balance)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로 경제적 여유(더불어 삶의 여유)를 제안해 봅니다.

 

안정적인 워라밸+투자 ‘워라인밸’

 

최고의 투자자로 손꼽히는 인물은 단연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입니다. 워런 버핏은 2013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유언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부인에게 전하는 유언으로, 자신이 유산으로 남기는 돈 중 10%는 미국채를 매입하고 나머지 90%는 전부 ‘S&P500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워런 버핏의 유언을 곱씹어보면 다음과 같은 의중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워런 버핏 자신은 전문 투자자이자 성공한 투자자입니다. 하지만 부인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인이 주식 시장에서 수많은 프로와 경쟁해 자신처럼 성공적으로 운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워런 버핏이 생각할 때 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투자 상품이 S&P500 인덱스펀드인 것입니다.

 

S&P500 인덱스펀드는 미국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1등부터 500등까지 모아놓은 펀드로, 이 기업들은 미국 경제를 대표하고, 전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으로써 여기에 투자한다는 의미는 미국 경제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갖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만약 미국 경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아주 좋은 투자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덱스펀드는 일반적인 펀드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운용보수가 굉장히 낮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펀드매니저가 자신의 전략과 생각에 따라 펀드 포트폴리오를 능동적으로 구성합니다. 그만큼 사람의 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운용보수도 높은 것입니다.

 

반면 인덱스펀드(흔히 ETF라고 일컫는)는 포트폴리오를 구성이 기계적입니다. 미국 기업 시가총액 1위부터 500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것은 주가 변동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뤄집니다. 그것을 그대로 포트폴리오에 담으면 되니 사람의 품이 거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운용보수도 굉장히 낮은 것입니다. 이런 운용보수의 차이가 10년, 20년 지나면 우리가 예상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차이를 낳게 됩니다.

 

실제 미국 S&P500 인덱스펀드에 장기간 투자했을 때 기대되는 투자수익률과 관련해 역사적 데이터를 살펴보면 앞서도 언급한 투자수익률 8%도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단, 5년, 10년 정도의 기간이 아니라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꾸준히 투자했을 때 그런 높은 투자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2000년 초 닷컴버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 아무리 튼튼한 미국 경제라도 10년에 한 번꼴로 엄청난 조정을 받는 충격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기의 상황에도 묵묵히 견디며 꾸준히 투자한다면 8%의 연 복리 투자수익률이라는 달콤한 과실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 월 250만 원씩 꾸준히 돈을 모으기가 쉽지는 않지만 조금 느리더라도 50만 원, 100만 원, 200만 원, 생애 이벤트가 끝날 때마다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금을 늘려가며 꾸준히 S&P500 인덱스펀드와 같은 상품에 투자하면 어떨까요? 10년마다 월 50~100만 원씩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금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경우 노후에 모이는 자금을 계산해 보면,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투자한다고 가정할 때 은퇴 시 20억 원가량의 노후 자금도 충분히 모을 수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지금 당장 미국 주식시장이 너무 많이 올라 막상 투자하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주식시장이 많이 떨어지더라도 그만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도 되는 것이니 매달 꾸준히 투자한다면 크게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너무 올랐다고 느껴진다면 반은 투자하고 반은 조정받는 시기를 대비해 모아두었다 실제 20%, 30% 조정을 받을 때 분할해 목돈 투자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미국만 바라보기에는 불안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조금 수익률이 떨어지더라도 인도, 중국 등 다양한 나라 주식시장 인덱스펀드에도 투자해 위험을 분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던 것처럼 너무 두려워하지도, 욕심내지도 않고 묵묵히 노후를 준비한다면 충분히 경제적 여유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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