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0.11 (금)

  • 맑음동두천 13.0℃
  • 맑음강릉 14.6℃
  • 맑음서울 17.0℃
  • 맑음대전 14.6℃
  • 맑음대구 14.8℃
  • 맑음울산 14.9℃
  • 맑음광주 16.7℃
  • 맑음부산 18.1℃
  • 맑음고창 14.0℃
  • 제주 18.1℃
  • 맑음강화 13.2℃
  • 맑음보은 11.7℃
  • 맑음금산 13.2℃
  • 구름조금강진군 15.0℃
  • 맑음경주시 13.2℃
  • 맑음거제 15.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학생인권은 있어도 교사인권은 없다”

 

지난 4월 충남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데 이어 서울학생인권조례도 폐지되었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됨으로써 정말 학생의 인권이 퇴행한 것일까? 인권은 「헌법」에 보장된 것이기에 지방자체단체의 조례 유무에 따라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에서 보장하는 인권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권을 벗어나지 않는다.

 

유행하던 학생권리 운동의 퇴조  
2009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교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제부턴가 지식은 없고 아이들 인권만 강조해 교사 권위가 추락했다. 이제라도 학생들에게 예절·인내·관용을 가르치자’고 부탁하였다. 2011년 영국 교육당국은 노터치(no-touch)정책을 폐기했다. 이에 교사들은 학생들의 동의 없이 술·마약, 훔친 물건 등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도 역사의 후퇴라고 하며 학생의 권리가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학생의 권리운동은 프랑스 68혁명의 영향인데 세계적으로 이제는 저물고 있다. 미국 역시 가장 진보적이라는 뉴욕학생권리장전에 교육의 목적 안에서 학생 권리를 제한하고 학생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그리고 시행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방만한 학생의 권리로 가득 찬,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교권 무력화법’이다. 세계 교육의 흐름은 학생권리운동에 대해 시대착오를 인정하고 학생을 지도하고 보호하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하겠다.


학생은 자기결정권을 완전하게 행사할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쟁에서 학생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쟁점이며 핵심이다. 학생을 미성년자로 보고 보호하며 지도하려는 관점이 일반적인 관점, 즉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관점이다. 학생을 성숙한 인격체, 즉 온전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보고 「헌법」에 보장된 모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이 학생인권조례 찬성론자들의 관점이다. 


세계인권선언에 의하면 아동은 특별한 보호와 지원받을 권리를 가지며, 아동의 권리에 대한 협약에도 명시적으로 ‘아동은 신체적·정신적 미성숙으로 인하여 출생전후를 막론하고 적절한 법적 보호를 포함한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유념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말은 학생의 인격 또는 인권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말이다.

 

그러므로 학생의 인권은 부모(보호자)와 교사의 보호 아래 있는 동안 부분적으로 실행이 지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인이 누릴 권리를 모두 다 보장해야 한다는 말은 아동으로서 보호자로부터 따뜻한 돌봄과 보호받아야 하는 권리를 오히려 침해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학생을 보호하며 교육의 본질이 회복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유·초·중등교육은 본질적으로 기성세대들이 그 사회의 잘 축적된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하여 사회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명목으로 동의만 하면 성관계가 가능한 것을 전제로 한다. 임신·출산·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등의 용어에 함의되어 있다. 그것도 안전하고 건강한 것이 아닌 성행위가 포함된 내용까지 들어 있다. 학교교육은 법과 사회제도 안에서 건강한 사회인을 길러내야 하는 것이지 무분별한 성생활을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 바르고 건강한 방향으로 지도해야 할 의무가 교사에게 있는데 그렇게 지도하면 인권침해로 징계하는 것이 학생인권조례다. 


학생인권조례는 미니 차별금지법 
매년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공문이 교육청으로부터 내려온다. 학교는 그 공문에 따라 학생은 학기당 2시간, 1년에 4시간 이상 교과와 창체에서 교육받고, 교직원은 연 2시간 이상 교육하며, 학부모를 위한 가정통신문 발송 및 총회나 설명회 등과 온라인 교육 등을 통해 인권교육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나가는 가정통신문 예시를 보면 인권침해를 받으면 신고하라며 여러 개의 전화번호와 인터넷 사이트가 나와 있다. 이런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신고하는 것이 체질화된다. 인권교육은 신고교육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위 <표>를 보면 3년간 권고나 조치가 약 45.8%에 이르고 있으며, 피신고인(주로 교사)이 억울하게 인권침해로 신고 되어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 각하·기각·취하의 건수가 73건이나 된다.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평등법)」과 학생인권조례를 살펴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현·양심·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어서 거센 반대에 부딪혀 폐기된 법안의 내용이 사실은 학생인권조례의 실상이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자료를 보면 혐오표현을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말·글·옷·상징물·동작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부조리함이나 부정적인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풍자조차 혐오표현이라 규정하고 있다. 풍자가 사라진 학교·사회, 이것이 전체주의가 아니겠는가? 싫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유하여 풍자하는 것조차 규제하려는 것이다. 양심과 신앙에 따라 말하는 것이 혐오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혐오표현은 곧 학생인권 침해로 연결된다. 교사의 말·글·옷·장신구 등도 학생인권 침해로 신고될 수 있다. 이 정도면 가히 독재법이라 하겠다.


혐오·차별표현이 인권침해라는 이유로 교실에서 학생이 학생을, 학생이 교사를, 교사가 학생을 감시하고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정당한 혐오, 정당한 차별도 있는데 모든 혐오와 차별을 못 하게 한다. 성적 우수상을 주는 것도 차별인가? 교사는 적절하게 상벌을 이용하여 교육을 하는데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인권교육을 교사와 학생이 지금까지 받고 있다. 같은 것은 같게 대우해야 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다른 것을 똑같이 대우하라는 비논리적이며 그릇된 인권교육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단위학교와 교사의 자율성 파괴
학교의 규칙(생활규정)은 학교장 소관으로 학교 공동체 구성원인 교사·학생·학부모가 협의하여 자율적으로 정한다. 그런데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에 맞게 학칙을 개정하라고 지속해서 공문을 보내 학교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휴대폰 소지, 복장, 쉬는 시간, 학생회장 선거 등 학교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각 학교가 처한 환경과 특성, 설립 목적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큰 문제다.


교사에게 주어진 교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이를테면 수업을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수업내용이 학생의 심기를 건드리면 학생인권 침해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금연교육에 쓰이는 폐가 시커멓게 된 충격적인 사진도 기분이 나쁘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다.


학생인권조례가 교사에게 미치는 악영향
언론에 보도되는 끔찍한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일어나는 사례들은 실제 교사들이 하는 말처럼 교사가 극한 직업임을 말해준다. 다음은 전국교육회복교사연합에 접수된 사례 중 극히 일부다. 

 

•‌학교에 건축 공구인 망치·줄자·드라이버·렌치·쇠톱 등 수업에 필요 없는 위험한 물건을 거의 매일 가지고 오는 학생이 있었음. 가지고 오지 말라고 지도 하니까 “가지고 오면 안 된다는 조항이 어디 있냐? 나의 개인 물건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함. 그리고 자신이 생각할 때 이런 것들은 학습에 필요한 물건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음. 교사의 권위 무시(사생활의 자유).


•‌쓰레기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어서 치우라고 하니 쓰레기봉투가 자신의 필통이라고 하며 필통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함. 그 쓰레기봉투에 필기도구 한두 개가 있긴 있었음. 교사를 농락하기 위해 학교에 오는 것 같음. 학생들은 그걸 보며 웃음. 온갖 장난감과 놀이기구를 가지고 와서 친구들과 놀며 학습분위기를 저해함(사생활의 자유). 


•‌초등 남학생이 초등 여학생을 성추행·성폭행하였으나 서로 합의했으며 오히려 조사하는 교사에게 인권침해라고 함(성적 자기결정권).


•‌수업시간에 책상 두 개를 연결해 그 위에 누워 있어서 바로 앉으라고 하니까 허리가 아프다면서 거부함(휴식권). 


•‌6학년 남학생이 교사에게 "선생님, 고발당해봐야 정신차리겠냐"는 말을 서슴없이 함(당시 교사는 1년 동안 인권동아리 수업을 했고, 학생들이 활동한 인권 활동 결과물을 전교생에게 공유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공유하기 싫어한 남학생이 교사에게 폭언을 함).


•‌교사에게 꾸지람을 들은 학생이 주도해서 교사에게 교원평가 최하점을 주자고 모의하여 해당 교사가 최하점을 받음. 그 후 따로 60시간 연수를 받았으나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극도로 위축됨.

 

위의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훼손 및 교권침해가 이미 일상이 되었다. 또한 교사는 국가공무원인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정해서 조사 및 징계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지방공무원(자칭 인권활동가인 인권옹호관·인권조사관 등)이 국가공무원을 조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부안에서 일어났다. 경찰에서 무혐의가 났으나 전북인권센터의 무리한 조사로 고 송경진 교사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이 사건은 학생인권조례가 교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 비극적인 사례다. 


필자도 2016년 12월 학생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에서 조사를 받았다. 수업을 40분가량 녹음해서 신고했다고 한다. 수업내용 중 인권을 침해한 부분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에 대한 대답은 없고, 인권침해 신고가 들어와서 해당 교사를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인권은 있지만, 교사인권은 없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하루아침에 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2017년 5월까지 고통을 받았다. 3차 답변서에 인권침해일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기분이 찝찝했다’라는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구두사과 권고’라는 징계가 내려졌는데, 아직도 난 신고한 학생이 누군지를 모른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구두사과를 하라고 권고를 당했다. 학생에 대한 조사는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생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결과로 교사는 몇 달을 조사받고 징계까지 받았다. 이것이 학생인권조례의 위력이다. 나와 고 송경진 교사의 차이는 ‘나는 내가 먼저 언론에 제보하고 조사과정에서 변호사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았다'는 점이다.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은 교사를 존중하는 지극히 당연한 관계를 갈등하고 투쟁하는 계급구조로 만든 것이 학생인권조례다. 학교를 계급구조로 보기 때문이다. 바른 것, 정상적인 것, 옳은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자들이 가짜 인권, 편향된 인권, 계급 투쟁적 인권을 주창(主唱)한다. 


교육은 특정 집단 이념 실현의 도구나 장이 아니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일견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이런 상식적인 것으로 사회가 지탱된다. 교육은 더욱 그러해야 하고 교사 역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것이 바른 가치, 바른 인권을 가르치는 첫걸음이 되리라 기대하며 이를 통해 교권이 회복되어 모든 교사가 즐겁고 보람 있게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기를 소망한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