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수기 공모 입상을 축하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입상의 기쁨보다 더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뚝이 제자가 회사에 합격하고 좋아하던 모습이었다. 정부와 교육 전문가, 언론, 교육단체 등이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안과 대책을 제시하지만, 실제로 최선봉에서 변화를 주도하고 실천에 앞장서는 것은 바로 우리 교사들이다. 이 수기는 교육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의 노력과 열정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사례에 불과하겠지만, 지금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학벌주의 완화와 산업 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직업교육에 대해서는 작은 채찍이 될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의 두 축인 대학진학과 취업을 위한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이스터고 및 전문계고 학생들이 재능과 소질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인성을 갖춘 우수한 기술자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꿈과 희망의 날개를 펴며 대한민국 산업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술 인재가 될 수 있도록 학생의 입장에서 함께 최선을 다하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2013-10-24 21:15
최근 학력만을 고집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 일각의 노력과 꼭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합당한 대우를 하겠다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S전자에서 6년을 근무하다가 임용시험을 거쳐 1993년 학생들 앞에 섰다. 우리나라 미래의 주역에게 S전자에서 체험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산업 현장의 요구에 맞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7년 전 대구 K공업계고교 부설 산업학교에서 근무할 때 이야기다. 산업학교는 인문계고교에서 2학년까지의 과정을 이수하고,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 1년 위탁과정으로 직업교육을 하는 학교다. 운동장에서 입교식을 마치고 학생들을 교실로 데려와 교육과정 방향과 규칙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교무보조 선생님이 원적교(학생들이 원래 다니는 인문계고)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며 문을 두드렸다. 전화를 받으니, 우리 반에 편성된 여학생 K의 담임교사였다. K는 학교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니 잘 설득해서 원적교로 복교시켜달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말했다. “그러면 처음부터 이 학교에 보내지 말았어야지요.” 원적교 담임교사는 나름대로 설득을 했지만, 억지로 우겨서
2013-10-24 21:14윤기는 그 뒤에도 종종 수업하는 교실 앞문으로 빠끔히 두 눈을 보였다.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방긋 웃으며 뒷걸음으로 자신의 반으로 갔다. 위험하다고 앞을 보고 가라 해도 모퉁이를 돌 때까지 뒷걸음을 하곤 했다. 이듬해 그 학교를 떠나 전근을 갔다. 일상에 바빠 윤기를 잊을 줄 알았지만 윤기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교육복지란 개념이 도입되고 상담교사, 학습부진아 특별지도 등이 진행되는 것을 보며 ‘윤기가 이런 혜택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대학생 멘토가 집으로 찾아가 읽고 쓰고 셈하는 기본교육은 물론 학생들의 마음도 상담해 주는 것을 보며 윤기가 더 생각났다. 간식도 주고 숙제도 봐주고 재워도 주고 약도 먹여주는 돌봄 교실 프로그램을 보며 더 윤기가 안타까웠다. ‘윤기가 이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더라면 키도 크고 살이 붙어 그 큰 눈이 살에 파묻힐 수도 있었을 텐데, 또 상담을 받아 다치고 아픈 그 마음이 치유될 수 있었을 텐데, 아이들 인권을 존중해 다 같이 밥을 먹게 하는 이 좋은 시절에 윤기가 다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교육복지를 몸으로 느끼며 대한민국 교육을 더 신뢰하게 됐다. 한 아이도 놓치지 않고…
2013-08-29 10:08
교직 생활을 하며 교사가 한없이 넓은 바다가 돼야 함을 느끼는 해가 있다. 유난히 더운 15년 전 그 해가 바로 그랬다.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는 것은 그때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던 일이 우리 반 아이에게 기저귀 채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워서 차기 싫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주는 윤기의 그 마음을 알기에 내 기억에 오래도록 짠하게 남아있다. 윤기는 키가 1학년 또래에 비해 아주 작아 마치 다섯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입학식 날 꽃샘바람이 부는 운동장에 가을 점퍼를 입고, 못 먹어 마른 얼굴에 눈망울만 커다란 모습으로 콧물을 달고 서 있었다. 키 번호를 정해주려는데 윤기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우는 아이도 있고 피하는 아이도 있었다. 난 겨우 착해 보이는 여학생 옆에 윤기를 세우고 일정을 끝낸 뒤 윤기 어머님을 찾았다. 둥글게 무리지어 서 있는 학부모들 저 끝에서 한 서른다섯 살쯤 돼 보이는 작은 키에 통통한 몸집, 뭔가 불만스러운 얼굴의 어머니가 “저예요.” 하며 앞으로 나왔다. 윤기의 크고 맑은 눈망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게 내일 준비물을 말해주는 내게 “알아서 할게요.” 하며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윤기의 손을 끌고 갔다. 엄마의 우악스런 손에 가냘
2013-08-29 10:06불안의 끝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휘청거리는 것이 희망이다. 그렇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고 희망이다. 한번 나뭇가지를 봐라. 어디서 다시 시작하는가? 바람에 휘청거리며 눈비에 얼어 가장 파르르떨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그리고 어디서 푸른 싹이 나고 꽃망울이 맺히고 꽃이 피는가. 흔들리는 것은 꽃을 피우기위한 아름다운 몸부림이다. 수기를 쓰고 나니, 문득 옛날에 쓴 '안동 진명학교, 봉식이'란 시가 생각난다. "그 나이면 남들은 고등학교를 마쳤는데/봉식인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다 듣지를 못하기에/말을 못하는 건 당연한 이치거늘/봉식인 후배인 어린선배들이 떠나는 졸업식 날/송사를 읽었다 으…응으 마음보다 크게/으으으… 소리 내어 읽으니 강당엔 눈물 꽃이 피었다/이어 몸짓으로 낭송하는 졸업생 답사가 있었고/낡은 오르간 소리에 맞추어 손발 짓으로 함께 부르는/소리 없는 작별의 노래를 마지막으로/졸업식은 끝났다 그러니까 올해로/어느단체에서 돌봐준다는 교정의 자선 꽃은/꼭 열한 번째로 피어난 셈이다 으으…으으으/낯선 몸짓과 이상한 울음을 배우고/손발가락으로 수(數)를 셈하기위해, 봉식인/와룡에서 안동까지 완행버스로 통학을 한다/으…응…… 세상으로 나올 때부터/으으…으 말문
2013-08-08 19:35
교사 생활을 한 지 어느덧 20년이 다 돼가지만, 신학기만 되면 내 마음은 갓 시집온 새색시 마냥 콩콩 뛴다. 올해는 어떤 살구 같은 새콤한 웃음들을 만날까. 입학식 며칠 전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꼬옥 움켜쥐고 이불 속에서 잠을 이리저리 뒤척인다. 그러다 입학식 전날 하얀 봉투에 일급비밀이라도 들어있는 듯한 학급명단을 받아 떨리는 손으로 펼쳐들면, 까만 활자들은 꼬물꼬물 눈으로 기어들어 온다. 고 꼬물거리는 활자들은 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활자의 주인공들을 만날 때까지 또 다른 행복한 설렘에 빠진다. 드디어 입학식 날, 궁금증에 단걸음으로 달려가 우리 반 아이들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본다. 어떤 얼굴들일까? 입학식 때 학교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도 신입생들은 여기저기를 자꾸 낯선 눈으로 살핀다. 그 눈빛들을 인솔해 교실에 와도 여전히 아이들은 나에게 어리둥절한 눈빛을 던진다. “안녕, 올 일년 동안 너희들과 함께 할 담임이야….” 내 소개를 다시 간단히 하면, 그제야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입을 손으로 막고 킥킥 웃어댄다. 어쩌면 내 깻잎 머리 모양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중학교 3학년을 몇 년 가르치다 신입생을 만나면, 남자 아이들이지만 꼬오옥 주머니에…
2013-08-08 19:29먼저 우연찮게 공모한 ‘학교 바꿀수 있다-2012 교단 수기’에 은상을 수상하게돼 매우 기쁘고 감사드린다. 지난 11월 중순 우리 학교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 동아리 행사인 김장 담그기를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밤 8시 넘어서야 우리 학교의 어려운 아이들의 가정에 김장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파김치로 변한 내 몸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뿌듯하고 보람이 넘쳤다. 나의 작은 생각과 행동으로 학교를 변화시키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에게도 희망과 활력을 줄 수 있으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꿈과 긍지, 행복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올 해로 3년째 접어든 농사 실습반인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은 교육 경력 10년 째 접어들었는데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는 나의 절박한 심정에서 출발했다. 늘 똑같은 교과 내용을 앵무새처럼 가르치는 타성에 젖어 있었고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무력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머리로서는 이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그래 몸을 놀리고 움직이자’라는 생각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그래도 의미있는 일이면 더 좋을 거 같아 찾아본 게 농사일이었다. 다행이 우리 학교 근처에 몇 년째 농사를 짓지 않
2013-08-08 19:19
휴~ 한숨부터 나온다. 저녁 8시, 두 번의 김장 김치 배달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서 내쉬었던 한숨이다. 우리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의 일년 중 가장 큰 축제이자 이벤트인 사랑의 김장 김치 담그기를 마무리하면서 성취와 보람, 또 무사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안도와 고단함의 표현일 것이다. 횟수로 2회째를 맞은 사랑의 김장담그기 행사, 참 무모하기도 하지만 정말 큰 보람과 감동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활력이다. 나만의 노력으로도, 학생들만의 노력으로 쉽지 않으며 나와 학교, 학생, 학부모가 혼연일체가 되어 헌신과 노력으로 이루어내는 소중한 결실이다. 김장 담그기 행사를 끝으로 올해 농사는 갈무리다. 작년부터 방과후 학교에 아이들과 농사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교무실 안에만 있는 것이 참 무료했다. 새로운 교육 모델과 방향을 고민하던 차에 학교 인근에 놀고 있는 밭이 보였다. 물론 우리 학교 땅이다. 그동안 마을 주민이 임대해 농사를 지었다가 학교에서 실습지로 사용하려고 묵히고 있었던 밭이었다. 약 400평 규모라고 했다. 지금은 시작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빼도 박도 못하는 입장이지만 400평이 정말 큰 것인지 알았으면 감히 농사 실습반을 운영하겠다고 했을까
2013-08-08 19:16중국 학부모들은 한국보다 더 치열한 입시경쟁이 시달리고 있다. 대입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하고, 좋은 초등학교에 가야한다. 심지어는 좋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학부모들이 밤새워 줄을 선다. 중국의 교육열이 진화하고 있다. 대입경쟁이 치열한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여기저기에 값비싼 머리 좋아지는 과정이 생겨나 학부모를 유혹하고 있다. 학비가 한화 1800만 원이나 하는 한 과정에서는 아이들이 20초 만에 책을 읽고, 느낌으로 포커 카드를 알아내는 방법 등을 배우고 있다. 조금 더 뛰어난 학생은 시험문제를 보는 즉시 답을 떠올 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 등록했던 한 학부모는 수업을 한 지 10일이 지났지만 아이에게 뛰어난 능력이 생기지 않았고, 아이가 속이는 법만 배운 것 같다고 한탄한다. 이런 가당찮은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인기를 끄는 이유는 경쟁적인 입시경쟁에서 자녀들을 살아남게 하려는 학부모들의 극단적인 열망에서 비롯된다. 중국은 매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2013-04-12 02:35어쩌면 교직에 몸담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 누구나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 일 수도 있기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하지만 30여년 교직 생활동안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한번쯤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 어설픈 글입니다. 젊다는 패기 하나로 시작한 교직생활이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더할수록 교육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란 생각도 자주하게 됩니다. 지식의 전달을 넘어 더 크고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야 하기에 교육은 참으로 힘겨운 성직(聖職)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도공이 빚어내는 도자기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뜨려버리면 되지만 인간을 빚는 교육은 그럴 수 없기에 애정을 갖고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성규와 같은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저는 참된 교육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을 선택해 수상의 기회를 준 한국교육신문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3-04-11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