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산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둘러 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아있을 즈음, 어떤 여자가 내게 반가운 표정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 편이기에 적이 당황하였다. 언제 어디서 만난 사람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지난 번 산행 중에 만난 분은 아닐까. 아니면 사무실에서 업무상으로 만난 분은 아닐까 등을 생각해 보았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상대방을 잘 모르니까 더 이상 어떤 인사말도 나누지 못했다. 옆자리의 동료는 누구냐고 물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어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지, 또는 어디서 만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 여자가 도대체 누구일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차가 출발할 무렵 그 여자는 사과를 예쁘게 깎아 먹기 좋게 조각까지 내어서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웃는 낯으로 감사하며 받았지만 그 여자가 누구인가만을 생각하였다. 차는 곧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침내는 별스런 걱정까지 슬금슬금 생
2008-11-28 09:45늦가을이 다시 회복되는 아침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 때문에 가을이 지나가나 보다 싶었는데 다시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니 좋다. 겨울보다는 가을이 낮다. 비록 가을의 정취가 사라지는 늦가을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을이 좋다. 오늘 아침에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言語)의 권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실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바르기 때문이다. 언제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녀나 학생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무시한다. 말씀이 옳은 줄 알면서도 예사로이 듣는다. 말씀이 거짓이 아닌데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 말씀이 언제나 진실이고 거짓이 아니고 거짓말이 아닌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받아들이는 이의 자세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말씀에 대한 권위를 무시한다는 것은 결국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애들은 장래가 어둡다.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소망보다 낙망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말씀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따르며 나아가는 이는…
2008-11-27 09:50출장을 가는 길에 시골에 혼자사시는 어머니를 뵙고 가려고 생각하니 내가 불효를 하고 있다는 자괴심(自愧心)이 들었다. 우선 마트에 들려 잡수실 간식을 몇 가지 골랐다. 금방 터질 것 같은 빨간 홍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 짧고 싱싱한 바나나, 심심하실 때 드실 과자와 검은콩두유 등 몇 가지를 봉지에 담아 차 옆자리에 놓고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시골길을 달려갔다. 언젠가 6.25전쟁 이야기를 하실 때 그 추운 1.4후퇴로 겨울 피난길에서 머리엔 짐을 이고 등에는 우리나이로 다섯 살 난 맏아들을 업고 걸으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언제 죽을지도 모를 위급한 전쟁 상황인데 머리에 짐 보따리 보다 등에 업힌 아들이 더 부담이 되셔서 길에다 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드셨다고 하신다. ‘그래도 맏아들인데 …’하는 일념으로 죽을힘을 다해 전쟁을 잘 넘기셨다는 이야기이다. 그이야기를 듣고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으로 길에서 얼어 죽었거나 전쟁고아가 안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어머니의 은혜에 십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 있는가? 일본으로 ‘색시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끌려가실 꽃다운 열여섯에 시집오셔서 팔순이 넘도록 시골에서 농사일을
2008-11-26 09:28지난 금요일 기말고사를 끝낸 아이들과 함께 교실 정리정돈을 하였다. 지금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교실 청소였기에 치워야 할 물건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마무리하는 의미일까. 아이들은 사물함과 책상 속에 있는 각자의 소지품과 교과서, 참고서 등을 정리하며 감회에 젖는 듯했다. 교실 여기저기를 살피면서 문득 일 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올려졌다. 처음에는 낯설게만 보였던 교실이 이제는 책상 위만 보아도 그 책상이 누구의 것인지 알 정도로 많이 익숙해져 있다. 담임을 하면서 느낀바, 고3 교실은 아이들과 호흡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어느 학년에 비해 남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아이들은 대학입시를 위해 주말과 휴일도 잊은 채 일 년간 이 교실에서 부대껴 왔다. 실외보다 실내에서 생활한 시간이 많은 터라 교실은 아이들이 수다를 떨며 학창시절 추억을 만든 장소가 아닌가 싶다. 아직까지 아이들의 재재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교실에 떨어진 교과서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한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적어놓은 필기 내용을 보며 매 수업시간 최선을 다한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그리고
2008-11-26 09:13어제는 스산한 비가 겨울을 예고하는 듯하였지만 오늘은 늦가을을 다시 회복하는 것 같다. 맑고 푸른 하늘, 높고 깨끗한 하늘, 보이는 나무마다 마지막 형형색색의 진미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럴 때면 다시 마음을 다잡아 책읽기에 나서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란 말이 있다.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곧 글을 읽되 정신은 딴 데 쓴다는 말이다. 정말 나는 나대로 글은 글대로 될 때가 많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정신은 딴 데 가있다. 글을 내려가는데 정신이 딴 데 가 있으니 내용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주체가 누구인지, 누가 누구에게 말했는지, 누가 대답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기만 한다. 이렇게 하면 시간만 낭비될 뿐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책을 덮는 게 낫는데 책을 덮지는 않고 계속 읽어 내려간다. 온갖 생각을 다해가면서. 이럴 때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란 말이 실감난다. 정말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적어도 책을 읽을 때는 숙독상미(熟讀詳味)해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읽고 음미해야 한다. 그래야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렇
2008-11-25 11:08지난주는 참 기분이 좋은 주일이었다. 울산여고 근무할 때 모셨던 퇴직하신 교장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선생님 한 분과 함께 짧은 시간이지만 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이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교장선생님께서 오실 때 그냥 오시지 않고 귀한 선물을 함께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약 30cm 정도 되는 굵은 대나무 반쪽이었다. 직접 손수 만드신 것으로 보였다. 이것을 가지고 발바닥을 두드린다든지 지압을 하면 건강에 좋다고 하시면서 가져오셨다. 너무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이 귀한 선물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랴! 이 선물 속에는 교장선생님의 후배 사랑하는 따뜻함이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아시고는, 운동을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 조금이라도 건강을 지키게 해 주기 위해서그것을 저에게 선물해 주셨다. 후배를 배려하는 마음, 그것이 교육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을 가지고 매일 같이 발다닥을 두드리며 교장선생님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저에게는 기쁨과 행복의 씨앗이 되는 것 같아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것으로 발바닥을 두드리면서 ‘교육은 사랑’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2008-11-24 21:29초겨울 아침은 화장을 한 듯 그렇게 저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처음 화장한 소녀의 모습처럼 살짝살짝 희고 고운 박가분을 바른 들녘은 그대로 눈부신 아름다움 그 차체입니다. 빈들에 레이스 자락을 펼친 듯 그렇게 얼음가루가 반짝입니다.그래서 저는 겨울아침을 좋아합니다. 지난 목요일에 우리 학교 평생 교육 프로그램 수료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시와 문학반]이라는 강좌로 두 달 동안 수업을 하였습니다. 열세 분의 학부모님과 지역민들께서 늦은 밤시를 읽고 문학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투명한 영혼이 부딪히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작은 면지역에서 과연 문학반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처음 시작한 분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수료증을 받으셨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주시는 수료증을 받을 때면 아주 큰 상장을 받는 듯 소중하게 볼을 붉히는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곱고 아름다와 보였습니다. 시를 읽는 것이 좋다는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그동안 얼마나 아름다운 글에 목말라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농촌의 연세가 많으신 분은 시를 쓰기 어렵다는 제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름답
2008-11-24 21:292008년 11월 21일 목요일. 인천시립교향음악단의 초청 연주자 중국의 첸 주오황의 지휘로 백석고 학생을 위한 특별 연주회가 서구 문화 센터에서 열렸다. 명지휘자의 연주로 열리는 탓인지 문화 회관에 많은 외부 인사들이 모였다. 교향악이라 고요한 침묵을 더욱 정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고요는 말 그대로 정막 그 자체였다. 대화 없이 대화를 하는 음악의 힘은 무엇인지 악기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창조의 변수들은 또 무엇인지. 음악과 화음, 소리와 리듬, 비유와 은유, 정적과 시끄러움 등등이 균형을 이루어 대중을 끌어당기는 신비의 힘. 그것이 바로 음악이 주는 힘이 아닌가 싶다. 인성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상담하는 교사가 학생에게 음악의 멜로디처럼 감미롭게 듣게 하는 말솜씨, 생각하는 자에게 래포를 형성하여 동화되게 하는 노하우, 받는 자와 주는 자가 말에 의해서 정적인 무드를 형성하는 상황. 이것은 교향악단의 악기 소리에 매료되어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통하게 하는 감성과 같은 것. 이런 것이 바로 인성 교육이 아니겠는가? 유치원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 초중고등 학생이 노는 자리에서 이들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이들의 왕성한 힘은 민태원의 글 “청춘”에 나오는…
2008-11-24 21:28수능을 수험생들은 자유의 시간을 안았다. 엊그제가지 밤이슬 맞으며 잠을 이기려 복도에까지 나와 책과 씨름하던 그들은 시험 후엔 맘껏 세상을 즐기리라고 했었다. 그러나 수능시험을 마친후인 지금 그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기다리고 있는 대학입시가 발목을 잡는 모양이다. 처진 어깨 위에 용기를 보낸다. 수험전날 출정식에서 교장선생님의 연설문을 인용해 본다. “ ‘전진하고 싶지만 알프스가 가로 막고 있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부하의 보고를 받은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치워 버리자’ 고 하여 강한 의지가 있으면 길도 열리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디슨은 전지, 전구 발명과정에서 1만 번이나 실패를 한 후에 완성했다고합니다. 마지막까지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두고두고 공감되는 말씀이다. '쓸고 또 쓸어도 돌아보면 떨어지고 또 떨어져 공부하는것 보다 힘들다' 며 투덜대던 교내봉사 하는 아이들의 빗자루 자국위로 낙엽은 또쌓였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열매를 영글게 하기 위해서인지 교정의 은행나무 몇 그루는 주변의 떨어져 딩구는 나뭇잎들에 굴하지 않고 도도히 샛 노랗게 숲을 이루고 있다. 어제 저녁 동료들과 가본 어느 토담식당의 창
2008-11-22 19:18놀토가 선생님들에게는 너무 귀한 시간이다. 피곤에 찌들려 푹 쉬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선생님들에게도 놀토마다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배려함의 한 차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니 하루라도 빨리 놀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오전에 볼 일을 보고도 여유가 있으니 참 좋다. 책에 대한 글을 메모해 볼 수 있으니 좋다. 사람들은 예부터 책의 많음을 자랑한다. 한우충동(汗牛充棟)할 만큼 책일 많다고 자랑한다. 책이 얼마나 많기에 책을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이겠는가? 또 책이 얼마나 많기에 방 안에 쌓으면 들보에 닿을 정도이겠는가? 웬만한 집에는 책이 한우충동(汗牛充棟)할 만큼 책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책이 많은 것은 분명 좋다. 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 자랑하지 말고 책 자랑하라고 하지 않는가? 돈 많은 것 부러워 말고 책 많은 것 부러워하라고 한다. 책 속에는 부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부를 지키는 것도 다 들어 있고 부를 생산하는 것도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이 많다고 자랑할 것은 아니다. 책이 아무리 많
2008-11-22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