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란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일컫는 말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 배움에 임하고 있는 학생들을 선비라고 할 수 있다. 선비하면 고상한 말로 고상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10대 청소년들은 모두가 배움에 임하고 있기에 모두가 선비인 것이다. 논어에 보면 선비의 자세에 대해서 말한 것이 나온다. “士不可以不弘毅(사불가이불홍의)니 任重而道遠(임중이도원)이니라”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선비는 너그럽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임무가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는 뜻이다. 이 말은 증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배움의 길은 멀다. 배우는 자체가 무겁다. 힘든다. 괴롭다. 짜증난다. 보통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증자께서는 배우는 이는 마음이 넓어야 한다(弘)고 하셨다. 마음이 좁은 이는 얼마 못가 중단하고 만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려고 한다.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긍정적인 마음이다. 부정적인 마음은 좁은 마음이다. ‘왜 해야 하나? 꼭 해야 하나? 해서 뭐 해? 포기하고 말자’라는 마음이 자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넓은 마음을 가진 이는 ‘이것 하면 반드시 학문을 이루게 돼,…
2009-07-27 06:57이른 아침 조용히 일어난 간편한 차림으로 뒷산에 산책을 간다. 뭇 새들이 웃고 풀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마주치는 서로의 얼굴에 새 삶의 일터를 마련하는 듯하다. 동이 트게 무섭게 가방을 챙겨 학교로 출근하는 때와는 달리 숲속의 맑고 시원한 향기가 교실에서 풍겨나는 청소년들의 향기와 같아 선생님은 그런내음을 만끽하면서 살아가기에 늘 동안처럼 어린 아이로 변해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꽃의 향기는 거리를 멀게 하면 할수록 사라지지만 숲속에서 나는 양생초들의 향기는 숲을 떠나 들을 거닐어도 떠나지 않는 향수를 남긴다. 언제 어디서든 숲속의 잎새들의 노래와 소리없이 자신을 바람에 맡겨 뿌리를 흔들며 더욱 더 깊이 자신을 견고화시키는 나무들의 숲은 참으로 신비를 더해주는 것 같다. 교육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나 둘 지식을 첨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새 축적물을 쏟아야 할 때가 오게 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해야 할 때가 오게 된다. 얇은 지식은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것과 같고 모래로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매일 아침 조깅으로 자신의 체력을 관리하다 모처럼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삶에서 오는 여러 가지 일들을 되새기면서 거리의 초목들과…
2009-07-27 06:56
칠보산(234m). 수원시민에게는 광교산 다음으로 친숙한 산이다. 등산객이 많지도 않고 광교산보다 높이도 낮아 산행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 칠보산 가까이에 사는 분들은 마치 뒷동산 오르듯 한다. 날씨가 좋을 땐 건너편에 있는 광교산과 관악산도 뚜렷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서해도 보인다.. 아내와 같이 칠보산을 올랐다. 산행 중 수원 관내 중학교 교장, 우리 학교 교감, 도교육청 장학관을 만났다. 세상이 참 좁기도 하다. 모두가 부부 동반이다. 그러고 보면 부부산행은 부부의 건강을 지켜주고 부부애도 증진시켜 주는 것임에 틀림 없다. 칠보산 능선에 안내판 하나가 세워졌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무에 관한 상식 하나를 전해 준다. 작은 사실이지만 '앎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준다. 산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 잘 모르는 내용이었는데 전문가가 알려 주니 고맙기만 하다. 바로 솔잎의 갯수로 나무 구별하기다. 소나무 2, 곰솔 2, 리기다소나무 3, 잣나무 5, 스트로보 잣나무 5, 섬잣나무 5, 백송 3. 나무별 솔잎의 길이도 비교해 놓았다. 이것을 보고 잎의 갯수로 나무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소나무 2, 리기다소나무 3, 잣나무 5. 1930
2009-07-27 06:56주행하는 차로 오른쪽 좁은 길에서 나오던 차가 갑자기 중앙선으로 주저함도 없이 들어오기 시작 한다. 순간 이제는 아무리 급브레이크를 잡아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직감할 수 있었다. 크락숀을 다급히 누르고 라이트를 황급히 쏘아 보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그대로 추돌하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하여 무슨 일을 먼저 하여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상등을 켰다. 안전띠를 풀고 밖에 나와서 상대방 차 가까이 갔다. 그때서야 밖으로 느릿느릿 나오는 상대방을 보니 젊은 아가씨였다. 얼굴을 보니 파랗게 질린 얼굴이 사색이었다. 일단은 부상이 없는 듯 하여 안심이 되었다. 어떻게 좌우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중앙선을 넘으려고 하느냐고 하였더니 고개를 숙인 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잘못했다는 데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가씨 오늘 잘못하면 죽을 뻔 했어요. 내가 미리 보았기에 망정이지 …. 아무리 크락숀 을 누르고 라이트를 쏘아도 보지를 못한 것 같애.” 벌써 차들은 우리차량 뒤쪽으로 밀려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가씨는 차를 밖으로 이동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사고처리를 어떻게 하려는
2009-07-25 09:23논어의 자한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子絶四(자절사)러니 毋意毋必毋固毋我(무의무필무고무아)러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공자께서는 네 가지가 전혀 없으셨으니, 사사로운 생각이 없었고, 기필(期必)하는 것이 없었고, 고집이 없었고, 아집을 부리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絶(절)은 ‘끊다’라는 뜻도 있지만 ‘없애다’, ‘없다’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는 ‘없다’라는 뜻이 적합하다. 없기는 없되 전혀 없다는 뜻이다. 뒤에 나오는 毋(무)로 보아 알 수 있다. 이 毋(무)는 無(무)와 같이 ‘없다’의 뜻이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가 없다(節)고 하셨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끊어서 없애버렸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 네 가지가 바로 공자의 삶의 자세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네 가지는 배우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 네 가지가 무엇인가? 첫째가 毋意(무의)다. 意(의)가 없는 자세다. 意(의)가 무엇인가? 사사로운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억측을 말하는 것이다. 어림짐작을 말하는 것이다. 필요 이상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있지도 않을 것을 추측하는 것을 말한다. 근거가 없이 하는 추측을 말한다. 곧잘 넘겨짚는 것을 말한다. 공자께서는 이것
2009-07-25 09:21‘침윤지참(浸潤之讒)’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차차 젖어서 퍼지는 것과 같이 조금씩 오래 두고 참소(讒訴)한다는 뜻이다. 동의어로 침윤지언(浸潤之言)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논어는 나오는 말이다. 자장이 공자에게 明(명)에 대해 물었을 때 답변한 말 중에 나온다. “浸潤之譖(침윤지참)과 膚受之愬(부수지소)가 不行焉(불행언)이면 可謂明也已矣(가위명야이의)니라” ‘타인의 은근한 비난과 당장의 아픈 호소에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면 가히 현명하다(明)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也已矣(야이의)는 단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현명하냐? 어떤 사람이 명철하냐? 어떤 사람이 통찰력이 있냐?라고 물었을 때 공자께서는 浸潤之譖(침윤지참)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明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참소도 대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하는 참소, 슬그머니 하는 참소, 끈질기게 하는 참소, 물이 서서히 표 안 나게 스며들듯 표 안 나게 참소를 해도 화내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끄덕하지 않는 사람이 明한 사람이고 하셨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이 나를 참소하는데, 끊임없이 나를 모략하고 중상하는데. 나를 비난하면서 돌아다니는데. 나
2009-07-23 16:39內省不疚(내성불구)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아 마음 속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마음이 결백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논어에 나온다. 疚(구)는 고질병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인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께서 사마우에게 군자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자 사마우는 다시 물었다.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것을 두고 군자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군자는 그 이상의 인물일 것으로 여겼다. 그 때 공자께서 대답하신 말씀이 “內省不疚(내성불구)어니 夫何優何懼리(부하우하구)오.”이다. ‘안으로 돌이켜보아 허물이 없거늘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라는 뜻이다. 공자께서 강조하신 군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사마우는 군자는 보통 사람이 될 수 없고 특별한 사람만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공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군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보통 사람도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마우가 묻고 또 물어 얻은 답이 內省不疚(내성불구)이다. 안으로 자신을 살펴보아 고질병 같은 습관적인 잘못이나 허물이 없는 자가 군자라고 하신…
2009-07-22 14:21돈에 눈 먼 교장선생님 "납품대가로 뭐 줄 거냐", 교장이 먼저 뇌물요구 "교육계 왜 이러나", 운동기구 납품 수뢰 교장 등 무더기 적발... 21일, 각종 신문에 실린 납품비리 기사의 제목이다. 제목만보고도 욕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사건의 진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매스컴을 접하기가 두렵고 창피하다. 그냥 쓸어 덮을 일이 아니기에 교육계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울화가 치민다. ‘학교나 관공서에 운동기구를 납품하는 대가로 돈을 받은 경기지역 초중고 교장 등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해 5월 경기도내 한 초등학교 교장 A씨는 “학교에 운동기구를 납품하게 해 달라”는 업체 직원에게 “그러면 무엇을 줄 거냐”며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해 현금 300만원을 받아 챙겼다.’ 행위 자체가 추잡한 기사를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다. 서두에 실린 글 몇 줄만 읽어보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된다.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인천경찰청 수사과에 불구속 입건된 교장과 교직원이 19명이나 되니 무더기 적발, 노골적인 금품 요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 만도 한다. “아이들에게 양심과 도덕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는 글로 교육계를 훈
2009-07-22 14:20지난 6월에 CBS노컷뉴스에 “일진회, 폭력 판치는 학교, 청소년 범죄 심화”라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이 뉴스에 의하면 금품갈취, 집단괴롭힘, 욕설과 감금, 성폭력 등 학교폭력으로 처벌 받은 학생이 2년 새에 135%가 증가하는 등 청소년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즉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학교폭력 발생시 취해야 할 행동 등을 안내함으로써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교육당국에서는 학교폭력예방에관한법률 및 동법 시행령을 마련하였고, 이에 따른 각종 지원시스템을 마련하였지만 여전히 학교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일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가정의 교육적 기능 상실과 학교교육이 갖는 제한성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생활지도의 출발점은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나의 이런 생각에 학교의 교육적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가정은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2009-07-21 11:56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文猶質也(문유질야)며 質猶文也(질유문야)니” 이 말의 뜻은 문(文)은 질(質)과 같고 질(質)은 문(文)과같다는 뜻이다. 여기서 文(문)은 무엇을 말할까? 여기서 학문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학문을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質(질)은 무엇을 말할까? 질은 품성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바탕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文(문)과 質(질)은 학문과 인성을 말하는 것이다. 자공(子貢)을 보고 극자성(棘子成)이 물었다. ‘군자(君子)는 그 질(質)만 있으면 되지 어찌해서 문(文)이 필요합니까? 라고’. 이 말을 들은 자공은 안타깝다. 그대의 말은 군자답지만 사(駟-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로도 혀(舌)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으므로 조심하라고 하면서 문(文)이 질(質)과 같고 질이 문과 같다...에 나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학문과 인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공은 군자는 품성(質)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였다. 아무리 바탕이 좋아도 배움이 없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본성이 좋다고 해도 배움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안 된다는
2009-07-21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