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소재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힘 난 개인적으로 황석영 작가를 무척 싫어한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대문호 운운하는 얘기가 있지만, 그의 글 스타일이 너무도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나 말 자체를 크게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말만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대단한 작가다! 지옥도 같은 세상을 능청스럽고,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 온 세계를 뒤덮은 보통 사람들의 고단하고 쓸쓸한 일상을 드러내면서, 어째서 대지에 펼쳐진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는 변화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나게 한다. - 황석영 책의 뒷표지에 실린, 이 책 『닭털같은 나날』에 대한 황석영 작가의 추천사 같은 글귀였다. 아마도 이 이상 이 작품을 명확히 규명할 말은 없는 듯 하다. 정확한 수치자체가 추산이 안 될 정도로 거대 인구 국가인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생각해 봤을 때, 난 처음에 중국인 작가가 쓴 작품이라면 스케일 역시 매우 클 거라 생각했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읽을 때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읽어 보니 그 생각은 여지 없이 깨지고 말았지만, 두 작품은 내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작품의 소재가 우리가 생각하
2013-10-24 18:1413일, 청주팔백리 회원들이 경주의 파도소리길로 생태문화답사를 다녀왔다. 오전 7시 17분 흥덕구청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와 경부고속도로 평사휴게소에 들리며 바닷가로 향하는 사이 송태호 대표의 인사말, 김춘곤 대장의 일정소개, 강태재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상임고문의 삼남의 길목에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했던 충청인의 기질과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민중과 지역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1천℃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식으며 부피가 수축하면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표면에 틈이 생긴다. 절리로 불리는 이 틈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받으면 단면의 모양이 4~6각형 기둥모양의 주상절리로 발달한다.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아는 주상절리가 남동해안에도 많다. 31번 국도를 달리다보면 울산 북구 산하동의 강동화암주상절리(울산기념물 제42호)를 비롯해 경주시 양남면 바닷가에서 주상절리를 연달아 만난다.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의 양남주상절리(천연기념물 제536호)를 이은 바닷가 산책로가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11시가 넘어 하서항이 있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읍천항을 시발점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읍천항을 목적지로 하면 오른
2013-10-23 10:55풍요로움이 넘치는 천고마비의 계절에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니 유명 관광지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럴 때 자연풍경과 함께 주변의 문화재까지 찾아보면 일석이조다. 잠깐만 시간을 내면 찾아볼 수 있는 문화재가 청주순치명석불입상(淸州順治銘石佛立像)이다. 순치명석불(충북유형문화재 제150호)은 시민들의 쉼터인 김수녕 양궁장과 가깝고, 이정골 저수지나 신항서원에 가려면 지나쳐야하는 용정동 선돌골마을 입구의 작은 개울 옆 논가에 서있다. 도심 가까이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안내 부족으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은 게 아쉽다. 석장승 모습을 하고 있는 높이 316㎝, 머리높이 70㎝의 석불 입상은 네모난 돌기둥을 깎아 선으로 얼굴과 상체를 조각했다. 마을 수호신의 기능을 겸했던 민간의 불상이 청주의 미소로 불리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언뜻 보면 공을 들이거나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돌에 선을 만들어 얼굴 모양을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양쪽의 귀가 없고 목이 짧아 균형이 맞지 않는데도 큼지막한 이마, 긴 눈썹, 내려뜬 눈, 도드라진 눈두덩이, 짤막한 코, 반달모양의 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정감이 느껴진다.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그런 웃음이
2013-10-23 10:53가을이 되면 종종 혼자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시월중순 아침의 원천마을 바닷가. 앵강만 너머 호구산 정상은 가을 색이 묻어난다. 며칠 반짝 차가운 날씨로 대기가 불안정해서 인지 바람에 일렁이는 잔물결이 방파제에 부서진다. 아침 8시를 지난 수협원천위판장 방파제 안쪽에 방금 닻을 내린 고깃배들이 물결에 심하게 요동친다. 평소 같으면 잘 보이지 않던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시퍼런 하늘을 가른다. 방파제 덕분에 앵강만 깊숙이 걸음을 옮겨본다. 그 안쪽에는 정박한 뱃전에 남정네들이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흔들림도 개의치 않고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에 삶을 나누는 모습이 풋풋하다. 시간의 기다림은 변화를 가져온다. 금산 줄기 위로 솟아오른 아침 햇살이 양털 구름 사이에서 푸른 하늘을 빛나게 하고 바다를 조명한다. 햇살 따라 푸른 잉크가 에메랄드빛 바다를 한 붓 그린 것 같다. 가을 그 결실의 끝자락 시월의 하루는 참 짧다. 마늘을 심고 비닐을 씌우고 시금치를 뿌리고 싹을 틔운 마늘밭에 비닐을 덮고 구멍을 뚫는 촌부의 손끝은 바쁘기만 하다. 찬 바람이 옷깃을 한 번 더 스칠 때마다 자꾸 고개를 들어 서산으로 떨어지는 해를 살펴본다. 이렇게 땅의 가을은 바다에도 찾아온다
2013-10-21 12:34칠보면소재지에서 산외면 방향으로 49번 지방도를 달리면 신촌교차로에 ‘김동수 가옥’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400여m 가면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의 울창한 느티나무 숲속에 김동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26호)이 있다. 이 가옥은 흔히 아흔아홉칸 집이라고 부르는 조선시대의 상류층 가옥으로 뒤편은 창하산이 감싸고 앞으로 동진강의 물줄기가 지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터전에 김동수의 6대조 김명관이 1784년에 건축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보수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조선시대 양반들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다. 하인 방과 가마 칸 등으로 구성된 열두 칸의 긴 건물이 맞이하는데 이 행랑채의 약간 좌측으로 옛 정취가 풍기는 솟을대문이 세워져 있다. 대문 앞 오른쪽으로 보이는 돌이 말을 타고내릴 때 사용했던 하마석이다. 대문에 들어서면 담장이 앞을 막는데 왼편에는 문간방과 외양간, 오른편에는 협문이 있다. 정면의 담장이 안주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자연스럽게 문간마당이 만들어지도록 하였다. 협문을 들어서면 가옥 안의 공간에 기와집들이 재미있게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장대석으로 주춧돌을 놓은 다음 기둥을 세운 전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의
2013-10-21 11:59서원은 어질고 사리에 밝았던 사람들의 위폐를 모시고 유생들을 가르치던 조선의 대표적인 사학교육기관이다. 한때 조선에는 650여개의 서원이 있었지만 혈연과 지연, 학벌과 당파 싸움으로 병폐가 많았고 서원이 면세전을 갖고 있어 조정에서는 재정확보에 어려움이 컸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왕권의 권위를 높이고 궁핍한 국가재정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서원철폐령을 내렸다. 그렇다고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모조리 없앤 것은 아니다. 말에서 내리지 않고 하마비를 지나려다 유생들에게 봉변을 당한 우암 송시열의 화양서원부터 붕당정치를 일삼는다고 생각하거나 명나라의 황제 및 중국학자를 모신 서원은 모두 철폐하였지만 소수서원, 도산서원, 도동서원 등 선현 1명당 1개씩 사표가 될 만한 47개의 서원은 그대로 남겨놓았다.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잘 가꾸고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도 중요하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전국 9개 사원, 즉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돈암서원(논산), 무성서원(정읍)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키로 잠정 결정되었다. 서원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기억하는 또 하나의 자랑
2013-10-21 11:58조금도 사소하지 않아서 감히 답할 수 없는 삶 속의 물음들 솔직히 처음엔 이게 무슨 시냐고, 이런 것도 무슨 문학이냐고, 한 때는 그렇게도 배부른 생각들을 했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같이 해묵은 용어들을 떠올릴 그런 힘겨운 투쟁의 현장들을 소소하게 일상의 언어로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그런 시 아닌 시를 두고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적어도 의엿한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인 부를 지니지 못하고 늘 삶의 언저리에서 겉돌기만 하며 소위 말하는 0.001%의 화려한 삶에 보조를 맞춰주며 살아가는 현실이다 보니, 그나마 지금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고 있는 삶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에 스스로의 삶을 치열하게 살다 종국엔 그들의 목숨마저도 초개같이 내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 또한 말이다. 전쟁터도 아닌데 늘 피비린내가 떠나지 않는 삶의 현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최하층민들의 삶,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그들의 삶 속에서 난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속 마음을 열어 보이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아프든 말든, 적어도 나라는
2013-10-17 20:2410월 9일, 지인 부부와 함께 옥정호로 여행을 다녀왔다. 전라북도 정읍시 산내면과 임실군 강진면에 걸쳐 있는 옥정호!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을 건설하며 생긴 인공호수다. 호숫가를 돌아보면 완만한 언덕을 따라 마을들이 사이좋게 앉아 있고 숲들이 편안하게 호수를 감싸고 있어 호젓한 느낌을 준다. 옥정호를 둘러싼 11㎞의 호반길은 건설교통부에서 ‘아름다운 한국의 길 100선’으로 뽑았을 만큼 아름답고 운치가 있다. 호반의 산호수펜션에서 앞쪽 산길로 들어서 종성마을의 굽잇길을 달리면 해발 600여m에 위치한 농촌체험마을로 옥정호 주변에서 가장 높이 하늘에 맞닿은 산호수마을을 만난다. 마을 정상 언덕은 소금을 뿌려놓은 듯 메밀꽃이 하얀 세상을 만들었다. 겨울이면 메밀밭이 눈 조각 작품이 전시되는 눈썰매장으로 변신한다. 메밀밭 오른쪽으로 산길을 따라가면 옥정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나무 전망대가 있다. 옥정호의 반짝이는 아침햇살과 물안개가 아름다워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만수위가 아니라 아쉽지만 산위에서 호수를 조망하며 가을의 높은 하늘과 진한 향기를 듬뿍 담을 수 있다. 옥정호의 상류로 정읍시 산내면소재지에서 가까운 망경대 부근의…
2013-10-16 13:201. 인천공항 출발 출발일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고 과연 마음속으로 상상해보던 러시아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었다. 러시아 하면 구소련이 먼저 떠오른다. 크레믈린, 붉은광장, 레닌과 스탈린, 후르시초프, 동토, 철의 장막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시베리아횡단철도, 자작나무가 떠올랐다. 이런 러시아에 대한 선입견 중에도 차이코프스키, 톨스토이, 토스토에프스키, 푸시긴 같은 예술가들은 공산주의 이미지와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9월 9일 출발하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곳의 날씨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10월 날씨일까, 11월 날씨쯤 될까 궁금했지마는 인터넷 정보만으로는 얼른 파악이 되지 않았다. 출발 전 여행사가 전해준 정보에 따라 11월 날씨를 예상하고 옷을 준비했다. 물론 더 추운 날이 있고 더 따뜻한 날도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에 맞춰 복장을 준비했다. 호텔엔 모든 편의 시설, 이를테면 비누, 화장지, 수건, 샴푸 혹은 음료수는 잘 구비되어 있는지 궁금했으나 어느 곳에서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음료수가 없으니 미리 사가지고 들어가야 한다고도 하고
2013-10-16 13:13함양에서 대자연의 어머니라 불리는 지리산으로 가장 빨리 가려면 2004년 개통한 오도재를 넘어야 한다. 이곳의 뱀같이 구불구불한 고갯길 지안치(지안재), 오도재 정상의 지리산제1문,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리산조망공원이 지나는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부신 가을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 지리산 자락의 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24번 국도의 함양로에서 들판 끝으로 보이는 조동마을과 지안치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예쁘다. 지안치는 자동차도 힘겹게 오를 만큼 구불구불한 고갯길(S자)로 지그재그로 타원형을 만든 고갯길이 오히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곳으로 사진작가들이 야간에 자동차 불빛의 궤적을 촬영하러 많이 찾는다. 낮과 밤의 풍경이 확연히 다른 이곳에서 느림보 거북이와 굉음을 내며 빠르게 달리는 F1경기를 동시에 떠올린다. 오도재 정상에 2006년 준공한 지리산제1문이 있다. 광장에 돌에 시구를 새긴 조형물이 많다.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이 제1문 오르기 전 만나는 주막 가까이에 있어 연관된 조형물들도 보인다. 제1문 위에서 바라보면 북쪽의 대봉산 산줄기와 남쪽의 지리산 산줄기도 한눈에 들어온다. 제1
2013-10-15 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