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24,50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아이들에게 인간성과 사회성을 일깨우기 위해 일본 지바현 교육위원회는 2005년도부터 현(縣)차원에서 도덕교육에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호자나 지역주민도 수업에 참가하여 가족의 소중함, 타인에 대한 배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른바 ‘함께 생각하는 수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바현 가쓰낭 지구의 한 초등학교 3학년 아동들은 보호자와 지역 주민과 함께 ‘고마움’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도덕수업 시간을 가졌다. 담임교사가 ‘매일 우리들을 돌봐 줌’, ‘함께 놀자고 말을 걸어 줌’,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줌’ 등 ‘고마워(고맙습니다)’라고 생각되는 13가지 장면을 제시하면 아동과 참관자들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여 그룹별로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항목 중 가장 많이 선택된 것은 ‘매일 우리들을 돌봐 줌’인데 그 이유에 대해서 아동들은 ‘돌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참관자 가운데서 ‘안녕하세요’를 선택한 고령자 한 사람은 ‘하루의 시작에 기분 좋게 인사를 해 오면 하루를 즐겁게 보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으며 보호자 한 사람은 ‘집안일이 별 건 아니지만 칭찬받으면 더욱 잘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하는 등 학급 전체에서 의견을 교환했다. 이 도덕 수업의 주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서 평소 생활하면서 얼마나 자신이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는 가를 깨달아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데 수업의 목표를 두고 있다. 지바현 교육위원회는 청소년에 의한 범죄나 이지메, 공공장소에서의 예절부족 등이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자 새로운 도덕교육으로의 방향 전환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학습지도요령에는 도덕시간의 내용을 ①자기 자신에 관한 것 ②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것 ③자연과 문화에 관한 것 ④집단과 사회와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정하고 있다. 동 교육위원회는 이 내용을 실제 수업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20개의 지도안을 작성하여 2006년 3월 전 지도안을 바탕으로 실천한 수업 기록을 실천사례집으로서 정리, 현내에 있는 초․중, 고교에 배포하였다. 동 현의 도덕교육의 특징은 보호자와 지역주민에게 도덕 수업을 공개하여 실제로 참가하도록 하는 점이다. 즉 아동․학생들과 함께 성인도 토론에 참가하여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호자와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됨에 따라 지역 전체로부터 “‘심성 교육’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역 차원에서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교육부가 교원평가 선도학교 500곳을 선정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교총이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해 67곳에 이어 올해 전국 초중고교의 5%에 해당하는 500개 학교에 교원평가를 실시하려는 교육부는 “내달 10일까지 교원평가 선도학교 선정을 마무리 하라”고 교육청에 독려하고 있다. 시도교육청 시범학교 역할을 맡게 될 선도학교는 ▲지역교육청 당 초등 1~2곳, 중학교 1곳 ▲시도교육청별 고교 1~8곳 ▲기존 67개 시범학교 및 국립학교 등 모두 500곳이다. 교총은 ‘교원평가를 확대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임에도 교육부가 무리하게 확대 실시를 강행하려 한다’며 23일 시도교총에 실태 파악을 지시했다. 이재곤 교총 정책교섭부장은 “교원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평가담당 장학사 연수만으로 선도학교 지정이 강행되고, 해당 학교 교원들의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당 학교 교원의 절반만 평가 대상자로 참여할 수 있는 평가모형도 논란의 대상이다. 교육부는 교장, 교감의 평가 참여 여부에 따라 A, B안으로 구분한 지난해 방식과 달리, 관리자도 모두 평가에 참여하되 해당 학교 교원의 전체 또는 절반을 학교 평가관리위원회가 평가 대상자로 선정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 교원도 평가자로는 참여한다. 이재곤 부장은 “지난해 67개 시범학교 선정에 애를 먹은 교육부가 500개로 선도학교를 확대하기 위한 꼼수”라며 “반대한다고 제외하고 찬성한다고 참여하는 평가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정 단체 교원들은 대부분 교원평가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억측도 나돌고 있다. 교원평가 참여 학교에 대한 중복 지원도 논란의 대상이다. 교육부는 선도학교에 대해 천만 원 가량의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고, 유공 교원에 대해서는 승진 가산점 부여 및 인사상의 우대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또 선도학교 유공 교원 1인에 대해서는 교육부 장관 표창 추천 및 국내외 연수기회를 우선 부여할 계획이다. 지난해 참여한 67곳은 교육부 시범학교에서 올해 교육청 시범학교로 바뀐다. 이 부장은 “교육부가 도서벽지 선택가산점도 축소하는 승진규정개정안으로 농어촌 교육을 황폐화시키면서 자기 필요에 의해서는 선택가산점을 남발하는 모순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충북도내에서 다른 시.도로 전출을 희망하는 교원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초등교원의 전출은 작년에 비해 증가하고 중등교원은 줄어들 전망이다. 29일 도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도내 초.중등교원을 대상으로 타 시.도 전출 희망을 받은 결과 초등 395명(유치원 포함), 중등 295명 등 모두 690명에 달했다. 이는 2005년 571명, 작년 618명과 비교할 때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이들 상당수는 배우자가 타 시.도 직장에서 근무,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어 결합을 통해 안정된 생활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도교육청은 타 시.도교육청과 교류 협의를 가진 결과 초등은 유치원 교사 9명 등 76명이 본인이 희망하는 시.도로 전출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는 작년 3월 54명이 전출한 것에 비해 22명(40.7%)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중등의 경우 실제 타 시.도 전출 예상자는 53명으로 작년 67명보다 14명(20.9%)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관한 책인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를감동있게 보았으며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 특히 학부모와 교사들이 이책을 보고자녀교육과 학생지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일독을 권장합니다. 이 책은 지난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초에 농촌이라고 할 수 있는 충주에서 돼지 똥을 치우며 크면서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기구인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에 관한 책이다. 몇 가지 느낀 점을 소개한다. 첫째, 아이들에게 다양한 정보제공을 하여야 하겠다. 초등학생때 반기문은 외교관의 특강을 듣고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고 그것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둘째, 아이들에게 크든 작든 상관없이 가슴에 꿈을 갖게 하자. 시골 학교 시절부터 외교관의 꿈을 가슴속에 품어오던 한 학생이 50년이 지난 후 세계 정부의 대통령, 세계 평화의 수호자 자리에 오르게 된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 시절 가슴에 꿈을 품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이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길 바란다. 셋째, 부모나 교사들은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방해하지 말아야 하겠다. 부모님들도 처음에는 교사가 되라든지, 의사가 되라고 하면서 다른 길을 유도하였지만 결국 반기문의 뜻을 따랐다. 넷째,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여야 하겠다.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기를 지겨워하는데 공부는 열심히 해주면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여야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인정받기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라 공부에게 온통 마음을 줘버렸다는 게 달랐다. 다섯째, 특히 외국어 공부를 강조하여야 하겠다. 이제 국제화와 세계화이다. 농촌이나 다름없는 충주에서 영어로 전국 1등이 된 것은 자신의 노력이다. 더구나 유엔에서 점심시간마다 프랑스어를 배워 프랑스 대통령도 감동을 시킨 바 있다. 여섯째,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하자. 돼지를 키우며 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돼지 키우는 일은 그가 앞으로 평생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 돼지가 잘 자랄 수 있고, 돼지가 잘 자라줘야 학비와 생활비에 보탬이 되어 공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무시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일곱째, 청소년들에게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체험하게 하자. 반기문이 19살에 미국에 가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거기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꿈은 씨앗인 상태로 발아되지 못한 채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다. 서울도 못 가본 충청도 촌놈이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서 외교관이라는 꿈을 조금이나마 구체화 시킬 수 있었다. 여덟째, 인생에 있어서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자. 시골 학교를 다녔던 반기문이 김성태 선생님과 같은 열의 있는 영어선생님을 만나 419이후의 혼란속에 빠졌더라면, 미국에 가는 기회에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외교학을 전공하도록 올바른 진로지도를 받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반기문은 없었을 것이다. 아홉째, 청소년들에게 인생에서 본받고 싶은 멘토를 갖게 하자. 반기문은 첫부임지 인도에서 평생의 사부인 노신영을 만나 편지 쓰는 법등의 기초부터 반기문을 키웠으며 외교부 차관을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지만 인생의 멘토인 노신영은 따뜻한 말로 그를 위로해주고 용기를 복돋워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이끌어주고 필요할 때 야단쳐주는 멘토가 필요한 것이다. 열 번째, 청소년들에게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하게 하자. 외교관이면 우리나라 최대의 엘리트이고 자부심도 대단한 터인데 본인의 결혼도 매우 소박하게 고등학교때 만난 사람과 하고, 자녀의 결혼도 직장에서도 모르게 치루고, 부친상때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인으로 살면서 반 총장처럼 많은 것을 잃으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자신이 맡은 직책에서 수혜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보다 잇속 챙기기에 바쁘고 어떻게 하면 출세할까 궁리하면서 국민들은 뒷전인 공복이 많을지도 모르는데. 우리 선생님들이나 부모들은 천재처럼 꿈꾸되 모든 일에 진실성을 갖고 바보처럼 우직하게 자기관리와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진다는 대표적인 사례로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관련된 책을우리 청소년들이 읽어보는 기회를 갖게 하기를 권장하고 싶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아왔으니 이젠 내 평생의 직업이 교육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에 나는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초등학교 내내 커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읍내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 가서 ‘돼지 기르기’에 관련된 책을 흥미롭게 읽으며 장차 양돈이나 양계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한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나는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문학서적, 철학서적을 읽고 위인전을 읽으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꿈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페스탈로치 같은 교육자, 슈바이처 같은 박애주의자,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 덴마크의 달가스나 그룬트비히 같은 개척자의 삶을 동경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고르, 바이런, 하이네와 같은 시인, 간디와 톨스토이 같은 사상가, 드골과 링컨 같은 정치가, 성 프란체스코 같은 종교적 인물을 모델로 설정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나의 꿈은 사상적인 것, 문학적인 것, 철학적인 것이었으며 자아완성이라는 철학적 명제가 지상과제였다. 돈을 벌어야 한다든가 어떤 지위에 오른다던가 하는 것은 세속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경제 적인 것은 내 삶에 자연스럽게 수반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다. 집이 풍족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가난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살았다면 장차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도 꾸었을 법 한데 나는 목축이나 양돈 같은 축산업을 잠시 꿈꾸었을 뿐 회사원, 교사, 혹은 공무원 등 구체적인 직업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어디에 연유하는 것일까. 아마 내 낙천적 기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낳고 자란 농촌풍경이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는 도시적 삶과는 무관하여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사는 습성에 익숙했던 까닭인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겠다는 목적의식이 부족하고 거기에 불을 댕 길 어떤 자극도 받지 못한 데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청소년 시기 때 우리나라는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잘 살아보기 위해 온 국민이 총력을 경주하던 시절이었다. 공과대학에 대한 인기는 날로 치솟고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날로 높아만 가던 시절 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구체적인 장래 직업을 설정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가족을 고향에 남겨두 고 늘 혼자 객지생활을 했다. 옆에서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 을 지켜볼 기회가 없었던 것도 내가 구체적 직업을 꿈꾸지 못하게 한 까닭이었는지도 모른 다. 고향에서 할아버지는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지으셨다. 재래적인 논농사와 밭농사가 전부였다. 나는 농업을 구체적인 직업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직업이라기보다는 타고나서 숙명적으로 해야 하는 일상생활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나의 미래는 오로지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한 때 사관학교 에 입학해서 드골과 같은 멋진 정치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나의 관심은 곧 다시 어학과 인문학 쪽으로 돌아왔다. 결국 시인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상경했다. 대학 국문학과 입학을 필두로 나는 새로운 환경의 난관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산업화 진행 과정의 한 복판, 도시적 삶의 한 복판에 내던져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안온한 고향을 떠나 황량한 도시의 한복판에 내던져진것이다. 고모부의 주벽으로 가난한 영세민에 불과했던 고모 댁에 얹혀서 나의 고단한 서울살이는 시작되었다. 포근한 고향의 품속에서 낭만을 추구하며 가꾸던 자아완성의 꿈은 각박한 현실에 직면하여 여지없이 파괴되었다. 시골 촌뜨기는 서서히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정작 나의 관심은 외국문화와 외국어에 있었다. 이 잘못된 방향 설 정을 바로 잡는 데 또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나의 독서 취향과 관심 분야도 한국적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서구 지향적이었기 때문이다. 철학도, 종교도, 역사도, 문학도 모두 서양의 것만을 으뜸으로 쳤고 동양과 한국적인 모든 학문과 예술엔 무관심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상품도 미제라면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노래마저도 팝송에 심취하여 국악이나 국내가요는 진부한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서양의 문물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게 아니라 소나기처럼 퍼붓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렇듯 서양문물을 흠모하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제와 해방과 한국전쟁이 가져온 민족 정체성의 혼돈 때문이었다. 나는 가끔 당시 우리 사 회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빈부의 격차, 독재와 민주주의, 산업화의 대두와 가족의 붕괴 등으로 민족의 정체성이 대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장래에 대한 구체적 목표 없이 국문과를 중퇴하고영문과에 다시 입학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25세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했지만 군대에서조차 제대하면 농촌에 정착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군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나는 시대를 잘못 읽고 있었다. 당시의 농촌은 젊은이가 꿈을 펼치기엔 너무 열악한 여건이었다. 실제로 고향에서 목축과 양계에 종사하던 상당수의 친구들이 후일 파산에 이르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나는 제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갖기 위해 회사 문을 두드렸다. 건설회사도 좋고 언론기관도 좋고 제약회사도 좋았다. 회사는 다 유사할 것이라는 유아적 발상이었다. 순전히 호구지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나의 능력은 외국어능력이 전부였다. 구체적인 기술을 요하는 직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송국이나 신문사를 염두에 두었지만 이미 내 나이는 자격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그래 입사한 곳이 제약회사였다. 젊음이 있는 한 무슨 일을 못하랴?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났을 때 회의가 생겼다. 내근도 아니고 내 전공인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직종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으로 병원과 약국을 찾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실적을 올려야 하는생활에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결단을 내렸다. 사표를 내고 모교의 주임교수님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교직에 몸담게 되었다. 교직은 청소년 시절 나의 꿈이 아니었다.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이 교사를 하지 않더라도 교직과목은 이수해 놓는 게 좋다는 충고의 말씀으로 교사자격증을 따놓았을 뿐이었다. 운명이 나도 모르게 나를 서서히 교단으로 이끌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제약회사를그만두고 교단에 섰을 때 아주 편안하고 흡족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전공한 분야라는 것으로 자신감이 충만했다. 결국 나는 청소년기에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직업에 평생을 몸 담아온 셈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려서부터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착실하게 밟아나 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어려서부터 국악인, 요리사, 컴퓨터 전문가, 화가와 같은 전문가의꿈을 확고히 설정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그렇다면 소질도 능률적으로 개발할 수 있고 시행착오로 인한 방황과 갈등을 겪지도 않을 수도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본다. 내가 겪은 혼란을 생각하면 일찍 소질을 개발하는 문제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나는 옛날을 돌아보면서 시인이 되자고 다짐하던 것과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 나의 선견지명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 두 가지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내 인생의 소중한 두 줄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는 평생경제활동과 사회봉사의 수단이 되고 있고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류의 가교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 시는 나의 사상과 감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피력하는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영어영문학으로 혹은 시인으로 크게 성공하지 않더라도 그 효용성과 값어치는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도 지나 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되돌아본다. 구체적으로 현실적 직업에 대해서 꿈을 갖지 않았던 순수했던 시골뜨기가 어떻게 현실을 헤쳐 살아왔던가. 철학과 사상과 문학이라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명제를 안고 씨름하던 철부지의 꿈은 내 인생에 전혀 소득 없는 공허한 것에 불과했던가.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현실적 가치를 추구했다면 인생이 한결 보람 있었을까. 지금은 어떤 결론도 내릴 단계가 아니다. 나는 아직 현역으로 직업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내 앞에는 지금도 많은 과제가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루어 생각하건데 나의 청소년기의 명제였던 자아완성이라는 이상은 내 인생의 귀중한 방향설정이었으며 나는 지금까지 상당부분 그 방향을 따라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의, 인도주의, 박애사상, 민주주의, 개척정신, 인문학의 힘에 대한 신념은 현실적인 직업 추구보다도 더 소중한 내 인생의 가치 기준이 되어왔다. 이러한 나의 체험을 지금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시대가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미래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낱낱이 알 수는 없다. 옛날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부와 권력,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같은 직종의 종사자라 하더라도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있듯이 직업 이전에 갖추어야 할 기본 인격의 틀은 청소년시기를 거치는 동안 갖추어져야 한다. 그것은 직업선택 이전에 인생을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소중한 기본덕목이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서 돼지갈비를 구워 먹을 때 아무리 맛이 있어보여도 먹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까맣게 탄 고기인데 발암 물질이 있다는 경고 때문이다. 최근에는 웰빙식품이라고 소비가 늘고 있는 올리브유 제품에서 강력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에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라면에도 발암물질이 있다고 하여 온나라가 떠들썩했던 적도 있었고, 이제는 라면은 괞찮은 것 같은데 컵라면의 경우 스티로폼용기에 발암물질이 있다고들 하니 각별히 조심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름에 튀기는 감자칩이나, 각종 튀김은 물론 치킨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말은 상당히 공론화 되었고, 시금치를 삶으면 발암물질이 생긴다는 근거없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곳곳에 발암물질이 보이지 않는 이빨을 내밀고 사람의 생명을 갉아먹으러 야금야금 접근해오는 것만은 틀림없다. 육신속에 파고 든 암세포는 절망의 검은꽃이다.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이렇게 무서운 암이 걸린 다는 것을 예측하면서 발암물질을 피해가는 인간들이 참 슬기롭게 보이다가도 담배를 생각하면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담배를 피면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담배곽을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르지마는 상당히 구체적인 경고를 해놓았다는데도 흡연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골초선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저는 담배 안피면 스트레스 받아서 더 빨리 죽을걸요.’ 하기사 영국 수상 처칠은 시가를 입에 달고 다녔고 기자들이 시가를 물지 않은 사진을 찍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했을 정도라니 그런 골초중에 골초도 장수를 누린 것을 보면 앞의 말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아인슈타인, 맥아더 장군도 애연가였고 ‘꽁초 오상순’이라는 시인은 잠자는 시간외에는 늘상 담배를 피워댔다니 그렇다면 그를 ‘담배태우는 사람’이라고 불러야 맞지 시인이라고 치켜세우니 사람들이 참 너그럽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담배연기가 기도를 지나 폐를 통과하고 다시 역순으로 나와 콧구멍으로 내품어지는 과정을하루내내 반복하고도 멀쩡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UFO라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살짝 냄새만 맡아도 지독하기 짝이 없는 담배연기인 데 스스로의 인체를 굴뚝으로 만들어버리다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민요가운데 담방귀타령, 담방구타령 들이 담배와 관련된 노래들이고 담배는 예로부터 회충약, 배앓이약 등으로 쓰던 민간요법도 있다니 담배는 우리의 애환속에도 깊숙히 끼어들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폐암이 걸린 다음에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1막은 원고가 패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담배를 피다가 악화된 폐암환자는 담배회사가 저승사자로 보일 것이고 담배회사는 담배회사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대로 가다가는 담배회사 사장도 못해먹겠다고 문을 닫아 버릴 지도 모른다. 과연 그 때 담배회사가 망했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할 사람은 누구일까. 비흡연자는 당연히 환영하겠지만 흡연자는 담배피울 권리를 달라고 데모를 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담배회사는 할 수 없이 문을 열어 담배를 만들었고, 또 다시 당신들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고 소송이 들어오고, 신경질이 나서 담배회사 문을 닫고..... 참으로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은 담배라는 것이 바퀴벌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느낌 때문이다. 우리집에는 담배가 없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집에서 누가 담배를 핀다고 생각하면 그 지독한 연기냄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날정도다. 이것저것 지금까지의 너스레는 다 집어치더라도 담배 때문에 고통을 겪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담배는 당장 끊어야 한다. 아파트 계단에 꽁초가 널브러져 있고 화단이나 무슨 틈새가 있으면 담배꽁초가 빼곡히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남에게 주는 폐해는 끝도 없다. 사람들은 말도 잘 지어낸다. 구름과자라며 담배연기를 품어댄다. 구름과자는 황홀한 꼬리춤을 추며 하늘로 승천하는데 정말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라는 구름과자인지, 절망의 먹구름이 다가온다는 구름과자인지 똑똑히 생각해봐야 할 구름과자다.
신라 때 의상이 창건하고 대웅전 뒤에 맑은 물이 나오는 샘 옥천이 있어 널리 알려진 사찰이 옥천사(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옥천사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사천왕문이 나타난다. 그 옆으로 자방루(경남 유형문화재 제53호)와 유물들을 전시한 보장각이 보인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해야 하는 하마비(下馬碑)가 있고 길옆으로는 큼직한 바위덩어리가 규칙적으로 놓여 있는 계곡이 있다. 사천왕을 구경하고 나와 다리를 건너면 거북이 입에서 물이 나오는 '연화산옥천수'가 맞이한다. 물맛을 보고 안내판에 씌어 있는 글을 읽어 보며 자방루를 구경한 후 해탈문을 들어서면 옥천(玉泉)이 있는 옥천각과 대웅전이 보인다. 조용한 사찰이건만 여러 곳이 공사 중이라 널려있는 공사 물품들 때문에 어수선하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옥천은 이 절을 창간(676년)하기 전부터 있었던 샘으로 예로부터 병을 고치는 감로수(甘露水)로 한국의 100대 명수에 올라 있다. 옥천사가 있는 연화산에는 암수의 옥천이 있다고 전해온다. 옥천각 안에 있는 옥천은 암샘이다. 옥천의 물맛을 보며 수샘은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하다. 공사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이 없어 알아볼 길이 없다. 마침 스님이 한 분 오기에 물어보니 다른 사찰에서 왔단다. 밑에서 일을 하고 있던 보살님을 통해 수샘을 알아냈다. 산속의 물 무덤이 아래에 있는 수샘은 청담 스님을 비롯한 역대 스님들의 진영을 모셔둔 조사전 아래에 있다. 밖에 있는 연화산옥천수나 옥천각에 있는 옥천의 풍부한 수량과 달리 수샘은 한참을 기다려야 한 모금 마실 수 있을 만큼 물의 양이 적었다. 미각이 둔해 암샘과 수샘의 맛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옥천사에서 암수의 물을 모두 먹어봤다는 게 행복이다. 옥천각 옆에 있는 대웅전(경남 유형문화재 제146호)은 석가모니를 모신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법당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 지붕집이다. 대웅전 앞에는 좌우에 당간지주가 있다. 대웅전 옆에 건립 당시인 영조 때 기성이 현판을 썼다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건물 명부전(경남 유형문화재 제132호)이 있다. 명부전에는 불계에서 영혼을 재판하는 지장보살을 모셔 놓았다. 옥천사가 정토신앙과 민간 토속신앙 등이 융합된 통불교사찰임을 알려주듯 대웅전 뒤쪽으로 산령각, 칠성각, 독성각 등의 작은 전각들이 줄지어 있다. 그중 독성각과 산령각은 전각 안에 들어가 앉아 있기도 어려울 만큼 좁다. 유물 전시관인 보장각은 2층으로 귀중한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고려 때 동으로 만든 타악기인 보물 제495호 '임자명반자'다. 지리산 안양사에서 언제 옥천사로 왔는지 알 수 없는 임자명반자의 옆면 위쪽에 제작연대(1252년)를 알 수 있는 글이 있다. 옥천사 입구 바로 전에 있는 쉼터가 많은 용각류의 발자국들이 무질서하게 찍혀 있는 공룡발자국 공원이다.
인기 연예인의 한 사람인 현영 씨가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에 아름다운 선행을 베풀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현영 씨는 지난 1월 4일 충남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 고성초등학교를 방문, 학생 및 교직원 45명 전원에게 5000만원 상당의 해외연수여행권을 기증했다. 현영 씨가 고성초등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의 일이다. 당시 이 학교 6학년이던 문소영 양이 '제1회 어린이 책읽기 한마당'에서 대상을 차지한 '닭들에게 미안해'라는 독후감을 현영 씨가 읽고 감동을 받아 전자책 1만5000권, 시가 1억원 상당을 기증하면서부터다. 고성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6명인 아주 작은 소규모학교로 지난해 현영 씨는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이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데에 감동을 받아 책을 기증하게 됐다고 밝혔었다. 현영 씨의 선행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지난해 1만5000권의 전자책을 보내준 데 이어 이번에도 전교생과 교직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해외연수까지 보내주기 때문이다. 4일 오후 1시 20분께 현영 씨는 바쁜 일정 중에도 충남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있는 고성초등학교를 직접 찾아와 '5000만원 해외연수증서'를 직접 전달하고 학생들과 일일이 사인회를 가졌다. 현영 씨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했다."며 "이번 해외연수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증 소감을 밝혔다.
가구주가 고학력인 가구일수록 상대적으로 교육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2인 이상 도시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212만원, 교육비 지출은 30만원으로 전체 소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4.15%였다. 이를 가구주 교육 정도별로 보면 가구주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46만원, 교육비 지출은 15만원으로 교육비 비중은 10.27%로 집계됐다. 가구주가 중학교 졸업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과 교육비 지출은 각각 169만원과 18만원으로 교육비 비중은 10.65%에 그쳐 전체 평균에 못미쳤다. 반면 가구주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인 경우에는 월평균 교육비 지출은 30만원으로 전체 소비지출(206만원)의 14.56%를 차지했고, 가구주 학력이 대학교 졸업인 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45만원으로 전체 소비지출(271만원)의 16.60%에 달했다. 이처럼 가구주의 학력이 높을수록 교육비 지출 비중이 올라가는 것은 저학력자에 비해 고학력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소득을 올리면서 사교육 등에 대한 지출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가구주 학력 정도별 월평균 소득은 초졸이 201만원, 중졸이 234만원, 고졸이 295만원, 대졸이 414만원으로 대졸이 초졸의 2배를 넘었다. 이같은 가구주 소득 격차에 따른 교육비 지출 차이는 다시 자식들의 학력 격차로 이어져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부모의 학력격차는 소득격차로, 이는 다시 사교육 지출의 차이를 통해 자녀 세대의 학력격차로 이어져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다. 괴롭힘을 당하여 전철에 뛰어들어, 자살했습니다. 이 메일을 9인에 보내지 않으면 그 시체가 당신의 집에 갑니다. 그만두면 알기 때문에」 PC실의 스크린에 비추어진 메일을 읽고 웅성거리는 아이들이 있다.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차례차례 전송되기 위해 체인 메일이라고도 불린다.「모두 이런 메일이 오면 어떻게 할까요?」 도쿄도 키타구의 아카바네다이 니시오 학교에서 행해진 6년생의 「정보」수업에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노마씨가 연결 메일의 대처법 등을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다. 아이들에게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수업으로 사용한 메일은 실제로 동교의 아동들에게 보내져 온 것이다. 「메일을 보내지 않아도 자신이 살해당할 것은 없다」,「시체가 온다는 것은 절대 거짓말」이라고, 메일을 전송하지 않는다고 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무서워 보내 버릴지도」라고 어쩔 수 없이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다. 노마씨는 「체인 메일을 보내면, 상대에게 불쾌한 생각을 시키는 가해자가 된다」 등을 설명하자 아이들은 「친구에게 무서운 마음을 갖게 해선 안 된다」라고 의견을 정리했다. 동교는 「정보교육에 관한 연간 계획」을 작성해, 작년부터 3-6년생을 대상으로 매주1시간 정도 「종합적인 학습의 시간」의 일부를 「정보」의 수업에 충당하고 있다. 특별히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인터넷상의 트러블 방지다. 노마씨는 「아동들에게 빈번히 스팸 메일이 도착하고 있다. 게시판을 사용한 집단 괴롭힘이나, 넷 게임에 빠져든 부등교도 학교의 문제다. 모랄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이야기한다. 동교의 6년생의 휴대 전화의 소유율은 40% 이상이며,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이상한 메일이 왔다」라고 아동이 상담하러 오는 케이스가 증가하는 등, 정보교육의 효과에 반응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학교에서의 정보 모랄교육은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교토시의 정보화 추진 종합센터가 2005년 12월, 시내의 초중학교의 교원 약 1000명을 조사했는데, 「정보 모랄교육이 필요」라고 대답한 것은 93%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르친 경험이 있는 것은 41%정도였다.「교수법을 모른다」,「적절한 교재가 없다」라고 하는 소리도 적지 않다. 세이신 여자 대학 문학부 교수의 나가노 카즈오씨는 「아이의 흥미나 관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은 교사가 많다. 정보 교육은 일부의 열심인 선생님만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야기한다. 문부 과학성은 금년도, 전국에서 15개의 시범학교를 선정해, 정보 모랄 교육의 노하우를 구축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도쿄도나 쿄토시, 사이타마현등도 연달아 교사 전용의 지도 자료를 작성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조사의 「goo리서치」가 05년 6월, 초등학생의 보호자 1200명을 대상으로, 아이의 인터넷의 개시시기를 물었는데, 43%가 1학년생까지 이용을 시작했다고 회답했다.
반장이 되나 안 되나 가슴이 조마조마 했던 초등학교 시절 반장선거 때의 정경이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벌써 50대다. 사무치는 연정에 편지를 띄워놓고 날이면 날마다 답장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여리고 순진하던 나의 사춘기, 주체할 길 없는 그리움에 무작정 봄 길을 걸으면, 연두색 물감으로 색칠을 한 듯 멀리 파릇한 풍경을 만들며 봄을 알려오던 동구 밖 버드나무, 이 모두가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되었다. 그동안 지내온 세월을 나는 모두 손금을 보듯 드려다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그렇게 들여다보인다. 대학 새내기 시절, 명동의 지하 학사주점에서 호기를 부리며 낭만을 구가하던 일도, 그 시절의 데모 행렬도 어제 일 같고, 군에 입대해 이십팔 주 고된 훈련 받던 모습이며, 훈련이 끝나고 군모에 빛나는 하사관 계급장이 달려지던 일도 손에 잡힐 듯 어제의 일만 같다. 군복무를 마치고 만학을 하느라 삼십 가까운 무렵까지 대학 캠퍼스를 오가고 졸업을 한 후엔 곧장 고등학교 교단으로 가 십대의 젊은이와 함께 생활해 왔으니, 나의 마음은 어쩌면 지금도 세상 물정 모르고 새파랗게 젊기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나이 먹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시절이 좋아서 날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년의 개념도 예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마냥 내가 젊다고 물불 안 가리고 앞으로 나설 수도 없는 것이다. 벌써 나를 보자마자 단번에 나의 나이를 짐작해내곤 그에 걸맞게 나를 대하려는 시선들은 도처에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이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차후 생활의 자세를 궁리하여 보는 것이 순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과욕을 덜어내는 것이 되고 노욕을 방지하는 방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왜 욕심이 없으며 의욕이 없을 것인가. 다만 그 나이에 걸맞게 품위를 지켜가며, 나이에 알맞게 욕심을 갖고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 젊은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길이 될 것이다. 다양한 욕구가 있겠지만 건강하게 천수를 살고 싶은 욕망이 어떤 욕심보다 먼저 고개를 들 것이다. 노후를 대비하여 젊은 날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놓았고 힘에 붙인 대로 자식들 교육도 시켜놓았으니 그 책임에서도 이제 벗어날 나이인 것이다. 이제 한시름 놓고 어떻게 노후를 건강하고 유익하게 보낼 것인가에 마음 쏠리는 것도 자명하고 자연스러울 터이다. 각자 각자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고충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 연령대의 공통분모는 또 찾아질 것이다. 이제 자식들에게 저희들 경제는 맡겨놓고 손자손녀 학업도 앞질러 노심초사 하지 말고 저희들에게 맡겨놓고,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정거리 떨어져 지지 격려하는 차원이면 족할 것이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 건강, 내 능력에 맞게 인생을 찾아 즐기고 보람을 가꾸어 가는 것이 자식들에게 짐을 덜어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저 내 생활은 소홀히 하고 자식들 문제에 여전히 얽매어 있다는 것은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일생을 자식들 건사하기에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왔으니 그럴 개연성을 부인할 수도 없겠으나 노년에 이르러서는 벗어나서 나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게 상호 편하고 바람직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50대이다. 가끔 자각이 들면 벌써 내가 이 나이가 되었구나 하고 회한에 젖기도 하지만 아직은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 항상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하다, 혹은 마음은 아직도 새파랗다고 젊음을 확인해 보다가도 종종 난관에 부딪치기도 한다. 내가 늙었다는 것보다는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이 이미 늙었다는 자각이다. 그런 자각이 들 때는 내가 쉰 세대(?)라는 생각을 꼼짝없이 하고 만다. 내가 10대 적에 무슨 책을 보았고 어떤 팝송에 몰두하였는지, 어떤 꿈을 품고 있었는지 엊그제의 일처럼 떠올라 마음은 그대로 그 시절에 사는 것 같아도 이미 그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인 것이다. 젊은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쯤으로 인식이 될 터이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늙지 않은 것 같고 시대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도 벌써 나는 구세대에 속하고 마는 것이다. 요새 십대 아이들의 이성교제나 놀이문화의 양상을 보면 그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쉽게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달아 긴 세월의 간극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런가. 우리는 개인적인 면보다는 속한 집단, 속한 세대, 그리고 겪어온 역사 속에서 평가되어 그 위치가 결정되는 것도 보통이다. 즉 사회 전체의 맥락 속에서 내가 평가받고 규정되고 바라다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독불장군처럼 나 혼자 젊다고 고집할 수만도 없다. 내가 거쳐 온 옛 학창시절, 결혼하던 당시의 풍속도가 내 안에 그대로 각인되어 나를 비춰내고 있으니 젊은이는 나의 연륜을 감지하곤 자기들과는 다른 삶의 주인공임을 즉시 구별해 낼 것이다. 이것을 편견이라고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을 탓하고 예의범절도, 전통가치도 모르는 세대라고 분개라도 해야 할 것인가. 그만큼 나는 나도 모르게 옛날 관습, 그 가치관, 그 타성에 젖어 있다. 비로소 내가 젊은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속에서 이미 늙은 세대에 편입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에 능하고 휴대폰의 기능을 잘 활용한다 해도 내가 젊은 세대와 같을 수 없고 쉽게 동화될 수 없는 이유다. 나는 이미 속속들이 옛날의 정치, 경제 문화적 환경 속에 상당 부분 젖어있게 마련이다. 이미 오늘의 세상은 다음 세대에게 상당부분 넘어가 있고 그 다음 세대가 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다. 이런 기반과 자각 위에 노후 설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돈이 있어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었어도 우리는 이미 지나간 세대로 분류되고 만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젊은이들 하자는 대로 내맡기고 양보하면 지혜로운 것인가. 젊은 세대를 꾸짖고 비판하고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게 권위를 세우는 것인가?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 중요한 것은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나의 행보를 건강하고 의연하게 유지하되 젊은 세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긍정하고 거기서 얻은 지혜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실천하고 전수하되 마찰이 없어야 할 것이다. 권위는 노인들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는 칠팔십 대의 노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솔직하게 삶을 회고하고 담백하게 심정을 토로하는 글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분들은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앞서 걸으며 풍부한 체험으로 이미 터득한 지혜의 횃불을 높이 받쳐 들고 계신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 환한 선대의 불빛 아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전진하며 기쁨과 평화를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늙음을 피할 수는 없다. 노년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비관에 젖어 한탄하며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의연하게 목표를 세워 기쁨과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사람이 늙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마음먹기에 따라 노년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할 것이다. 나도 벌써 오십대이다. 노년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임을 자각하면서 관련 서적을 몇 권 펼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은 참고가 될 뿐 그 책에 맞춰 나의 노후를 설계할 수는 없다. 나의 체험, 나의 능력, 나의 개성에 맞게 노후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한편 나는 벌써 오십대이긴 하지만 또한 이제 겨우 오십대이기도 한 것이다. 아직 직장생활도 몇 해 더 해야 하고 자식들 출가시켜야 할 일도 남아있고 늦둥이가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니 아무래도 노년을 생각해보는 게 얼토당토 않고 억지로라도 저만치 밀어두어야 할까보다. 혹시 이 글을 선배 어르신들께서 보신다면 치기어린 후배의 두서없는 문장에 따끔하게 일침을 놓아주시고, 좋은 지침 되도록 충고의 말씀 해주시기 바란다.
리포터는 지역교육청 평가에서 최우수교육청의 ‘영예’를 안은 평택교육청을 방문, 엄용관(嚴容寬.60) 교육장을 만났다. 평택교육청은 인간존중 의식 함양을 비롯한14개 평가 영역 중 9개 영역에서 최우수를 받아최우수교육청으로 선정되었다. 지난 달 27일,평가보고회에서 교육감으로부터 기관표창을 받고 특색사업인 ‘한울타리 사랑교육’과 ‘사랑의 편지쓰기’ 우수사례를 보고하였다. “매우 기쁘고 평택 교육가족들이 대견스럽습니다. 각급 학교에서의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한 알찬 교육활동과 교육청의 적절한 장학지원 활동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봅니다.” 작년 3월부임한 그는 교육장으로서 학생을 직접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음을 깨닫고 일선에서 교육을 직접 담당한 학교장에게 많은 자율권을 주어 신바람 나는 학교경영을 하도록 지원하고 도와주는 행정을 펴 나가겠다고 결심한다.한편으로는 교직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학생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을 찾는다. ‘글로벌 꿈 키우기 품제 운영'이 바로 그것. 창의성,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신장, 독서, 효 실천, 체력단련 등의 분야에 학생들이 스스로 참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 육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혁신은 나부터,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 그는 요즘 한창 부르짖는 혁신을 그다지 어렵게 않게 생각하고 있다. “혁신은 나부터, 작은 일부터 실천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각종 회의시간이면 정해진 시각에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구성원이 미처 도착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교육장이 회의장에서 기다린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시간을 엄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학교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일은 가급적 지양하고 있다. 교직원들을 즐겁게는 해주지 못할망정 스트레스를 주는 기관장은 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2007 교육청 교육계획엔 평택교육의 기본방향과 교육청 사업만 제시하였다. 학교의 자율성을 도모하고 창의적인 학교교육계획 수립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교육청에서 학교의 단위사업까지 시시콜콜이 간섭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학교 교육이 오히려 위축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자율권과 창의적인 교육활동 최대한 보장·지원 그는 교육장이 가져할 선구자적 교육 마인드는 ‘우리의 교육이 나가야 할 바를 직시(直視)하고 학교교육이 정도(正道)를 가도록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적(知的)·인성적(人性的) 권위를 유지해야 하며, 학교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창의적인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학교,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보는 시각이 확고하다. 학교는 학생교육을 책임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경영의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학교장이 책임지고 교육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은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직원은학생들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으로 교육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직원의 교육본질을 망각한 어떤 행위도 용납 안 돼 그는 말한다. 학부모는 학교를 신뢰하고 선생님을 믿어야 한다고. 학교 불신, 선생님 불신의 풍토에서는 교육의 효율성은커녕 교육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이러한 신념을 학부모 교육에서 강조한다. 선생님의 행동이 아무리 미워도 자식 앞에서 선생님 험담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교직원에게도 당부한다. 교직원은 교육본질을 망각한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되며 학교가 정한 교육목표 실현에 충실히 임해야 한다고. 또한 결손학교 예방에 교직원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그는 교육공동체간 갈등이 많은 학교를 결손학교로 지칭하고 있다. 그는 학교를 방문할 때 세 가지 관점을 갖고 학교를 바라보고 있다. 첫째, 학교장의 마인드는 열려 있는가? 학교장의 열린 마음과 수용적인 자세, 선생님의 눈높이를 맞추는 학교장상을 그리는 것이다. 둘째, 학교가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생동감이 있는가? 우선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가를 보고 살아 움직이는 교육을 살피는 것이다. 셋째, 교직원간 인간관계는 좋은가? 즉, 교직원간의 융화와 인화를 중히 여기는 것이다. 평택교육의 자랑은 ‘글로벌 꿈 키우기 품제 운영' ‘글로벌 꿈 키우기 품제 운영'은 인성이 바르며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학습능력을 신장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글로벌 인재 키우기 사업인데 평택교육의 자랑이다. 또한 올해 새사업으로 추진할 초등학교 동학년 협력담임제(학년담임제) 운영 계획은 질 높은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할것으로기대하고 있다. 현안과제로는 5개 분교장의 시설개선 및 복식수업 해소에 두고 있다. 예산이 수반되는 것이지만 폐교 가능성이 예상되어 투자를 하지 않은 결과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OECD 상위권인 나라에서 복식수업은 국가적 수치라고 말한다. 그는 교육장으로서 평택교육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고 평택교육 발전의 전환점을 꾀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보람과 긍지이며 자부심이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교직원 단체가 학교에 깊숙이 관여하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며 ‘집안일은 집안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말한다.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육성에 앞장 서는 평택교육 평택교육의 미래로는 평택항 발전,중국과의 교육교류 등에 관심을 두어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육성에 가장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교육환경 조성에 모든 시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지리적 여건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택교육 가족 모두가 ‘희망 평택교육의 실현은 「나부터」「작은 일부터」실천한다’는 마음으로 한데 힘을 모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 학생들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행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평택 출신으로 1968년 교단에 입문한 그는 교사 21년, 교감 2.6년, 장학사 6.6년, 교장 3.6년, 장학관 5.6년 경력의 경기교육계의 베테랑이다. 외유내강 성품으로 물 흐르듯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40년 가까이 교단에 봉직하여 온 그는 ‘원하는 삶을 스스로 가꾸어 가는 자체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교직생활을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 대담일시 2007.1.24(수)16:30-18:00. 교육장실 ]
서울초중등댄스스포츠교육연구회(회장 김남현)는 27일 서울 노원구 연촌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댄스스포츠 3급 지도자 자격시험을 개최 했다. 90여명의 선생님들은 방학기간 동안 연수한 실력을 선보였다.
급발진 사고에 대해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고 메스컴에서 연실 떠들썩하다.놀랍다.나도 운전을 하고 있으며 학교운동장에 서슴없이 드나들고 있으니까 예사로 봐지지를 않는다.내차도 급발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막연한 불안이 엄습해 온다. 진짜로 급발진 사고였다면 어느 누구의 차라고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과학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연료와 산소(공기)가 차단되어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다는데, 그렇다면 대개 급발진이라는 것은 운전자의 착각에 의한 과실로 밖에 볼 수 밖에 없는 것임에도 이러한 과학적인 원리를 딛고 급발진을 인정한 판례를 내놓았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죽기까지 했음에도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여하튼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니 좀 섬뜩해지기까지 하다.. 로봇의 반란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로봇은 순종의 산물이 아니고 언젠가는 분노의 산물로 변하여 인간을 향해 대적한다는 SF소설과 영화가 수도없이제작되었다.자동차의 공장도 알고 보면 거대한 자동화라인 로봇이다. 그의 자식인 자동차도 물론 로봇일 수 밖에 없고 마구잡이로 몰아대는 자동차로봇들이 지금 분노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지금 자동차는 반란을 일으키는 것인가. 학교의 운동장에도 수십대씩 자동차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주차되어 있다. 무서운 자동차 로봇이 학교운동장에 드나든다는 것이 갑자기 섬뜩해지기도 한다.나만이라도 자동차를 끌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까도 생각해 봤다. 그것도 대수는 아니구나.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급발진하여 미쳐 날뛰는 자동차옆에 있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 정말로 로봇의 반란이라고 믿거싶지는 않다. 미쳐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함정으로 급발진 사고가 있다고 본다. 급발진이 인정되었으니 이제는 그 원인을 확실하게 밝혀주기를 바란다. 과학강국 대한민국의 체면을 걸고 말이다.
감나무에 홍시가 열려 있었다. 그 홍시는 보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엄청 영양가도 있다고 소문도 나 있는 지라 서로들 따먹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달려들었지만 불행하게도 홍시는 상당히 높은 꼭대기에 열서너 개만 달려 있었다. 그러니 감나무는 몸살을 앓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치 긴 장대를 만들어서 홍시를 따려고 애를 썼다. 천신만고 끝에 홍시를 거머쥐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간발의 차로 미치지를 못했다. 어떤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낭창낭창한 가지를 붙들고 나무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장애물을 들고서 천신만고 끝에 홍시를 거머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간발의 차로 실패를 거듭하다가 땅으로 떨어져 예기치 않은 부상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목말을 타고 막연히 손을 뻗어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림 반 푼도 없었고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촌극부류도 있었고 그 꼴을 보면서 혀를 내두르기도 하고 볼썽사납다며 혀를 차기도 하는 사람, 사람들은 밥을 먹다가도 만나서 인사를 하다가도 전화통화를 하다가도 그 홍시 따먹는 일이 주된 화재거리였다. 어떻게 하면 홍시를 따먹을 수 있느냐, 야, 친구야 너도 포기하지 말고 지금이라고 장대를 만들어라, 낚싯대의 원리를 모방하면 성능이 우수한 장대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연구 좀 해봐라, 아니면 돌팔매라고 던져봐야 할 거 아니냐? 감나무를 어떻게 잘 기르느냐, 밑거름을 주느냐는 전혀 무관심이었다. 이래저래 가지는 부러지고 나뭇잎은 생채기가 나고 감나무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해가 갈수록 감도 적게 열리고 그러다 보니 해마다 홍시의 절대수도 감소하게 되었다. 그게 악순환이었다. 사람들은 더 열이 붙어 생난리가 나게 되었다. 이상은 가상의 꽁트다.어느 사회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본다. 무언가를 얻기위해 본질을짓밞는 사례들이다.우리의 교직사회에서도홍시라는 달콤함을따기 위해 알게 모르게감나무라는 본질을 훼손하고 망가뜨리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80년대라고 해도 좋다. 학부모님이 교실에 오면 여자어린이에게 아래와 같은 칭찬말을 푸짐하게 전해주기도 했다. “정아(가명)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보름달처럼 예쁘게 생겼네요.” “아유, 선생님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실제로 학부모에게 전해주는 칭찬말이었고 학부모님도 흐뭇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닌데 요새 보름달처럼 생겼다고 말했다가는 뺨맞기 십상이다. 아닌게아니라 그때는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살집도 있고 후하게 생겼으면 상당히 미적인 호감을 가졌다. 반대로 요새 인기짱이라는 조막만한 얼굴은 고민대상이었다. 당시에는 키가 큰 어린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선망은커녕 멀대처럼 키가 크다고 놀림을 받곤 했었다. 너무 키가 커서 작게 보이려고 구부리고 다니는 어른도 봤다. 또 어떤 키큰 청년들은 키 크지 말라고 궁여지책으로 역기를 들기도 했다. 키 큰 것이 전혀 달갑지 않은 세월이 불과 코앞의 옛날이었는데, 요새는 180도 달라졌으니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다녔을 적에는 대머리와 배나온 남자들이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헛소리가 아니다. 대머리는 학식이 뛰어나고 박식한 사람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배나온 남자는 돈많이 벌어서 성공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돈 많이 벌어서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니 배가 나오는 것이고 나도 돈벌어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배 좀 나왔으면 하는 것이 당시 남자들의 소망이었다. 실제로 돈 많이 벌었다는 소수의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똥배를 내밀고 다녔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판인데, 돈많이 벌어 얼마나 잘먹었으면 똥배가 나오고 그러니까 부의 상징이었고 충분히 존경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논리로 공부 많이 하다 보니까 머릿속에 학식과 지식이 무지하게 쌓이다 보니 이에 대한 확실한 징표로 머리카락은 축복을 받으며 빠져나가 바람에 날라갔다고 인식을 하였다. 실제로 흑백 TV를 통해서 대머리 학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대머리는 박식함을 상징적으로 일러주었다. 그러니 좁은 이마를 가진 남자들은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거울을 보면서 족집게롤 이마를 점령한 머리올을 강제로 빼버리곤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아픔과 시련을 딛고 상당히 박식한 사람이 되어 문을 박차고 나갔던 적이 그리 오래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르면 모르지만 당시에 머리카락을 강제로 뽑았던 남자들은 지금에 와서는 후회막급할 것이다. 당시에 벽보에 붙어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깡마른 사진을 보면서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저 양반은 학식도 뛰어나고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왜 저렇게 말랐는지 몰라” “글세 말여, 전혀 배도 안나오고 이마도 안벗겨졌네그려” 요새 (미녀는 괴로워) 영화가 인기란다.미녀는 누가 만드는 것인가. 미녀는 성형외과 의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미에 대한 집착으로 성형에 인생을 걸다가 선풍기아줌마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미녀는 누가 만드는 것인가.미녀는 만드는 것이 아니다. 원래 모두가 다 미인이다. 세상에 미인 아닌 여자가 어디에 있는가. 알고보면 나름대로의 개성을 살려서 이세상에 태어났다. 그게 하나님의 축복이고 섭리렸다. 사람들은 그 축복을 저버리고 어떤 기준을 향해 돌진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 못내 씁쓸하다.그러니 미녀는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괴로운 미녀를 택할 것인지 행복한 미녀아닌 사람을 택할 것인지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은가.
고등학생 가운데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기초학습이 안되는 학생이 500명 안팎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다. 중학생은 그 열 배, 초등학생은 스무 배가 넘는다는 통계이다.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학부모들은 항의할 것이고 교육부 당국은 여러 가지로 학교에 독려와 책임을 묻겠다는 지시들을 내려 보내 자신들의 책임을 벗어 날 길을 마련할 것이다. 기초학습 부진아가 하나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양산되는 것은 제도적인 결함이 제일 큰 요인으로 생각된다. 나라의 교육정책이 선생도 바쁘고 아이도 바쁘고 학부모도 바쁘게 만든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뒤처지는 아이를 가르칠 시간이 없다. 나라는 어디서 어떻게 배우든지 많이 아는 사람을 칭찬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학부모들은 여기에 맞추어 엄청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배우도록 요구한다. 정말 순진하고 착한 학부모님은 아이들에게 그런 억지를 요구하지 않고 잘 뛰놀고 밝고 건강하게 키워 학교에 보낸다. 학교에서는 이 10%미만의 아이들을 붙들고 교육과정대로 수업을 하노라면 나머지 90% 선행학습에 젖은 아이들은 아는 공부 한다고 마냥 논다. 할 수 없이 이 아이들에게 맞는 수준의 수업도 병행한다. 그러면 정상 아동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아이가 되고 놀란 아이와 학부모는 해결책으로 당장 학원으로 간다. 선생이 보충하겠다고 아이를 붙들면 아이는 학원차가 와서 기다린다고 급하게 떠난다. 그러나 학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아이가 수준차를 좁히기 보다는 학습의욕을 잃는 것이 태반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 형편은 조금씩 더 심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잘 따라하고 싶어 하는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그 해결책으로 학교와 교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나라에서 경쟁 일변도의 교육정책과 학교와 교사만 닦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우리 정서에 맞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가르치고 싶어 하는 교사들에게 가르칠 시간을 주고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신바람 나는 학교와 선생과 아이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해주어도 아이들을 학습 부진아로 만드는 선생은 물러가야 한다. 그 때 교사평가가 필요하고 평가는 교사의 신상문제를 전제로 해야 되는 것이다.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알면 욕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고 그 공부의 질은 당연히 양질의 공부가 된다. 나라와 사회와 학교는 좀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기본환경을 만드는데 더 투자를 하여 뛰어난 인재들이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대서양홀에서 열렸던 교육 박람회장에는 온라인 교사 공동체인 교실 밖 교사커뮤니티(교컴)에서 수업전문성 신장을 위한 2007 교컴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수업전문성 신장을 위한 세미나로 이화여대 서경혜 교수의 수업전문성 이론 연구의 최근 동향 특강과 교컴 함영기 대표의 수업전문성 신장의 새로운 방법, 온라인 지식교류의 주제 발표는 참석한 많은 교사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초등분과, 중등분과, 특수분과 등 분과별 세미나장에도 많은 교사들이 참여하여 연수의 기회를 가졌다. 요즘 큰 화두로 자리 잡은 바람직한 논술, 토론 수업의 실제에서는 주제 발표와 사례발표를 통하여 교사들의 체험과 경험을 같이 나누는 연수의 장이되었고 발표 후 토론을 통하여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고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교실 밖 교사커뮤니티는 “교컴”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수업 전문성 신장을 위한 전국 온라인 교사 공동체로 1997년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3만 5천명의 초중고 교원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교컴은 비영리 공익성을 추구하며 회원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고 있고 회원으로 가입하면 각종 교육 자료와 소식지를 공유할 수 있으며 전국 초중고 3만 5천명의 교사와 친구가 되며 각종 교육정보를 이용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한 수업연구 등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항에 대해서 교류도 가능하고 교컴에서 주관하는 각종 수련회 및 유익한 교육 현장 활동 등에도 동참이 가능하다. 어려워진 주변의 교육 환경을 교사들 스스로 개척하고 자기 개발을 꾸준히 하여 신뢰 받는 교사상을 만들어가야 하겠다. 이번 세미나에서 보여준 열정적이고 진지한 교사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나라 교육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교육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자료가 필요하십니까? 교컴에 와 보세요. 다 있습니다. 교육 현장의 모든 것을 나누고 실천합니다. 교컴에서(http://eduict.org)
날씨가 포근하다해도 역시 겨울은 겨울이다.자꾸 으시시 삭신이 움츠려들며 녹작지근해진다. 라면국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뱃속에 온기가 돌며 찬기가 저만치 물러가는 느낌이다. 세월의 바퀴가 굴러굴러 머리에 서릿발이 내렸지만 라면국물 맛은 예나 별반 다름이 없다. 라면이 몸에 나쁘니, 어쩌느니 말도 많지만 어디 라면처럼 친근하고 부담 없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 양은냄비와 김치만 있으면 금상첨화다. 중학교 때 어느 날이었으리라. 생면부지의 꼬불꼬불하게 생긴 라면을 얻어먹고 나서 이게 진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이란 것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먹을 것이 별로 없던 당시에는 라면을 얻어먹기가 힘들었지만, 라면이 차츰 쌀밥을 밀어내고 혓바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음을 하기까지는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고 본다. 엉뚱한 방향에서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의 치적이 바로 이게 아니랴 싶다. 라면의 개발과 대량 생산을 통해 만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말로만 떠돌았던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진짜 맛’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꼬불꼬불하게 작은창자를 닮은 라면발이 쪼그라든 작은창자를 구원해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라면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해가 떠도 라면, 달이 떠도 라면, 라면이 최고야라고 아무리 외쳐도 틀린 노래가 아니리라.그렇다면 라면이 없던 시절은 진짜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가히 암흑의 시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요새 아이들에게 보릿고개 이야기를 해주면 ‘그러면 라면을 먹으면 됐지’라고 조상의 어리석음을 책망한다던데 라면으로 퉁퉁 배가 불려진 요새 아이들은 보릿고개의 진실을 이해할 수 없나 보다. 햇고구마를 쪄먹었다. 라면이 없던 그 암흑세월을 밝혀준 촛불이 그게 바로 고구마란 생각이 든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동생이랑 궁시렁궁시렁거리며 한허리 베어내어도 문풍지를 타고 부엉이 소리만 들려 올 뿐 긴긴밤은 마냥 지속되었다. 엉성하게 얻어먹은 저녁인지라 허기가 밀려왔다. 곧장 고구마 뒤주로 달려가 손을 집어넣어 잡히는 대로 고구마를 꺼냈다. 부억칼로 껍질을 깎아서 길쭉하게 잘라먹었다. 심심하면 소금을 찍어 먹기도 했다. 요새로 말하면 사과나 배를 깎아 먹는 격이었다. 안방의 절반은 고구마 뒤주가 점령하고 있었다. 안방만이 고구마차지가 아니었다. 밥그릇마다 고구마가 박혀 있었다. 밥에 웬 고구마가 이렇게 많으냐고 짜증을 내보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양반이었다. 점심밥이나 저녁밥에는 멀겋게 고구마를 으깬 국이 식사로 차려졌다. 이름하여 국밥이었는데 숟가락을 휘저으면 쌀알들이 춤을 추고 돌아다녔다. 무엇을 원망하랴! 그나마도 고구마 있었기에 그렇게라도 끼니를 때우고 생명을 유지한 것이다. 어디를 쏘다니다가 들어와서 배고픔을 호소하면 찐고구마를 내밀었다. 간식이다. 고구마는 식으면 식은 대로 맛이 있었다. 화롯불에 구워서 먹기도 했다. 고구마를 떡반대기처럼 얇게 자르거나 동그랗게 잘라 부젓가락을 걸쳐놓고 구으면 딱딱말랑하게 익은 표면이 쫀득쫀득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당시에는 외양간에 소에게 쇠죽을 끓여 주었다. 쇠죽을 쑤고 난 후 아궁이에는 화려하게 불잉걸이 타고 있었다. 불잉걸 속에 커다란 고구마를 묻었다가 꺼내기도 했다. 워낙 센 불이라 고구마가 새까맣데 타기 일쑤였다. 부지깽이로 숯덩이로 변한 껍질을 두들겨 패면 노릇노릇하게 익은 속이 드러났다. 후후 불며 껍질을 까먹었다. 시꺼멓게 깜장칠을 한 상대방의 얼굴이 달콤함을 더해 주었다. 겨울날 마당에 눈이 수북하게 쌓인 날이면 고구마를 눈더미 속에 파묻었다가 얼려서 먹기도 했다. 고구마로 아이스케키와도 같은 것을 만들어 먹은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고구마의 추억은 가을 들녘길이었다. 그때쯤이면 학교에서 운동회 연습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 올 때면 출출한 정도가 아니었다. 신작로의 모래알들이 밥알로 보였다. 그 때도 고구마를 먹었다. 지천에 깔린 게 고구마밭이다. 임자가 보이지 않으면 아무밭이나 들어가 고랑을 꼬챙이로 후벼팠다. 같은 값이면 잘 생긴 놈을 골라 풀밭에 비비면 말끔하게 흙이 털렸다. 우둑우둑 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랬다. 물론 100% 성공은 아니었다. 성깔이 고약스런 밭주인은 몰래 숨어서 망을 보고 있다가 고구마 서리범을 잡아 족치기도 했다. 그런저런 숨바꼭질 속에서 이렇게 패러디한 시조를 읊기도 했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 남의 고구마밭에 홀로 앉아/ 큰고구마 옆에 차고 작은고구마 먹던 차에/ 어디서 네이놈! 하는 소리에 남의 애를 끓나니// 순박한 동심은 남의 것을 서리한 죄책감과 불안감을 이렇게 달랬나 보다. 이렇게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고구마는 육신의 생명을 이끌어준 등불임에 틀림없다.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배에 지방질이 쌓여 성인병이 만연한다는 요새는 다이어트나 변비를 치료하는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고구마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덩이뿌리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인지 요새 고구마는 별미다. 백화점에 가보면 고구마 몇 개 본지에 집어넣으면 만원이 넘을 정도로 값이 나간다. 시쳇말로 고구마가 폼 좀 재고 있다는 느낌이다. 온갖 구박과 천대를 무릅쓰고서 대체 식량으로서 무한한 세월을 살아온 고구마가 아니더냐. 그래, 고구마야 폼 좀 겁나게 잡아보려므나! 보릿고개나 똥배고개나 한결같이 우리 곁에 있는 고구마가 얼마나 친근하고 고맙더냐. 생김새는 못생겼지만 조신하고 마음이 따뜻한 조강지처이자 어쩐지 훈훈한 훈기를 느낄 수 있는 고구마다. 조선시대 영조 때 일본 대마도에서 씨고구마를 얻어와 부산동해와 제주도에 처음 심어 전파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이것 또한 영조의 최대의 치적이며 역대 왕의 치적 중에도 최고가 아닐까 싶다. 인체의 위를 닮은 고구마는 진정으로 굶주린 위를 구원해준 만백성의 양식이 아니었을까. 라면이 은이라면 고구마는 금이나 다이아몬드라는 생각도 든다.
겨울에는 사람 수가 곱빼기로 늘어나기도 했다. 눈사람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널린 눈사람은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눈사람과 함께 웃기도 하고 정을 주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하였다. 겨울아이들은 싸움을 해서 행복했다. 눈싸움을 했다.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고샅으로 쏘다니며 눈싸움을 하고, 그러다가 편을 갈라서 작전을 세우고 계략을 짜기도 했다. 고샅 돌담틈새에 다량의 눈을 뭉쳐서 숨겨두고서 적을 유인하여 박살을 내기도 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재갈량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승전보를 올리며 얼마나 통쾌하게 웃었는지 모른다. 겨울 아이들은 힘껏 때리면서 놀았다. 팽이치기였다. 힘껏 때리고 내리치다가 상대방 팽이에게 싸움을 걸어 팽이를 몰아부쳤다. 이기면 환호를 질렀지만 패하면은 더 성능 좋은 팽이를 구하느라 갖은 애를 썼고, 여의치 않으면 직접 팽이를 깍아쓰기도 하였다. 겨울아이들은 딱딱 소리를 내며 양지바른 곳에 모여서 딱지치기를 하였다. 손때 묻은 딱지에 흙때까지 다닥다닥 붙은 딱지를 들고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가져가면 어머니는 야단을 쳐댔다. 그렇지만 딱지를 신주단지 모시듯 잘 보관했다. 겨울아이들은 연을 날렸다. 하늘 높이 점이 될 때 까지 연을 날리다가 연싸움을 하기도 했다. 싸움에서 진 내 연이 허공에 묻혀 버리면 다시 집에 와서 연을 만들었고 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사금파리를 깨트려 가루를 만들었다. 연 줄에 풀을 먹이고 사금파리를 붙여 싸움터로 나갔다. 그 때 그렇게 재미있게 날리며 놀던 연도 이상하게 정월 대보름만 되면 달집태우기를 할 때 모조리 태워버렸다. 너무도 아까웠지만 모두들 태우니까 나도 할 수 없이 태웠다. 그 때는 눈도 많이 내렸다. 비닐부대만 있으면 온세상이 눈썰매장이었다. 대나무로 스키를 만들어 아무대고 스키를 탔다. 여기저기 널린 얼음 빙판은 썰매의 천국이었다. 앉은뱅이 썰매부터 외날썰매도 타고.... 그러고 보니 겨울방학은 싸우고 때리며 눈깜작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지금 아이들은 뭘 하면서 겨울을 지내는지 궁금하다. 올 겨울에는 눈싸움은커녕 눈구경도 할 수 없으니 참으로 삭막하기도 하다. 그러니 눈사람 구경도 할 수 없고 말이다. 눈사람은 눈이 안오니까 당연히 없다고 치자.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길거리에도 그렇고 아파트놀이터에도 그렇고 심지어 지하철을 타고 아이들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방에 꼭꼭 박혀 독서만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컴퓨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여러가지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알찬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더라도 자연과 숨쉬고 비비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리워진다. 때마침 오늘은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고 진짜 창밖으로 눈발이 보인다. 재발 눈이 많이 내려서 행복한 겨울아이들, 그 아이들을 위한 겨울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