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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가끔 그것이 무색해지는 ‘남용’ 내지 ‘전횡’을 보곤 한다. “KT전무 된 39세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 ‘낙하산 논란’”도 그중 하나이다. 원칙대로라면 거대기업 KT에 39세의 새파란 전무가 ‘탄생’될 리 없다. 그래서 KT 임직원들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하반기 들어 강조한 공정사회라면 그런 일이 없어야 맞다. 또 그런 기회가 주어졌어도 당사자는 대통령에게 누가 안되게 고사해야 맞다. 그런데 낙하산 인사에는 보수ㆍ진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예컨대 진보교육감으로 분류되는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의 인사내역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실감난다. 취임 직후부터 최근의 기획혁신담당관 인사까지 지방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급기야 전라북도 교육청의 무원칙 인사는 도의회 교육의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기실 전라북도 교육감의 인사를 되돌아보면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헌법학자 김승환’은 어디로 가고 인사전횡을 일삼는 교육감만 있는지, 그를 찍어준 유권자들에게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일례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기획혁신담당관 인사를 살펴보자. 바꾸려면 누가 봐도 1월 정기인사를 통해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특별한 잘못이 없는 고위직 공무원을 45일 동안이나 대기 발령시키면서까지 기획혁신담당관을 바꾸었다. 온당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소위 코드인사를 탓할 생각은 없다. 어떤 면에선 ‘끼리끼리’가 조직의 활성화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칙을 깬 데 있다. 원칙을 깨는 부적절 인사는 부메랑이 되어 교육감을 난처하게 할 수도 있다. 가령 9월 1일자로 부임한 어느 교장이 맘에 안든다며 교무부장, 연구부장을 교체해버렸다. 그로 인한 교사의 불복종과 반목 등 학교내 혼란이 생긴다면 그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그런 사태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그렇듯 원칙 깨는 인사를 하라고 유권자들이 표를 준 건 아니라는 점이다. 설령 밉보이거나 코드가 맞지 않더라도 원칙 깨는 인사는 안된다. 그런 인사는 고유권한이 아니다. 전횡일 뿐이다. 지금 각 학교에서는 교원정기인사를 위한 내신서 작성 등 작업이 진행중이다. 필자가 알기에 ‘대체적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북교육청 교원인사이다. 원칙에 따르는 교원들이 위화감과 함께 상실감을 느낄 그런 인사가 되어선 안된다. 내가 보기에 지난 선거에서 전라북도 교육감은 후보자중 ‘오리지널 진보’라는 브랜드로 당선되었다. 더 이상 그런 구설로 인해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나저나 과연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낙하산 인사 등 전횡 없는 공정사회는 요원한 일인가?
어느덧 교원 인사철이 다가왔다. 각급 학교 교감 및 교무부장 회의 등 내년 3월 1일자 발령을 위한 일종의 사전정지작업이 시작된 것. ‘초빙교사제’도 그중 하나이다. 먼저 초빙교사제는 “공립 중등학교에서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가 원하는 자를 당해 학교의 교사로 초빙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해부터 시행된 초빙교사제는 학교장 권한 확대라는 측면도 있는데, 중학교와 전문계고에서 운영한다. 일반계고와 한국전통문화고, 전북외국어고, 전북과학고, 전북체육중·고, 국립학교는 소위 ‘학교장동의내신제’를 실시한다. 학교장동의내신제 역시 교장이 교사를 사전에 뽑아 쓰는 것은 초빙교사제와 같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 보면 무늬뿐인 초빙교사제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전주공업고등학교의 초빙 공고에는 국어 교사 2명이 포함되어 있다. 학교신문·교지제작, 문예지도 유경험자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 응모하려면 순환전보자(동일 지역이나 학교 6년 근무자를 말함.) 내지 감축대상자여야 한다. 초빙교사제에 예외조항이 있긴 하다. 공모제 교장 학교, 개방형 자율학교, 마이스터고 같은 ‘특별학교’는 현임교 1년 이상 근속자면 초빙할 수 있다. 단, 전주지역 및 읍·면 지역 공모제 교장 학교는 현임교 3년 이상 근속자를 초빙해야 한다. 이에 비해 학교장동의내신제 학교에서는 초빙교사제와 같은 제한이 없다. 현임교 1년 이상 근무한 교사는 누구나 학교장동의내신 학교로 갈 수 있다. 같은 초빙교사인데도 전문계고와 일반고, 고등학교와 중학교 차별이 엄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차별은 헌법 제15조가 보장한 ‘선택된 직업을 자유롭게 수행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현임교 근무 2년 근무자의 경우 학교장동의내신제의 일반계고는 가능한데 초빙교사제에 의한 전문계고 전입은 아예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차별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도교육청이 마련한 인사관리기준(전북교육신문, 2010.11.26참조)에 보면 일반계고 학교장동의내신 전보도 전문계고 초빙교사제와 같이 순환전보 및 감축대상자로 자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일반계고 학교장동의내신의 경우 3~4월이면 전입자가 사실상 내정되는 현실이 그것이다. 12월이 되어서야 전입 여부를 알 수 있는 전문계고와 비교해볼 때 그야말로 ‘개 같은’ 차별이라 할 수 있다. 그 점은 전문계고의 초빙교사제가 빛 좋은 개살구요, 생색내기용에 불과할 뿐인 이유이기도 하다. 초빙교사제가 무늬뿐인 이유는 또 있다. 국어과의 경우 다른 지역 만기의 순환전보 대상자라면 전주 전입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가만히 있어도 전주로 갈 수 있는데, 누가 일부러 무거운 짐을 떠 안은 채 초빙교사에 응하겠느냐는 것이다.(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학교신문, 교지제작, 문예지도 등은 국어과 업무인데도 대부분 국어선생이 맡길 꺼려하는 ‘3D업종’에 속한다.) 전주로의 전입희망자 난립 등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순환전보 대상자’ 따위 제한을 두는 것으로 이해가 되긴 하지만, 무늬뿐인 초빙교사제는 폐지해야 맞다. 실효성 없는 제도는 행정력 낭비일 뿐이다. 전주공업고등학교의 국어교사 초빙에 1명의 지원자도 없는 것이 단적인 이유이다. 일선 학교에 번거로움을 주고, 교사에겐 위화감마저 조장하는 초빙교사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2일 교원능력개발평가(이하 교원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1년도 교원평가 개선 모형을 내놓았다. 전국적으로 올해 처음 실시된 교원평가는 한국교총이 그간 제기했던 많은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학부모 만족도조사의 경우 참여율이 54%에 그치고, ‘제2의 학생만족도조사’로 전락하는 등 신뢰성에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료교원평가와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 결과의 간격차도 드러났다. 동료교원평가 조차도 관찰평가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교사 간에도 평가결과를 놓고 분란이 발생되는 등 상호 불신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교과부가 발표한 개선 모형에는 교총이 현장의견을 대변하여 제기한 많은 개선 요구사항을 일정부분 반영한 노력은 보인다. 교원평가 결과를 인사․보수에 연계하지 않고 전문성 신장에 주안점을 두도록 한 점, 학부모 만족도조사는 개별교원 모두에게 조사하던 방식을 교장·교감, 초등담임만 필수로 하고 나머지 교사에 대해서는 희망하는 학부모만 조사에 참여하도록 개선한 점, 동료교원평가는 전문성 확보를 위해 자기진단 자료를 제출하도록 권장하고 학생 만족도조사에서 필요시 교원별로 적정규모의 학급을 표집해 조사할 수 있게 한 점이 그렇다. 또 교원평가 운영 전반에 있어 단위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등 기존 정책방향을 선회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교원평가가 학교 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평가자체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교사 스스로가 작성하는 자기진단기술서가 권고수준에 그친 것과 동료교원평가의 실효성 여부는 앞으로 검증되고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학교현장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평가결과를 바로 활용하고, 특히 두해 연속 낮은 평가결과를 받은 교원에 대해 집합연수를 시키겠다는 계획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는 평가의 객관성, 공정성 확보와 더불어 제도의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교원평가의 본래 목표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운영을 통해 교원들이 자발적으로 전문성을 계발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에 있음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교원평가를 교원의 학습공동체화 유도의 기제로 활용할 것을 교총이 거듭 촉구하는 이유다.
“교육은 반드시 시작의 기준점과 우선순위를 먼저 정하고변화의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구성원들의 합의로 학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세밑이다. 하지만 사람들 손에 새 달력이 들리고, 지인과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으며, 동네 음반가게에서 캐럴이 들려오던 그러한 풍경은 더 이상 찾을 길 없다.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등 최첨단 태블릿 PC의 등장으로 지하철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격하게(?) 학습 중이다. 동네 모퉁이 길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마음을 덥혔던 기억은 이제 정말 아스라한 지난날의 추억이 되어가나 보다. 엊저녁의 뉴스 화면에는 명동 거리의 구세군 자선냄비와 함께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 지역의 크리스마스트리가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우리 교육계가 대한민국의 팔레스타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한해 교육계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교원능력개발 평가’ ‘체벌 금지’ ‘학생인권조례제정’ ‘무상급식’ 등 큰 틀의 사안만이 아니라 작은 사안 하나 하나가 도처에서 갈등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1학기말 연구부장 자격으로 받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의 자발적 결석자 처리방식에 대한, 완전히 상반되는 공문지시는 교육계의 극명한 혼란상을 시사해준 사건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를 교과부와 시도교육청 사이의 단순 엇박자로만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구성원을 향한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마저도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관계의 금도(襟度)는 물론이요, 맹자가 말하던 ‘불인지심(不忍之心)’조차도 기대 난망이다. 쏟아지는 요구와 날카로운 지시만이 현장 교사들의 귀를 뚫고 있다. 공자가 말하던 ‘정도(正道)’는 사라지고 희한한 ‘권도(權道)’가 도처에 난무하고 있다. 교육계 수장은 경제학자요, 지배하고 지시하는 권력 또한 경제력이다. 그러기에 국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제논리가 현장에서 횡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연초 언론의 한 특집프로에서 다뤘던 사교육 학원계의 훈수는 나의 인내심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고야 말았다. 멀쩡한 지상파 공영방송에서 ‘사교육과 학교경쟁력(정확한 프로그램명은 기억나지 않는다)’이라는 제하에 EBS 강사를 하다 현재 스타강사로 통하노라는 전직 교사출신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그들은 수업을 위해 기울인 자신의 큰 노력으로 인해 강남 학원가에서 일타가 되었노라고 자뻑했다. 거기까진 참고 들어줄 만했다. 하지만 교사시절 동료들의 근거 없는 시샘에 시달렸다며, '교사들은 나만큼 경쟁력을 갖춰 학원 수강생도 감동할 만한 수업을 하라'는 어설픈 충고만큼은 묵과할 수 없었다. 개인적 차원에서라도 그들을 조금은 안다. 일단 이들의 EBS 강사 활동은 혹여 학교에 도움이 될까 하는 학교 측의 배려와 호의에 크게 힘입었음을 부인치 못할게다. 그들은 유명세를 최대한 상품화해, 예정된 수순대로 학원가로 옮긴 위인들이다. 나는 안다. 그들이 학교 측의 선의와 배려를 어떻게 역동작의 업어치기로 활용하였는지를. 학교에서는 동료들에게 어떤 평판을 얻었는지를. 그리고 학원가에 진출해 어떤 모양새로 단련되었는지를. 나의 이러한 말들이 학원 강사 그룹이나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폄훼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 하고자 하는 말의 기본적 말귀라도 알아들었으니까. 학원 강사가 언론에 나와 교사들을 조롱하듯이 질타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심상치 않다. 언론의 호들갑이 오히려 사교육 강사를 선전해주고 있는 역기능 정도를 한가롭게 지적하고자 함이 아니다. 학교교육이 사교육의 상행위와 단순 비교되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날 교사는 지식전달의 기능인으로 쉽사리 치부되고 말았다. 학원 강사가 언론에 나와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고 교사 전체를 싸잡아 질타해도 별반 어색하지 않게끔 세상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런 시대의 어처구니없는 변화에 대해 깊게 그리고 통렬하게 분노한다. 세상이 변하니 학교도 변해야 한단다. 맞다. 학생들도 변했으니 학교의 전달 방식도 변해야 할게다. 학교와 교사가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단다. 맞다. 교사들은 교과에 대해 전문성을 가져야 하고, 여러 면에서 자기개발 노력을 기울여야 할게다. 여전히 문제교사가 현장에 있다고 한다. 맞다. 그들은 대오각성하고 정신 차려야 할게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변화의 시작점과 방향성이다. 교육은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시행착오를 거쳐 더 큰 결과물을 창출하는 스티브 잡스식의 경영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러기에 교육은 반드시 시작의 기준점과 우선순위를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변화의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느려도 된다. 더불어 변화의 시작은 학교 밖에서 인위적으로 던져질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합의로 학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게 근본이다. ‘근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本立而道生)’고 공자는 말했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소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피해 갈 수 있다. 한 해가 간다. 우리 모두가 내년에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으려나.
국,영,수 증가시수가3년간 102시간 이상이 되면 안된다. 서울시 교육청의 발표이다. 제대로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0%증감편성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교에서의 혼란과 갈등이 여러곳에서 있었다. 어쩔수 없이 대폭 증가하여 편성한 학교들도 있었을 것이다. 증감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학교장이다. 학교장의 의지에 따라 구성원들이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학교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시교육청에서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시교육청에서 브레이크를 걸때까지 가지 말았어야 옳다. 국,영,수 중심의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번 지적했었다. 우리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증가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편이 아니었다. 대체로 고르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물론 증감편성에 찬성하는 의견도 많았지만,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는 의견보다는 적었다. 이웃학교는 학교장의 의지가 워낙에 강해서 국,영,수를 더 편성했다고 한다. 그래도 20%까지는 아니었다. 무리하게 증가시킨다는 것은 교사들에게도 어려움을 주게 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최소한 서울시내 학교에서는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무리하게 증가해서 편성한 학교는 교육과정을 재검토 하도록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학교는 아니겠지만 정상궤도로 돌려 놓게 되면 어느정도 정상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런 증가편성은 교육과정의 운영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들이 교과서를 재구성해서 가르칠 수 있지만 갑자기 늘어난 시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고민되어야 한다. 일부 시간만 증가시켰다고 해도 교사들에게 다가오는 부담은 클 수 밖에 없다. 배우는 학생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시간을 더 편성하게 되면 배우는 양이 많아짐은 물론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내용도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관심사는 앞으로 어떤 형태로 교육과정이 또 바뀔 것인가에 있다. 2009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된 후로 조금씩 교육과정이 변해왔다. 선택과목중의 일부과목은 8개 과목에서 제외한다거나, 체육교과는 3년간 편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앞으로 뭔가가 또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그동안의 일부 변화가 학교에 별다는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학교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뭔가가 나올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 그만큼 2009개정교육과정 편성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학교구성원들과 학생, 학부모의 설문결과를 토대로 교육과정을 편성했지만 지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아직도 문제가 여러곳에 발견된다. 물론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앞으로 운영과정에서 직접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2009개정교육과정의 고시내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아마도 전국에 수많은 학교에서 필자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학교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금이 더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자꾸 학교를 어렵게 하지말고 학생과 교사들모두에게 도움될 수 있도록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기대만큼 결과가 따라올지 알 수 없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교육과정을보니 그래도 기대가 된다.
선생님들만의 내신을 만들어 주세요. 어느 신문에서 학교에 대한 것을 특집기사로 다룬 것을 보았다. 제목은 ‘학교가 졸고 있다’였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대다수가 졸고 있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필자의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지역에서 좋은 학교로 평가받고 있지만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어느 학교도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학생들을 깨우시면 또 잔다. 그렇다고 수업을 하자니 적게는 2~3명 많게는 2/3이 상이 잠을 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깨어 있는데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까지 더하면 더 많아진다. 이것이 필자가 바라보았던 학교의 모습 중 일부이다. 솔찍히 말해서 선생님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아무리 민주화가 되었어도 학생들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시늉이라도 할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선생님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학생의 입장도 알아야 했다. 왜 학교에서 수업을 듣지 않고 자는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았다. ‘학교 공부를 집에서 새벽까지 하느라 학교에서 잤다’, ‘학원 수업을 열심히 듣느라 학교에서 잤다.’, ‘이미 1년 전에 혹은 1학기 전에 배운 것이라 더 이상 배울게 못된다.’, ‘그냥 듣기 싫다.’ 등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그래도 공부에 뜻이 없는 학생들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절반 가까이는 소위 상위권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선생님께서도 학생들을 무시 할 수는 없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하는 선생님이나 자습 안줘서 짜증내는 일부 학생들이나 다들 서로의 입장 차이에 지치고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사제 간의 골만 깊어간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 놓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대안을 해 보고자 한다. ‘학교 선생님만의 내신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 말이란 선생님의 수업을 무조건 들어야만 내신을 잘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들께서는 이 말을 들은 즉시 비웃으며 ‘누가 그것을 몰라서 안하나 해도 안하니까 그렇지.’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선생님들 대다수는 해당과목의 문제지와 자습서의 일부를 참고 하신다. 문제 유형도 거기서 거기이다. 학생들도 선생님 수업대신에 따로 공부하면 맞출 수 있다. 발전이 없고 창의성이 없다. 새로운 것, 새로운 형식 오직 해당 학교 선생님의 수업만이 그 학교의 답이 될 수 있는 내신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선생님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본다. 선생님!, 공부를 안 하시나요?, 아니면 못 하시나요? 모든 선생님의 해당사항은 아니지만 ‘선생님은 해당과목의 공부를 더 하셔야 한다.’ 학원과 학교가 서로 견제 할 때 학원의 공통된 주장은 ‘실력도 없으면서 학원을 죽인다.’, ‘실력이 있으니까 학원들이 돈을 많이 벌고 학생들이 몰린다.’, 학원강사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학교선생은 소위 철밥통이라서 게으르다'라고 비판한다. 학교선생님이 ‘학교에서 공문처리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 수업준비에다가 투자를 하냐.’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 말도 학교에서나 먹히지 학원에서는 씨도 먹히지 않는다. 일부 학원에서는 ‘변명이다.’, ‘학교수업이 주축이 되지 않고 공문이 주축이 되는 주객전도이다.’라고 말하며 비판한다. 학생도 ‘학교선생님이 실력이 좋다면 학원에 가지 않는다’라고 한다. 만일 이렇듯 학교 선생님의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영원히 학원과 학생의 쓴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수업준비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실 것을 당부드린다. 이렇게만 한다면 학생들도 더 이상 선생님의 수업을 졸고 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 공교육을 살리는 것이 아닐까 하며 학생된 입장으로서 참고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NSCI라? 신문을 보니 낯선 단어가 눈에 들어 온다. NCSI는 국가고객만족지수(National Customer Satisfaction Index)다.국내외에서 생산, 국내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는 제품 및 서비스 품질에 대해 해당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고 이 제품과 관련된 서비스를 받아 본 고객이 직접 평가한 만족수준의 정도를 모델링에 근거하여 측정, 계량화한 지표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이 교육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교육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균관대학교의 아래의 예를살펴 본다. 성균관대학교는 올해 도서관 서고에 있던 서적 160만여 권 가운데 3만권가량을 뺐다. 몇 년간 교수나 학생들이 한 번도 대출해가지 않은 책들이었다. 대신 그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새 책을 채워넣었다. 학교 관계자는 "책을 빌려가는 수요자의 요구 사항을 파악해 책을 다시 배치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가 올해 국가고객만족도(NCSI) 사립대학교 부문에서 4년째 정상을 차지한 비결은 도서관 서적 관리에서 드러나듯, 수요자를 가장 우선에 두는 학교 운영이다.성균관대는 2005년 학생들의 불만족 사항을 과학적으로 측정, 분석해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6시그마 기법을 국내 대학 최초로 도입했다고 한다. 필자의 자녀 고등학교 3학년 두 명이 올해 대학교에 합격했다. 아들은 성균관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계열에 수시 1차로 합격했고 딸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수시 2차 일반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어제 즐거운 마음으로 등록 예치금과 수업료 일부를 납부했다. 처음으로 대학 학부모가 되는 것이다. 두 대학의 합격과정을 지켜보면서 고객만족도를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성대는 합격자를 조회하는데 학생에게 감동을 준다. 배경화면과 축하글과 흘러나오는 음악이 하나의 작품이다. 그 동안의 고생을 위로하고 성균관인이된 것에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 뿐 아니다. 합격 발표 하루 전날 합격통지서를 인터넷으로 출력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 총장 명의로 된 합격통지서와 총장의 축하 편지가 상장 하드표지에 포장이 되어 택배로 도착하였다.축하 시기와 방법도 가히 극적이다. 다만 입학생 등록금 전화 문의에 대한 해당 부서의 응대는 감동 수준이 아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합격자 발표 과정을 보니 성균관대학교를 따라 잡으려면 거리감이 느껴진다. 고객 감동은 찾기 어렵고합격자 유의사항 등의 안내에 따라 행정사항 위주로 되어 있다. 아직 합격통지서 택배는 받지 못하였다. 필자는 자녀가입학한 두 대학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학부모로서 학생을 고객으로 대하는 일면을 살펴봄으로서학교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2010학년도국가고객만족도지수를 보면 서강대는 성균관대에 2점 뒤진 74점으로 작년 4위에서 2위에 올랐다. 이어 이화여대(72점)가 3위(작년 4위), 고려대와 경희대(각각 69점)가 공동 4위를 차지했다. 고려대는 작년 9위였고 경희대는 작년 순위가 2위였다.연세대와 숙명여대(각각 66점)가 공동 6위(작년에도 공동 6위)를 차지했다. 국가고객만족지수 1위,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우리 학교도 학생과 학부모가 항상 만족도를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건 기업이건 고객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교원평가 결과가 나왔다. 물론 교원들은 모두 자기평가 결과를 확인했지만 그 결과는 학생들의 성적만큼이나 관심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런대로 잘 평가 받은 교원들은 괜찮지만 생각보다 나쁘게 평가 받은 교원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사회일각에선 교원 상호평가의 높은 점수를 놓고 ‘자기식구 감싸기 등’ 말이 많다. 학부모 들은 평가당시에는 평가에 관심이 별로 없고 “잘 모르는 상항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등 볼멘소리였으나 이젠 그 결과를 놓고 다들 설왕설래하고 있다. 교원은 교원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모두가 불만족하다는 표정이다. 교과부는 이번 교원평가에서 재교육 심사대상으로 1056명의 교사를 선정했다. 이는 전체 교사 35만명 가운데 0.3% 정도이지만 당사자는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었는데’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평가는 역시 평가의 기능을 했다. ‘미흡하다’는 점수를 받은 단기 연수 대상자가 920명이며, 이보다 점수가 더 낮은 장기연수 대상자는 13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연수 대상에는 16명의 교장, 교감도포함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 연수를 받는 교원이 내년 평가 때도 장기 연수자로 재선정되면 집합연수를 받게 돼 수업에서 아예 배제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교원정책에서 초유의 사태가 예견된다. 반면 우수한 성적을 받은 교사 500명에게는 최대 1년의 연구년(안식년)이 주어진다는 당근 정책도 제시하였다. 조용하던 교직에 새로운 회오리바람이 일고 있다. 교직이 평생직장이라는 말도 곧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그러므로 이젠 교원도 새로운 교육정보와 교육이론을 습득하고 교수-학습방법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교단을 지킬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연찬과 연수로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 교원은 다른 직업인들과 든 특성 중의 하나가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으로 교육의 전문가로서 자질을 함양하여 훌륭한 스승의 교육역량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교원평가제는 현행 교원에 대한 평가가 승진에 초점이 있어 재직 중 교원의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는 비판에 따라 도입하게 되었고,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기진단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과부는 이번에 처음 계획과는 달리 두 번이상 장기연수 대상자로 선정되면 사실상 퇴출될 가능성도 있음도 예고했다. 이 같은 예상은 내년도 장기연수 대상자로 된다면 수업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문제는 교원평가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다시 수면위로 나타나 교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교총이나 전교조가 모두 평가방식의 객관성을 지적하고 있어 교원평가도 그리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원도 예외일 수는 없고 어떤 식이로든 평가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교육 선진국들의 대세이다. 피터 드러커는 자기계발을 성과를 올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자기계발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사상이나 인성 따위를 포함한 슬기나 재주 등을 통하여 일깨운다는 뜻이다. 즉, 인위적인 교육이나 학습을 통해 어떤 능력이나 솜씨 등을 향상시킨다는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을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이유는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대한 불안과 다양한 직업 환경에 적응, 그리고 자신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불확실한 미래의 삶을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잠재능력을 계발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이 자기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잠재능력을 얼마나 깨우쳐 계발하여 활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성공적인 삶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교원들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흥미, 특성, 소질 및 적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계발하여 교직에 활용하는 것이 성공적인 교원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요인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리석으며 부지런한 ‘최악’의 지도자 안돼야 매일매일 나를 돌아보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 날마다 반복되는 하루인데 일 년이라는 단위를 만들어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이켜보며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고, 하룻밤이 지나 새해가 되면 다시 희망 속에서 일 년을 설계하도록 기회를 준 인류의 조상께 고마움을 느끼는 시점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늘 선생님을 존경했었는데, 중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커서 교사는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소년이 교사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면서 연말이면 나를 돌아다본다. 만일 내가 아니었더라면 더 나은 선생님이 내 대신 학생들 앞에 서서 아이들이 더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돕지는 않았을까? 그러한 반성이 나를 더욱 작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끝없이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도 되었던 것 같다. 최근 마주친 말 중에 100세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일본 성누가 국제병원의 히노하라 시게아키 이사장 말이 생각난다. “매년 1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한 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정해서 행동해 보세요. 오히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후회하지 말고 미리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2년전 별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총장이 되어 내가 생각한 것은 오로지 주어진 4년이 지난 후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는 것뿐이었다. 히노하라의 말에 따르면 나는 4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한 뒤 일을 해왔던 것 같다. 내가 한 시간 더 열심히 일하면 대학 구성원 전체가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으나 아직까지 내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최고의 지도자는 명석하면서 게으른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경지를 감히 넘볼 수 있는 사람은 못된다. 다만 어리석으면서 부지런한 최악의 지도자는 아닌지 늘 돌아보고 있다. 내 능력에 이 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여 이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내 분에 넘치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급여가 너무 낮다거나 교직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다음과 같은 말이 혀끝을 맴돌지만 나를 돌이켜보며 그냥 삼킨다. “자네의 역량을 가지고 지금 쏟고 있는 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교단을 떠나지 않고 아이들 앞에 서 있다면 자네를 만나는 학생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네.” 교수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하던 첫 날 나는 가상의 퇴임사를 썼다. 그 퇴임사에서 32년간의 삶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내 교수 생활 계획을 수립했었다. 교대를 내가 머물고 싶은 땅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내가 떠나든지 하겠다고 공언하며 교대 근무 4년 만에 교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교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책을 쓰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30대 젊은 교수의 객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나와의 약속이 내가 총장직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학교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조금 버티다가 다른 학교로 가면되지 하면서 참고 있는 제자들에게 종종 당부한다. 그렇게 떠나면 자신의 뒤를 이어 그 학교로 전근오게 될 또 다른 내가 유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고,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전근해가는 그 학교를 떠난 교사도 그러한 생각으로 학교를 옮겨갔을 가능성 또한 아주 높아진다는 것을 명심해달라고. 나는 총장이 되자마자 4년이면 돌아갈 평교수 생활 적응훈련에 돌입했다. 누구 말처럼 내 직업은 교수이고 다만 4년짜리 임시직 총장으로 선출되었을 뿐임을 명심하며 주어진 특혜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또한 돌이켜보니 지난 2년 나도 모르게 서서히 물들어간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사형선고를 받고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리고 교직 또한 정년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순간이 닥칠 때까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지 않나 싶다. 비록 이렇게 불완전한 것이 인간이지만 끝없이 노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에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으리라! 새해에는 더 큰 소망을 해본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잠자리에 들 때마다 설령 내일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후회 없게 살았나를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해보자.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매일매일 나를 돌아보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보자. 나를 돌이켜 보는 글을 쓸 때면 늘 조심이 된다. 자칫 잘못하면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전라도 말로 소위 ‘까치 배깝닥같은 소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겠다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공언함으로써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사람과 같은 심정으로 한해를 보내며 또다시 모험을 해본다.
서울형 혁신학교가 내년부터 등장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울형혁신학교가 생각보다 관심이 적었지만 정식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교육계의 관심이 높긴 하지만 아직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에 추가지정을 하게되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라면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사실 서울형혁신학교는 그동안 지정되었던 자율학교와 자원학교, 교육복지학교와 유사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교육여건이 좋지않은 학교에 집중투자한다는 것과 교장을 공모제를 통해 임용하는 것, 자율학교의 경우는 교사들을 초빙해 올 수 있는 비율이 일반학교에 비해 높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다른 학교보다 예산을 많이 투자하여 학교교육을 혁신하겠다는 취지도 공통점에 해당된다. 이미 수년전부터 이어져왔던 '좋은학교 자원학교'나 자율학교가 혁신학교와 같은 형태인 것이다. 문제는 이들 학교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이들학교에 대한 예산의 집중지원으로 학교가 어느정도 제 궤도에 올랐는지 학생들의 인성이 변했는지, 학력이 신장되었는지 다각도로 분석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실제로 이들학교에 대한 분석을 통해 혁신학교를 추진한다면 백번 찬성하고 지지한다. 또한 이들 학교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나타났다면 더욱더 찬성한다. 그런데 관련 연구나 분석을 거의 접해본 경험이 없다. 물론 필자의 무관심으로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인근에 있는 자원학교를 살펴보면 어느정도 답이 나온다는데 있다. 인근의 학교에서 최근에 많은 변화를 이룬 학교를 찾기 쉽지 않다. 예산운용을 잘못한 것인지, 원래 그 지역의 학생들 수준이 낮기 때문인지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다른 학교보다 예산을 더 지원하여 여건 개선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혁신학교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이 자원학교라고 볼때 혁신학교의 앞날도 결코 밝다고만 볼 수 없다. 의욕에 비해 결과가 시원찮게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혁신학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교육여건을 개선시켜 가고싶은 학교로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다.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교사들이 신뢰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욕만으로 되지 않는다. 의욕과 함께 해당학교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혁신학교를 더 많이 지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양적인 팽창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양적인 팽창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면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혁신학교가 몇개라는 식의 통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들 혁신학교들이 다른 학교와 어떤 차별성을 가졌는지, 그 차별성이 성공적 이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의욕적으로 출발하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그동안 어떤 처방으로도 듣지않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오전 08시 30분. 교사의 시계는 잠시의 빈틈도 없이, 쉼 없이 돌아간다. 우선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이 모두 등교했는지를 확인하고 일기장과 숙제를 검사한다. 한 학생이 결석이다. 무슨 일이 있는 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묻는다. 늦잠을 자서 미처 학교버스를 타지 못했다면 친절(?)하게도 자신의 승용차로 아이를 데리러 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과 수업, 방과 후 지도, 하교지도. 정신없이 하루가 가고 퇴근시간이 된다. 본교는 면소재지의 5학급 전교생 36명인 소규모 학교다. 과거에는 학생 수가 2000명이나 돼 오전 오후로 나누어 공부를 하기도 했던 학교였으나, 이젠 이농현상과 출산율 저조로 금학년도에는 1학년 입학생이 단 1명에 불과했다. 문제는 교육은 단 한명이 있든, 한 학급에 30명이 있든, 할 일은 똑같이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읍내 학교나 시내 학교처럼 교원의 수가 많으면 그 일을 여러 교사가 나누어 추진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10여 가지 이상의 일을 맡아 처리할 수밖에 없다. 교사의 본분은 학습지도와 인성교육에 있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상위 기관과 지자체에서 오는 공문의 접수번호가 12월 초 5500여건을 돌파했다. 교재연구와 학습지도에 투자해야 할 교사의 일과가 공문응신과 각종 서류 및 행사 계획을 수립하는데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과부도 교육청도 교원의 업무경감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지만 현장에서는 눈에 띄게, 몸으로 체감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잡무 경감 방안을 세우느라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실정이다. 이에 본교에서는 대안을 찾고자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았다. 첫째는 행정실에서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듀파인이 도입되면서 교사가 모든 사안을 입안, 진행하고 결재를 얻어 업무처리를 해야 한다. 행정실에서는 금전만 지출하니 교사의 업무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가중 시키고 있는 셈이다. 담당교사가 필요 사양을 행정실에 요구하면, 행정실에서 주문‧공급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둘째는 청년일자리 창출차원에서 배치되는 비정규직 인력 문제다. 방과학교 학부모 코디네이터, 전산보조, 교무보조, 과학보조 인턴교사 등을 채용하면 그들의 인력 관리 또한 교사의 업무가 된다. 정규직이 아니어서 책임이 없으므로 비중 있는 업무를 줄 수도 없다. 따라서 채용 시 전문성 고려는 물론 그분들에게도 일정 업무를 부과해 직장의 일원으로서 소속감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 교사는 인력 관리가 아니라 학생 교육을 위해 교실로 돌려 보내야 마땅하지 않은가. 셋째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교수-학습지도, 생활지도 이외의 불필요한 업무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과 실적위주 행사가 많다는 점이다. 전교생 95%이상이 학교버스를 이용해 등하교하고 있는 학교에서 굳이 교문 앞 교통지도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30여명의 학생을 인솔해, 차가 질주하는 도로에 나가, 학교폭력을 줄이자는 캠페인을 하고 사진으로 담아 실적을 보고해야 하는가? 이밖에도 지방자치 단체에서 실시하는 각종행사 및 축제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교사들의 잦은 출장도 교사와 학생 간 만남의 시간을 줄이는 한 요인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은 교육적이어야 한다. 상위 기관의 체면을 위해, 축제의 성황을 위해, 아이들을 동원하는 행사성 대회는 축소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 교사들의 바람은 하나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 온 것이지 공문 응신하러 온 것은 아니다”라는….
서울지역 자율형 사립고의 원서접수가 마감되었지만 추가모집을 해야 할 형편이다. 대거 미달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1만4백62명 정원에 1.44: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미달되지 않았지만 학교별로는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즉 26개 자율형 사립고중 한가람고등 17개교는 정원을 넘겼지만 나머지 9개교는 미달되었다. 미달학교중에서는 지원율이 매우 저조한 학교들도 있다. 다만 여학교나 공학교는 미달된 학교가 없다. 앞으로 자율형공립고의 원서가 마감되면 자율고의 미달사태는 더욱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지만 필자는 자율형 공립고는 상대적으로 미달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자율형사립고와 공립고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즉 자율형사립고는 내신성적 50%를 지원자격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자율형공립고는 내신성적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자율형사립고의 대거미달사태는 이미 예견 되었었다. 한꺼번에 많은 학교들이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의 선택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지원자격에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쉽게 지원하기 어려운 기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대학입시에서 정시보다 수시의 선발인원이 60%이상인 점을 감안한다면 자율형사립고에 쉽게 지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시가 정시보다 선발인원이 많은 반면, 내신에 의해 당락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3학생과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율고를 선택하는 이유가 대학입시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판단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내신에 의해 대학진학을 하지 않겠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내신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기에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학교들이 자율고로 전환된 점도 미달을 가져온 이유이다. 자율고로 전환된 학교 중에는 기존에 선호하는 학교들도 상당히 많지만 기존에 비선호학교였던 곳도 있다. 선호학교라면 문제가 없지만 비선호학교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율고로 전환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선호학교로 바뀔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지적은 교사와 학교시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자율고로 전환된다고 우수한 학교가 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여학교나 공학교가 미달되지 않은 것은 자율고 중에서 여학교와 공학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여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학교는 공학교 3개에 여학교 2개교가 전부이다. 상대적으로 지원율이 높아진 이유이다. 앞으로 여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학교비율을 어떻게 넓혀 갈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남여 공학교에 여학생들은 많이 지원했지만 남학생들의 지원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내신성적에서 공학교에서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불리하다는 이야기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나 싶다. 여학생들은 공학교를 선호하고 남학생들은 남학교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내신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자율고의 대거미달사태가 내년에도 계속된다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올해의 지원결과를 면밀히 분석하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자율고의 확대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고, 여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학교를 어떻게 확대해 나갈 것인지도 연구되어야 한다. 철저한 원인분석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의 종류가 다양해 지면서 선발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예전처럼 일률적으로 원서를 제출하여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과학고, 외고 등으로 대변되는 특수목적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자율형학교까지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학교들이 다양해졌다. 학교가 다양화 되면서 선발방법도 다양화 되고 있다. 단순히 성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하지 않고 학생들의 다양한 면을 보겠다는 것이 상급학교들의 생각이 아닌가 싶다. 대학도 사정이 비슷해 보인다. 내신성적과 수능성적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하였으나, 최근에 입학사정관제를 필두로 각 대학마다 적성고사를 실시하여 학생들을 선발하기도 한다. 농어촌 전형, 기회균등선발, 학교장추천, 교사추천, 가까운 지인들의 추천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전형이 있다. 이 글을 쓰기위해 대학교육협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전형유형을 살펴보니 정말로 고등학교 교사들이 진학지도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시와 대학입시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여러가지 전형중에서 추천서를 필요로 하는 전형들이 많았고 학교에 따라서도 추천서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입시에서의 추천서를 작성해 보았기에 역시 대학입시에서도 추천서를 많이 작성해야 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고등학교 교사들은 추천서 작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추천서가 입시에서 어느정도의 영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추천서를 함께 제출할 것인데 해당학생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것이 교사들이라면 추천서의 신빙성은 상당히 높을 것이다. 특목고 입시에서는 대부분 추천서를 해당학생들의 장점과 잠재력을 위주로 하여 작성한다. 대학입시에서의 추천서는 어떻게 작성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학생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성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학생에 따라서 차별적으로 작성되는 것이 추천서이다. 무조건 모든 학생들의 추천서를 미화해서 작성하지는 않는다. 장점을 살려서 작성하되, 그 학생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작성은 하지 않는다. 추천서를 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그 추천서가 입시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추천서를 작성해 보내고 나서 입시결과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합격을 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불합격 하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이런 사정은 대학입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성적위주의 학생선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추천서의 영향력이 없거나 미미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학생들의 다양한 면을 보고 선발하겠다는 것이 최근의 입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전형은 성적보다는 학생의 잠재력이나 발전가능성에 중점을 둔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성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찾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대략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합격한다는 것은 기본취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본취지에 어긋나는 선발을 한다면 교사들의 추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된다. 교사들은 한 학생의 추천서를 작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해당학생을 이해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면서 작성하게 되는데, 성적위주가 된다면 추천서가 영향을 주기 어렵게 된다. 그렇게 할려면 추천서를 굳이 받을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면접을 통해서 상급학교에서 학생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많은 시간을 통해 학생들을 지도했던 교사들의 추천서가 어느정도 영향력을 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고, 전형의 종류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추천서가 어느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진정으로 잠재력과 발전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선발하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교사추천서의 신뢰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추천서를 작성하는 교사들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성해야 할 것이다. 서로의 신뢰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성적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유치원교육은 유치원다워야 하고 초중고의 보통교육도 보통교육다워야 한다. 대학은 대학다운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극히 일부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구석이 보여서 안타깝다. 유치원 교육은 가정교육의 연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자를 가르치거나 영어를 가르치는 것 보다 바르고 좋은 습관을 갖도록 놀이를 통해 반복학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독일처럼 자연의 품속에서 스스로 보고 만지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며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공적인 교실에서 간접적으로 가르치는 교육보다 훨씬 교육효과가 클 것이라고 본다. 강가 모래사장이나 숲속에서 자연을 보고 배우는 원시적인 학습이 아이들의 성장에 더 도움을 주지 않을까? 초등학교 교육은 올바른 인성의 바탕을 형성해 가는 중요한 과정이므로 6학년 졸업 전까지는 인성교육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초등학교까지 형성된 인성이 평생을 간다는 것을 안다면 너무 많은 지식을 주입하려는 교육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면 에서는 학년을 진급할 때 기초ㆍ기본학력이 미달되면 그 학년의 공부를 다시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만하다. 그리고 초등의 교육과정양이 너무 많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인지하고 있다. 좀 더 단순화 할 필요가 있다. 무슨 음식이 좋다면 그 음식만 먹듯이 좋다는 것을 별도로 뽑아서 가르치려는 것은 욕심일 수 있다. 인성과 창의성도 교과 및 생활지도안에서 자연스럽게 가르쳐야 한다. 아무리 세계화가 밀려와도 우리 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한자도 가르쳐야 우리글의 어휘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중ㆍ고등학교 교육도 대학을 가기위해 청소년의 진을 빼놓는 사교육에서 벗어나 타고난 소질을 키워나가는 직업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모든 학생들을 대학으로 몰아넣는 우리의 교육행태는 고쳐져야 할 것이다. 전문 계고등학교가 공부가 뒤지는 학생들이 소질과 관계없이 가서 마치 인생의 낙오자처럼 취급받는 것은 잘못 된 것이다. 전문 계고등학교만 나와도 자기 전문분야에서 당당하게 직업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무조건 대학만 가려는 풍토는 바뀌어야 하고 입시위주교육은 황금 같은 청소년기를 낭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학교가 너무 많다.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정원과 같거나 적다면 이것은 너무 잘못된 것이다. 모두가 대학을 가라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고급인력만 양산하고 학력(學歷)만 높아져 균형을 잃은 교육구조가 되는 것이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한글도 잘 모른 다든지 간단한 계산도 못하는 대학생이 있다면 대학의 질과 수준이 떨어질 뿐이다. 대학생이 중ㆍ고등학교 보다 수업일수가 적은 것도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세계에서 최고를 자랑하지만 세계적인 명문대학이 없는 부끄러운 나라이다. 우수한 두뇌를 바르게 성장하도록 학교교육이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학문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지 못한 것도 우리교육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어진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교원평가 실시결과 학생, 학부모의 평가보다 동료교사 평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가 주어졌다고 한다. 당연히 언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평가의 점수보다 더 높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봐 주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표현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다. 결과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평가결과는 신뢰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가르치는 것에 대한 전문성은 아무래도 학생이나 학부모보다 교사들이 더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교원평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 학부모평가라고 본다면 조금은 이해가 갈 것이다. 학부모 평가는 교사들의 수업을 한 차례정도 참관한 후 이루어지기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즉 기준을 어디에 두고 평가를 해야할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0점에 기준을 둘 것인지, 만점에 기준을 둘 것인지, 아니면 중간점수에 기준을 둘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경우는 대부분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동료교사평가를 한다면 해당교사의 모든면을 생각하면서 평가하게 된다. 가르치는 것이 주업무인 교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르치는 기본은 어떤 교사라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학생이나 학부모 평가는 해당수업시간에 교사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심지어는 도중에 말을 조금 더듬지 않았는가 등이 평가에 들어간다.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이야기이다. 교사들이 봐주었다는 표현보다는 매일같이 같이 생활하는 입장이기에 쉽게 판단하기 어려워서 점수가 높게 나왔을 개연성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교사들은 평가를 할때 자신의 수업과 평가대상 교사의 수업을 비교하게 된다. 수업을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교사들은 자신과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수업이 자신보다 더 우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점수를 높게 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학생이나 학부모 평가는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으로 평가를 하고, 교사들은 해당교사의 내면적인 면까지 모두 들여다 보면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점수차이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동료교사 평가는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평가하기 때문에 기준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원평가제도 자체가 안고있는 이러한 문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결국 여러가지 경우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평가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여기에 교사들의 가르치는 업무는 반드시 전문성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혹여 교사들끼리 봐주기 평가가 있었다면 교사들도 생각을 달리해야 하겠지만 모든 학교에서 봐주기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 어느 지방 도의원이 학교 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로 칭함)를 '거수기'로발언을 해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불어 학운위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리포터는 현행 학운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논술하고자 한다. 학운위는 그동안 학교에 부족했던 자율성을 부여하고 지역사회와 학부모, 교사의 학교운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자 마련한 제도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학교 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제도이나 몇 가지 문제점과 개선할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운위의 문제점 우선 현행 학운위는 기존의 학부모회나 육성회 등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른 데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나 학부모들이 아직 이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운위에 대한 올바른 역할과 기능을 홍보 및 연수를 통해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운영상에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지역 교장단회의나 단위 학교 등에서 미리 결정한 내용을 학운위에 통고하고 동의를 구하는 경우 등이다. 이렇게 되면 학운위원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폭이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학교구성원들의 적극적 참여의지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교사들은 기존의 "상명하달" 관행에 익숙해져 있으며, 학부모들 또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되지는 않을까, 혹은 자신의 자녀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학운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학운위에 참여할 수 없는 것도문제이다. 회의가 주로 낮에 이루어지다 보니 직장을 가진 학부모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운위 구성원들의 전문적 식견도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학부모들은 학교의 학사운영이나 예, 결산, 교육과정에 대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이해가 부족하여 심의과정에서 학교측의 일방적인 주도에 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부모들은 학교장의 권위적인 리더십을 문제삼고 학교장들은 학부모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을 문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또한 부족한 편이다. 예를 들어 학운위와 관련된 민원이 발생할 경우, 교육당국의 중립적 자세가 아쉽고 교육청단위의 운영위원회 연수 또한 형식적인 연수에 그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학운위의 활성화 방안 학운위뿐만 아니라 전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학운위의 취지와 기능 중요성 등을 적극 홍보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학운위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유인해야겠다. 또한 학운위원들에 대한 연수를 보다 현실화하는 일이다. 연수대상이나 시기에 따라 가장 적합한 내용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연수하여 학운위원들의 심의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다. 학운위 제도 또한 개선 보완해야할 점으로 꼽힌다. 우선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촉진하고 불법적인 찬조금 관행을 일소하는 등 학교의 모든 재정운영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개선, 보안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학운위가 이루어지도록 행정적인 지원노력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학교재정운영에 탈법과 잘못된 관행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되며, 운영위원회와 관련된 당사자들이 관련 법령의 내용을 숙지하고 법을 어기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처분이 따르도록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단위 학교 또한 지역사회로서의 리더역할을 인식하여 청렴하고 합리적인 학교경영에 힘써야 한다. 글을 마치며 학교운영에 필요한 학교공동체 구축을 위해 학운위는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당사자인 교사와 학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교육현안에 대해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각종 교육 문제들도 말끔하게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또한 학운위가 애초에 정부가 의도한 대로 실질적인 교육개혁기구로써 제 역할을 다해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언어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체다. 그러기에 언어란 선한 사람이 선하게 사용하면 부드러운 향기로 표출되고, 악인이 악용하면 독약이 될 수 있다. 사람이 무기를 들어야만 남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말이란 무기를 통해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고,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세월이 유슈와 같이 흘러가도 인간에게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지켜야 하는 기본양식인 것 같다. 아이가 어른을 멸시하고, 자식이 부모를 외면하는 인간의 법도가 무너져 가는 현실에서 아무리 우수한 지식을 인간에게 주입하여도 그것이 올바르게 사용될 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청소년들의 언어는 갈수록 성적으로도 적나라하다. 예전에는 남학생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제는 여학생이 대수롭지 않게 사용한다. 교사 앞에서 예사로 성적인 말을 표출하는 것이 마치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다. 표현에 있어서도 군더더기를 싫어한다. “짱 좋다” “완전 좋다” 등등은 오늘의 젊은이들의 용어에서 여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빠르고 짧게 그리고 강하게 표현하려는 것이 마치 승부수 세계에서 상대를 말로 제압하려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상대에게는 거칠게 대하고자 하는 태도에는 철저한 이기주의적 사고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이기주의적 사고를 학교 정문지도에서부터 고쳐보려고 인사를 하도록 시켜 보았다. 인사를 하도록 시키지 않았을 때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조용히 관찰해 보니, 부드럽게 학생을 대하면 학생의 인성도 부드러워지고, 거칠고 사납게 학생을 대하면 학생은 성난 이리와 같이 교사를 대한다. 그러면 성난 이리를 그 이상으로 대하면 학생은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학생은 겉으로는 꺾이는 듯하지만 돌아서면 또 다른 것으로 교사에게 화풀이를 한다. 말의 윤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초등학교에는 도덕과목이 있어 인간의 기본 태도를 배운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윤리에 대한 인식도 점차 높아 간다. 그런데 학년이 높아 갈수록 윤리가 이론적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윤리는 이론적으로 치우쳐 체험학습 형식으로도 시청각 교육으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궁극적으로 윤리는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점수 획득 과목으로 전락돼 버린 오늘의 현실에서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진정한 윤리 과목의 가르침이 어디에 있어야 할까? 대학입시의 탐구과목으로 전략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윤리를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윤리가 학생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체험학습 위주의 교양 과목으로 탈바꿈시켜야 할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인성 교육의 초안을 잡아야 할 지 한해를 넘기는 마당에서 아련히 명상에 잠긴다.
우리 교육이 비판받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학생중심이 아닌 교사중심의 교수방법이다. 이러한 교사 중심의 교육은 우리의 입시중심의 교육과 무관하지는 않다.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의 학습내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가 중심이 되어 일방적으로 ‘집어넣은 교육’을 해야 했다. 이러다보니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쳐주는 내용을 보다 많이 기억하여 빠르게 답하면 되었다.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기존과는 다른 학습문제를 접하면 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게 된다.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교사로부터 학습된 내용을 학생의 새로운 가치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로 재생산은 학생 자신의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교육은 실제 학생들이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에 등한시 한 것이 사실이다. 교사는 학생들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교사의 선지식을 토대로 학생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키워 주어야 미래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힘이 점점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생각하는 힘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활발히 창출되도록 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새로운 교육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창의성은 어느날 문득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의 생각을 오랜 시간을 두고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야만 나타난다. Group Genius의 저자인 키스 소여(Keith Sawyer)는 ‘창의성은 천재적인 개인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협력을 통해 나타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창의성은 개인보다는 집단의 생각이 모일 때 더 잘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생각하는 힘은 불확실성이 높고 급변하는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환경이 급변하면서 지식의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과 경험이 교육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과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교육의 리더가 되었으나 이제는 지식의 진부화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그 가치가 퇴색되어가고 있다. 또한 지식이나 정보가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셋째, 생각의 힘은주인의식을 강화시킨다. 주인의식은 남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재생산하기 때문에 자부심과 의지를 더한다. 그러므로주어진 과제나 학습문제에 대하여 더 집중할 수 있으며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감도 갖는다. 그러나 요즘 우리 학생들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약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원인은 학교의 교수-학습 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교육은 '집어넣은 교육'에 급급한나머지 '끄집어내는 교육'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거나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수업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토론식 수업보다는 주로 교사의 강의에 듣기는 주입식 교육에 치중하여 교과서를 외우는 암기에 익숙한 수업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주어진 지식 습득에는 익숙하지만, ‘왜 그럴까?’, ‘어떻게 하면 될까?’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생각 능력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학교나 학급, 그리고 학습 내에 학생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학생과 교사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이 자기 생각을 표현했을때 교사가 칭찬하기 보다는 ‘너는 그것밖에 생각을 못해?’ 라고 말한다면 학생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더 이상 표출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학습방법은 어떻게 지도해야할 것인가? 이를 위해 교사는 다음 2가지를 실천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끊임없이 질문하기’이다. 우선 교사는 학생들의 생각을 자극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교수하여 학습결과를 제시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생각할 문제를 던져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생각을 촉진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왜’에 초점을 맞춰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해야 한다. 혹여 학생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더라도 ‘그것은 아니야’라고 단번에 결론을 내리기보다 ‘왜 그럴까?’,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식으로 학생들의 생각을 유도해서 스스로 올바른 생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둘째는 ‘생각하는 시간을 주고 기다리기’이다.교사는 학생들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교사는 단답형의 학습과제보다는 학생들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여 해결할 수 있는 학습과제를 제시하고 이들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학생들은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바와 같이 바람직한 학생의 학습 결과는미래사회에 나타나는 문제를 스스로해결력할 수 있는능력일 것이다. 이러한 학생의 '생각의 힘'은자기주도적인 학습력은 물론 창의력을 높이는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학생들의 새로운 생각의 힘은 개인은 물론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최근 한나라당 박보환의원이 학생을 학교운영위원회의 공식 위원으로 참여시키고, 이를 초·중·고에 전면 도입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학운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학교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 그 이유다. 학운위의 결정사항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이들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는 일정부분 필요할 것이나, 교육을 받는 미성숙한 학생이 법적기구의 위원으로 참여한다는 자체는 현실적으로, 교육적으로 문제가 많다. 이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초·중·고생은 교육을 통해 사물과 사안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판단의 지혜를 체득하는 시기로 이성적 판단이 성인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 특히 또래문화가 강해 친구(또래)를 의식한 인기성 발언과 판단을 할 우려가 매우 높다. 또 감수성이 예민하고 절제와 합리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분위기에 휩쓸려 학부모와 교사의 지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들에게 심의와 의결의 부담을 지우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타당하고 가능한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체벌금지 등으로 학생의 권한이 강조되고 교사의 교육권과 지도권이 위축되어 학교의 혼란이 극심하고 교육의 본질이 심히 훼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운위에까지 학생이 참여한다면, 그것도 전대미문으로 한꺼번에 모둔 학교에 도입된다면 그 갈등과 혼란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자식이나 다름없는 학생과 마주 앉는 것에 대한 부담과 가뜩이나 저조한 학부모·지역위원들의 참여율은 더 떨어져 자칫 학운위 자체가 개최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훨씬 앞선 선진국에서도 왜 일부 국가만 도입하고 있는 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학생과의 소통을 통해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미증유의 위원 참여보다는 현행 학생회 등을 보다 활성화시켜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법안 발의의 이유대로 어떻게 하는 것이 학운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무엇이 학교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지 다변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 우리가 반기기만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쉘 리 전 교육감 “마차가 말을 끌더라도…” 계량화된 교원평가 ‘가치부가’모형 개선 필요 교사순위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 영향 커 교원평가 찬반 논쟁이 미국 교육계에서도 뜨겁다. 논의의 여지가 많은 이슈임에 불구하고 최근 물의를 일으킨 사건들을 지켜보면 교원평가의 기준이 오로지 학생의 시험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는 추세다. 얼마나 한정된 각도에서 교원평가가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지난 8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초등교사 6000명의 가치부가 순위(value-added ranking) 를 공식 발표했으며, 10월 말엔 뉴욕시티 교육구에서도 학생 표준학력테스트 성적으로 본 교사 1만2000명의 가치부가 순위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워싱턴 D.C. 펜티 시장의 선거패배도 미셸 리 교육감의 대량 해고조치로 인한 영향이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NBC에서 취재한 ‘Education Nation’ 정상회담의 포커스도 교원평가에 맞춰졌다. 종합해 보면 오바마 정부와 연방교육부장관 알니 덩컨의 교육개혁 방향은 학업성취도를 중점으로 우수교사(teacher effectiveness)를 육성·지원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효과적인 교수법이 무엇인지, 또 이를 통한 교원평가를 어떻게 정확하고 공정하게 측정할 수 있을 지는 오래전부터 많은 학자, 교육가와 정치가들이 논의해 왔다. 이 문제에 있어 쟁점의 핵심은 사회가 교사의 자질 및 효율성을 어디에 기준을 두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시대의 요구에 의해 점진적으로 변해 왔기에 교원평가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교원평가는 방법을 논하기 전에 먼저 공통적 이해가 절실하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교사의 효과성을 올바로 이해한 후에 평가방법을 택하기보다 새로운 척도와 기술에 따라 계량측정 연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보고 ‘말이 마차를 따라간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교원평가제도와 같은 가치측정 연구는 혁신보단 일치된 의견을 토대로 과학적 기반의 근거를 함께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교사자질센터(National Comprehensive Center for Teacher Quality)에서는 우수 교사의자질을 세 가지 구조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교사의 적성과 자격증명서(Input)다. 교사의 학력 배경 및 경험, 교육철학과 신념, 교수법과 지식콘텐츠, 교육 수준과 교사 인증도 포함된다. 둘째, 교실 안에서 학생과 교사 간에 일어나는 학생 교사 간 상호작용(Processes)을 일컫는다. 셋째는 교실 실습 과정의 결과(Outputs)다. 예를 들자면 학생 학업성취도, 졸업률, 학습태도와 관심, 사회 정서적 웰빙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의 관계나 교사 리더십 역할 등을 들 수 있다. 연구를 종합해보면, 효과적인 교사들의 공통점은 학생들에 대해 높은 기대와 따뜻한 관심을 들 수 있다. 이들 교사들은 소그룹으로 나누어 개별적으로 학생들의 지식수준과 관심에 맞추어 교수법을 정한다. 또 학습 실행에 대한 피드백을 조직화시켜 전달하고 학생들이 새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하고 처리하도록 돕는다. 이들은 엄두도 못 낼 과목과 따라오기 벅찬 진도에 학습경험을 끼어 맞추기 보다는 학생들의 리듬을 파악,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이끌어내 자율성과 책임을 강조하고 성적이 아니라 배움을 창조하는 교육을 체험케 해준다. 마지막으로 다른 교사와 학부모와 협력해 특히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 기초학력 미달학생들의 성취를 확보하기위해 노력하는 것 등이 우수 교원의 자질 요소로 증명되었다. 이런 포괄적 관점과는 달리 학업성취도 향상을 위한 교사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방법이 가치부가모형(value-added model)이다. ‘마차가 말을 끌 고가는 추세’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분석모형은 개인 학생의 과거 시험성적을 기반으로 다음 해에 얻을 점수를 예상, 학생의 실제 점수와 예상되었던 점수의 차이점을 같은 해 교사가 부가한 ‘가치’로 측정하는 방식이다. 과거 교사들이나 같은 해 다른 교사들의 영향, 또는 학교 학습문화나 자원 등의 요소는 이 측정된 가치에서 별도로 분배해 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스탠포드와 유씨 버클리대 교수들이 공동으로 교원평가제도의 필요성과 문제점, 바람직한 개선방안 등을 연구한 최근 논문(http://epaa.asu.edu/ojs/article/viewFile/810/858)에 따르면, 교육에 효율과 학업성취 등 계량화된 경쟁기제를 도입, 질적 평가를 시도하는 방법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발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서 Education Advisor로 활약한 린다 달링-해몬드(Linda Darling-Hammond)와 동료 저자들도 학업성취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적용한 통계적 모형과 학습과목, 시기와 교실환경’에 의해 교사효율성(teacher effectiveness)의 변화가 큰 것을 발견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순위가 학생의 특징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학생의 인종배경, 사회 경제적 지위, 학부모 교육수준, 고등급 수학반 학생과 영어미숙 학생(English Language Learner)의 구성과 교사에게 지정된 과목에 따라 한 교사의 순위가 상위 15%에서 80%까지 떨어지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교사의 자질은 이렇듯 구체적 맥락에 의해 규정 된다. 하지만 현재 도입되고 있는 가치부가모형은 교사의 효율성을 교수 상황과 독립한 고정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 충분한 논의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섬세히 다루어져야함에도 오바마 대통령, 빌 게이츠와 오프라 윈프리까지 나서 찬사를 아끼지 않던 미셸 리 전 워싱턴 D.C. 교육감은 지난주 하버드 교육대학원 콜로키엄에서 이렇게 강요했다. “가치부가모형을 이용한 교원평가제도는 확실치 않으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해요. 시간이 없습니다. 10년 동안 종단적 연구 결과를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완벽하진 않더라도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교원평가제도 보다는 훨씬 개선된 선택이라고 봅니다. 지금부터 10년 후, 제 나이 50살 되는 해에도 빈민 소수계 학생들의 교육성과가 현재와 별 차이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니까요. 매년 1%의 발전이 아닌 변화를 보기 위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