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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는 5일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을 만나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엄미선 회장과박현진·우영혜·김수진 부회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선 최근 이슈가 된 '차량 내 유아보호용장구 의무화'에 대한 대책 마련과 유치원의'유아학교' 명칭 변경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01 모임이 있었습니다. 몇몇 가정이 모인 자리입니다. 아버지의 절친들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아내들과 아이들도 함께 자리한 모임입니다. 웃으며 담소하고 덕담들을 서로 챙깁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음식을 함께 하며, 공동 관심거리를 대화로 나누고, 서로의 살아가는 형편들을 이야기합니다. 형편에 따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번지는 쪽도 있지만, 남의 자랑에 공연히 위축되는 쪽도 물론 있습니다. 모임에 데리고 온 자녀들은 저희끼리 친구가 되어서 잘 어울립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모들은 자녀들 이야기를 합니다. 자녀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서로의 공통 관심사입니다. 걱정인 듯 자랑이 섞이고, 자랑에 숨어 있는 걱정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밉니다. 교양과 체면이 격조 있게 살아 있습니다. 모임의 분위기는 친목과 화평입니다. 그 누구를 민망하게 하는 말들은 발붙일 데가 없습니다. 모임이 무르익고 친교의 분위기를 북돋우는 말들도 나옵니다. 얼마나 좋은지요. 모임이 끝났습니다. 서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오늘 알게 된, 다른 집 아이들에 대한 친근감이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우호적 감정이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날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친밀과 화목이 주는 따뜻함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뒷날 그것이 덕성의 일종임을 깨닫겠지요. 그 덕성의 매력을 오늘 몸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좋은 모임이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제 ‘그들’은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그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없고, 이제 우리만 있습니다. 우리끼리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갑자기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긴장감 같은 데서 벗어난 듯합니다. 교양과 예절로 무장했던 데서 해방이 되는 느낌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오늘 모임에서 불편했던 일 하나를 불쑥 이야기합니다. 오늘 왔던 사람 중 A 씨의 부인이 은근히 잘난 척을 해서 그걸 참느라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빠는 그 사람보다도 B 씨의 부인이 문제였다고 지적합니다. 사는 형편이 다들 비슷한데 자기네만 유독 더 힘들다는 듯 너무 엄살을 피우는 것 같아서 솔직히 밉상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들이 없는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뭐 달리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엄마는 아빠 친구들의 옷차림 평가를 합니다. 점수가 후하지 않습니다. 아무개는 감각이 촌스럽다는 평도 하고, 아무개는 비싼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다고 지적도 합니다. 그러다 불똥이 아빠에게로 튑니다. “당신도 패션 감각이 없기는 마찬가지야. 그러니 끼리끼리 모이지.” 없는 사람들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다 보니,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쾌감의 근원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악령입니다. 그런데 무언가 싸한 느낌이 듭니다. 그 싸한 분위기와 함께 뒷자리의 어린 딸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야? 난 오늘 만난 언니 너무 좋던데.” 엄마와 아빠는 아차! 하고서 놀라지만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아침마다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며, 곱디고운 가르침으로 아이를 바르게 기르는데, 오늘 모임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아이에게 무얼 가르쳤나 하는 당혹감이 밀려옵니다. 엄마의 이중적인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자리 잡을지, 아이가 어떤 혼돈을 겪을지, 얼른 분간이 서지 않습니다. 02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집들은 돌아가는 차 안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아마 대동소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아까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 말도 다시 생각납니다.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인권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세태입니다. 남의 인권 무시하는 것이 첨단 인권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하기야 없을 때는 임금님 욕도 한다는데, 그깟 친구들 험담 좀 했기로서니 그게 무슨 대죄라도 되는 거냐고, 있는 데서 한 것도 아니고 없는 데서 한 걸 가지고 뭘 그래! 엄마는 신속하게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리고는 엄마에 대해서 혼돈이 생긴 딸 아이를 홀깃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좋은 모임을 아주 멋있게 가졌으면, 그걸 그대로 끝까지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덕의 완성’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돌아오는 자리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좋은 모임을 망가트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늘 모임에 숨어 있던 온갖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나쁜 장면들이 어쩌면 내 눈에는 그리도 잘 보이는지. 그걸 말하고 싶습니다. 이른바 ‘뒷담화’의 향연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이 모임은 실패한 모임입니다. 망가진 모임입니다. 친근과 신뢰가 그윽한 경지에 가 있는, 그런 모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모임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물론이고, ‘그들’이 없을 때도 친근과 신뢰가 이어지는 모임입니다. 그런 모임이 현실에서 실제로 있기가 쉽지 않겠지요.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려는 노력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무심결에 험담을 내놓았다가도 이내 각성하여 반드시 덕담으로 마무리해 주는 정도의 노력이면 충분합니다. 어쨌든 오늘 엄마와 아빠는 엄청나게 큰 것을 잃었습니다. 먼저, 어린 딸에게 신뢰를 잃었습니다. 없을 때는 비방하고 험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몸으로 배운 것의 교육 효과는 오래 갑니다. 엄마 아빠가 깨닫지 못하는 더 큰 상실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사람됨(인격)을 아름답게 고양할 수 있었는데, 그걸 그만 놓쳐버린 것입니다. 아까 엄마가 한 말이 자꾸 상기됩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가요. 그래요 다른 집이라고 우리와 뭐 다르겠습니까. 그들도 차 안에서 우리 부부를 험담하겠지요. 아차, 여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험담의 고약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있을 때 아무리 친하면 무엇합니까. 없을 때 이렇게 질투와 시기의 ‘뒷담화’가 만발하는데 말입니다. 예언컨대 이 모임은 오래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 모임은 큰 복 받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 모임은 더 친해지면 사소한 것 가지고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있을 때만 잘하는 척하는 관계로는 친해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없을 때 잘해야 진짜 잘하는 것입니다. 아니 없을 때 잘해야 복이 오는 것입니다. 03 칭찬에도 세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3등급의 칭찬부터 소개합니다. 여럿이 있는 데서, 막연히 칭찬하는 경우랍니다. 물론 칭찬받는 당사자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막연히 칭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칭찬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립 서비스(lip service)일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둘만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전략적 목적으로 칭찬을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등급 칭찬은 아무도 없는 데서, 당사자만 있는 데서, 그를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신뢰와 친밀의 정도를 서로 확인하게 하지요. 조직 내에서 이런 칭찬이 많아지면 ‘편애’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향하는 칭찬 방식이 이러하다면 그것은 아부에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1등급 칭찬입니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아무개가 나를 칭찬했다는 말을 제3 자에게서 듣는 기분, 그거 참 괜찮습니다. 나를 칭찬해 준 분이 윗사람일 때는 존경이 더해지고, 칭찬해 준 분이 아랫사람이면 그분의 신실함을 더욱 인정하게 됩니다. 아부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유익한 바가 또 있습니다. 나 없는 자리에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었던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미더움이 생기더랍니다.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에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이렇게 나오는 노래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유효한 것이 없을 때 잘하는 것입니다. 없을 때 잘하면 정말 잘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도 잘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도 잘하는 것입니다. 관계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드높이게 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일이겠지요. 없을 때 잘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하는 이유는 현행 승진제를 보완한다는 취지가 강하다. 즉, 교사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교원임용고시가 생겼듯이 학교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도입했다. 그러면 과연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이에 얼마큼 부합하는지 현재까지 진행된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 학교엔 교장이 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떤 단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교육감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사, 더해서 어떤 학습공동체와 함께하는 교사라고 한다. 이런 교사보다 뛰어난 교원이 응시하지 않았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교사, 교감, 장학사 등을 거쳐 객관적으로 교장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교원이 탈락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교사의 자질과 교장의 자질은 다르다. 교사의 자질에 ‘무언가1 ’가 더해져야 교장의 자질이 된다. 그래서 현행 교장제도에서 ‘무언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교사들은 많은 노력을 한다. 어떤 교사들은 이 ‘무언가’가 비합리적이고 바른 교사 되기를 포기하게 하고 심지어 가정까지 버리게 하는 제도라고 비난한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보다 교장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교사가 더 낫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 역시 한 때 교사의 자질만 충분하면 교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교감이 된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교감이 되는 과정을 통해 교감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많이 부족했다. 지금도 그렇다. 내부형 공모교장 자질 검증에 한계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현재의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좋은 교장이 되기 위한 어떤 ‘무언가’를 충족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쉽게도 내부형 교장공모제 진행 과정은 교장으로서의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 경상남도교육청의 경우 교감 자격연수 대상 후보가 되면 전화 설문과 심층 면접을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연수 대상자가 된다. 교감 자격연수 시험도 객관식 위주에서 논술과 서술형으로 바뀌었다. 내부형 공모 교장제도가 이보다 더 잘 검증하는 시스템인지는 의문이다. 내부형 교장 공모에 응시한 교원과 내부형 교장을 선출하기 위한 분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내부형 교장공모제에서 교장으로 선출되려면 지역사회와 학부모, 교사들의 지지가 절대적이다. 오랫동안 사전에 접촉해서 공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정도 조직을 갖추지 않은 교원이 이들과 일일이 접촉하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교장으로서의 자질과 더불어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로 작용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교장으로서의 자질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고, 특정한 세력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학교공동체의 다양한 요구를 공정하고 슬기롭게 수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혁신학교가 기초학력 저하 현상을 가속화 시킨다고 비판 받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정 단체, 특정 세력의 철학과 논리로 학교를 끌고 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특정 단체와 특정 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름과 차이’를 그동안 차별받은 것에 대한 ‘보복과 틀림’으로 받아들여 그들만의 의견을 다양성으로 해석하고 그 밖의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법령과 전문성, 그리고 다수결의 함정 많은 이들은 또 현재의 교장 임용 제도로는 학교가 민주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민주적인 학교 문화의 의미를 물어보면 ‘학교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현명한 결정을 하려면 반드시 집단지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전문성, 지식과 지혜의 차이, 경험 등을 무시하고 ‘1인 1의사 표시’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식의 의사 결정은 결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선 학교는 법령으로 운영된다. 법령은 복잡하다. 얼마 전 연수에서 법 관련 전문 강사가 한 말이 귓전을 맴돈다. “학교에는 백가지 직종이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스물다섯 가지 직종이 있는 학교가 존재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학교에 다양한 직종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뿐인가. 복무도 다 다르다. 역할이 다르고 관리하는 방법도 다르다. 어떤 직종은 학교장이 지시할 수 없고 관리만 가능한 경우도 있다. 의사결정을 할 때 이런 점이 모두 고려돼야 한다. 학생들의 교육 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법령을 위반하는 강제성이 동원되면 안 된다. 법령을 잘 모르면 관리자에 의해서만 갑질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종 사이에도 갑질이 발생할 수 있다. 학생 교육 활동과 관련되는 법령과 매뉴얼도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구성원들의 전문성, 지식과 지혜의 차이, 경험을 무시한 다수결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교감과 교장의 역할, 전문가의 영향력을 배제한 교사들에 의한 결정이 목적이다 보니 오히려 학교는 전문성 결핍에 노출되곤 한다. 지금의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민주적인 학교 문화에 전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데 의문을 갖는 이유다. 혹자는 선출되는 교장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현재의 교장 임용제도의 불합리한 점도 사람의 차이에 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부형 교장공모제 발전을 위한 검증 필요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보완되어야 한다. 교육감이 바뀌더라도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에 입각한 공정한 절차에 의해 선출되었는지, 중립적인 전문가 그룹에 의한 감시 체계와 검증 절차가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또 동료 평가, 심층 면접, 상호 토론, 전문가 그룹에 의한 질의응답 등과 이를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교장 자격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기존의 교장 임용제도에 비해 나은 것인지 후속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부형 공모교장제에는 아직 그늘이 존재한다. 그 그늘은 우리 교육의 부끄러운 초상이기도 하다. 상생과 존중의 빛으로 그늘이 더이상 길고 짙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는 자립형사립고등학교에서 역사를 찾을 수 있다. 원조 자사고는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특성화된 학교를 확충해 교육수요자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어 대거 확대되었다. 교육은 다양성과 수월성이 있어야 하고,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서 외국으로 유학 갈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확대 취지였다. 또한 고교평준화 문제를 보완하여 학생들의 학교선택권 보장에도 의미를 두고 있다. 하향평준화 교육에 대한 우려도 자사고 도입에 한몫했다. 그러나 자사고는 귀족학교 논란과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들어선 2014년부터 폐지 논란이 심화되었다. 자사고 논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학생선택권 보장과 고교서열화를 부추긴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사고는 출범하자마자 우수한 학생들을 싹쓸이 한다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초기에는 지원 자격으로 내신 성적 기준을 두었으나 이후 대부분의 자사고에서 내신 성적 기준 없이 지원이 가능하고, 1차 전형에서 추첨에 의해 2차 면접전형에 참여할 학생들을 선발한다. 사실상 누구나 지원이 가능한 학교로 달라진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살리되 수월성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과정은 완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자사고에 따라 지원 학생수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면서 자사고 스스로 일반학교로의 전환을 꾀하는 경우들도 나타나고 있다. 자사고 존폐 논란에서 이 부분을 주목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사고로 계속 운영이 어렵다면 일반고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 훨씬 더 유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입맛따라 춤추는 자사고 정책 자사고의 존폐가 정권마다 반복되는 이유로 교육 외적인 즉, 정치적인 필요를 꼽는 이들이 많다. 수시로 개정되는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도 이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교육은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중립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교육과정개정, 교장임용제도, 자사고 폐지 등이 정치와 관련되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일선 학교 교사 일부와 학부모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사고 재지정에 대한 관심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 외적인 문제로 소모적인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 중에 자사고의 운영상 문제와 사학비리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거나 비리가 발생되었다면 당연히 지정 취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문제는 자사고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자사고는 전체 모집 정원의 20%를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그 자녀, 차상위 계층, 국가보훈대상자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통합전형으로 선발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만을 위한 학교로 보는 시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가정형편에 관계없이 누구나 원한다면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것이다.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기에는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자사고는 학교별로 내신 성적 등의 교과전형을 별도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특목고와 같은 맥락으로 자사고를 포함시키려 하지만 특목고와는 근본부터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사전에 정해놓고 거꾸로 절차를 진행할 때 이를 꼬집는 표현이다. 최근 자사고 평가에서 재지정을 받지 못하는 학교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준점수를 특정 지역, 특정 학교에 불리하도록 높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사고와 학부모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자사고는 ‘아싸’ 혁신학교는 ‘인싸’ 다양성을 추구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와 획일적인 평준화 교육에 변화를 주면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지정된 것이 자사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설립 취지에 맞게 성실한 운영으로 부러움을 사는 학교들이 상당수 있다. 도리어 이들 학교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자사고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는 반면 혁신학교는 논란을 피해 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사고보다 더 큰 비난과 논란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학교가 혁신학교이다. 자사고나 혁신학교나 하나의 학교 형태지만 논란의 온도차는 상당히 크다. 주지하다시피 혁신학교는 자사고와 달리 진보교육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각종 통계에서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 현상이 뚜렷함에도 이를 부정하면서 계속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학교를 혁신하고 교육과정 운영을 혁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2015 개정교육과정의 시행으로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혁신학교의 혁신교육 목표가 상당히 닮아 있다. 더이상 새로울게 없는 것이 혁신학교다. 더구나 중학교에서의 자유학년(기)제 도입으로 더 이상의 혁신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당연히 혁신학교를 더 이상 확대할 이유가 없어졌다. 기존의 학교를 지정 취소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성숙되어 있다. 경기도의 경우 전체 초·중·고 2,366개교 중 혁신학교는 665개로 28.1%를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교가 1,263개교 중 378개교(29.9%), 중학교 629개교 중 218개교(34.7%), 고등학교 474개교 중 69교(14.6%)이다. 서울의 경우는 전체 고등학교의 320개 중 혁신학교는 15개교로 3.8%이다. 교육청에서 집중적으로 혁신학교를 확대 운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나 중·고등학교의 혁신학교 전환은 난항에 부딪힌 상태다. 초등학교의 비율을 보면 603개교 중 164개로 27.2%, 중학교는 382개교 중 45개로 11.8%로 경기도의 비율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향후에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 이유는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공감하지 않고 적극적인 반대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일찍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제도 개선 없이 혁신학교를 도입한 것은 당초부터 현실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혁신학교는 초기에는 교당 1억 5천만 원 정도의 예산이 지원되었으나, 최근에는 상당히 줄어들어 서울의 경우 5~6천만 원 선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혁신학교가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년 전 보수교육감 시절에 혁신학교를 평가하여 재지정 혹은 지정 취소를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지표를 정하는 단계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혀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 자체적으로 평가가 잘 이뤄지고 있는데 굳이 외부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우여곡절 끝에 평가 보고서가 나왔지만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혁신학교에도 엄격한 평가 이뤄져야 시범학교나 연구학교가 운영되면 우수사례를 다른 학교에 보급하게 된다. 혁신학교에 비해 훨씬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면서도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개발·보급하는 학교들이 많다. 그러나 우수하다는 혁신학교의 자료를 접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물론 혁신학교도 평가는 받는다. 그러나 평가단에 혁신학교 경험이 있는 교사들이 포함되면서 평가보다는 컨설팅의 의미가 크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쉽게 수긍되지 않는 대목이다. 따라서 혁신학교도 자사고 처럼 더 강도 높은 평가를 실시함으로써 누구나 평가 과정과 결과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결과에 따라 지정 취소도 검토되어야 한다.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들의 전유물로 거듭나면서 확대되고 있고, 자사고는 재지정보다 지정 취소에 방점을 두고 평가를 진행한다는 의혹 속에서 대폭 축소의 위기에 몰려 있다. 혁신학교에도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혁신학교 운영이 모두가 만족할 만큼 제대로 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마치 별천지의 학교처럼 운영되는 것이 자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면, 혁신학교에도 똑같은 시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교육청에서는 자사고에 이어 혁신학교도 평가를 한다고 한다. 다른 교육청도 곧 혁신학교 평가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어떤 평가단이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관건이다. 자사고처럼 과감히 칼을 들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한 점의 의혹도 없는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혁신학교는 자사고와의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존재의 설득력도 얻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몇년전 여름휴가 때 아내와 지리산을 종주한 적이 있다. 이틀만에 험한 산길 30여㎞를 걷는 힘든 일정이었지만 동자꽃, 원추리, 노루오줌, 꿩의다리, 산수국 등 지리산 야생화를 원없이 보니 힘든 줄을 몰랐다. 노고단 고개에 올라 주황색 동자꽃과 노란 원추리 군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세석산장 주변도 동자꽃, 원추리, 둥근이질풀, 터리풀 등 귀한 야생화들이 널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빙글빙글 돌 것 같은 물레나물도 지천에 있었다. 수목원보다 꽃이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듯 했다. 동자꽃은 한여름인 6~8월에 주황색 꽃이 피는데 제때 지리산을 찾은 것이다. 지리산 동자꽃은 특히 햇볕을 충분히 받고 영양상태도 좋아서인지 선명한 주황색이 짙을대로 짙었다. 야생의 동자꽃을 처음 본 것은 딸들을 데리고 강원도 인제 곰배령에 갔을 때였다. 진동리에서 강선마을을 거쳐 곰배령에 이르는 길은 5.5㎞로,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인 큰딸에게는 힘든 코스였을 것이다. 작은딸은 중간에 울어 엄마 등에 업혀서 돌아갔다. 큰딸도 마지막 가파른 길을 오를 때는 거의 울듯 했다. 그러나 마침내 곰배령에 올라 너른 평원에 동자꽃, 둥근이질풀 군락이 환상적으로 펼쳐진 것을 보곤 신나서 뛰어다녔다. 이제 다 큰 딸에게 “동자꽃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자 “곰배령”이라고 했다. 독특한 색깔, 고운 자태 동자꽃 매력 동자꽃은 눈에 잘 띄는 독특한 색깔과 고운 자태에다 이름까지 특이해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꽃이다. 아이들도 다른 꽃 이름은 금방 잊어버려도 이 꽃 이름만큼은 단번에 기억했다. 이 꽃이 동자꽃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암자를 떠난 스님을 기다리다 죽은 동자(童子)에 얽힌 설화 때문이다. 설악산 마등령 자락에 백담사 부속 암자로 관음암이 있었다. 그런데 조선 인조때 다섯살짜리 동자승이 한겨울 암자에서 홀로 스님을 기다리다 성불했다고 해서 암자 이름을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정채봉의 동화 ‘오세암’은 이 설화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동생 길손이와 누나인 감이는 부모를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다. 길손이는 눈먼 누나의 눈 역할을 하고 누나 감이는 길손이의 엄마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남매는 한 스님에 이끌려 절에서 생활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길손이는 장난이 심해 조용한 절을 뒤집어 놓는다. 스님은 장난이 심한 길손이가 젊은 스님들의 미움을 받는 것을 보고 길손이를 데리고 암자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길손이는 스님을 따라 깊은 산속에 있는 관음암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 그런 길손이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 한번이라도 엄마를 가져 보는 것, ‘엄마’라고 불러보는 것이다. 길손이는 암자 골방 그림에 있는 관세음보살을 엄마라고 부른다. 어느날 스님이 겨울을 보낼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길손이를 홀로 두고 장에 다녀오는데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스님은 사력을 다해 돌아가려고 했지만 쌓인 눈 때문에 그만 눈 위에 쓰러지고 만다. 스님이 감이를 데리고 다시 관음암으로 향한 것은 길손이를 혼자 두고 떠나온지 한달 하고 스물날째였다. 길손이는 관세음보살 그림 아래에서 엄마의 품안에 아주 편안히 누운 것처럼 숨져 있었다. 여기까지가 정채봉 선생이 쓴 동화 ‘오세암’의 이야기다. 이 동화는 2003년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 다음은 다시 설화인데, 스님이 동자승을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주자 이듬해 여름 그 자리에 동자승의 얼굴처럼 동그랗고 발그레한 주황색 꽃이 한송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 꽃을 동자의 넋이 피어난 것으로 여겨 동자꽃이라 불렀다. 동자꽃은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승처럼 지금도 항상 산밑을 바라보며 꽃을 피운다고 한다. 동자꽃은 가만히 보면 꼭 귀여운 동자가 웃는 모습과 닮았다. 제비동자꽃엔 감탄이 절로… ‘오세암’은 1984년 발표된 이후 아름다운 문장과 깊은 울림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정채봉의 동화는 특히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한줄 한줄에 간절함이 가득하고,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채봉(1946~2001) 선생은 전남 순천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와 여동생을 낳고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버렸다. 아버지 또한 일본으로 이주해 거의 소식을 끊다시피해서 정채봉 남매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런 사실은 작가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지만, 고아 남매를 다룬 ‘오세암’을 쓰는데 자양분으로 작용한 것 같다. 선생은 생전 인터뷰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풀지 못하니 자꾸 글로 나타나는 것 같다”며 “의식적으로 어머니에 대해 안쓰려고 하는데도 쓰다보면 글에 어머니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선생이 샘터에 연재한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인 동화'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동자꽃은 카네이션·패랭이꽃과 함께 석죽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참나리·원추리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튀는 색깔에 화사한 것이 상당히 인상적인 꽃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울릉도 같은 섬지방을 제외하고는 어느 산에서나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분포해 있다. 꽃은 줄기 끝과 잎 겨드랑이에서 나와 한 송이씩 피어난다. 꽃받침은 긴 곤봉 모양으로 꽃잎을 감싸고, 꽃잎은 5개다. 꽃잎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면 좀 복잡하다. 꽃잎은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영락없는 하트 모양이다. 꽃잎 양쪽에 1개씩 좁은 조각이 있는 것이 이 꽃의 특징이다. 또 꽃의 안쪽에 10개의 작은 비늘조각이 있다. 줄기에서 마주 나는 잎은 타원형에 가깝다. 이 꽃은 원래 높은 산에서 자랐으나 꽃이 예뻐서 지금은 도심 화단에도 많이 심고 있다. 다만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서 동자꽃을 사다 키운 적이 있는데, 아파트 베란다라 그런지 제 색깔이 나지 않고 꽃도 오래 가지 않았다. 동자꽃과 비슷한 종류로는 짙은 홍색의 꽃잎이 제비의 꼬리처럼 깊이 갈라진 제비동자꽃이 있다. 제비동자꽃은 꽃이 워낙 독특해서 한번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강원도 인제 대암산 용늪에 갔을 때 화려한 제비동자꽃을 원없이 본 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잎과 줄기에 흰색 털이 많이 나 있는 털동자꽃도 있다. 털동자꽃은 우리나라 중부 이북의 산지, 즉 추운 곳에서 자라 털이 많은 모양이다.
황송하게도 한 학기에 많으면 두세 번씩 대학교에 특강 형식으로 강의를 나간다. 그때마다 과연 내가 이런 자리에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그럼에도 거절한 적은 없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주제는 ‘K팝과 시장경제’로, 내용은 간단하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mp3라는 새 압축 기술의 발전으로 한국 음반 시장은 일대 위기를 맞이했다.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故 신해철을 포함해 권위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가요계(그땐 K팝이란 말이 없었다)의 멸망을 개탄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멋진 일들이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 심도 있는 연구가 전개되진 않았다. 경제·경영학과 교수들도 이제 막 호기심을 갖는 단계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고 나에게 멋들어진 강의 기술이나 전문지식이 있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나는 그저 경험과 기억에 의존한 음악 이야기와 내 나름의 가설을 두세 시간에 걸쳐 얘기한다. 10대 시절부터 지켜봐 왔던 한국 대중음악의 변천사, 중요한 분기점, 혜성처럼 나타나 유성처럼 사라진 이들에 대해 목격자처럼 얘길 전한다. 그리고 멋진 음악을 학생들과 함께 듣는다. 존재만으로도 음악적인 20대들과 이런 시간을 보내는데 재미가 없을 리 없다. 아니, 없었다. 답변이 준비되지 않은 질문 ‘없었다’라는 과거형이 등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나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각도의 질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이렇다. “지금까지 K팝의 발전사에 대해서 좋은 얘기만을 들려주셨는데, 요즘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이제까지 없었던 직업정신의 호출을 요구받는다. 그렇다. K팝이 위기를 기회로 바꿨던 바로 그때처럼 상황은 다시 한번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월 강남의 어느 클럽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 하나가 한국의 K팝 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에도 상황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짧은 글에서 현상의 원인을 심도 있게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이는 구석은 있다. 분명한 건 K팝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 시점부터 오늘날의 문제가 배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K팝의 성공 요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외모지상주의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의 어느 출구로 나가면 보이는 그 즐비한 성형외과들의 행렬을 상기시킬 필요도 없다. 연예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선망은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에게 갓(GOD)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데까지 와 있다. K팝이 유명해진 계기 중 하나인 세칭 ‘칼군무’는 눈에 보이기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가수 개인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면 너무나 멋진 일이다. 북한의 ‘아리랑’처럼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오로지 자신의 삶을 바꾸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혹독한 무대의 삶을 선택한 10대 20대들이 추는 최후의 춤사위. 강처럼 흐르는 땀방울을 쏟아낸 대가를 누가 확실히 보상해 준다는 약속도 없다. 가수가 되려는 연습생들은 많지만 성공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데이터는 무대에서 빛나는 가수 한 사람 한 사람을 진흙 위의 연꽃처럼 보이게 만든다. 문제는 이토록 힘든 과정을 거쳐 성공한 이들의 ‘그 다음’에 대해서는 우리 중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되고 한 달 뒤의 상황 같다. 로또 1등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한 달 정도는 이 성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색한 마음이 들 터다.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얼마간 돈을 펑펑 쓴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점점 제정신이 들고 당첨이라는 사실이 ‘현실’로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는 잔액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해진다.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면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1.6%의 어떤 것 K팝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 성공을 올바르게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것. 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단단히 꼬인 실타래의 가장 안쪽에서 미리부터 대형사고의 폭발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빅뱅의 막내 멤버 승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동년배들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승리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업체를 꾸렸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성공의 과실을 나누면서 자못 ‘의젓한 어린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많은 카메라들이 뒤를 따랐으며, 그런 주목을 발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려던 것처럼 보였던 게 사건 직전까지의 상황이다. 그 이후 무시무시한 낙차로 그의 하락세가 시작됐지만, 나는 그가 성공의 정점에서 내놓은 노래 ‘셋 셀 테니’의 한 구절을 지금도 떠올린다. 승리가 직접 노랫말을 적은 이 곡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그런 자태를 가졌으니 / 눈은 네 구두보다 높을 거야 / 조금 새삼스럽지만 / 결국 다 동물이란 생각을 해” 인간이 동물인 건 모두가 안다. 단, 이 맥락에서의 ‘동물’에는 무서운 함의가 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모든 교양, 윤리, 도덕, 문명들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폭발버튼이 매복돼 있다. 인간은 침팬지와 유전자의 98.4%를 공유한다. DNA 차원에서 봤을 때에는 거의 같음에도 우리가 침팬지이길 거부하는 이유는, 작지만 큰 차이가 저 1.6%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작은 숫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동물의 하나로 간주하며 지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대한민국은 학원 공화국이다. 그중에서도 대세는 역시 입시학원이다. 서울의 대치동, 목동, 중계동 등 대표적인 학원 밀집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도처에 입시학원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학원들은 과연 언제부터 성행하게 되었을까? 사실 이에 대한 해답을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러한 학원들이 성행하게 된 배경이 입시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결국 시험이 도입된 시대와 학원의 등장이 맞물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답은 바로 과거시험이 도입되었던 고려시대이다. 혹자는 고려시대에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있었을 것이고, 그곳을 중심으로 과거 준비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물론 학교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학교가 바로 국자감이다(국자감은 조선시대의 성균관과 같은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최고 수준의 공교육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자감에 학생들이 몰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려 성종 때 기록 중에는 학생들이 국자감에 적만 걸어두고 실제로 다니지 않는다는 탄식이 나온다. 문종 때는 국자감 학생들이 학업을 전폐하게 된 것은 교관에게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발견된다. 이처럼 국자감은 학생들의 기피로 인해 공동화(空洞化)되다시피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당시 학생들은 어디서 과거 공부를 했을까? 그곳은 바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12도(徒)였다. 여기서 ‘도’는 교습을 위해 사적으로 맺어진 교사와 학생들의 무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도는 일정한 공간에서 교습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결국 오늘날 학원과 같은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와 같은 무리가 12개가 있다고 하여 으레 ‘12도’로 불렸던 것이다(처음부터 12개의 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애초에는 한 개의 도로 출발했던 것이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얻자 앞을 다투어 도를 만들게 되어 나중에는 그 수가 12개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중에서 12도의 시초이자 가장 인기가 있었던 도는 최충(崔沖)이 만든 ‘문헌공도(文憲公徒)’였다. 당시 학생들이 12도에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12도가 과거 준비를 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임을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운영하였길래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과거시험 대비 '12도'의 출현 기본적으로 12도의 정규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과거 합격을 목표로 수업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라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특별 행사들을 실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하과(夏課)’였다. 하과란 매년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12도마다 시원한 절간에서 개최하였던 강습회로서, 오늘날 ‘썸머 특강’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하과 행사로는 먼저 특강 개최를 들 수가 있는데, 이 특강에 초빙된 강사는 바로 최근에 과거에 합격한 학생이었다. 이처럼 최근 합격생을 초빙하였던 이유는 이들의 시험 준비 경험이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당시 학생들이 선호했던 강사는 과거시험 출제 위원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한데, 12도의 설립자들이 대체로 과거 시험관 출신이었기 때문에 평소 수업 때 이들로부터 지도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과에서 이뤄졌던 행사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각촉부시(刻燭賦詩)’였다. 이것은 양초의 아랫부분에 금을 그어놓고 심지에 불을 붙여 양초가 그 금에 타들어 갈 때까지 부(賦)와 시(詩)를 짓게 했던 행사로서, 여기서 우수한 글을 지은 학생들 순서대로 방을 붙이고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양초는 오늘날 시계의 역할을 한 것이고, 부와 시는 당시 과거시험 과목으로서, 쉽게 말해 각촉부시는 ‘모의고사’였던 것이다. 이처럼 12도에서는 과거시험에 최적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에 비해 당시 공교육을 대표하였던 국자감은 오직 과거시험 합격에 관심이 있었던 당시 학생들의 기대 수준에 못 미쳤다. 이 때문에 당시 국자감은 12도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학생들이 국자감에는 이름만 걸어 놓고 실제로는 12도에서 수학하려 했던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사교육 기관은 12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고려도경(高麗圖經)」이다. 이 문헌은 당시 중국에서 사신으로 파견된 서긍이 고려에서 지내는 동안 보고 들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으로서, 그중 고려의 사교육 기관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舍)가 두 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자제로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 지어 지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우고, 장성해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마을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 훌륭하도다. 서긍의 눈에 비친 당시 교육공간의 정체는 무엇인가? 먼저 민간 마을에 있었던 ‘경관’과 ‘서사’는 누가 보더라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사교육 기관이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가 있다(‘경관’과 ‘서사’는 그 기관의 일반적인 명칭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교습기관의 의미로서 서긍이 임의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관들이 앞서 살펴본 12도와 별개의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절간에서 강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12도를 다른 명칭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마을 선생에게 글을 배웠다는 기관은 12도와는 다른 별도의 교습기관이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이처럼 당시에는 어린아이부터 청년층까지의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사설 교육기관에서 과거 준비를 하였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중국이 아닌 조그만 변방 국가에서 이렇게 사설 교육기관들이 성황을 이뤘다는 사실은 서긍에게 충격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올 정도로 특별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과거 준비 교육이 사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곧 당시의 공교육이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음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교육이 침체되었던 것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학(官學)의 경우 국가의 통치이념이었던 유교의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내면화 한다는 명분으로 인해 학교에서 과거시험 합격을 위한 요령 위주의 교육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학교를 다니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과거 합격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관학은 기피될 수밖에 없었고, 그 대신 과거 합격을 목표로 교육을 운영하였던 사교육 기관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시험이 있는 한 공교육의 퇴락은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후 고려시대의 사교육 기관들은 조선시대로 들어서서도 그 명맥을 이어갔다. 고려시대의 관학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성균관, 사부학당, 향교와 같은 관학들 역시 과거시험과 관련하여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수험생들은 관학을 외면하고 사교육 기관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교육의 형태를 일률적으로 규정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대체로 강습자가 여러 학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서당과 같은 형태가 일반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학설상으로는 서당을 조선 후기에 등장한 서민 교육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보편적인 사교육의 형식으로 존재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앞서 살펴본 고려시대의 12도나 여타의 사교육 기관들 역시 이러한 서당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고려시대의 서당이라고 규정해도 크게 무리가 있을 것 같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이 고려시대 사교육 기관들의 성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연구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도 ‘서당’이라는 명칭이 있었다). 조선시대 사설 사교육 기관은 '서당' 그렇다면 오늘날 서당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학원’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전제로 하여 반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지금의 학원의 전신은 조선시대 서당이며, 조선시대 서당의 전신은 고려시대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오늘날 학원의 원조는 바로 고려시대 서당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교육 기관의 흐름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고려시대 교육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사교육이고, 조선시대 역시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결국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교육은 사교육에 의존해 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교육도 사교육에 지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도 사교육은 수많은 교육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를 촉발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래의 우리 자녀들에게만큼은 사교육으로 인한 폐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사교육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무려 1,000년 동안 누적되어온 문제였다는 엄중한 인식을 바탕으로 좀 더 절실한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 용감한 여자들 지리교사가 된 여자 셋이 모였다. 한 명은 동기였고 한 명은 선배였다. 넘치는 열정으로 여행지를 논의하던 중 지리교사라면 아프리카 대륙 한번 밟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집트를 택했다. 하지만 털털한 성격이 매력인 우리 셋은 6개월 전 비행기티켓만 구매해놓고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전공을 살려 이집트 지도를 펴놓고 여행사 패키지 코스와 가이드북을 참고하여 카이로-바하리야 사막-아스완-아부심벨-룩소르-후르가다-다합-카이로 이렇게 경로와 루트맵(route map)만 작성해 놓고 방치해두었다. 그리고 대망의 여행 당일, 1월 1일 새해 첫 일출을 비행기 안에서 맞이하고 카이로(Cairo)의 한인 민박 이름만 달랑 알아온 우리는 어두컴컴한 밤에 낯선 도시에 떨어져 헤매고 말았다. 당시 제일 무식하게 용감했던 내가 길을 물어보고 다니고 술병을 든 아저씨가 길을 알려줘 겨우 민박을 찾았는데, 나중에 일행 두 명과 민박 주인아주머니로부터 걱정 어린 질책을 잔뜩 들었다. 민박에 빈방도 없어서 셋이 나누어져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우리가 딱했는지 주인아주머니가 이집트의 길 다방을 체험하게 해줬다.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는 술집을 대신해서 길거리 찻집을 많이 볼 수 있다. 첫 숙소를 한인 민박으로 정한 덕분에 편하게 한국어로 여행 정보를 압축해서 들으며 주인아주머니의 추천으로 물 담배인 시샤(shisha)를 체험해보았다. 숯을 넣어 향료(주로 과일 향)를 태우고 물을 이용해 담배연기를 한번 걸러 흡입하기 때문에 담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집트는 하루에 2천만 개비의 담배가 소모되는 엄청난 애연 국가인데 시샤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즐겨찾기 때문에 히잡(hijab)을 쓰고 흡연하는 여성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음날에는 다행히 세 명이 한방을 잡고 이집트의 지하철을 이용해보았다. 두 개의 라인이 운행되고 있었는데 지하철을 타니 남자들이 “쓰읍- 쓰읍” 소리를 내며 눈치도 안 보고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아서 너무 부담스러웠다. 옆 칸을 보니 여자들만 있는 것 같아 이동했는데 내려서 살펴보니 바로 여성 전용 칸이었다. 전동차 외벽에는 여성 전용 칸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있고 혹시나 남자가 잘못 타면 여자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이집트의 여자들도 점점 용감해지고 있나 보다. #2. 한국 여자라면 25살의 나이차도 극복? 첫날 도착한 한인 민박의 주인아주머니와 얼핏 봐도 아들 뻘인 이집트 남자와의 결혼 예정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그 남자분의 친구는 내 이름을 ‘젊은 나’라는 뜻의 영어로 해석하고는 영~미~ 영~미~ 계속 부르며 내가 좋다고 카이로에 있는 내내 졸졸 쫓아다녔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안 사실인데 이집트에서는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서 여자 집에 결혼 지참금인 마흐로(mahr)를 보내야 한다고 한다. 평범한 가정의 남자들은 결혼하기 위해 평생 돈을 모으기도 한다니 적은 금액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외국 여성을 아내로 맞이할 때는 결혼 지참금을 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난한 남성들은 국제결혼을 탈출구로 생각한다고 한다. 날 탈출구로 이용하려 했다니 괘씸한 이집트 남자! #3. 그곳에 가면 고정관념이 깨질 것이다! 바하리야(Bahariya) 사막에 가면 사막은 모래로만 이뤄져 있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 보통 카이로에서 1박 2일의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데,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오아시스, 화산재가 사막을 덮은 흑 사막, 석회석으로 덮인 백 사막, 앨러배스터(alabaster)라는 돌로 이뤄져 유리처럼 반짝이는 크리스털 사막, 샌드 보드를 탈 수 있는 사구, 버섯 바위 지대를 탐방한다. 저녁에는 베두인(Bedouin)이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식사를 하고 쏟아지는 별을 보며 사막의 아찔한 일교차를 밤새 몸으로 학습하고 덜덜 떨며 일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보기 힘들다는 전갈과 사막여우도 볼 수 있었다. 이집트의 랜드마크(landmark)인 스핑크스(Sphinx)는 상상의 동물로,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왕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룩소르(Luxor)의 카르나크 신전(Karnak Temp)에서 양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를 보고 검색해보니 지역과 시대에 따라 모습과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숫자가 많고, 길거리에 널린 것이 스핑크스였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스핑크스는 카이로의 기자 지구에 있는 것으로, 가이드북의 설명에서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 앞에 있다고 되어 있고,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상으로도 피라미드 앞에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런데 피라미드 근처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스핑크스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선배가 몇 년 전 이집트에 홍수가 나 수몰 위험이 있기 때문에 스핑크스를 카이로 국립 박물관으로 이전했다는 논리적인 헛소문을 이야기해준 덕분에 스핑크스를 못 보고 돌아갈 뻔했다. 쿠푸 왕, 카프라 왕,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를 보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데 여자의 직감인지 여행자의 집착인지 왠지 스핑크스가 있을 것 같아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본 결과, 우리의 생각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피라미드라고 다 규모가 큰 것이 아니었다. 유명한 세 개의 대 피라미드 주변에 우습게 장난처럼 쌓아진 세 개의 돌무더기들은 멘카우라 왕의 왕비들 피라미드라고 한다. 또한 가자 지구의 유명 3대 피라미드들은 평균 2.5톤의 돌이 230만 개나 쌓아 올려 있고 각 능선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으며 파라오의 미라가 놓이는 무덤이 정확히 무게 중심점과 일치해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꼽힌다. 왕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으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 크고 무거운 석재들을 옮기고 쌓았을까? 건축 과정에서 더운 날씨에 강도 높은 노동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많았을 테니 당연히 강제 동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피라미드 건설은 일종의 국가사업으로 나일강의 범람 기간 동안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농부들을 구제하는 정책이었다고 한다. #4. 걸레 빵과 코샤리 건조기후 지역인 이집트는 식재료의 한계로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힘들었다. 대표적인 음식을 두 개만 뽑으라면 에이쉬(aish)와 코샤리(koshary)를 들 수 있다. 이집트 국민 음식인 에이쉬는 밀이 발효되고 화덕에서 익으며 부풀어 올라 겉으로는 두툼해 보이지만 안이 비어있는 빵이다. 무슬림(Muslim)들이 식사를 할 때 음식이 식지 않도록 에이쉬로 감싸기도 하고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는 것을 보고 걸레 빵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백반 정식의 쌀밥처럼 어디에나 빠지지 않고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코샤리는 쌀, 마카로니와 렌틸콩 위에 튀긴 양파와 마늘을 올려주고 토마토소스나 고추소스에 쓱쓱 비벼 먹는 음식인데, 향신료에 민감한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핀잔’의 잘못된 표현인 일본어 ‘쿠사리’를 연상케 하여 여행 내내 우리의 말장난 대상이 되었다. #5. 뭐니 뭐니 해도 머니 이집트에서는 더러운 돈은 받지 말아야 한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찢어진 돈을 받았다가 그 돈을 다시 사용하려고 하면 돈 상태가 안 좋다며 받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낙타, 배, 택시 등 교통수단을 타고 잔돈이 없으면 큰돈을 통째로 받으려는 ‘못된 심보’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소액 지폐도 꼭꼭 챙겨야 한다. 피라미드 근처의 낙타 몰이꾼도 1달러만 달라고 하다가 점점 멀리 낙타를 몰고 가 10달러를 요구하고 큰돈을 내면 잔돈을 안 준다고 하니 조심할 것!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유럽 식민지의 영향도 있고, 기독교의 11조와 비슷한 무슬림들의 의무 중 하나인 사회적 기부, 쟈카드(救貧稅) 영향도 있어서 여행 중에 쉽게 ‘박쉬쉬(Bakschisch)’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팁 문화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화장실을 갈 때도 박쉬쉬! 이집트의 기념품 구입의 성지인 칸 엔칼릴리(Khan al-Khalili) 시장에 가서도 박쉬쉬! 돈을 내고 배를 타도, 내릴 때 박쉬쉬! 심지어 지나가던 꼬마가 그냥 빈손을 내밀며 박쉬쉬! #6. 파란 나라, 이집트 국토의 95%가 사막인데, 이집트 여행 후에 내 뇌리에 강하게 남은 이집트의 이미지는 파란색이었다. 파란 나라 이집트의 면모를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4대 문명을 발생시킬 정도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나일강(Nile river)! 연중 내내 마르지 않는 나일강은 이집트에겐 선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석회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식수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물값이 기름값보다 비싸다. 둘째, 이집트에서는 물이 물을 부른다. 배수구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연 100mm도 안 되는 강수량이지만 비가 조금 많이 오면 물이 넘쳐나서 난장판이다. 보통은 금방 그치기 때문에 아무도 우산을 쓰지는 않았다. 셋째, 아스완(Aswan).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는 야간 침대 기차(호텔 열차)가 있어 자면서 이동한다면 여행시간을 벌 수 있다. 아스완댐으로 유명해진 이곳은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는 드라마 대사를 연상시킨다. 카이로에서 본 매연에 휩싸인 회색빛 나일강이 아닌 이집트 전통 돛단배인 펠루카(felucca)의 흰 돛과 대비되는 파란 나일강물을 볼 수 있다. 넷째,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대륙을 나누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지중해와 인도양 사이의 홍해를 느낄 수 있는 후루가다(Hurghada). 이곳에는 고급 리조트들이 많고, 각 리조트들은 전용 비치를 지니고 있어 한적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룩소르에서 육로로 이동했지만, 시간이 없고 여행경비에 여유가 있다면 카이로와 후루가다를 연결하는 항공편이 하루에도 여러 편 있으니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근처의 재래시장 수크(souk)에 들러보면 시골 장터의 정겨움과 이집트의 향취도 느낄 수 있다. 끝으로,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다합(Dahab). 시나이반도의 경비가 삼엄해 버스로 통과하며 총을 들고 보초 서는 군인들의 모습에 잔뜩 긴장했었는데, 세계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이유를 곧 깨닫게 되었다. ‘다합'은 아랍어로 금을 의미하는데 해안이 황금빛 모래로 덮여있어 이런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깨끗한 물 아래로 새하얀 산호초와 물고기들이 보여 스노클링을 하기 좋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윈드서핑을 즐기기에 적합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 블루 홀(Bule hole)이 있어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는 구멍(hole) 같은 관광지이다.
이미지로 키우는 사고력,VTS (필립 예나윈 지음, 손지현·배진희·신지혜·정현정 옮김, 미술문화 펴냄, 240쪽, 1만8000원) 미술작품과 사진, 삽화 같은 시각 매체로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학년이나 수준과 상관없이 모두 참여할 수 있고, 모든 과목에 적용할 수 있으며, 심미적 감성 역량뿐만 아니라 자기관리 역량과 지식정보처리 역량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대한민국 역사다 (최성철 지음, 책읽는귀족 펴냄, 384쪽, 1만8000원) 지청천, 남자현, 한용운, 김창숙, 유관순, 권기옥, 이회영, 김마리아, 신돌석,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 10명의 삶을 소개한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를 칭송하지만, 헌신한 운동가 중의 일부만 안다. 유명한 분들에 대해서조차도 아주 일부만 아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의 인간적 삶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똑똑한 엄마는 강점스위치를 켠다 (리 워터스 지음, 김은경 옮김, 웅진리빙하우스 펴냄, 296쪽, 1만4000원) 자녀가 성적표를 받아오면 나도 모르게 점수가 낮은 과목에 눈길이 가고, 어떻게 하면 보완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좋은 면보다 그렇지 않은 면부터 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강점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한 전략을 소개한다.
교사의 말하기 (이용환·정애순 지음, 맘에드림 펴냄, 308쪽, 1만5000원) 수업은 대부분 교사의 '말'을 통해 진행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교사의 언변은 누구 못지않게 뛰어나다. 하지만 교사의 말하기는 좋은 기술로 끝나서는 안 된다. 자기보다 어린 학생을 상대하므로, 항상 자기 말의 무게를 느끼며 일방통행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여는 지혜로운 말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관점 VS 관점 (이종보 지음, 개마고원 펴냄, 248쪽, 1만4000원) 과학기술의 발달이 미칠 영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AI를 둘러싼 논쟁이 가장 활발하지만, 유전자나 우주자원, 빅데이터 등에 관한 갑론을박도 치열하다. 과연 미래 사회의 모습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양측의 주장을 통해 생각을 정리해보자.
토닥토닥 마음톡 (웰시 지음, 리듬문고 펴냄, 308쪽, 1만4000원)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마음 치유서. 아기자기한 만화 형식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게 구성했다. WEE 클래스 전문상담사 등으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따뜻하지만 때로는 단호한 어조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준다.
남달리와 조잘조잘 목도리 (한수언 지음, 류한창 그림, 바람의아이들 펴냄, 156쪽, 1만1000원) 유기견 보호에 앞장서던 복성자 의원의 검은 속내를 알게 된 주인공 ‘달리’가 신비한 토끼 목도리 ‘봉래’와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 달리가 강아지, 고양이, 비둘기 등 동물들과 소통하며 씩씩하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동물 복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가도록 했다.
나, 이사 갈 거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논장 펴냄, 72쪽, 9000원) 안데르센상 수상 작가 린드그렌의 대표 유년 동화다. 엄마에게 혼난 주인공 로타가 이사를 시도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늘상 말 안 듣고 반항하면서도 결국엔 엄마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재미있게 그렸다.
철학은 쓸데없는 일에 연연하고 실제 생활에 도움 되지 않는 공리공담(空理空談)처럼 여겨진다. 교육계에서 교육철학에 대한 인식도 비슷할 것이다. 교육철학자들도 교육을 어떻게 개선하고 변화시킬지에 관한 직접적인 실질적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자유, 평등, 권위, 도덕, 교사, 교과에 대해 중요한 연구들을 수행해왔지만 교사들의 관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늘의 별을 보며 이치를 탐구하다 구덩이에 빠져 하녀에게 핀잔을 들었다는 탈레스의 일화는 철학자들의 삶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만물의 근본 원리(arch?)에 대한 질문으로 서구 학문의 역사를 열었지만, 그 하녀에게는 그저 발밑도 제대로 보지 못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상은 높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다.’,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대한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재능 있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통치자 교육을 받고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가족을 포함해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가장 지혜로운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 보더라도 파격적이다. 아테네는 선거와 추첨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였고, ‘돈이 사람을 만든다(Chremat’ Aner)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시장경제가 활성화된 사회였으며, 여성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치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그랬던 것처럼 플라톤의 주장 역시 아테네 시민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혜로운 철학자가 국가 다스려야 하지만 이후 그의 혁신적인 주장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이후 플라톤의 교육론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세심하게 검토하고 나아가 직접 적용까지 시도해봤을 것이다. 플라톤 자신도 ‘말만 하고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을 부끄러워하며(Epistolai, 328c-d)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를 방문해 이상적 통치자로 여겼던 디온(Dion)과 교류하는 등 직접적인 정치활동에도 참여한다. 하지만 디온의 자질은 플라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그가 꿈꿔왔던 최선자(最善者)의 통치는 무산되었다. 디온은 내란 끝에 살해당했고 플라톤은 구사일생으로 아테네로 돌아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국가를 통해 어디서도 실현 불가능할 법한 이상 국가의 모형을 제시했던 것은 당시 플라톤의 아테네가 모든 기준이 무너진 채 자기만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극단의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선언은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바로 나라는 인식, 그리고 자연스럽게 쾌락을 선호하고 고통을 기피하려는 경향을 합리화하는 태도로 연결되었다. ‘신(神)은 인간 세계의 정의(正義)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프로타고라스가 증명했듯 인간은 법률을 만들 수 있으며, 법률은 강자가 약자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Politeia, 338e-339a).’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최선의 이상 국가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각성과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상실하고 아노미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관습과 규범을 제안하고 그것을 통해서 시민 공동체가 다시 지성(nous)을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시라쿠사의 실패 후 만년에 저술된 법률은 이러한 그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국가에서는 정의가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에서 말을 통해 최선 국가가 제시되었지만 법률에서는 훨씬 구체적이고 세세한 절차를 거쳐 차선(次善) 국가가 수립된다. 우선 국가의 핵심주장이었던 철학자 통치는 법률에서 입법가 원로들의 통치로 변경되었다. 국가에서는 생산자 계층의 교육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던 반면 법률에서는 모든 시민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국가에서 다뤄졌던 정치체제와 인간형의 관계에 대한 서술은 빠진 대신 법률과 신의 관계를 설명하며 무신론을 비판하는 지점은 국가와 비슷하다. 직업교육을 교육으로 간주 안 했던 플라톤 플라톤은 국가는 어떤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는지 나아가 그 원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이 필요한지에 대해 훨씬 자세하고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마그네시아(Magnesia)라고 불리는 새로운 폴리스는 타국과 불필요한 교류를 막기 위해 해안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야 하고, 5,040명의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가구가 조직된다. 도시 공간 구획, 토지 배분, 부의 재분배 기준 등을 비롯한 각종 제도들에 이어 결혼, 태교, 육아, 시민교육, 지도자 교육, 나아가 사법제도에 대한 구절이 이어진다. 교육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최상의 것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교육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Nomoi, 643b). 교육이란 다름 아닌 올바른 양육이며 올바른 양육이란, 놀이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이 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최대한 훌륭해질 수 있도록 마음먹도록 하는 것(Nomoi, 643d)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교육은 직업교육을 포함하지 않는다.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플라톤은 직업교육에 대해서는 교육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우수한 직무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상식과 교양이 결여된 못 배운 사람들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대신 덕 있는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심신을 잘 함양해온 사람들의 활동을 교육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마그네시아는 어린아이부터 좋은 교육을 위해 공동체 전체가 매진하는 일종의 교육공동체라 평가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공동체의 교육내용 중에는 마그네시아의 법률, 구체적으로는 전문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서곡 또는 전주곡(序曲, 또는 前奏曲, overture or prelude)은 전체 교향곡이나 악극의 내용을 요약해서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에 잘 날 멜로디를 먼저 들려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바그너의 악극 등에 등장하는 서곡이나 전주곡은 음악을 청중들에게 곡 전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기억을 증진시키며 감동을 고양시키게 된다. 플라톤 역시 법률에서 단순히 법조문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시민들의 직접적 변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고 전문을 통해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동의 변화를 모색하고자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도덕률과 관습에 따라 생활하지만, 때로는 법률과 충돌하게 된다. 공동체 내에서 법률과 규칙은 서로 간에 갈등을 예방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스어에서 법률과 관습이 모두 노모스(nomos)를 사용하는 것은 그 두 가지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습관이라고 한다면 관습은 집단이 사회 내에서 오랫동안 운영되어왔던 사회 운영의 기본 질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가 무규범(anomie) 상태에 빠졌을 때 사회는 내 것만을 주장하는 혼돈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관습의 약화 속에서 공동체는 명문화된 법률을 제정하고 때로는 강제성과 물리력을 동원하여 구성원의 기본권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개인에게 내재된 불만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플라톤은 법률을 잘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라고 판단했다. 시민들에게 법조문이 어떤 취지에서 제정되었으며, 그것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는 어떤 이익과 의의를 얻을 수 있는지를 상세히 서술해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치 의사들 중에서도 시민을 상대하는 의사들은 설득으로 환자가 온순해져 의사의 말을 잘 따르게 하고서야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Nomoi, 720c-d), 전문은 시민들이 법률을 기꺼운 마음으로 따르도록 설득하는 하는 일종의 서곡(序曲)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마그네시아에서 철학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입법가는 전체 법률과 개별 법률 앞에 언제나 전문을 덧붙여야 하며 시민들은 그 전문을 통해 법률의 역할에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준수해야 한다. 법이 지배당하고 권위를 잃은 나라에는 몰락이 임박해 있기 때문이다(Nomoi, 715d) 법률의 전문을 제정하고 시민들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은 오늘날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이 규칙을 제정하고 준수하는 소위 민주 시민적 경험과는 질적으로 구분된다. 전문은 하나의 사회적 제도와 규칙이 어떤 취지에서 생성되었는지 그 논리적 타당성과 정당성에 대해 검토하고 그것을 내면화함으로써 아직 지식과 경험이 일천한 학생들이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성을 가늠하는 매체로 기능한다. 규칙은 단순히 나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임의적으로 제정되고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척도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서만 정의가 완성될 수 있음을 플라톤은 강조한다. 전문을 확인하고 그것을 숙지해가는 과정은 공동체 최고의 지성들이 제정한 법률을 시민 개개인이 내면화하는 지성의 배분(Nomoi, 714a)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원용될 수 있다. 사유는 사라지고 실천만 남았다 삶에서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오딧세우스, 테세우스, 오이디푸스와 같은 지혜로운 영웅들도 자신들의 실수(hamartia)로 큰 잘못을 저질렀던 것을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내 무지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일 것이다. 하녀의 힐난에 대해 탈레스가 ‘나는 구덩이에서 빠져나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구덩이에 빠진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것은 나 자신과 주변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카오스(chaos), 즉 불확실하고 혼란한 세상 속에서 플라톤의 모색은 코스모스(cosmos), 즉 조화와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었다. 플라톤은 언제나 강조되어야 할 기본적인 원칙을 제안하고 그것이 개인과 공동체 운영의 기본 원리이자 교육 목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AI와 4차 산업혁명으로 무장한 현대사회가 과거와 엄청나게 달라 보이지만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심신으로 이뤄진 존재의 본질은 여전하다. 고전은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본성에서 출발하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원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의 삶과 교육에 풍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철학은 탈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유용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대부분 세속적 욕구에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아가지만, 새로운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는 무엇이 가장 진리에 가까운지 적극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사유는 사라진 채 실천만 남아버린 오늘날의 교육계에서 교육철학의 분전을 기대해본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불안했어요. 그런데 한 학기 만에 애가 달라지더라고요. 학교 가는 게 즐겁대요. 그 어렵다던 CAD 자격증도 거뜬히 따내고. 이젠 애 아빠도 네 꿈을 맘껏 펼쳐보라며 토닥여줍니다.” 서울 강서공고가 운영하는 학부모 평생교육프로그램에서 만난 우종선씨(50)는 “특성화고를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 씨는 자녀가 일반고에 진학해 대학생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아이는 자꾸만 특성화고를 고집했다. 아빠까지 나서 만류해 봤지만 소용 없었다. 대학 졸업장보다 미래를 밝혀주는 자격증을 더 갖고 싶다는 당당한 소신에 결국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우 씨는 그러면서 자신도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하는데, 이제는 학력보다 능력이 우선인 시대가 오는 거 아닌가요. 대졸 백수가 넘쳐나는 세상이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라는데 교육을 보는 가치관도 달라져야죠.” 특성화고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아직도 후진성을 띄고 있다. 대학 간판을 중시하는 학벌주의가 여전한 탓이다. 기성세대에게는 실업고란 단어에 더 익숙하다. 70~80년대 산업화 시대,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도 한몫한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특성화고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린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청춘들이 늘었다. 기회의 폭이 넓다 보니 직업 선택도 다양하다. 일반 기업체는 물론 공무원이나 공기업으로 진출도 활발하다. 대학 진학도 일반고보다 유리하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게 특성화고의 매력이다. 서울 강서구 방화대로 47길 강서공업고등학교. 건축과, 친환경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과, VR콘텐츠디자인과 등 모두 4개과 600여 명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미래를 개척하는 직업교육의 산실이다. 내년에는 4차 산업혁명에 맞춰 학과 재구조화를 추진, 친환경에너지화학과를 스마트케미컬과로 개편한다. 새로운 산업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 직업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다. 학생·학부모 만족도 최우수 … 학생들 자격증 3개는 기본 서울 외곽에 자리 잡은 작은 학교지만 성공한 특성화고로 정평이 나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수치로 확인된다. 1년에 한 번씩 하는 학교운영만족도 평가는 5.0 만점에 학생은 4,15, 학부모는 4.32, 교직원 4.66점을 각각 기록했다. 대부분 학교가 3점대에 머무르는 것과 비교하면 월등한 수치다. 입학 당시 가졌던 학부모의 불안은 3년 만에 신뢰와 만족으로 변했다. 가장 큰 원동력은 학생들의 변화였다. “교사들도 놀라요. 졸업 때 의젓해진 모습을 보면 저 아이들이 정말 우리가 가르친 애들이 맞는지 감탄하곤 하죠.” 이주암 교장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모든 교사들이 지극정성을 쏟는다고 했다. 직업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능은 물론 인성교육과 기초소양교육까지, 시쳇말로 끼고 앉아 가르친다. 이 교장은 한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강서공고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조금 더 감싸주고, 챙겨주고, 인정하고, 공감하면서 교사와 학생이 동행하는 교육, 그것이 강서공고”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이 학교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일주일 정도 단축 수업을 해가며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생 상담에 나선다. 한시라도 빨리 학생을 파악, 각자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다. 교사 1명 당 3~5명의 학생을 묶어 수시로 영화 보고 운동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진로 상담을 통해 고민도 들어준다. 진로가 명확해야 목표의식이 생겨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생각에 교사들은 학생들과 교감을 무척 중시한다. 정관용 교사는 “우리나라를 떠받치는 산업역군을 길러낸다는 사명감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사회에 나가 행복한 생활을 누리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침마다 반가운 인사 건네는 ‘등교맞이’… 행복한 학교로 탈바꿈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제자들을 향한 교사들의 마음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표적인 게 등교맞이 행사다. 아침마다 교장, 교감 및 교사들이 교문앞에서 학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간식을 제공한다. 지적하고 지적받는 아침등교 대신 교사와 학생이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으로 탈바꿈 했다. 김민용 교감은 “학생들에게 행복이 넘치는 학교, 등교하고 싶은 학교, 함께하는 학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마련했는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생들은 학교 가는 게 즐겁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들을 믿고 맡겨주는 학교, 자치활동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학교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했다. 지난 3월 4일 강서공고 입학식은 순전히 학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행사에는 이례적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까지 참석, 학생들을 멋진 솜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에너지 전문가가 꿈이라는 김민영 양(고3)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학교가 충분히 뒷 받침 해 주고 있다”며 “이런 활동들이 사회에 나가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극복해 내는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작지만 강한 학교 강서공고의 또 다른 강점은 내실 있는 교육이다.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 실적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작년 취업률은 자그마치 61%, 대학 진학률은 30% 가까이 된다. 비공식 집계이기는 하지만 취업률은 서울시내 1위다. 교사들의 열정과 학교의 전폭적 지원, 그리고 학생들 수준에 맞춰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가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삼위일체를 이룬 결과다. 이뿐 아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의 자격증 취득률은 300%. 학생 한 명 당 3개의 자격증을 가진 셈이다. 비결이 뭘까? 강서공고는 매력적인 직업계고 육성사업 즉, 매직 프로그램은 드론 레이싱 대회를 비롯 50여 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영미문화체험, 인문학 아카데미, 화장품 만들기, 인성캠프 등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공부만 시킨다고 생각하면 오산. 매직 프로그램에는 학생들의 마음껏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취미 활동도 골고루 담겨있다. 체력 향상을 위한 배드민턴반부터 1인 1악기 다루기, 동아리 밴드 활동, 사랑의 하모니란 이름의 합창대회까지 풍성하다. 학교 본관 건물엔 학생들이 언제든 공연할 수 있는 쉼터라운지가 설치돼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 각종 댄스와 노래, 랩, 그룹사운드 공연이 펼쳐진다. 눈여겨볼 만한 것 중에는 FDA 프로그램이란 것도 있다. 학생들의 기초역량을 탄탄히 다진 후 자격증 취득과 취업까지 연계시키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영어와 수학에 대한 기초학력 다지기.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교사들이 자체 제작한 교재를 이용, 인증제를 통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간다. 졸업할 때쯤이면 웬만한 ‘생존영어’는 구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이 같은 노력이 알려지면서 강서공고는 교육부 지정, 특성화고 영어 시범학교로 운영되기도 했다. 다양한 전공동아리 활동도 학생들의 취업과 진학에 결정적 도움을 준다. 전문교과의 프로젝트 수업 활성화로 발표수업, 협동학습 등 자기주도적인 전문능력을 배양해 나가는 것이 특징.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은 특히 전공동아리 활동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청에 근무하고 있는 강민우 씨. 그는 2학년 때 공무원 대비반에 들어가 공부한 덕에 명문대 출신도 어렵다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방과후에 한두 시간씩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 것이 효과가 컸어요. 무엇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시험에 그대로 출제되는 바람에 깜짝 놀랐죠” 그는 “시험장에서 강서공고 선생님들의 실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며 “참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졸업성적이 내신 60%대였다는 강 씨. 그는 특히 중3과 고1 담임선생님 두 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고교시절 공부가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민우야 넌 잘 할 거야”라며 늘 격려해주던 고 1학년 담임선생님. 그리고 고등학교 선택을 놓고 고민할 때 자신의 손을 잡고 강서공고까지 직접 데려다준 중학교 선생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입사한 송하명 씨. 그 역시 중학교 땐 공부에 흥미가 없는 중하위권 학생이었지만 강서공고에 진학해 완전히 새사람이 된 케이스다. 송 씨는 공부에 대한 의지가 흔들릴 때마다 “미래의 너를 상상하라”는 선생님 말씀을 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매일 학교에 20분씩 일찍 오는 성실한 자세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지금 국내 최고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 변두리 작은 학교에서 신흥 명문 특성화고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처럼 제자 사랑에 전력투구한 88명의 교직원들이 열정이 밑거름됐다. 이 교장은 지구를 떠받치는 아틀라스처럼 헌신적인 선생님들이 있기에 늘 든든하다고 했다.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대한 밀어주는 게 학교의 역할이죠. 저희에게 아이를 맡겨주시면 우리 학교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이 교장은 “학생들의 능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3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특성화고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언제든 강서공고를 찾아 달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긴다는 보장이 있으면 진행하겠습니다. 이길 수 있나요?” “이길 확률이 몇 %나 될까요?” 의뢰인과 상담할 때 가장 답하기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질문은 필자가 모르는 법리나 법 조항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질문이다. 지는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 입는 경제적, 심리적 타격은 상당하기에 사람들은 승소의 확신을 가지고 소송을 진행하고 싶어 한다. 의뢰인이 그동안의 경과, 학교의 부당함, 우리 애의 억울함을 실컷 얘기하고 묻는 것은 한결같이 이길 수 있는지,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다. 알파고는 내부적으로 한수 한수 둘 때마다 실시간으로 승률이 표시된다고 한다. 그런데 소송은 그 자체가 누구 주장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이고, 상대방 특히, 학교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 괜히 그러한 조치를 할 리 만무하므로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그 결과 혹은 승률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소송을 하다 보면 승소를 확신했는데 지기도 하고, 질 것 같았는데 승소의 기쁨을 누리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러기에 필자에게 의뢰인이 “이길 수 있냐, 이길 확률이 얼마냐”고 물으면 “누구 주장이 맞는지 알아보는 절차가 소송입니다.”, “그걸 알아보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소송의 결과를 예측하기 더 어려운 이유는 같은 쟁점에 대해서도 법원의 판단이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법원을 구속하나 하급심 법원의 판결은 서로 참고만 할 뿐이다. 따라서 서로 충돌하는 하급심 법원 판결도 많다. 다음은 서로 상반된 결정을 한 학교폭력 관련 판결을 살펴보자. 입학 전에 한 학교폭력을 징계할 수 “있다 vs 없다” 고등학생에게 중학생 때 한 행위 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한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보아 징계할 수 있을까? 교육부와 교육청은 입학 전의 행위도 학교폭력으로 보아 징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졸업 후 입학 전에 발생한 사안은 입학하기 전이라면 졸업한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고(졸업했다고 하더라도 2월 말까지는 해당 학교의 학생이다), 입학한 후라면 입학한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여야 한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쟁점 사안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대구고등법원은 다음과 같이 상반된 결정을 하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7카합80664 사건에서 “이 사건 전학처분은 채권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저지른 행위로서 애초에 징계사유가 될 수 없는 사유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므로 그 자체로 위법하다는 점도 지적하여 둔다”는 내용으로 입학 전의 행위를 징계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대구고등법원은 2018누2620 판결에서 “①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제1호는 학교 외에서 발생한 학생에 대한 상해, 폭행 등의 행위도 학교폭력에 포함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의 발생 시점이나 징계 시점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한 점, ②학교폭력으로 인한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에 관해서는 그 조치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제척기간이나 공소시효 등에 관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 점, ③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에 있는 것이고(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 학교폭력 발생 이후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였다고 해서 위와 같은 피해학생의 보호 및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의 필요성이 소멸한다고 볼 수 없는 점, ④원고 주장대로라면, 중학교 졸업 무렵에 발생한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상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어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는 점을 각각 들었다. 이를 종합해 학교폭력이 중학교 재학 중에 발생한 경우에도 당해 가해학생이 소속된 고등학교장은 가해학생에 대하여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따라 소정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입학 전의 행위라도 상급학교의 장이 징계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구고등법원이 서울중앙지방법원보다 상급법원이며, 나중에 판시한 최신 판결이라는 점에서 징계가 가능하다는 논거가 조금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개 모두 하급심 법원의 판결이므로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다툼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호자 간의 감정싸움은 학생에 대한 징계 양정의 고려사유가 “된다 vs 안된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안은 보호자들 간 감정싸움에서 시작된다. 가해학생 보호자가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인데, “우리 애도 억울하다. 그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 형사고소, 민사소송, 행정소송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어 가해학생의 조치를 결정할 때 보호자끼리의 감정싸움 또는 갈등이 징계양정의 고려사유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상반된 판결이 있다.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1358 판결은 “원고와 ○○○의 각 부모는, ○○○의 모친이 2014년 11월 27일 학교 교실에서 원고 등을 야단친 것과 원고의 모친이 이를 문제 삼으며 ○○○의 모친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각서를 요구하고 협박죄로 형사고소하려 했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여 화해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바,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학부모 간의 갈등이 원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서는 아니 되는 점”을 재량권 일탈·남용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원고가 받은 1, 2, 5호 처분 중 2, 5호 처분을 취소하였다(이외에도 재량권 일탈·남용 사유가 더 있었음).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6957 판결은 “원고와 원고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거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목격한 학생에게 유리한 진술을 부탁하고 피해자를 먼저 고소하는 등 현명하지 못한 비교육적·감정적 대처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판시하면서 원고가 받은 전학처분이 타당하다고 결정하였다. 보호자 간의 갈등은「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의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가해학생의 화해 정도’에서 고려할 수 있는 요소이나,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학부모 간의 갈등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수준에 고려하면 안 된다는 것이 위 판결들의 취지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본질적인 부분인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다. SNS 단체 대화방 험담은 학교폭력이 “된다 vs 안된다” SNS 단체 대화방 내에서 다른 학생을 험담하거나 성희롱하여 학교폭력으로 문제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초·중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 회사에서도 문제가 되며 최근에는 언론 기자들 단체 대화방도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 법원은 대화방에 참여한 숫자, 구성원들의 관계, 자유롭게 대화방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를 가지고 학교폭력 여부를 판단한다. 즉, 앞에 소개한 상반된 사례와 달리 이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44674 판결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내에서의 이 사건 대화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원고 등의 대화는 전체적으로 ○○○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불만 등을 토로하는 내용에 해당하고, 이러한 대화 과정에서 욕설이나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욕설 중 상당 부분은 원고 또는 □□□이 스스로에 대하여 자조적으로 내뱉은 것에 불과하며, ○○○과 관련된 부분 또한 ○○○에게 직접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가하기 위한 공격이 아니라, 위와 같은 비난이나 욕설이 ○○○에게 도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을 제외한 채팅방 구성원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대화 자체를 쉽사리 학교폭력예방법에서 규정한 사이버 따돌림 등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여 소수가 참여한 대화방에서의 욕설이나 험담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그에 반해 서울행정법원 2018구합84607 판결은 “원고 ○○○은 이 사건 채팅방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사진을 편집하여 수차례 무단게시하고, 피해자의 외모를 비하하였으며, 모텔 사장인 피해자가 콘돔을 많이 준다는 등 성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였는 바, 당시 이 사건 채팅방에 피해자가 없었다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동급생들이 가입해 있는 위 채팅방의 성격 및 회원 규모 등에 비추어 볼 때 소수의 회원 사이에서의 폐쇄적인 온라인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자에 대한 전파 가능성이 현저하고, 원고 ○○○으로서도 위 채팅방에서 발언하면서 위 발언 내용을 피해자가 알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위와 같은 채팅 내용이 피해자에게 알려져 피해자는 자살 충동을 호소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따라서 원고 ○○○의 행위가 반드시 피해자의 면전에서 이뤄진 직접적 가해행위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에게 전달될 것을 예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전달되어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를 수반한 이상, 위 행위는 단순한 ‘뒷담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모욕으로서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하여 반 단체 대화방에서 특정 학생을 비하하고 험담한 것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결정하였다. 어떠한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해당 조치가 과한지 적정한지, 절차적 위법이 존재하는지는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그때그때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즉,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정이 타당한지는 계량화되고 객관화된 수치로 표현할 수 없고 결국은 판단자의 주관과 상식, 경험에 의해서 규범적으로 결정하기에 정답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직까지는 변호사, 판사를 알파고가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젊은 여선생님이 겨울방학 때 하브루타 연수를 받은 후 3월부터 이 기법을 사용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이 휴직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태를 전한 제자에 따르면 문제는 그 반에 있던 아주 반항적이면서도 설득력이 강한 한 학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브루타 기법에 따라 ‘짝 토론’을 실시하면서 이 아이를 거쳐 간 다른 아이들이 점차 그 아이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어 달이 지나자 반 전체 아이들이 그 아이처럼 변하여 선생님과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더 이상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선생님은 병가를 내고 잠시 학교를 떠났다. 이는 하나의 극단적인 예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배웠던 기법을 적용하여 수업과 학급경영을 하다가 실패하여 중도 포기한 선생님들의 사례는 많다. 교수법이 만능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다 어떤 교수법을 배워 적용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즉, 학생들의 변화, 지식습득, 역량 강화에 실패했다면 왜 그리되었는지 분석을 해봐야 한다. 먼저 살필 것은 사용한 교수법과 교육내용 및 목적, 교사, 학생, 상황 등과의 적합성이다. 즉, 해당 교수법의 목적과 적용, 전제 조건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어떤 하나의 교수법이 만능 도깨비방망이일 수는 없다. 먼저 교육내용 및 목적에 적합한 교수법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일 어려운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발전된 형태의 강의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발견학습법은 소프트웨어 사용법 등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경우에 활용할 수 있는 학습법이다. 이어서 고려할 것은 교사의 특성이다. 자신이 활용하고자 하는 교수법이 자신의 특성에 부합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고자 할 때에는 판서를 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PPT를 보여주면서 가르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글씨가 엉망이고 글씨 쓰는 속도도 느리지만 PPT 제작이 뛰어나다면 이를 활용하면서 학생들의 즉시인출을 유도하는 것이 낫다. 여기서 말하는 즉시인출이란 배우고 있는 내용을 자신의 뇌를 활용해 정리하고, 질문 등 떠오르는 생각까지를 노트에 정리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학생수 등을 포함한 상황 여건에도 부합해야 한다. 개별화 학습이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학급당 학생수가 20여 명을 넘고, 보조교사도 없으며, AI 학습 프로그램의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개별화 학습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교사와 학생이 해당 교수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브루타 기법을 적용하려면 학생과 교사가 이 기법의 목적,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 적용을 위한 전제 조건, 적용 시 유의점, 실패 요인 등에 대해 몇 번에 걸쳐 함께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위해서는 하브루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교사 주도로 설명을 하고, 그 과정 중에도 학생들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그다음으로는 학생들이 이 기법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거꾸로학습을 하려고 했더니 “그냥 하던 대로 하지 왜 괴롭히느냐”며 저항하더라는 선생님의 하소연도 있다. 새 기법이 성공하려면 교사만이 아니라 학생도 새로운 기법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공감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생각을 나누고 모아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학년 수준에 맞게 질문 용어는 바꾸어야 할 것이다. ● 이 교수법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이 교수법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요? ● 이 교수법의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는 무엇인가요? ● 이 교수법이 성공하기 위해 교사, 학생이 갖추어야 할 지식과 역량은 무엇인가요? ● 이 교수법을 성공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과 환경, 여건은 무엇인가요? ● 이 교수법은 어떤 과목(혹은 주제)에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 이 교수법을 적용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훈련(연습)은 무엇일까요? ● 이 교수법 적용 시 자주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 그 문제를 줄이기 위해 어떤 준비나 노력이 필요할까요? ● 앞의 질문들을 고려할 때 이 교수법을 우리 수업에 적용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이 질문들에 대해 교사와 학생 개개인이 답을 시도한 후에 두 사람이 짝을 이뤄 생각을 나누게 하고, 이어서 전체가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거치면 교사와 학생은 이 기법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위의 질문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써보게 하면 이 기법을 좀 더 잘 알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교수법은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신의 비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머리(뇌세포)가 기억한다고 하여 몸(근육 세포)이 이를 자연스럽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새로 배울 때 처음에는 동작 하나하나를 의식하면서 행한다. 이 단계에서는 동작이 자연스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에너지 소비도 크다. 몸에 익어 자연스럽게 실행할 수 있는 수준 즉, ‘적응무의식 상태’에서 실행할 수 있으려면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가 그 수준에 이르면 개별 동작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해당 활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다. 걷기, 말하기, 춤추기, 타이핑하기, 혹은 특정 운동하기 등등 그 예는 참으로 많다. 우리 일상의 삶 대부분은 적응무의식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교수법을 이 정도로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을 때 해당 교수법이 의도한 효과를 맛볼 수 있다. 어떤 좋은 연장을 구했을 때 이를 곧바로 사용하기보다는 사용법을 읽고 이해한 후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가벼운 연습을 통해 연장을 다루는 데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수법 혹은 학습법에 대해 선생님만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새로운 교수법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교수법을 배워서 자연스럽게 적용하기까지는 많은 실패와 노력이 필요하다. 실패했다고 바로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수법 적용은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신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신은 이 비밀의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끈기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 그 문이 열린다. 2007년 노벨 화학상 체카노바 교수의 말처럼 실패에서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실험은 99% 실패하는 것이 정상이므로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는 ‘성공적이지 않은 실험’일 뿐이다(헤츠키 아리엘리·김진자, 2014: 186). 그 다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왜 성공적이지 않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적용 과정에서 방법이나 절차가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실수한 것은 없었는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분석해야 한다. 성공적이지 못한 이유를 모두 적고 하나씩 고쳐가는 방식으로 수업을 재구성해가다 보면 수업 내용과 목적, 그리고 자신과 학생들에게 적합한 교수법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