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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김진영 | 건국대 교수·경제학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참여정부 교육인적자원개발 혁신 로드맵’에서는 고등교육 부문의 궁극적 목표를 ‘세계적 수준의 고등교육 경쟁력 확보’라고 선언하면서 향후 정부가 추진할 고등교육 부문 세부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지식기반경제로 전환된 새로운 세기에서 지식을 창출하고 전수하는 고등교육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미 고등학교 졸업생들 모두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만큼 고등교육의 공급이 양적으로 팽창된 상태에서 고등교육 부문의 목표로는 교육연구의 질 제고를 통한 대학 경쟁력 강화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면서 고등교육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번 로드맵에서 제시된 주요 과제들을 소개하고 과제 선정의 적절성과 과제별 개선과제 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교수 1인당 4년제 대학생 40명 우선 고등교육의 경쟁력 향상의 장애 요인으로 교육인적자원부는 ①지나친 양적 팽창으로 인한 전반적인 대학교육 여건 열악화 및 내부 혁신역량의 약화 ②대학의 백화점식 학과 설치 등으로 인한 다양화·특성화 미흡 ③지방대학의 지역산업·사회와 연계 부족 등을 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이번 로드 맵에서는 ①대학의 교육연구 역량 강화 ②대학의 자율성 책무성 강화 ③지역발전 중심체로의 지방대학 육성이라는 세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진단이나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고등교육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국민들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으로 인한 질적 저하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이 세부 과제 속에서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해 두고자 한다. 양적 팽창과 그로 인한 교육여건 악화가 우리 교육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라면 양적 팽창이나 교육여건 악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즉 대학 정원을 줄여나가는 계획이나 교원확충 계획이 이번 로드맵에서도 제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통계청에서는 대학입학 대상연령 인구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여 2030년에 47만 6000명, 즉 현재 대학 정원의 73%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7년 후는 멀기만 한 미래가 아니기 때문에 대학 정원을 줄이기 위한 장기적 계획의 수립은 지금부터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1990년대에 인구 추계를 고려하지 못한 양적 팽창이 불과 10여년 정도 지난 지금의 고등교육 위기 상황과 관련이 깊음을 인식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양적 팽창과 관련하여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교원 확보 노력이 충분히 언급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2002년도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4년제 대학이 40.1명, 전문대학이 79.2명으로 이는 선진국 수준에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우리 나라의 1980년도 수준에도 크게 미달되는 실정이다. 물론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구역량 강화는 우수한 교원 확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수한 인력이 대학에 모일 수 있는 체제가 확립되어야 고등교육의 질적 발전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대학 정원 축소 방안과 교원 확보 방안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이번 발표에서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선 지적해 두면서 각 정책방향 별 세부 목표들을 검토해 본다. 기초학문 육성 강조 바람직 대학의 교육연구 역량 강화라는 정책방향과 관련하여 ①두뇌한국 21 사업의 내실화 ②안정적인 기초학문 보호 육성 ③교육연구의 국제화 추진 ④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 ⑤학술·연구 정보 공동활용 확산이라는 세부 과제들이 제시되어 있다. 우선 기초학문 보호 육성 항목이 외면되지 않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흔히 대학의 경쟁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대학 당국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수요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고, 그로 인해 기초학문은 사회적인 수요가 큼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이 쉽게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초학문 보호와 육성에 있어서는 국가가 적극 나서야만 한다. 인문계 기초학문육성이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대처방안 마련이 신속히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분명 시급한 현안이다. 특히 국립대학들이 그 설립취지를 살려 기초학문을 보호 육성하고 사회적 수요가 큰 이공계 학생들을 대학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두뇌한국 21은 적지 않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중심 대학 육성과 대학원 연구역량 강화를 위한 정부의 가시적인 노력을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학원 연구력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교육인적자원부의 고등교육 재정지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면에서도 두뇌한국 21의 기본 취지를 계승하는 프로그램이 2005년 두뇌한국 21의 종료 후에도 존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사업에 여러 목표가 중첩되면서 그 효율성을 잃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 만큼 이를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기초로 한 연구지원으로 사업 목표와 내용을 단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대학 시간 강사들의 처우 개선은 근본적으로 시간 강사들을 전임교원으로 전환하려는 노력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현재 우리 나라는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에는 전임교원 수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전임 교원 수가 부족하고 동시에 전임 교원이 될 수 있는 많은 인력들이 실력에 부합하는 처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전임교원의 확충이야말로 강사의 처우개선을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강사뿐 아니라 전문인력에 대한 보상이 전반적으로 낮은 편인데 인간의 지적 자산에 대한 적절한 보상 없이 지식기반경제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전임 강사들을 비롯한 학자들이 축적해 온 인적 자본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 없이 지식을 창조하고 전수하는 활동이 지속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세 가지 목표들에 비하여 교육연구의 국제화나 학술·연구 정보 공동활용 확산과 같은 목표들은 그 실천을 위한 세부방안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와 닿지 않는다. 국제화가 단지 구호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문민정부 시대에도 이미 경험했던 바이다. 그 당시 국제화라는 구호 속에서 많은 대학교들이 경쟁적으로 설립했던 국제대학원들 중에는 이미 사라진 것들도 있으며, 명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기획했던 모습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성공하지 못했던 사례가 있는 만큼 교육연구의 국제화가 갖는 의미를 분명히 하고 그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국제화와 같은 추상적인 과제는 구호에서만 머무를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의 국제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학술 연구 정보의 공유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는 상황에서는 이들 목표가 궁극적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 둔다. 대학평가전담기구 설치 신중 기해야 대학의 자율성·책무성 강화라는 정책 방향에서는 ①대학 운영의 자율화 확대 ②대학 특성화를 위한 구조조정 추진 ③학사운영의 다양화·유연화 및 현장 적합성 제고 ④종합적인 대학평가·재정지원을 담당할 별도 전문기구 설치 등을 세부 과제로 삼고 있다.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 강화는 현재와 같이 특성이 없는 대학들이 수능성적을 기준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현실을 대학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극복하자는 의도로 풀이하고 싶다. 사실 그 동안 우리 나라의 대학들은 다양화·특성화를 통해 학교의 개성을 키우기보다는 서열화 구조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 왔으며 그러한 노력 속에서도 서열화 구조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 나라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약하게 된 이유로는 각 대학들이 국내에서 확보된 서열에 안주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들 수 있다. 인지도가 높은 학교는 높은 학교대로, 낮은 학교는 낮은 학교대로 보다 발전하고자 하는 유인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서열화 구조를 극복하는 길로 다양화·특성화 외의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학교 별로 마련되는 발전 계획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떨지는 모르지만 철저하게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다양화·특성화는 말 그대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 확보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학사운영의 다양화·유연화 및 현장 적합성 제고는 수요자 중심 교육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공급자들이 틀에 박힌 공급을 하더라도 고등교육에 대한 넘치는 수요로 인해 아무 어려움 없이 학생들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교육수요자들과 사회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 없이는 대학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이 자율적으로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학사운영을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들을 철폐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학평가와 재정지원을 담당할 별도의 전문기구 설치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학평가와 재정지원을 위한 전문기구 설치는 평가에 의한 차등지원을 향후에도 재정지원의 기조로 삼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현 단계에서 평가전담기구 설치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현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이 지나치게 대학 일변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 개인에 대한 직접지원의 비중이 가장 낮고 기관에 대한 지원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단지 선진국들의 체계를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정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대학 서열화를 지양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에 대한 지원을 늘일 필요가 있다. 만약 개인이나 연구소 등 소단위에 대한 직접지원을 위주로 지원체계를 재편하고자 한다면 기관을 평가하는 전문기구보다는 엄격한 동료평가체제(peer review system)를 구축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수 있다. 대학이라는 기관을 평가하기 위한 전담기구가 필요한 지, 만약 필요하다면 어떤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어느 정도 규모를 가져야 할 지 등의 문제는 재정지원의 전반적인 기조, 즉 지금과 같은 기관지원 중심 체계를 유지할 것인지 연구자나 학생에 대한 직접지원을 확대할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한 보다 많은 고민을 한 다음에 차분히 생각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지방대 육성은 지역경제 활성화는 인과관계 마지막 지역발전 중심체로의 지방대학 육성에서는 ①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 프로젝트 추진 ②지역혁신 네트워크 구축 ③학생미달현상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 ④지방대학 e-learning 기반 확충 및 활성화 추진 등이 세부 과제로 제시되어 있다. 지방대학의 육성과 관련된 과제들은 지방대학 육성이 단지 대학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으며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보다 넓은 틀 속에 지방대학 육성이 한 축을 차지해야 한다는 기본인식 아래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지방대학 육성은 사실 대학의 국제적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대학 육성 사이에는 상호 인과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방대학 발전과 지방대학 육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야만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방대학 육성은 대학육성을 통해서만, 또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관련 부처들의 협업 및 분업 체계를 구축해 가기를 기대한다. 한편 학생 미달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이 중요한 과제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구조조정을 통한 정원 감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 정원을 유지한다면 학생 미달 현상은 영구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방대학의 발전 모델은 일부 국립대를 제외한다면 다양한 전공을 거느린 대규모 학교보다는 특성화된 부분에서 소수 정예를 집중 육성하는 형태를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원 축소를 포함하는 구조조정 노력이 상당 기간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지역산업에 대한 인적자원의 공급원으로서의 전문대 역할은 4년제 대학 못지 않게 중요한 바, 지방전문대 육성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계적 수준의 고등교육 경쟁력 확보는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세부과제로 내세운 모든 과제들은 상당한 인내를 가지고 체계적인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질 때만 가시적인 성과가 조금씩 나타
김영덕 | 강원사대부고 교장 요즘 우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다. 모든 분야에서 산만하고 다양한 불협화음이 쏟아져 나온다. 규율과 질서의 상징인 군에서 성추행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있었고 현직 교육감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공직에서 물러나거나 구속되었다. 이름 있는 기업인이 투신자살하였고 동맹국의 훈련 중인 장갑차를 점거하여 국기를 불태운 사건도 있었다. 사회 도처에 부도덕과 무책임과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 목적만 훌륭하면 수단은 어떠해도 좋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무시해도 떳떳하게 여기는 세상이다. 왜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왜 이렇게 원칙을 중시하는 가치체계가 손상을 입었는가? 교육자의 한사람으로서 이 모든 것이 교육의 탓인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는 그 동안 교육이념에 대해 뚜렷한 합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교육정책을 수립하거나 교육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으며 학생을 수단시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이끌어 주고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면도 있으며, 교수-학습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평가요소와 기준을 너무 온정적으로 설정하고 처리하여 평가의 목적 달성에 실패한 측면도 있다. 우리는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적인 인간 육성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으나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원칙중심의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교육하는 일은 등한히 한 경향이 있다. 특히 법과 원칙, 도덕성 우선의 삶을 최선의 가치로 삼고 합리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양을 기르는 교육을 잘 하지 못한 것 같다. 오로지 학교 교육과정을 개인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창한 교육목표를 세워두고도 단지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업을 갖도록 하는 것만으로 교육이 제대로 된 것인 양 착각해 왔다. 학생들은 소위 일류대학에 합격만 하면 칭송과 부러움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졸업했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은 그 점을 소리 높여 개탄하면서도 제대로 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는 높지 못하다. 교육여건이 호전되고 교사의 자질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교육과 관련하여 해외로 유실되는 현상은 점점 심해지는 실정이다. 선진국 못지 않은 교육 인프라가 구축됐지만 여전히 사회는 학교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를 부조리의 온상인 듯 몰아세우는 사람도 있고 사교육에 비해 공교육이 무능하다며 마구잡이로 질타하는 사람도 많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매년 증가하고 있음에도 모든 잘못이 교육을 담당한 집단에게만 있는양 책임을 호도하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정치·경제·사회 등 교육 외적 상황은 교육의 내적 발전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학교는 국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교육 현장의 갈등을 해소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를 위하여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견뎌냈다. 교육사회 구성원에 대한 오해와 질타도 참고 견디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원칙중심의 올바른 교육환경을 조성하는데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으며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회의 주역이 되는 당당한 사람을 길러내는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능력주의를 조장하며 신자유주의와 분배주의가 갈등을 뛰어넘어 조화롭게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학교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도록 교육이념을 정립하고 사회통합의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21세기를 살아갈 역량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국가와 사회도 학교가 학생을 교육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원칙 중심의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학교는 진정으로 당당한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 한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 당당한 사람이다. 원칙 중심의 바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준법정신이 투철하며 타인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당당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원칙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인격을 신뢰한다. 원칙 중심의 삶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우리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 우리가 가진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도 해 준다. 당당한 사람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나만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남을 배려한다. 또 당당한 사람은 헝클어진 질서를 바로 세우고 사회와 조직의 어른을 공경하는 데에도 모범적이다. 당당한 사람은 고마워할 줄 모르고 은혜를 잊어버리는 병든 사회를 합리적이고 명랑한 사회로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원칙을 지키는 당당한 사람을 기르는데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삼호 | 전남 광양 골약초 교감 고향!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곳, 우리들 그리움의 깊은 밑바닥. 하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는 잘못을 저지른 후 아버지 앞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고향은 언제나 저 만치서 아련한 추억으로만 서 있다. 어느 땐가는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잠 못 이루는 밤을 누구나 한 번쯤은 맞이했으리라. 고향을 생각할 때 어머니 품속같이 따스하리라는 것은 혼자의 바램뿐이고 너무나 오랜만의 방문이라 어색하고 쑥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홀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몇 명 있는 고향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는 편이 못되었고 더구나 승진이 늦어 행여 내 직위를 물어오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워 고향 사람들을 슬슬 피하고 다니는 처지였다. 그러나 고향은 고향인지라 가끔 꿈자리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고향의 꿈을 꾸는 날은 고향의 그리움으로 내 마음이 산산 조각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럴 때는 아내를 달래어, 아니 아내를 방패막이로 삼아서 고향을 찾는다. 풀 죽은 모습으로 어릴 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묻어 있는 동구 밖의 쉼터, 내 어릴 때의 깔깔 웃음이 남아 있는 뒷동산, 그리고 마을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가슴속이 이내 차분해지면서 울적하기까지 하다. 푸르게 우거져 있어야 할 대나무 숲은 죽공예품의 사양화를 증명이나 하듯 ‘돈 버짐’ 앓는 머리처럼 마구 죽어가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배나무를 파 해치고 텃밭을 일구어 놓아 청죽에 대한 자부심과 부촌이라는 인상은 없어지고 꾀죄죄한 느낌만 들뿐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우거진 수풀이었다. 내 어린 시절엔 사람의 키를 넘는 나무가 흔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나무는 땔감으로 모두 베어 썼으며 나무 뿌리까지도 팽이로 파서 땔감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어려서 자란 집으로 가보았다. 언제나 나에게 푸른 꿈을 선사했던 아름드리 미루나무는 베어지고 그 자리에는 엉성한 나무 등걸만 썩어가고 있었다. 중학시절 십여리 떨어진 읍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읍내에 사는 아이들의 텃새가 몹시 심했던 시절이었다. 하교 길에 조심조심 읍을 빠져 나와 아담한 ‘더터리 고개’를 넘으면 어머니 품속같이 정답고 포근한 우리 마을이 들판 저편에 그림같이 펼쳐 있었다. 마을의 형상이 황소가 드러누운 모양이라 해서 ‘와우터’라고 이름하며 또한 ‘솟쿠리터’라고도 이름한 13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꿈속같이 평안하고 아름다운 우리 마을! 마을이 보이면서부터 긴장은 풀어진다. 저기는 형덕이 집, 이쪽에는 석순이 집, 그리고 대밭 가에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는 미루나무가 있는 곳은 우리 집이다. 그 미루나무는 언제나 나의 자랑거리였다. 내 어린 시절 나의 꿈을 키워주던 우뚝 솟은 미루나무! 마음이 우울할 땐 청운의 큰 뜻을 당당히 펼친 듯한 그 나무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고 가을이 되면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불어오는 바람에 잘랑잘랑 내는 그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 그래서 멀리서도 가장 잘 보였고 까치가 귀했던 시절 언제나 까치가 집을 지었던 그 나무. 내 꿈이 머물렀던 그 미루나무가 없어진 것이 못내 서운하다.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대밭 가 팽나무를 쳐다보니 이게 웬 기쁨인가! 거기에는 까치집이 두 개나 걸려있지 않는가! 내 어릴 때 미루나무에 집을 지었던 그 가치의 손자, 혹은 그 손자의 손자, 그 몇 대의 후손 까치가 지금 저 팽나무에 둥지를 틀지는 않았는지? 그때의 소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나이로 몇 대 후손의 까치가 지은 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빠른 것이 세월이라 했던가. 까치집! 내 어릴 땐 행운과 평화와 기쁜 소식의 상징인 까치가 날아오면 우리들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카약! 카약! 카약!’ 힘차고 투명한 그 까치 소리를 들으면서 삶의 생동감을 느끼고 미래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흐뭇한 마음을 안고 마을을 가로질러 ‘여싯머리’로 향했다. 어린 시절 너무나 황폐했던 땅, 밤이면 여우가 찾아와 기분 나쁜 울음을 울고 새로 만든 묘지에 구멍을 파면서 시체를 염탐하던 곳, 6.25 전란 중에 죽은 사람들을 많이 묻어 두었던 곳, 그래서 한 낮이라 해도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던 곳이다. 그러했던 ‘여싯머리’에도 소나무 밤나무 사과나무 등이 울울창창하여 마치 하나의 조용한 공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은 계속 초라해 지고 있지만 이 동산은 숲으로 우거지고 있다. 쓸쓸한 마음에 그나마 위안이 찾아온다. 숲 속에 자리한 아내와 나는 고향의 냄새에 취해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니 고향의 품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소란스러움이 시작되었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찌르레기 떼가 몰려왔다. 해맑은 목소리로 제법 쩌렁쩌렁한 소리로 사방을 어수선하게 날아다녔다. 벌레를 쪼으려고 그 뒤를 곡선을 그으며 나르는 놈, 암수가 한데 헝클어져 수풀 속으로 숨는 놈, 괜스레 상대방을 쪼으려는 듯 장난을 거는 놈, 그야말로 옛 시절 흥청대던 시골 장터 같았다. 기껏해야 무릎 정도의 가냘픈 나무 몇 그루였던 이 동산이 이제는 반 아름드리 나무로 뒤덮였고 이렇게 많은 새떼들이 찾아와 우짖으니 이곳이 정녕 내 고향 ‘여싯머리’가 맞는지 아니면 꿈속에서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인지…. 새소리에, 새들의 희롱하는 장난에 취해 넋을 잃고 있으려니 저절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무더위 속에서 풀베기 작업에 찌들고 있을 여름의 끝 무렵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빨간 고추잠자리가 마당 가득히 날아다니던 아름다웠던 그 풍경. 지금 내 머리 위에서 삶의 전율을 느끼게 하며 날아다니는 찌르레기들은 지난날 고추잠자리의 영혼들이 아닐까? 저만큼 떨어진 밭에서 김을 매던 중년의 여인은 새소리에 놀라 ‘훠이! 훠이!’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안타깝다. 새들의 지저귐 속에, 새들의 희롱하는 장난 속에 파묻힐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짧은 인생에 몇 번이나 찾아올 것인가? 새들이 날아다니는 동안 모든 게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딱딱하던 밭의 흙은 부드러워졌으며 치렁치렁 늘어뜨린 사과나무 가지는 고염 같은 작은 열매를 흔들며 상큼한 냄새를 뿜어내 새들의 놀이를 축복해 주었고 하얗게 핀 밤꽃은 향 짙은 밤꿀을 뿌려주었으며, 엉거주춤 서있는 소나무들은 새로 돋아난 잎들을 움직여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새와 나무와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초여름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을 때 하늘은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도심의 쇠창살 같은 딱딱한 생활에서 벗어나 미풍을 마시며 젊음을 만끽하는 한 쌍의 범나비가 되어 5월의 푸른 동산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름다울 진저! 새와 나무와 인간이 같은 느낌으로 호흡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 시간, 세파에 떠밀리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자연과 동화되어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은 우리의 생애에 얼마나 될까? 자연은 진실로 위대한가보다. 아니, 고향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인가 보다. 내 어릴 때 그렇게 황폐했던 ‘여싯머리’ 동산이 이렇게 푸르게 뒤덮여졌고 그 많은 찌르레기들이 해맑은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음을 터뜨리며 쫓고 쫓기고 부비고 노래하고 상큼한 미풍이 이는 꿈의 동산으로 변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고향이 좋다. 아니, 나무가 좋다. 풀이 좋다. 새들이 좋다. 그리고 서쪽 하늘을 붉게 태우는 저녁 노을은 너무나 좋다. 이 계절, 이 시간쯤이면 모두가 선한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몇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광폭한 치한도, 남의 돈을 몽땅 긁어먹고 이 나라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던 어느 시커먼 배불뚝이 사장도 쇠창살 틈으로 멀리 보이는 붉게 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엄숙한 마음으로 고개 숙인 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다 직장 동료나 친구와 다투었던 사람들도 스스로 얼굴을 붉히면서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아집에 빠져서, 자기 욕심에 빠져서 오직 나의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고향은 가르친다. 멀리 보고 살라고, 긴 안목으로 살라고, 그리고 고향을 찾으며 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