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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육개발원(院長 李宗宰)은 간부 직원에 대한 인사를 26일자로 다음과 같이 발령했다. □ 본부장 △ 사교육연구특임센터 소장 김홍원(金洪遠) △ 사무국장 송관종(宋冠鍾) □ 실장 △ 학생학부모교육연구실장 박효정(朴孝貞) △ 교육조사연구실장 김양분(金良粉) △ 교육기관평가연구실장 정택희(鄭鐸熙) △ 학교제도연구실장 윤종혁(尹鍾赫) △ 교육행·재정연구실장 김흥주(金興柱) △ 교원·교육과정정책연구실장 유방란(柳芳蘭) △ 고등교육·인적자원연구실장 김안나(金安拏) △ 평생교육전략기획특임팀장 이재분(李在分) △ 정보자료실장 강성국(姜聲國) □ 팀장 △ 예산·규정팀장 고경숙(高京淑) △ 경리팀장 김우종(金宇鍾) △ 총무팀장 김무철(金武哲) △ 행정지원특임팀장 서종문(徐鍾文)
제2회 청소년 흡연예방 수기 및 지도사례 공모에서 '다양한 흡연예방 교육활동을 통한 금연지도'로 교사부문 대상을 수상한 제주 한림중 조상오 교사는 "우리 학교는 농어촌 학교이면서 인근에 한림공원, 협재해수욕장, 한림항 등이 어우러져 항상 흡연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금연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교사에 따르면 2001년 3월 학생 흡연실태 조사 결과, 상습흡연학생이 17명(5%), 피워본 학생은 82명(24.5%)로 나타나 흡연학생이 타교에 비해 높았다. 조 교사는 비흡연 학생들을 위한 예방교육 차원의 금연환경을 조성하고, 금연에 대한 의식을 습관화시킬 수 있도록 2001년부터 3년간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흡연예방 교육 및 금연교육에 주력해왔다. 주요 운영사례는 다음과 같다. ▲상습흡연학생 투입한 '학생금연운동추진위원회' 학생회를 통한 활동은 오히려 흡연학생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우리학교에서는 17명의 상습흡연 학생을 대상으로 개별상담과 집단상담을 통해 금연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동시에 금연을 위한 활동에 적극 동참토록 설득해 흡연예상지역 순찰, 교문에서의 금연계도 활동 등을 전개했다. 이 결과, 2가지 큰 효과를 얻었다. 흡연학생 본인이 순찰을 통해 지도하게 됨으로써 흡연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져 자연스럽게 교내 금연이 자리를 잡았으며, 또한 흡연학생이 금연운동에 앞장섬으로써 일반 학생들에게도 금연에 대한 파급효과가 높아져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흡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탐라5백리 자전거 도(道)일주 흡연예방 캠페인 2002년도와 2003년도 2박3일 일정으로 3학년 117명과 교사 12명, 학부모 30명이 제주도지방경찰청 지원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제주도 5백리(210km)에서 관광지 캠페인, 전단지 배포, 담배꽁초 줍기 등을 전개했다. ▲지역사회 유관기관과 연계한 흡연예방교육 북제주보건소, 한국건강관리협회제주도지부, 국제사회복지연구소, 제주시정신건강센터 등과 연계해 소집단 교육을 실시했다. 타교의 경우 외부강사는 보통 1회 초청강연이 주류지만 본교는 2개 학급을 1회 1시간으로 편성·운영함으로써 흡연예방교육의 질과 교육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전교생 호기일산화탄소 측정 검사 북제주보건소의 호기일산화탄소 측정기기를 임대하고 체육시간,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해 교내 금연교육실에서 학급별로 예고 없이 매년 6월과 9월 2차례 검사를 실시했다. 측정 결과, 정상판정수치인 8ppm보다 극히 낮은 수치인 1.12ppm-1.54ppm을 나타냄으로써2002년도부터 흡연학생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인근 학교에 대한 흡연예방교육 북제주군 서부지역 7개 중학교를 협력학교로 지정해 우리 학교의 우수한 흡연예방 프로그램을 투입했다. 특히, 흡연예방교육에는 직접 협력학교들을 방문해 금붕어실험, 페트병실험, 스모키인형 실험 등을 보여줌으로써 교육의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 ▲북제주군 서부지역 생활지도협의회와 연계 운동 매월 1회 생활지도협의회에 참가해 생활지도 담당교사들에게 교사연수를 실시했으며, 흡연예상지역 및 취약지구를 중심으로 흡연예방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효과를 얻었다.
고료가 인상되었는데도 응모 편수, 작품 수준이 예년보다 떨어지는 느낌을 주어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다시 피는 꽃'을 결정하는데는 어렵지 않게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은 세 편중에서 가작 1편을 어떤 작품으로 결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 편 모두 비슷한 장점과 결점을 지니고 있는데다 심사위원의 견해도 일치하지 않아 심사 숙고를 거듭해야만 했다. 그러다 결국 지방 문단에서 이미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네 편의 작품을 함께 응모하는 열성을 보였으며, 네 편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누가 운동화에 바퀴를 달았을까?'를 가작으로 결정하는데 합의할 수 있었다. 당선작 '다시 피는 꽃'은 실직한 아버지의 폭음과 방황 때문에 문제아로 변해버린 주인공이 아버지의 개심을 시점으로 다시 마음을 돌리는 이야기다. 흔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 창조에 성공한데다 구성과 문장이 흠 잡을 데가 없고 군더더기 없이 전개되는 스피디한 사건 처리가 이 작가의 역량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작으로 결정된 '누가 운동화에 바퀴를 달았을까?'도 어머니의 가출과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고아가 된 결손 가정의 형제가 일으키는 문제 행동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 두 형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성공적으로 표출하는데 작가의 문장 표현이 응집력이 부족했고, 결말 부분의 처리도 미숙해서 몇몇 문장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항상 반복되는 듯 여겨지는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목마름 속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은 제 삶이 빛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보잘것없는 제 마음이 소금이 될까 저어했습니다. 불순한 마음으로, 현실에 대한 반발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젠 미움도 세월에 삭아버렸고, 스스로 마음도 접었습니다. 미움은 나를 더욱 추하게 만든다는 진실을 깨달은 때문입니다. 빛이 되는 길, 소금이 되는 길을 걸어가렵니다. 더 나은 다른 분들의 글을 미루시고 보잘것없는 글에 힘과 영광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마음을 모아 감사 드리며 더욱 노력하라는 채찍질로 생각하며 정진하겠습니다. 삶의 굴곡을 지금껏 지켜오신 어머니는 물론 이미 다른 세상에 계신 아버님에게 이제 발돋움을 하고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곁에서 말없이 응원해 준 집사람과 아들 녀석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젊은 날 큰 나무의 가르침을 준 김 선생님께도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세상에 미천한 글을 내놓는 두려움을 마음에 새기며 항상 초심으로 순수하게, 풋풋하게, 철없이, 겁없이, 덜렁거리며 살려한다면 욕심일까요? 바보일까요?
1. '일철이 너 월요 일날 만나기만 해 봐라.' 씩씩대면서 현관문을 빠져 나오고 있는데 인숙이가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오더니 말을 건넸다. "햇빛아, 선생님께서 얼른 와서 교실 청소하고 가래." "야, 내가 지금 청소 같은 거 하게 생겼어. 너나 해. 그리고 올라가서 오늘 집에 일이 있어 그냥 간다고 말해. 알았어?" "알았어."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뒷걸음을 치는 인숙이의 뒤에 대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다들 나만 보면 꼼짝 못하는데 날 놀렸단 말이지.' 교문을 지나면서도 일철이가 반 아이들이 있는데서 놀린 것이 생각나 화가 치밀었다. 길가에 뒹구는 빈 캔을 발로 냅다 찼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굴러간 캔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멈추었다. 가게 출입문에 부딪히면서 서버린 것이었다. "누구야? 어떤 녀석이 캔을 버리고 가는 거야?" 문방구 집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며 소리쳤지만 모른 체 했다.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큰소리치고 야단이야.' 입을 삐죽 내밀면서 찍찍 끌고 가던 실내화 한 짝을 앞으로 픽 벗어 던졌다. 10미터 정도 앞에 있던 전봇대를 정확히 맞춘 실내화는 '짝' 소리를 경쾌하게 내고는 아래로 떨어졌다. '역시 내 실력은 변함이 없어.'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서 가끔 실내화를 벗어 아이들을 맞추던 솜씨가 여전함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대체 일철이에게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알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선생님은 왜 나만 그렇게 미워하는 거야? 내가 미운 오리 새끼라도 된다는 건가?' 집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당구장으로 가기로 했다. 술에 취해 있을 아빠가 있는 집에 가보아야 뻔한 일이고, 우선 허기진 배를 달래야 했다. 당구장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열심히 왁스를 묻힌 천으로 공을 닦고 있던 엄마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햇빛이 왔니. 얼굴은 왜 그 모양이니?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니. 그냥…. 별일 없었어." "너 또 누구하고 싸웠구나?" "싸우긴? 내가 뭐 싸움꾼인줄 알아!" 엄마의 말을 팽하니 쏘아붙였다. 가방을 카운터 뒤쪽으로 던져 놓고는 냉장고 손잡이를 당겼다. 손에 닿는 음료수를 꺼내 마개를 돌렸다. "햇빛아, 문짝 쪽으로 따놓은 음료수 있으니 그거 먹어라. 새 것은 손님들 드려야지." "음료수도 마음대로 못 먹나!" 마개를 다시 돌려 냉장고에 넣고는 문을 꽝 닫았다. "아니, 얘가? 너 오늘 왜 그러니?" "내가 뭘 어쩐다구요?" "왜 그렇게 고장난 장난감처럼 툴툴대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에요." 다시 엄마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당구장 문을 밀고 나와 버렸다. 배가 고팠지만,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어딜 가서 민생고를 해결하지?' 2. "인숙이 있니?" "햇빛이로구나. 어서 와." 현관의 비디오폰으로 나를 확인한 인숙이가 문을 열며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마침 점심을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점심 먹었니?" "아니. 뭐 먹을 것 좀 있니? 배고파 미치겠다." "너 당구장에 들러오지 않았니?" 대답 대신 식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인숙이가 끓여 온 라면을 허겁지겁 먹고 난 뒤 찬밥을 국물에 말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배가 부르자, 비로소 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인숙아,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냐? 월요 일날 너만 청소시키겠다고 하시던데." "하여튼 이상한 선생님이야! 왜 나만 괴롭히는지 모르겠어." "햇빛이 너 작년보다 많이 이상해진 것 같아. 작년만 해도 착실했잖아.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많이 변했다. 아이들로부터 반장 추천을 받아 대부분의 표를 얻어 반장이 되었던 5학년초만 해도 우리 집은 평화로운 집이었다. 작년 가을 어느 날, 아빠는 10여 년 간 다니시던 직장에서 물러나셔야 했다.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떠나야했던 그 때, 아빠 역시 지금의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퇴직금으로 지금의 당구장을 차린 뒤 우리 가족을 위해 아빠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늦게까지 일을 하셨다. 그래도 좋았다. 학교를 마치고 당구장에만 가면 아빠를 볼 수 있었으니까…….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당구장을 하게 된 것이 잘 된 일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빠에겐 직장을 떠난 일이 너무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술을 자주 드시거나 엄마와 종종 싸우는 일이 생겼다. 물론 눈치채지 못하게 내가 잠든 뒤에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아침 식탁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 날이 점점 많아졌다. 3. "당신 그렇게 매일 술에 젖어 살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아니, 누군 술 마시고 싶어 마시는 줄 알아?" "헌신짝처럼 직원들을 내쫓는 그까짓 직장에 무슨 미련이 남아 그 모양이냐고요?" "그만 두지 못하겠어!" 아빠의 화난 목소리에 이어 '쨍그랑'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아빠의 실내화 끄는 소리가 열린 문틈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파트의 현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히고, 엄마의 울음소리만 주방에서 흘러 나왔다. 더 이상 잠든 체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방 바닥에는 우리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가을에 떨어진 낙엽처럼 누워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에 잔뜩 덮인 채. 엄마와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침 햇살의 따가움을 느끼며 잠에서 깨었을 때 어젯밤의 일이 마치 꿈속인 것처럼 느껴졌다. 주방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엄마, 아빠는?" "안 들어오셨다." "그럼 당구장에 계신가?" 엄마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아빠는 그 날도, 그 다음날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1주일이 지난 뒤에야 아빠는 덥수룩해진 수염에 눈이 쑥 들어가신 모습으로 돌아 오셨다. 그 때부터 나의 불행이 시작된 셈이었다. 아이들은 감히 나를 건드릴 생각조차 못했다. 학교 대표 육상 선수인데다 가 일철이만 빼면 우리 반에서는 키가 제일 큰 나를 어쩌지 못했다. 나를 놀린다거나 내 비위를 건드리면 당장 쫓아가 혼을 내곤 했기 때문이다. 오직 일철이 녀석만 나를 놀리거나 흉을 보곤 했다. "야, 신햇빛. 넌 여자애가 왜 그 모양이냐? 괜히 심술을 부려 아이들을 괴롭히고, 청소도 안하고 도망가고, 툭하면 선생님 말씀에 대들고……." 이상하게도 일철이에게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5학년 때부터 좋아한 아이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 애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왠지 그 애에게만은 고분고분한 내가 때론 싫기도 했다. "신햇빛. 지금 책상 위에 올려놓고 쓰고 있는 것 갖고 나와." 선생님의 목소리에 얼른 교환일기를 옆에 앉은 인숙이에게 건네었다. "저 아무 것도 안 했는데요." "얼른 나오지 못해!" 선생님이 막대기로 교탁을 내리치자 아이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눈만 깜빡이고 있었지만 난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리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어슬렁어슬렁 옮겼다. "빨리 나오지 못해." 교탁 앞에 섰다. "왜 그러시는데요?" 선생님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화를 참는 듯 잠시 머뭇하시더니, "네가 한 짓을 몰라서 그러냐?" 하시며 코앞에 몽둥이를 들이대셨다. "전 열심히 듣고 있었던 일밖에는 다른 짓 안 했는데요." "너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제가 뭘 어떻게 했는데요?" 나보다 키가 작은 선생님을 내려다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니? 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만 들어가라고 하셨다. 자리로 돌아오면서 나는 승리한 사람의 얼굴 표정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 식으로 난 나의 불행을 삭이고 있었다. 아빠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아질수록, 엄마와 아빠가 내 앞에서 심하게 싸우는 날이 늘어갈수록, 또한 아빠의 병이 깊어 가면 갈수록 나는 우리 반의 폭군이 되어갔다. 선생님조차 어쩌지 못하는……. 4. "이젠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구나." "엄마, 그럼 이제 아빠는 어떻게 되는 거야?" "……" "엄마, 아빠가 불구자가 되는 거야?" "그래. 할 수 없이……." 모든 것이 미웠다. 자포자기한 채 살고 있는 아빠도, 어쩌지도 못한 채 묵묵히 살고 있는 엄마도, 나를 미워하는 선생님도, 내 눈치나 보고 있는 반 아이들도…….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정신 없이 걸었다. 길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등뒤에 꽂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발에 무엇인가 걸려 넘어지면서도,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혀도 그냥 걸음을 계속 옮겼다. 눈물을 멈추려고 하면 할수록 눈물이 솟아 나왔다. 머릿속에는 다정했던 아빠의 웃는 모습만이 가득했다. 아빠의 입원으로 문을 닫은 당구장 소파에서 잠이 깼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길 쪽으로 난 창에서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밤하늘의 별들과 밤새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까만 밤하늘에 밝은 빛을 태우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빌던 소원을 생각하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굳게 잠긴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거실 바닥에 놓인 하얀 편지 봉투 위로 오후의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 햇빛 이에게 햇빛아, 울지 말고 끝까지 아빠의 이 편지를 읽어주기 바란다. 햇빛이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면 아빠는 이미 한 쪽 발목이 없는 불구자가 되어 있을 거야. 너희들이 괜히 피하려고 하는 장애인이 된다는 말이지. 아빠도 나 자신이 불구자가 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어. 하지만 이제 아빠는 불구자가 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아빠의 마음은 더 이상 불구자가 아니기 때문이지. 돌이켜 보면 구조 조정으로 직장에서 물러 나와 지낸 날들이 너무 후회스럽기만 하구나. 나의 젊은 날의 꿈이 여기서 끝난다는 생각에 세상이 모두 무너진 것 같았거든. 한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었고, 결국 소중한 우리 가족에게 몹쓸 짓만 하다가 당뇨병이 심해져 발목을 잃게 되었지만 아빠는 이제 용기를 되찾았단다. 사랑하는 딸 햇빛이가 있기 때문이란다. 아들이든 딸이든 관계없이 밝은 태양처럼 온 세상에 빛을 주는 커다란 사람이 되라는 소망을 담은 네 이름을 지어놓고 엄마와 아빠는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렸지. 지금도 12년 전 네가 태어나던 날을 생각하면 더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 오르는구나. 햇빛아! 부디 엄마와 아빠의 소망을 져버리지 않는 자랑스런 딸로 자라려무나. 그런 네 모습을 언제까지고 지켜보고 싶구나. 이제 아빠도 용기를 갖고 수술대에 오르기로 하마. 사랑하는 딸을 기다리는 아빠가 편지 위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이내 냇물이 되어 흘렀다. 눈물을 먹은 편지의 글씨들은 추상화가의 알 수 없는 그림처럼 변해 갔다. 그 자리에 쓰러져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빠를 미워하고, 엄마를 미워하고, 모든 사람들을 미워했던 자신이 더욱 미웠다. 5. 어둠이 긴 그림자를 만들어갈 무렵 아빠의 병실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런데 그 곳엔 나를 그렇게 미워하던, 내가 그렇게도 미워하던 선생님이 찾아와 계셨다. 노란 프리지어를 한 쪽 손에 들고, 잔잔한 미소와 함께 나를 부르셨다. "햇빛아, 어서 오렴. 우리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아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앞이 다시 흐려졌다. 침대로 달려가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빠,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네?" 아빠의 커다란 손이 머리를 어루만졌다. 등뒤에서 선생님의 잔잔한 말씀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울려오고 있었다. "보세요. 돌아올 거라고 했지요? 햇빛 아버님, 햇빛 이를 생각해서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가세요. 이렇게 마음이 고운 아이잖아요."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나는 순간처럼 밝은 빛이 가슴속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소설을 쓰려면 체험을 구성하는 사고력과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가는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소설 쓰기는 창조 이전에 자기수련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점점 쉽고 가벼운 것만 좋아하는 세상에서 그 힘든 일을 택한 응모자들은, 그러므로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 그 자체로 이미 보상을 받은 셈이다. 소설이 사고력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이야기(서사)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사건을 뼈대로 하기에 우선 사건 자체가 뜻이 있고 그럴듯하게 짜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많은 응모작들이 이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종생기Ⅱ' '겨울, 바람 속을 달리다' '주여사, 학교에 가다' 3편이다. '종생기Ⅱ'는 죽음을 택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졌으나, 그 내면적 사건의 원인이 빈약하고 사회적 의미가 적다. 표현도 좋은 부분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다. '겨울, 바람 속을 달리다'는 감각적인 표현과 전개가 돋보인다. 그러나 역시 중심사건의 필연성이 약하다. 아버지의 행동에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딸의 성격과 외로움도 충분히 그려지지 않아서 결말의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주여사, 학교에 가다'의 결말도 다소 허술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삽화를 적절히 배치하고 주인공의 심리를 균형 잡힌 안목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아주 실감나게 읽힌다. 어떤 전망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지만, 독자가 현실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상상의 공간을 재구성해 내고 있으므로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통보를 받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대하며 오랜만에 효도를 한 것 같아 나도 기뻤습니다. 당신이 수필가로 등단하셨을 때 축하한다는 말씀을 제대로 드리지 못해 마음에 빚으로 남아 있었는데, 당선소식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단에 선지 30여 년, 주어진 일에도 충실하지 못하면서 나는 늘 문학이라는 성지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서 곁눈질을 했습니다. 어쩌면 그 결과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겨우 그 성지 앞에 다다라 자신을 돌아보니 문을 두드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아 망설임이 앞섭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가져봅니다. 졸작을 눈여겨보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낙점은 칭찬이 아니라 더욱 분발하라는 채찍임을 잊지 않겠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아울러 이런 자리를 허락해주신 한국교육신문사에도 감사 드립니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집안 일에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말없이 참아준 식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얕은 재주를 인정하고 부추겨 연필을 놓지 않도록 격려해준 형란에게도 고맙다 말하고 싶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오던 주 여사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이의 친구인 태식을 만났다. "정수는 안 오니?" "벌서고 있어요." "아니 왜?" "저도 잘 몰라요. 애들한테 들었어요."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주 여사는 기분이 언짢았다. 하필이면 아랫집 902호 여자가 함께 타고 있어서 기분이 더 엉망이 되어 버렸다. 여자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이사온 지 두 달도 안 된 여자가 소음을 문제삼아 관리실에 신고하는 바람에 벌써 몇 번이나 주의전화를 받았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여자 집에는 아이가 없는 눈치였다. 자식 키우는 사람이면 응당 웬만한 불편쯤은 참고 넘어가련만 도무지 이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여자 같았다. 정수가 친구들을 데려와 난리를 친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묶어두고 기를 수는 없잖은 가. 주 여사는 이해심 부족한 여자가 한 아파트에 사는 것이 마뜩찮았다. 집으로 들어온 주 여사는 외출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제 누이들을 키울 때는 교문이 어디에 붙었는지 몰라도 아무 탈이 없었는데 녀석은 온갖 뒷바라지를 다하건만 보람도 없이 날이 갈수록 엄마의 체면을 구겨놓고 있었다. 이 녀석 오기만 해 봐라. 그러나 기다리는 아이는 오지 않고 시각은 어느새 다섯 시를 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미술선생이 올 시간이었다. 지난 겨울방학 때부터 우리나라 일류 미대에 다닌다는 대학생한테 일주일에 한 번 그림 지도를 받게 하고 있었다. 4학년이 되면 사생화를 시작하기 때문에 특별히 지도를 받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들다고 해서 시작한 그림 과외는 돈도 돈이지만 한 번 빠지면 그만큼 진도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특히 신경이 쓰였다. 영어학원 시간은 이미 놓쳤지만 미술 수업은 받아야 하는데 시계바늘만 쳐다보고 있자니 속이 탔다. 정수는 주 여사가 딸 셋을 낳고 십 년만인 나이 마흔에 얻은 늦둥이다. 몸이 달라진 줄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이상한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갔더니 임신이라고 했다. 나이도 나이지만 이미 딸이 셋이나 있고 새삼스레 아이 키울 일을 생각하니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웬만한 갈등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주 여사는 태어나려고 생긴 생명, 그냥 낳기로 했다. 혹시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어려운 쪽으로 선택하는 용기를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었다. 간절히 원해서 낳은 아들이었다 해도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 낳은 여자가 자기밖에 없는 듯싶었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왜 기를 쓰고 아들을 낳으려고 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정수는 어릴 때부터 귀한 아들에 복덩이라는 별명이 하나 더 얹어져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때맞추어 사업이 잘 풀리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고향에 묻어둔 땅이 도시계획에 편입되면서 돈이 되었고 이것으로 몇 군데 새로 사 둔 땅이 또 몇 해가 지나면서 큰돈으로 불어나 벼락부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정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주 여사는 사느라고 바빠서 딸들에게는 제대로 하지 못한 엄마 노릇을 정수한테만은 남부러울 것 없이 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회 회원으로 활동도 하고 담임선생 대접도 남 못지 않게 하면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뒷바라지는 다 하리라 다짐했다. 모든 일은 주 여사 뜻대로 되어갔다. 그 중 하나가 입학식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어머니회 총회에서 학급을 대표하는 임원이 된 일이었다. 어머니회 총회가 있을 거라는 안내장을 받고 부터 작정은 하고 있었지만 제 발로 나서서 하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태식 엄마가 속내를 뻔히 들여다본 것처럼 추천해 주었던 것이다. 학급 대표가 된 주 여사는 학년 임원을 겸하게 되었다. 게다가 한 학년에 하나뿐인 운영위원으로 뽑히고 나니 이번에는 이왕 나선 김에 운영위원장을 맡아주면 고맙겠다는 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는 자리를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던 주 여사도 이것만은 한사코 사양했다. 대신 부위원장이 되어 뒤에서 돕겠다고 했다. 재력이나 열성으로야 위원장이 되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젊은 사람들을 제쳐놓고 나이든 사람이 나서서 자리에 욕심부린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한 발 물러남으로써 주위로부터 겸사의 미덕을 갖춘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치사까지 듣게 되자 주 여사는 새삼스럽게 늦둥이 아들이 고마웠다. 그 애가 아니었으면 어찌 그런 감투나마 써볼 수 있었겠는가. 주 여사는 신바람이 나서 학교를 드나들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도 품위 있게 하고 의상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주 여사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곱게 차려입고 학교에 오던 미애 엄마를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이제 주 여사는 바로 그 미애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앞장서서 학교에 기부도 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듯이 비록 부동산으로 번 돈이지만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2세 교육을 위해 쓴다면 보람찬 일이 아니겠느냐고 뿌듯하고 자랑스런 마음마저 갖게 되었다. 자식이 귀하면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도 좋아 보이는 법이다. 명분이 없어서 대접을 못하면 만들어서라도 담임은 물론 같은 학년 선생들까지 챙겼다. 환경미화와 교실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장학습 도우미나 운동회 날 음식바자회 같은 궂은 일에도 발벗고 나서서 협조하는 모범을 보였다. 2월에 태어나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이 어린 정수가 학교생활을 무난히 잘해 나가는 것도 선생님의 훌륭한 지도 덕분이라며 공을 담임선생에게 돌렸다. 주 여사는 협조 잘하고 겸손하기까지 한 일등 엄마라는 칭찬에 조금도 손색이 없도록 행동했다. 정수가 4학년이 되었다. 이제 주 여사도 좀 쉬고 싶었다. 3년이나 정신 없이 쫓아다니다 보니 체력에 한계가 느껴졌다. 얼굴 주름이야 수술로 펼 수 있다지만 나이는 속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간혹 학부모들 사이에 지나치게 극성스럽다는 입방아가 돈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리곤 했다. 그거야 저희들 못나서 시샘하는 소리라고 코방귀를 뀌어버리면 그만이지만 근력이 달리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주 여사는 가정사정을 핑계로 맡은 자리를 내어놓고 집에서 조용히 아이 뒷바라지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후임자가 나서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붙든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주 여사는 내심 싫지 않았다. 그래서 한 해만 더 맡겠다는 단서를 달고 못이기는 척 주저앉았다. 미술 선생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정수는 태연했다. 오후네 걱정했던 일이 무색할 만큼 아이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주 여사는 궁금했지만 우선 수업부터 받게 했다. 더군다나 미술 선생 앞에서는 언성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 미술 선생이 돌아가고 난 뒤 주 여사는 정수를 다그쳤다. "왜 늦었어?" "……" "말 안해?" "선생님께 벌섰어요." "오늘은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여자 애들을 놀렸어요." "어떻게 놀렸는지 자세히 말해 봐." "못난이 돼지라고……." "너, 지난번에도 그래서 선생님께 혼났다고 했잖아. 그런데 또? 벌써 몇 번째야!" "……" 녀석이 고개를 푹 꺾었다. 주 여사는 마음을 다잡았다. "안 되겠다. 꿇어앉아. 내가 선생님이라도 너 용서 못해. " 녀석은 무릎을 꿇으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어리광을 받아 줄 때가 아니었다. "팔도 들고 있어." 주 여사는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녀석을 벽 쪽으로 돌아앉게 했다. 등을 보이고 벌을 서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지나간 몇 년이 어떻게 흘러갔나 싶게 순간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학년이 아닌가. 주 여사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기대 속에서 맞이하던 새 학년 첫날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해마다 아이가 새 학년을 맞는 날은 주 여사도 덩달아 긴장했다. 반 배정이야 학년말에 받는 통지표를 통해 알게 되지만, 담임선생은 개학을 해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주 여사는 마치 자신이 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설레기까지 했다. 그래서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학교로 달려가 담임선생한테 인사를 하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다음날은 꽃바구니를 선물하여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뜻을 전했다. 주 여사는 그 일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담임선생이 아이를 빨리 기억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젊은 초임교사가 담임이었다. 나이가 큰딸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어리니 오히려 대하기가 어려워 다른 해와는 달리 운영위원회 일로 종종 학교에 가도 담임선생을 찾아보지 않는 날이 많았다. 담임선생을 대접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요즘 젊은 선생들은 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상품권 같은 것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주 여사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취향도 모르면서 물건을 선물하는 일은 또 쉬운가. 이런저런 이유로 담임선생 찾아보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이 두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일등 엄마로 소문난 주 여사로서는 마음 편할 리 없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된 주 여사는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학교로 갔다. 4학년 담임들이 나누어 먹을 과일은 오전에 이미 배달시켜놓았고, 상품권은 선물로 준비한 머플러와 함께 상자 속에 넣어 주고받을 때 민망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혹시 출장을 가거나 바쁘지는 않은지 전화로 미리 알아보고 시간 약속도 했다. 갑자기 교실로 찾아가 담임선생이 계획하고 있는 일에 지장을 주는 무례한 학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당연히 기울여야 하는 주의였건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지 않던 일을 굳이 하려니 은근히 부아가 났다. 그러나 주 여사는 최선을 다해 담임선생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수 엄마예요." "네, 어서 오세요." 주 여사는 교실을 한 바퀴 둘러 본 다음 담임선생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 정수가 말썽을 많이 부려서 힘드시죠?" 이런 말은 보통, 학부모가 담임선생을 대면하면 으레 하는 말이다. 실제로 자기 아이가 그렇다고 생각해서라기보다 아이를 맡겨놓은 부모로서 하는 인사치레인 셈이다. 그런데 담임선생은 망설이지도 않고, "네, 좀 그런 편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주 여사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예상치 못한 대답은 마음에 두고 하는 말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로 보나 학교를 출입한 경력으로 보나 앞에 앉은 초임교사보다는 주 여사가 한 수 위일 거였다. 주 여사는 곧 마음을 추슬렀다. "특히 어떤 점을 고쳐야 할지 말씀해 주시면 주의시키겠어요." 주 여사는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양 있는 학부모가 주로 하는 말을 골라 하면서 가슴을 폈다. "그럼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이 말을 할 때도 담임선생은 동의를 구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태세였다. 주 여사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다시 움츠러들었다. 정수에 대한 담임선생의 평가는 가혹했다. 말하자면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 정도가 아니라 지도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아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를 괴롭히는 일에서부터 담임의 반 운영에 간섭하고 나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업 태도가 나빠서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의를 받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자기밖에 모르며 지나치게 솔직하여 말을 참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표현이 있다면 행동이 과격하거나 천성이 나쁘지는 않다는 정도였다. 담임선생의 말을 듣는 동안 주 여사는 낯이 뜨거웠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담임선생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못된 버릇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아닐 텐데 전 담임들은 왜 한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만약 담임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평가가 차이 난다면 그것은 담임선생의 주관적인 판단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정수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감정이란 미련한 데가 있어서 한 번 밉게 보면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어쩌다가 그렇게 담임선생 눈밖에 나 버렸는지 엄마로서 무척 속이 상했다. "선생님, 정수는 제가 단단히 야단치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약소합니다만 스승의 날도 오고 해서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요." 주 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련해간 선물꾸러미를 담임선생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담임선생은 눈이 똥그래져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플러예요. 선생님 취향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그럼 지금 풀어봐도 되겠군요." "쑥스러우니까 제가 가고 난 뒤에 보세요.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셔도 되고요." 안에 들어있는 상품권이 켕겨 이렇게 말했으나 담임선생은 기어이 그 자리에서 포장을 뜯었다. 상품권을 넣은 봉투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건 뭐죠?" 알고 묻는지 정말 몰라서 묻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가지고 간 선물을 그냥 놓아두고 당장 교실에서 나와 버리고 싶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그 자리에 서 있기가 거북했다. "혹시 머플러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선생님 원하시는 물건을 하나 구입하시라고 조금 넣었어요." "성의는 고맙지만 받을 수 없습니다." 담임선생은 상품권을 되밀었다. 조금 전 정수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단호한 태도였다. 혹시나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몹시 당혹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주 여사는 발걸음이 어디에 놓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가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 준 것도 고맙다기보다는 불쾌했다. 이제 겨우 발령 받은 햇병아리 선생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당돌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두 사람이 담임과 학부모 관계라지만 몇 살 되지도 않은 어린것이 선물을 가지고 간 사람 면전에서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소신만 고집하다니, 이것도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로 보여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날 이후 주 여사는 담임선생이 불편했다. 그러나 아이를 맡겨놓았으니 그런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겉으로 좋은 척하려니 성질에 맞지 않아 어떤 때는 울뚝 밸이 뒤틀렸다. 그런데 이런 어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수는 하루같이 담임선생한테 꾸중을 듣는다고 했다. 주 여사는 이제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운영위원도 그만두고 싶었다. 지난 3월에 그만두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 여사 얼굴을 들 수 없게 했던 일은 급식 차 사건이었다. 그 날도 주 여사는 아침에 집을 나서는 정수에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정수야, 제발 말썽 피우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약속하지?" 주 여사의 기도와도 같은 당부도 소용없이 그 날 정수가 저지른 일은 하마터면 다른 아이까지 크게 다칠 뻔한 대형사고였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주 여사는 등골에서 식은땀이 났다. 집으로 돌아올 시각이 훨씬 지났는데도 정수가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태식이 집에 전화를 했다. "태식 엄마, 정수가 아직 안 와서 전화했어요. 무슨 일인지 혹시 태식이 알고 있나 해서……." "어머, 정수 아직 안 왔어요? 태식이 말로는 오늘 학교에서 급식 차를 망가뜨렸다고 하던데." "급식 차를 망가뜨리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태식이가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고. 누가 다쳤다고도 한 것 같은데……." "정수가 다쳐요?" 주 여사가 놀라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정수였다. "얘, 너 괜찮니?" 느닷없는 질문에 정수가 놀란 눈으로 주 여사를 쳐다보았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하자 주 여사는 울화가 치밀었다. "어찌된 일인지 말해 봐.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응?" "반성문 썼어요." 녀석은 가방에서 반성문을 꺼내어 내밀었다. 반성문에는 사고 경위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글은 몇 번이나 고쳐 쓴 흔적이 있었고 한 장으로 부족하여 뒷면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담임 확인 도장이 찍혀 있었으니 거짓은 아닐 거였다. '우리 교실에서 덤웨이터가 있는 곳까지는 교실 다섯 개를 지나야 한다. 긴 복도에서 급식 차를 밀고 갈 때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달리게 된다. 평소에 선생님이 뛰면 안 된다고 주의를 많이 주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떤 때는 급식 차에 매달리거나 한 쪽 발만 올려놓고 타고 가기도 했다. 이럴 때는 아슬아슬한 스릴까지 느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서로 급식 차를 밀고 가려고 다투는 일도 있었다. 오늘은 당번인 현종이가 혼자 운반하는 것을 보고 도와주려고 했다. 급식 차를 밀다 보니 또 달리고 싶었다. 교실 몇 개를 지나면서 급식 차는 속력을 내어 빨리 달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멈추려고 하니 잘 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덤웨이터 앞에 있던 다른 반 급식 차에 부딪쳤는데 그것이 그만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지나가던 아이가 다쳤다. 떨어지는 식판에 긁혀 다리에 피가 났다. 정말 미안했다. 현종이 혼자 밀고 가게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도와준다고 한 것이 잘못이다. 현종이한테도 미안하다. 현종이는 잘못이 없다.' 다친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찰과상 정도인 것 같았다.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고 그 정도에 그친 것이 천운이었다. 식판에 긁혔기 망정이지 만약 차에 바로 부딪히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담임선생은 반성문에다 정수에게 '급식 차 운반하기'를 벌로 내려놓고 있었다. 밥을 먹기 전에 가져왔다가 밥을 먹고 나면 갖다놓는 일이라고 했다. 주 여사는 담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급식 차를 운반하다가 사고를 낸 녀석한테 다시 그 일을 시키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자기가 나서서 그런 벌은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 이제는 하루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수는 이제 자식이 아니라 시한폭탄이었다. 이런 애물단지는 다시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한폭탄이라도 안고 있어야 하고 애물단지라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자식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정수의 급식 차 운전은 삼 주일만에 끝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주 여사의 자존심은 더 이상 지키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벌을 서고 있는 정수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는 머리를 벽에다 기댔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모로 쓰러져 잠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라는 반성은 하지 않고 벌을 서면서 졸다니, 주 여사는 기가 막혔다. 학교에서도 저 꼴이라면 담임 눈에 오죽할까. 주 여사는 혀를 차면서 녀석 쪽으로 다가갔다. 딩 당 댕 도옹 방송을 예고하는 차임벨 소리가 거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주 여사는 정수를 부르려다 말고 귀를 기울였다. "주민 여러분께 알리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일은 우리 아파트 물탱크 청소가 있는 날입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단수될 예정이오니 각 가정에서는 이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민생활에 불편을 주는 여러 가지 민원이 계속 신고되고 있습니다. 잘 들으시고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에서 말하는 민원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애완견 배설물 처리 문제였다. 아파트 마당에 배설물을 그대로 두고 치우지 않는 세대가 있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수목보호를 위해 반드시 전면주차 규칙을 지켜달라는 거였다. 마지막은 소음문제였다. 늦은 시각 피아노를 치거나 못질하기,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따위였다. 방송을 듣자 주 여사는 아랫집 여자가 생각났다. 지난주 토요일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정수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놀았다고 했는데 그게 또 문제가 된 건 아닌가 싶었다. 여자가 이사오기 전에는 몇 년 동안이나 아무 탈 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이제는 소음이야기만 나오면 혹시나 하고 신경이 쓰이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골치가 아팠다. 좌우지간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수와 올해 담임선생과는 좋은 인연이 아닌 모양이었다. 담임선생과 학생이 맞지 않으면 일년 내내 서로 힘들게 지내게 된다는 말이 그르지 않은 듯 3학년 때까지 별탈 없이 학교생활을 잘하던 정수가 4학년이 되고 부터 갑자기 문제 많은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 그 증거였다. 이제는 아파트 아이들이 주 여사를 만나면 정수가 학교에서 꾸중들은 일을 일러바치는 게 인사처럼 되어 버렸다. 품안의 자식도 아닌데 일일이 따라다니며 간섭할 수도 없고, 공부야 어찌되었든 이런 말만 듣지 않아도 고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귀엽다고 제 뜻을 다 받아주며 키운 결과인가 싶어 자책감이 들면 이런 걸 자업자득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체념도 했다. 그러다가 생각이 담임한테 이르면 서운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아이는 아이일 뿐인 것을, 조금만 너그럽게 보아주면 될 텐데 왜 정수한테만 유독 엄격하게 대하는 것일까. 경험이 없고 너무 젊기 때문은 아닌가. 자식을 키워본 지긋한 담임이었다면 정수가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담임 복(福) 없는 정수가 불쌍했다. 그러나 이런 마음 한쪽에는 담임에 대한 미안함도 없지 않았다. 매일 혼나는 아이도 아이지만 담임은 담임대로 또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나 이런 생각도 그때였을 뿐 다음날 밤 주 여사는 그만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잠자리를 살피러 정수 방에 들어갔던 주 여사가 시퍼렇게 멍든 아이 엉덩이를 보았던 것이다. 놀란 주 여사가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얘, 너 엉덩이가 왜 이래?" "아이 엄마는, 졸린단 말이야." "엉덩이가 왜 이러냐니깐?" "어제 선생님께 벌섰다고 했잖아요."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잠이 들었으나 거실로 나온 주 여사는 안절부절못했다. 그 동안 정수가 야단을 맞고 벌을 섰다고 해도 녀석이 워낙 별나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해하며 담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있는가. 여태껏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깨어질까 애지중지 키운 어린것한테 매를 대다니, 그것도 얼마나 심하게 다루었기에 피멍이 다 든단 말인가. 여린 살갗을 뚫고 금방이라도 피가 배어 나올 것만 같았다. 주 여사는 연우네 집에 전화를 했다. 연우 엄마는 아이들이 1학년 때 같은 반을 한 후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 중 한 사람이었다. "정수 어머니, 그냥 있어서는 안 돼요. 그런 선생이 바로 폭력교사 아닙니까. 아무리 교육부에서 정한 체벌규정이라는 것이 있다지만 아이 몸에 상처가 나도록 허용한 것은 아닐 거예요." 참교육연댄가 뭔가에 가입해 있다는 연우 엄마의 말은 위로는커녕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고 말았다. 정말 그냥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학교에 드나들며 한 일들이 후회스러웠다. 해마다 빠지지 않고 낸 기부금이며 학교 일로 보낸 그 많은 시간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밤새 속을 끓이며 잠까지 설친 주 여사는 이튿날 아침이 되어도 분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정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학교에 갔지만 주 여사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아직도 붉은 맷자국이 남아 있는 푸르뎅뎅한 아이 엉덩이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린것이 얼마나 아팠으며 마음의 상처는 또 어땠겠는가. 주 여사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연우 엄마 말대로 교육청 홈페이지에라도 올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 동안 학교를 위한답시고 활동해온 체면도 있고 또 정수 일은 담임선생과의 문제지 학교 전체를 걸고 들 문제는 아니니 그렇게 막나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냥 속을 끓이고 있을 수도 없었다. 생각다 못한 주 여사는 교장실로 전화를 하여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 동안 학교운영위원을 하면서 친분이 두터워진 터라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면 교장선생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 같았다. 주 여사의 말을 듣고 난 교장선생이 입을 열었다. "정수 어머니, 이유야 어찌 되었건 먼저 책임자로서 사과 드립니다. 학교를 믿고 맡긴 귀한 아드님이 매를 맞고 왔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습니까. 하지만 많은 아이를 다루다 보면 매를 들어야 하는 때가 없잖아 생깁니다. 물론 체벌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것도 아이에 대한 애정과 잘해보려는 의욕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니 이해하세요. 그리고 그 동안 정수 어머니께서 학교를 위해 애를 많이 쓰셨는데 정말 유감입니다." 교장선생은 주 여사의 평소 생각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역시 존경할 만했다. 점잖은 어투와 분위기를 압도하는 위엄, 그리고 경륜 깊은 교장답게 담임선생의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주고 그 동안의 수고까지 챙겨주니 주 여사는 어느새 마음이 풀렸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하고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말을 마친 교장선생이 교감선생한테 인터폰을 하더니 담임선생을 교장실로 부르는 게 아닌가. 잠시 후 담임선생이 왔다. 교장실로 들어오던 담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주 여사는 비로소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발령 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어린 담임선생이 영문도 모른 채 교장실로 불려온 것만으로도 부담스런 일이었을 텐데 게다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짐작케 하는 장본인이 와 있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태연한 척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맞닥뜨린 사태를 감당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주 여사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한 선생님, 정수 어머니예요. 운영위원회 부위원장님이신 거 알고 있지요?" "네, 알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 담임선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주 여사는 교장선생의 다음 말이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 없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눈길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교장실에 왜 왔는지를 그 자리에서 말한다면 담임선생 얼굴을 어떻게 쳐다볼 수 있겠는가. 두 사람 사이에서 여유 있는 사람은 오직 교장선생뿐인 것 같았다. 등받이에 등을 깊이 기댄 채 팔걸이에 올려놓았던 두 팔을 가볍게 들었다 다시 내려놓으며 교장선생이 말했다. "학교 일로 의논할 게 있어서 오시게 했는데 모처럼 혼자 계시는 자리라 인사나 하라고 불렀어요. 아이들 가르치기 힘들지 않아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정수 어머니한테 부탁하세요. 학교 일에 협조를 아끼지 않는 분이니까." 이번에는 담임 칭찬이 이어졌다. 발령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임답지 않게 다방면에 재주가 많으며 아이들 지도에도 열성적인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했다. 주 여사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노련한 교장은 확실히 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주 여사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주 여사가 하루아침에 고자질 쟁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수 어머니, 태식 엄마예요. 다른 엄마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요. 아세요?" "무슨 소문요?" "정수 어머니가 교장실에 찾아갔다면서요?" 주 여사는 순간 뜨끔했으나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교장실에야 어디 한두 번 갔나요?" "아니, 학교 일로 갔다면 소문이 이상할 것도 없죠. 정수 매맞은 일을 교장선생님께 고해바쳤다고 하니까 그렇지. 정말이세요?" "누가 그런 말을……?" "전화로 이럴 게 아니라 내가 그리 갈게요." 마침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주 여사는 그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학교를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문이 돌아 주 여사 귀에까지 들어왔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도대체 누가 그것을 퍼뜨렸단 말인가. 소식통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태식 엄마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굳이 그 자리에 담임을 불러서 새삼스럽게 인사를 하게 한 것부터 이상하네요. 부러 그래야 할 이유가 꼭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두 사람 있는 자리에서 번갈아 가며 칭찬을 한 것이 바로 교장선생님의 술책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리고 정수 어머니 앞에서는 그렇게 했지만 정말 담임한테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겠어요? 더군다나 우리 교장선생님은 아이들한테 손대는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고 하던데……. 교감선생님을 시켜서라도 무슨 말이 있었겠지요." 주 여사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저 교장선생에 대한 고마움에 겨워 다른 저의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조차 해보지 않은 자신의 단순함이 비웃음 당한 듯하여 모멸감을 느꼈다. 노련하다못해 교활하기까지 한 교장이 아닌가. 주 여사는 갑자기 사람이 무서워졌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담임선생이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을 테니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걱정거리였다. "정수 어머니,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아요. 정수 일을 교장선생님한테 일러바쳤다는 사실을 담임이 알았다면 기분 나쁠 건 뻔한 일, 사람들이 웬만하면 참고 그냥 넘어가는 이유가 다 그 때문이에요. 담임이 기분 나빠서 좋을 거 없잖아요. 학년 끝날 때도 다 돼 가는데 조금만 참을 걸 그랬어요." 태식 엄마의 말은 주 여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정수 어머니, 솔직히 말해 보세요. 혹시 교장선생님을 믿고 담임을 우습게 본 거 아니에요? 하긴 아이들도 요새는 갓 발령 받은 젊은 담임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 특히 정수 큰누나 또래밖에 안되니 원……." 주 여사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태식 엄마가 이번에는 눈치가 좀 없는 것 같았다. 자기가 하는 말이 주 여사에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지 그녀는 말을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학교에 자주 가는 것도 아이한테는 좋지 않대요. 엄마들이 자식 기를 죽이지 않겠다는 욕심에서 학교 행사에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미는데 이것도 아이들 모르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는 살릴지 모르지만 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게 된대요." "태식 엄마, 미안해.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 좀 누워야겠어." 태식 엄마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의도적으로 담임을 무시하려 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주 여사는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각할수록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다. 아이의 엉덩이에 피멍이 든 것을 보고 잠깐 분별력을 잃고 교장을 찾아가긴 했지만 그것이 담임을 난처하게 만들 줄은 정말 몰랐다. 제 자식 귀한 줄만 알고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한번 인심이 나 버리자 그 동안 학교에 쌓아놓은 신뢰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만 것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주 여사는 학교와 학부모는 결코 입장이 같을 수 없는 상대적인 관계이며 학교만큼 정상이 참작되지 않는 비정한 사회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제 자식 별난 줄은 모르고 고자질이나 하는 철없는 늙은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그보다 심한 말은 다시없을 것이다. 주 여사는 비로소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인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자 주 여사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신경을 많이 쓰면 찾아오는 편두통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적어도 이틀은 계속되는 이 고질병은 진통제를 먹으면 약효가 있는 동안만 가라앉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머리가 쑤시고 아파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루종일 편두통에 시달리던 주 여사가 견디다 못해 오후에 병원에 다녀오려고 학원 가는 정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9층에서 멈추자 아랫집 여자가 탔다. 주 여사는 일부러 모른 척했다. "얘, 네가 정수니? 아주 씩씩하게 생겼네." 여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아줌마가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주 여사는 애써 외면하느라 고개를 돌렸다. "다 아는 수가 있지……. 너네 선생님이 가르쳐주었거든." 주 여사는 깜짝 놀라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여자가 주 여사의 눈길을 외면한 채 아이와 말을 주고받았다. "우리 선생님도 아세요?" "그럼. 자알 알지. 아줌마 동생이니까." "……" "너 이제 집에서 뛰면 안 된다. 그러면 내가 너네 선생님한테 일러줄 거야."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어 섰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응, 너도." 주 여사는 아이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아파트 마당을 나오며 정수가 말했다. "엄마, 우리 선생님이 아래층 아줌마 동생이래." "이 녀석아, 나도 다 들었다. 그러니 제발 이 엄마 체면 좀 그만 구기란 말이다." 주 여사는 녀석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이번에는 편두통이 한 사흘은 갈 것 같았다.
교총 원격교육연수원은 2004년도부터 무료강좌를 제공한다. 이번에 제공되는 과정은 '한글 2002 마스터', '인터넷 기초활용', 'PC 정비사' 등 3개 과정이다. 이 과정들은 컴퓨터 입문과정으로 선생님들의 컴퓨터 활용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무료강좌는 1개월 과정으로 편성돼 있으며 종료 후에도 1개월간의 청강기간을 추가로 제공한다. 그리고 각 과정마다 '전담 튜터'를 배치해 첨삭지도도 이루어진다. 무료강좌는 교총 원격연수원 회원으로 등록하면 누구나 수강이 가능하다. 무료강좌에 대한 수강신청이 쇄도함에 따라 연수원에서는 1인당 1강좌만 수강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편 교총 원격연수원에서는 연말연시를 맞이해 손쉽게 멀티미디어 카드를 보낼 수 있는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한다. 연수원 사이트에서 '교육사랑 카드메일' 코너에 들어가면 연하장과 제자사랑 등을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 카드가 준비돼 있다. 여기서 보내고 싶은 카드를 선택, 간단한 메시지를 작성해 보내면 된다. 연수원에서는 앞으로 졸업과 시험 등 교육과 관련된 테마로 계속 카드를 확충할 계획이며, 선생님들이 직접 카드를 제작해 보내면 같이 탑재할 계획이다. 연수원 URL은 www.education.or.kr이며 사이트명은 사제동행이다.
이 달 10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치러지는 2004년도 중국 대학원 입학시험에 94만5000명이 지원해 중국 전체 90여개의 대학원 모집정원 33만 명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3학년도의 79만7000명에 비해 14.8만 명, 18.4%가 증가한 것으로 중국에서도 갈수록 대학원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78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대학교육이 부활한 이래 2001년까지 20여 년 동안 중국에서 모집한 대학원생 총 수는 107만3700여 명으로 그중 석사생만 90만 명이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정부는 대학교육 확대의 일환으로 대학원의 신입생 모집 인원을 늘리기 시작해 전년도 기준으로 1999학년도에는 27%, 2000학년도 35%, 2001학년도 35%씩 모집정원을 급격히 늘렸다. 이러한 추세는 2002학년도 들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시작하여 2003학년도에는 모집정원이 전년에 비해 22%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2004학년도 모집정원은 2003년도에 비해 22%가 증가했다. 2004학년도 대학원 신입생 지원상황을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이들 수험생들이 선호한 대학은 武漢대학, 北京대학, 浙江대학, 復旦대학, 中山대학, 淸華대학, 人民대학 등의 순이었으며, 도시별로는 수도인 北京에 17만 여명, 上海에 8만5000여 명 등 대도시에 집중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이 선호하는 전공과 관련해서는 工商관리, 컴퓨터 응용, 법률, 기업관리, 금융, 정보통신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 이렇게 대학원 지원자 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요인과 개인적인 요인 등 여러 방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중국정부의 대학원 교육 확대 정책과 개개인의 대학원 이수의 절대적인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중국 교육부는 2002학년도부터 대학원 교육 확대를 위해 대학원 입학시험 정책을 전면적으로 조정하여 지원수속, 시험내용 및 학생모집방식을 개선하는 등 학생들에게 대학원 시험에 지원할 수 있는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과거의 복잡했던 대학원 지원수속을 단순화했고, 지원 연령제한을 대폭 완화해 석사생은 40세, 박사생은 45세까지 대학원 시험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2003학년도부터는 입학시험 과목을 기존의 5과목에서 정치이론, 외국어, 기초과목 및 전공기초과목 등 4과목으로 축소해 지원자들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어줬다. 이밖에 지난 몇 년간 중국의 각 대학에서 대학생의 정원을 급격히 늘린 결과 대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중국의 현실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대학원 문을 두드리도록 하고 있다. 이전에는 대학 졸업이 곧 좋은 직장을 구하는 척도로 작용하던 것이 1999학년도부터 대학 정원이 급격히 늘어나게 됨으로써 대학생들의 희귀성이 퇴색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이제 중국 젊은이들이 마음에 드는 직업을 찾기 위해서는 대학원 졸업장이 필수적인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또한, 직장 생활을 경험한 젊은이들 중에서 현재의 직장에 만족을 못하고 대학원 진학을 통하여 앞날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려고 하는 경우와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실력이 부족함을 절감하여 대학원생활을 통하여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후자는 주로 IT분야나 금융 분야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에게서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과거 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대학 과정의 지식만으로도 직장 생활에 문제가 없었으나 점차 사회의 변화가 급격해지고, 직장에서도 신입사원들이 대학원 졸업자들로 채워지게 됨에 따라 직장 내에서의 생존 위협을 느끼게 되어 대학원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학원 교육에 대한 수요의 증가는 대학원 입시를 위한 영어학원, 전공보충학원, 족집게 학원, 기출문제집, 입시를 위한 인터넷 강의 등의 관련 산업들을 활성화시키고 있으며, 많은 젊은이들은 대학원 입학을 위해 재수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중국 젊은이들의 머리 속에는 대학원 교육이 자신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중국의 현실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리 낙관적이지는 못하다. 실제로 최근 중국에서는 대학원 졸업자들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이들의 기대 수준에 맞는 직업을 찾기가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직업을 갖지 못하는 이른바 '고등실업'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매년 가을 무렵 취업박람회가 열리는 곳마다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수백 미터씩 줄을 서는 중국 대학원생들의 모습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최근, 5명중 1명의 독일 학생이 비만이라는 조사가 발표됐다. 적은 운동량, 음식이 어린 학생들이 비만이 되는 주된 원인이라고 밝혀지자 학생들이 운동량이 적은 이유 중의 하나로 학교 체육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즉, 지금까지 체육 수업은 학교 교육에서 변두리로 밀려나면서 학생들에게 충분히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교과과정에 따르면 1주일에 3시간의 체육수업이 진행돼야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체육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운동장이 없는 독일 학교에서 체육수업으로 사용되는 강당은 그 지역의 축제준비 등으로 자주 사용되고, 체육수업 시간이 수학 또는 독일어와 같은 더욱 중요한 학과목들로 대체되는 상황들이 빚어지고 있다. 수학수업의 경우 1시간만이라도 결손이 생기면 학부모들이 학교 당국에 격렬하게 항의를 하지만, 체육수업의 경우는 1달간 결손이 생기더라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현실적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대학의 체육학과 교수들과 일부 학교의 교장 등을 중심으로 체육수업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헤센(Hessen)주에 있는 프리드리히 에버트 초등학교(Friedrich-Ebert)가 중요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이 학교 클라우스 베트케(Klaus Bethke)교장은 지난 10년 동안 매일 1시간의 체육수업을 진행해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 초등학교는 주위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에 비해 상급학교의 진학률이 15%이상 높은데 클라우스 베트케 교장은 그 이유로 체육수업을 꼽고 있다. 또 체육 수업이 매일 진행되면서 교내 폭력이 상당히 감소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클라우스 베트케 교장은 "성장기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충분한 운동량이 주어진다면 그 학생들은 이해력과 집중력이 훨씬 더 높아지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라며 "이런 결과는 결코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이러한 사례에 기반으로 대학의 심리학과와 체육학과 교수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충분히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독일 사회 내에 이와 관련한 논쟁을 준비중에 있다. 충분한 운동량이 학업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과 관련해 오스나브뤼크(Osnabruek) 대학 심리학과 레나테 짐머(Renate Zimmer) 교수는 "운동이 지능지수를 높인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사람들의 살아가면서 인정하는 것"이라며 전문가들과의 논쟁을 원하고 있다. 이들 교수들은 더욱이 자신들의 주장을 단지 학교에서의 체육수업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다른 학과목에까지 넓히는 새로운 수업 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즉 학생들이 단지 책상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들 교수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독일 사회내의 일반적인 의식에도 문제점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정신과 육체를 통일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능력의 향상만을 최고로 여기는 독일 교육 체제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체육수업에 있어서도 학생들에게 능력만을 강조하고 학생들 스스로 운동을 통해 몸으로 어떤 느낌을 갖게끔 하지 못하는 체육수업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여러 지적들에 대해 긍정적인 면이 인정되지만 전반적으로, 이런 혁명적인 새로운 수업방식이 모든 학교에 적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평가하고 있다. 또한 매일 정규적으로 체육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큰 강당이 필요한데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일부 교육학자들의 경우 운동보다는 수업시간에 음악이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며 운동의 경우에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에어로빅, 인라인 스케이트 또는 스케이트보드와 같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년에 비하여 응모 편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응모된 대부분의 시들이 정선되어 있었고 비교적 고른 수준에 올라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대체적인 경향 면에서 지난해보다 더 현실적인 이슈가 빠져나가고 교육의 본질, 삶의 문제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춘 시들이 많았다. 그런 만큼 조금은 구태의연한 시들이 보였고 충분히 숙성시키지 못한 詩想, 기대에 못 미치는 표현들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좋은 시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심사자들의 기쁨은 배가되었다. 이임순의 '유목민의 소견서', 박광훈의 '아침이 푸른 교실', 안태현의 '폐교', 정선호의 '아름다운 남루', 장원이의 '가을천둥, 들판에 내리다'가 끝까지 논의의 대상에 맴돌던 시들이었다. 이 가운데 '아침이 푸른 교실'은 그 발상이나 표현 면에서 싱싱하고 발랄하여 끝내 손을 놓기가 아쉬웠다. 그러나 함께 응모된 시들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다. 심사숙고 끝에 심사위원 두 사람은 교단의 애환을 무리 없는 시로 둥글게 승화시킨 '아름다운 남루'에 당선의 영광을 드리기로 했다. 이 작가는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고른 수준과 저력을 보이고 있어서 믿음직스러웠다. 언어의 빛깔과 향기를 살려 감각적으로 이미지를 전개해 나가는 솜씨가 뛰어났으며 시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 가는 구조적 짜임새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을천둥…'은 가작으로 결정되었으나 이 또한 간발의 차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가을천둥…' 은 다부진 언어구사가 돋보였으나 보다 간결한 시적 통일성을 기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수상 권에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장려차원에서 구본희의 '10월 아침에'를 특별상으로 정한다.
누구든 떠납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자의든 타의든 교직을 떠나야했던 IMF때가 생각납니다. 이 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IMF는 우리 교육계에 칼바람 같은 경쟁 사회처럼 엄숙한 잣대를 요구하고 떠났습니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아이들을 지도해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쏟아져 나오는 공문서를 잘 처리하고,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는 것과 같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중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듯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어루만지는 일이야말로 오늘날의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대와 세대가 공존하고, 연륜과 경험을 존경하는 울타리 속에서 아이들은 우리의 전통과 미래를 함께 배우고 익혀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 때가 되면 떠나겠지만 노을처럼 아름다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떠날 수 있는 학교를 꿈꾸어 봅니다. 오늘도 노년의 육신으로 제자들 앞에 서신 선생님들이 기능과 성과라는 칼바람에 떠밀리지 않는 학교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출근길, 현관을 들어서면 아무도 치우지 못한 신발장 위 낡은 슬리퍼 한 켤레가 눈길을 잡는다. 걸어온 길들을 웅변하는 듯 닳아빠진 뒤꿈치로 여행의 고단을 말해주고 있다. 오랜 세월 접어 넣은 주름들을 걸치고 오늘도 어린 세상들을 맞으려는지 무수한 상처들을 데리고 토닥여주던 선생님의 보람이 걸어 나올 것 같다. 어딘가에 떨구고 온 발자국이 아파서일까 흰 머리칼처럼 실밥도 풀어지고 짐 지웠던 가슴처럼 시커멓게 때가 앉았지만 세상을 안내해주던 걸음, 걸음은 우리들의 길을 밝히는 불빛이 되어준다. 떠나실 때 잊고 가신 한 켤레 슬리퍼 그 아름다운 남루를 보면 나는 아침마다 숙연해지는 숨을 들이키며 하루의 계단을 올라 아이들에게 가곤 했다.
2002년, 35년 9개월 동안 몸담아 온 이화여대에서 퇴임한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은 작년 10월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이하 '가건모')을 결성하는 등 더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내 아이만 앞세우려는 가족이기주의, 천민자본주의로만 치닫는 '돈의 정신'을 바로잡지 않으면 가정의 해체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김 전 장관은 "모(母)집단인 가정의 안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기에 공교육도, 국가도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2004년 새해를 여는 키워드, '건강한 가정'은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김숙희 가건모 회장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최근 뉴스들만 접하면 가슴이 답답하지 않나요. 가족 동반자살은 끊이질 않고, 부모가 자식을 강물에 집어던지지를 않나, 카드 빚에, 가계부채는 끊임없지 증가하지요. 이혼율은 세계 2위라고 하죠, 저 출산에 원정출산까지…. 어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 가정이 이지경이 될 때까지 그동안 아무도,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잖아요. 이유는 간단해요. 어떠한 교육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화여대 재직 36년, 사회 활동 30년(YWCA에 몸담았던 기간. 가정학회장(1980)과 교육부장관 재직 기간(1993)은 여기에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세계 영양학회 32년.' 스스로가 그려 보이는 인생 축약도 만큼이나 김숙희 가건모 회장(66)은 가정의 총체적 붕괴 이유도 단순 명료하게 정의한다. 또박또박 정제된 말투를 닮았을까, 군더더기라곤 찾을 수 없다. 이화여대 가정대 명예교수, 호서대 출강, 한국식품영양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느라 쉴 틈이 없지만 김 회장이 '가건모' 일에 무엇보다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건모는 21세기 판 '가정 신문화'운동이에요. 지금껏 가정학이 식생활, 의생활, 육아, 가정 경제 관리 등의 좁은 틀 안에서만 활동해왔다는 자기 반성에서부터 시작됐지요. 전국 가정대학 교수진과 동문, 일반시민 등 400여명이 함께 준비해 작년 10월 창립했고, 그동안 이성교제·결혼·출산·양육뿐 아니라 예비 은퇴자를 위한 가정생활 적응까지 포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하기 위한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엉뚱한 데서 딴죽걸기가 들어옵디다." 가건모의 사업을 충실히 실행할 '건강가정관리사'법 제정이 난항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진다며 법 제정에 반대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여기서도 예외 없이 보게되더군요.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된다싶으면 한 치의 양보도 못하는 편협함과 옹졸함 말입니다. 그동안 가정이 와해될 때까지 손놓고 있던 그들이 말입니다-. 아무튼, 설득과 타협을 거쳐 현재 어렵게 국회 소위를 거쳐 법사위에 상정돼 있습니다. 법이 통과되면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행사보다는 가치관을 수립해 나가는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도 말했다. "먼저 '돈의 정신'을 찾아 주는 것부터 해야할 겁니다. 얼마 전 신혼부부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앞으로 살아가려면 100억이 필요하다고 하고, 65세 이후 노후를 위해서는 5억은 가져야 한다고들 합디다. 이게 다 돌잔치부터 호텔 뷔페서 치르는 등 어려서부터 경제 관념이 심각하게 왜곡돼온 결과예요." 그러나 전통적 가치를 숫제 대놓고 비웃는 21세기에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잘 먹혀 들 일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에, 선생은 우보(牛步)의 길을 걸을 것임을 강조했다. 가건모가 사회의 모세혈관으로서 신선한 혈액을 공급한다는 소임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은 그래서 더욱 당연해 보인다. "존존하게, 퉁겨주고, 제의해 나갈 거예요." '목소리만 높은' 단체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선생은 이렇게 특유의 어투로 다짐한다. '잔잔하게, 정책을 감시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뜻이다. "특화된 전문성(specialty)만 남고 총체성(wholeness)은 죽은 우리 시대의 모순이 이런 위기를 자초한 겁니다. 너나없이 '저요, 저요' 내 말만 들어달라 소리치니 뭐가 제대로 되겠어요. 양보와 겸허를 가르쳐야해요. 욕심을 버려야 하구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걸 선진국들은 벌써 알고 실천하고 있잖아요. 비법은 없어요. 끊임없이 강의하고 설득해야지요." 육순을 훌쩍 넘겼지만, 선생의 영혼은 여전히 주변 사물에 민감하게 감응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그를 몇 번이고 울렸다는 것이다. 'Beautiful Mind'란 두툼한 하드 커버 책이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아이의 개성을) 눌러서 똑 같은 인간으로 만들어버려야 속이 시원하잖아요? 그 책에는 사람을 어떻게 형성해 내는가 하는 지가 감동 깊게 그려져 있었어요. 너는 참 중요하고, 네가 하는 생각은 온당하다는 사실을 항상 일깨워 주는." 교수 생활을 하면서 느껴 왔던, 교육부 장관 시절 경험했던, 억압적 교육 현실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랐던 것이다. 영화로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그 때는 미처 못 느꼈던 사실들이 문자를 통해 새삼 우리나라의 현실과 중첩된 탓이었다. "교육은 그런 거예요. 매만지고 다듬어서 사람 하나를 키워내는 것. 우리는 너무 융통성이 없어요. 틀에 넣고 찍어내려고만 하잖아요. 장관시절 입시제도를 가, 나, 다 군으로 분류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선택의 폭을 좀더 갖자는 것이었죠." 김대중 정부 교육개혁의 근간이 된 '5·31 교육개혁안'(95년)을 만든 주인공은 바로 김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 장관이 '국방대학원 강연 파동'으로 보름 뒤에 있을 교육개혁안 발표를 지켜보지 못한 채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대학총장도 아닌 영양학자 출신이,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아이도 안 낳아본 여자가 무슨 교육을 알겠느냐는 식의 인신공격까지 난무 했었죠. 아, 그렇다면 가건모도 마찬가진가요?(웃음)" 결혼에 대한 집안의 강요도 없었지만, 텍사스 여대 영양학과에 들어가 3년 만에 석·박사를 따고 모교로 돌아온 것이 28살. 그 때부터 실험시설 하나 없던 학교에 장비 갖추기에서부터 연구 프로젝트 따내기까지 직접 뛰어다니며 동분서주했고, 밀려드는 대학원생을 맡으면서 "선 한 번 못 보고, 아니 볼 기회도 없어, 밀려밀려 살다보니" 독신이란다. 그러나 모시고 사는 어머니 홍승숙(94) 여사의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말씀이며, 30년 넘게 단독주택에서 분재를 가꾸고, 참조기 한 두름 소금에 절여 소쿠리에 널어놓는 일상을 이야기할 땐 영락없는 딸의, 주부의 모습이 보인다. "제가 지금 이화여고 동창회장 일도 맡고 있어요. 먹고, 마시고, 여행이나 하는 동창회가 아닌, 학교를 위해서, 후배를 위해서, 또 교사들을 위해서 뭔가 도움을 주는 동창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동창회기금으로 교사들을 위한 '교재개발비'를 매년 1200만원씩 지원합니다." 교육부의 수장을 맡았던 영양학 박사답게 '학교 급식'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식품영양재단을 통해 위탁급식 업체의 문제점들도 꼼꼼히 챙기고, 잉여 우유와 쌀, 섬유질과 올리고당 공급 등 우리 사회가 풍요 속에서 방치해 버린 문제점도 짚어 가고 있다. "장관으로 일했던 2년여의 시간 동안 정부 정책이 어떤 맥락에서 작용하는지, 상아탑 밖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울 수 있었어요. YWCA에 30년 간 몸담았던 경험으로 NGO 운영의 기본기도 마련됐고…. 무엇보다 평생 가정학에 몸담았던 지난 세월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니 몸은 좀 피곤해도 요즘 절로 신이 납니다." 이런저런 자리에 앉아봤다고 거기에 자족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늘 책임을 다해 "저이는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일하는구나"라는 모범을 보이고 싶다는, 김숙희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 선생은 그렇게, 또 다른 30년의 새 아침을, 막 펼쳤다.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낸 안병영 연세대 교수를 임명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브리핑에서 "지난 17일 윤덕홍 부총리가 제출한 사표를 오늘자로 수리하고 안 교수를 후임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정 수석은 "안 신임 부총리는 연대 교무처장과 한국행정학회장,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장 등을 지냈고 많은 연구업적과 높은 덕망 등으로 학계에서 인정하는 행정학자 출신"이라며 "지난 95년12월부터 97년8월까지 1년8개월간 교육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교육개혁 등을 무난하게 추진했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정 수석은 또 "원칙을 중시하고 합리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스타일로서 교육부장관으로 재직한 경험 등을 바탕으로 교육 현장과 학부모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교육현안 등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조용히 치밀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스타일로 실수가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5∼1997년 교육부 수장을 맡아 1년7개월간 교육부 장관으로는 드물게 장수했다. 최근 교육부가 과장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비공식 설문조사에서 '업무능력이 탁월한 역대 장관'에 뽑힐 정도로 관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 폐지, 종합생활기록부(종생부) 필수전형자료화, 유사학과 통폐합 및 학부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5.31 교육개혁안'을 입안해 1997학년도 입시부터 정착시켰고 대안학교, 특수학교 등 소외계층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8월27일 창간된 인터넷신문 업코리아(www.upkorea.net)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창간사에서 "20대 보수와 50대 진보가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어 좌우간, 보혁간의 극단적 이념 대립과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중도와 균형의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서울(62) ▲경기고, 연대 정외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오스트리아 빈대 정치학박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국외대 행정학과 조교수 ▲연대 행정학과 교수 ▲연대 사회과학연구소장 ▲미국 시라큐스대 객원교수 ▲캐나다 Univ. of Columbia 객원교수 ▲업코리아 대표이사
교육부는 20일 대학경쟁력을 강화하기 민간기구를 대학평가에 참여시키고, 평가결과를 DB화해 상시적으로 공개하는 학문 분야 평가 개선안을 마련,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1월 확정키로 했다. 민간기구의 대학평가를 활성화하기 위해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의과대학평가위원회, 간호평가원 등은 해당 학문 분야를 평가하되, 대학교육협의회와 평가자료를 공유토록 했다. 또 교원확보율이나 교수 1인당 학생수, 실험실습 설비와 취업률, 장학금 등의 자료는 DB화해 항상 공개해, 고교생의 대학 진학 자료, 기업체의 사원 채용과 대학지원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4년 주기로 평가하되 평가자료 DB를 통해 정량평가는 매년 실시하며, 발전속도가 빠르거나 국가발전과 밀접한 6대 전략분야(IT, BT 등)는 별도로 평가주기를 정하기로 했다. 또 대학특성에 맞게 평가항목 가중치를 조정하고 유형별 평가편람을 제공해, 대학이 평가유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NEIS 합의는 교육정보화위원회가 활동시한에 쫓겨 본질적인 내용보다도 합의도출에만 급급하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결정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 요지는 학교별 서버를 두고 이를 시·도단위에서 관리하는 이른바 물리적 분할방안을 택하되, 학교별 서버를 그룹으로 묶어 예산을 절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룹화 하는 단위와 관리 방식 등 세부 방안에 대해서는 결정을 미룸으로서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총리 자문기구라고는 하지만 국민의 혈세인 국가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도 이해하기 힘들다. 학교별로 서버를 둘 경우 수 천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된다. 향후 유지보수 비용을 감안하면 훨씬 늘어나게 된다. 예컨대 5천억원이 소요된다면 신규 교사를 무려 1만 명 이상 충원할 수 있는 재원일 뿐만 아니라 학교를 최소한 50개는 신축할 수 있는 규모다. 문제는 이렇듯 돈을 쏟아 붓고도 실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했던 학교정보가 담장 밖을 넘어가거나, 정보 집적은 안 된다는 주장이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학교별 서버를 교육청에 두고 관리하면 이미 정보는 담장 밖을 넘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정보 또한 자연스럽게 집적되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를 민간업체에 위탁하여 관리할 경우, 가장 우려스러운 정보유출의 위험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학교별 서버 구축방안을 합의한 것은 특정단체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번 합의의 성과도 있다. 어떠한 방식이든 NEIS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CS로의 회귀와 같은 수구적인 주장은 이제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남은 문제는 기존의 합의를 바탕으로 학교별 서버의 설치와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이다. 학교별 서버를 최대한 광역화하면 현행 시·도 단위로 16개만 두면 된다. 이는 현행제도와 비슷하여 몇 백억원 정도의 투자로도 즉각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명분에 집착하여 1만1000개 학교에 일일이 서버를 구축한다면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그 설치 기간도 최소한 몇 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학교의 정보화 사업은 또 한번 혼란을 겪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이제는 허울좋은 명분론을 벗어 던지고 보다 실리적으로 국민과 학생의 이익을 위해 지혜를 짜내야 할 때이다. 그래서 NEIS는 이제 시작이다.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뼈대가 될 교육개혁 로드맵이 교육부와 교육혁신위원회(위원장 전성은)에서 별도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상호 의견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엇박자로 놀고 있다. 정부 출범 1년이 지나도록 교육개혁의 방향조차 제대로 설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 발표될 개혁청사진마저 상충될 경우 교육정책은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개혁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혁신위와 개혁의 대상일 수 있는 교육부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지만, 두 기관이 조율 없이 개혁청사진을 그리는 것은 행정력 낭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교육부 과장급들은 "교육혁신위의 관련 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례는 숱하게 발견된다. 교육부의 대학정책은 BK21에서 대변되듯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른 차별과 수월성 추구이다. 반면 혁신위는 국립대 공동학위제 도입등 평준화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국립대 신입생들을 공동으로 선발해서 지방대의 경쟁력을 높인 다음, 대학교육 차원에서 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이 혁신위의 구상이다. 또 교육부는 지방교육자치의 단위를 시·도가 적당하다고 보는 반면, 혁신위는 특성이 비슷한 시·군끼리 인위적으로 묶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현 정권의 성향에 맞춰 평준화를 절대시하고 있는 혁신위와, 사립고교부터 평준화를 폐지하려 한 교육부의 검토(오마이뉴스 15일자 보도)도 마찬가지 사례들이다. 이런 차이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교육부는 "혁신위가 너무 이상적"이라 하고, 혁신위는 "교육부가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교육난맥의 책임을 교육부에서 찾으며 '교육부 축소론'을 공공연히 주장한 혁신위와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교육부간의 알력 또한 정책 조율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에선지, 매주 한번씩 계획된 혁신위와 교육부 차관의 만남은 지금까지 3번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