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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총 회원 33명은 2~6일 4박 5일간 뱃길을 이용해 장보고 유적지를 답사 했다. 교총제휴여행사인 오케이투어와 한·중 합작 해운회사 대룡훼리의 후원으로 진행된 이번 답사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속의 한국사를 체험하고 수업에 반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가장 먼저 들른 곳은 1000년 전 해상왕 장보고가 무역이 번영하길 기원하며 신라방이 많았던 산동반도 영성시에 세운 적산법화원이라는 사찰. 현존 건물은 당나라 시대의 건축양식을 재현해 1988년 중창한 것으로, 중국 측은 한·중·일 삼국의 우정을 담고 있는 사찰로 평가하고 있다. ▷ 평양성 전투 재현한 갑오전쟁기념관=1894년 갑오년 당시 청나라는 일본과의 유공도(위해시 소재)전투에서 참패했다. 그 패전의 역사를 중국은 생생한 기념관(甲午戰爭紀念館)으로 재현해, 와신상담 교훈으로 삼고 있다. 기념관은 당시의 참혹한 전투 현장과 중국의 전쟁 영웅들을 평면과 입체적으로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 ▷ 관광객 유치 발 벗고 나선 중국 공무원=위해시와 영성시의 관광국(여유국·旅遊局)은 각각 국장과 부국장이 참여한 저녁만찬으로 한국 교원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특히 위해시 고욱동 여유국장은 “장보고 기념탑은 외국인을 위해 세워진 중국에서 유일한 탑” “교총은 10만 회원을 거느린 한국 최대의 교원단체”라며 환심을 사려했다. 김선오 교총부회장은 고 국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 국제무역 체험 기회=산동반도 극동에 위치한 진시황의 유적지 성산두, 신선이 살았다는 봉래각, 애브랜드의 10배 이상 되는 규모의 야생동물원(연대시), 고선박물관 등을 둘러 봤다. 평택항과 산동반도를 운행하는 대룡훼리호(1만 8000톤급·정원 834명)의 조타실에서 듣는 황보상(62) 선장의 항해 이야기, 수 십 킬로그램은 족히 나갈 가방꾸러미로 민간무역을 하는 보따리상들과의 조우, 대중목욕탕보다 더 흔한 발마사지 서비스는 또 다른 삶의 체험이었다. 이번 답사에는 고범수 김선오 김운념 하윤수 교총부회장과 김규원 경남교총회장, 설윤덕 대구교총회장 등을 포함한 33명의 교총회원들이 참가했다.
중국 산동반도 위해시에 자리잡고 있는 위해대광화국제학교(威海大光華國際學校)에는 중국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와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돼 있다. 한국 유학생이 전체 학생의 40%(160명)에 달해 한·중 국기를 함께 게양한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지만, 한국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 2~6일간 ‘해상왕 장보고 사전답사 연수’차 이 학교를 들른 한국 교원 33명은,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중국의 교육개방 현실을 지켜봤다. 위해대광화국제학교는 외국 투자자 자녀들을 위해 중국 자본가가 2년 전에 240억 원(이하 韓貨)을 들여 설립한 사립학교다. 인천송도와 제주, 경제자유구역 내에 설립될 외국교육기관과 비슷한 셈이다. 초·중·고 통합으로 운영되는 이 학교는 입학을 제한하는 어떤 규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개방적이다. 외국투자자 자녀를 위한 학교지만 내국인이 60%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40%는 모두 한국 유학생이다. 한국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반을 별도로 운영하고, 한국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며, 한국인 교감(서울 영훈고에서 정년 퇴직한 박영원 씨)까지 배치했다. 박 교감 외에도 초, 중, 고 급별로 1명씩 중국인 교감이 있어, 교감은 모두 4명이다. 석달 전 경남 창녕에서 이곳으로 유학온 강다연 학생은(중1)은 “중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박 교감의 손길을 기다리는 도피성 유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등록금은 내·외국인이 달라, 한국 유학생이 1년 내는 등록금은 기숙사비를 포함해 600~700만원, 중국 학생은 그 절반이다. 한국 유학생 한명 등록금은 중국교원 2명의 연봉과 맞먹는 액수로, 이 곳 교원들의 보수(월 30만원)는 공립의 두 배이다. 중국 학제를 따라 초등(5년)-중학(4년)-고교(3년) 과정이 있으며, 학생들은 태권도, 골프, 수영, 모형비행기 제작, 영화 제작 등 30개의 특기과정 중 하나는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유학생 중 초등 1~3년생은 중국반에 편입되나, 초등 4년생 이상은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중국반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중국-한국-미국·유럽대학 중 진학 희망에 따라 외국어 수업을 달리한다는 게 박 교감의 설명이다. 아직 졸업생이 없어 대학진학 성적은 알 수 없지만, 이에 따라 유학생들의 발길이 좌우될 듯하다.
교총 회원 33명은 지난 2~6일 4박 5일 일정으로, 뱃길을 이용해 장보고 유적지를 답사 했다. 교총제휴여행사인 오케이투어와 한·중 합작 해운회사 대룡훼리의 후원으로 진행된 이번 답사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속의 한국사를 체험하고 수업에 반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 답사팀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천년 전 해상왕 장보고가 무역이 번영하길 기원하며 신라방이 많았던 산동반도 영성시에 세운 적산법화원이라는 사찰. 현존 건물은 당나라 시대의 건축양식을 재현해 1988년 중창한 것으로, 중국 측은 한-중-일 삼국의 우정을 담고 있는 사찰로 평가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15미터 높이의 장보고기념탑은 1993년 세계한민족연합회(당시 회장 최민자)가 세운 것으로 기념탑 글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평양성 전투 재현한 갑오전쟁기념관 1894년 갑오년 당시 청나라는 일본과의 유공도(위해시 소재)전투에서 참패했다. 그 패전의 역사를 중국은 생생한 기념관(甲午戰爭紀念館)으로 재현해, 와신상담 교훈으로 삼고 있다. 이 기념관에는 당시의 참혹한 전투 현장과 중국의 전쟁 영웅들을 평면과 입체적으로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 여기는 평양성 전투 장면도 묘사돼 있어, 강대국의 전쟁터로 전락한 100년 전 조선의 현실에 답사자들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관광객 유치 발 벗고 나선 중국 공무원 답사에서 교원들은 관광객 유치에 발 벗고 나선 중국 공무원들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위해시와 영성시의 관광국(여유국·旅遊局)은 각각 국장과 부국장이 참여한 저녁만찬으로 한국 교원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특히 위해시 고욱동 여유국장은 “장보고 기념탑은, 외국인을 위해 세워진 중국에서 유일한 탑”, “교총은 10만 회원을 거느린 한국 최대의 교원단체”라며 환심을 사려했다. 김선오 교총부회장은 고 국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국제무역 체험 기회 답사객들은 이외에도 산동반도 극동에 위치한 진시황의 유적지 성산두, 신선이 살았다는 봉래각, 애브랜드의 10배 이상 되는 규모의 야생동물원(연대시), 고선박물관 등을 둘러 봤다. 평택항과 산동반도를 운행하는 대룡훼리호(1만 8000톤급·정원 834명)의 조타실에서 듣는 황보상(62) 선장의 항해 이야기, 수십킬로그램은 족히 나갈 가방꾸러미로 민간무역을 하는 보따리상들과의 조우, 대중목욕탕보다 더 흔한 발마사지 서비스는 또 다른 삶의 체험이었다. 이번 답사에는 고범수·김선오·김운념·하윤수 교총부회장들과 김규원 경남교총회장, 설윤덕 대구교총회장 등을 포함한 33명의 교총회원들이 참가했다.
국회 교육위원회(위원장 황우여)는 7일 전체회의를 열어 열린우리당의 `4대 입법' 중 하나인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상정해 심의에 들어갔다. 개정안은 교사와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가 추천하는 `개방형 이사'를 이사 정수의 3분의 1 이상으로 채우도록 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교육위는 이날 사학법 개정안 상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로 장시간 회의가 공전되는 등 진통을 겪었으나, 여야 간사간 협의에서 우리당측이 "사학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극적으로 법안을 상정했다. 우리당은 이같은 합의에 따라 사학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한다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게 될 전망이다. 여야는 이날 자정까지 사학법 개정안을 놓고 대체토론을 벌였으나 시간제약상 토론을 마치지 못하고, 연말 임시국회에서 의사일정을 잡아 대체토론을 재개하기로 했다. 우리당은 "사학 운영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사학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를 주장해온 반면, 한나라당은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금융감독원은 학생, 학부모, 교사들에게 온라인을 통한 금융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홈페이지(www.fss.or.kr)에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금융교실'을 마련, 9일부터 서비스를 제공한다. 금융교실에는 신용관리와 합리적 소비, 금융생활, 화폐의 발달 등의 내용을 담은 '학습자료'와 애니메이션 8편, 동영상 2편, 게임 2편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수록될 예정이다. 학습자료는 ▲금융교실(경제와 금융의 기초개념 설명) ▲보물창고(용돈기입, 지출습관 형성 등 체험학습과 금융이해력 측정) ▲호기심 도니(경제지식에 대한 상담, 문답풀이) ▲레츠고 도서관(금융관련 각종 자료 제공) 등으로 구성된다.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유치원, 초.중.고교 등으로 수준을 나눠 ▲우리집 살림살이 ▲동전받기 ▲대출상담 ▲경제지표 맞추기 ▲보증책임 ▲신용, 소비 윤리 등 애니메이션과 동영상, 게임 등이 제공된다. 금감원은 7일 "금감원이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학교에서 교과과정 또는 재량 활동시간 등에 시청각교재로 활용이 가능하다"면서 "가정에서는 실질적인 생활중심, 학습체험 등 맞춤형 금융교육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모 고등학교 K교장(60세)은 도교육청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들을 적마다 한숨부터 나온다. 그 내용은 보나마나 뻔하기 때문이다. 단협으로 인하여 선생님들은 귀찮은 일이 줄어들고 학교생활이 좀더 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교장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과 학부모를 위하는 것보다 교권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학교장 중심의 자율 경영을 위축시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겉으론 표현 못하지만 체결 당사자인 도교육청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사심을 떠나 학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도 양심을 가진 공직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교육자임을 망각한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을 대부분 수용한 내용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말이 합의지 심하게 표현하면 교육청이 노조의 입장을 대변하여 일선 교장을 옭죄는 것 같다고 말한다. 툭 까놓고 말하면 교육이 무너지든 말든 무사안일로 세월만 보내면 교사들과 부딪칠 일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누가 뭐래도 아닌 것이다. 단협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수업 장학 사전 예고, 인사자문위원회 구성, 학습지도안의 자율 작성, 연구시범 학교 동의 얻기, 요청장학 동의 얻기, 보충수업 및 자율학습 금지, 화장실 청소 용역비 반영, 교사 교통지도 금지, 자율출퇴근제, 학급운영비 예산 편성 등 교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줄어들고 자기 권리만을 내세우거나 일안하자주의, 일편하자주의로 흐르고 있다. 억지로 표현한다면 단체협약은 교장 힘빼기와 교육 황폐화를 가속화시킨다는 교육감과 노조와의 약속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의 시도교육청이 단협에서 노조에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결국엔 두 손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직 경력이 있는 서울의 Y교감(51세)의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첫째, 현 참여정부의 집권세력이 그러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 과거 형태로 노조와 반대되는 식으로 밀어붙이다간 교육청이 외톨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 현 사회의 급진 세력이 기존세력을 수구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둘째, 시도교육청의 협상 대표들의 전문성 부족을 꼽는다. 상대보다 법률적인 면, 논리적인 면에서 앞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이념면에서 무장은 노조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것. 셋째, 시도교육청 교섭 대표들의 체력 및 인내력 부족을 든다. 실무교섭위원회와 본교섭위원회를 수십 차례 임하는데 10여 개월이나 걸리고 때론 몇 일의 밤샘을 이겨내야 하는데 교육청 팀들은 정신적, 육체적 힘이 달린다는 것. 그러다간 결국에 지쳐서, 시달림이 지긋지긋하여,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여 젊은 노조들에게 백기를 들고 만다는 것. 넷째, 시도교육청 교섭 대표들이 자기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도 한 이유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교육청 간부들 대부분이 일선 학교 교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교육장으로 영전해 가기 때문에 협약 내용이 일선 학교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 다섯째, 노조측은 시도 단위로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정보와 노하우를 주고받는데 비해 시도교육청은 협상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도 부족하고 교육청 간 연합 구축이 미흡하기 때문에 패하게 된다는 것. 그러면 대책은 없는가? 물론 있다. 시도교육청 교섭 전담팀을 구성할 때 교육청 간부급 일색으로 하지 말고 현장의 교사, 교감, 교장을 연합구성하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전문성도 키우고 이념적으로 재무장도 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는 말과 요즘의 윈윈 전법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조 세력이 조직을 사실 상 쥐고 흔들고 있다. 국가의 심장부도 그들의 손아귀에 다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나라가 걱정이다. 국민이 선택한 대가를 혹독히 치루어야 하는 것이 세상사의 당연한 이치이지만. 대한민국호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교육분야에서만이라도 올바른 길로 가야하는 것, 리포터만의 희망사항은 아닐 것이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싸고 있는 교육계는 물론 사회가 갈등에 휩싸여 있다. 이 땅에 사립학교가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사립학교들이 이렇게 거세게 반발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립학교들의 격렬한 반발 속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이 추진되었을 경우 얻어지는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사립학교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많은 국민들조차도 우려하고 있다. 그간 논란이 되어온 사립학교법 개정의 초점은 학교장의 교직원 임명권과, 재단 이사회를 확대·개방해 일부를 개방형 이사로 채우도록 의무화하는 등 사학의 자율권을 제한하고 특수성을 무시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학교장의 교직원 임명권을 철회하고, 이른바 ‘개방형 이사’를 의무화하는 것 등을 계속하여 추진하고 있다. 즉 사학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단 이사회를 교사·학부모·학생 등 학교 구성원들이 추진하는 개방형 이사로 최대 3분의 1을 채우도록 하고 재단 이사장과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은 재단 이사회 이사로 5분의 1이상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학교운영위원회도 심의 기구로 격상해 인사와 예산 등을 다루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 개정의 명분이 공공성을 강조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학교조직이 이해집단간 알력과 갈등의 분위기로 빠지는 등 역기능도 크게 우려된다. 사립학교 경영에서 이사(회)·교장·교감·교사 등 교직원들은 각기 직위에 따라 역할과 책임 및 권한이 주어지고, 역할 수행과정에서 자문과 협의 등 민주적 집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만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비리 사학은 법에 따라 엄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국가를 대신해 교육 기능을 담당해온 많은 사립학교들을 일률적으로 규제해 의욕을 좌절시키는 것은 사학 전체를 불신하는데서 나온 것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정부와 여당은 사학 등 각계 대표들과 흉금을 털어놓고 진정 사학을 발전시키는 일이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논의할 때라고 본다. 특히 금번 사립학교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진 전교조도 차제에 많은 국민들이 바라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앞으로 균형 있는 활동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교육은 과격한 주장이나 운동으로 발전이 이룩될 수 없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게 되며 교육공동체를 약화시키게 된다고 본다. 이는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되고, 나아가 교육력은 물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게 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과 국민의 교육권 보호라는 차원에서 볼 때 사학은 교육정책에서 더 이상 불신과 통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학의 발전 없이 우리 교육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학에 대한 통제·감독 위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지원·육성정책으로 전환하여 사학이 자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견지하면서 다양하게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여 사학의 특수성을 신장시킴과 동시에 교육의 수월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학이 공립학교의 보조기능에서 탈피하여 그 위상을 정립·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행·재정적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사학의 공공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사학 스스로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 공공성과 책무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등 새로운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사학간의 자율적 협의기구가 사학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제도적 비리를 방지하는 등 사학의 공신력을 높이는 노력을 경주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특수성에 비추어 바람직하고 또 우리 교육의 지속적이고 튼튼한 발전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서로 믿고, 협력하는 가운데 사학의 진정한 발전은 물론 우리나라 공·사립 모든 초·중등학교 발전의 길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하여 추진해 나가자.
이태진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은 3일 한국학술진흥재단 강당에서 제1회 한국학술현황 점검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상 초유의 ‘수능 부정’ 파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지만 정작 수험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은 달라진 입시제도에 따라 정보를 수집하고 지원전략을 짜기 위해 분주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2일부터 5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주최한 ‘2005 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는 행사 기간 동안 입시정보를 얻기 위해 학생, 학부모, 교사 등 9만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3일 박람회에 온 학생,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쇼핑백에도 모자라 양손 가득 80여개 대학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자료를 받아 분석하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대학들과 전형방법 때문에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도 옥석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정윤희(18·행신고)양은 “현재 수준에서 갈 수 있는 대학의 정보를 가려내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자료도 많이 받고 설명도 들었지만 아직 잘 판단이 안선다”고 말했다. 또 수험생들은 원점수는 사용하지 않고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사용하는 등 달라진 입시로 인한 예측불허의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대답했다. 이정은(18·평택여고)양은 “표준점수로 바뀌어서 현재 내 위치를 몰라 불안하고 올해 수능이 쉽다고 해서 걱정 된다”면서 “관심 있는 학과 정보와 졸업 후 진로까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입정보박람회에 참가한 대학들도 수험생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개괄적인 자료만 제시하고 각 대학의 특성을 홍보하기 바빴다. 경희대학교 입학처 관계자는 “지난해 입학한 학생들의 원점수와 백분위를 공개해 비교해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표준점수가 입시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몰라 정확한 판단은 어렵다”면서 “경희대의 경우 보다 기회의 폭이 넓은 전과, 복수전공 제도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람회에서 하루에 200여명의 학생들을 상담한 대교협 대입시상담교사단 이원희 위원장(교총 수석부회장·서울 잠실고)은 입시전략에 대해 “사설학원의 배치표는 대학을 서열화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상담교사단에서 지난해 고3 학생들이 입시에 합·불합격한 실제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보다 구체적인 가능성 상담을 해주고 있다”면서 대교협 진학상담센터(univ.kcue.or.kr)의 무료 상담을 적극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또 상담 교사단의 서정인 언남고 교사 역시 “다양화 특성화된 이번 입시부터 ‘정보’가 생명인 만큼 200여 대학정보가 모두 집약된 대교협 입시정보 홈페이지를 이용해 진학할 대학의 정보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Q. 40대 초반 교사입니다. 주말마다 조기축구와 등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보다 높은 산을 오른 다음날 무리해서인지 서서 수업하기 힘들 정도로 무릎 통증이 있었습니다. 온찜질, 파스도 잠시뿐입니다. 병원을 찾아야 할까요? A. 무릎을 직접적으로 다친 경험은 없어 보이지만 수업이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각하다면 관절염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축구를 하다보면 몸싸움을 하게 되고, 그 충격이 무릎에 손상을 주기 쉽습니다. 약한 충격이라 하더라도 관절엔 염증이 발생하고 이것이 관절염의 시초가 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산을 오르내리며 발생한 압력이 관절염을 악화시킨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근본적인 통증원인은 등산보다 축구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축구와 같이 알게 모르게 무릎 연골이 손상되는 운동들이 있습니다. 주로 농구, 배드민턴, 테니스와 같이 갑작스런 방향전환을 요하는 운동입니다. 특히 연골을 둘러싼 근육이 약할수록 부상을 입기 쉽기 때문에 무릎 손상을 방지하려면 무릎근육 강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강한 근육일수록 외부 충격을 완충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무릎근육을 강화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근육이나 힘줄을 천천히 늘려주는 것입니다. 의자에 앉은 자세에서 한쪽다리를 쭉 뻗고 발바닥을 지면에서 90도 각도로 올리고 다리에 힘을 집중시키는 운동이 좋습니다.6초 동안 힘을 주고 6초 동안 휴식을 취하는 방법으로 좌우 다리를 번갈아 반복하며 하루에 10번 정도면 운동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실시하되 자신의 능력에 맞게 하는 것이 효과가 좋습니다. 만약 무릎통증이 심해 혼자 거동하기 불편할 정도면 수술을 고려해야 합니다. 관절 주위에 구멍을 2, 3개 내고 내시경을 집어넣어 손상된 물렁뼈를 없애거나 꿰매 잇는 등의 방법으로 관절 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내시경 수술’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도움말=인천 힘찬병원 양지웅 과장 (032-820-9114)
전국적 규모로 자행된 수능부정 사건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내신 부풀리기, 고교간 학력 격차 심화, 허리 휘는 천정부지 사교육비, 뒷북치기 면피용 교육행정에 이어 수능 부정이 2004년 한국교육을 부끄럽게 하는 자화상에 합류하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내신 부풀리기나 수능부정에서 보듯이 교육당국도,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와 교사도, 배우는 학생도 모두 자기 위치와 자기 역할에서 저만큼 탈선하고 있다. 어느 고교 교사의 고백처럼 수단의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려는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다는 성적지상주의 사고 방식이 수능 부정이라는 엄청난 화를 자초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자행된 수능부정은 개별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007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교육의 장인 학교나 수능 시험장에서 파렴치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으니 한마디로 도덕과 양심이 송두리째 실종된 사회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있는 교육 현실인데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저 변명하고 덮는데 급급하거나 사후 약방문 행정이나 하는 교육당국일 바에야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수능시험이 있기 전에 이미 인터넷 게시판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수험생들의 핸드폰을 이용한 부정 음모를 감지하고 교육당국은 지난 9월에 관련 부처간 협의까지 하였다. 그런데도 무사 안일한 대응과 면피용 행정 처리로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으니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비난이 당연히 쏟아지는 것이다. 핸드폰이 학생들에까지 대량으로 보급된 것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인데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전 예방 대책을 마련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었으니 교육당국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수능 부정에 앞서 문제가 된 내신 부풀리기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규범을 준수해야 할 학교나 교사들이 내신 성적 부풀리기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일부지만,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겠는가. 그저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덕적 타락을 목격했을 테니 이들이 이번과 같은 범죄에 해당하는 조직적 수능 부정을 하지 않았겠는가. 이번의 수능 부정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학교와 교사가 도덕적 모범을 보이지 아니하고 우리 사회가 목적 지상주의에 빠져 수단과 과정을 무시하고 도덕률로서 정직을 존경하지 않은 결과로 발생한 자업자득의 산물이라 하겠다. 학생들의 탈법과 불법에 대한 지도 감독도 그렇다. 학생들이 커닝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후 처리가 귀찮아서 또는 지나친 온정주의로 탈법이나 불법을 묵인하는 것은 엄청난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탈법과 불법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잘못된 법의식을 갖게 하고 도덕 불감증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동네나 거리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을 보면 엄하게 꾸짖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못 본 체 외면만 하니 청소년들의 탈법과 불법은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심과 도덕의 마지막 보루인 학교와 교사마저 성적지상주의에 눈이 어두워 학생들의 탈법과 불법을 제대로 지도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 사회와 자라나는 세대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출제에서 관리까지 부정으로 점철된 수능으로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이 극에 달하고 수능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 수능은 무능한 교육당국의 관리 차원을 넘어 국가 위기관리 차원에서 범정부적 종합 관리가 필요하다. 차제에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전환하고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주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솔로몬은 진짜 어머니를 가려냈을까=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법을 안내한다. 달래와 바우가 철학교수와 대화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논리적·비판적 사고를 익히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연역추리, 귀납추리, 가설추리 등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김광수/사계절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일까?=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한번쯤 ‘우주의 신비’에 대해 관심을 갖곤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우주와 자연 현상이 우리 삶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박용기/고래실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논술=시험 전날 시험지를 주웠다면 보아야 하는가, 값싼 쌀을 수입하고 자동차를 수출하면 이득일까,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면서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가능할까 등 교과서에 수록된 풍부한 주제를 종합해 상식 쌓기는 물론 논술과 면접 대비도 충분하도록 구성됐다. 로고스교양연구회/살림 ▶그냥 떠나는 거야=소년 요나스는 대학입학시험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산티아고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칠레의 판아메리카나를 남북으로 이동해가면서 그는 성장기의 고민, 자신이 속했던 세계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되짚어보게 된다. 구드룬 파우제방/풀빛 ▶호랑이 그림도감=호랑이의 크기, 외형 등의 형태적 특성부터 습성, 호랑이의 역사적 기록까지 호랑이의 모든 것을 한눈에 찾아 볼 수 있는 도감. 살아 움직이는 듯 세밀한 그림과 함께 생태, 성장, 사냥, 그 외의 기록 등 4개의 큰 틀을 다루고 있다. 안수길/바다
30년 만에 제자들을 만났다. 사내 녀석들이 태워주는 기마로 둔덕을 올라가다가 바짓가랑이가 뜯어졌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누가 바늘과 실 없니?” 사실 산에 가서 물고기를 찾는 식이었다. “선생님, 저 있어요!” “그래, 어쩐 일로 바늘과 실을 가지고 다니니?” “선생님께서 6학년때 ‘바늘과 실을 가지고 다니는 여자가 되라’고 하셨잖아요. 그때부터 저는 바늘과 실을 줄곧 가지고 다녀요.” 그때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컸던, 지금은 마흔 줄을 넘은 여자 제자다. 잠시 내 마음에는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그리고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내가 아이들에게 입력한 교육의 결과를 30년 만에 출력해서 직접 눈으로 보게 됐으니 말이다. “바늘과 실을 가지고 다니는 여자가 되라!” 햇병아리 총각교사였던 내가 왜 그렇게 고리타분한 말을 했는지 지금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교사라는 직업은 참 어렵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일생 동안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은 기억일 수도 있고 잊고 싶은 상처일 수도 있다. 가끔 제자들이나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아 지금까지도 생채기로 남은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실내화로 머리를 때렸다고 불혹이 넘어서도 담임을 원망하는 친구도 있고 시골장터에서 난생 처음 먹어본 선생님이 사준 자장면을 잊을 수 없다는 제자 녀석도 있다. 언뜻 이런 말이 생각난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잊어버린 뒤에 남아있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 마음에 머무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되도록 상처로 남지 않고 가끔 좋은 생각이 나게 하는 교사로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된다.
'EBS 文化史시리즈 제2편 - 100인의 증언, 60년대 문화를 말한다'가 12월 11일(토)에 첫 방송된다. 총 10부로 구성된 'EBS 文化史시리즈 제2편 - 100인의 증언, 60년대 문화를 말한다'는 60년대 문화예술계 각 분야에서 활동했던 대표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인터뷰 다큐멘터리이다. 문학, 연극, 영화, 미술, 음악 등을 주제로 하여 그들이 당대의 시대상황 속에서 어떤 고민과 사유를 통해 삶과 자유, 창작열을 불태웠는지를 당시 사회상과 더불어 조명한다. 지난 11월 28일에 종영한 'EBS 文化史시리즈 제1편 - 명동백작'이 50년대의 전쟁과 상처, 가난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멋과 낭만으로 극복하려는 문화예술인들의 삶을 보여줬다면, 'EBS 文化史시리즈 제2편 - 100인의 증언, 60년대 문화를 말한다'는 50년대의 상처를 극복하고 각 분야에서 본격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60년대 이후 문화예술인의 삶과 작품 활동을 보여준다.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실존 인물들의 직접적 증언과 관련자들의 증언에 중점을 두었다. 'EBS 文化史시리즈 제2편 - 100인의 증언, 60년대 문화를 말한다'는 50년대 문화예술을 다루었던 'EBS 文化史시리즈 제1편 - 명동백작'에 이어 60년대 문화예술의 상황을 다룬다는 연속성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EBS 文化史시리즈 제3편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증언과 자료로 조명함으로써, 'EBS 文化史시리즈'를 하나의 통일된 맥락에서 이해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2편에서도 진행자를 탤런트 정보석으로 캐스팅했다. 'EBS 文化史시리즈 제2편 - 100인의 증언, 60년대 문화를 말한다'는 예술의 태동기라 정의되는 50년대를 거쳐 60년대 이후 본격화 된 각 장르의 도전사를 본격적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문학, 미술, 연극, 영화, 음악 등 관련 인사들의 증언 및 인터뷰, 구체적 자료를 통해 그들이 갈구했던 자유의 의미와 시대와의 긴장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진지하게 되묻게 될 것이다. 'EBS 文化史시리즈 제2편 - 100인의 증언, 60년대 문화를 말한다'의 제1부에서 3부까지는 '문학'을 다룬다. 해방전후 문단에서의 좌우대립이 이후 우리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권력 앞에서 시대에 방황하지 않으며 60년대를 살아낸 시인 김관식과 천상병을 회상한다. 또 신진작가들과 기성문단들의 대립상을 살펴본다. 제4부는 당시의 '연극'을 주제로 한다. 60년대 들어 본격화된 연극계의 새로운 움직임과 소극장 운동의 흐름을 되새긴다. 제5부는 한국영화에 대한 입장세 면세조치 이후 본격화된 60년대 영화의 전성시대를 살펴본다. 60년대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과 은막의 스타들을 직접 인터뷰한다. 제6부는 '미술'에 대해 재조명한다. 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도된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정리해본다. 제7부에서는 60년대의 '음악'을 주제로 한다. 이미자, 최희준, 패티김, 신중현 등 60년대 음악의 다양한 흐름과 시대에 대처했던 가수들의 노래를 통해 우리 가요사를 정리한다. 제8부와 9부는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당시 문학청년들의 활동들을 살펴본다. 마지막 제10부는 '개혁을 꿈꾸는 문인들의 희망과 좌절(가제)'이 방송된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입학 전형 제도가 왜곡됨으로써 빚어진 학생과 학부모의 학습권 침해, 경제적 손실 등 인권 침해 양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능시험 부정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펴낸 '인권백서'에서 잘못된 대입 제도로 인한 학생과 학부모의 인권 침해를 지적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백서는 ‘교육과 인권’이라는 장에서 "과도한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현행 대입전형 제도가 학생이 능력에 따른 교육을 받고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특히 고등학생들의 비인간적 상황이 가장 심각한 문제며 암기 중심의 문제풀이식 학습, 등수 부여 중심의 평가체제 등도 비인간적이고 학대적인 성적 경쟁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백서는 또 "성적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이 해소되지 않는 한 교육 분야에서 인권이 존중되는 분위기는 조성될 수 없다"고 현행 교육 제도를 비판했다. '인권백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3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펴낸 것으로 교육 분야 외에도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 상황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최초의 ‘인권보고서’다.
제주학생문화원(원장 고헌철)에서는 4일 오후 3시부터 6시 까지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에서 제주도내 초중고교생 동아리를 대상으로 제1회 제주 청소년 동아리 발표회를 개최했다. ‘미래, 세계 문화의 주역’이라는 주제로 제주 청소년들에게 소질과 특기를 계발하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 제공과 정서적이고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형성하기 위하여 열린 이번 동아리 발표회에서는 제주도내 율동부 동아리 7 개팀, 그룹사운드부 동아리 9개팀이 참여하여 열띤 경연을 벌였다. 이번 제1회 동아리 발표회에서 중문상업고등학교 피클쿠르(현유진 외 3명)가 대상을 수상했고, 율동부 금상은 제주상업고등학교 스카이, 그룹사운드부 금상은 제주제일고등학교 퍼스트가 수상을 했다. 그리고 지도교사상은 중문상고 홍향표 선생님이, 이 밖에 각 부문별 은상, 동상, 장려상을 수여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이번 동이리 발표회를 통하여 청소년 문화 공간으로 조성된 제주학생문화원 시설을 활용함으로써 제주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 생활을 도왔고, 청소년 예술관 동아리 활동 활성화를 도모했으며, 제주청소년들에게 화합의 장이 되었다. *제주학생문화원 홈페이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우리반을 말한다' 이벤트를 한국교육신문을 통해 처음 알고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그냥 편한 생각으로 시작한 이벤트에 선정된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에듀넷에서 제공하는 우리반 홈페이지가 있어서 우리반 아이들이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반 홈페이지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벤트 참여도가 높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벤트를 신청하고 우리반 아이들에게 홍보하는 첫째날! 아이들은 40만원 상당의 파티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기대를 하며 열심히 참여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눈빛이였다. 그러나 첫째날 우리반 게시판을 점검한 결과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참여하는 아동이 별로 없었기에. 다음날, 나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어째서 어제 참여하지 않았는지를 물어보았다. 아이들의 반응은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나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주제를 주지 않았음을 알았다. 덩그러니 도화지와 크레파스만 손에 쥐어 주고 어떤 그림을 그리라고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고민의 결과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글을 서로 소개하고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이들의 바른 인성 함양에 좋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웃음을 통해 긍정적인 자아감과 자신감을 갖도록 웃음을 주제로 글을 쓰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좋은 글과 웃음과 관련된 글을 서로 찾고 읽고 나누면서 우리반 게시판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반 게시판이 활성화되면서 우리반에 선정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우리반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교실에서 조용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아이가 우리반 게시판에서는 자기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기도 하였고, 많은 아이들이 좋은 글을 읽고 댓글에 자기를 반성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볼 때 선생님으로서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이벤트 기간이 끝나갈 때 아이들은 서로를 더욱 많이 알게되었고, 나는 아이들의 글들을 보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벤트가 끝나고 우리반이 20개반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는 소식에 우리반은 너무도 기뻐하였고 12월 2일에 마르쉐에서 우리반 파티를 하게 되었다. 마르쉐에서 있었던 파티도 나와 우리반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지만 게시판 하나로 서로를 더욱 더 많이 알게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나에게는 더욱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끝으로 우리반에게 이렇게 좋은 추억을 안겨다 준 한국교육신문사 관계자와 소란스러운(?) 우리반 아이들을 친절하게 맞아주시고 멋있는 파티를 제공해 주신 일산 마르쉐 점장님께 고마움의 마음을 전한다.
유치원 뒷뜰의 텃밭에 아이들이 심고 가을 내내 정성을 다해 가꾼 배추를 뽑으며 아이들은 김장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2월의 첫째 날!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이른 아침부터 김장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를 보고 신기해하며 "선생님! 배추가 빨래 같아요!"하며 웃어대는 아이들, 앞치마와 머리 수건을 두르고 배추 속에는 무엇이 들어가는지 열심히 관찰하는 아이들, 매워서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도 "하나도 안 매워요!, 너무 맛있어요!"하며 맛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순수해 보였습니다. 학부모 자원봉사자들께서 아이들이 김치와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밥과 어묵국을 준비해 주셔서 김장을 하고 난 후에 작은 잔치도 열었습니다. 김장을 직접 해 보면서 아이들은 왜 김장을 하는지, 김장을 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배추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스스로 알게 되었답니다.
동아시아 근대화운동의 명암과 한・중・일의 운명 中 '양무운동' 폐단·한계 동시 지적, 실패의 근원 시사日 '명치유신' 성공원인 등 역사적 의의 언급 거의 없어 동아시아의 ‘근대’는 1840년 아편전쟁에서 시작되었다. 아편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동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편전쟁에서 당연히 승리할 것으로 믿었던 청조가 영국에게 참패하자,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과 일본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고 동아시아 각국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이를 계기로 청을 비롯한 조선과 일본의 지도층은 서구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한 대응책을 모색했는데, 이것이 ‘근대화’를 위한 운동 혹은 개혁이었다. 근대화운동의 배경 중국의 고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제2차 아편전쟁 이후 내우외환에 직면한 청조 내부에 양무파(洋務派)와 수구파(頑固派)가 형성되면서, 양무파는 열강과 함께 태평천국군(太平天國軍)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열강의 군사력과 기술이 우수하다는 점을 인식, 서방의 선진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청조의 통치를 유지하자고 주장한 데 반해, 옛것을 답습하고 지키자는 수구파는 모든 서양사물을 맹목적으로 배척하고 적대시하면서 변함없이 청조의 통치를 유지하자고 주장했다는 점, 청조의 통치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적 실력과 서양 침략자의 호감을 지닌 양무파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최고 실권자 자희태후(慈禧太后)가 양무파의 책략을 ‘잠시’ 지지했다는 점을 거론하여, 근대화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청 지도부의 분파적 상황 및 근대화운동 추진배경을 기술하고 있다. 원구단- 고등학교 국사 일본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구미 열강이 동아시아에 세력을 확대해오는데 위기감을 느낀 명치정부가 구미 강국에 대항하기 위해 경제와 국력을 발전시키고 군대를 강화시키기 위해 소위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을 실시했다고 하여 근대화운동 추진의 배경을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 한국의 중・고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임오군란 후 청의 내정간섭을 받게 된 상황에서 다시 집권한 민씨 세력이 친청(親淸) 정책을 취하면서 개화정책을 후퇴시켜 근대적인 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자, 평소에 일본의 명치유신을 본떠 근대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개화파 세력은 그러한 정치상황에 불만을 품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고 하여, 한국의 근대화 시도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또 한국의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갑오개혁을 근대적 개혁 조치로 규정하면서 그 배경으로 개항 이후 누적된 모순해결을 위한 개혁의 필요성 제기, 농민들의 개혁요구, 침략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일본의 내정개혁의 요구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근대화운동의 경과와 내용 중국 고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양무파가 청조 중앙이 아니라 지방의 실권을 장악한 총독(總督)나 순무(巡撫)의 지위에 있으면서 186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자강(自强)’의 기치를 내걸고 서방 선진 생산기술을 받아들여 근대 군사공업을 일으켰다는 점, 양무운동의 한계로 군사공업이 대부분 청 정부의 경비로 조달된 관영산업으로서 정부가 생산품(무기)을 군대에 배분해서 사용케 했는데, 생산비나 경제수익을 고려하지 않아 발전 동력을 결핍하고 있었다는 점, 가령 강남제조총국(江南製造總局)처럼 봉건관료가 실권을 쥐고 군대식으로 노동자를 속박・탄압하여 생산의욕을 저하시켰고 공업기술의 개선을 중시하지 않아 무기의 질이 나빴다는 점, 청 정부가 군사공업이 모두 한족 관료 수중에 들어가자 한족의 주도권 장악을 염려하여 양무를 모르는 만주족 관료로 하여금 천진기기제조국(天津器機製造局)을 세우게 했다는 점, 대표적인 민간회사인 윤선초상국(輪船招商局)이 성공적으로 이윤을 창출했음에도 대부분의 이윤이 창업자인 이홍장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는 점 등 주로 양무운동의 폐단을 중심으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다만 양무운동 후기에 접어들어 군사공업 자금・원료・운수방면의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근대적인 민수공업을 일으켜 군사공업 보완, 해군창설과 해군기지 건설, 신식학교의 설립 등 양무운동의 긍정적인 면도 부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고교 교과서에서는 양무운동의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하면서도 그 폐단과 한계를 동시에 지적함으로써, 양무운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근원을 학생들에게 시사해주고 있다. 일본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의 근대화운동, 즉 명치유신을 국내제도를 통일하고 정치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켜 낡은 사회의 틀을 고치고 새로운 근대국가로 발전시키려는 사회변혁으로 규정한다. 특히 학제(學制)・병제(兵制)・세제(稅制)개혁이 일본 근대화의 기초가 되었고 일본국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전제하에 각종 개혁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즉 1872년 공포된 학제의 내용으로 6세 이상 남녀의 소학교 교육 의무화, 학교 건축비나 수업료의 수혜자 부담원칙, 대학기관의 설립, 외국인 교사의 초빙, 유학생의 구미 파견 등이 일본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1873년 제정된 징병령(徵兵令)으로 만 20세의 남자는 사족(士族)과 평민을 불문하고 병역의무를 짊어지게 된 점, 1889년에는 국민개병이 실현된 점을 서술하고 있다. 게다가 명치정부가 국가재정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국민에게 근대적인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고 1873년부터 지조(地租)를 개정했는데, 지조는 전국적으로 통일되었고 정부 세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점, 그밖에 신분제도의 폐지, 평민에게 이름 부여, 결혼의 자유화, 직업 거주의 자유화 등으로 사회적 평등이 추구되었지만 실생활에서 차별이 여전히 존재했다는 점도 거론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근대화운동의 성공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식산흥업(殖産興業)이었다.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명치정부가 근대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추진한 식산흥업의 일환으로 막부(幕府)나 번(藩)이 소유하고 있던 조선소나 광산의 인수, 새로운 관영 제사공장 건설, 박람회 개최, 신기술 개발과 보급, 교통・통신 정비, 철도 부설, 기선 운항, 우편제도 및 전신망 정비, 북해도(北海道) 개척 등을 추진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개화파가 갑신정변 과정에서 취한 일련의 행위들을 ‘도움글’ 형태로 상세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 갑오개혁과 관련하여 한국의 고교 교과서에서는 1894년 일본이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한 뒤 민씨 정권을 붕괴시키고 김홍집 내각을 내세워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추진한 내용, 즉 내각의 권한강화, 왕권의 제한, 신분제의 철폐, 전통적인 폐습의 타파, 홍범 14조의 반포 등의 갑오개혁 내용을 소개하는 동시에, 1895년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켜 친일내각을 구성하고 양력사용과 단발령을 실시한 을미개혁도 언급하고 있다. 근대화운동의 성패 및 의의 중국 고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청일전쟁에서의 청의 참패가 양무운동의 파산선고와 다름없었음을 지적하면서, 그 원인으로 ㉠ 서구열강이 중국의 부강함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선진기술 습득을 방해했고 초빙된 서양 기술자들도 중국 관원들이 기술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워 기업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점, ㉡ 청 정부 내부의 수구파가 모든 양무를 적대시하여 양무운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점, ㉢ 양무운동을 추진할 중앙의 유력한 지도세력이 결핍된 채 지방차원의 일부 양무관리들이 양무운동을 추진함으로써 역량이 분산되어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 ㉣ 양무파가 단순히 서방의 선진기술과 설비에만 의존하려고 했지 낡은 봉건제도를 철저하게 변혁하지 못함으로써 부강한 국가로 만들지 못했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중학 역사 교과서에서는 양무운동이 중국을 부강한 길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중국 자본주의의 발생과 발전을 자극했고 자본주의 근대화를 위한 길을 개척하여 외국 경제세력의 침투를 어느 정도 저지하는 작용을 했다고 하여 양무운동의 긍정적인 면도 밝히고 있다. 한편 일본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의 근대화운동인 명치유신의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청이나 조선의 근대화운동과 달리 일본의 근대화운동만이 성공하게 된 원인이나 사회적 배경, 명치유신의 성공이 일본의 대륙침략의 발판이 되었다는 점 등 명치유신의 역사적 의의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명치유신을 계기로 일본은 소위 ‘문명개화’가 이루어져 사회전반의 생활모습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사회의식 구조에도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고 평가한다. 한국의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최초의 근대화 시도인 갑신정변이 실패한 이유로, ㉠ 개화사상이 국민 속에 퍼지지 못하여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는 점, ㉡ 개혁이 일본의 힘을 빌려 정변 방식으로 추진됨으로써 국민의 반발을 샀다는 점, ㉢ 갑신정변을 지원하는 일본군이 청군보다 수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청군의 개입을 저지하지 못한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갑신정변이 실패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청의 내정 간섭이 더욱 심해진 점, 청・일 두 나라의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투가 심화된 점을 갑신정변의 결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부국강병과 직결된 군사적 개혁이나 농민들이 요구한 토지제도 개혁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갑오개혁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동시에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을 계기로 항일 의병활동이 일어났다고 하여 을미개혁이 조선사회에 미친 영향 등도 언급하고 있다. 한국 교과서의 기술상 특징으로는, ㉠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이 일본의 침략의도가 반영된 타율적 성격의 것이기는 하지만 전통질서를 타파하는 근대적 개혁인 동시에, 조선의 개화 인사들과 농민층의 개혁의지가 일부 반영된 민족 내부의 근대화 노력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 ㉡ ‘근대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교과서와 달리, ‘개화정책’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당시 조선사회의 운명과 직결된 중대한 의미를 지닌 근대화운동임을 잘 드러내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요컨대 동아시아 근대화운동의 명암은 그 후 한국・중국・일본의 운명을 달리하게 만든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통해 수구적이고 무능한 막부세력을 타도하고 개혁세력이 신정부를 구성하고 부국강병을 실현시켜 서구열강의 식민지 상황을 모면한 동시에 오히려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 국가로 변신하였다. 이에 반해 중국은 근대화운동인 양무운동이 실패함으로써 일본을 비롯한 서구열강의 이권쟁탈의 무대가 되고 영토를 빼앗기는 등 사실상 제국주의의 반(半)식민지로 전락되었다. 조선은 개혁 자체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통치 기반확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는 비운을 맛보게 되었다. /윤휘탁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역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 마을에는 십자가를 머리에인 성당이 가장 키 큰 건물이었다. 아이들은 이 마을을 성당 마을이라 불렀다. 솟대처럼 우뚝 선 간이역 풍향계는 남에서 동으로 동에서 남으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후 두 시 완행열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역을 빠져나갔다. “형, 성공했어?” “기다려 봐. 갖고 올게.” 석이는 막 지나간 완행열차 꽁무니라도 잡을 듯이 철길로 내달았다. 열차는 뱀처럼 길게 꼬리를 달고 모롱이를 돌아 사라졌다. 훈이는 기차가 지나간 굴다리 밑에 엎드려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형이 손을 치켜들고는 마라톤 선수처럼 훈이를 향해 달려 왔다. 납작해진 왕못이 분명했다. 형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훈이는 열 살이다. 이 시간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지내야 할 아이다. “형, 오늘은 꼭 자전거 훔쳐 주는 거지?” “짜-식, 보채긴......” 납작해진 못으로 열쇠를 만들기 위해 망치질을 하던 석이는 훈이를 힐끗 바라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 한 조각이 두둥실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훈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역 근처에서 놀기만 한 것이 벌써 달포는 넘었다. 훈이는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학교보다는 형과 함께 노는 역 마당이나 성당 마당이 더 좋았다. 성당 놀이터 언덕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학교가 아이들을 가두어 두고 있는 한낮에는 성당 놀이터는 훈이 형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당 놀이터가 훈이에게 학교를 잊게 했다. 학교 운동장보다 더 재미있게 탈 수 있는 놀이 기구도 많았다. 성당 마당에는 무서운 선생님도 놀리는 아이들도 없어서 좋았다. 노란 색으로 색칠한 미끄럼틀이며, 혼자서 졸고 있는 그네, 시이소오, 정글짐, 이 모두를 훈이와 석이가 다 차지하고 놀 수 있는 다정한 동무였다. 훈이는 형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엄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아 직장을 잃은 아픔으로 술만 마시는 아빠와 매일 다투던 엄마가 집을 뛰쳐나간 후 아빠는 술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 아이만 달랑 남겨둔 채. 훈이 형제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은 성당에서 가까웠다. 칠이 벗겨진 함석판을 머리에 얹은 키 낮은 오두막집. 새벽 미사를 알리는 성당 종소리가 훈이네 방 이불속까지 파고들었다. “형, 엄마는 우리들이 보고 싶지 않을까?” 훈이는 가끔 형에게 엄마 이야기를 꺼냈으나 형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엄마는 돈 벌면 우릴 찾으러 오실 거야.” 드르륵! 부엌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 불쌍한 것들, 지들끼리 밥은 해 묵나 우짜노?” 걱정 반 짜증 반, 큰 방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큰 방 아주머니의 보살핌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거리로 내쫓긴 몸이었을 것이다. “네, 라면 끓여 먹었어요.” 큰 방 아주머니가 챙겨주시지 않았으면 동사무소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석이 목소리는 풀기가 없었다. 끼니 걱정이라도 해주시는 큰 방 아주머니 목소리에는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훈이와 석이에게 학교는 점점 관심 밖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학교에 가도 함께 놀아 주는 동무도 없었고, 선생님도 말썽만 일으키는 훈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으셨다. 때가 절은 옷차림에 공부도 못하는 훈이 형제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주일 미사에 오는 사람들로 성당 마당은 여느 때와는 달리 붐볐다. 훈이, 석이 또래의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성당 놀이터에도 성당 뜰에도 아이들이 가득했다.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이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달린다기보다는 나는 것처럼 빨랐다. “형, 저 아이 운동화 밑에는 바퀴가 달렸나봐.”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훈이가 형에게 말을 걸었다. “야 임마, 그것도 몰라. 저게 바로 휠리스라는 거야.” 형은 훈이 곁으로 다가섰다. “야 신기하다. 형 우리도 저거 사자.” 훈이는 철부지였다. “돈이 어딨어. 얼마나 비싼데.” 형제는 부러운 듯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바퀴 달린 운동화가 내달리는 것을. 멀리서 왔는지 성당 마당에는 승용차도 몇 대 보였다. 같이 놀아 주는 동무들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일요일은 덜 심심했다. 미사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몸집이 다른 차보다 큰 검은색 승용차 근처에서 놀던 훈이가 형 석이를 불렀다. “형, 차 문이 열렸어.” “그래, 그럼 한 번 열어 봐.” 훈이는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문이 열렸다. 무심코 한 짓이었다. 운전석에 커다란 지갑이 보였다. 지갑은 손잡이가 금빛이었다. 성당 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부님의 기도 소리가 쩌렁쩌렁 울러 나왔다. 해부대 위에 놓인 붕어의 가슴처럼 석이 가슴에서는 방망이질 소리가 났다. 주위를 한 번 휙 둘러 본 석이는 지갑을 웃옷 속에 재빨리 숨겼다. 훈이를 데리고 성당 마당을 빠져 나왔다. 들은 힘껏 뛰었다. 멀리서 기적이 울렸다. 두 시 기차가 역으로 빨려 들고 있었다. 한 달음에 철길이 지나는 굴다리 밑으로 왔다. 훈이는 누가 오나 망을 보았다. 아무도 쫓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석이는 지갑의 지퍼를 열었다. 만 원짜리 종이돈이 한 움큼이나 들어 있었다. 돈을 꺼내 호주머니에 넣고는 지갑은 강으로 던져 버렸다. 돈이 든 호주머니가 불룩했다. 파리를 잔뜩 잡아먹은 두꺼비 마냥…… ‘무엇을 살까?’ 한참을 망설였다. 갑자기 생긴 많은 돈에 두 아이의 가슴은 내내 벌렁거렸다. 둘은 농협 옆에 있는 신발 가게로 갔다. 칠 만원을 주고 바퀴 달린 운동화 두 켤레를 샀다. 빗물이 배어드는 코끝이 해어진 운동화가 새 것으로 바뀌었다. 신발 가게에서 나온 훈이와 석이는 역 앞을 지났다. “형, 돈까스 사줘.” 훈이는 학교에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양식집에 가서 돈까스 먹었다고 자랑하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좋아, 돈까스 집이 어딨니?” “삼거리 우체국 옆에 있잖아.” 형제는 콧노래를 부르며 우체국 가는 길을 따라 신나게 걸었다. 통닭집 앞을 지났다. 돈까스를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서 말로만 듣던 양식집이었다. 분홍색 식탁이 잘 어울리는 깨끗한 식당이었다. “얘들이 웬 돈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어?” “……” 식당 아주머니가 형 석이가 만지고 있는 돈 뭉치를 본 것이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놀란 듯 묻는 말에 석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아이들이 많은 돈을 가진 것을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주인이 마음에 걸려 석이는 훈이 손을 잡고 돈까스 집을 슬그머니 나와 버렸다. 두 아이는 도망치듯 내달려서 뒷골목에 있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둘은 자장면을 시켰다. 훈이는 입가가 시꺼멓게 자장 국물이 묻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어댔다. 자장면 곱빼기를 배가 풍선처럼 커지도록 먹었다. 며칠 동안 굶은 배를 한꺼번에 채울 듯이……. 역 마당에서 새 운동화로 바꿔 신은 형제는 신나게 달렸다. 동생 훈이는 서툴러 자주 넘어지기도 했지만 석이는 익숙했다. 친구 휠리스를 빌려 타 본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얼음판에서 스케이트을 타듯이.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오락실에도 들렀다. 건너다보이는 낙동강 강나루에 노을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시장 골목길을 빙빙 둘러 집으로 왔다. 성당 앞을 지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모 마리아께서 지갑 훔치는 것을 보시지는 않았을까?’ 석이 마음은 큰 바위 하나를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훈이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형, 내일은 우리 어린이 대공원 가자. 응-” “짜 - 식, 그래- 좋아.” 석이는 너무 많은 돈이 호주머니에 불룩하게 들어 있는 것이 어쩐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안개처럼 퍼졌다. 막 대문을 들어서는데, 큰 방 아주머니와 낯선 키 큰 아저씨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키다리 아저씨는 성당지기 아저씨였다. “얘들이구먼요.” 큰 방 아주머니는 턱으로 석이를 가리켰다. “요 녀석들…….” 어느새 석이의 손이 덥석 잡혀 있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훈이는 겁이 덜컥 났다. “잔 말 말고 아저씨 따라 가보면 알 거야.” “나는 아무 잘 못도 없단 말이에요.” 성당지기 아저씨의 억센 두 손에 훈이와 석이는 질질 끌려서 성당으로 갔다. 신부님 방으로 들어서니 신부님과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부님은 미소 띈 얼굴로 말없이 석이와 훈이의 손을 잡았다. 신부님의 손은 따뜻했다. “다 용서할 테니 너희들이 한 일을 이야기해 봐요.” 처음에는 석이가 절대로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우겼다. 그러나 불룩한 호주머니 속에 든 돈 때문에 더 이상 우길 수도 없었다. 성당지기 아저씨는 석이 호주머니에서 쓰고 남은 돈을 꺼냈다. 석이는 울먹였다. “차에 창문이 잠겨있지 않아서 열어보았다가…… 그만…….” 둘이서 자장면도 사 먹고, 새 운동화를 샀다는 것도. 엄마가 집을 나가 동생 훈이와 둘이서 살고 있고,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는 것도 신부님 앞에서는 쉽게 입이 열렸다. 형의 눈망울만 쳐다보고 있던 훈이도 그만 형을 따라 훌쩍이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안 계시고 너희 둘이서만 살고 있단 말이냐?”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두 아이를 지켜보던 돈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쯧 쯧- 어린 것들이 오죽했으면…….” 아주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얘들이 성당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몇 번 본 일이 있지요.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라 우발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모양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장발장의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러나 석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석이는 아주머니에게 눈물을 쏟으며 용서를 빌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것은 나쁜 짓이란다.” 신부님은 탁자 위의 티슈를 꺼내 석이와 훈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신부님, 날씨가 추워지는데 이 아이들을 고아원에라도 보내서…….” 아주머니도 석이와 훈이를 용서하며 겨울을 지낼 걱정까지 해 주셨다. 형제는 역 마당으로 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골목길을 나서면서 형은 운동화 뒤에 달린 바퀴로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평평한 포장길만 보이면 달렸다. 자동차보다도 더 빠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동생 훈이는 아직도 서툴렀다. “형, 같이 가-.” 훈이는 형을 불렀지만 훈이의 목소리는 바람 속에 묻혀 버렸다. 역 마당에는 벌써부터 휠리스를 타는 아이들이 많았다. 균형을 못 잡아 뒤뚱거리는 여자 아이들은 얼마를 못 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신부님한테서도 용서를 받은 훈이 형제의 운동화는 역 마당을 어제보다 더 빨리 달렸다. 한낮이 되면서 역 마당은 사람들이 많았다. “훈아, 우리 강둑으로 가자.” “왜? 형......” “여긴 아이들이 많아서 빨리 달리 수가 없어.” 둘은 손을 잡고 미끄러지듯이 역 마당을 빠져 나왔다. 육교를 건너 강둑으로 향했다. 강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 주었다. 강둑을 따라 길게 뻗은 포장길을 바퀴 달린 운동화가 달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동네와 멀어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훈아, 천천히 따라와. 나 먼저 달린다.” 형은 씽씽 달렸다. 강물보다도 빨랐다. “형, 같이 가.” 훈이는 도저히 형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강둑이 낮아진 곳에 시멘트로 잘 포장된 주차장 마당이 있었다. 훈이는 다리가 아파 강둑에 퍼질고 앉았다. 또래 아이들이 구슬치기에 왁자지껄했다. 훈이는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강둑 끝까지 갔던 형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감감 소식이 없었다. 훈이는 형을 찾아 형이 간 강둑을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가도 형이 보이지 않았다. 훈이가 주차장 마당을 한 바퀴 돌며 찾아보아도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훈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 때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역으로 뚫린 큰 길로 빨간 불을 머리에 매단 119 구급차가 달려 왔다. “형-.” 큰소리로 형을 불렀다. '설마, 우리 형이…….'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훈이는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구급대 아저씨들이 물속에서 나와 들것을 구급차에 실었다. 물에 흠뻑 젖은 얼굴은 분명 형이었다. “형-!, 형-!”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형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네가 얘 동생이냐? 빨리 차에 올라! 병원으로 가서 얘기 해!” 구급대 아저씨가 훈이를 형을 실은 구급차에 태웠다. 구급차가 강둑길을 넘어 쏜살같이 달렸다. “형, 눈을 떠! 형, 정신 차리란 말야! 으앙앙앙......” 들것에 누워있는 형의 가슴을 누르며 인공호흡을 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구급대 아저씨들을 보면서 훈이는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 강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