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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임종식 | 경북 포항고 교감 들어가는 말 최근 일어난 일련의 충격적인 청소년 문제들로 인하여 세인들의 관심은 또다시 학교현장의 인성교육에 모아지게 되었다. 조직적인 수능 부정, 고교생들의 대규모 집단 성폭행, 심지어 초등학생들의 성폭행까지 이어지면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고 있는 교원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며, ‘나에게 돌을 던지라’는 반성문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 각계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인성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물론 학교 현장의 실태와 문제점을 점검하여 반성하고 보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미 학교에서 모든 것을 방어하기엔 벅찬 사회적·시대적 환경에 학생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성세대들의 부정행위는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고, 웬만한 부정에 대해서는 반성의 빛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보고 있다. 또한 한 번의 숫자 조합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로또 복권’ 열풍처럼 한 번의 부정행위만 성공하면 출세의 보장길인 명문대학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특별한 교육적 차단 없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인터넷 섹스 산업은 장소와 시간, 대상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학생들이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학교가 이렇게 거대한 사회적 음모를 모두 책임지기엔 역부족이지만, 학교 인성교육이 학생들의 바른 인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고 그 대안 모색에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 신입생 모집에서 특이한 학습 경력을 가진 학생이 지원하였다. 이 학생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공교육에 불신감을 갖게 되어 대안 중학교를 다녔고 영국 유학을 다녀온 경험까지 있으나, 다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정상적인 공교육을 받기 위해 지원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본고에서는 학교교육에 대한 단편적인 질타보다는 학교 인성교육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싶다. 인성교육 무엇을 지향하는가 제7차 교육과정 총론의 기본방향은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이다. 그리고 목표 면에서는 ‘건전한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하는 기초 기본교육 충실’로 삼고 있다. 특징은 단위학교 재량권의 범위가 기존의 교육과정보다 넓어졌으며 지식교과중심에서 인성교육부문을 교육과정에 표면화하고 있다. 특히 재량활동 부분의 창의적 재량활동은 인성교육 교과로 볼 수 있으며, 범교과 학습은 인성교육의 내용을, 자기주도적 학습은 인성교육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특별활동 부분의 영역별 분류는 인성교육의 체험적 활동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7차 교육과정에서의 인성교육이 교육과정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된 것은 시대적·사회적 요청에 부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성교육의 기본목표는 인성교육의 철학 및 목표정립을 통해 도덕성과 인간적인 덕성 함양의 내실화로 세계 속의 시민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육성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기본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점 지도 덕목을 중점 지도 영역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덕목을 지도하기 위해 첫째, 세계화를 향한 교육 관계자들의 인성교육에 대한 의식전환과 다음 세대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기르겠다는 열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 분위기를 고취시켜 정책수행의 실효성을 제고한다. 둘째, 도덕성·인간성 함양 교육을 핵심으로 하고 학교교육의 전반적인 사항을 재조정하여 교과활동, 특별활동 등 전 교육활동에 인성교육이 스며들게 한다. 셋째, 학교·가정·사회가 함께 하는 교육으로 학교교육의 권위를 회복하여 학교는 전인교육을 실현하고 가정은 효와 예를 바르게 가르친다는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교육의 전 영역에 걸쳐 인성교육이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중등학교 인성교육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학교 내외적 교육여건의 악화 학교는 독립된 기관이지만 가정과 지역사회를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다. 학교에서 도덕교육이 잘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강하면, 학생들은 겉으로만 또는 학교 안에서만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사례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물론 학교에서 가정과 지역사회를 연계하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로 행사, 지역 봉사활동, 학교 주변 정화 운동 등 지역 실정에 따라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형식적이고 전시적인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성적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친구 관계나 원만한 학교 생활 등 도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가정 및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적절한 연계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성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의 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급당 학생 인원수가 줄어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만, 평균 수업시수나 담당 업무량은 상대적으로 늘어서 인성교육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인성교육의 제자리 찾기 실패 인성교육을 교육의 기본 덕목으로 삼아서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성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정착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인성교육이 학생들에게 인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교육내용 혹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거나, 제공하였더라도 사회적·문화적 변혁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지식 중심의 입시 위주 교육은 인간의 균형적 발달을 저해함으로써 교육의 본질인 전인교육을 충실하게 하지 못했고, 급격한 과학의 발달에 의하여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 위주의 가치변화로 인간을 물질 중심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팽배해졌다. 따라서 교육 자체가 인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논리와 각 개인의 출세 도구로 전락하여 교육 자체가 물질과 명예를 얻는 도구로 인식되어 가는 데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 필요하다. 둘째, 인성교육 방법면에서 수요자의 흥미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인성교육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행동 변화와 선택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경험이나 조건을 제공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강제 억압으로 인성을 변화시키려는 방법적용은 올바른 의미의 인성교육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은 인성의 발달과 변화에 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을 중심으로 전개하여 바람직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방법과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 인성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인성교육은 교과내용의 학습에서보다는 교사의 행동, 수업분위기, 급우들과의 관계, 단체생활, 학교의 일상생활, 정규수업 이외의 비공식적 시간 등 의도하지 않은 잠재적 교육과정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인성교육은 집단지도와 상담활동을 통해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단체생활 속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성이 형성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히 지적인 측면보다는 정의적 측면에서의 직접적 체험을 통해서 쉽게 인성교육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공감적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이상과 같은 인성교육의 일반적 특성을 토대로 하여 효율적인 인성교육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특별활동을 통한 인성교육 특별활동은 교과와 상호보완적 관련 속에서 학생의 심신을 조화롭게 발달시키기 위하여 실시하는 교과 이외의 활동이다. 특별활동 영역별로 활용할 수 있는 인성교육의 방법을 알아보면, ① 자치활동 : 학급회·학생회 조직 및 운영과 계획적인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스스로 참여하고 자신의 맡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주성과 민주시민의 자질을 기를 수 있다. ② 적응활동 : 기본생활에 필요한 덕목들을 습관화할 수 있도록 하여 친교와 협동생활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도모하고, 클럽 선택과 상담을 통해 자신의 성격과 문제를 이해하고, 심성계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③ 계발활동 : 자신의 흥미, 취미, 적성에 맞는 여가문화 활동을 통해 자신의 심성과 성격을 훌륭하게 키워나가는 수양을 한다. 특히 자신의 장기와 취미에 적합한 놀이를 통해 성격 교정을 하거나 특정 능력이나 기능을 배양할 수 있다. 그리고 스카우트, 청소년연맹, 적십자, 우주정보소년단, 해양소년단 등 청소년 단체활동을 통해 협동심과 사회성을 기른다. ④ 봉사활동 : 일손 돕기를 통해 사랑과 호혜정신을 기르고 양로원 방문을 통한 경로효친의 사상을 배운다. 불우이웃 돕기를 통해 협력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기르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공공질서확립 캠페인을 통해 사회생활과 공중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공중도덕을 배양한다. ⑤ 행사활동 : 국경일이나 각종 기념식을 통해 의례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학예 발표회나 전시회, 경연 및 실기대회, 감상회 등을 통해 창의성을 기르며, 작품준비 과정 속에서 협동정신을 기른다. 문화재나 명승지 답사를 통한 우리 문화의 얼과 조상에 대한 공경심, 전통문화에 대한 사랑, 등산과 야영, 국토순례와 탐사활동을 통한 정신수련을 기할 수 있다. 창의적 재량활동을 통한 인성교육 다양한 교육 경험을 통하여 학생들의 소질과 특기를 신장시키며 바람직한 인성 발달을 촉진시킨다. ① 범교과학습 : 민주시민교육, 인성교육, 진로교육 등 ② 자기주도적 학습 : 주제 탐구 활동, 직접 체험 활동 등 상담 및 생활지도를 통한 인성교육 학습지도의 일차적 목표가 지적인 성숙에 있는 반면 상담과 생활지도는 지적인 영역 외의 인격적인 성숙을 의도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성교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전문 영역이 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일상생활에 상담적 원리와 태도를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교사와 학생과의 대화에서 승인 반응을 보이고 학생의 얘기를 잘 들어주어 공감적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되어야 하고 학교생활과 그 외의 환경에서 보여주는 일상 속의 태도와 모범적 행동이 매우 중요하다.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인성교육 지금까지 개발된 인성교육 프로그램들은 주로 성격심리학과 상담의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이루어져 왔다. 이 경우 인성은 성격으로 이해되며 주로 심리교육적 방법을 적용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인성이 다차원적 모습을 지니는 것이라면 심리교육 위주의 프로그램 개발방식은 다소 보완될 필요가 있다. 교육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성교육의 중점지도 영역이 타당하다면 각각의 영역에 알맞게 균형 있는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발견하는 문제와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자아개념 육성 프로그램이나 자기발견과 성장을 도와주는 성찰노트 등이 있고, 상담원리와 기법을 활용한 프로그램, 특정정서 통제능력 향상 프로그램, 급우관계 조정능력 프로그램 등이 소개되고 있다. 자기발견과 성장 프로그램에는 인간관계, 고민해결, 자신의 객관적 이해, 가치결정, 신념과 인생목표, 학업성찰, 능력과 직업진로 등의 문제들을 주제로 하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포괄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정서문제와 관련하여 정서지능(EQ)개발 프로그램과 심리치료를 위한 마인드 맵(mind map)도 학교의 실정에 맞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 인성교육 실천에서 유의할 점 ① 인성교육 프로그램 적용의 문제 인성교육에서는 실천하고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스스로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실천 위주의 행동 강화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경우 자신의 자율적인 판단보다는 강화자에 의해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학생들을 맹목적으로 순응하고 복종하는 사람으로 유도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또한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보다 불쌍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 훌륭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 더불어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애심과 같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씨를 기르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② 교사의 학생 지도관 문제 인성교육에서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인 만남은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학생을 인격체로 존중하고 교사가 솔선수범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사들은 ‘스스로 옳다고 믿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애쓰며 학생들도 최소한 이것만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가치를 적용하는 학생 지도와 훈육 문제에서는 대부분의 교사들 간에 의견의 차이가 있으며, 특히 세대가 다른 교사들 간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현상이 교사들의 일관성 없고 때로는 공정치 못한 지도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협의를 통한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교사 연수 과정에 인성교육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치는 말 교육도 시대적 흐름이나 유행을 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일련의 청소년 문제로 인해 인성교육 특집이 마련되었듯이 외국에서도 이런 현상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정에서부터 교육시켜 온 일본에서 집단 따돌림 현상이 일어나고, 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받는 순결서약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성교육은 특정 과목의 성적이 하락되었다는 차원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학교에서 응급 처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근 수십년간 우리 사회와 교육환경을 지배해 온 물량 위주의 행복관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서서히 불러일으켜 나가야 할 것이다. ‘느리게 사는 것’, ‘꼴찌로 사는 것’, ‘TV 끄기’, ‘컴퓨터 끄기’등에 대한 예찬은 이러한 전환점의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인성교육을 강조하여 승자와 패자가 아닌 스스로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당당한 학생들을 길러나가야 하겠다. 1. 경상북도교육청, 『제7차 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 2003. 2. 공군사관학교·인성교육협의회(권이종), 『제3회 인성교육 심포지엄 자료』, 2003 3. 교육부, 『인성교육 연찬회 자료』, 1995. 4. 교육개혁위원회(장성모),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 1995. 5. 대구교대초등교육연구원(이원희·강현석), 『인성교육의 접근 방식』, 1999. 6. 순청향대학교, 『인문과학론총(제5집)』, 1998. 7. 한국초등교육학회, 『초등학교 인성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학술세미나 자료, 1996.
권이종 | 한국교원대 교수 인성교육이란 인성교육의 개념은 통일된 견해가 없다. 학자들과 학문 영역에 따라 인성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 방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의 개념을 정리하기 이전에 인성을 알아보면, 인성은 성격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므로 인성교육이라 함은 성격교육으로 정리한 경우도 있다. 인성과 성격을 같은 의미로 볼 경우 인성교육을 ‘평소의 성격형성이 바람직하게 되도록 환경과 인간관계 등을 부드럽고 원만하게 하는 것이며, 또한 비뚤어진 성격을 정상적으로 교정하는 일’을 말하기도 한다. 페스탈로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인간교육을 주장하면서 교육의 본질인 전인교육과 인간교육을 강조하기도 했다. 인성을 성품·기질·개성·인격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인성의 개념을 프로이드는 개인이 본능적 욕구를 현실적·도덕적 제약 가운데에서 합리적으로 충족시켜 나가는 방식을 인성으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로저스는 개인이 자신의 독특한 주관적인 경험 속에서 자아실현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으로 인성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인성지도를 성격지도와 같은 맥락에서 그리고 생활지도의 한 영역의 범주로 성격지도의 내용이 되는 문제를 보면, ①긴장, 불안, 욕구, 좌절 등의 정서적 문제 ②대인관계, 사회활동 등의 사회적 행동문제 ③신체적 질환, 허약 등의 신체적 문제와 심리적 문제 ④부모, 형제, 친척 등의 가족과 관련된 문제 ⑤가치관 등에 관련된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인성은 또한 성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성품이란 사람의 성질과 품격이며, 성질은 마음의 바탕이고 품격은 사람됨의 모습이다. 결국 인성이란 사람 마음의 바탕이 어떠하며, 사람됨의 모습이 어떠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엮어나가느냐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인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인성은 삶의 과정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개인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서 개인과 타인이 어떠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가를 결정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성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개인의 정신과 신체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인성이 형성된 사람은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의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성교육이란 인간의 개별 특성에 관심을 가지고 그 특성들이 자유롭게 개발되어 그 특성대로 사회적 조화를 이루도록 교육하자는 것이다. 인성은 도덕적 가치와 개인이 지닌 독특한 특성의 총체를 가리키는 성격이 결합된 용어로 인성교육은 ‘심리적 특성으로서의 성격적 윤리, 도덕적 특성 측면을 포괄적으로 추구하는 교육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인성교육 왜 필요한가 한 사회의 원동력은 사회 구성원이 공동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며, 특히 가장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 자신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학생들이 가정·학교·지역사회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고, 좀 더 좋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봉사활동, 수련활동, 동아리 활동 및 체험활동을 통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내고, 사회의 문제점을 스스로 배우고, 자립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인성을 길러 주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자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학생 하루 중 1/3을 차지하는 학교 안에서의 지식(IQ)교육외에 학교 밖에서 가정을 포함한 지역사회와 자연 속에서의 수련활동을 통하여 길러진다. 따라서 학생들의 인성과 정서(EQ)를 부모·자식 간의 관계, 사제간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는 물론 지역사회 및 자연과의 체험활동을 통해서 그들의 발달단계에 따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학교교육에만 의존하고, 모든 결과와 승부를 학교제도권 안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어려움이 더욱 크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학생 교육이 가정·학교·사회 각 영역에서 균형을 이루어가며 실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인간의 전인적인 인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은 오히려 학교보다는 가정과 지역사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인성교육의 결정적인 시기인 유아기에서 초등 저학년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적으로 2/3 정도는 학교 밖 사회 또는 평생교육 환경에서 계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과 자녀 지도의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 안에서만 모든 교육성과를 얻으려는 사고체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인성교육의 성공을 위해서 학교 내 교육보다는 학교 외 사회·평생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총체적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성교육이 중요하고, 도덕적 위기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인간성 회복과 휴머니티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인성교육의 방향은 긍정적인 자아상 형성을 위한 인성교육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며 살아갈 경우 심리·신체적으로 건강하여 자기실현, 자기성숙, 자기발달을 긍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긍정적인 인간상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 비율이 높으며, 인류사회에 크게 공헌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 부정적인 학생은 항상 불행한 생활을 하며, 삶의 의욕이 없고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다. 이러한 생활태도는 더 나아가서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자란 학생들은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진취적, 생산적, 발전적이어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학생 자신의 올바른 이해 도모 사람은 제각기 서로 다른 생김새, 가치관, 능력, 적성, 흥미, 태도, 인성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동일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인성교육의 첫째 목표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학생들로 하여금 정확하게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행동을 선택하고 실행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중과 수용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기 자신을 존중, 인정, 그리고 수용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에 실패하는 많은 경우를 보면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을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거나 감정을 숨기고 왜곡하며, 열등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자기 학대일 뿐만 아니라 반인성적인 행동으로 더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통제 및 조절능력 함양 인성의 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감정이나 충동을 통제·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최근의 수능 시험 부정 사건이나 밀양 성폭력 사건 등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학생들도 자기통제 및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하거나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지 못한 결과이다. 자기통제능력을 상실한 학생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사회적으로 일탈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바람직한 인성의 소유자는 자신의 본능적 충동이나 감정을 잘 억제하고 조절할 능력이 있으며, 더러는 실패한 경우에도 좌절하기보다는 오히려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며 적극적인 방식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경우가 있다. 올바른 현실감각 배양 인성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이해, 자기존중, 자기수용, 자기통제능력 등을 함양함으로써 올바른 현실감각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바른 인성을 소유한 학생은 현실을 바르게 이해할 줄 안다. 타인과의 인간관계도 원만하게 잘 유지한다. 또한 모든 위기와 문제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능력이 있다. 본인에게 주어진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공감적 이해능력과 타인존중의 자세 상대방의 입장을 올바로 이해하고, 솔직한 자기 노출과 타인에 대한 공감적 자세는 보다 깊고 원숙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자신과 타인을 모두 이롭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인성의 한 기준이 된다. 공동생활을 물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성을 말한다. 사이버 학습과 인성교육의 조화 최근에 많은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분야가 인터넷으로, 인터넷은 일상적인 생활 수단이 되고 있다. 지식을 습득하는 공간이나 전통적인 활동 및 교육과정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역기능적 이용은 인성교육에 암적 요소가 된다. 인성교육의 실천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사이버 교육을 통한 초·중·고·대학에 이르기까지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사이버 학습을 통한 인성교육은 일반화되어야 한다. 처벌보다는 예방 중심의 인성교육 가정, 학교, 사회에서 모든 인성교육은 이미 문제가 발생한 학생들을 처벌하거나 벌을 주는 것보다는 예방 중심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인성교육은 단기적인 결과가 아니고 장기적인 투입 결과이기 때문이다. 수능시험 부정행위의 결과도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크다. 매일같이 언론 및 TV 화면에 기성세대들의 부정·비리, 도덕적 상실, 정치인들의 싸우는 모습 등이 계속 비춰지기 때문에 선량한 학생·청소년들이 모방하는 심리적인 충동을 갖기도 하여 일시적인 실수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능부정 학생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 및 교사들의 양심적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기적성 활동을 통한 인성교육 특기적성 활동은 사회, 시대, 교육환경 변화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이기적 사고와 생활태도, 물질만능주의, 무절제한 쾌락추구, 인간성 상실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학생의 발달과업과 특성을 고려하여 지역사회에서 동아리, 사회봉사활동 등의 집단체험활동을 가지게 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 영역이다. 특기적성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 활동을 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사회적응력, 리더십, 문제해결력, 대인관계 등 활동 중에서 긍정적인 인성을 길러준다.
김언주 | 한국영재학회장·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흑백논리보다는 상록수의 잎갈이 같이 암울했던 1980년대의 군부정권 하에서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노력은 마침내 우리나라를 ‘대통령도 대놓고 비판할 수 있는 개방사회’로 발전시켰다. 아무리 사회제도가 나빠도 모든 사람이 그 제도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제도의 모순점을 이겨내는 진정한 의미의 불의에 저항하는 선각자적 영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선각자적 영재성을 발휘한 분(사회제도 개혁 면에서의 영재)들의 노력 덕분으로 우리는 오늘의 민주사회를 만끽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한편, 우리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고교평준화정책을 ‘수월성 말살정책’으로 서슴없이 매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현재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 중, 20·30대와 40대 중반 이전은 평준화 세대들이다. 그리고 40대 중반 이후부터 50~60대들이 비평준화세대들이다. 과연 이 평준화세대들이 비평준화세대들에 비해 수월성이 떨어지는가? 오늘날 중국의 계림에서도, 북경에서도, 상하이에서도 ‘쿵따리 샤바라’의 노랫소리를 듣게 만든 세대는 누가인가? 한류 열풍은 누가 만들었는가? 욘 사마는 누구이며, ‘움직이는 1인 기업’ 보아라는 가수는 어느 세대인가? 오늘날의 한국을 IT 강국으로 급부상시킨 그룹들은 어느 세대인가? 항상 외국 영화의 쿼터를 걱정하던 세상에서 1000만 명 돌파의 국산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어느 세대인가? 이들이 바로 평준화세대들이다. 평준화세대의 교육을 받았지만, 저마다의 타고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각 분야에서 창조적 영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너무 ‘평균화정책=엘리트 말살정책’으로만 매도하지 말자. 평준화정책의 장점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교육정책을 생각해보자. 그것이 순리이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 중 하나가 흑백논리(黑白論理)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흑백논리에 빠지면, 과거를 전부 부정하거나 전부 찬성하는 식의 극단적 사고를 할 위험성이 높다. 오늘은 항상 어제를 근거로 태동하는 것이며, 오늘은 내일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과거를 완전 부정하지 말자. 교육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나무를 생각해 보아라. 소나무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상록수라고 한다. 그런데, 그 소나무 밑을 가 보자. 그곳에는 누런 솔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즉 항상 푸름을 간직하지만 끊임없이 잎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다. 교육정책은 모름지기 이런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항상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향해 개선해 나갈 때, 학생과 학부모와 국가가 희망적으로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평준화정책의 좋은 점도 인정하면서 논의를 시작하자. 수월성교육은 시대 요구이며 미래 위한 투자 교육은 사회변화와 밀접히 관련된다. 이를테면, 과거 조선왕조 때는 양반 자제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소위 말해서 계급사회에서는 특수계층에 해당하는 엘리트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우리 사회는 산업사회로 급격히 변화되었고 이에 따라 산업사회의 필요에 부합하는 민주시민양성교육이 최우선 교육목적으로 추구되어 왔다. 이러한 정신이 반영된 것이 고교평준화정책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사회를 넘어 지식기반 정보화사회로 발전해 가고 있다. 따라서 교육의 목적 자체가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여 변할 수밖에 없다. 이를 테면, 민주시민양성이라는 절대가치는 그대로 추구하되, 개성교육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교육목적이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맞춤식 개성교육을 강조하는 각 분야의 수월성교육 정책이 대두되는 것이다. 수월성교육 정책이 출현한 근본 동기가 과거 계급사회의 엘리트 교육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현재 추구하고자 하는 수월성교육은 각 분야에서 재능 있는 학생을 발굴하여 조기부터 그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계급 사회적 엘리트교육이 된다면 당연히 배척되어야 할 정책이다. 교육정책이 입안되어 적용될 때는 반드시 ‘교육기회의 공평성(educational equity)’과 ‘교육의 수월성(educational excellence)’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교육 받을 기회 면에서는 공평해야 한다. 이것은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이다. 또한 보통교육을 받음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기능, 지식을 반드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정한 교육목적과 교육목표에 관한한 모든 학생은 공평하게 교육을 받아야 하며 받을 권리가 있다. 한편, 모든 학생에게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잠재가능성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국가의 책무이다. 수월성교육이란 상위 몇 %의 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라기보다는, 학생 개개인의 잠재가능성 중에서 자신의 재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하여 그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은 수월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면에서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같은 분야(예컨대, 과학, 예술, 정보, 인문 분야 등)에서 똑같은 교육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과학 분야에 재능 있는 학생은 과학 분야에서, 언어 분야에서 재능 있는 학생은 언어 분야에서 각기 자기의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 진정한 교육기회의 공평성이다. 베토벤에게 물리학 분야의 재능을 계발하는 기회를 부여하기보다는 음악적 재능을 계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수월성교육 정책은 현 정부의 최고 정책 수월성교육은 21세기 교육패러다임에도 부합된다. 20세기 산업사회의 교육목적이 지식전수에 있었다면, 21세기 지식기반 정보화사회의 교육목적은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공유에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땅에서 걸을 수도 있고, 물에서 수영할 수 있고, 급하면 조금은 날 수도 있는 오리형 인재양성이 주된 목적이었다. 반면에 지식기반 정보화사회에서는 돌고래같이 수영을 잘하거나, 타조같이 잘 달리거나, 독수리같이 잘 날 수 있는 반(反)오리형 인재양성이 주된 목적이다. 우리가 오리형 인재양성을 통해 1만 불 국민소득을 올렸다면, 반 오리형 인재양성을 통해 2만 불 소득을 추구해야 한다. 영화 분야에서, 신약(新藥) 분야에서, IT 분야에서, BT 분야에서…. 다른 나라보다 먼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길만이 우리가 세계 속의 선진국과의 생존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화이자 제약회사는 비아그라를 개발함으로써 연간 수억 달러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고, 퀄콤 회사는 휴대전화의 핵심기술로 천문학적 로열티를 우리나라에서 받아가고 있으며, 빌게이츠는 윈도우 소프트웨어를 팔아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국가적 목적의 달성 여부는 인재양성에 있으며,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을 조기에 발굴하여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수월성교육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일찍이 중국의 덩샤오핑(登小平)은 복권되면서 제일 먼저 중국 전역에서 1000명의 초상아(超常兒, 우리말로는 영재아)를 선발하여 세계 각국으로 유학을 보냈으며, 그 세력들이 현재 중국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후진타오(胡錦濤) 세대들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의 진위(眞僞)를 떠나, 국가(혹은 국가의 지도자)가 선견지명을 갖고 국가의 번영을 위해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국가에서 수월성교육을 천명한 것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현 정부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본다. 수월성교육은 사교육비를 부추긴다? 일부에서는 수월성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반대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반대하는 측은 ‘지나친 입시경쟁풍토가 조성될 것이고, 학력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고, 국민혈세 2000억을 소수 학생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공평성의 원리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하면서 수월성교육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수월성정책을 입안하고 적용하는 정부는 이러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되, 그들의 비판이 얼마나 타당한지도 깊게 생각해야 한다. 우선 사교육비가 천문학적인 숫자로 증가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사교육비 증가에는 허약해진 공교육이 한 몫을 했다. 공교육의 경쟁력이 약화된 데에는 물론 정부의 정책이 주원인이 된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사교육비의 책임이 정부에게만 있는 것일까? 이 책임에서 학교와 교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교육비 경감은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의 사명감과 소명감, 신념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정부 정책이나 학부모의 공교육에 대한 신뢰회복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교육을 정상화시켜 사교육의 도움이 필요치 않게 만들겠다는 우리 교사들의 적극적 참여가 가장 필수조건이라 본다. 따라서 수월성교육정책으로 인해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적다. 흔희들, 평준화정책을 깨뜨리면 마치 사교육비가 천문학적인 숫자로 증가할 것 같이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반문을 해보자. 평준화정책이 실시된 이후 사교육비는 줄었는가 아니면 정말로 천문적인 숫자로 늘어났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지출되고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현 부모들의 경제력과 부모의 욕심이 사교육비의 증감을 좌우하는 제 1요인일 것이다. 오히려, 제도는 제도로서 당위성을 갖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며, 제도는 시대의 조류와 필요에 따라 능동적으로 도입되고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수월성교육은 대학진학과는 철저히 무관하게 운영돼야 한다. 수월성교육정책과 대학입시는 결코 연결시키지 말자 수월성교육의 한 방안으로서, 영재교육 대상을 현 2만5000명에서 2010년에는 8만 명 수준으로 늘린다는 정책을 내 놓았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상류계층 출신이 명문대 입학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어 ‘학력 대물림 현상’이 고착될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많은 언론들은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와 수월성교육정책의 관계를 우려하면서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에 대한 평가를 대학입시와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정책보좌관은 “2008학년도 새 대입제도와 함께 각 대학에 도입을 권장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가 정착되면 대학별로 영재교육 등 수월성교육을 받은 우수인재들을 선발하는 방안이 시행될 것”으로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재교육을 대학입시와 결부시킨다면 영재교육은 해서는 안 된다. 수월성교육을 받는 것이 상급학교 진학, 특히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보장권(?) 혹은 특허권(?)이 된다면, 당연히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을 수월성교육을 받는 상위 5% 안에 넣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다. 만일 이처럼 수월성교육을 받는 것이 상급학교 진학에 어떤 형태로든지 혜택으로 작용한다면, 수월성교육을 받지 못하는 모든 부모들은 들고 일어나서 이 제도를 반대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를 특정 집단 자녀의 대학진학 보장권 내지 특허권 취득비로 사용하도록 놔두어서는 결코 안 된다. 교육부는 수월성교육정책, 특히 영재교육정책은 대학입시와 결부시키지 말아야 한다. 수월성교육은 철저히 대학진학과 무관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과학에 재능 있고 재미있어서 과학영재교육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학생이 그 교육의 영향으로 대학을 가든 못가든 그것은 순전히 그 학생의 문제이다. 창의성 중심으로 영재교육을 받는 것이 오히려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수월성교육은 수월성교육 그 자체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단, 대학진학 후에도 영재교육을 연계시키려는 노력은 각 대학에 권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학에 입학한 후의 일이다. 우리 사회가 아주 잘못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무언가 혜택을 받으면 그것을 이용하여 다음의 무엇을 보장하라는 아주 이기적인 주장을 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과학영재학교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훌륭한 과학영재교육을 받았으면 국민의 혈세로 좋은 교육을 받은 것 그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과학영재학교를 다녔으니 KAIST 진학을 보장하라고 요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이런 억지 주장이 어디에 있는가? 과학영재학교에 자발적으로 왔으면, 그리고 그곳에서 타 학생들이 받지 못하는 교육적 혜택을 받았으면 그 자체로 감사하고, 스스로 노력해서 그 다음 단계의 진학을 위해 스스로 노력할 일이지, 왜 그 학교에 다니는 것이 특혜의 조건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식의 정책운영은 반드시 타파되어야 한다. 그런 식의 주장을 하는 학생은 선발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얼마든지 훌륭한 과학적 재능을 가진 학생이 많으며, 그런 학생을 국가에서 기르는 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더 좋다. 이기적인 영재를 길러봐야 나중에는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할 뿐, 국가를 위한 애국심은 기대하기 힘들다. 아무리 능력 있는 영재라 해도, 국가에 해가 되는(예를 들어, 핵심기술이나 몰래 팔아먹는) 영재양성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영재교육의 기본과목으로 애국심, 향토애, 민족혼을 심어주어야 한다. 수월성교육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진정한 의미의 창의력을 배양하는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공부를 더 잘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전자를 일러 ‘영재교육(英才敎育)’이라 한다면, 후자는 ‘수재교육(秀才敎育)’이라 부른다. 만일 우리가 수재교육형 영재교육을 추구한다면, 그리하여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는 교육으로 운영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사교육비의 폭발적인 증가는 물론이요, 수월성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부모들로부터의 저항이 엄청나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런 류의 수월성교육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마땅히 문을 닫아야 한다. 수월성교육을 받은 학생을 대학에서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일임할 문제이다. 예를 들어, 2003년도 미국의 하버드대학 지원자는 2만 986명이었는데, 이들 중 재학하던 고등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학생이 3100명이었고, SAT I 시험(우리나라의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도 수두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56명만이 합격하고, 나머지 1만8930명은 탈락했다. 이처럼 비슷한 학생들이 몰리는 경쟁에서 어떤 기준으로 합격자가 결정되었을까? 이런 경우, 학업적인 요인보다는 학업 외적인 요인을 통해 합격생을 결정한다. 부연하면, 일차적으로는 학업적 능력으로 배수 정도를 선발한 후, 학생 개개인에 관한 서류심사를 통해 최종합격자를 결정한다. 즉, 현재의 성취수준보다는 앞으로의 성취 가능성을 더 중요시한다. 영재 판별과 선발은 one-shot test로 이뤄져선 안돼-전문적·장기적 관찰을 기초로 이뤄져야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사교육을 시킬 것이라는 견해는 매우 타당하다. 영재교육을 받을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선수학습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영재성을 판별하여 사교육과는 거의 무관하게 선발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재교육전문가들이 해야 할 역할인 동시에 책무라고 본다. 단순히, 성적이 좋다거나 한 번의 지필검사나 변변치 못한 캠프를 차려놓고 단순·단기·단번 평가나 관찰에 의한 영재 선발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전 학년 과정에서 영재선발전문가가 개입되어야 하고, 모든 학년, 모든 선생님의 전 학생 하나하나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학생기록을 철저히 잘한 교사에게 승진 가산점을 주는 제도도 도입되어야 한다).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이러한 여러 교사 및 전문가들의 장기간에 걸친 관찰과 기록, 그리고 평가 자료가 우선시 되어 영재학생의 선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영재교육의 내적 조건과 외적 조건을 갖추자 영재교육의 내적 3대 조건이란 영재판별, 영재교육과정, 영재교사양성을 가리킨다. 외적 조건이란 영재교육을 포함한 수월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다. 영재판별은 전문적·장기적인 관찰에 근거해야 함을 언급했다. 영재교육과정은 영재의 특성을 계발하는 프로그램과 영재의 품성을 계발하는 프로그램으로 구분될 수 있다. 특성계발 프로그램이란 창조적 사고력, 도전정신, 논리적 사고력, 탐구력, 협동학습능력, 질문능력, 정보이해능력 등을 배양하는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품성계발 프로그램이란 애국심, 양보심, 자신감, 행복감, 정의감, 도덕성 등을 배양하는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현재의 영재 프로그램은 주로 교과와 관련된 문제해결력 배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된 제반 특성과 품성계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애국심과 같은 품성교육 프로그램을 정규교육과정으로 설치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영재교수(교사)는 전액 국비로 양성되어야 하며, 기존의 초·중등 교사개념을 넘어선 전문적 영재교육 담당교수(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기존 초·중·고 교사의 재교육을 통한 영재교사양성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영재교육을 담당할 교사는 기존의 초·중등 교사개념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각 분야의 전문가인 교수, 연구소 연구원, 직업 외교관, 국방 관련 전문가, 일반 과학자 등을 영재교사로 임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사자격증제도에 너무 얽매이는 것은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각 분야에서 영재교육을 전공자를 교수 급으로 임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아·맹아·정신지체아 등의 특수교육을 위해 특수교육 전문가가 교사로 임용되듯이, 영재교육도 특수교육임을 이해해야 한다. 과거 중등학교에서 기존 교사를 재교육하여 상담교사로 활용한 경험이 있다. 그러한 프로그램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영재교육의 선진국에서 영재교육 전문교사를 초빙하여 활용하는 것도 초기 단계에서는 고려해 볼 만하다. 수월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내적 조건을 준비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국민 대다수가 수월성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대의적으로 판단하도록 캠페인을 벌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그런 면에서 언론의 수월성교육에 대한 역할과 책무를 기대한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은 수월성교육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을 원활하게 할 것이다. 수월성교육비는 현 교육부 예산으로 충당하지 말고, 대통령/국무총리 사업비로 확보해야 한다 전교조는 “축복받은 상위 5%를 위한 영재교육보다는 95%를 위한 보편교육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국민혈세 2천억 원을 들여 교육차별 심화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국민혈세 2천 억(2005~2010년 : 6년간 총경비) 원을 들여 상위 5%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교육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상당히 일리 있는 비판이다. 이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부는 수월성교육을 위한 특별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의 교육부예산에서 영재교육비를 떼어내려 하지 말고, 추가 재원을 확보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영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피해가 가는 것은 안 되기 때문이다. 교육부 예산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 우선이다. 또한 앞으로 과학영재, 예술영재, 정보영재, 언어영재 등의 양성을 위해서는 국방부, 문체부, 과기부, 정통부 등의 재정적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종합적·장기적으로는 영재교육을 위한 재원은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 산하의 재원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수월성교육은 국가의 제 1정책으로 추진하고, 교육부 사업이 아닌, 대통령사업/국무총리사업으로 승격시켜 예산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사실상,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수월성 교육대상자수는 약 112만 명(‘05-’06: 32만 명, ‘07-’08: 40만 명, ‘09-’10: 40만 명)이다. 이들을 위한 총 교육비를 2079억 원으로 잡고 있다. 학생 1인당 영재교육비는 약 18만6000원이다. 직접교육비 1232억 원만을 고려한다면, 학생 1인당 영재교육을 위한 직접경비는 11만 원이다. 이 정도 금액을 갖고 수월성 교육이 과연 가능한가를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수월성교육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도 특별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자.
김희대 | 서울 중대부고 교사 1. 들어가며 정부는 지난 12월 22일에 발표한 수월성교육 대책이 현행 평준화제도 하에서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를 발굴·양성할 수 있어 교육의 보편성과 수월성이 조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찮다. 개혁을 표방하며 발표된 수많은 교육정책들이 학교 현장의 적합성 문제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면서 흐지부지하게 된 전례 때문이다. 이번 수월성교육 대책도 교육현장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하부구조가 취약하고, 입시와 학벌위주의 사회구조 하에서 과연 계획대로 실현이 가능할 것인가이다. 발표된 수월성교육의 핵심은 전체 중등학교의 절반을 대상으로 확대 실시되는 수준별 이동수업에 있다고 판단된다. 즉, 수준별 이동수업을 통하여 현행 고교평준화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함으로써 학교교육을 내실화하여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사교육비를 경감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본고는 대학입시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문계 고교 교사의 시각에서 수월성교육 대책과 그 세부적인 계획에 대해 학교현장의 적합성 분석을 통해 부작용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수월성교육의 개선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2. 학교현장의 적합성 분석 수월성교육 대책에서 제시된 수월성교육 프로그램에 목표, 방향, 실현 내용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와 재정 지원조건 등을 명시함으로써 수월성교육에 대한 정부의 정책 실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안들은 수월성교육 희망자를 겨냥한 대규모 사교육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큰 데다, 우열반 편성에 따른 학내 갈등, 관련 전문교사나 교과담당 교사의 부족으로 인한 교육부실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계획대로 추진될지는 의문이다. 다음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영재교육이 초등학교 이전의 유아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쳐 수월성교육을 대비한 각종 과외가 성행할 수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수월성교육 대상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번 대책은 기존의 영재교육에 관심이 없던 부모마저 관심을 갖게 하였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초등학생부터 선행학습이 이뤄지는 등 사교육의 폐해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이제는 수월성교육을 대비한 또다른 과외가 성행할 것이 예상된다. 둘째, 수준별 이동수업이 우열반 편성으로 변질될 가능성과 수월반 대상이 되기 위한 또다른 사교육을 조장하여 사교육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수월성교육 하에서의 수준별 이동수업은 곧 우열반 편성을 뜻한다. 우열반에 들어가려는 학생들간의 경쟁은 서열화를 더욱 고착시키고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하고 치맛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이의 실시를 통해 얻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나타나 학교교육을 더욱 파행케 하여 위기적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셋째, 교육적 지원을 충분히 받고 자란 계층의 자녀들이 수월성교육의 수혜자의 대부분이 되고 상대적으로 빈곤층 자녀들은 교육적으로 더욱 소외될 소지를 낳을 수 있다. 현 교육체제에서도 빈곤층 자녀들의 교육적 소외가 심각한데, 수월성 교육을 위한 사교육이 횡행하고 관심이 고조된다면 그에 적합한 대폭적인 지원을 받은 부유층 자녀들이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는 반면에 빈곤층 자녀들의 교육적 소외를 더욱 깊게 할 소지가 크다. 넷째, 일반학교에서 수준별 이동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교사, 수업내용, 수업평가, 수업환경지원조건 개선 등이 필수적인데 이와 관련된 대책이 미흡하다. 이는 교사와 학교가 수준별 이동수업의 효과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강력한 권고에 의해 수준별 이동수업을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실시를 하고, 계획하고 있는 게 있는 학교 현실로 그 만큼 학교현장이 수월성교육 실시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다섯째, 트래킹 제도, 집중이수과정, AP제도 등의 미국식 교육제도가 교육 인프라와 과열입시 등의 한국적 교육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될 때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트레킹 제도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수준에 따른 적절한 서로 다른 과목을 학습하게 되고, 학습한 과목의 내용을 평가받게 된다. 교사들은 외부에서 개발된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별도로 교수-학습 자료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교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의 성적을 상대적 석차로 파악하는 것은 복잡하고 매우 어렵다. 여섯째, 2008년 대학입시는 전적으로 학교내신을 바탕으로 선발하는 제도인데 수월성교육과 대학입시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이다. 치열한 입시경쟁구조에서 일반고에서는 학교내신이 부풀려지고, 특목고 학생들이 내신의 불리 때문에 일반고로 전입하고, 검정고시 등으로 진로를 바꾸어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외국으로 유학 가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개선 방향과 과제 첫째, 수월성교육의 성패는 훌륭한 교사자원의 확보와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지원체제의 확보에 있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학생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 교사의 전문적인 지도능력(교과지도 능력, 진로지도 능력 등)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의 수월성은 결국 학교에서 교사의 전문성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교사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교사의 사명감 고취와 전문성을 향상할 수 있는 교사지원과 평가체제가 확대되어야 하겠다. 둘째, 수월성교육을 지원하고 가능하게 하는 학교의 시설이나 환경 등 교육 인프라가 구축되고 조성되어야 한다. 수준별 수업의 경우 여유 교실이 확보되어 분반의 수준을 세분화할 때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학교 교실의 크기가 획일화되어 있어, 학습능력에 따라 필요한 수만큼 소집단을 구성하여 수업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일률적인 크기의 교실이 아닌 학습단위의 수를 조정하여 수업할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교실 설치가 요구되는 등 교육환경 개선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셋째, 학교 내 진로 상담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학교가 학생들의 특기나 적성, 그리고 학업수준에 적합한 진로를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진로선택으로 인해 학생 개인과 국가의 교육력 손실은 엄청난 것이다. 학생들을 단기적인 입시가 아닌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진로지도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수월성교육에서 소외가 예상되는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이 자신의 재능을 사장시키지 않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수월성 향상 지원대책을 강구하여, 부모의 경제적 지위로 인한 교육불평등 현상이 완화될 수 있는 장치가 요구된다. 넷째, 단위학교 운영의 내실화도 학교 수월성을 보장하는 또 다른 측면이다. 학교 내적인 요인 중에서 수월성을 저하시키는 교원갈등, 교원고충, 교수-학습 개선, 교사평가, 학교평가 등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통해 단위학교의 교육력을 증가시키는 컨설팅 장학체제가 적극 도입되어야 한다. 다섯째, 수준별교육의 실시를 저해하는 입시위주의 풍토, 대학서열화와 학벌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현재 학벌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문화,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구조, 입시위주의 경쟁적 학습풍토, 진로지도가 소홀한 학교실정, 학부모의 대학지상주의에 따른 교육열 등을 고려할 때 입시와 무관한 교육정책은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이라도 입시와 관련되지 않으면 유명무실하게 되는 것이 우리교육의 현실이다. 이를 위해 대학을 특성화하고 학벌보다 실력, 능력에 의해 인재가 등용될 수 있고, 나아가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4. 나가며 우수한 인재의 발굴과 육성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과제다. 수월성교육은 그 기본방향 수립과 운영에 있어서 기본 철학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아주 많은 폐해를 양산할 수 있는 제도로 인식된다. ‘누구를 위한 수월성교육인가?’ 수월성교육의 기본적 관점은 부모의 욕심이나 국가적 엘리트의 조직적 양산을 위한 이익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수월성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 바탕을 두고 교육의 수월성을 제고하고, 고교평준화 제도에서 야기된 학업성취도의 하향평준화를 보완하는 대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이라도 교육현장의 적합성과 거리가 먼 섣부른 정책 발표와 강행이 학교교육을 불신하게 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를 떠나게 해 학교교육위기를 초래한 주요 요인임은 지난날 교육개혁정책 실패가 주는 교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 국가백년지대계라는 말은 백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으로 교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 경비의 투여가 이루어져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구본준 | 충남 천안성정초 교사 대망의 2005학년도 시작과 더불어 우리 교육의 화두는 ‘수월성교육’인 듯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말 현행 평준화제도 하에서 학교교육의 보편성과 수월성을 조화롭게 추구하기 위한 ‘수월성교육 종합대책’을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였던 수월성교육 대상 학생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오래도록 교과서도 교실 수업도 그들을 외면해 왔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수월성교육의 희소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염려들이 앞선다. 과연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수월성교육이 우리나라 전체 교육지도에서 올바르게 좌표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수월성교육 성패 여부 논의는 수월성교육 자체 논의만으로 불충분하다. 수월성교육 논의는 우리 전체 교육지도 속에서 다양한 교육 정책·시책들과 원활한 상호 소통 가능성과 협동 가능성을 생각하며 시작해야 한다. 수월성교육의 필요성, 범위, 시기, 교육기관, 주요 운영 내용, 지도교사 양성, 예산 계획 등 자기논리 개발은 수월성교육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지 결단코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교육정책 그렇다면 수월성교육은 왜 가능하고 왜 불가능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나라 전체 교육지도 속에서 살피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월성교육을 논한다면 수월성교육의 성공은 가능하다. 왜 그럴까? 첫째,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최상위권 학생들과 그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상위권 학생들에게 학교교육은 분명 문제가 있는 듯하다. 다인수학급에서 교사들의 강의 눈높이는 중간 수준 학생들이다. 이 중간층들을 보듬어 수업해 나아가기도 버거운 게 일선 교육의 현 주소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은 상위권과 최상위권 학생들을 소외시키는 교육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수월성교육 대상자의 존재와 그들의 요구, 이를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많은 교사들이 있기에 수월성교육의 성공은 가능할 수 있다. 둘째, 상위 1%의 최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재교육은 특히 더 성공한다. 분명히 존재하는 최상위 1%의 어떤 부모가 영재교육 수혜를 마다할 것인가? 게다가 영재학교, 영재교육원 등 기존 학교환경보다 우월한 교육과정과 교육 기자재를 통한 교육이기에 이 수혜집단의 갈채 속에 1% 초상위권 영재교육은 호황을 누릴 것이다. 셋째, 역설적이고 우회적이긴 하지만 ‘수월성교육 종합대책’으로 영재교육은 분명 활성화된다. 1%의 최상위 수월성교육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나머지 5%의 상위 수월성교육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사설학원들을 통한 영재교육이 활성화될 것이다. 수월성교육 성공보다는 실패 가능성 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체 교육지도 속에서 수월성교육을 살핀다면 수월성교육의 성공은 불가능하다. 왜 그럴까? 수월성교육이 일선 현장에 또하나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일선 현장교육은 포화용액 상태를 넘어 이미 과포화 용액 상태에 도달해 있다. 오래도록 우리 교육은 버림은 없고 얻음과 추가만으로 일관되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시·도교육청 수장이 바뀌었다. 곧바로 시·도교육청 교육지표와 중점시책 등이 바뀐다. 하부 교육청과 일선 학교도 이러한 변화에 걸맞게 교육과정을 재편한다. 별도의 부록 교육과정이 추가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누구도 이전의 교육과정을 제거하지 못한다. 새로운 수장도 이를 단칼에 단죄하지 못한다. 예컨대, 이전 수장이 인성교육을 강조하였는데 새로운 수장이 인성교육 나쁘니 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교육과정은 이렇게 몸집을 부풀려 왔다. 버림 없이 오로지 추가하는 교육과정으로 일관하여 왔다. 구체적 예로서, 수준별 교육, 수행평가, 학습부진아 지도, 통합교육 등의 교육시책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교육정책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연계하여 규모를 축소하고 통합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들의 부재가 문제인 것이다. 또한 새로운 교육시책을 운용할 수 있는 인적·물리적·운영적 환경의 열악함이 문제인 것이다. 추가의 추가로 일관하는 교육과정의 문제점, 이를 다시 비유로 빗대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 486컴퓨터가 있다. 이 컴퓨터를 통해 학습도 하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고, 통신도 하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TV도 보고 싶다. 다 보겠다는 욕심으로 프로그램을 하나씩 설치한다. 하드 용량이 다 찼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또 무리를 한다. 컴퓨터가 다운된다. 지금 일선 현장은 다운되는 486 컴퓨터 모양과 흡사하다. 다시 제7차 수준별교육의 한 시간 수업 상황의 예를 살펴보자. 수준별교육이란 가능한 학생 개개인의 목표 도달 정도(개별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대한 알맞은 수준별학습 과제를 부여하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제7차 수준별교육을 시도할수록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이 앞서게 된다. 왜 그럴까? 여기 서너 개의 학습 내용이 있는 한 시간 수업이 있다. 수준별 정신에 부합하려면 교사는 서너 개의 학습 내용을 30명 이상 학생들이 ‘이해하나, 이해하지 못하나’를 파악해야 한다. 가능할까? 산술적으로 교사는 한 시간에 4(학습 내용)×2(이해함, 이해못함)×30(학생수)= 240가지의 학생 수준을 파악해 내야 한다. 교사가 파악할 변인은 더 있다.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태도를 일일이 살펴야 하며, 어떤 학생은 쉽게 또 어떤 학생은 느리게 문제를 해결한 학생의 수준을 어떻게 가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교사가 파악해야 할 학습 상황은 대개가 확정인이 아니라 변인들이기 때문에 고차원적 사고를 요구한다. 비유하면 교사에게 486이 아닌 팬티엄급의 프로세서 상황을 요구한다. 수준별교육을 추구할수록 교사는 다운된다. 실제로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과 함께 일선 초등 교사들의 공통된 인식은 제6차 교육과정 이전보다 학생 수준 파악은 더 안 되고 있음을 느낀다. 가능한 학생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걸맞는 후행 수준별학습을 하자는 제7차 수준별교육 정신과 반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최종 결과보고서인 학생생활기록부를 진술할 때 더 느낀다. 6차에 비해 가르친 것과 시행한 것은 더 많은데 개별 학생 수준 파악이 덜 된다. 그래서 쓸 내용이 없다. 과부하로 인한 다운 현상 때문인 것이다. 산소결핍증에 시달리는 학교 구성원들 ‘수준별교육’과 동일한 일들이 ‘학습부진아’, ‘수행평가’, ‘통합교육’ 등의 교육 시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학습부진아의 경우 해마다 구제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산술적 조작과 허위 운영 결과물들 투성이다. 수행평가 역시 실적을 보여 달라면 방대한 규모의 실적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인상주의 평가가 앞서고, 수행평가의 과정과 결과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의심스럽다. 통합교육 역시 선진교육의 교육지표일 수 있지만, 많은 일선 학교 교사들은 그 효용성에 회의적이다. 특수교육 학생들을 맡은 담임으로서 이래도 될까 하는 자괴감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수월성교육 정책 역시 수준별교육, 학습부진아, 수행평가, 통합교육 등의 교육정책과 동일한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유의할 일이다. 학생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수준별학습을 할 수 있는 학교, 학습부진아가 없는 학교, 문제풀이만의 머리 큰 학생들이 아닌 움직이고, 만들고, 조작하고, 실행할 수 있는 수행형 학생들이 있는 학교, 팔다리가 없어도, 지능이 떨어져도 행복하게 놀고 공부할 수 있고 친구와 교류할 수 있는 학교를 꿈꾸는 이는 그 누구보다도 교사들이다. 또한 뛰어난 학습능력과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갖춘 영재아들에게 알맞은 교육을 누구보다도 교사들이 소망하면서도, 현실 안착이 더딤에 대한 살핌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문제는 과부하이고, 용량 과다 투입이다. 486 용량의 교육환경 속에서 팬티엄급에서 돌아갈 프로그램을 선별 없이 투입한 들 그 운용이 가능하겠는가? 일선 학교는 이미 비대해진 교육과정의 과부하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은 가르칠 무엇이 없어서 가르치지는 못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적절한 선택과 배제 원리가 적용되지 않은 채 턱까지 차올라 숨 막히는 교육환경을 조성시키는 끊임 없는 교육정책의 펼침이 문제인 것이다. 학교와 교사가 숨 쉴 틈을 주자! 이러한 여유로움으로 가르치고, 해야 할 그 무엇을 차근차근 꼼꼼하게 수행하게 만들자! 선택과 배제의 원리, 버림의 미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제 교육은 체질을 개선하고 체중을 줄일 때인 것이다. 국정감사 자료 요구 때문에 도교육청 자료가 트럭으로 운송되었다고 한다. 질보다 양, 내용보다는 형식의 소통방식으로 쌍방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였단다. 이러한 과시적이고, 문서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교육평가가 학생과 학교교육을 ‘교육 없음’으로 몰고 간다. 여유를 갖고 학생 눈을 마주 대할 때, 학습 부진아가 보이고, 영재아도 보이며, 그 수준에 맞는 수준별교육도 가능한 것이다. 밀어붙이기 식으로 얻을 수 있는 일이 없음은 우리 교사들에게는 매우 상식적인 경험적 지식이 아닐 수 없다. ‘수월성교육’의 시행으로 우선 염려되는 점은 영재기관에 맡겨지는 1%의 영재교육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나머지 4%의 영재교육이다. 과부하에 걸린 일선 학교는 운영 교사의 부재, 운영 교재의 부재, 운영 프로그램의 부재, 운영 여력의 부재로 시작부터 그 추진동력 확보가 쉽지 않음을 주지할 일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2003학년도 도지정 영재교육 연구학교 업무를 시행한 바 있다.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운영하였지만 연구학교가 끝난 뒤 영재교육 강좌는 자동 폐쇄되었다. 영재교육 마인드로 무장한 학교가 이런 상황일진데 지원과 인센티브 없이 영재교육에 역량을 투입할 학교는 현재 없는 듯하다. 또한 1년간 영재교육을 받은 본교 학생들이 시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원 입학시험에 응시하였으나 전원 탈락하였다. 본교가 지도한 프로그램이 문제인지, 영재교육 선발 방식이 문제인지 검증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다.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사실 하나는 8학군이라 불리는 특정 지역 학교의 학생들이 대다수 선발되었다는 씁쓸한 결과뿐이다. 누군가가 “영재교육 어떻게 할까” 물어온다면 “1%의 영재교육 수혜자가 되려면 경시대회처럼 준비해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버리는 교육과정’ 필요한 때 이러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수월성교육은 시행될 것이다. 하지만 ‘수월성교육 성공’의 키워드는 ‘버림의 미학’임을 명심할 일이다. 이제는 교육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각 정책의 체계화, 소통화, 최적화가 필요할 때이다. 교육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과정은 지난한 여정이며, 따라서 시간과 기간을 필요로 한다. 목표(정책)가 많아지면 여정이 줄고 과정이 축소된다. 반대로 목표가 줄면 여정이 늘고 과정이 충실해진다. 따라서 부득이 추가된 새로운 교육정책 ‘수월성교육’이 일선 교육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자기논리 개발에 앞서 이미 만연된 일선 현장의 과부하와 다운 현상을 최소화·최적화 하는, ‘버리는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와 결단과 적용이 시급히 요구된다. 과학뿐 아니라 교육에서 ‘에너지 총량 법칙’은 여전히 유효한 법칙이 아닐 수 없다.
정혜손 |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회장 유치원 공교육화를 향한 국민 염원의 산물인 유아교육법이 7년여를 표류하다가 2004년 1월 8일에 통과되었다. 그런데 유아교육법이 통과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발표되지 못하고 있어 유감이다. 그 이유는 거대한 공룡 같은 이익집단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국회에서, 더욱이 매서운 겨울 추위를 온몸으로 막아가며 여의도에서 토해냈던 우리의 함성은, 결국 우리나라 유아들의 교육과 국가인적자원 개발이라는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어렵게 이뤄낸 유아교육법을 가로 막고 있는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우려와 분노를 금치 못한다. 유아들을 위한 진정한 공교육과 보육은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과제인 동시에 우리의 임무이다. “만 5세아 무상교육비를 학원에도 지원하라”는 주장은 일반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시간을 끌어 유아교육계를 흔들어 놓고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며,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기본은 유아교육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이유를 열거해 본다. 첫째, 교육은 이익을 남기는 장사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을 빙자한 이익집단이 돈벌이에 눈이 먼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때이다. 둘째, 저소득층 유아일수록 유치원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원측에서 말하는 바와는 달리 저소득층의 유아들은 비싼 학원비를 내며 기능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저렴하면서도 환경이 우수하고 질적 수준이 높은 국공립유치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만 5세아 73% 이상이 유치원과 보육시설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실태 조사에서 나온 사실이다. 셋째, 원칙을 지켜야 한다. 원칙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 교육부, 정부가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 법 체계상 유치원은 학교이며 유아교육법에 의해 운영되는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모법에도 없는 학원 지원 관련 조항을 넣고 싶어 안달하는 일부 국회의원들, 눈치만 보는 교육부 관계자들, 사교육비 경감을 부르짖던 정부 관료들은 지금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넷째, 학부모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자식들을 더 이상 학원으로, 과외로, 학습지로 내몰아 기계적인 아이들로, 똑같은 물건처럼 계속 찍어 낼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국민의 혈세로 사설학원의 배를 채워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답지 않은 교육은 설 자리가 없도록 감시하고, 지적하고, 건의해서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할 때이다. 다섯째, 제대로 된 교육시설을 늘려야 한다. 만 5세아 23%에 해당하는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우리가 찾아주어야 한다. 왜 정부는 이처럼 유치원교육을 방치해 왔는가. 학원들이 몇 십만 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단 말인가. 지방의 어려운 공립유치원은 지역별로 한 곳에 모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 체제를 마련하고, 대도시에는 학부모들이 그토록 원하는 공립유치원을 지금이라도 계획적으로 세워나가는 방법을 연구한다면, 사교육비는 유치원에서부터 바로 잡혀 몇 년 안에 유아교육은 물론 대학교육까지도 정상화될 것이다. 여섯째, 평가시스템이 필요하다. 평가인정제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교육의 질이 높은 유치원은 살아남고, 그런 유치원에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길만이 우리 아이들이 세계에 나가 뒤지지 않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일곱째, 종일반 교사를 반드시 배치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들의 증가 추세로 가정에서 담당하던 교육과 보육은 이미 유치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공립유치원에서는 ‘Edu-Care’라는 이름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종일반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기대로 잘 운영되고 전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대다수 지방의 공립유치원 교사들은 종일반을 혼자 담당하고 있다. 이는 유아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없다. 종일반 교사를 반드시 배치하여 부모에 버금가는 사랑으로 질 높은 교육과 보호를 제공토록 해야 한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한다는 여성부는 유치원 교사 대부분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짓밟으려는 의도를 밝히기 바란다. 학부모는 안심하고 유아들을 유치원에 맡기고 사회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고, 유아들은 제대로 된 교육과 보호를 받으며, 유치원 교사는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종일반 배치기준은 반드시 원안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는 참여정부답게 전임 교육부장관이 잘못된 약속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정정당당하게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정책의 기본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땅의 아이들을 위해서, 학부모들을 위해서, 제대로 교육하기를 열망하는 교원들을 위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당당하게 나서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
이창희 | 서울 강현중 교사 현대는 전문성의 시대이다. 시대에 맞게 여러 분야의 구성원들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있다. 각 분야의 구성원들이 전문성을 갖출 때 국가 경쟁력 상승은 물론, 개인의 경쟁력 상승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갖춘 나라는 국가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전문성을 갖춘 개인은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전문성이 강조되는 큰 이유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 분야 역시 교육경쟁력 향상과 개인의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전문성 신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교원의 전문성이야말로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 부분이다. 교원의 전문성이 신장될 때 교육의 경쟁력이 살아날 것이고, 무너지는 공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시되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에 부응하기 위해, 일선학교 교원들은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대학원 진학, 수업방법 연구, 학생지도방법 연구, 각종 연수 참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 연수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다. 물론 학교교육에 도움 되는 실질적인 연수를 받게 된다. 특히, 방학 중에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교원의 대부분이 각종 연수를 받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시간과 노력의 투자뿐 아니다. 연수에 필요한 제반비용을 자비로 충당하면서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 IMF 한파가 몰아치기 이전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교원이 연수비를 자비로 부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IMF를 기점으로 각종 교원연수기관의 난립과 함께 대부분의 교원연수가 자비연수 체제로 변했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교원들은 결코 연수에 소홀하지 않았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연수를 받으면서 전문성 신장을 꾀한 결과인지, 최근에는 일부의 연수과정에서 연수비의 일정 부분을 시·도교육청에서 보상해 주는 체제로 변해 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연수에서 모든 교원들이 연수비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상받을 수 있는 연수는 한정되어 있고, 전액 보상을 받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즉, 시·도교육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정식으로 지정된 연수기관에서 연수를 받을 경우에 한하여 대략 70% 전후의 연수비를 지원받고 있다. 문제는 전문성 신장을 위해서 받는 연수는 인가된 연수기관에서의 연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현재 지정된 연수기관의 연수과정만으로는 교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원들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때로는 학원 수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인가되지 않은 연수기관(각종 연구회 등)에서 어쩔 수 없이 연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의 연수비는 고스란히 연수자 개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연수의 실효성에서는 도리어 인가받은 연수기관에서의 연수보다 더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통한 연수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연수비를 전액 본인이 부담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인가받지 않은 기관에서의 연수 비용도 지원해 줘야 옳다고 본다.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연수의 최대 목적으로 본다면, 연수기관으로 등록된 기관에서 받는 연수만이 전문성 신장에 기여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원의 전문성 신장 노력에 부응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연수비 전액을 연수대상 교원 모두에게 지원해 준다면 가장 좋은 방안이 되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의 보상을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교원의 연수비에 소득공제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현재 교원의 대학 및 대학원 학비 전액을 연말에 소득공제해 주고 있다. 대학원 진학이 전문성을 신장할 수 있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각종연수도 분명한 전문성 신장의 방법이므로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대학원의 등록금은 전액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시켜 주면서 자비로 부담하는 각종 연수비는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분명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학원 진학 형편이 못되는 교원들은 어쩔 수 없이 연수라는 방법으로 전문성 신장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말 정산에서 소득공제 혜택을 줘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비연수의 경우는 출장비가 지급 되지 않는다. 수업은 수업대로 다하고 연수를 받기 위한 출장임에도 불구하고 출장비가 지급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자비연수가 아닐 경우는 출장비를 지급받는다. 자비연수에 출장비가 지급되지 않고, 무료로 받는 연수는 출장비가 지급된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자비연수를 받는 교원들은 이중으로 금전적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최소한의 혜택을 주기 위한 방안으로 자비연수비에 대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해야 옳다고 본다. 물론, 연수를 받음으로써 교원의 전문성 신장이라는 소득을 얻는 것이 분명하고, 이런 전문성 신장을 금전적인 척도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형평성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작은 것부터 교원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돕기 위한 첫걸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