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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2016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정신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25.4%라고 한다. 정신질환 중 주요우울장애(우울증)는 5.0%, 양극성장애(조울증)는 0.1%, 조현병스펙트럼장애(정신분열증)는 0.5%, 불안장애는 9.3%로 나타났다. 2020년 유·초·중등교원은 498,281명이다. 위 유병률을 적용하면 교원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약 2만 5000명, 조울증은 약 500명, 정신분열증은 약 2,500명, 불안장애는 약 4만 6000명 정도이다. 학교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드는 ‘폭탄’같은 교원 정신적 질환이 있는 교원 중 일부는 증세가 심각하여 학교현장에서 동료교원·학생·학부모 사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며, 소위 ‘폭탄’이라고 불린다. 문제 교원은 교장·교감 등 관리자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관리자나 동료교원의 조언이나 불만을 ‘교권침해’라고 주장하면서 꼬투리잡기·민원·소송 등으로 학교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직장 내 갑질, 성희롱·성폭력, 청탁금지법 등을 활용하여 자신을 오히려 피해자로 만들고, 부패한 조직과 맞서 싸우는 내부고발자임을 자처하면서 극한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정상적인 주변 사람들은 이에 대응하기보다는 정기전보를 기다리며 인내하거나, 비정기전보를 이용하여 본인이 떠나면서 문제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면 문제 교원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더욱 의기양양해지면서 악순환은 계속된다. 이러한 정신적 질환이 있는 교원을 강제로 휴직하게 하거나 교단에서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직권휴직 및 13개 시·도교육청에 구성된 질환교원심의위원회다. 「교육공무원법」 제44조 제1항 각호는 휴직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제1호 ‘신체상·정신상의 장애로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는 임용권자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휴직을 명하여야 한다(직권휴직). 이에 13개 시·도교육청은 교육규칙으로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설치, 질환교원의 직권휴직·직권면직 등을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질환교원심의위원회는 교육청 교육국장·과장 등의 당연직 위원과 의료전문가·법률전문가·인권전문가·교직단체 또는 학부모단체에서 추천한 사람 등의 위촉위원으로 구성된다. 민원·감사·특별장학 등으로 질환교원에 대한 심의 요청이 있으면 사안을 조사한다. 사안 조사과정에서 전문가위원회의 자문을 받을 수도 있다. 심의는 비공개로 이루어지며 이해당사자의 의견 청취를 거쳐 ‘직무수행에 문제없음’, ‘상담 또는 심리치료 권고’, ‘직권휴직’ 등의 결정을 한다. 해당 교원은 질환교원심의위원회 결정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해당 교원이 직권휴직 후 복직원을 제출하면 질환교원심의위원회는 복직·직권휴직 연장·직권면직 등을 의결한다. 「국가공무원법」 제70조 제1항 제4호는 ‘휴직기간이 끝나거나 휴직사유가 소멸된 후에도 직무에 복귀하지 아니하거나 직무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직권면직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직권휴직 이후에도 직무를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직권면직이 가능하다. 이상의 절차는 시·도교육청 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질환교원심의위원회의 직권휴직과 관련된 소청사례를 살펴보자. 사건 경과 가) 청구인은 1990년 3월 1일 ○○초등학교에 신규 임용된 후, 2014년 3월 1일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다. 나) ○○초등학교는 2016년 5월 31일과 6월 2일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했고, 6월 9일 청구인에게 결과(접촉·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교권보호위원회에 상정하기로 조치)를 통보하였다. 다) ○○초등학교 교사 A는 2016년 6월 9일 청구인의 교권침해문제에 대하여 ○○교권보호위원회에 심의·조정을 요청하였다. 라) ○○초등학교 교직원 33명이 2016년 6월 10일 ○○교권보호위원회에 연명서(청구인의 교권침해 관련 증거자료)를 제출하였다. 마) ○○교권보호위원회 3명의 위원이 2016년 6월 13일 ○○초등학교 교권침해와 관련하여 방문 면담(청구인의 교권침해 행위는 재직 3년 내내 이어진 심각한 사안이며, 피해자가 전체 교직원에 해당할 정도로 광범위함을 확인) 하였다. 바) ○○교권보호위원회는 2016년 6월 20일 ○○초등학교 교권침해 분쟁·조정 사안을 심의하고, 청구인에게 2016년 6월 22일 결과(교권침해 사안으로 인정, ○○교육청 질환교원심의위원회에서 의학적 전문 판단을 통해 결정)를 통보하였다. 사) ○○교육청 질환교원심의위원회는 2016년 6월 22일 피청구인으로부터 심의를 요청받아, 2016년 7월 14일과 8월 17일에 걸쳐 청구인에 대한 심의 의결(청구인에게 상담 및 치료 필요하다고 판단)을 하였다. 아) 피청구인은 2016년 8월 23일 청구인에게 직권휴직(2016.08.24.~2017.02.28.) 처분과 함께 휴직기간 만료 전 대학병원급 진료기관의 심리검사 및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였다. 처분 사유 가) 학교 및 학년 교육활동 방해 청구인은 2014년~2016년 유사한 패턴으로 문제행동을 하거나,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는 동료교사들의 교육활동을 ‘집단 따돌림’이라고 주장하고, 부장 자격을 운운하면서 막말과 고성, 장시간의 훈계, 녹음과 사진촬영 등을 통해 부장 보직을 사퇴하게 하였으며, 학교 관리자의 지도에 불응 및 불손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마다 관리자가 전보되게 하였다. 나) 이상 행동 청구인은 교실 앞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감시한다고 하거나, 2016년에는 한 달간 급식을 받자마자 버리고, 메신저에 물결무늬(~)나 웃음(^^) 표시를 하면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한다고 여기며, 누군가 본인을 미행하는 교사가 있다거나 누군가 몰래 본인 교실로 들어와 물건을 파손하며 본인의 수업을 몰래 엿들었다고 하고, 평소 교사들이 모여서 작당·모의·뒷담을 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따돌린다고 한다. 다) 동료교원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 유발 청구인은 메신저·핸드폰·문자 등으로 집요하게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타깃 교사가 되면 주말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자·카톡 등으로 괴롭히며, 증거자료라고 주장하면서 녹음과 사진촬영을 빈번하게 하거나, 오빠를 동원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교무부장과 학년부장을 교육청 MOU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고, 작은 문제를 ‘경악’, ‘슬픔’, ‘분노’, ‘좌절’, ‘묵과할 수 없다’, ‘작당’ 등으로 표현한다. 라) 위와 같은 청구인의 행위에 대해 정신과 의학전문가들이 청구인에게 상담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교육청 질환교원심의위원회 규칙」,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 제10조에 따라 2016년 8월 24일부터 2017년 2월 28일 직권휴직에 처하며, 직권휴직기간이 만료되기 전 대학병원급 진료기관의 심리검사 및 진단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판단 가) 청구인이 정상적으로 교직생활을 지속하는데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이는 점, 청구인과 같이 근무하는 교직원들의 정신건강과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 ○○교육청질환교원심의위원회 정신과 의학전문가들 또한 청구인의 상태가 상담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였을 때 피청구인이 청구인에게 상담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상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며, 이에 따른 이 사건 직권휴직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거나 사회 통념상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나) 피청구인은 청구인의 제반 행동을 고려하여 청구인에게 정신상의 장애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고, 청구인이 정상적인 상태에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인 진단서를 청구인에게 제출 요구하는 것은 청구인의 법적인 신분관계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변동을 가져온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대학병원급 진료기관의 심리검사 및 진단서 제출 요구는 ‘징계처분과 그 밖에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는바, 청구인의 대학병원급 진료기관의 심리검사 및 진단서 제출 요구 취소 청구는 부적법하다. 위 사례에서 해당 교원은 지속적으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해마다 관리자가 전보하였고, 동료교원들이 자신을 따돌리거나 물건파손·미행·모의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괴롭히고, 주말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자·카톡 등으로 괴롭혔으며, 증거를 확보한다면서 녹음·사진촬영을 하고, 오빠를 동원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결국 학교교권보호위원회·교육청교권보호위원회·교육청질환교원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직권휴직 처분을 받았고, 소청도 기각되었다. 이상과 같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원에 대한 제도적 장치는 갖춰져 있지만, 각 시·도교육청의 질환교원심의위원회 개최 실적이 저조하다는 점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문제 교원의 집요한 보복을 두려워해서 일수도 있으나, 몇 년만 참으면 안 볼 사이인데 굳이 내가 앞장설 필요가 있냐는 교직사회의 소극주의도 원인으로 보인다. 이런 소극적 태도는 결국 다른 교원과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 피해는 궁극적으로는 또 나에게 돌아올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문제 교원으로부터 학교를 보호하여야 한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 프락시스(praxis)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실천을 몇 가지 열쇳말로 살펴보자. 먼저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사고(이론)’와 ‘행동(실천)’을 이분하지 않는다. 프레이리 자신이 행동 이전에 성찰(사고)이 먼저 있다는 식으로 둘을 분리해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프레이리는 사고와 행동의 통일을 ‘프락시스’(praxis)라고 한다. ‘프락시스’의 사전적 풀이는 ‘방식’이자 ‘활용’이라는 실천적 의미에 가깝지만,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 자체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프레이리에게 ‘프락시스’는 ‘이론적 실천’이요 ‘사고와 행동의 총합’을 뜻한다. 따라서 프레이리(1970: 105)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사고의 영역과 행동의 영역이 모두 동원되는 일이다. 즉, 행동 없는 참된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의식화와 의식화 교육 그의 대표작 페다고지의 핵심 사상은 의식화를 통한 억눌린 자들의 인간 해방을 위한 인간화 교육이다. 여기서 ‘억눌린 자’는 프레이리가 살던 브라질의 군부독재 아래 억압받는 민중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괜찮은가? 물건 만들다 죽고, 만든 물건 배달하다가 죽고, 요즘 같은 때 추워서 얼어 죽기도 하는 세상의 민낯을 보면서 ‘세상이 왜 이래’라고 탄식한다면, 독재시대를 살고 있지 않지만 우리 역시 극복해야 할 억압적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레이리가 말하는 의식화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모순을 인식하고 현실의 억압적 요소들에 맞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프레이리의 의식화란 의식을 발달시키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변혁시키는 의식적 힘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의식화’와 ‘의식화 교육’의 의미는 ‘비판적 의식의 각성’이라는 의미와 다르게, 오히려 ‘편향된 사상의 주입’ 또는 ‘교화’의 의미로 사용돼왔다. 예컨대 의식화를 ‘좌경 의식화’, ‘좌경 의식화 교육’으로 사용해온 것이 그 예이다. ‘의식화’란 말이 한국사회에서 프레이리가 의미하는 그것과 다르게, 특정 사상의 주입이나 교화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1970~80년대 한국의 사회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의식화’가 쟁점이 된 것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결성되어 참교육을 주장하면서부터다. 전교조가 주장한 참교육은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으로서 이를 통하여 독재를 청산하고 통일과 민주화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1990). 전교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당시 문교부는 참교육의 실체가 편향된 ‘의식화 교육’이라고 정의하고, 전교조의 의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식화 교육이 편향된 사상을 주입한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 이후, ‘의식화’나 ‘의식화 교육’의 의미는 프레이리가 뜻하는 것과 달리, 편향된 사상의 주입으로 왜곡되고 오해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식화의 의미는 수동적인 사상의 주입이 아니라, 비판적 의식의 각성과 실천을 의미한다. 은행예금식 교육 비판과 문제제기식 교육 그러나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의식화 교육은 교사의 입에서 학생의 귀로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주입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다. 오히려 프레이리는 이러한 일방적인 교육을 은행예금식 교육으로 비판한다. 은행예금식 교육에서 지식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는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프레이리가 비판한 은행예금식 교육은 교사와 학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태도와 습관을 낳는다. 프레이리는 은행예금식 교육을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한 프락시스로 문제제기식 교육을 역설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은 인간과 세계를 분리하여 보는 대신, 미완성된 인간과 세계를 긍정하고,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과 세계, 그리고 교육을 이해하고자 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을 통해 의식은 발달해간다. 즉, 아직 깨어나지 않은 미몽의 단계에서 부분적으로 깨인 상태지만, 아직 순진한(naive) 대중적 의식, 그리고 비판적인 단계로 각성해가는 것이 의식화의 과정이다. 이러한 의식의 발달은 개인 성장과 발달에 한정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세계 발달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문제제기식 교육 그리고 의식화 교육이란, 교육의 당사자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모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 문제에 대해 의식이 깨어가는 것을 뜻하며, 각성된 의식 수준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프락시스를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제기식 교육은 궁극적으로 급진적 민주주의 실현을 지향한다. 프레이리에 따르면, ‘급진적 민주주의’란 물신화와 불평등을 초래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 민중 주체와 민중의 자기해방에 의한 참여의 풀뿌리 민주주의,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간의 대화와 평화의 공존으로 해방과 인간화를 지향하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의미한다(이훈도, 2017: 149에서 재인용). 즉, 프레이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단순한 독재체제를 부정하는 것 너머, 사람들이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모순을 극복하고 인간화를 이룬 다원적 삶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프레이리가 추구한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으로서 민주주의요, 삶의 다양한 억압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모순과 억압(인종·성·지역 등 간 차이와 그 차이로 인한 모순들)을 느낀다면, 여전히 민주화를 위한 문제제기 교육은 중요할 것이다. 대화로서의 교육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실천은 교사와 학생이 이분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의 대화를 전제로 한다. 프레이리(1970: 107)에게 대화는 ‘세계를 매개로 하여 세계를 이름 짓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만남’이다. 대화는 단순히 생각을 교환하고, 그 생각이 대화에 참여한 이들에게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대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찾는 일이고, 인간 실존을 확인하는 것이다. 또 대화는 하나의 창조과정이다. 요컨대 프레이리의 ‘대화로서의 교육’은 인식과 실천, 가르침과 배움의 통일이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상호배움을 통한 자유의 실천이요, 변혁을 지향하는 해방의 과정이다. 따라서 프레이리는 자신의 대화교육론을 그저 교수법 정도로 접근하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교육은 정치다 프레이리에게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이러한 프레이리의 입장은 교육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녀야 한다는 주류 관점에 배치된다. 그러나 프레이리는 페다고지를 쓰면서부터 교육과 정치의 관련성을 부분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에는 ‘교육은 정치’라고 생각하게 됐음을 강조한다. 물론 프레이리가 ‘교육이 정치다’라고 하는 것은 가르치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주입할 권리를 갖는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의미는 미완의 인간으로서 인간은 꿈과 이상, 목표 등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교육이 현실의 모순을 넘어 보다 더 나은 사회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인식이자 실천인 점에서 중립적일 수 없다는 뜻이다. 다음 호에 계속
학교교육과정에 인공지능교육이 도입된다는 소식에 인공지능교육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5년간 인공지능교육과 소프트웨어교육에 대한 관심도를 알 수 있는 구글 트렌드 분석을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이던 소프트웨어교육이 2020년도에 들어서 인공지능교육에게 그 자리를 점점 내어주고 있는 모양새다(표 참조).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러한 관심 속에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낙관보다는 비관’이 많은 듯하다. 모 신문사 인터뷰 속 학부모는 “코딩도 사교육의 도움을 받았는데 인공지능(AI)이라고 다를까요? 공교육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교육이 학교현장에 처음 도입됐을 때만 해도 컴퓨팅 사고력을 키우는 새로운 교육으로서 코딩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교육현장이 들썩였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미비했기 때문이리라. 소프트웨어교육 의무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정작 학생들이 소프트웨어교육을 배운 시간은 초등학교 6년 내내 단 17시간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초등학교 6학년 실과시간에만 다루다 보니, 학년별 심화과정으로서 체계적인 소프트웨어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인공지능교육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새로운 교육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이 역시 소리만 요란하고 실속 없는 교육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 것이라 여겨진다. ‘인공지능시대, 교육정책 방향과 핵심과제’ 속에서 이야기하는 미래의 길을 비추는 인재, 신산업성장 가속화에 기여할 인재, 그리고 절대다수의 평범한 우리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나가야 할까. 미래 교양으로서의 인공지능교육이 공교육 내에서 바른 방향을 잡아 한발 한발 성과를 이루며 나아가기 위해서 각별히 살펴보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인공지능 기반 교육’과 ‘인공지능교육’은 다르다 필자가 볼 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인공지능교육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범주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러 기관에서 주최하는 인공지능교육 관련 자문회의에 참여하다 보면 ‘인공지능 기반 교육’과 ‘인공지능교육’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인공지능 기반 교육’은 인공지능기술을 활용해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플랫폼 사업성격이 강한 교육이다.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어떤 과목과 분야를 잘하는지 충분한 학습데이터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습관을 분석하고 진단함으로써 개별화된 맞춤형 학습방식을 설계해주는데 활용하는 보조도구인 셈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인공지능 기반 교육을 위해서는 학습분석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과 학생들의 충분한 학습데이터가 필요하다. 맞춤형 교육을 위한 교사의 보조도구라 볼 수 있겠다. 이에 반해 인공지능교육은 말 그대로 인공지능시대를 주도할 인재양성을 위해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분석·적용하여 문제해결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에 걸맞은 인공지능교육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교과서 또는 교재가 개발되어야 한다. 기초 소양으로서 인공지능을 이해하기 위해 초등학교에서는 얼마만큼의 깊이와 너비로 접근할 것인지 그 내용과 방법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교육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용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학교상황에 따라 어떤 측면의 교육이 필요한지, 두 가지 접근이 모두 필요하다면 각각의 측면에서 인공지능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한다. 둘째, 인공지능교육을 가르칠 충분한 교육시수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여러 번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인공지능교육의 시수 문제이다. 체계적인 교육,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교육시수 확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교과목’이 없는 인공지능교육이 들어설 공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초 소양으로서 인공지능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적어도 초등학교 6년 동안 120시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보자. 120시간이라고 하면 엄청 많은 시간이라고 보이겠지만, 현실은 1년에 20시간, 1학기에 10시간 겨우 이루어지는 아주 적은 시간이다. 인공지능교육을 할 수 있는 교과목이 없으니, 이 10시간은 창의적체험활동시간 또는 각 교과의 자투리 시간에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간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이루어지면 다행이련만, 소프트웨어교육의 사례에서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6년 내내 17시간에 그쳤으니 가르쳐야 할 내용은 많고, 시수는 적었다. 즉, 체계적인 교육과 컴퓨팅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은 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초등학교 1~4학년에서 ICT 활용교육을, 5~6학년에서 정보·AI 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각 학년에서 몇 시간이나 확보할 수 있을지, 교과목이 없는 인공지능교육도 겉만 그럴싸했던 소프트웨어교육의 수순을 밟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바이다. 셋째, 인공지능교육을 위한 교사직무연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세 번째는 인공지능교육을 이끌어갈 교사 수급 문제이다. 현재 인공지능교육을 할 수 있는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교과와 상관없이 초·중등학교 현직교사를 대상으로 교육대학원 38개교에 석사과정을 개설하고, 수업료의 50%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각 학교에서 소프트웨어교육 및 인공지능교육을 활성화하고 주도할 핵심교원 1만 명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을 2018년부터 계속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비교원을 대상으로 교직과목 및 기본 이수과목에 인공지능 관련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는 등 다각적인 접근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첫째는 현재 교육대학원 자체에 소프트웨어 융합교육이나 인공지능교육 전공 교수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는 일부 전공교사나 담당교사를 상대로 이루어지는 핵심교원연수다 보니 대다수의 교사는 인공지능교육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관심조차 없다는 점이다. 셋째는 현재 인공지능교육 선도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인공지능교육의 경우 선제적으로 인공지능교육을 주도하고 있으나 당장의 교육에서 인공지능교육을 주도적으로 해 나갈만한 역량 있는 교사가 많지 않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모든 교과를 가르쳐야 하는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교육대학교에서 전공 필수과목으로 인공지능교육과목이 신설되어야 한다. 단순히 교직과목 및 기본 이수과목에 인공지능과 관련된 내용을 반영하기 위한 소극적인 검토가 아니라, 과목 신설을 통해 모든 예비교원이 인공지능교육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소수의 핵심교원을 중심으로 하는 집중적인 인공지능교육연수도 필요하지만, 전체 교원을 대상으로 한 인공지능교육 교사직무연수 역시 단계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고 학생들을 맡는 어떤 교사라도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공지능교육을 위한 교사직무연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교육목표보다 실속 있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과거의 교육이건 현재의 교육이건 미래의 교육이건 교육의 핵심목표는 학생의 ‘행복’한 ‘성장’이라 생각한다. 학생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학생 개별학습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맞춤형 교육의 제공은 인공지능 기반 교육이 도울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이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하는 인공지능교육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둘러싼 인공지능기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활용한 문제해결역량을 길러감으로써 ‘행복’한 ‘성장’을 이루며, 지능정보사회의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꿈과 역량을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하고 그럴싸한 말로 겉만 번지르르한 교육목표와 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고, 필요하다면 기존 교육과정을 모두 뒤엎어 새로이 시작하더라도 실속을 제대로 갖춰 우리 학생들이 올곧은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2021년이 밝았다. 코로나19로 잃어버린 2020년이라고도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우리는 그동안 안이하게대처했던 미래의 교육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또 성숙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1년에는 새로운 교육을 위해 한발, 아니 두발 더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30대의 영끌 투자가 부동산 시장을 흔들었다.’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20대와 30대의 영끌 투자 때문이라는 분석 기사가 쏟아지던 시기, 필자는 동료교사 셋에게 새로운 스터디 모임 제안을 받았다. 서로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각각 제안해 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 제안을 해왔다. “부동산 공부 같이할래? 이제 뭔가 좀 해야겠다.” 경제와는 거리가 먼 직업? 현대 사회의 여러 직업 가운데서도 유난히 돈과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있는 직업은 아마도 교사일 것이다. 소명으로 가르치며 헌신하는 삶. 사람들은 여전히 교사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 교사의 월급은 많은 편일까, 적은 편일까. 우문이다. 비교 대상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초등교사들은 상당수가 이렇게 대답한다. “서울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기엔 팍팍하다.” 대부분의 이유는 집값 때문이다. 인기 유튜버로서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교사 G는 얼마 전에 아파트를 계약했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는 절대 집을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사 G는 ‘서울 집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에 동의한다. 교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서울 아파트를 사기에 가장 유리한 날은 오늘이기에, 오늘의 가격에 베팅을 하고 다양한 추가수익으로 이자를 내기로 했다. 광역시에 사는 교사 B 역시 전세를 사는 사이 두 배로 솟은 집값에 분통이 터졌다. 어느 날 충격은 현실로 다가왔다. 집을 살 돈이 없는데 이사를 가야 했다. 같은 전세자금으로는 더 이상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주거 환경을 바꿔야 했다. 돈 가치가 떨어진 것이 체감되었다. 그동안 자신은 뭘 했나 한탄스러웠다. 2015 공무원연금개정 당시 인사혁신처가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에 임용된 중등교사가 30년 재직할 경우 65세부터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월 146만 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온 최소 노후생활비에 관한 기사에서는 1인 가구의 적정 노후생활비는 164만 원이라고 했다. 그것도 질병이 없는 경우를 가정한 것인 데다 현재 50대 이상 중고령자의 의견이다. 정년보장과 연금은 내 젊은 날의 경제적 윤택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B는 그제야 절감했다. 그 뒤로 B는 재테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매일 경제신문을 보며 용어를 공부하고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무지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교사로서는 청렴하게, 그러나 자본주의를 사는 인간으로서는 내 능력껏 윤택하게 살 테다’고 B는 다짐했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FIRE족’ 교사도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게 가능할까? 유튜브 리치커플TV를 운영하는 리치커플은 초등교사 커플로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업로드한다. 이른 퇴직,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FIRE족은 리치커플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FIRE족은 밀레니얼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꿈이자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밀레니얼세대 누군가는 ‘인생은 한 번뿐이니 원 없이 즐기자!’며 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쳤다. 그 반대편에서는 ‘욜로 욜로’하다 골로 간다며 절약과 투자로 무장한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외쳤다. 2030교사들 사이에서도 FIRE족은 늘고 있다. 그들에게 경제적 자유란 단순히 돈이 많음을 뜻하지 않는다. 돈이 충분하면 내가 머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외부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안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해도 돈 걱정이 없는 상태. 그것이 경제적 자유다. 경제적 자유를 추구함, FIRE라는 말이 조기 퇴직과 경제적 독립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독립’이 자유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어쩌면 가장 독립적이기 힘든 직업이다. 국가라는 가장 큰 조직에 속한 공무원이고 가치적으로도 여러 미덕·교육이라는 특수한 업무에 매여있다. 본인이 놓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환경이다. 스스로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깨야 할 것이 많다. 그러니 교사 중에서도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은 어쩌면 돈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유연하고 적응에 능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는 자신들이 받는 월급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능력계발·겸직·투자·소비와관련하여 행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행한다. 가성비, 가심비와 합리성 2030 교사들은 가성비와 가심비를 따진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말한다.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성능이나 효과가 좋아야 한다는 의미다. 가심비는 가격 대비 심적 만족감을 말한다.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심적 만족도가 높아야 함을 말한다. 투자되는 비용이란 돈·시간·공간·체력, 그것이 아니었다면 누렸을지 모르는 어떤 기회까지. 모든 기회비용을 말한다. 2030 교사들에게 가성비와 가심비는 물건뿐만 아니라 행위에도 적용된다. 교직에서 하게 되는 여러 업무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보직교사수당 7만 원은 가혹하다. 조직에 있으니 안 할 수 없어 하긴 하나, 열과 성을 다해 희생하지는 않는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서 그 시간과 노력을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에 쏟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약아서가 아니다. 이미 사회가 그들이 가진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나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최대한 가성비·가심비 좋은 곳에 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성과급 지급체계는 등급으로 나뉘었으나 고려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다. 등급별 액수의 차이만큼 업무량이나 강도가 달랐다고 말할 수 없을 때도 많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나, 합당한 정도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오히려 보직의 성격과 업무 강도에 따라 이미 수당이 정해져 있다면 차라리 합리적이다. 그러나 수당 7만 원은 아니다. 부장을 달면 해야 할 일이 얼마이고, 쏟아야 할 시간이 얼마인데 고작 7만 원이냐고 그들은 묻는다. 7만 원은 귀한 돈이지만, 가심비를 생각하는 그들은 한 끼에도 7만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2030 교사들의 경제관념은 선배 세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돈 때문에 결혼·연애·출산·내 집마련·인간관계·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N포 세대’와 ‘아닌 세대’가 돈에 대해 인식하는 방향이 같을 수 없다. 2030 교사들에게 더 일을 시키고 싶다면 그들의 합리성에 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서로 모르는 관계인 동료 셋이 각각 동시에 부동산 공부를 하자고 제안해왔다니. 그 점에서 필자는 또래 교사들 사이에서도 적극적으로 경제적 부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분명히 느꼈다. 사명감과 청빈함은 교사의 미덕이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 정신적으로 고매하게 살면 된다는 인식은 2030 교사들에게 더 이상 현실적이지 못하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이용한다는 것이 청빈하지 못함이 아니며, 탐욕스러움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고정된 생업이 없으면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2030 교사들은 고정된 생업이 있어도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년 보장과 연금과 월급이 채워줄 수 없는 자본주의의 갭을 메꾸려 하는 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들은 그냥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
엄마, 달려요 (대만 산업재해피해자협회 지음, 천루이추 그림, 김신우 옮김, 시금치 펴냄, 48쪽, 1만3000원) 사고로 아빠가 떠나고 갑작스레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산업재해피해자와 가족들의 아픔과 희망을 그렸다. 어른들의 슬픔에 가려진 아이는 아빠의 부재와 먹구름 속에 갇힌 엄마를 보며 슬픔과 불안이라는 이중고를 겪지만, 엄마에게 함께 밝은 곳으로 달리자며 손을 내민다.
난 나쁜 친구야 (배다인 지음, 강홍주 그림, 토마토하우스 펴냄, 148쪽, 1만3000원)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중요한 존재인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그려 낸 단편 동화집. 어린 시절 또래친구들과의 갈등은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시련이다. 어린이들이 언젠가는 한 번쯤 겪을 법한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 갈 힌트를 5편의 단편에 담았다.
조선가인살롱 (신현수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216쪽, 1만3000원) 어느 날 갑자기 조선으로 타임 슬립한 21세기 소녀 체리가 현재로 되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미션을 수행하며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게 되는 이야기. 자신 없는 외모를 성형 화장으로 감추고 다니는 체리는 화장품 가게에서 갑자기 조선시대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외모 콤플렉스로 실어증에 걸린 효연공주의 말문을 열어야 21세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체리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비밀을 말할 시간 (구정인 지음, 창비 펴냄, 204쪽, 1만3000원) 중학생이 된 은서는 어린 시절 낯선 사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기억으로 괴로워한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갈수록 선명해지는 피해의 기억에 대해 홀로 고민하던 은서는 주변의 도움으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기까지의 과정이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우리들의 커튼콜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연극팀 지음, 마리북스 펴냄, 242쪽, 1만4000원) 어떤 실패나 성공도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놀이이자,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소통과 협력의 예술인 연극을 정식으로 처음 만나는 데 꼭 필요한 사항을 담은 연극 입문서. 1년여 동안 교사들과 학생들이 연극을 함께 알아가고, 보고 느끼고, 만들어나가는 실제 경험과 이야기를 담았다.
시민성의 공간과 지리교육 (조철기 지음, 푸른길 펴냄, 512쪽, 3만원) ‘시민성이 왜 지리적인가?’, ‘시민성이 왜 공간의 문제인가?’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책. 지리교육 역시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시민이 되는 것에 기여한다고 믿는 저자는 지리를 통한 시민성 교육의 목적과 가치 설정, 내용 선정과 조직, 교수 및 학습방법 등을 다루며 성숙한 시민을 위한 지리교육의 방향을 모색한다.
학교야, 체육하자 (김건우·김성민·나수진·장미라·최진기 지음, 에듀니티 펴냄, 376쪽, 1만8000원) 중등 체육교사 5명이 체육교사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학교체육의 본질과 방향을 다시 생각하며 짚어보는 책. 4부로 구성됐으며 1부와 2부에서는 체육교사가 된 과정과 체육교사로서의 성장기를 담았다. 3부와 4부는 학교체육의 필요성과 학생들의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위해 현장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 체육교사로서의 솔직한 마음을 풀어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김현수 지음, 덴스토리 펴냄, 232쪽, 1만5000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서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 단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미친 코로나의 영향을 미리 파악하고, 그들이 ‘떨어지기 전에 붙잡아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실공간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공간은 어디일까? 미국 건축가인 프라카쉬 나이르(2018: 61-82)의 Blueprint for Tomorrow: Redesigning School for Student-Centered Learning에서는 ‘복도’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복도는 교실과 함께 쌍을 이루어 공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형태가 이론 중심의 전통적인 학습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복도가 아이들이 교실에서 교실로 이동하는 통로 역할만 하고 있고, 이것은 아이들이 다양한 공간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스스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습과 공간의 경직성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 있다. “복도가 하루 종일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 사용되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학교는 전통적인 교실 디자인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마술처럼 20~30% 더 많은 사용 가능한 공간이 추가로 생기게 된다.” (p. 64) 필자는 학교공간의 면적 분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의 학교공간과 해외 학교공간의 면적을 비교해 보았는데, 학생 1인당 연면적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이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하여 그동안 방문했던 수많은 해외 우수학교들의 사진을 분석해 본 결과, 복도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글에서는 적용 가능한 수준의 대안들을 우수사례를 중심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복도를 ‘학습공간’으로 활용하기 첫째로 가장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복도는 학습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림 1의 학교는 설립된 지 약 100년이 된 독일의 학교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학생들이 복도에 블록매트를 깔고 학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은 복도공간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을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공한 것은 특별한 공간이 아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블록매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블록매트에 담겨진 학교 운영 철학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림 2는 이미 설치되어 있는 연결통로의 벤치에서 토론학습을 수행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그림 1과 다르게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복도에서 학습을 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복도를 효율적인 학습공간으로 재구조화하기 위해서는 복도를 학습공간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공간 재구조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복도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학습교구와 가구 배치하기 둘째, 복도에 오랜 시간 동안 머물 수 있도록 ‘학습교구와 가구 배치’를 실시해야 한다. 물론 앞서 제시한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가정 하에서 이다. 그림 3은 교실의 주출입구 앞 복도에 설치된 2인용 원형 테이블이다. 교실 내부에서 이론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학생들과 별개로 개별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그림 3과 같은 모습은 첫 번째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그림 4는 보다 적극적으로 복도공간을 소프트웨어학습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한 사례이다. 이와 같은 공간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모든 교과에서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 정보검색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교실과 복도공간을 연계하기 셋째로 수업시간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위하여 ‘교실과 복도공간을 연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림 5와 같이 최근 우리나라의 학교공간혁신사업에서 다양한 사례들이 보여 지고 있다. 그러나 그림 5와 같은 사례들은 교육과정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독립적인 학습공간을 확보하면서도 복도공간 활용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도록 그림 6과 같이 시야적으로 개방된 공간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복도공간은 학습공간이다 그림 7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반영한 ‘교실과 복도 융·복합 모형’이다. 복도공간에 조성된 학습공간들을 교실공간과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수업시간에도 복도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을 조성하며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닥과 천장의 마감 재료를 다른 복도공간 바닥 마감과 구별되도록 조성하여 ‘학습공간으로의 영역성’을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침실에서 취침 외에 독서·운동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것과 같이 복도가 반드시 통로로만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학교에서 학교공간혁신사업을 진행하면서 교실공간에 대한 이름은 정의하지만, 복도공간에 대한 이름을 부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복도공간에 대한 제한된 사고를 느낄 수 있다. 필자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실공간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하는 공간이 복도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공간에 대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인접한 공간이 복도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수업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활용의 변화는 수업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복도공간은 학습공간이다’라는 유연한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서양에 주식투자를 한다고 해서 ‘서학개미’입니다. 일본은 닌자개미라고, 미국은 로빈후드(주식거래 앱 이름이 Robinhood이다)라고 하더군요. 자본시장에 뛰어든 전 세계 개인투자자들의 흥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너는 취업하니? 나는 투자한다!” 뭐라도 하나 투자하고 계신지요? 포털에는 ‘주식투자 안 하면 가난해진다’는 카페가 생겨났고, ‘일주일 열공으로 차트 분석하기’ 사이트까지 등장했습니다(진짜 공부해서 주가를 예측할 수 있다면, 경제학자들이 큰돈을 벌어야지요). 그래서인지 주식투자 안 하면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은 시절입니다. 그런데 이 자본시장의 잔치에는 늘 패턴이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금리가 내리고, 유동성이 넘쳐나고, 그래서 특정 자산의 값이 오르고, 대중이 투자에 참여하고, 어떤 회사의 가치가 폭등하고, 더 많은 대중이 투자에 동참하고, 시장이 흥분하고, 그리고 위기가 찾아옵니다. 수많은 대중이 공포에 잠기고 어렵게 번 돈을 잃습니다. 언론의 반성이 이어지고, 정부는 제도를 개선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또 똑같은 드라마가 반복됩니다. 14세기 베니스에서는 채권투기가 성행했습니다. 1351년 정부는 채권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루머를 단속하는 법을 제정합니다. 물론 그 채권의 상당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투자와 흥분 그리고 위기의 역사는 시장경제의 역사입니다. #01 _ 정말 시대는 바뀌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믿는 것일까? 1999년, 그때도 미국연방준비은행(연준 Fed)은 돈을 참 많이 풀었습니다. 아시아 경제위기 여파를 뚫어야 했고, 무엇보다 인터넷(www)이 등장했습니다. 인터넷이 한 방울만 튀어도 기업의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테슬라 주가가 10배가 올랐다는데, 그때 퀄컴은 2,500%가 올랐습니다. 1999년 한해 미 증시엔 547개사가 상장열풍에 올라탔습니다. 지난해 미 증시엔 480개 기업이 새로 상장됐습니다. 참 많은 부분이 ‘데자뷔’입니다. 빚내서 하는 주식투자도(미국의 신용거래 잔고는 800조에 육박합니다. 2020년 11월), 버핏지수도(GDP대비 시가총액), 주가이익비율(PER)이 불안불안 한 것도 닮았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최선봉에 선 것도 똑같습니다. 가장 큰 공통점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실제 2000년 이후 굴뚝산업은 온라인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거대기업이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2000년 3월 주가는 폭락합니다. 미국 증시의 40%, 시총 8조 달러가 날아갔습니다. 그때 미 증시를 상징하던 야후(Yahoo)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말 전 세계 증시는 테슬라가 SP지수에 편입된다고 축배를 들었습니다. 야후도 99년 SP에 편입됐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20년이 지나 우리는 또 시대가 바뀌고 있다고 믿습니다. 주차장엔 전기차가 등장했고, 식당도 호텔도 죄다 앱으로 찾습니다(에어비앤비의 시가총액이 힐튼과 메리어트를 합친 것보다 훨씬 높다). 지난 분기 미국에선 모델 3가 ‘캠리’를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린 세단이 됐습니다. “석유로 가는 차, 너는 이제 끝이야!” #02 _ 가장 늦게 흥분한 사람이 자본의 제물이 된다 2001년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뉴욕이 공격당합니다.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연준(fed)은 기준금리를 1%까지 끌어내립니다. 돈이 다시 빠르게 풀렸습니다. 그러자 랠리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에너지 가격부터 홍콩의 그림시장까지. 이머징 마켓에 불이 붙고, 미국의 주택시장은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 불은 2006년에야 겨우 불길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얼어붙었습니다. 금융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우지수는 순식간에 다시 반 토막이 났습니다.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자산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집값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7년 연속 집값이 내렸습니다. 그때 ‘하우스푸어’ 사태로 손실을 본 수많은 한국의 집주인들이 책임을 따진다면 결국 그린스펀이나 아니면 오사마 빈라덴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자산시장은 이렇게 복잡하게 외부변수에 얽혀있고, 시장은 그래서 예측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니 자산시장의 내일을 전망하는 것은, 에라토스테네스가 막대기 하나 세워 지구 크기를 측정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특히 가격예측은 거의 점성술사의 영역입니다. 가격에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유 없이 계속 변합니다. 그러니 오직 분명한 건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시장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껍데기’라는 것과 이 잔치가 끝나고 겨울이 찾아오면 가장 늦게 흥분한 사람들이 자본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03 _ 나도 쉽게 돈 버는 행렬에 함께하고 싶다 이 패턴은 너무 비슷해서 어느 시대의 자산거품이나 위기에 대입해도 거의 일치합니다. 새로운 산업군이 등장하고, 특정 자산에 사람이 몰리고, 큰 수익이 나고, 지나는 사람들이 이를 부러워하고, 새 시대에 대한 거대한 믿음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이 투자에 뛰어들고, 자산가치는 폭등하고, 그리고 위기가 찾아오고, 언론은 어리석은 시장참여자들을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상처가 겨우 치유될 무렵 우리는 그것을 또 잊어버립니다. 최근 버블을 우려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바클레이즈의 한 애널리스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위대한 마에스트로가 지휘합니다. 거장이 멈출 때까지 연주는 계속될 것입니다.” 연준(Fed/제롬 파월)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계속된다면 이 랠리는 계속 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에도 ‘마에스트로’로 불리던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의장(Alan Greenspan)은 1987년 블랙먼데이부터 아시아 금융위기를 잘 극복했습니다. 1999년 2월 뉴욕타임스 커버에는 ‘지구를 살린’ 영웅으로 그린스펀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수백만 채의 주택이 압류됩니다. 집을 잃은 미국인들이 ‘내가 망한 이유’로 그린스펀을 지목합니다. 미국의 주택위기는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집니다. 저금리와 유동성, 재정확대, 새로운 산업의 출현, 대중의 광기와 자산시장의 급등, 그리고 ‘나도 저 쉽게 돈 버는 행렬에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되풀이됐습니다. 2009년 새해, 뉴욕타임스는 위기를 불러온 주범(원인) 12명(가지)을 꼽았습니다. 그 위기를 불러온 두 번째 주범으로 뉴욕타임스는 ‘그린스펀’을 지목했습니다. 10여 년 전에 자신들이 ‘지구를 구했다’고 표지에 실었던, 바로 그 사나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뭘 잘 잊어버립니다.
제주도에 도착해 공항을 나서면서부터 육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따뜻한 휴양지 분위기가 확 끼쳐오는데, 공항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상록수 후박나무와 야자수들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는 우선 육지, 특히 서울 등 중부지방과는 가로수부터 다르다. 상록 가로수가 많은데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여서 제주도의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데 한몫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들이 있을까. ‘제주시 가로수 식재 현황’을 보면, 가장 많은 가로수가 왕벚나무(28.6%)다. 이건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과 비슷하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심은 가로수가 왕벚나무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제주시 가로수로 심은 왕벚나무는 유전적으로 제주 자생 왕벚나무와는 다른 종자(일본 원산의 왕벚나무)인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시는 점차 이 왕벚나무를 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로 바꿔가기로 했다. 왕벚나무 다음부터는 제주만의 독특한 분포를 보인다. 2위 후박나무(14.0%), 3위는 먼나무(10.8%)다. 둘 다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상록수 나무들이다. 4위는 배롱나무(8.0%), 5위는 해송(곰솔 6.2%), 6위는 구실잣밤나무(5.4%), 7위는 느티나무(5.0%), 8위는 담팔수(4.7%), 9위는 녹나무(4.0%), 10위는 워싱턴야자(2.8%) 순이다. 남부 수종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름조차 낯선 나무들이 많다. 제주도 분위기 끌어올려주는 후박나무 우선 후박나무는 제주도 분위기를 내는데 1등 공신이다. 제주도에서 보면 줄기가 노란빛을 띠는 회색으로 밝은 편이면서 굵고 튼실하게 올라가는 상록수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나무가 후박나무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가지를 우산 모양으로 넓게 펼치는 웅장한 수형을 가졌다. 15~20m까지 자란다. 제주공항 출입문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나무 중에서 야자수를 제외한 나무 상당수가 후박나무다. 후박이라는 이름은 잎과 나무껍질이 두텁다는 뜻의 후박(厚朴)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일부에서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라고 부르는데, 자생종 후박나무가 있으니 일본목련은 그냥 일본목련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도 2000년대 들어 상록수인 후박나무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5년 후박나무가 부산 가로수 순위 5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낙동강변 후박나무는 한겨울 건조한 강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집단 고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박나무 숫자는 계속 줄어 요즘은 8위로까지 밀려나 있다. 부산은 제주도와는 또 다른 기후를 보이는 것이다. 빨간 열매 달린 이 나무는 ‘먼나무’ 겨울에 제주도에 가면 꽃이 핀 것처럼 붉은 열매가 잔뜩 달린 가로수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게 무슨 나무냐?”고 물어보면 “먼나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5~6월에 꽃이 피고 가을과 겨울에 달려 있는 빨간 열매도 보기 좋아 최근 제주도에서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와 남해안에 자생하는 나무다. 꽃과 열매가 없을 때는 잎 가운데가 살짝 접혀 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주시 관계자는 “먼나무에 대한 반응이 좋아 요즘 가로수 심을 곳이 있으면 먼나무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나무는 2015년만 해도 2,000여 그루에 불과했는데 벌써 4,446그루(2019년 말 현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같은 속도라면 조만간 후박나무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구실잣밤나무도 제주도의 독특한 가로수 중 하나다. 봄에 제주도에 가면 가로수나 공원·화단 나무 중에서 노란색으로 밤나무꽃 비슷한 꽃이 피는 상록수를 볼 수 있는데 이 나무가 구실잣밤나무다. 비릿하게 나는 냄새도 밤꽃 냄새와 비슷하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아주 두껍고 질기다. 겨울에 이 나무 아래에 가면 잣 모양의 작은 도토리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담팔수는 국내에선 제주에서만 자라는 나무다. 제주도가 북방한계선인 나무로, 나무 형태가 우산 모양으로 아름답다. 이 나무는 상록성이면서도 일 년 내내 붉은 단풍잎 몇 개씩을 꼭 달고 있어서 다른 나무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담팔수(膽八樹)라는 이름은 중국 이름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잎 8개 중 하나 정도는 붉은 단풍이 들어서 담팔수라고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녹나무도 제주도에서 자라는 상록활엽수다. 키 40m, 밑동 둘레가 4m 넘게까지 자라는, 매우 덩치가 크게 자라는 나무 중 하나다. 현재 제주도 가로수의 4% 정도를 차지하는데, 나무껍질이 회갈색이고 세로로 갈라지는 나무가 있으면 녹나무라고 봐도 무방하다. 4~6월 연한 녹색의 꽃이 피어서 가을에 지름 1㎝ 정도인 둥글고 까만 열매가 달린다. 녹나무라는 이름은 어린나무의 줄기가 녹색을 띠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서만 자라지만 일본·중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 녹나무의 파수꾼이란 제목의 소설이 있다. 따뜻한 휴양지 분위기를 내는데 야자수만 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주시는 도심에 있는 워싱턴야자를 다른 나무로 교체해 가고 있다. 왜 그럴까. 이 나무가 10m 가까이 높게 자라 태풍 때 쓰러지면서 각종 안전사고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키 때문에 전선과 뒤엉켜 정전 사고도 자주 일으키고 있다. 다만 제주시는 제주의 관문인 공항로와 유명 관광지인 함덕해수욕장 일대 워싱턴야자는 제거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했다. ‘돈’과는 아무 상관없는 동글동글 돈나무 10위권 가로수 명단에는 없지만, 돈나무도 제주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 중 하나다. 큰길 중앙에 있는 화단에 가로수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줄기의 밑동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지면서 마치 전정을 해놓은 듯 둥글게 자란다. 잎이 주걱같이 생겼는데, 윤기가 나고 동글동글 뒤로 말린 채 모여 달린다. 제주도 등 따뜻한 남쪽 바닷가에 주로 분포한다. 돈나무라는 이름은 우리가 쓰는 ‘돈’과는 무관하다. 가을·겨울 열매에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묻어 있어서 온갖 곤충이, 특히 파리가 많이 찾아와서 똥낭이라 부르다 ‘돈나무’로 순화됐다고 한다. 요즘 큰 구슬 같은 열매 사이로 작고 붉은 종자들이 가득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후박나무·먼나무·구실잣밤나무·담팔수·녹나무·돈나무 등 몇 가지 상록 가로수만 기억해 두어도 제주도에 갔을 때 눈이 한결 밝아질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취업시장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특히 특성화고는 그 충격이 더 커 근래 들어 가장 낮은 취업률을 기록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올 정도다. 그 어느 때보다 슬기로운 취업전략이 필요한 지금, 지방의 한 특성화고등학교가 무려 65%에 이르는 높은 취업률과 함께 공기업 등에 학생들을 대거 취업시켜 주목받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948년 개교 이래 대전지역 명문 특성화고로 우뚝 선 대전여자상업고등학교(대전여상)이다. 훌륭한 인성·우수한 학력·뛰어난 직무능력을 고루 갖춘 전문인력양성을 목표로 지난 70여 년간 한결같은 길을 걸어온 대전여상의 저력은 코로나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차별화된 커리큘럼으로 높은 취업률 달성 대전여상은 올 1월 8일 현재 취업희망자 187명 중 122명을 취업시키며, 재학생 취업률 65.2%를 기록했다. 2월 중에는 지난해 취업률 79%를 넘어설 것이라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취업이 확정된 3학년 학생 중에는 한국전력기술·국가철도공단·국립공원공단·국민건강보험공단·한국국제협력단·KDB산업은행 등의 공공기관과 국가직 9급 공무원 등이 15명으로 취업자의 12.3%를 차지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금융업 및 사무직으로 취업했다. 비결이 뭘까? 우선 대전여상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 기술인재부분 대통령 단체표창을 지난 2011년과 2017년 두 차례 수상했다. 이어 취업기능강화 최우수학교로 6년 연속(2011년~2016년)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대전광역시 학교평가 최우수학교로 5년 연속 선정되어 교육감 표창을 수상한 기록을 갖고 있다. 자신의 직업적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성장시킬 수 있는 인재양성이라는 큰 비전 아래, 최고의 업무능력과 인성을 겸비한 창의적인 전문인재 육성을 위한 차별화된 커리큘럼 운영이 원동력이 됐다. 또 하나. 기초가 튼튼한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학년별 직업기초능력강화교육, 전문인을 키우기 위한 직무능력교육, 예비 사회인을 위한 맞춤식 취업지원교육과 3학년 취업준비를 위한 학년별·단계별 맞춤형 진로교육,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실천하는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공공기관 취업 집중 공략 ... 대거 합격 쾌거 대전여상에는 정부 및 공공기관 행정사무원, 총무 및 경영지원사무원, 회계·경리·세무·창구사무원 등을 양성하는 ‘회계융합행정과’와 IT 및 OA 기기활용을 기본으로 일반기업 및 공공기관·금융기관 등에서 회계·인사·총무·비서·세무·사무 행정·IT 사무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IT사무행정과’가 있다. ‘회계융합행정과’는 회계 및 경영관련 사무·행정 쪽으로 전문화되어 있고, ‘IT사무행정과’는 일반사무와 행정을 위해 IT 및 OA 기기 활용에 전문화 되어있다. 두 학과 모두 회계를 기본으로 사무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1학년 때는 진로적성검사·진로상담, 진로포트폴리오작성, 직업체험 및 진로탐색스쿨, 직업인 특강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양한 진로탐색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2학년 때는 산업체 현장체험 및 직무체험, 직업박람회 체험, 미래 비전작성, 비전설계스쿨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각자의 비전을 수립하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한다. 3학년 때는 전문화되고 체계적인 취업준비교육이 이뤄진다. 교내 모의면접대회, 이력서·자기소개서 발표대회, 취업포트폴리오 발표대회, 취업 전 사전교육 이수, 산학맞춤반 운영, 기업체 현장실습 참여 등을 운영한다. 교육과정은 크게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교과에서 직업기초능력과 인성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지도하고 있으며, 전공교과에서는 직무능력과 관련한 기본원리 위주의 교육을 진행하고, 방과후학교와 무료로 진행되는 다양한 자격증 취득 특강과정, 전공 심화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직무관련 실무능력교육을 진행하고, 금융·증권을 비롯한 고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2020년 2월 졸업생 자격증 취득률은 921%로 1인당 평균 9.2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2021년 1월 현재 3학년 재학생의 자격증 취득률은 1001%로 1인당 평균 10개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각없는 성실한 학생들 ... 선취업 후진학도 활발 이와 함께 대전여상은 진로교육을 통해 선취업 후 평생학습을 강조하고 있으며, 개개인의 중장기적인 성장 경로 설정과 비전 수립을 중요하게 지도한다. 실제로 대전여상 졸업생 중 상당수가 취업 후 대전지역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하여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경희대·중앙대·한양대·서울시립대 등 서울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졸업생도 해마다 10여 명 이상이다. 대전여상을 졸업하고 ‘신용보증기금’에 취업하여 직장생활을 하며 ‘재직자특별전형’을 통해 경희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수연(2014년 2월 졸업) 씨는 “학교 교육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고 학과공부에 충실했던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을 있게 한 것 같아 늘 대전여상에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력과 함께 인성을 갖춘 인재양성이야말로 대전여상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다. 실제 학교생활은 인성교육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시간 엄수를 기본으로 질서교육과 예절교육이라는 인성교육 로드맵 아래 전체 교사가 인성교육에 매진하여 전국에서도 모범이 되는 인성을 자랑한다. 교정을 걷다 마주치는 학생들이 한결같이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것도 몸에 밴 인성교육 결과다. 졸업생이건 재학생이건 대전여상의 특징을 물으면 주저 없이 3무(無)를 꼽는다. 첫째는 지각생이다. 전교생이 8시 이전에 등교하여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둘째는 교복을 짧게 줄여 입거나 화장·파마·염색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 셋째는 교내에서 흡연하는 학생도 없다. 지각생이 없고, 늘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학생들 자체가 대전여상의 큰 자랑거리이며 직업기초능력 및 직무능력 강화교육, 차별화된 맞춤식교육으로 미래지향적이며 창의적인 전문능력을 길러주고 있는 대전여상은 자타가 공인하는 취업명문 특성화고등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중택 대전여상 교장직무대행 취업 잘하는 비결요? …“인사가 만사죠” 코로나19 여파로 취업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대전여상은 여전히 호황이다. 그 어렵다는 공무원과 공기업·금융권에 대거 합격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중택 교장직무대행은 열심히 공부하고 따라준 학생과 헌신과 희생으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한 교사들에게 공을 돌렸다. 흔한 지각 한번 안 하는 학생들, 언제 어디서건 공손하고 바른 인사로 대전여성의 전통을 이어준 학생들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올해 교직 35년 차인 그는 취업 잘하는 비결을 묻자 “인사가 만사”라고 답했다. 대전여상 학생들은 정말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로 인사를 잘한다는 것이다. 각종 예절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바른 인사성을 갖도록 각별한 신경을 쓴 때문이다. 인성만 뛰어난 게 아니다. 실력도 으뜸이다. 학생들 자격증 보유현황만 봐도 한눈에 들어온다. 조교장은 학생 1인당 평균 9개 정도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3년 동안 23개 자격증을 딴 학생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원모집에 깐깐한 기업들도 대전여상을 선호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명문이란 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러 온다. 학교를 둘러본 이들은 한결같이 부럽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조 교장은 72년 이어온 전통과 명예를 지키려는 학생들의 자부심이 만든 결과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성공은 최고의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방학도 포기한 채 매일 밤 9시가 넘도록 학생들과 함께하는 교사들. 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대전여상은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을지 모른다. 조 교장의 바람은 오직 하나. 모든 학생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 자신의 꿈을 피워가는 것이다. 그래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자리, 텅 빈 교실. 3월엔 그곳에 아이들의 재잘대는 웃음소리 가득할 수 있을까.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학생의 소중함이 그 어느 때 보다 소중했던 나날을 보내고 새 날을 기다린다. 아이들 맞을 준비에 벌써부터 설렌다는 선생님들. 새교육이 마련한 신춘 좌담회에 참석한 선생님들은 “봄꽃처럼 교문이 활짝 열리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년 끈끈한 동지애로 코로나를 견뎌온 선생님들을 초대, 새학기를 맞는 희망과 교육에 대한 바람, 그리고 마음속 깊이 간직한 다짐을 들어봤다. 언택트 방식으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김복화 수원율천고 교감, 김여름 안양부흥초 교사, 박경아 수원청천중 수석교사, 한민철 제주도련초 교사(가나다순) 등이 함께했다. 작년 1년 코로나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김복화 _ 당황스러웠죠. 갑자기 들이닥친 일이다 보니 원격수업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갖춰지질 않아 답답했습니다. 지금이야 쌍방향수업도 이뤄지고 어느 정도 안정됐지만, 당시를 생각하며 지금도 아찔합니다. 김여름 _ 개학을 앞두고 교실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갑자기 원격수업으로 전환하려니 처음엔 무척 힘들었죠. 학생들 중에는 수업에 필요한 디지털 기기를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저작권 문제도 어떻게 되는지 몰라 걱정이 많았고요. 그래도 학년말 즈음에는 원격으로 학급학예회를 열 정도로 발전해 나름 뿌듯했습니다. 한민철 _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한편으로 학교와 교사의 역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감염병 위기 속에서 원격교육 방법론에만 치중 하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학교와 교사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 것이죠. 교문이 닫히자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학교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박경아 _ 저는 새로운 것을 배우며 도전하고 성장했던 한해로 기억하고 싶어요. 원격수업에 필요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기기들을 익히기 위해 수많은 자료와 동영상들을 찾아보며 공부해야 했고, 빠르게 익히지 못함에 능력 부족을 깨닫고 좌절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기쁨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전면 원격수업은 우리에게 ‘학력 양극화’라는 과제를 던져줬습니다. 학생들 학업성취도가 떨어지고 학력 중간층이 사라졌다고들 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보는지요. 김복화 _ 상위권 학생들은 큰 걱정이 없습니다만 중하위권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시간이나 양이 부족해 학력격차가 발생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여름 _ 교실수업에서는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게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했는데 원격수업은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학력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또 예년보다 적은 수업일수와 수행평가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현실적인 여건도 무시할 수 없죠. 한민철 _ 학생 개개인의 교육환경 차이가 학습격차를 벌리는데 큰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가정에서 돌봄이 가능한지, 또 원격학습 기기 등이 잘 갖춰져 있는지 등에 따라 학습능력을 달라진 거죠. 선생님이 하는 수업을 노트북으로 공부하는 학생과 스마트폰으로 하는 학생과는 학습의 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원격수업 이후 교직문화도 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김여름 _ 교육현장에 공유하고 연구하는 문화가 빠르게 정착됐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고 싶어요. 온라인시스템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선배교사들에게 후배들이 도움을 주고 반대로 선배교사들은 그들의 수업노하우를 알려주는 등 협력과 공유의 분위기가 조성됐죠. 또 처음 해 보는 원격수업이다 보니 콘텐츠를 제작하고 업로드하는 것부터 효과적인 수업방법을 찾아가는 것까지 모든 교사가 서로 배우고 연구하며 1년을 보냈습니다. 박경아 _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교사들은 원격수업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기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배우고 익혔죠. 수시로 만나 등교수업과 원격수업의 변동 상황에 맞게 조정했고요. 이런 점에서 2020년은 ‘전문적 학습공동체’ 활동이 가장 실제적이고 원활하게 이루어진 해라고 할 것입니다. 한민철 _ 불필요한 공문이 많이 줄어들고, 예전엔 반드시 해야만 했던 학교행사들이 많이 폐지되거나 선택사항이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그 바람에 학교는 교육본질에 충실할 수 있었고요. 아울러 자유롭게 수업내용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등 수평적 교직문화가 만들어진 것도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올해부터 2022 교육과정개정이 본격 추진됩니다. 새 교육과정에 꼭 반영됐으면 하는 게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김복화 _ 고교학점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는 교실환경이나 교원 수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한 명의 교사가 2~3개 과목을 수업하다 보면 교육의 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요. 학급당 학생수 감축과 함께 교사 1인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이 시급합니다. 한민철 _ 2015 교육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역량이란 개념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 추상적이어서 수업에 반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2022 개정에서는 역량 담론에 좀 더 구체적으로 수행의 의미를 담아 개념을 풀어서 정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박경아 _ 기본개념학습이 충실하게 반영되고, 원격수업과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이 있었습니다만 교육과정에 제시된 ‘성취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진술된 경우가 많아 학교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성취기준이 제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여름 _ 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꼽고 싶어요. 학생들 중에는 인터넷 검색조차 서툰 아이들이 많습니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수용능력을 갖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콘텐츠 검색능력이나 생산능력을 기르는 교육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육공무직을 교직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학교구성원이니 만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학교판 인국공 사태’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선생님들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복화 _ 교육공무직 법제화는 양면성이 있어요. 안정적인 근무환경을 제공한다는 면에서는 법제화가 필요하지만, 무조건 교직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여름 _ 저도 반대에요. 고용불안 해소는 필요한 일이지만 공무직을 법제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교육공무직과 공무원은 과정이 달라요. 공무직은 학교마다 각자의 기준으로 선발, 단기계약직인 반면 교직원은 임용시험이란 절차를 거쳐 임용됩니다. 과정이 다른데 어떻게 결과가 같을 수 있겠어요. 올해는 교원승진제도 전반에 걸쳐 변화가 예상됩니다. 승진의 조건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한민철 _ ‘교육과정 리더십’이 첫 번째 덕목 아닐까요. 관리자는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교사가 교육과정을 원활히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교사가 승진하는 목적은 개인의 명예나 영달이 아니라 교육과정에 대한 경험과 지식으로 학교교육을 정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있으니까요. 김여름 _ 교직 7년 차라 아직 승진에 깊은 생각을 해보진 않았습니다. 다만 굳이 꼽는다면 인화력이 제일 중요한 가치로 꼽고 싶어요. 학교는 많은 사람이 모여 활동하는 조직이다 보니 부딪힘이 없을 수 없죠. 그럴 때 갈등을 조정하고 하나로 묶는, 그래서 학교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역량 즉, 인화력에 비중을 뒀으면 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먼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박경아 _ ‘스승다운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스승’이라는 의미를 오롯이 지닌, ‘스승’이라고 칭함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답다’에 담긴 의미처럼 스승의 특성이나 자격을 가진 그런 선생님이고 싶습니다. 학생들이나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 저를 떠올릴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선생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김복화 _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동료교사들과 즐겁게 생활하는 교사, 한 가지라도 배울 점이 있는 교사로 남고 싶습니다. 김여름 _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선생님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매년 한 가지씩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도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그래서 원격연수 MC도 보고, 어학시험에 응시하고, 독립영화에도 출연해 봤습니다. 먼 훗날 아이들이 어떤 도전에 직면했을 때 저와 함께했던 1년이 작은 스파크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민철 _ 전 솔직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제가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제가 학급의 주인공이 돼 버린 것 같은 인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우리 반 아이들이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관계설정을 해주는 그런 교사라면 만족합니다. 이제 3월이면 새학기가 시작됩니다. 올해는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인데 선생님들은 더 간절할 것 같습니다. 한민철 _ 지난해는 원격수업 토대를 갖추는 한 해였다면 올해는 학생들의 교육격차를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의미있고 실질적인 수업설계를 통해 진정한 개별화 교육이 가능하도록 있는 힘껏 노력해야겠죠. 박경아 _ 전 인성교육을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친구 같은 부모, 친구 같은 선생님’을 표방하면서 예절교육은 권위적이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게다가 학생인권이 강조되면서 학생들을 지도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졌습니다. 새해에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력하고 함께 나누는 그런 바른 인성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여름 _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 때문에 학생들과 제대로 웃고 뛰어놀지 못한 채 1년을 보냈습니다. 당장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학생들이 웃으며 학교에 오는 날이 있겠죠. 그날이 오면 학교를 그리워했을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듬뿍 안겨주고 싶습니다. 김복화 _ 2020년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코로나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더 많이 준비라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습니다. 대한민국 교사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민주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 자유와 평등이 원칙입니다. 평등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는 것입니다.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조사에 의하면 청년 실업률은 8.1%, 청년 실업자는 33만 1천 명이고, 전체 취업준비생 71만 400명 중 공무원시험 준비생은 21만 9천 명이라고 합니다. 통계를 보면 요즘 청년들의 직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고용절벽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과연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년들이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을지도 의문입니다. 작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희망을 박탈한 사건이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사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인국공 사건’입니다. 애써 밤낮을 지새우며 몇 년 동안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희망을 앗아 갔습니다. 일자리가 공채가 아닌 특채로 사라졌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기회마저 사라져 청년들은 공황상태가 왔습니다.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회자됩니다. 제2의 인국공 사태, 경남교육청의 방과후실무사 공무직채용 공고 경남교육청의 방과후실무사 공무직채용 공고가 제2의 인국공 사태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방과후교사의 업무를 도와주기 위해 봉사하는 방과후자원봉사자(주 15시간 시간제근로자)를 공채가 아닌 단지 면접으로 방과후실무사 공무직(주 40시간 정규직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 정의 관점에서 볼 때 정당한 자기 몫을 특정한 사람이 차지하고, 교육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여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과 공채 준비 수험생들의 일자리를 박탈하는, ‘제2의 인국공 사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남교육청의 심사 일정과 면접관을 보면 자격 검증이 제대로 될지 지극히 의문스럽습니다. 세 명의 면접관이 하루에 300여 명을 면접하여 옥석을 구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공지능 면접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경남도교육청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교육주체인 학생·교사(교육행정직 포함)·학부모의 여론 수렴은 물론 전문가와 토론·공청회를 거쳐 사회적 합의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운 좋으면 취직되는 형태는 공정이 아닌 불공정입니다. 공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공공기관인 경남교육청은 반드시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공정한 공무직채용을 위해 분야별 서류심사·필기시험·면접 등 채용지침을 만들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보편적 채용기준이 마련되면 각 시·군교육청에 채용 담당자연수를 시행하고, 도시와 농어촌 실정에 맞는 사람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해당 시·군교육청에 위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것입니다. 공무직과 교직원, 노노갈등 각축장이 된 학교현장 아울러 지난해 12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교육공무직을 학교에 두는 직원에 포함’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역시 ‘현장 정서를 외면한 것’이라는 지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교육공무직은 시·도조례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 법적으로 충분한 보호를 받고 지위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공무직은 공무원이 아니기에 노동삼권을 가진 단체로 법제화한다면 교육현장에 혼란만 가중될 것입니다. 교육공무직은 이미 노동삼권을 가지고 집회와 시위의 실력행사를 할 만큼 정치세력화되었습니다. 자기들의 권익을 위하여 교직원과 한창 성장해야 할 어린 학생들의 급식까지 볼모로 파업을 강행합니다. 이제 학교현장은 업무를 두고 공무직과 교직원 노조사이의 갈등이 자주 발생하여 노노갈등의 각축장이 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들어와 학교는 혼란의 와중에 있습니다. 공무직을 「초·중등교육법」에 교직원으로 포함하는 법제화보다 공정한 채용을 위한 법제화가 더 시급해 보입니다.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제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책무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공무직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는 실마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공무직채용이 단순한 노무직 일자리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영역에서 역할과 존재가치를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공무직은 능력과 직무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누가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 업무표준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무직과 공무원은 서로의 지위와 권익을 요구하며 다투게 됩니다. 학교현장은 가끔 중재자 없는 약육강식의 난장판이 됩니다. 공무직의 채용과정에서 공채가 아닌 특채인 경우가 많았기에 업무능력이 검증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직 제구실을 찾지 못한 공무직이 많습니다. 공무원의 업무경감을 위해 공무직을 채용하였으나 기대만큼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공무원인 교사와 교육행정직 업무가 가중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무직을 채용할 때에는 직무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국가 단위의 직무능력표준 시험제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채용과정에서부터 확실히 구별되는 교직원과 공무직 그리고 공무직과 달리 교원과 6급 이하 공무원은 단체행동권 없이 단결권·단체교섭권만 보장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무원의 단체행동권과 대학교수처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법 개정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감과 단체교섭에서 여러 교섭단체가 같은 직장에서 담당업무를 가지고 다투는 노노갈등이 발생했을 때, 단체행동권이 있는 공무직이 공무원보다 실력행사를 하는데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공무직과 공무원의 형평성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힘없는 교직원이 단체행동권으로 목소리 높여 외치는 이익단체인 공무직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또한 교직원과 공무직은 채용과정에서부터 확실한 구별이 됩니다. 교사는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고, 행정직원은 국가가 시행하는 공개선발시험을 거쳐 공무원으로 임용됩니다. 이에 반하여 교육공무직원의 선발 및 채용은 국가가 시행하는 공채시험이 없고, 각 지자체나 교육청에서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는 지인과 인맥을 통해 학교장이 학부모나 인근에 거주하는 졸업생이나 주민을 채용하여 일하게 된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그들이 현재 교육공무직으로 전환되어 무기계약직으로 직업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육공무원직을 선발하는 기준·시험·노력의 정도·경쟁률은 9급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도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교직원은 권한과 책임, 업무 스트레스가 매우 큰 데 비하여 공무직 업무는 대부분 보조역할이라서 권한과 책임 등 업무강도가 매우 낮습니다. 또한 공무직은 주로 단순 노무직이 많아 짧은 기간의 교육만으로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있으며 필수 요원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학교 안에서 함께 일 한다고 모두 같은 교직원은 아니다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일도 없는데 자리를 만들어 정규직으로 채용해서는 안 됩니다. 교원의 경우 기간제교사의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교사는 정원이 부족해도 교사를 채용하지 않으면서 공무직은 없는 자리도 만들어 채용을 늘리고 법제화까지 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앞으로 학생들이 줄어들 것이 뻔한데 정규직 공무직을 많이 뽑아 놓으면 나중에 누가 함부로 자를 수 있겠습니까. 이 정부가 인기를 위해 선심을 쓰고 나면 나중에 뒷일은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국가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위정자의 권력남용으로 정말 분별없는 짓입니다. 교육공무원과 공무직은 임용 과정, 하는 일, 권한과 책임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학교 안에서 함께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교직원으로 법적 지위에 포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원과 공무원은 책무에 따른 고유영역이 다름에도 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육보다 표만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한 입법행위에 멍들어가는 교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코로나 위기는 교육의 위기다. 지난 1년, 교육을 지배했던 전통적 시스템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엉겁결에 앞당겨진 원격수업과 언택트 교육은 이제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지난해는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용납됐던 부분이 이제는 더 이상 ‘양해’를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불청객 코로나가 몰고 온 교육의 변화와 과제. 교육계는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대한민국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히는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사진)는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학은 파산하고, 공부는 종말의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교육에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올 것이라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 인간의 뇌와 컴퓨터의 협업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대학의 위기에 주목했다. 앞으로 파산하는 대학들이 속출하고 학위보다는 자격증을 선호하는 시대가 닥칠 것으로 예측했다. 포스트 코로나시대, 교육환경을 어떻게 달라지고, 교육구성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대학이 사면초가다. 학령인구는 줄고 일부 대학을 제외하곤 미달사태를 빚는다. 대학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가. “가장 큰 문제는 대학에서 배운 내용 중 직장에서 활용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대학은 자신이 아는 것만 가르친다. 그들은 편의성 때문에 교과과정도 잘 바꾸지 않는다. 오늘날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실제로 전 세계 지식의 양은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하고 있다. 등록금 상환이 끝나기도 전에 대학교육이 유용성과 필요성을 잃는다는 점이 문제다. 때문에 기업은 실무현장에 적용하는데 관련성이 낮은 졸업장보다는 문제를 감지하고 분석하는 능력, 상황을 설명하는 능력, 팀 플레이어가 되는 능력, 그리고 재택근무 환경에서 동기가 높은지 등을 살핀다. 즉, 학위보다 적시학습기술을 가진 사람을 고용하려는 트렌드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학위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는데 같은 맥락인가. “구글(Google)과 MS와 같은 대기업들이 ‘대학졸업장은 더 이상 필요 없고, 기술인증서만 필요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기술인증서를 학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취급한다고 발표했다. 구글의 기업업무 담당수석 부사장 켄트 워커(Kent Walker)는 트위터를 통해 “직원 채용 시 이 새로운 경력인증서를 4년제 대학학위와 동일하게 취급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직 단정하기 이르지만 경향성은 뚜렷하다.” 10년 내 미국 대학의 절반이 파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원격수업이 실시되면서 미국 내 대학들은 수업료를 70~80% 삭감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하버드·예일·스탠퍼드 등 상징적인 일류대학은 살아남겠지만 나머지 대학들은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위기를 맞을 것이다. 4,200여 개 대학 중 중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표준학위를 판매하는 대학들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 명성의 교수나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백, 수천 명을 대상으로 강좌를 개설하는 온라인대학, 거의 무료인 MOOC 대학들의 등장으로 공룡 유통기업이 파산하듯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블룸버그(Bloomberg) 보고서에 따르면 하버드는 이미 4억 1,500만 달러의 매출 감소를 겪고 있으며 올해는 7억 1,500만 달러의 감소가 예상된다고 했다.” 한국 대학에서도 온라인수업이 장기화되자 학생들이 등록금 반환 시위를 벌였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대학생들은 값비싼 금액을 학비로 지불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온라인 ZOOM에 나오는 강사를 보기 위해 연간 수천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은 닥쳐올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한국은 이미 초·중·고등학교부터 폐교 도미노가 시작됐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2040년이 되면 국내 400여 개 대학 중 절반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대학은 이제 학령인구의 학생을 목표로 교육하는 아니라, 50대 이후의 고령인구들에게 평생교육을 실시하는 평생학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장년층은 국내 대학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하다. 반면 젊은 학생들은 해외로 눈을 돌려 유학을 가거나 글로벌 기업의 인턴으로 나가려 한다. 중년과 고령층의 교육소비를 대학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생존전략이다.” 언택트가 됐건 콘택트가 됐건 교육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큰 시련을 안겨줬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빠른 원격학습 실험이 시작됐다. 아직 학생들은 원격학습의 장점을 체험하지 못했다. 다만 학생들은 독립적인 학습자가 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디지털수업이 보편화되는 세상에서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게 됐다. 아울러 앞으로 교육은 전통적인 학습과 최첨단 디지털학습의 장점을 결합하는 형태로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교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고 교사와 부모는 멘토와 코치 역할을 하게 된다. 교사가 지식전달자로서 교육자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21세기 교육목적에 적합하지 않다. 교사의 역할은 사회공헌자로서 젊은이들의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교육의 덕목도 바뀌어야 한다.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는 세계시민교육, 미래의 필수생활교육이 핵심과제이다.” 인공지능교사가 이미 교육현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실시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배운 것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없다. 학습속도를 3~4배까지 높일 수 있어 시간이 절약된다. 아울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행동특성을 실시간으로 인지할 수 있는 클래스룸 센서 역할을 하는 지능형 튜터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콘텐츠가 넘쳐나고 지속적으로 더 많은 정보가 더 빠르게 생겨날 것이다. 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은 인공지능교사라고 본다.” 정부가 초·중등교육에서 AI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조언을 한다면. “모든 학생들이 AI 프로그래밍을 배우거나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AI 교육을 시키는 것은 의미 없다. 교육은 이제 AI를 프로그래밍을 하고 전문가가 될 아이들과 AI를 가지고 다양한 기능을 만들고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여 다른 기능을 더 만드는 공부를 해야 할 아이들로 나눠 진행돼야 한다. 다만 AI 로봇시스템과 익숙해지는 것은 바람직 하다. AI 로봇·시리·알렉사 등 음성비서들과의 소통을 잘하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펴낸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 공부의 종말이 올 거라고 언급했다. 가능하다고 보나. “2021년에는 일반인들도 the link 즉, 뉴럴링크의 링크라는 칩을 넣을 수 있도록 FDA가 승인한다고 한다. 이미 동물실험과 뇌기능저하 즉, 치매나 간질환자들에게 칩을 넣는 실험을 FDA가 승인한 상황이다. 만약 인간의 지능향상을 위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시점이 되면 지식 정보 전수는 이제 링크가 해결해준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시키면 공부라는 의미가 크게 변한다. 공부라는 개념이 소멸하고 지식은 뇌와 컴퓨터의 연결로 이전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교사·교수·학교·학원이 필요 없어지는 세상이 올수도 있다.” 세계포럼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초등학생의 65%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직종에서 일하게 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하는가. “인공지능 환경에서 현명한 학습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못지않은 자기주도 자율학습기능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인공지능의 학습속도와 분량, 정확성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학습하면서 수없이 데이터를 재정비하고 반성하고 고친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손을 떠나 자기주도 자율학습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미래교육이 자율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자기주도능력 배양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01 살기가 너무 어렵던 시절이 멀리 있지는 않았다. 내 어릴 적에는 춘궁기에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마을에 더러더러 있었다. 거지들이 집마다 찾아와 밥 한술을 달라고 깡통을 내밀던 장면도 흔하게 있었다. 소꿉놀이하면 으레 밥 구걸하러 오는 거지 장면이 있었다. 일상에서 늘 겪는 결핍과 가난의 생태이었으므로 아이들 소꿉놀이도 그런 현실을 반영했다.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 시절은 국가의 계몽이 과도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국가가 하향의 (Top-down) 방식으로 국민을 계몽하고자 하는 나라, 그래서 구호가 넘쳐나는 나라, 이는 대개 근대에서 볼 수 있었던 나라의 모습이다. 계몽은 가난과 무지에서 그 세를 떨친다. 그런 나라일수록 민주주의는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고, 민주주의가 피지 못하는 근저에는 백성의 궁핍과 가난이 일상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가난 구제를 팽개쳐 두고 민주주의를 피운 나라는 없다. 그런 시절이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았다. 계몽의 범람은 흉패 달기에서 나타났다. 그 무렵 학교에 다닐 때는, 무언가를 적은 헝겊 표장을 수시로 가슴에 달고 다니게 했다. 마치 어버이날에 부모님 가슴에 ‘부모님 감사합니다’ 하는 패를 달아드리는 것과 같이, 학생들은 무언가를 가슴에 차고 다녀야 했다. 패에는 대개 ‘불조심 강조 기간’, ‘산림녹화 강조 기간’, ‘충효의 달’, ‘근면 자조 협동’, ‘잊지 말자 6·25’ 등 국가가 강조하는 계몽 구호를 적었다. 인구 증가율이 4%를 넘어서, 나라는 궁핍한데, 장차 먹고 살 일이 국가적 걱정이었을 때는, 마을 부녀회를 중심으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패를 착용하기도 했다. 대개는 집에 있는 무명천을 오려서 그 위에 붓으로 써서 가슴에 달았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달고 다니던 패가 있었다. 그것은 ‘내핍생활을 하자’라는 구호가 적힌 패였다. 여러 해에 걸쳐서 수시로 가슴에 부착하였지만, 이 구호가 얼른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내핍(耐乏)’이라는 말이 어려웠던 탓이다. ‘내(耐)’는 참는다, 견딘다는 뜻의 한자이다. ‘핍(乏)’은 부족하다, 가난하다, 고달프다 등의 뜻을 지닌 한자이다. 결핍과 고달픔을 참으라는 뜻 아닌가. 결핍밖에는 없는 세상인데, 그 결핍을 무엇으로 메꾼단 말인가. 국가가 백성들 가슴에 패를 달게 하면서까지 내핍을 강조하지 않아도, 내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뾰족한 수가 없는데,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나라가 온통 굶는 사태에 처한 북한이 일찍이 ‘고난의 행군’이니, ‘우리식 사회주의’니 하는 구호에 기대었던 분위기와 흡사했다고나 할까. 학교 선생님은 이 ‘내핍’을 글자로 풀어 설명해 주기보다는 그냥 ‘물자를 아껴서 쓰자’라는 뜻으로 풀이해 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아껴 쓸 물자가 있어야 아껴 쓰지,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글자 뜻대로 ‘가난을 참자’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체념의 분위기만 도드라질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내핍’에는 ‘극복과 의지’를 강조하는 의지가 안으로 숨어 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라는 의욕을 전제로 할 때, ‘내핍’은 사회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결핍을 참자’, 잘 사는 미래를 내다보며 지금은 내핍하자. 이렇게 강조했던 것 같다. 02 가난과 결핍을 백성 모두가 겪었던 세월이 있어서, 그래서 ‘결핍(궁핍)’이 문화적 유전자가 된 것일까. 사는 것에 대한 평가기준도 ‘가난과 결핍’ 위주로 인식하였다. 잘 사는 집은 곧 ‘부잣집’이고, 못 사는 집은 곧 ‘가난한 집’으로, 생각하는 통념이 지배한다. 부자일지라도 그 인생을 잘못 사는 사람이 있고, 가난해도 자기 삶을 잘 살아서 마음의 행복과 자존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 물음은 언제나 간단치 않다. 이것처럼 철학적인 물음이 또 어디에 있을까. 뭐가 잘 못 산다는 건데? 진지하게 물으면, 누구도 답하기 어렵다. 그것은 인생의 본질과 가치를 묻는, 매우 깊숙하고도 무한대로 큰 물음이기 때문이다. 결핍을 영어로는 ‘want’라 한다. want는 ‘원하다’라는 뜻 아닌가. 무엇을 원하는가. 결핍된 것 즉, 지금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원한다. 그것을 채우려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이 ‘want(원하다)’라는 동사이다. want라는 동사를 명사로 쓰면 ‘결핍’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핍은 해소되지 않는다, 왜? 우리 마음 안에서 원하는 것이 모두 충족되어야 비로소 결핍도 사라지는 법인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충족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즉시,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결핍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이걸 우리는 ‘욕망(want)’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결핍’과 ‘욕망’은 같은 말이다. 매우 가까이 있는 유의어이다. 그 지독한 가난을 벗어난다고 해서 결핍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은 눈덩이처럼 더 불어난다. 처음에는 물자의 부족만 결핍으로 쳤는데, 나중에는 권력의 결핍, 명예의 결핍, 건강의 결핍 등도 모두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냥 내가 아예 없어서 그걸 갖고자 욕망을 가진다면, 그럴 수 있다. 자동차가 있음에도 옆 사람이 가진 더 좋은 자동차를 못 가지면, 더 견딜 수 없는 결핍감에 빠진다. 이를 두고 자본이 부추기는 왜곡된 욕망이라고 했던가. 현대인들은 자신의 결핍을 곧 자기의 약점으로 여긴다. 약점을 숨기기 위해서, 결핍함에도 결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한다. 이렇게 될수록 욕망은 더욱 맹목적으로 팽창한다. 마음 안으로는 불행감이 들어와 마음을 점거한다. 결핍한 가운데도 (인생의 내면을) 잘 가꾸며 사는 경지란 알 수도 없고, 찾아가지도 못한다. 03 결핍은 몹쓸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인생의 총체로 보면 결핍이 우리를 보이지 않게 돕는다는 것을, 인류의 묵시적 지혜들이 보여준다. 명나라 초의 이름난 선승인 묘협(妙叶)이 지었다는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도 그런 암시를 준다. 이는 단순히 청렴결백을 윤리 규범으로 강조하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몇 개의 예를 들어본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형통함이 온전한 것이라면 곤란함은 결핍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결핍에도 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또 말한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건강함이 온전한 것이라면 병이 있는 것은 결핍이다. 그 결핍이 탐욕으로부터 나를 지키게 한다니, 결핍의 미덕을 보게 한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저절로 교만해진다.” 남이 나를 순종하면, 내 지도력(leadership)이 온전한 것인데, 남이 나를 잘 따라오지 않는 것은 내 지도력의 결핍이다. 그런데 그 결핍이 나의 교만을 막아 준다지 않는가. 옛날 불교 수행자들에게 한 말씀이니 현대에서는 지키기 힘들다고 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핍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종의 힘을 가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예수의 사도이었던 바울은 자신의 결핍(약함)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달리 방어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라.”(고린도후서 11장) 내 결핍은 신이 주신 은혜라는 믿음이 돋보인다. 그 경지가 부러울 뿐이다. 인터넷에서 나도는 플라톤의 행복론(원래의 출전은 찾지를 못했음)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현실적으로 조금 더 와 닿는다. ‘행복론’이라 했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결핍론’이라 부름이 마땅하다고 본다. 첫째는 기대하는 의식주 생활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에 만족하라고 한다. 둘째는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를 권한다. 셋째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명예를 구하지 말고, 그저 내 아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면 된다는 것이다. 넷째는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으로 만족하라는 것이고, 끝으로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그런 정도의 ‘말솜씨’면 된다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적절한 결핍을 추구할 것을 강조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 행복론이 널리 퍼지는 것은 ‘결핍에 미덕이 있음’을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뜻이리라. 자본과 욕망 만능의 시대인 것 같아도, 세상이 다 그렇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결핍의 미덕을 알겠다. 미덕이 되는 결핍이 있음도 알겠다.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보매, 우리에게 결핍한 것 가운데, 이런 ‘미덕이 되는 결핍’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구나. 그래서 ‘결핍의 결핍’을 화두로 내어놓는다. 언뜻 들으면 극심한 결핍을 강조한 표현 같기도 하고, 결핍을 부정하는 말 같기도 하다. 결핍이 결핍하니(없으니) 풍성함을 나타내는 수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저런 의미의 혼돈을 다 겪고서, 진정한 ‘결핍의 결핍’에 우리 마음의 눈이 가닿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