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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충청북도교육청은 23일 면 지역 이하 초등학생의 도시체험 학습비로 1억3천400만원을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면 지역 이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다양한 도시체험 학습 기회를 제공, 문화적 지체 현상 및 교육격차 해소와 도시문화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도시문화 체험학습비를 지원해 오고 있다. 올해 도시문화 체험학습비는 면 지역 이하 134개 초등학교에 학교당 100만원씩 지원된다.
어느 날 아침에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노래한 T.S 엘리엇의 말과 같이 우리학교 앞마당에는 겨우내 잠들다 봄비에 기지개를 캐고 잠을 깬 우리의 꽃 ‘백합’이 누군가에 의해 너댓 포기 뽑혀간 사실을 알고는 김 선생님께서 아쉬워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교화인 백합을 잘 키우기 위해 밑거름을 하고 새순이 올라오는 백합을 좀 더 넓게 옮겨 심고 물을 주며 흙냄새를 맡고 뿌리를 내리며 다시 깨어나는 백합을 매일 같이 지켜보는 정성을 쏟았는데 몇 포기가 없어진 흔적이 보였으니 꽃을 사랑하는 김 선생님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됩니다. 김 선생님은 이와 같이 꽃을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작년에 우리학교에 오시자마자 자진해서 국화를 재배하여 가을에는 온통 학교가 국화꽃으로 수놓아졌습니다. 등굣길에도, 화단에도, 화분에도 국화를 심어 국화동산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빈 시간을 이용하여 사파니아, 임파첸스 등 여름 꽃을 심고 있었습니다. 가서 보니 올봄에 심은 국화 수백 본은 흙냄새를 맡고 뿌리를 내린 채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고, 버려진 한해살이풀을 주워 긴 화분에 심어놓았는데 감사하다는 듯 꽃을 피우며 활기차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화분과 화단에는 9월에 피는 것을 비롯해 11월에 피는 것까지 세 종류의 국화를 심어놓았는데 생기넘치게 힘찬 모습으로 자라고 있어 김 선생님 덕분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국화 속에서 생활할 것 같아 벌써 기대가 됩니다. 정성을 쏟기는 밤낮이 없고,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이 없습니다. 시간만 나면 학교에서 물을 주며 보살피며 가꾸는 정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선생님께 어떤 선생님은 수고하신다고 격려하시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분은 그걸 왜 하시느냐며 힘을 빼는 선생님이 계셔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하시는 그야말로 근면성실한 분이십니다. 또 우리학교는 안 그래도 역사가 깊어 오래된 나무가 많아 보기 좋은데 선생님 오시고 나서부터는 사시사철 꽃피는 학교로 바꾸어 놓아 그야말로 쾌적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계절마다 적절한 꽃들을 화단에, 화분에 심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해 정서를 순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십니다. 작년에 우리학교에서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농구를 했는데 전국에서 오신 많은 분들이 우리학교의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에 감탄을 하며 돌아갔습니다. 어떤 분은 인터넷에 우리학교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된 건 바로 꽃을 사랑하는 남자, 김 선생님 덕분입니다. 지금도 시간만 나면 작업복을 갈아입고 화단을 둘러보면서 1년초를 심기도 하고 물을 주며 수목을 관리합니다. 정성을 들인 한해살이풀들은 각가지 화려한 꽃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사랑의 표시모양으로, 어떤 곳에는 군락(群落)이루며 촘촘히 모여 형형색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특히 깨꽃이라고도 하는 사루비아가 작은 종처럼 생긴 꽃받침의 보호아래 길쭉하게 앞으로 삐져나온 붉은색 꽃잎이 보기가 참 좋습니다. 비온 뒤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 아래 사루비아 꽃은 불타는 마음을 상징하듯이 우리 학생들의 정열을 내보이기도 합니다. 이 붉은색 꽃잎을 따서 입에 넣고 빨면 달콤한 꿀이 묻어 나와서, 어릴 적에 습관처럼 입에 물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이와 같이 꽃을 구경하고 추억을 되살릴 수 있게 만든 분이 바로 꽃을 사랑하는 남자, 김 선생님이십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올해는 'AGAIN 명문여고'라는 기치아래 학교장과 원로교사·부장교사들이 선두에 서서 젊은 교사들과 함께 공교육 정상화에 솔선수범하는데 김 선생님은 최고참으로 앞장서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30년 이상의 인문계고 진학지도 베테랑이자 원로이기도 한 김 선생님은 선생님들의 담임기피로 위기감이 팽배한 학교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기꺼이 담임을 자청했습니다. 두 딸도 울산여고를 졸업했지만, 평준화 제도 이후 침체된 학교를 살리기 위해 학교의 고참 교사로서 기꺼이 동참하게 됐고 학생들도 잘 따라주니 가르치는 보람도 난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김 선생님은 담임이 힘드니까 꽃, 화단관리는 하지 말고 학급관리만 하라고 하는데도 학급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틈틈이 화단에 봄꽃을 심는가 하면 휴일이면 시간을 내서 화단에 물을 주고 꽃을 관리합니다. 더욱 밤늦게까지 교재연구하시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합니다.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능력 있는 선생님인데도, 유명한 학원 강사 경력이 있는가 하면 선발집단 때 명문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신 경험이 풍부하신 데도 교재연구를 줄곧 하시는 것을 보면 큰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올해는 교원운영위원으로서 담임선생님들의 복지는 물론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어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본인에게 또는 교장 선생님에게 말씀드려 고쳐 나가기도 합니다. 한번은 학년부에서 보충수업을 적게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인문계 고등학교로서 기본은 해야 한다면서 강력히 건의해 바로 잡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친목회장을 맡아서 선생님들의 친목도모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길흉사에 앞장서 주선을 하십니다. 올해는 담임 때문에 친목회장을 하지 않지만 중간고사 기간에 남선생님들이 함께 운동한 후 오골계와 라면 등으로 친목을 다지는 일에 스스로 나섰습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오후 친목을 갖기도 했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김 선생님을 보면 ‘회장님!’이라고 부릅니다. 김 회장님!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흙냄새 늘 맡으시면서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좋은 자연환경을 물려받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이 바로 생활 터전이었고, 자연과 어울려 사는 시간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엔 지금같이 환경이 훼손되지 않았었다. 그리 오래전도 아니건만 자연은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낙원이었다. 그때 우리는 아카시아 꽃이나 철쭉꽃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산골짝에서 내려오는 냇물로 목을 축였다. 하늘에서 내린 눈을 배부르게 먹거나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을 따먹어도 탈나지 않았다.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대기·수질·토양 오염 및 소음·진동 등으로 자연환경이나 생활환경이 많이 손상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환경오염 때문에 각종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나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 뿐이다. 지나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누구나 쾌적하고 조용한 생활환경 속에서 건강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환경이 오염되면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환경오염의 폐해를 잘 아는 사람들도 나 하나쯤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이기주의를 앞세워 환경보존에 동참하지 않는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 세계가 하나인 ‘지구촌’ 시대다. 모두 같이 노력해야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다양하다. 충북괴산군 청천면 뒤뜰 냇가 옆 도로변에 있는 환경공원에는 환경지킴이 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조형물이 있다. 뒤뜰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형물 사이로 바라보며 훼손된 환경 만큼이나 엉망이 된 교육을 생각했다. 요즘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작태들을 보면 '울고 싶어라'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아직 5월이 지나려면 9일이나 남았는데 교사가 학부형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학생에게 걷어 차이는 등 교육이 수난을 겪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연이 바로 생활 터전이고, 바른 교육이 21세기를 헤쳐 나갈 원동력이다. 그래서 환경오염을 막아야 하듯 교사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일들도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 청주기계공고의 학부모님들이 사랑의 매를 때려달라고 회초리를 전달하며 스승존경 풍토 조성에 앞장서는 모습이 짙어가는 녹음처럼 싱그럽게 다가온다.
한일 월드컵을 4강으로 이끈 히딩크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에서 교육방문단이 본교를 찾았습니다. 총 6명의 네덜란드인들은 교육현황을 듣고 곧바로 영어 선생님들과 함께 각자 배정된 교실로 들어가 1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특별 강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도 물론 대환영이었지요. 영어 선생님의 통역으로 한국과 네덜란드의 교육 방법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네덜란드인들도 한국 학생들과의 만남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는 말을 남기며 학교를 떠났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대통령, 국회의원을 비롯한 국가지도자님! 우리들은 가끔 이런 말을 씁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자발적, 능동적,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말이지요. 그러나 자신이 행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사람에게 이 한마디의 말은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 옵니다. 다만,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수용 자세가 갖추어졌을 때 통하겠지요. 웬 엉뚱한 소리냐고요? 학교 실정도 모르고, 교원들의 정서도 모르고, 교단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교육의 근본이 뭔지도 모르고 어설프게 알고 있는 얇은 지식으로 교육에 뭔가 업적을 남기겠다고 학교를, 또 선생님을 도와준다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 입법 예고한 법안으로 교단에는 흉흉한 바람이 불어 단 하루 편한 날이 없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하더니만, 교육에 설익은 관심만 많은 국회의원으로 우리나라 교단은 매서운 찬바람이 휘몰아칩니다. 어쩌면 폭풍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바람으로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고 교단이 계속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섣불리 아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만도 못하다." 50배 과태료 내는 선거법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지만 상황과 대상에 맞게 해야지 엉뚱하게 교육에 적용하다 보니 별 해괴망측한 것들이 인터넷에 기승을 부려 추락하는 교권에 속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진수희 의원 홈피 "교사는 인질범" 등 비방 난무』라는 한교닷컴 기사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지도자의 현 주소이고 실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교장공모제, 무자격교장 초빙제, 교장선출보직제, 교장자격증제 폐지, 교감직 폐지 등 일련의 승진체제안을 내 놓았던 열우당, 한나라당, 민노당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들의 실명은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언제까지 이런 막나가는, 무식하고도 용감무쌍(?)한 국회의원들 행태를 지켜보아야 하나?" 내쉬는 게 한숨입니다. 우리나라의 앞날이 어둡기만 합니다. 민주화 잘 되면 무엇합니까? 어디다 씁니까? 국민들 정신은 이미 피폐화되고 교육은 망가지고 나라는 수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잘 살기'는 애당초 글러먹은 것 아닐까요? 하기사 국가 최고지도자의 교원 폄하 발언이 그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 국회의원들 탓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게 아니다' 하고 올곧은 목소리 내는 국회의원들 나올 만도 하지 않나요? 저의 기대와 소망이 연목구어인지요? 또 이런 생각도 하여 봅니다.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라는 말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런 지도자를 뽑았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거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수준이 거기에 머문 결과입니다. 그래서 결국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지도자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 여하튼 지도자 잘 뽑아야 합니다. 오는 5월 31일 선거가 있기에 이 말이 더욱 절실히 다가옵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득표만을 의식하고 편가르기를 전략으로 써 먹는 것, 이제 국민들은 가려 낼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교닷컴 기사 『촌지근절법 논란…추락하는 교권』(2006.5.21) ‘학교촌지금지법’에 대해 찬반 측의 욕설과 비방이 가열되면서 도마 위에 오른 교권이 벌써부터 난도질 당하고 있다는 슬픈 소식을 보고 일개 중학교 교감으로서 한 마디 올립니다. 국민 여러분! 부디 한 귀로 흘려 듣지 마시고 이번 선거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칭 지도자님들은 정부정책에, 입법활동을 함에 있어 "그 분야에 대하여 잘 모를 경우,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그 분야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를 꼭 유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교육에 대해 뭘 모르시면 쓸데 없이 일 벌리거나 들쑤시지 말고 조용히 교육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여 달라"는 겁니다. 그게 '애국'입니다. 주제 넘은 말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소중한 한 표, 잘 행사 하시고요.
교권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최근 2-3일 사이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교권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부에서는 학부모의 불법적인 교권침해 사건이 발생할 경우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청-학교 간 협력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 또한 교육부는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협박ㆍ폭언ㆍ폭력행위가 있는 경우 교사, 학교장이 즉각 경찰에 고발하도록 전국 시ㆍ도 교육청에 지시한 데 이어 24일 열리는 시ㆍ도교육감회의에서 교권침해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교권침해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학교장이 교육청에 즉각보고하도록 하고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경우 학교장을 문책하겠다고 한다. 늦은감이 있지만 교육부에서 발벗고 나선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어쨌든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 교권침해를 막겠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다만 표면적으로 교권침해를 줄일수는 있을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일시적인 대책보다는 어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더이상 이런 사건들이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근의 교육현실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분위기다. 시대적 흐름이다. 아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학생의 인권은 어느정도 보호가 되고 있다. 반면 교원들의 인권은 어떠한가. 사소한 학부모의 항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것이 현실이다. 교원들의 인권은 철저히 유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교원이라면 이렇게 언론을 통하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교권침해현장을 목격하거나 들었을 것이다. 최소한 한두건이 아닌 그보다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런 현실임에도 교육당국은 교권침해사건을 외면해 온 부분이 없지 않다. 적극적인 대책을 이미 세웠어야 옳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한건 두건 자꾸 늘어나다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갈 수도 있기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특단의 대책이 물리적인 힘을 동반한 대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교권침해사건에 홍역을 치루고 있지만 교원들의 제자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학생에게 폭행당한 여교사가 김모군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비록 제자에게 폭행을 당하긴 했지만 제자를 처벌하도록 그냥 둘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모군이 전학을 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데, 전학을 보내는 담임의 마음 역시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마음들이 바로 교원들의 마음인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교권침해사건이 자꾸 발생하는 것일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힘으로 교권침해를 막겠다는 발상보다는 사회적으로 교원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 일 것이다. 분위기가 자연히 고조되면 물리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아도 교권침해사건은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교육관련당국은 물론 언론, 교사, 학부모, 학생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권침해가 사라지고 마음놓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 진다.
대천시민체육관에서 보령시교원총연합회(회장 한광희), 전교조보령지회(지회장 우장식)의 공동주관으로 교사 및 교원 가족 등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령시 교육자 단합대회가 열렸다. 이날 우장식 전교조보령지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교육자로서 창의적·자율적·인격적 인성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학부모, 교사, 학생 모두가 신뢰를 바탕으로 열린 교육의 장을 만들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한광희 보령교총회장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만큼 존경받는 스승, 사람다운 사람 키우는 참 스승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창순 교육장은 격려사를 통해 “교육 혁신을 위해 교육자들이 관심갖고 추진해줄 것”을 당부하며 “이 자리가 교육가족의 화합·단결과 교육계 위상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체육대회에서는 초·중·고 12개 팀으로 나눠 배구대회를 가지는 등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며 교원 상호간 화합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부는 22일, 초등 1,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50개 영어교육연구학교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들 학교 초등 1,2학년생은 9월부터 영어교육을 받게 되며, 2년간 시범 운영을 마친 2008년 하반기에 전체 초등학교로의 확대실시 여부가 결정된다. 이번에 선정된 연구학교는 서울 및 경기도는 4개교, 나머지 시도는 3개교씩이다. 1997년도에 도입된 초등영어교육은 올해 10년째를 맞고 있다. 교육부는 연구학교 운영과 관련해 찬반론이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조기영어교육의 효과와 사교육에 미치는 영향, 우리말 교육 및 정체성 함양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연구학교 컨설팅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시도별 연구학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곡초, 성내초, 중평초, 행당초 과정초, 구덕초, 신덕초 경운초, 복현초, 화동초 갑룡초, 목향초, 축현초 본촌초, 선창초, 용두초 내동초, 대양초, 덕송초 두서초, 문현초, 옥서초 고창초, 기산초, 성저초, 안성초 근덕초, 서원주초, 양양초 남성초, 미원초, 청안초 석문초, 성주초, 천안용소초 백산초, 이리동산초, 죽산초 나주중앙초, 영광초, 해남동초 김천다수초, 성동초, 포항대흥초 김해부곡초, 오봉초, 용남초 김녕초, 서호초, 한라초
세상에서 자기 자식처럼 귀한 것은 없다. 오죽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고 했을까. 자식들이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며 ‘기러기가족’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자식사랑이 그 도를 넘어 가정도 사회도 사랑의 채찍이 없어짐으로써 정신은 막대기처럼 야위고 몸뚱이는 비만인 ‘비정상아’로 자라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남을 짓밟거나 비정상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최고가 되어야 하고, 내 아이가 남에게 기죽어 사는 것을 절대 못 보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자기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평범한 진리는 모르는 것 같다. 자기 자식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남의 자식들의 피해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정교육의 부재 속에 어릴 때부터 나만 최고라는 생각으로 자란 아이들, 내 행동이 그릇되고 공동체 생활에 위배되어도 죄의식이 전혀 없는 무감각한 생활에 아이들은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다. ‘자식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옛날에는 서당에 자식을 맡긴 부모가 싸리나무로 한 아름의 회초리를 만들어 서당의 스승에게 바쳤다고 한다. 자식의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부디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요즘은 자기 자식에게만은 최소한의 ‘교육적 채찍’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육의 도시’에서 교직에 갓 발 디딘 젊은 여교사가 조카 같은 어린 초등학교 아이들의 잘못된 식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남보다 적극적으로 지도한 것을 두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학부모가 교사의 무릎을 꿇게 했다. 그것도 사전에 동반한 방송사 카메라 기자 앞에서다. 또한 사건 전날에도 담임교사의 집 현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사표를 내도록 강요하는 고성을 지르는 등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무시했다. 무심코 전화번호 하나 알려줘도 사생활 침해, 엄연히 학생규정에 명시된 대로 두발지도를 해도 인권 침해라고 난리치는 세상이다. 그러면 학부모가 교사를 무릎 꿇게 한 모습을 전국으로 방송하게 한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물론 교사의 지도가 아무리 교육을 위한 것일지라도 그 절차나 방법상으로 정도를 심각하게 벗어났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사를 무릎 꿇게 하는 학부모’ 앞에서는 소신껏 아이들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국 교육은 죽을 수밖에 없다.
충북교육청(교육감 이기용)이 학생 건강검진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일선학교가 노력해줄 것을 요청했다. 20일 도교육청은 “학생 건강검진이 연중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휴무토요일 등 특정일이나 특정월을 학교가 지정함으로써 건강검진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이 부족한 대기 장소에서 장시간 대기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학생 및 학부모 불편해소와 부실검진 방지를 위해서라도 건강검진이 분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도교육청은 “검진기관과 협의를 통해 대기장소 마련과 사전예약, 학교별 검진일정 조정 등의 방안을 지원할 계획이며 부실검진 방지를 위해 검진기관 지도, 감독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충북도교육청은 올해부터 학생 신체검사가 건강검진으로 바뀌면서 학교장이 지정한 병원을 학생들이 직접 찾아가도록 했으나 가급적 빨리 검진을 받기 위해 현재 5~7월에 집중돼 있는 형편이다.
전북 김제지역 모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부 과목교사 교체를 요구하며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김제 모 고등학교에 따르면 이 학교 3학년1반 학생 22명중 21명은 이날 오전 영어 과목을 맡고 있는 A교사의 수업이 시작된 10시30분부터 집단으로 교실을 빠져나와 교장실 앞에서 면담을 요구하며 1시간30분가량 수업을 거부했다. 학생들은 10시45분께 교장과 만나 특별실에 머물며 "A교사가 교내 집단 폭력 여부를 조사한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다 12시15분께 교실로 돌아갔다. A교사는 지난달 담당 학급에서 발생한 집단 괴롭힘 사건과 관련, 가해 학생에 대한 학교측 처벌이 미미했다는 이유로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다. 학교측은 "관련 조항 등을 검토해 교사 교체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회의실이 학부모들의 고성으로 떠들썩합니다. 평소 여자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점심을 빨리 먹도록 강요했다며 항의합니다. 식사시간을 지키지 못한 학생에겐 벌을 주고 반성문도 쓰게 했다는 것입니다. 학부모들은 어제(17일) 담임교사의 집을 찾아가 항의한데 이어 오늘 다시 학교를 찾아와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18일밤 SBS 8시뉴스의 중간쯤에 방송된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뉴스의 내용만으로는 정확한 정황을 알 수 없으나 교사가 학부모에게 무릎꿇고 사과를 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건의 경위야 어찌 되었든 교사가 학부모에게 무릎까지 꿇고 사과를 했다는 것에 대해 교사의 한 사람으로 착찹한 심정이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마음이 내내 무겁다. 학부모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교사들이 비일비재한 요즈음의 현실에서 그래도 언어 폭행에 그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 사건의 전말은 관계당국에서 자세히 진상조사를 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반면, 이런 장면이 어떻게 촬영되어 우리의 안방에까지 방영되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밝혀져야 한다. 뉴스를 보았다면 알 수 있겠지만 그 교사를 전혀 모른다면 알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교사가 누구인지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뉴스 앵커의 이야기 중에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교사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교사가 잘못했다고 치더라도(현재로서는 방송 내용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지만) 학부모가 그런식으로 나섰다는 것보다 더 아쉬운 부분은 언론의 자세이다. 분명히 공개적으로 미리 예견된 촬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SBS의 이런 태도는 해당교사에 대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음성변조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모자이크 처리도 적극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일반인들이 예측을 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옳다. 방송보도에서 인권을 충분히 지켜줄 수도 있었는데 그 과정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학부모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용히 인정하고 사표내면 조용하다고 했지 않았나, 여기 다 지식인들이야, 왜 흥분하게 만들어.' 흥분상태라고는 하지만 교사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큰 죄를 지은 상대를 대하듯 하고 있었다. 교사는 '정말죄송합니다.'라고 경어를 사용했다. 교사의 약점을 이용하는 듯한 학부모들의 행동 역시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사도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마음도 이해를 한다. 리포터 역시 교사이지만 학부모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런식으로 흥분상태로 대응하여 교사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방법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학부모들의 의견을 이야기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여기 다 지식인들이야, 왜 흥분하게 만들어.'라는 학부모의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학부모도 지성인이지만, 교사들도 지성인이다. 지성인과 지성인이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이런 방법밖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뉴스보기
한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잘 아는 쓰시마 섬은 한국에서 약 50 킬로미터 떨어진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한글 표기의 패트병이나 폴리 용기 등이 떠내려 와 북서의 계절풍이 강한 겨울이 되면 해안선은 쓰레기로 가득 차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쓰레기에 골치를 앓고 있는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에서는 지난 5월 20일 한국에서 온 학생들과 현지 주민 약 250여명이 해변에 쌓인 쓰레기의 수집 작업에 땀을 흘렸다. 쓰시마시는 전용봉투 등을 사용해 해수에 밀려온 쓰레기를 수집하고 있지만, 2003년에 약 140여개, 04년 약 250여개, 05년 약 400여개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곳에는 일반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 밖에 없기 때문에, 해수를 포함한 플라스틱이나 금속 제품의 처리는 어려워, 대부분의 표착한 쓰레기를 배로 후쿠오카까지 반송하여 처리를 하고 있고 한다. 이것을 안 쓰시마 출장지소에 근무하는 국제교류원, 박병준씨(37)가, 모교인의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에게 이의 문제를 제기하여 3년전부터 이같은 청소 작업이 시작되었다. 또한 이번에는 한일 학생이 해양 환경 문제를 모두 생각하는 「 제1회 한일 학생 쓰시마 회의」의 일환으로 한일 공동의 쓰레기 줍기가 실현되었다. 이 날은 현지 주민과 T셔츠차림의 학생들이 밀려온 쓰레기를 수집하였는데 이 가운데는 냉장고도 발견되어, 반출에 시간이 걸렸다. 이 행사에 참가한 한국의 한 학생은 「대마도의 깨끗한 해안에 한글 표기의 용기가 많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일본의 학생과의 교류도 확대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무심코 버린 하나의 쓰레기가 해외에서 발견되어 환경을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평소에 버리지 않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할 것 같다.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한분계시다. 영어선생님들의 수업을 도와주거나 아니면 회화수업에 적극활용되고 있다. 도시에서는 방학이되면 어학연수다 해서 난리들이지만 우리 시골학교에서는 감히 생각조차도 하기 힘든 일 들이다. 다행이 우리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파견되어 수업에 활용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일이다. 근데 문제는 일주일 동안 우리학교에만 계신것이 아니라 이웃학교에 순회를 다니시니까 우리 학생들의 불만 또한 크다. 다행이 현 정부가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기위한 여러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시골학교에 우선적으로 원어민 교사를 파견하는것도 좋은 정책이 아닐까 싶다.
윤종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22일 서울시교육청에서 교권침해 사건 진상 규명 및 대책을 촉구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회장은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 일로 교육계는 큰 충격에 빠져 있다"며 "교권확립과 교육신뢰 회복을 위해 교육행정당국이 적극 나설 것"을 촉구 했다.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내가 병이 날 것 같아서입니다. 나는 금년만큼 아이들을 많이 때려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산만하고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날마다 벌이는 자잘한 사고 앞에서 어느 사이에 내 손에는 작은 매가 비서 노릇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좋은 말로 하면 뭉개버리고 말도 듣지 않는 꼬마들이 손가락 길이만한 작은 매 앞에서는 "알았어요, 선생님. 싸우지 않을 게요. 밥 다 먹을 게요." 합니다. 1학년 아이들이니 서로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 주장이 강해서 자그마한 일에도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움질하기 일쑤입니다. 아직은 도덕성 발달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라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친구 마음을 다치게 합니다. 싸우고 때리고 울려놓고도 잘잘못을 가리려면 몰래카메라라도 있어야 됩니다. 도대체 자기 잘못을 말하는 아이는 없고 상대방 탓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친구를 때리고 욕하는 아이들은 연필을 쥔 손으로 친구를 때려서 피가 나게 하여 놀라게 합니다. 그러고도 자기 잘못보다는 씩씩거리며 상대방도 잘못했다며 어거지를 쓰니 꿀밤이 날아갑니다. 밥을 먹다가도 울리는 아이, 툭하면 때리고 도망가는 아이에게도 말이 안 통하면 꿀밤이 날아가곤 합니다.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꿀밤을 주고 있으니 스스로 속이 상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반 아이들이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습니다. 내 억양이나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꿀밤을 주는 모습을 보니 내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말로만 충고하자고, 꿀밤도 주지 말자고, 어떤 형태의 체벌도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합니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하니 아이들이 참 귀엽습니다. 나에게 그렇게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나는 듯 다시 내게 와서 선생님을 부르며 쫑알대고 손을 잡는 아이들이니까요. 미주알고주알 일러대는 모습, 선생님 주려고 뽑기를 했다며 핸드폰에 채워주던 최강,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그림마다 선생님이라며 공주를 그려놓고 하트 표시를 하는 강고은이의 예쁜 모습은 잊은 채, 날마다 질서와 정숙을 강요하며 전체 속에 집어넣고 일사불란하기를 바란 내 모습이 참 부끄럽습니다. 중국 명대의 사상가 이지는 "무릇 동심이란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맨 처음 갖게 되는 본심을 말한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이 없어지고, 진심이 없어지면 진실한 인간성도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의 귀엽고 천진한 모습은 바로 동심의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아이들 틈에서 질서와 순응을 배워가며 전체 속에 매몰되어 힘들어하는 아이,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을 차분히 끌어안지 못하고 바쁘게 채근하는 내가 죄를 짓고 있습니다.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동심을 잃지 않고 상하지 않으며 자랐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동심을 오래 지니고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동심이 사라지면 진심이 사라지고 진실한 인간성마저 상실된다는 한 사상가의 말씀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른들이나 부모, 선생님들이 할 일이 어린이를 어린이로 자라게 하는 일인데 무엇인가를 특별히 잘 하거나 촉망받는 직업인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볼 때입니다. 나의 귀여운 천사들이 그들이 지닌 동심을 하나도 잃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밝게 웃으며 아이들처럼 살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약삭빠르지 않고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으며 손해보는 일도 친구를 위해서라면 해줄 수 있는 지금같은 모습을 갖고 살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오늘은 개구쟁이 승현이가 3월 초에 걸어준 목걸이를 다시 걸고 학교에 가야겠습니다. 그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날마다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아이이지만 그 아이가 지닌 동심과 진심은 어른인 내가 따라갈 수 없을만큼 크기때문입니다. 문득 어제 아침에 승현이가 카네이션을 사왔다면서 내게 주려는 것을,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을 때리지 않고 예쁘게 지내면 받을 거야. 할 수 있지?"하며 거절했던 게 마음이 아픕니다. 그 아이의 동심을 상하게 한 못난 담임입니다. 아이들을 어떤 조건으로 평가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그의 인격을 존중해 줘야 하는 기본을 잊은 언행을 보인 내 잘못을 사과해야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날마다 어린이날인 것처럼 대우받으며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동심을 지니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듯 5월의 햇살이 참 밝은 아침입니다. 어린이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하신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의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 하느님을 잘 모시고 보살피는 일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하셨는데, 오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거나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먼저임을 잊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야단을 치고 꾸지람을 해도 돌아서면 다시 내게 달려오며 사랑을 표현하는 그 작은 꼬마들이 지닌 사랑만큼도 지니지 못한 작은 내 마음이 저렇게 밝은 5월의 아침 햇살에 숨고 싶은 아침입니다. 어린이 날이 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많이 꿀밤을 주고 야단을 쳐서 참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나도 동심을 회복하고 싶은 탓입니다. 나도 동심을 찾고 싶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하루에 TV나 인터넷, 컴퓨터 게임에 바치는 시간이 엄청난 현실이고 특히 유선방송이나 공중파TV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젊은 청소년의 취향과 그들의 기호에 맞춰가는 실정이라 이들을 상대로 방송하는 방송인들의 우리말 사용 습관과 우리말글 실력은 바로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전수된다. 따라서 방송인들이 일상 언어를 정확히 해야 하고 이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묘책이 요구된다. 지금은 불행하게도 하루에도 여러 번씩 다양한 채널에서 표준말이나 맞춤법에 맞지 않은 말씨, 서울 사투리, 잘못된 발음을 수시로 듣고 있다. 공개방송 사회자, 리포터, 기자, 기상 캐스터, 스포츠 중계방송 해설자, 개그맨, 심지어 원로 아나운서도 해당된다. 다행히 몇 몇 방송에서 우리말 퀴즈나 우리말 겨루기 같은 공개방송을 내보내고, 같은 프로그램을 연중 편성하고 있지만 방송인들의 말씨 고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지 두 가지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일시적 유행어나 비어, 속어는 제쳐두고라도 일상용어에서 즉시 고쳤으면 하는 것들을 꼽아 본다. 첫째, 서울 사투리 문제. 드라마에서는 적절한 사투리가 극 전개과정에서 재미와 실감을 더해주는 양념 구실을 한다. 그러나 뉴스 보도나 교양프로그램에서는 문제가 다르다. 지방에 살던 어린이가 서울 쪽으로 이사한 뒤 달라진 말씨를 보니 리을 덧붙이기식 발음이 심하다. 다르다[달르다], 기다려라[기달려라], 바르고[발르고], 부르고[불르고] 등의 발음은 연속극에서는 물론 정치토론 사회자, 인터뷰, 뉴스 취재기자의 말에서 너무 자주 듣고 있다. 둘째, 받침에 이은 토씨의 발음 문제. 꽃이[꼬시] 피었다. 젖을 [저슬] 먹다, 빚을[비슬,비츨] 지다, 볏짚이[볃찌비] 쌓였다, 밭이[바시] 보인다, 깨끗이[깨끄치]쓸어, 꿈도 사랑도 싣고[실코]…이 외에도 너무 많아 열거하기 조차 어렵다. 셋째, 두 갈래로 쓰이는 발음 문제. 역사극 방송에서도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은 가거라, 오너라, 먹어라 인데 “이리 오거라,” “어서 먹거라.” 라는 대사가 자주 나와서 그렇게도 사용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평소에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기도 힘들고 우리말에 과연 표준어가 있는지 의문이다. 짧다[짭따/짤따], 굵다[국따/굴따]로 나뉘어져 혼란을 주고 있으며, 젊은 출연자들 중에 다른 사람-[따른 사람]으로 잘못 발음하고 있고, 교과서, 중부지방, 효과[교꽈서], [중부찌방], [효꽈]로 발음하는 방송인이 있고, 또 어떤 방송 뉴스에서는 500원짜리 가짜 담배 관련 뉴스를 취재 보도하면서 ‘한 갑에 500원’이라고 할 말을 [한 갑세] 500원으로 전하는 것을 보고 ‘품삯은’, ‘책값을’, ‘넋이야’ 이런 발음을 제대로 전할 능력이 있는 방송인인지 청소년이 그대로 받아들일까 걱정스러웠다. 넷째,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상식 이하의 발음 문제. 이십 세, 삼십 세도 아니고 서른 살, 마흔 살도 아닌 칠십 구살, 이십 팔살 이라고 전달하는 뉴스앵커도 있었고, 기자들이 대부분 영상자료를 제시할 때 ‘화면 보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주어가 생략된 말로 이해할 것인지 의문이 간다. 어법에 맞는 말이라면 ‘진지 잡수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누워 계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생각하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등이 모두 통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본인의 생각으로는 ‘화면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또는 ‘화면 보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로 고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한 번은 개그맨 출신 방송 진행자가 명량대첩을 명랑대첩이라고 답한 출연자에게 힌트를 준다는 것이 ‘토씨 하나 차이’라고 지적했고 자막으로도 똑같이 그렇게 내보내었다. 토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진행자가 전하는 말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방송국의 무성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방송인들이 바른 언어생활의 첨병 역할을 해 주어야 앞으로 어린이, 청소년 언어생활이 바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 교육계에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듀나’라는 영화평론가 겸 소설가가 교사들을 향하여 저급한 독설을 쏟아내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스승의 날’이 휴무일로 되면서 이젠 ‘스승의 날’도 잃어 버렸다. 오월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기를 고대하였지만 오월이 되자마자 정부여당에서는 ‘교감제 폐지’를 들고 나와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든다. 현장의 교육활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쳤는지 묻고 싶다. 지금 참여정부에는 ‘참여’라고 하는 거창한 수사만 있을 뿐 실제적인 ‘참여’는 없다. 편향된 시각에서 특정 세력의 의견만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감이 필요 없으면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신 부교장을 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교감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정부나 열우당에서 제안하고 있는 법안이나 제도들이 이처럼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 그래서 늘 비난의 대상이고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부분의 제안들이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황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교감이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교감의 하루’를 단 한 번이라도 따라 가 보라.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고, 그 동안 근무했던 학교의 교감선생님들은 담임이나 부장교사 이상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 자율학습에서부터 시작하여 저녁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늘 함께 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때로는 교사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조정해야 하고,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승진을 하고서도 저렇게 고생할 거라면 아예 승진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부교장 제도를 제안하면서 교감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이것은 교장선출제와 연결되어 있어 학교 현장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선출제에서의 교장은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하고 대중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적이고 대중적 역량이란 교육에 대한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인맥 관리를 통해서 길러질 수 있다. 또한 ‘부교장 제도’가 교장으로 선출되기 위한 주요 경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은 뻔하지 않은가. 교장은 누구를 부교장으로 지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교장 선출에 공헌도를 감안하여 임명할 것 아닌가. 교원들에게 정치적 역량을 학습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교육의 본질 추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현행 교감제도와 차별화된 점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개선된 점은 없는 것 같다. 개악이 지나지 않는다. 얄팍한 술수를 가지고 교원정책을 논해서는 안 된다. 교원정년 단축과 연계된 또 하나의 시도라는 지적도 있다. 그럴듯한 지적이다. ‘교감제 폐지 법안’에 따르면 승진 폭이 훨씬 좁아지게 되고 선출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절망하게 되어 조기 퇴직을 유인하는 기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도 혁신이 피곤하다고 속내를 보인 바가 있다. 정말 피곤하다.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 놓아 누구라도 공감하는 제도라면 몰라도 제안하고 있는 정책마다 이해집단간의 싸움만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저쪽 이야기도 들어보고 지금까지 제도의 틀에 맞추어 살아온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 보아야 한다. 제도의 희생자를 양산하는 개혁이나 혁신은 공감을 가져오기보다는 반발을 가져온다. 어떤 분야든지 구성원의 성장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조직에 활력이 있는 것이다. 교직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수업전문가로서, 교육행정가로서, 교육전문직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으면서 교육적 본질에 맞는 정책 제안을 기대해 본다.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원을 원하는가 아니면 정치적 역량을 갖춘 교원을 원하는가. 더 이상 교원들을 ‘진흙 구덩이’의 정치판으로 끌어 들이지 말아야 한다. 정부나 여당에서는 교직안정의 토대 위해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글쓰기 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어떤 책은 선보인지 5개월만에 6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소설이나 시집같은 문학류가 아닌 책으로는 대단한 판매부수이다. 그만큼 글쓰기의 필요성이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독자층은 대입논술을 앞둔 고교생이 아니라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회사원들이 주를 이루었다는게 출판사의 조사결과이다. 하긴 학교에서도 “글쓰기에는 워낙 재주가 없어서…” 라는 말을 곧잘 듣곤 한다. 그 말은 유감스럽게도 겸사가 아니다. 직무와 관련한 일종의 ‘영업기밀’ 이라 미주알고주알 까발릴 수는 없지만, 열에 아홉은 진짜로 글을 못쓰는 것이다. 한두 번 첨삭으로 꼴이 갖추어지는건 그나마 다행이고 아예 통째 바꿔 써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인터넷시대의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에 힘입어 어찌어찌 컴퓨터를 배워 홈페이지 등에 글을 올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거의 모두 ‘인터넷식’ 이다. 글쓰기의 기본기가 갖춰진 글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니 말이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 사용이 교원근무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글쓰기 역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만이 배우고 지녀야 할 특기가 아니다. 또 소질이나 재주따위로 치부해버리며 부담없이 넘어갈 문제도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의 느낌이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전달하는 수단이다. 특히 교원의 경우 교장 등 관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공을 불문한 교사 모두가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필수과목이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아예 학생들은 글쓰기라면 차라리 죽을 맛이라는 반응들이다. 고교 3학년을 멀쩡히 수학하고 졸업까지 했는데, 논리적인 글은커녕 편지 한 장 제대로 쓰지 못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그 근저에 입시지옥이라는 주범이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교원의 글쓰기는 어느 정도 진척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컴퓨터 보급과 더불어 의무적으로 실시했던 연수처럼 글쓰기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교장이나 교감자격 연수시 리포트 제출 등 소정의 과정을 이수했을텐데도 왜 글쓰기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담당교수의 봐주기 내지 형식적 연수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교원임용고사에서부터 글쓰기과목을 넣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전공이나 초·중등을 불문하고 글쓰기가 교사임용의 필수조건이 된다면 지금처럼 글 못쓰는 교원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특히 교감·교장자격연수, 전문직(장학사·연구사)시험이나 교육장 공개전형에는 반드시 글쓰기 과목을 넣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이때의 글쓰기는 소설가같은 전문적 소양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철자법이라든가 문단나누기같은 원고지 사용법, 문장의 호응 등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글쓰기가 되어 있는지 측정하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나 특기가 아니다. 저절로 타고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글쓰기 역시 이론적 공부와 함께 부지런히 익히고 또 익히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늦었지만, 전 교원의 글쓰기 연수가 시급한 시점이다.
최근에 교육부는 새로운 안을 계속 언론에 흩뜨리고 있다. 부교장 제도, 수석교사제도 등 교사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수석교사제를 시행한다고 하였으면 그 안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서서히 나와야 하는 데도 부교장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여 교감들의 불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좋은 것 같지 않다. 교장초빙제도도 그렇다. 교장초빙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여 시행하는 방안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학교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담임제도다. 학교에서 가장 기초적인 학급담임제도가 무너지고 있고, 그에 따라 학생의 생활지도와 교과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학교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현 실정인데도 수석교사제, 부교장제도 등의 논의가 학교사회를 바르게 진단하고 있는 것일까? 학급담임 기피는 무사안일주의의 전형 어느 집단이나 어느 체제나 그곳에 속한 구성원들의 개성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McGregor는 인간의 특성을 두 계층으로 분리한 바 있다. 스스로 노력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는 인간이라는 두 유형으로 나누면서 스스로 노력하는 인간은 어느 그룹에서나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많고 많은 사람들. 아니 많은 교사들과의 생활을 통해 느끼고 들은 바 있다면, 그것은 현실에서의 만족을 얻고자 하는 특성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남보다 앞서고자 하는 경쟁의식을 가지기보다는 서로 즐기면서 어우러져 살아가고자 하는 이가 많은 것이 교사 집단의 한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교사가 담임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의식이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문제는 보통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다른 의도로 해석하면 교사가 학생을 외면해 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처지가 아닌가? 교사는 행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채용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행정의 일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의도도 아니다. 다만 교사가 학생 담임에 기피증이 일어나고 자가만의 영역을 지키면서 더 이상 다른 것에 관심을 쓰지 않는다면 기존의 학교 체제는 근본적으로 대수술을 할 필요가 있다. 학생을 지도하고 이끌어 가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시켜 주려는 의지가 없는 담임교사가 다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교육부가 교사를 잘못 채용했거나 아니면 교사 자신의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담임교사에 대한 새 대안이 필요한 극한 시점에 이르렀다. 무사안일주의 사고에 빠져있는 교사에게나 그렇지 않는 교사에게나 똑같이 성과급을 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 교사의 승진에 있어서도 최소한 10년은 담임으로서의 경력을 갖추어야 하는 안과 그 경력에서 80%이상을 ‘우’이상의 근평을 받아야만 하는 단서 조항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담임을 기피하는 현 체제에서 담임제도가 형식으로 치우치면 치우칠수록 중고등학교 담임체제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자라나는 후세를 길러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상황에서 담임이라는 존재가 부실하여 생활지도도 인성교육도 팽개쳐 이제는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교과지도에 대한 도전까지 받는다면 이는 교권의 흔들림은 물론 앞으로는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조차 든다. 담임에 대한 파격적 승진 조건을 이대로 학교체제는 안 된다는 말은 이미 학교사회에 파다하게 확산되고 있다. 학생의 지도에 앞장서야 할 교사가 학생•학습지도에 흠이 있다고 한다면 이미 학교는, 담임교사는, 교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보다는 논밭에 허수아비로 취급될 것이다. 교육부는 교사 승진과정에 담임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학급에 두드러진 공적이 있었던 것은 승진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점수를 얻기 위해 시골학교로 몰려드는 현상도 방지하여 시골학교의 고령화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현 학교체제는 더욱더 빠르게 무너져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