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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세상에서 자기 자식처럼 귀한 것은 없다. 오죽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고 했을까. 자식들이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며 ‘기러기가족’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자식사랑이 그 도를 넘어 가정도 사회도 사랑의 채찍이 없어짐으로써 정신은 막대기처럼 야위고 몸뚱이는 비만인 ‘비정상아’로 자라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남을 짓밟거나 비정상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최고가 되어야 하고, 내 아이가 남에게 기죽어 사는 것을 절대 못 보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자기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평범한 진리는 모르는 것 같다. 자기 자식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남의 자식들의 피해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정교육의 부재 속에 어릴 때부터 나만 최고라는 생각으로 자란 아이들, 내 행동이 그릇되고 공동체 생활에 위배되어도 죄의식이 전혀 없는 무감각한 생활에 아이들은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다. ‘자식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옛날에는 서당에 자식을 맡긴 부모가 싸리나무로 한 아름의 회초리를 만들어 서당의 스승에게 바쳤다고 한다. 자식의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부디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요즘은 자기 자식에게만은 최소한의 ‘교육적 채찍’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육의 도시’에서 교직에 갓 발 디딘 젊은 여교사가 조카 같은 어린 초등학교 아이들의 잘못된 식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남보다 적극적으로 지도한 것을 두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학부모가 교사의 무릎을 꿇게 했다. 그것도 사전에 동반한 방송사 카메라 기자 앞에서다. 또한 사건 전날에도 담임교사의 집 현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사표를 내도록 강요하는 고성을 지르는 등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무시했다. 무심코 전화번호 하나 알려줘도 사생활 침해, 엄연히 학생규정에 명시된 대로 두발지도를 해도 인권 침해라고 난리치는 세상이다. 그러면 학부모가 교사를 무릎 꿇게 한 모습을 전국으로 방송하게 한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물론 교사의 지도가 아무리 교육을 위한 것일지라도 그 절차나 방법상으로 정도를 심각하게 벗어났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사를 무릎 꿇게 하는 학부모’ 앞에서는 소신껏 아이들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국 교육은 죽을 수밖에 없다.
충북교육청(교육감 이기용)이 학생 건강검진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일선학교가 노력해줄 것을 요청했다. 20일 도교육청은 “학생 건강검진이 연중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휴무토요일 등 특정일이나 특정월을 학교가 지정함으로써 건강검진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이 부족한 대기 장소에서 장시간 대기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학생 및 학부모 불편해소와 부실검진 방지를 위해서라도 건강검진이 분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도교육청은 “검진기관과 협의를 통해 대기장소 마련과 사전예약, 학교별 검진일정 조정 등의 방안을 지원할 계획이며 부실검진 방지를 위해 검진기관 지도, 감독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충북도교육청은 올해부터 학생 신체검사가 건강검진으로 바뀌면서 학교장이 지정한 병원을 학생들이 직접 찾아가도록 했으나 가급적 빨리 검진을 받기 위해 현재 5~7월에 집중돼 있는 형편이다.
전북 김제지역 모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부 과목교사 교체를 요구하며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김제 모 고등학교에 따르면 이 학교 3학년1반 학생 22명중 21명은 이날 오전 영어 과목을 맡고 있는 A교사의 수업이 시작된 10시30분부터 집단으로 교실을 빠져나와 교장실 앞에서 면담을 요구하며 1시간30분가량 수업을 거부했다. 학생들은 10시45분께 교장과 만나 특별실에 머물며 "A교사가 교내 집단 폭력 여부를 조사한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다 12시15분께 교실로 돌아갔다. A교사는 지난달 담당 학급에서 발생한 집단 괴롭힘 사건과 관련, 가해 학생에 대한 학교측 처벌이 미미했다는 이유로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다. 학교측은 "관련 조항 등을 검토해 교사 교체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회의실이 학부모들의 고성으로 떠들썩합니다. 평소 여자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점심을 빨리 먹도록 강요했다며 항의합니다. 식사시간을 지키지 못한 학생에겐 벌을 주고 반성문도 쓰게 했다는 것입니다. 학부모들은 어제(17일) 담임교사의 집을 찾아가 항의한데 이어 오늘 다시 학교를 찾아와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18일밤 SBS 8시뉴스의 중간쯤에 방송된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뉴스의 내용만으로는 정확한 정황을 알 수 없으나 교사가 학부모에게 무릎꿇고 사과를 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건의 경위야 어찌 되었든 교사가 학부모에게 무릎까지 꿇고 사과를 했다는 것에 대해 교사의 한 사람으로 착찹한 심정이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마음이 내내 무겁다. 학부모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교사들이 비일비재한 요즈음의 현실에서 그래도 언어 폭행에 그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 사건의 전말은 관계당국에서 자세히 진상조사를 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반면, 이런 장면이 어떻게 촬영되어 우리의 안방에까지 방영되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밝혀져야 한다. 뉴스를 보았다면 알 수 있겠지만 그 교사를 전혀 모른다면 알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교사가 누구인지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뉴스 앵커의 이야기 중에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교사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교사가 잘못했다고 치더라도(현재로서는 방송 내용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지만) 학부모가 그런식으로 나섰다는 것보다 더 아쉬운 부분은 언론의 자세이다. 분명히 공개적으로 미리 예견된 촬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SBS의 이런 태도는 해당교사에 대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음성변조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모자이크 처리도 적극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일반인들이 예측을 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옳다. 방송보도에서 인권을 충분히 지켜줄 수도 있었는데 그 과정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학부모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용히 인정하고 사표내면 조용하다고 했지 않았나, 여기 다 지식인들이야, 왜 흥분하게 만들어.' 흥분상태라고는 하지만 교사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큰 죄를 지은 상대를 대하듯 하고 있었다. 교사는 '정말죄송합니다.'라고 경어를 사용했다. 교사의 약점을 이용하는 듯한 학부모들의 행동 역시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사도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마음도 이해를 한다. 리포터 역시 교사이지만 학부모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런식으로 흥분상태로 대응하여 교사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방법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학부모들의 의견을 이야기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여기 다 지식인들이야, 왜 흥분하게 만들어.'라는 학부모의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학부모도 지성인이지만, 교사들도 지성인이다. 지성인과 지성인이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이런 방법밖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뉴스보기
한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잘 아는 쓰시마 섬은 한국에서 약 50 킬로미터 떨어진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한글 표기의 패트병이나 폴리 용기 등이 떠내려 와 북서의 계절풍이 강한 겨울이 되면 해안선은 쓰레기로 가득 차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쓰레기에 골치를 앓고 있는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에서는 지난 5월 20일 한국에서 온 학생들과 현지 주민 약 250여명이 해변에 쌓인 쓰레기의 수집 작업에 땀을 흘렸다. 쓰시마시는 전용봉투 등을 사용해 해수에 밀려온 쓰레기를 수집하고 있지만, 2003년에 약 140여개, 04년 약 250여개, 05년 약 400여개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곳에는 일반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 밖에 없기 때문에, 해수를 포함한 플라스틱이나 금속 제품의 처리는 어려워, 대부분의 표착한 쓰레기를 배로 후쿠오카까지 반송하여 처리를 하고 있고 한다. 이것을 안 쓰시마 출장지소에 근무하는 국제교류원, 박병준씨(37)가, 모교인의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에게 이의 문제를 제기하여 3년전부터 이같은 청소 작업이 시작되었다. 또한 이번에는 한일 학생이 해양 환경 문제를 모두 생각하는 「 제1회 한일 학생 쓰시마 회의」의 일환으로 한일 공동의 쓰레기 줍기가 실현되었다. 이 날은 현지 주민과 T셔츠차림의 학생들이 밀려온 쓰레기를 수집하였는데 이 가운데는 냉장고도 발견되어, 반출에 시간이 걸렸다. 이 행사에 참가한 한국의 한 학생은 「대마도의 깨끗한 해안에 한글 표기의 용기가 많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일본의 학생과의 교류도 확대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무심코 버린 하나의 쓰레기가 해외에서 발견되어 환경을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평소에 버리지 않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할 것 같다.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한분계시다. 영어선생님들의 수업을 도와주거나 아니면 회화수업에 적극활용되고 있다. 도시에서는 방학이되면 어학연수다 해서 난리들이지만 우리 시골학교에서는 감히 생각조차도 하기 힘든 일 들이다. 다행이 우리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파견되어 수업에 활용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일이다. 근데 문제는 일주일 동안 우리학교에만 계신것이 아니라 이웃학교에 순회를 다니시니까 우리 학생들의 불만 또한 크다. 다행이 현 정부가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기위한 여러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시골학교에 우선적으로 원어민 교사를 파견하는것도 좋은 정책이 아닐까 싶다.
윤종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22일 서울시교육청에서 교권침해 사건 진상 규명 및 대책을 촉구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회장은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 일로 교육계는 큰 충격에 빠져 있다"며 "교권확립과 교육신뢰 회복을 위해 교육행정당국이 적극 나설 것"을 촉구 했다.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내가 병이 날 것 같아서입니다. 나는 금년만큼 아이들을 많이 때려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산만하고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날마다 벌이는 자잘한 사고 앞에서 어느 사이에 내 손에는 작은 매가 비서 노릇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좋은 말로 하면 뭉개버리고 말도 듣지 않는 꼬마들이 손가락 길이만한 작은 매 앞에서는 "알았어요, 선생님. 싸우지 않을 게요. 밥 다 먹을 게요." 합니다. 1학년 아이들이니 서로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 주장이 강해서 자그마한 일에도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움질하기 일쑤입니다. 아직은 도덕성 발달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라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친구 마음을 다치게 합니다. 싸우고 때리고 울려놓고도 잘잘못을 가리려면 몰래카메라라도 있어야 됩니다. 도대체 자기 잘못을 말하는 아이는 없고 상대방 탓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친구를 때리고 욕하는 아이들은 연필을 쥔 손으로 친구를 때려서 피가 나게 하여 놀라게 합니다. 그러고도 자기 잘못보다는 씩씩거리며 상대방도 잘못했다며 어거지를 쓰니 꿀밤이 날아갑니다. 밥을 먹다가도 울리는 아이, 툭하면 때리고 도망가는 아이에게도 말이 안 통하면 꿀밤이 날아가곤 합니다.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꿀밤을 주고 있으니 스스로 속이 상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반 아이들이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습니다. 내 억양이나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꿀밤을 주는 모습을 보니 내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말로만 충고하자고, 꿀밤도 주지 말자고, 어떤 형태의 체벌도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합니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하니 아이들이 참 귀엽습니다. 나에게 그렇게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나는 듯 다시 내게 와서 선생님을 부르며 쫑알대고 손을 잡는 아이들이니까요. 미주알고주알 일러대는 모습, 선생님 주려고 뽑기를 했다며 핸드폰에 채워주던 최강,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그림마다 선생님이라며 공주를 그려놓고 하트 표시를 하는 강고은이의 예쁜 모습은 잊은 채, 날마다 질서와 정숙을 강요하며 전체 속에 집어넣고 일사불란하기를 바란 내 모습이 참 부끄럽습니다. 중국 명대의 사상가 이지는 "무릇 동심이란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맨 처음 갖게 되는 본심을 말한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이 없어지고, 진심이 없어지면 진실한 인간성도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의 귀엽고 천진한 모습은 바로 동심의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아이들 틈에서 질서와 순응을 배워가며 전체 속에 매몰되어 힘들어하는 아이,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을 차분히 끌어안지 못하고 바쁘게 채근하는 내가 죄를 짓고 있습니다.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동심을 잃지 않고 상하지 않으며 자랐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동심을 오래 지니고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동심이 사라지면 진심이 사라지고 진실한 인간성마저 상실된다는 한 사상가의 말씀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른들이나 부모, 선생님들이 할 일이 어린이를 어린이로 자라게 하는 일인데 무엇인가를 특별히 잘 하거나 촉망받는 직업인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볼 때입니다. 나의 귀여운 천사들이 그들이 지닌 동심을 하나도 잃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밝게 웃으며 아이들처럼 살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약삭빠르지 않고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으며 손해보는 일도 친구를 위해서라면 해줄 수 있는 지금같은 모습을 갖고 살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오늘은 개구쟁이 승현이가 3월 초에 걸어준 목걸이를 다시 걸고 학교에 가야겠습니다. 그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날마다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아이이지만 그 아이가 지닌 동심과 진심은 어른인 내가 따라갈 수 없을만큼 크기때문입니다. 문득 어제 아침에 승현이가 카네이션을 사왔다면서 내게 주려는 것을,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을 때리지 않고 예쁘게 지내면 받을 거야. 할 수 있지?"하며 거절했던 게 마음이 아픕니다. 그 아이의 동심을 상하게 한 못난 담임입니다. 아이들을 어떤 조건으로 평가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그의 인격을 존중해 줘야 하는 기본을 잊은 언행을 보인 내 잘못을 사과해야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날마다 어린이날인 것처럼 대우받으며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동심을 지니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듯 5월의 햇살이 참 밝은 아침입니다. 어린이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하신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의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 하느님을 잘 모시고 보살피는 일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하셨는데, 오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거나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먼저임을 잊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야단을 치고 꾸지람을 해도 돌아서면 다시 내게 달려오며 사랑을 표현하는 그 작은 꼬마들이 지닌 사랑만큼도 지니지 못한 작은 내 마음이 저렇게 밝은 5월의 아침 햇살에 숨고 싶은 아침입니다. 어린이 날이 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많이 꿀밤을 주고 야단을 쳐서 참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나도 동심을 회복하고 싶은 탓입니다. 나도 동심을 찾고 싶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하루에 TV나 인터넷, 컴퓨터 게임에 바치는 시간이 엄청난 현실이고 특히 유선방송이나 공중파TV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젊은 청소년의 취향과 그들의 기호에 맞춰가는 실정이라 이들을 상대로 방송하는 방송인들의 우리말 사용 습관과 우리말글 실력은 바로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전수된다. 따라서 방송인들이 일상 언어를 정확히 해야 하고 이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묘책이 요구된다. 지금은 불행하게도 하루에도 여러 번씩 다양한 채널에서 표준말이나 맞춤법에 맞지 않은 말씨, 서울 사투리, 잘못된 발음을 수시로 듣고 있다. 공개방송 사회자, 리포터, 기자, 기상 캐스터, 스포츠 중계방송 해설자, 개그맨, 심지어 원로 아나운서도 해당된다. 다행히 몇 몇 방송에서 우리말 퀴즈나 우리말 겨루기 같은 공개방송을 내보내고, 같은 프로그램을 연중 편성하고 있지만 방송인들의 말씨 고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지 두 가지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일시적 유행어나 비어, 속어는 제쳐두고라도 일상용어에서 즉시 고쳤으면 하는 것들을 꼽아 본다. 첫째, 서울 사투리 문제. 드라마에서는 적절한 사투리가 극 전개과정에서 재미와 실감을 더해주는 양념 구실을 한다. 그러나 뉴스 보도나 교양프로그램에서는 문제가 다르다. 지방에 살던 어린이가 서울 쪽으로 이사한 뒤 달라진 말씨를 보니 리을 덧붙이기식 발음이 심하다. 다르다[달르다], 기다려라[기달려라], 바르고[발르고], 부르고[불르고] 등의 발음은 연속극에서는 물론 정치토론 사회자, 인터뷰, 뉴스 취재기자의 말에서 너무 자주 듣고 있다. 둘째, 받침에 이은 토씨의 발음 문제. 꽃이[꼬시] 피었다. 젖을 [저슬] 먹다, 빚을[비슬,비츨] 지다, 볏짚이[볃찌비] 쌓였다, 밭이[바시] 보인다, 깨끗이[깨끄치]쓸어, 꿈도 사랑도 싣고[실코]…이 외에도 너무 많아 열거하기 조차 어렵다. 셋째, 두 갈래로 쓰이는 발음 문제. 역사극 방송에서도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은 가거라, 오너라, 먹어라 인데 “이리 오거라,” “어서 먹거라.” 라는 대사가 자주 나와서 그렇게도 사용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평소에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기도 힘들고 우리말에 과연 표준어가 있는지 의문이다. 짧다[짭따/짤따], 굵다[국따/굴따]로 나뉘어져 혼란을 주고 있으며, 젊은 출연자들 중에 다른 사람-[따른 사람]으로 잘못 발음하고 있고, 교과서, 중부지방, 효과[교꽈서], [중부찌방], [효꽈]로 발음하는 방송인이 있고, 또 어떤 방송 뉴스에서는 500원짜리 가짜 담배 관련 뉴스를 취재 보도하면서 ‘한 갑에 500원’이라고 할 말을 [한 갑세] 500원으로 전하는 것을 보고 ‘품삯은’, ‘책값을’, ‘넋이야’ 이런 발음을 제대로 전할 능력이 있는 방송인인지 청소년이 그대로 받아들일까 걱정스러웠다. 넷째,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상식 이하의 발음 문제. 이십 세, 삼십 세도 아니고 서른 살, 마흔 살도 아닌 칠십 구살, 이십 팔살 이라고 전달하는 뉴스앵커도 있었고, 기자들이 대부분 영상자료를 제시할 때 ‘화면 보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주어가 생략된 말로 이해할 것인지 의문이 간다. 어법에 맞는 말이라면 ‘진지 잡수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누워 계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생각하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등이 모두 통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본인의 생각으로는 ‘화면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또는 ‘화면 보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로 고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한 번은 개그맨 출신 방송 진행자가 명량대첩을 명랑대첩이라고 답한 출연자에게 힌트를 준다는 것이 ‘토씨 하나 차이’라고 지적했고 자막으로도 똑같이 그렇게 내보내었다. 토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진행자가 전하는 말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방송국의 무성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방송인들이 바른 언어생활의 첨병 역할을 해 주어야 앞으로 어린이, 청소년 언어생활이 바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 교육계에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듀나’라는 영화평론가 겸 소설가가 교사들을 향하여 저급한 독설을 쏟아내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스승의 날’이 휴무일로 되면서 이젠 ‘스승의 날’도 잃어 버렸다. 오월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기를 고대하였지만 오월이 되자마자 정부여당에서는 ‘교감제 폐지’를 들고 나와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든다. 현장의 교육활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쳤는지 묻고 싶다. 지금 참여정부에는 ‘참여’라고 하는 거창한 수사만 있을 뿐 실제적인 ‘참여’는 없다. 편향된 시각에서 특정 세력의 의견만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감이 필요 없으면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신 부교장을 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교감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정부나 열우당에서 제안하고 있는 법안이나 제도들이 이처럼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 그래서 늘 비난의 대상이고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부분의 제안들이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황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교감이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교감의 하루’를 단 한 번이라도 따라 가 보라.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고, 그 동안 근무했던 학교의 교감선생님들은 담임이나 부장교사 이상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 자율학습에서부터 시작하여 저녁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늘 함께 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때로는 교사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조정해야 하고,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승진을 하고서도 저렇게 고생할 거라면 아예 승진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부교장 제도를 제안하면서 교감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이것은 교장선출제와 연결되어 있어 학교 현장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선출제에서의 교장은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하고 대중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적이고 대중적 역량이란 교육에 대한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인맥 관리를 통해서 길러질 수 있다. 또한 ‘부교장 제도’가 교장으로 선출되기 위한 주요 경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은 뻔하지 않은가. 교장은 누구를 부교장으로 지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교장 선출에 공헌도를 감안하여 임명할 것 아닌가. 교원들에게 정치적 역량을 학습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교육의 본질 추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현행 교감제도와 차별화된 점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개선된 점은 없는 것 같다. 개악이 지나지 않는다. 얄팍한 술수를 가지고 교원정책을 논해서는 안 된다. 교원정년 단축과 연계된 또 하나의 시도라는 지적도 있다. 그럴듯한 지적이다. ‘교감제 폐지 법안’에 따르면 승진 폭이 훨씬 좁아지게 되고 선출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절망하게 되어 조기 퇴직을 유인하는 기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도 혁신이 피곤하다고 속내를 보인 바가 있다. 정말 피곤하다.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 놓아 누구라도 공감하는 제도라면 몰라도 제안하고 있는 정책마다 이해집단간의 싸움만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저쪽 이야기도 들어보고 지금까지 제도의 틀에 맞추어 살아온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 보아야 한다. 제도의 희생자를 양산하는 개혁이나 혁신은 공감을 가져오기보다는 반발을 가져온다. 어떤 분야든지 구성원의 성장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조직에 활력이 있는 것이다. 교직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수업전문가로서, 교육행정가로서, 교육전문직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으면서 교육적 본질에 맞는 정책 제안을 기대해 본다.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원을 원하는가 아니면 정치적 역량을 갖춘 교원을 원하는가. 더 이상 교원들을 ‘진흙 구덩이’의 정치판으로 끌어 들이지 말아야 한다. 정부나 여당에서는 교직안정의 토대 위해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글쓰기 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어떤 책은 선보인지 5개월만에 6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소설이나 시집같은 문학류가 아닌 책으로는 대단한 판매부수이다. 그만큼 글쓰기의 필요성이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독자층은 대입논술을 앞둔 고교생이 아니라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회사원들이 주를 이루었다는게 출판사의 조사결과이다. 하긴 학교에서도 “글쓰기에는 워낙 재주가 없어서…” 라는 말을 곧잘 듣곤 한다. 그 말은 유감스럽게도 겸사가 아니다. 직무와 관련한 일종의 ‘영업기밀’ 이라 미주알고주알 까발릴 수는 없지만, 열에 아홉은 진짜로 글을 못쓰는 것이다. 한두 번 첨삭으로 꼴이 갖추어지는건 그나마 다행이고 아예 통째 바꿔 써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인터넷시대의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에 힘입어 어찌어찌 컴퓨터를 배워 홈페이지 등에 글을 올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거의 모두 ‘인터넷식’ 이다. 글쓰기의 기본기가 갖춰진 글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니 말이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 사용이 교원근무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글쓰기 역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만이 배우고 지녀야 할 특기가 아니다. 또 소질이나 재주따위로 치부해버리며 부담없이 넘어갈 문제도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의 느낌이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전달하는 수단이다. 특히 교원의 경우 교장 등 관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공을 불문한 교사 모두가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필수과목이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아예 학생들은 글쓰기라면 차라리 죽을 맛이라는 반응들이다. 고교 3학년을 멀쩡히 수학하고 졸업까지 했는데, 논리적인 글은커녕 편지 한 장 제대로 쓰지 못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그 근저에 입시지옥이라는 주범이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교원의 글쓰기는 어느 정도 진척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컴퓨터 보급과 더불어 의무적으로 실시했던 연수처럼 글쓰기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교장이나 교감자격 연수시 리포트 제출 등 소정의 과정을 이수했을텐데도 왜 글쓰기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담당교수의 봐주기 내지 형식적 연수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교원임용고사에서부터 글쓰기과목을 넣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전공이나 초·중등을 불문하고 글쓰기가 교사임용의 필수조건이 된다면 지금처럼 글 못쓰는 교원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특히 교감·교장자격연수, 전문직(장학사·연구사)시험이나 교육장 공개전형에는 반드시 글쓰기 과목을 넣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이때의 글쓰기는 소설가같은 전문적 소양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철자법이라든가 문단나누기같은 원고지 사용법, 문장의 호응 등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글쓰기가 되어 있는지 측정하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나 특기가 아니다. 저절로 타고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글쓰기 역시 이론적 공부와 함께 부지런히 익히고 또 익히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늦었지만, 전 교원의 글쓰기 연수가 시급한 시점이다.
최근에 교육부는 새로운 안을 계속 언론에 흩뜨리고 있다. 부교장 제도, 수석교사제도 등 교사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수석교사제를 시행한다고 하였으면 그 안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서서히 나와야 하는 데도 부교장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여 교감들의 불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좋은 것 같지 않다. 교장초빙제도도 그렇다. 교장초빙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여 시행하는 방안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학교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담임제도다. 학교에서 가장 기초적인 학급담임제도가 무너지고 있고, 그에 따라 학생의 생활지도와 교과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학교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현 실정인데도 수석교사제, 부교장제도 등의 논의가 학교사회를 바르게 진단하고 있는 것일까? 학급담임 기피는 무사안일주의의 전형 어느 집단이나 어느 체제나 그곳에 속한 구성원들의 개성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McGregor는 인간의 특성을 두 계층으로 분리한 바 있다. 스스로 노력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는 인간이라는 두 유형으로 나누면서 스스로 노력하는 인간은 어느 그룹에서나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많고 많은 사람들. 아니 많은 교사들과의 생활을 통해 느끼고 들은 바 있다면, 그것은 현실에서의 만족을 얻고자 하는 특성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남보다 앞서고자 하는 경쟁의식을 가지기보다는 서로 즐기면서 어우러져 살아가고자 하는 이가 많은 것이 교사 집단의 한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교사가 담임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의식이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문제는 보통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다른 의도로 해석하면 교사가 학생을 외면해 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처지가 아닌가? 교사는 행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채용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행정의 일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의도도 아니다. 다만 교사가 학생 담임에 기피증이 일어나고 자가만의 영역을 지키면서 더 이상 다른 것에 관심을 쓰지 않는다면 기존의 학교 체제는 근본적으로 대수술을 할 필요가 있다. 학생을 지도하고 이끌어 가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시켜 주려는 의지가 없는 담임교사가 다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교육부가 교사를 잘못 채용했거나 아니면 교사 자신의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담임교사에 대한 새 대안이 필요한 극한 시점에 이르렀다. 무사안일주의 사고에 빠져있는 교사에게나 그렇지 않는 교사에게나 똑같이 성과급을 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 교사의 승진에 있어서도 최소한 10년은 담임으로서의 경력을 갖추어야 하는 안과 그 경력에서 80%이상을 ‘우’이상의 근평을 받아야만 하는 단서 조항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담임을 기피하는 현 체제에서 담임제도가 형식으로 치우치면 치우칠수록 중고등학교 담임체제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자라나는 후세를 길러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상황에서 담임이라는 존재가 부실하여 생활지도도 인성교육도 팽개쳐 이제는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교과지도에 대한 도전까지 받는다면 이는 교권의 흔들림은 물론 앞으로는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조차 든다. 담임에 대한 파격적 승진 조건을 이대로 학교체제는 안 된다는 말은 이미 학교사회에 파다하게 확산되고 있다. 학생의 지도에 앞장서야 할 교사가 학생•학습지도에 흠이 있다고 한다면 이미 학교는, 담임교사는, 교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보다는 논밭에 허수아비로 취급될 것이다. 교육부는 교사 승진과정에 담임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학급에 두드러진 공적이 있었던 것은 승진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점수를 얻기 위해 시골학교로 몰려드는 현상도 방지하여 시골학교의 고령화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현 학교체제는 더욱더 빠르게 무너져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기수업’이란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사회ㆍ정치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는 주제나 사건이 있을 때 필요에 따라 별도로 실시하는 수업을 말한다. 교육부에서는 학교의 교육과정위원회나 운영위원회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학교장의 사전승인을 거쳐 학년·교과협의회를 통해 교수학습안을 작성해 계기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7차교육과정 상에도 재량활동 및 특별활동을 통하여 다양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교장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계기수업 자체는 문제되지 않으며 교육적이라면 오히려 활용을 적극 권장할 일이다. 현재 각종 국경일과 기념일이면 조․종례 시간과 수업시간, 필요하면 가정통신이나 별도의 시간을 확보하여 다양한 계기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그때마다 학교장의 승인을 받은 후에다. 정치․사회적 특정 사안에 대해 교사가 자신의 수업이나 교육활동에서 나름의 소신을 피력할 수는 있다고 본다. 헌법 제31조 제4항의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보장 외에도 교육기본법 제6조 제1항에는 ‘교육은 교육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어떠한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교육의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다. 즉, 계기수업 자체가 교육과정에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교육 중립성을 훼손하고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 이는 교사 입장에서 보면 권한남용이자 교육을 빙자한 사상학습이며,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인 방침을 주입시키는 명백한 ‘교육폭력’이다. 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이 희망을 갖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며 장차 사회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리분별 능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자칫 균형 감각을 상실한 한쪽의 주장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FTA 협상' 문제도 그렇다. 이번 전교조 주관의 FTA 관련 계기수업에는 FTA 반대 파업 투쟁에 나선 단체와 영화배우 등이 동원됐다. 학생들에게 ‘교육적’ 차원에서의 ‘객관적’인 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진정 학생을 위한 '교육적' 계기수업이 되려면 'FTA 협정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학생들이 깊이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계기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판단 능력을 키워주는 범위 내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그것도 가능하면 교사들에 의해서다. 사회 현안이 있을 때마다 계기수업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처럼 유명 연예인 등 외부 인사들의 힘을 의존하는 모습을 학부모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국민들에게 교직에 대한 편향되고 왜곡된 인식만 심어주게 될 것이며 ‘계기수업’ 그 본래의 취지나 목적을 퇴색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교육적' 차원을 벗어난 무분별한 계기수업은 교육의 본질 면이나 교육과정 운영상으로 봐도 주객전도(主客顚倒)요 본말전도(本末顚倒)인 것이다. 지금의 정치인은 국민이 뽑아줄 때의 생각이나 마음은 까맣게 잊은 채 국민이 올바르게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일은 제쳐두고 오직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 정치공방만 하는 본말전도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5월의 유독 감사해야 하는 날이 많다. 뿐만 아니라 봄과 더불어 찾아오는 낭만과 운치가 만물을 완연하게 소생시키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감사의 낭만의 달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다소 괴로운 달이 되기도 한다. 일선 학교에서는 이런 오월에 유독 글짓기나 독서 감상문 대회 등을 자주 열게 된다. 물론 아이들의 독서와 논술 향상을 위한 것도 있지만, 다분히 형식적인 행사로서 아이들에게는 괴로움을 안겨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단체에서 아이들의 글짓기 공모전에 참가해 달라는 협조 공문이 하루다 멀다하고 일선 학교 현장으로 날아든다. 이거 아이들이 글짓기 선수도 아니고! “이거 해도 너무하는 것 같애. 아이들이 무슨 글짓기 선수도 아니고, 하루가 멀다하고 무슨 기관 단체에서 글짓기 협조 공문이 오니 말이야.” “학교에서도 오월이면 어버이 달이다 스승의 달이다 해서 이런 저런 글짓기 행사를 많이 하는데, 여타 많은 단체들에서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협조 공문을 보내니 선생님께서 괴로우시겠습니다.” “인근에 있는 단체들의 협조 공문이니, 학교 체면도 있고 해서 하기는 한다 만은….” “교장 선생님도 딱 거절하시니 못하니, 어떡하겠어요. 인근 일선 단체들도 모두 학교와 연계되어 있어 지역 사회에서 혹시나 관계가 소원해지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여러 모로 어려운 점이 많겠습니다.” “아이들만 죽어나는 거지 뭐. 정말로 글을 써고 싶어서 써도 힘든 판국에 억지스럽게 글을 만들어 내야 하니 오죽하겠어.” 오월은 기관 단체별로 여러 가지 행사가 많이 열리는 달이다. 이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모든 단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행사를 개최하고 그 연계선상에서 청소년들의 생각을 담은 많은 글들을 무슨 행사의 작은 부야쯤으로 생각하고 뽑아서 시상을 하곤 한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기관단체의 행사에 반쯤 강제로 참여하는 셈이다. 물론 담당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주말까지 반납하며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물론 아이들은 대부분 그저 학교의 공식 행사거니 하면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심 속으로 선생님을 원망하는 수도 있을 터이다. 선생님 저 상금 안 받을 랍니다 이런 기관 단체의 행사와 관련된 글짓기 공모전이나 대회에서는 동기 유발 차원에서 소정의 상금이나 상품권을 걸어 놓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학생들에게는 꽤나 많은 상금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런지 몰라도 가끔은 그런 기관 단체에서 열리는 행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선생님, 올해는 작년에 열렸던 ○○대회 열리지 않습니까?” “왜, 작년에 글짓기에서 상금받았다고 너무 우쭐해진 것 아니야.” “아이, 선생님도 제가 어떻게 돈에 눈이 멀어서….” 하지만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에서 무슨 기관 단체에서 열리는 글짓기 공모전에 참가해 입상을 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특히 글짓기 실력이 대회에 참가할 만한 아이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몇몇 아이들이 여러 기관의 공모전이나 행사에 집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선생님, 저는 올해 글짓기 하지 않을 겁니다. 작년에 일요일날 교회도 못가고, 시험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글짓기 대회 나갔다가 정말 후회했어요.” “이놈아, 그렇다고 네가 나가지 않으면 우리 학교에서 누가 나가겠니!” “선생님 그래도 올해는 절대 나가지 않을래요. 억만금을 준다해도 나가지 않을 거니까 선생님 괜한 기대 걸지 마세요.” 어떤 아이는 사전에 내가 글짓기 대회에 나가자고 부탁할 것을 알고 거절을 하는 경우도 심지어 생겨나기도 한다. 수많은 글짓기 대회가 아이들에게 동기유발이 될 수 있을까! 글을 본디 마음에서 흘러 넘쳐 써지 않고는 못 배길 때 써야 제대로 되는 법이라 배웠고, 또 글을 조금 써보니 정말로 그렇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정작 교사로서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이런 동기유발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글짓기가 마치 무슨 행사의 전리품인냥 되어가는 모양새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물론 양질의 글짓기 대회나 공모전에는 많은 아이들이 참가해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그에 따라 좋은 대가를 받는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무슨 날만 되면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일선 기관 단체에서 아이들이 마치 글짓기 공장의 글 찍어 내는 노동자인냥 생각하고 일선 학교로 협조를 구하는 것은 자못 우리 아이들에게 잘못된 글짓기 관습으로 고착화 될까봐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요즈음 일선 학교에서는 논술이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지도에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다. 특히 상위층 학생들은 저마다 논술이 제일 중요한 줄 알고, 학교의 특기적성이나 계발 활동 시간에 논술반에 몰리기도 하는 조금은 서글픈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대학입시라면 목을 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일선 학교에서는 자주 독서 감상문이나 여러 과목에서 논술관련 글짓기 대회를 주관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제대로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는 무수한 주제를 놓고 써야만 하는 얄궂은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렇다 보니 인터넷에서 그대로 옮겨 오는 경우도 허다하고, 일부는 누구에게 부탁을 해서 써 오기도 하는 부정적인 일들이 곧잘 일어나가도 한다. 오월은 정말로 감사의 달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자못 그런 감사의 달이 글짓기로 인해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날이 될 법도 하다. 어른들의 잘못되고 이기적인 생각이 우리 아이들을 정말로 글짓기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글을 쓰면서 그 대상을 향해 마음 속 깊은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몇 자라도 정말로 형식적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글들을 우리 아이들의 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교육환경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의 올곧은 시각이 정말로 절실히 요구되는 때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스승의 날이 지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엊그제 황당한 뉴스를 보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올해 스승의 날은 휴무를 한 학교가 많았습니다. 꽃 한 송이도 못 받고 제자들과 떨어져 하루를 보내는 선생님들의 마음도 허전하고 씁쓸한 하루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학부모님들께서 자녀를 교육하면서 속상했던 일은 없으셨나요. 아이들이 말은 잘 듣던가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 하던가요? 웃어른을 공경 할 줄 알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던가요? 제가 초임 교사시절에는 아이들이 말을 잘 들었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힘이 드는 줄을 몰랐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요즈음 아이들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말을 잘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이 많아서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을 하나 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과잉보호를 하면서 키우고 아이들 기를 죽이지 않는다고 공공질서를 잘 지키지 않아도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어도 바로잡아주는 부모 보다는 감싸주려고 하기 때문에 나 밖에는 모르는 왕자처럼 공주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우선 식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며 장난을 쳐도 부모님들은 그냥 방치합니다. 다른 손님들이 눈살을 찌푸려도 내 아이 기를 살려준다고 바로잡아주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직 내 자식만 최고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커서 지구촌 시대가 되면 세계 어느 곳도 이웃처럼 오고 갈 텐데 어려서부터 철저한 공공질서를 배우며 자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것인가 걱정이 앞섭니다. 식사예절과 급식지도는 요즈음 선생님들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배운 식습관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에 여러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내야 하는 선생님들의 고충은 한번쯤 생각해 보셨는지요. 선생님의 생활지도에 문제가 있으면 담임선생님 또는 영양사, 교감선생님과 충분한 상담을 거쳐 시정되도록 하는 방법이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요. 교권은 선생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학부모님의 자녀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학부모님의 자녀가 이번일로 받은 충격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무뤂을 꿇게 한다고 자녀교육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학부모님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을까요? 교육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크고 넓게 보셔야 합니다. 나무만 보시지 말고 더 넓은 숲을 보셔야 합니다. 더 심한 것은 이런 일들을 언론에 터트려서 어떤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청주는 교육도시입니다. 우리학교 우리고장의 이미지에 어떤 도움을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대학 교수가 자녀가 질문한 내용을 바로 가르쳐주지 않고 “ 아빠는 잘 모르겠으니 내일 담임선생님에게 여쭤 봐라 ”라고 한 다음 담임선생님께 아이가 한 질문의 답을 전화로 알려드려서 자식이 담임선생님을 존경하게 하였다는 일화를 들은 적은 없으신지요? 어느 것이 내 자식을 위하는 길인지 교육적인 것인지 깨우쳐 주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의 문제는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육에 더 많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세살 버릇부터 잘 가르쳤는지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학부모님의 아이가 교육받아야 할 기간은 대학까지 졸업하자면 14년은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 가정교육을 잘 시켜서 훌륭한 아이로 키우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신문기사의 일부분입니다. 이런 사태(?)를 접하면서, “이게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어린이들이 설마 이렇게까지!” 하며 강한 의구심과 함께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이놈의 세상이 어찌 되려고 어린 것들까지 점점 싸가지 없게 지껄이나 몰러...” 이러한 추세에 한 어르신은 혀를 끌끌 차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어린이들만의 탓이겠습니까? 물론 어린이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어른들이 더 많이, 더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욕설을 권하는 대한민국 제가 보기에도 대한민국은 욕설왕국입니다. TV드라마에서 이제 욕설은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한 양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화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욕설을 빼면 영화 자체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인터넷에도 욕설이 난무합니다. 자기와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갖은 욕설을 퍼붓고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습니다.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정치인, 경제인 등 소위 모범이 되어야 할 공인이나 지도급 인사들도 걸핏하면 폭언과 막말과 비속어를 일삼아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방송을 장식하니,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앞을 보면 욕설, 옆을 보면 비속어, 뒤를 보면 막말’이 난무하는 이런 사회적 악조건 속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이 바른말 고운말을 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3급수도 안되는 한강물에서 1급수 열목어나 산천어가 살기를 기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청소년들에게 욕설은 반항의 문화코드? 어린이들이 이 정도이면 청소년들은 어떨까요? 차마 옮길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고교생 33명(한 학급) 중에서 욕설을 거의 안 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니까, 겨우 세 명만이 손을 들었습니다. * 청소년들이 많이 쓰는 욕설과 비속어 * - fuck you, 뻐큐, 빠큐, 凸, 가운데손가락 등등 - X까, X빨아, X도, X나, 존나, 존내, 조낸, 졸라, 욜라, 열라 등등 - X할, X팔, X발, X부랄, X새끼 등등 - 승질 박박 긁는 울 담탱이, 재수 없어, 지랄, 깝싸네 등등 바야흐로 욕설의 대중화,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지요. 일부 청소년들과 매체에서는 욕설도 하나의 문화코드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이제는 무엇이든 갖다 붙이기만 하면 ‘문화’입니다. 예전하고 다른 요즘 청소년들의 욕설 세태를 몇 가지 든다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점점 거침없고 당당하고 대범해졌다는 점입니다. 영화나 인터넷을 통해 ‘멋진 욕’을 배워오면 오히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끌고 영웅시된다고 합니다. 또한 요즘은 남녀를 불문하고 욕설과 비속어를 내뱉는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일명 노는 남학생들만 주로 욕설과 심한 비속어를 썼는데 반해, 요즘은 여학생들까지 가세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복을 입은 예쁜 여학생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아주 자연스럽게 튀어 나올 때는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모범생들도 욕설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선생님과 부모님만 없으면 이들의 입에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욕설과 비속어가 튀어나옵니다. ‘서울대 여학생들도 복도에서 스스럼없이 욕을 해댄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렸습니다. “인터넷, 대중매체 등 아이들의 의사소통 네트워크가 넓어지면서 언어교육을 담당할 주체가 사라졌다. 학교는 힘이 없고, 가정은 무지하며, 사회는 무책임하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무너질 것”이라고 서울교대 황정현(국어교육) 교수는 우려를 표시합니다. 어른들부터 대오각성하고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욕설이나 비속어를 거침없이 내뱉는 우리 아이들을 방관하지 말고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의 자녀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님들부터 먼저 바른 말 고운말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바담풍할 테니 너는 바람풍하라’는 격이 되고 맙니다. 아울러 자녀들이 바르지 못한 말을 쓰면 따끔하게 지적해야 합니다. 댁의 아이는 건강한가요? 다들 ‘내 아이만은 안 그러겠지’하고 방심하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지도하는 학생 중에 전혀 욕설을 할 것 같지 않은, 아주 애 띠고 예쁘장하게 생긴 녀석이 한번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열심히 주고 많고 있기에 가만히 옆에 가서 보았더니, 친구랑 심한 욕설을 주고 많으며 이른바 ‘문자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교육상 아무래도 부모가 아는 것이 좋겠다 싶어 어머니께 연락드렸더니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며 펄떡 뛰시더군요.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때로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다른 사람 다 아는 사실을 부모만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얼마 전 학교에 가서 저희 아이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온 집사람이 아이를 세워놓고 눈물 쏙 빠지게 혼내고 있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글쎄 저희 아이가 학교에서 가끔씩 “졸라 좋아요.”라는 말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묻더라네요. “혹시 아버님이 욕설을 더러 하시나요?” 재작년부터인가 태권도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가끔씩 “아이, 씨!, 졸라 맛있겠다!” 이런 표현을 쓰기에 크게 혼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집 대신 학교에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졸라’가 ‘무척’이나 ‘매우’의 뜻이 아니라 남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아주 나쁜 욕설이자 금기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아울러 ‘졸라’의 원형에 해당하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 그 비슷한 욕설까지 설명하며, 쓰면 왜 안 되는가를 일러주었습니다. 아이의 표정을 보니, 화를 내며 무조건 쓰지 말라고 했던 지난번과는 분명 달라보였습니다. “욕설은 듣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욱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는 행실이 좋은데, 술만 마시면 개로 변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물도 잘 생기도 좋은데, 가까이 접근하면 오래 된 재떨이 냄새가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술, 담배도 안하는데, 입에 욕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 행실이 불량하면 욕을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입에 욕을 달고 다니는 것은 정말 보기 안 좋더군요. 이 모든 것들이 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동이니 자제합시다. 멋 내고, 옷 잘 입고, 성형수술하고, 다이어트 하는데 들어가는 돈과 노력과 시간 중에서 아주 조금만을 술, 담배, 욕설 등을 줄이는데 투자한다면 자기 자신을 남들 앞에서 훨씬 좋게, 가치 있게 보일 수가 있을 텐데... ” 한 누리꾼이 욕설을 남발하는 학생들과 어른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다면서 토로한 푸념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꾸던 우리나라는 군사대국도 아니요, 경제대국도 아니었습니다. 문화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문화대국은 고사하고 욕설왕국이 되어 가는지 안타깝고 서글프기 짝이 없습니다. 다 알다시피 거친 말은 심성도 거칠게 하고 또한 행동까지 거칠게 만듭니다. 반대로 곱고 좋은 말은 심성도 순화시키고 행동까지 좋게 만듭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언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언어사회는 현재 사막과도 같아서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거칠고 메마르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심한 욕설이 난무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어서 빨리 전 국민이 바른 말 고운말을 생활화여 다시 기름진 옥토로 되돌려야 하겠습니다. 프랑스에서 살다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랑스의 경우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시(詩)를 3백편 가까이 외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 사람들의 대화에는 자연스럽게 시가 등장한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없이 부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불명예스러운 ‘욕설왕국’이라는 딱지를 벗어버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답게 성숙한 ‘문화대국’으로 한걸음 성큼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교권(敎權)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교사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벌이다가 학부모의 항의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는가 하면 가장 존중받아야 할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폭행당하는 일까지 터져나왔다. 스승의 권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 어이없는 교권침해 실태 = 19일 오후 3시30분께 인천시 연수구 Y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종례 훈시중이던 담임교사 S(23.여)씨가 K(15)군으로부터 폭행당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인천시 교육청에 따르면 K군은 S교사에게 "종례를 빨리 끝내라"고 소리치며 교실을 나가려다 이를 저지하는 S교사를 밀어 넘어뜨린뒤 발로 수차례 걷어 찬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현장에는 동료학생 30여명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제지를 하지 못했고 해당학생은 자신을 말리던 동급생들에게도 주먹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K군은 한 달 전에도 S교사에게 폭언을 했다가 징계위에 회부돼 특별인성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앞서 18일 오전에는 청주시내 한 초등학교 회의실에 이 학교 2학년 학생의 학부모들이 찾아와 담임 여교사의 징계를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고 이 여교사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무릎을 꿇겠다"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는 이 교사의 경우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벌이다가 학부모의 협박에 못이겨 이런 수모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2005년 9월 경기도 A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는 새로 발령받은 미술교사가 수행평가를 실시하던 중 학생이 작품을 부수고 교사에게 대드는 일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이 사건 전에도 해당 교사에게 "신규교사 주제에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면 짓밟아 버릴거야"라는 등의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는 것. 이에 학교측은 자치위원회를 개최, 이 학생에게 '사회봉사명령' 처분을 내렸다. 경북 C초등학교 학부모 김모씨는 작년 5월 '담임교사가 자녀를 집중적으로 표적 삼아 학대한다, 자녀가 교도소 생활과 같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허위 민원서를 지역교육청에 내면서 해당 교사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학부모의 폭언과 폭행, 협박 등 부당행위로 인한 교사들의 피해사례는 52건으로 전년도의 40건에 비해 30% 증가했다. ◇ 교사-학생, 교사-학부모 '신뢰 상실' = 이처럼 교권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교원과 학부모, 학생 등 교육주체간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부 교원의 금품 및 촌지수수와 성폭행, 성적조작 등 각종 비리문제가 불거지면서 교육계에 대한 불신은 커져왔다. 실제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맹형규 전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2∼2005년 상반기 교원이 성추행이나 성폭행, 혼외 성관계를 했다가 징계를 받은 건수는 모두 52건으로 가장 많았다. 직무불성실 및 직무거부에 따른 징계가 49건으로 그 뒤를 따랐고 불법단체 가입 및 불법 집 단 행동 33건, 회계 및 인사 문란 28건, 외부 금품수수 27건, 폭언ㆍ폭행ㆍ체벌ㆍ 불화ㆍ음주추태 19건, 직원과 학생에 대한 감독ㆍ지도 소홀 19건, 성적ㆍ입학ㆍ출제 등 부정 9건 등 이었다. 다른 직종보다 엄격한 도덕적 책임이 수반되는 교직사회에서 일부이긴 하지만 비리문제가 불거지면서 교직사회 전체가 학부모와 학생 등 다른 교육 관련 주체로 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교원단체들은 정부가 최근 교원복지 강화정책을 실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정년단축과 교원평가제 실시, 부적격교사 퇴출 등 교원지위 약화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점도 교권 약화의 한 요인으로 교원단체들은 꼽고 있다. 교총 관계자는 "정부가 모든 교사들을 반개혁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세우다 보니 상당수 국민들이 교육계를 폄하하고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 대책은 없나 =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각 교육주체들이 교권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총 관계자는 "일부 교사의 경우 교원으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하는 교사들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 교원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고 전문성을 높인다면 무너진 교권을 어느정도 회복하면서 교육계가 존경받는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가칭 '학생교육 및 교권보호법'이 제정되고 학교내에서 학부모들의 과도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대책 등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교원단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무모 상담ㆍ민원 절차를 마련하고 학생지도 방법 및 징계절차를 학칙에 규정, 교권침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협박과 폭언, 폭력행위가 있는 경우 교사나 학교장이 즉각 경찰에 고발토록 하는 등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교육부는 교권침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권 보호 법률지원단'을 설치하고 교권침해사례를 은폐하거나 늦게 보고하는 학교장을 엄중 문책키로 하는 등 교권보호 안전망도 조속히 구축키로 했다.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은 최근 청주시내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권침해 행위와 관련, 교사의 숭고한 권위와 명예는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교권침해나 학생을 볼모로 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육감은 이날 오후 '교육 가족에게 드리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다시는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교직풍토 조성방안 마련 ▲교권 보호 안전망 구축 ▲건전한 교육적 요구와 의견은 수렴하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결연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학교 경영의 자율성과 교수.학습권을 보장하되 책무 소홀에 따른 책임을 추궁하고 각급 학교 급식여건 개선과 함께 학교 급식의 질적 향상에도 힘써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충북의 교육가족들은 심기일전해 교육열정에 불을 지피고 신뢰와 화합으로 희망찬 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앞서 노재전 청주교육장은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 "학생지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학부모들이 교사의 아파트 및 학교를 찾아가 사과와 사직을 종용한 것은 명백한 교권침해"라며 "학부모들이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성 회복과 교사 존중 풍토 조성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비례대표․교육위)이 발의할 예정인 가칭 ‘학교촌지금지법’에 대해 찬반 측의 욕설․비방이 가열되면서 도마 위에 오른 교권이 벌써부터 난도질당하고 있다. 촌지를 건넨 학부모에게 실형을 내리고 교사에게 금품 가액의 50배를 과태료로 부과하는 내용에 대해 토론을 진행 중인 진 의원과 한국교총의 홈페이지에는 찬성 측 네티즌들의 ‘교사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애 피해 입지 말라고 얼마 전 ‘기본’ 액수를 건넸다”는 한 네티즌은 “양심적인 교사는 많아야 5%도 안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상품권 선물에 영수증 포함(교환용), 도서에 봉투(현금10만원 이상), 소풍에 과일(골든키위 이상)에 일당, 집에서 먹는 집 반찬까지…정말 해도 너무 한다”며 찬성했다. 심지어 “한국 학교에는 어떤 형태로든 촌지가 존재하며 학생을 볼모로 받는 촌지교사는 한마디로 인질범”이라고 몰아붙이고 “모두들 삥을 뜯겼다는데 뜯어먹은 ××은 없다니…짐승만도 못한 저것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죽이고 싶다”는 독설 등 게시판에서 교사는 이미 ‘공공의 적’이 됐다. 이에 대부분의 반대론자들은 “촌지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인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고 실천의 문제”라며 “특정 집단을 부패집단으로 기정사실화하고 겨냥한 입법은 교권을 넘어 사제 간을 무너뜨릴 뿐”이라는 입장이다. 일부는 “그렇다면 정치인부터 가장 먼저 입법화하고 경찰, 일반 공무원, 군인 등 특정 집단에 대해서도 떡값근절법을 따로 만들라” “새삼스런 입번 제안은 한탕주의 정치적 술수”라는 격앙된 반응이다. 진수희 의원은 답변에서 “네거티브 한 방법으로 우리 학교현장을 바꿔나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도 “촌지근절법안은 제정되었을 때 촌지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추진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촌지근절에 대한 법안을 만들어도 의원들마다 생각이 달라 교육위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교육위원 측은 “특정 집단을 겨냥한 입법례는 없고 과잉입법적 성격도 짙다”고 말했다. 현재 진 의원 홈피의 설문결과는 입법 찬성이 69%, 반대가 29%이며, 한국교총 설문 결과는 찬성 38%, 반대 72%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교육연구원(원장 임웅환)은 국가보훈처(처장 박유철)와 함께 ‘제2회 초·중등교사 나라사랑 교수학습 프로그램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나라사랑 정신 함양 교육이 학교교육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시행되는 이번 경진대회는 독립정신, 국가수호정신, 민주정신 등 나라사랑 함양을 주제로 일선 교사들이 작성한 교수학습지도(안)(초등학교 80분, 중학교 90분, 고등학교 100분 분량)을 심사하게 된다. 응모신청은 6월 12일부터 7월21일까지 우편이나 방문접수하면 된다. 제출된 ‘나라사랑 교수학습 프로그램’에 대해 서면심사와 8월 10일 프리젠테이션 심사를 거쳐 최종 우수작(초·중등 구분 대상, 우수상 각 1편, 장려상 3편)을 선발하게 된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www.mpva.go.kr)나 보훈교육연구원(edu.e-bohun.or.kr)을 참고하면 된다. 문의=031)250-8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