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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저는 외식을 하지 않고 배달음식도 먹지 않습니다.” “와! 어떻게 외식을 안 하고 살 수가 있어요?” 거리를 두고 둥글게 둘러앉은 좌중에서 감탄사가 쏟아졌다. 자율장학 사후협의회가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가! 그렇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장면은 자율장학 사후협의회 모습이다. 교장선생님께서 특별한 자기소개를 제안하셨다. 자신이 잘하는 걸로 자신을 소개하되, 아주 소소한 자랑거리를 말하는 자기소개였다. ‘벌레를 손으로 잘 잡습니다’ ‘지저분한 걸 잘 참습니다’ 등 동학년 선생님마다 정말 사소한데 생각보다 대단한 결과를 가져오는 자랑거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협의회를 시작할 때,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수업을 논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 잠깐 본 수업을 가지고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말씀이 꼭 봄바람 같았다. ‘수업을 논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라는 점에서 한 번, ‘잠깐 본 것으로는 부족하다’에서 한 번씩 훈풍이 불었다. 아주 사소해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나만의 장점을 말하는 자기소개라니. 숭고한 장학 신봉자들은 ‘아니, 수업에 대해 논해야 할 동료장학 사후협의회에서 무슨 잡담이야?’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동학년 선생님들의 자기소개를 들었던 필자는 생각했다. ‘저런 성격을 가진 저 선생님의 평소 수업, 학급운영 방식을 진심으로 더 알고 싶다.’ 느슨하고도 단단한 경계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은 진리다. 안다는 것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고 싶은 것도 바꾸어 놓는다. 소소한 장점 한 문장 들은 게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냐 물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이마저도 서로 모르고 살던 입장에서는 반갑고 신기한 짝꿍들의 인간적인 면모이자 매력이었다. 이렇게 쓰면 우리 동학년 사이가 데면데면 한가보다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우리 동학년 선생님들 사이좋습니다). 사이가 좋아도, 그 이상으로 친해도 교사들 사이에는 무언의 경계가 있다. 학교가 이완조직체제라는 점이 그 경계의 존재를 증명한다. 결합하여 있으나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웬만해서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동안 연례행사처럼 된 동료장학이 어려웠던 것은 일 년에 한두 번, 억지로 그 불문율을 깨야 하는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관행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과거의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을 지금 나에게도 하라고 하니 직업인으로서 달갑지는 않다. 1년에 한두 번 큰 행사이니 그만큼 써야 할 것도 많고 형식도 거창했던 것이 바로 동료장학이었다. 거기에다 교육청의 ‘인적지원’까지 받게 되면 부담감은 하늘을 찌른다. 그래도 장학인데 학교에 따라 교직경력 5년 이내 교사들을 ‘신규교사’라며 신규교사 장학을 따로 정해놓을 정도로, 장학이라는 의식을 한 번씩 치를 때마다 교사들은 수업연구와 실천에 성장을 맛보기도 한다. 사실 장학이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수업에 관해 연구하고 성찰하고 좋은 생각을 공유하는 모든 행위가 장학이다. 그러니 평소에도 쪽지나 협의회를 통해 수업자료 공유, 교육자료에 대한 의견, 아이들과 수업해 본 후기 나눔이 생활화되어 있는 우리 동학년 같은 경우에는 우리끼리 간소화된 동료장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중에 수업공개 동료장학이라는 일종의 행사를 만나면 갑갑해진다. 그런데 이번 장학의 정식명칭은 ‘동료장학’이 아니고 ‘자율장학’이란다. 자율장학이라는 걸 처음 들은 것도 아니라 새로울 것도 없었고 ‘말만 바뀌었지 어쨌든 동료교사와 수업연구를 하고 공개하고, 사전·사후협의를 하라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했다. 새삼스럽게 형식적인 지도안을 짜고 협의록을 써야 하는 과정 자체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니, 매일 줌으로 학부모 대상 공개수업을 하는 셈이고 원격수업 영상을 만들 시간도 없는 이 시국에 공개수업이라니! 그런데 과정을 가만히 보니 형식과 강제성보다는 자발성을 강조하며 은근히 느슨하게 놓아주는 분위기였다. 특별한 장학이나 연구대회가 아닌 이상은 거의 짤 일이 없는데 이럴 때는 종종 짜라고 하는 교육과정지도안 세안도, 교장·교감선생님도 참여하시니 철저히 연구하는 학년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단합도, 그 어느 것도 요구받지 않았다. 교육청에서 똑같이 자율장학이라고 안내해도 학교마다 그 ‘자율’성이 실현되는 방식은 모두 다를 것이다. 우리 학교는 정말 ‘자율장학’이었다. 정말, 참관도 어떻게 하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예요? 교육공무원으로서 자기연찬의 의무가 있다는 책무감이 새삼 엄습하며 갑자기 주어진 그 자유가 낯설었다. 혼자 물었다. “이래도 되는 거야?” 그래도 되는 거였다 알아서 하라니 편했다. 이 편함은 몸의 편함이라기보다는 심적 안정감이고 교사로서 신뢰받는다는 효능감이었다. 사전·사후협의회 같은 절차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은 동학년 협의회에서도 과목별 지도방법·진도·교육자료에 대해 협의할 때가 많으니 이번 장학을 위해 추가로 더 들어가는 수고로움이 거의 없었다. 필자가 공개수업 하기로 한 차시를 연구하고 있는데 우리 반보다 먼저 진도를 나간 8반 선생님이 수업자료를 공유해주었다. 필자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로 무엇을 어떻게 재구성해서 이렇게 해보았다며 학년 전체에 쪽지로 보낸 것이다. 평소에 우리가 하던 대로 말이다. 줌 수업에서 아이들과 우리 지역 문화유산 안내도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던 차에 옆 반 선생님이 지도 패들렛을 활용해서 온라인 안내도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 이거 정말 좋다! 내가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이미 해본 선생님이 스스로 나누어준 아이디어다. 그 자료와 아이디어를 받아 우리 반 상황과 나의 의도에 맞게 또 바꾸어서 수업했다. 동학년의 수업은 줌에서 비디오를 끄고 참관했다. 동학년 선생님도 우리 반 수업에서는 서른네 개의 화면 중 한 개로 조용히 함께하셨다. 새로운 이름이 참가자 목록에 뜬 걸 눈치챈 아이 한 명 말고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모둠별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우리는 가장 평소 모습과 가깝고 자연스러운 서로의 줌 수업을 보았을 것이다. 서로의 평소 수업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알아야 하고 발견해주어야 하는 장학의 한 장면이 아닌가. 자율장학으로 실행된 동료장학의 모든 과정이 고맙게 느껴졌다. 거의 모든 과정이 자율적이었다. 이 동료장학을 한다고 억지스러운 뭔가를 하지 않고도 배울 수 있었다는 경험이 기뻤다. 이번 경험으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관리자가 교사를 믿어주고, 교사가 동료와 함께 깨어 있으면 거창한 형식이 없어도 충분히 배운다는 사실이다. 특히 공개수업이라는 명목으로 교사와 그 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교사와 그 반 아이들의 수업을 재단하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수업을 논하기 전에 그 수업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건 아주 소중한 배려였다. 자기만의 방에서 교사들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다.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 같지만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자율성과 독립성의 방이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 방식으로 자율장학을 한다. 특히 요즘은 블로그나 교사 커뮤니티에 수업성찰기록을 올리거나 수업자료·아이디어를 많이들 공유한다. 그런 선생님들은 ‘무슨 차시에서 이런 단계로 이 자료를 썼다’며 수업과정을 서술해준다. 임용시험에서처럼 빽빽하게 채워야 하는 표로, 억지스러운 지도안을 만들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지도안을 짜며 예상하는 학생들의 발언도 실제로는 늘 교사의 예상대로 가지만은 않으니까. 필자도 블로그를 운영한다. 한 인간으로서 일상 속에서 느끼는 점들을 쓰기도 하고 수업시간 한 장면과 교사로서 성찰한 점을 쓰기도 한다. 어느 날 우리 반 학생들과 채팅형 패들렛으로 릴레이 동화 만들기를 한 소감을 올렸다. 그 글에 댓글이 몇 개 달렸다. “학급동아리에 ‘이야기만들기부’가 있는데 같이 해 봐야겠어요.” “이야기 이어쓰기를 이렇게 하니 신선해요. 저도 해 봐야겠어요.” 필자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배운다. 자율장학의 의미대로 교사 스스로 책임감과 향상성을 가지고 움직이기만 한다면 나누고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자신의 수업장면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하는, 이미 열린 세상이다. 교사는 스스로 움직이고 선택하면 된다. 나누면 더 좋다. 나이스에 접속했다. 어떤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수업공개를 한다고 하는 공문이 또 와있다.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였는데 마침 딱 그 수업이라서 신청했다. 코로나19로 편하게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 것 같다. 다른 선생님들의 공개수업을 보고, 성찰하고, 반영한다. 나는 내 수업장면을 내 채널에 공개한다. 그렇게 매일 자율장학을 한다.
‘나’라는 낱낱의 사람들이 찾아가는 행복의 길은 세 개의 바탕 낱말, 곧 ‘나’와 ‘사람’과 ‘행복’을 길잡이로 삼는다. 우리말에서 ‘나’와 ‘사람’과 ‘행복’이라는 말이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깊고 넓게 묻고 따져보게 되면, 행복에 이르는 길이 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01. 나 우리말에서 ‘나’는 ‘나다’, ‘낳다’, ‘내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나다’는 어떤 것이 나는 것을 말하고, ‘낳다=나+히+다’는 어떤 것이 나게 되는 것을 말하고, ‘내다=나+이+다’는 어떤 것이 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절로 ‘난 것’이면서, 어버이가 ‘낳은 것’이면서,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같은 것이 ‘낸 것’을 말한다. ‘내’가 ‘나’를 절로 난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낱낱이 저마다 따로 하는 것이다. 저마다 따로 하는 낱낱의 ‘나’를 바탕으로 삼아서 ‘나’는 숨을 쉬고, 손발을 놀리고, 생각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러한 낱낱의 ‘나’를 잣대로 삼아서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을 나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어버이가 낳은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낳은 어버이와 함께하고, 어버이가 낳은 형제와 함께하고, ‘내’가 어버이로서 낳은 자녀와 함께하고, 어버이와 어버이를 통해서 누리에 이미 있었거나, 지금 있거나, 앞으로 있을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나’를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같은 것이 ‘낸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다른 모든 것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낸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바람 따위와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에서 비롯한 풀과 나무, 벌과 나비, 개와 돼지 따위와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는 따로 하는 것이면서, 함께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낱낱으로서 따로 하는 ‘나’를 ‘저’라고 부르고, 다른 것과 함께 하는 ‘나’를 ‘우리’라고 부른다. 이때 ‘저’는 저마다 따로 하는 닫혀 있는 ‘작은 나’를 말하고, ‘우리’는 다른 것과 더불어서 함께하는 열려 있는 ‘큰 나’를 말한다. 02. 사람 ‘나’라는 말은 저마다 따로 하는 ‘나’를 일컫는 말이다. ‘제’가 ‘저’를 일컬을 때만, ‘나’라고 말한다. 이런 까닭으로 수없이 많은 말 가운데서 ‘나’라는 말은 오로지 ‘내’가 ‘나’에게만 쓸 수 있다. 그런데 ‘나’를 일컫는 나의 이름은 ‘나’도 쓸 수 있고, ‘너’도 쓸 수 있고, ‘남’도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나’만이 쓸 수 있다. 누군가 ‘나’라고 말할 때, ‘나’는 사람인 ‘나’를 가리킨다. 사람만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내’가 ‘나’를 알아가는 것은 사람인 ‘나’를 알아가는 일로써 이루어진다. ‘내’가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의 바탕인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살다’는 사는 일을 말하고, ‘살리다’는 ‘살+리+다’로서 살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옛말에서는 ‘사람’을 ‘사’으로 말하고, ‘살리다’를 ‘사다’로 말했다. ‘‘사’과 사다’를 살펴보게 되면, ‘사’=사람’은 ‘사는 일=살리는 일’에 바탕을 둔 말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살리는 일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풀과 나무, 벌과 나비, 개와 돼지와 같은 것도 사람처럼 살아가는 일을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사람’만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만이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불·흙·채소·곡식·광물·소리·말과 같은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한다. 한국 사람은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살림살이’의 임자를 ‘나’라고 말한다. 따라서 ‘내’가 ‘나’라는 사람이 되는 일은 ‘내’가 살림살이의 임자로서, 나름의 줏대를 갖추어가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내’가 살림살이의 임자로서 나름의 줏대를 갖추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사람의 잣대가 무엇인지 또렷이 알아야 한다. 한국 사람은 ‘사람’의 잣대를 ‘사람다움’에 두었다. 이러니 걸핏하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다움을 잣대로, 사람답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어서 좋음과 싫음, 옮음과 그름, 맞음과 틀림 따위를 달리한다. 한국 사람이 사람의 잣대로 삼는 ‘사람다움’은 ‘사람’과 ‘다움’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사람다움’에서 ‘다움’은 ‘다 하다’, ‘다 되다’를 뜻하는 말이다. ‘사람다움’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진 본디의 가능성을 ‘다 이룩함으로써’, ‘다 되어진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03. ‘행’과 ‘복’ 그리고 ‘은’과 ‘덕’ 한국 사람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이 잘 이루어지면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하다’라고 말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하게 되는 일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러니 행복해지기 위해서 도리어 불행으로 내닫는 이들도 생겨나게 된다. 사람들이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잘하려면, 살려서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갖가지 것을 고루 그리고 두루 갖고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좋은 몸, 좋은 머리,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연장, 좋은 집, 좋은 이웃, 좋은 나라 따위를 가지고 살고자 한다. 한국 사람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갖가지 것을 갖고 쓰는 것을 바탕으로 행(幸)·복(福)·은(恩)·덕(德)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말이 어떠한 뜻을 갖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행(幸) 우리말에서 ‘행(幸)’은 어려움에 놓여 있는 사람이 살리는 힘을 가진 어떤 것을 만나서,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다른 사람이 그를 건져내어 목숨을 잃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다행(多幸)’이라고 말한다. 복(福) 우리말에서 ‘복(福)’은 사람이 저를 살리는 힘을 가진 어떤 것을 받아서 누리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부모나 조상과 이웃과 같은 사람이 베풀어주는 ‘복’을 받아서 누리기도 하고, 해·달·물·불·흙·풀·나무·개·돼지와 같은 것에서 비롯하는 ‘복’을 받아서 누리기도 한다. 은(恩) 우리말에서 ‘은(恩)’은 사람이 저를 살리는 힘을 남에게 빚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이 남에게 ‘은’을 빚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남에게 ‘덕’을 베푸는 일에 눈을 뜨게 된다. 덕(德) 우리말에서 ‘덕(德)’은 사람이 살리는 힘을 가진 것을 베풀어서, 남이 받아서 누리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남에게 ‘덕’을 베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먼저 남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져야 하고, 다음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더라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없으면, ‘덕’을 베푸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행’을 만나고, 많은 ‘복’을 받고, 많은 ‘은’을 입고, 많은 ‘덕’을 베풀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누릴 수 없으면 어떠한 쓸모도 없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갖가지 것들이 가진 살리는 힘을 잘 살려서, 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해 (마음꽃을 피우는 사람들 지음, 고래이야기 펴냄, 140쪽, 1만5000원) 어린이잡지 월간 마음꽃의 ‘이달의 마음굴리기’ 꼭지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 관계, 공부, 게임, 이성친구 등 어린이들이 직접 보내온 고민에 마음을 다해 도움이 되는 답변을 담은 상담 모음집이다. 힘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의 언어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70년 만에 돌아온 편지 (장성자 지음, 마루비 펴냄, 98쪽, 1만2000원) 7살 때 6·25전쟁으로 아버지와 헤어져 지금껏 돌아가신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는 할아버지. 비석 앞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다 아버지를 찾으며 우는 할아버지를 본 연수는 돌아오지 못한 왕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 땅에 묻는다. 그 순간 한 무리의 군인들이 나타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우리 현대사의 슬픈 이야기를 동화로 풀어낸다.
내일은 못 먹을지도 몰라 (시어도어C. 듀머스 지음, 롤러코스터 펴냄, 224쪽, 1만4500원) 피곤할 때 먹는 초콜릿 한 조각,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마시는 커피 한잔 등 먹거리는 일상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먹거리가 머지않아 사라진다면? 사과·바나나·체리·땅콩·감자·초콜릿 등 기후변화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13가지 먹거리의 기원과 중요성, 영양가, 인류가 최초에 먹게 된 계기,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유 등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교실 맨 앞줄 (김성일 외 7명 지음, 돌베개 펴냄, 228쪽, 1만2000원) 10대와 가장 밀접한 공간인 학교에 관해 8명의 작가가 SF·판타지·기담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한 8가지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이다. 학교생활 곳곳에 숨은 두려움과 설렘, 기쁨과 슬픔, 잔혹과 다정을 기발하고 개성 넘치는 이야기로 녹여냈다. 벗어나고도, 숨어들고도 싶은 우리들의 ‘이상한’ 학교의 모습을 풀어낸다.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흐름출판 펴냄, 371쪽, 1만6000원) 시대를 초월한 고전문학의 가치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두껍고 어려운 고전을 읽는 건 쉽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25권의 고전문학을 인간의 생애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 풀어냈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고전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설명하고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뽑아내 펼쳐낸다.
교사내전 (이정현 지음, 들녘 펴냄, 240쪽, 1만5000원) 입시학원 강사에서 인문계고 사회교사, 사립중 기간제 교사, 특성화고 체육교사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저자가 학교구성원 간의 갈등, 학교폭력사건 등 학교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시험에 목숨 거는 ‘노량진’ 박 선생, 권모술수에 능한 ‘사바사바’ 최 선생, 교감 승진에 목매는 ‘해바라기’ 정 선생, ‘자연인’ 윤 선생, ‘기러기 아빠’ 조 선생 등을 통해 교사들의 진짜 이야기를 보여준다.
작가와 함께 하는 그림책 토론수업 (그림책사랑교사모임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336쪽, 1만8000원) 유명 그림책 작가 10명이 작가로서의 자기 이야기,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고 학생들의 토론수업을 위한 질문을 건넨다. 작가의 질문에 이어 학생의 질문, 교사의 질문으로 이어지는 교실 안의 특별한 토론수업을 담아냈다. 그림책의 내용과 주제에 따라 적합한 다양한 토론기법을 활용한 수업과정을 볼 수 있다. 토론 전후의 활동과 다양한 예시,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 등도 소개하고 있다.
바로 만들어 바로 써먹는 미술 레시피 (안현이 외 8명 지음, 성안당 펴냄, 160쪽, 1만6000원) 코로나로 인해 등교수업과 원격수업이 혼재되고 있는 상황에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미술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9명의 미술선생님들이 모였다. 이들은 온라인수업과 오프라인수업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변화된 도구를 이용해 학생들의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업을 제시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활동지를 부록으로 담고 있다.
범교과적 학습과 메타인지 뉴노멀로 불리는 포스트 코로나시대는 개별화 교육과 학생 맞춤형 교육에 대한 실제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며 학습자 중심의 학습환경 설계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였다. 또한 학습자들에게는 자기주도성으로 대변되는 미래사회 핵심역량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도록 해주었다. 최근 미래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OECD ‘Education 2030’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미래사회 핵심역량으로 ‘변혁적 역량’을 제안하며 세 가지 하위 범주로 ‘새로운 가치 창출하기’, ‘갈등과 딜레마 조정하기’, ‘책임감 갖기’를 제시한다. 이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미래사회의 핵심적인 개인의 능력으로서 교육의 새로운 틀을 제시하는 근거가 된다. Education 2030 프로젝트를 주도한 OECD 교육분과 의장 찰스 파델은 새로운 역량 개념에서의 메타학습능력을 강조한다. 그는 지식·능력·인성을 관통하는 것으로서 메타학습능력을 제시하는데, 메타인지가 ‘자신의 사고과정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며 자신의 학습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지력과 관련된 능력’이라고 볼 때, 메타학습이란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과정 전반을 성찰함과 동시에 성찰할 수 있는 힘 자체를 기르는 초학문적 학습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반영하고 적응하는 방법’으로서 메타인지 및 성장 마인드세트를 뜻하며 ‘자기주도의 학습력’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전 DeSeCo 프로젝트에서 역량을 지식과 기능 그리고 태도의 총합으로 보았던 것과 비교할 때, Education 2030 프로젝트에서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능력으로서 역량을 재개념화하기 위하여 메타학습을 보다 강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고 볼 수 있다. 창의·융합적 탐구활동과 자기주도성 메타인지의 강조는 역량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자로 알려진 누스바움의 교육과정 설계 방안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저서 인간성 수업에서는 메타인지적 사유를 강조하며 ‘철학’ 혹은 ‘도덕적 추론’과 ‘사회 분석’ 등 인식론적 사유를 수행하는 교과와 함께 개별교과에서 학생의 자기주도적 교육과정 설계환경이 조성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교과에서의 자기주도적 교육과정 설계환경이란 어떤 조건일까? 교사 혹은 교과서가 주도하는 학습과정이 아닌 ‘스스로 학습하는 힘’, ‘내가 만들어가는 학습과정’, ‘나만의 지식’, ‘개성 있는 나만의 사고’,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자기주도성은 단순히 학생들이 주어진 과제를 혼자서 해나가는 것 이상의 학습능력을 의미한다. 보다 넓은 의미의 자기주도성은 교과서 지식 혹은 기존의 학문체계를 넘어서기 위한 도전이자 스스로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으로서 창의성의 원천이다. 스스로 학습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학습에 대한 흥미와 학습활동에 대한 주체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 지식체계에 대한 도전적 태도가 필요하다. 결국 기존 지식체계 자체에 대한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사고과정 없이는 창의성도, 자기주도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존 지식체계에 대한 반성적 태도는 자연스럽게 교과 간 경계를 사라지도록 만들며 융합적이고 심층적인 학습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결국 역량 함양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에서 자기주도성은 기존 학문(교과)에 대한 해체이자 반성적 활동을 기반으로 한 교과 간 연계 혹은 교과를 뛰어넘는 메타인지적 학습능력으로 폭넓게 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특정교과에서 다뤄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닌 범교과적으로 필요한 학습능력이다. 이러한 접근은 Education 2030에서 학습자 주도성을 개인의 학습능력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학습자상(student agency), 그 자체로 재개념화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 창의융합적 학습을 위한 교육에서 자기주도성이란 학습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역량이 실현된 상태로서 범교과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핵심역량 그 자체인 것이다. 범교과 학습활동의 체계화 물론 교과 간 경계 없이 학습자의 문제의식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심층적 학습은 지금의 학교현장에서도 ‘자유주제 탐구활동’의 형태로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는 학교별·지역별 여건에 따라 편성 운영의 방식이 일관성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체로 여기에서 제안하는 ‘자유주제 탐구활동’의 형태는 학기당 하나의 과제 혹은 프로젝트 단위로 이루어지는 활동 형식이다. 예컨대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선택교과로 편성하여 운영하기도 하고 어떤 시·도에서는 학교자율활동이라는 영역으로 편성하여 한 학기 동안 지속성 있게 탐구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별도 영역을 제안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교에서는 방과후에 학생들의 희망을 받아 지도교사와 함께 일정기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교과의 경계와 교과서 진도·평가 등에 가로막혀 진행할 수 없는 긴 호흡의 심층학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성격의 활동이 현장에서 요구되는 학습의 형식임과 동시에 범교과적 학습활동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면 새로운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이러한 측면을 어떻게 체계화시킬 수 있을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과정에서 범교과 활동은 국가·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10개의 범교과 학습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이러한 범교과 학습주제는 대체로 창의적체험활동의 자율활동시간을 할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왔으며, 이로 인해 창의적체험활동은 범교과 학습주제 관련 일회성 행사로 상당부분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범교과 활동은 창의적체험활동 운영의 질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본래 창의적체험활동이 학교 내외의 다양한 교육활동으로 창의성을 신장하고 학생이 주도적으로 인지적인 지식활동 외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기 위한 과정으로 운영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교과 학습주제에 따른 계기교육에서부터 입학식·개학식·체험활동과 같은 일회성 학교행사까지 편성하여 운영하는 정체성이 모호한 교육과정 상의 잉여시간으로 인식되어 활용된 측면이 없지 않다. 범교과 활동과 창의적체험활동에 관한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대됨에 따라 최근에는 현재의 계기교육 방식의 범교과 학습주제는 가능한 교과로 흡수·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범교과 학습주제를 교과별 성취기준과 연계하여 교과에서 다루도록 하자는 것에는 아직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교과별 성취기준과 범교과 학습주제의 연계성을 찾고 해당 내용을 교과로 통합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결국 내용적 차원의 흡수통합일뿐 궁극적으로 범교과적 활동에 대한 학습기회를 보장하는 방식은 아니다. 사실상 교과별로 교과서와 평가가 분절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교과 간 융합적 활동으로 관련 내용을 다루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범교과 활동이 교과로 통합될 경우 더 이상 범교과 학습활동은 별도로 다루어질 필요가 없는 것일까? 범교과 활동은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새로운 활동으로 편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러한 대안적 측면에 관해서는 아직 충분히 논의된 바가 없다. 범교과 학습활동의 새로운 범주 그렇다면 범교과 활동의 본질을 되살림과 동시에 역량교육 체제에서의 범교과적 학습을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 먼저 범교과 활동에 대한 목표가 새로운 역량체제에 적절하게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 범교과 활동에 대한 목표와 접근 방식은 국가별로 상이하지만 대체로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접근과 초학문적(transdisciplinary) 접근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지향점을 갖는다. 따라서 범교과 학습활동의 경우 교과 간 융합이나 통합이 일어나는 학습활동의 설계로 재편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진다. 덧붙여 역량교육이 강조하는 메타인지적 사고가 촉진될 수 있는 학습환경까지 반영한다면 범교과 학습은 교과의 경계나 특수성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창의융합적 자유주제 탐구활동’으로 재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습자의 자기주도성 함양은 범교과 학습의 새로운 목표로 제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의 창의적체험활동시간에 주로 이루어지던 범교과 학습은 그 활동 성격이 명료해진다면 창의적체험활동 내의 시수를 별도로 분리하여 편성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앞선 사례에서와 같이 현재 창의적체험활동의 자율활동에서 이와 유사한 탐구활동을 편성·운영하는 사례들이 있다는 점에 미루어보아, 창의적체험활동의 성격도 더불어 명료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요컨대 현재의 범교과 학습주제는 교과로 모두 흡수 통합시키고, 범교과 활동은 현재의 자율활동과 진로활동을 통합하여 자신의 관심주제를 기반으로 한 창의융합적 자유주제 탐구활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창의적체험활동은 동아리와 봉사활동과 같이 학교밖 학습과 연계할 수 있는 활동으로서 비교적 형식이 유연한 활동을 중심으로 편성하고 마을교육공동체와 적극적으로 연계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새로운 교육과정 개정에서 단위학교의 자율화 확대 방안이 큰 화두이다. 특히 지금까지 의무시수로 부여되었던 범교과 학습주제 재편에 관한 논의는 창의적체험활동 운영의 자율성 확대와 교과연계를 통한 단위학교 자율운영 시수의 증감과도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사안으로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껏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산물과 같았던 범교과 학습주제가 교과로 흡수통합 된다면 창의적체험활동의 운영은 보다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갑자기 늘어난 창의적체험활동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또한 만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운영의 자율성과 늘어난 시간만큼의 질관리 방안과 구체적인 대안 없이는 범교과 활동과 창의적체험활동 두 영역 모두에서의 질적 제고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디 자유라는 책임의 무게가 현장에 오롯이 전가되지 않길 바라며 세심한 대안 마련이 동반되길 기대해 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했다. 이베리아반도로 떠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우선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20대 힘든 시절 나에게 등대와도 같았던 파올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의 배경이 되는 곳이고, 여행을 주제로 한 이한철의 앨범 순간의 기록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세비야(Seville)’이며, 마흔이 되기 전에 계획 중인 유라시아 도보횡단의 종착점이 포르투갈 리스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2018년 여름, 이베리아반도로 떠났다. 까탈루니아의 심장,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까탈루니아의 주도이다. 북쪽으로는 피레네산맥, 동쪽으로는 지중해와 맞닿은 까탈루니아는 오랜 기간 스페인으로부터 자치권을 갖고 있었다. 특히 까탈루니아는 스페인 국내 총생산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부유할 뿐 아니라 문화·언어·역사가 남다르다는 것에 자긍심이 뛰어나다. 이러한 이유로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운동을 하려는 요구가 많다. 특히 스페인 마드리드 정부와는 앙숙관계인데, 프랑코 정권의 지원을 많이 받았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간의 축구 라이벌전, ‘엘 클라시코’가 그 증거이다. 까탈루니아의 심장이 바르셀로나라면, 바르셀로나의 상징은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Camp Nou)’이다. 8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캄프 누에서 경기를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7월은 프리메라리그 개막 전이라서 경기장 투어만 가능했다. 하지만 실제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과 프레스센터, 그리고 푸른 잔디의 그라운드를 실제로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 깊었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가이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건물·공원·성당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지만, 풍부한 해설을 들어보기 위해 ‘가우디 투어’를 신청했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을 연상하는 까사 비요뜨,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한 까사밀라, 바르셀로나의 부호 구엘의 지원으로 만든 ‘구엘 공원’…. 가우디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모더니즘의 직선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성가족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도착한 가이드는 ‘아직 뒤를 돌아보지 말라’며 우리에게 극적이면서 웅장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음악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 맞춰 우리는 고개를 돌렸고, 거대하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전율’로 다가왔다. 특히 촛농이 흘러내리는 듯 물결치는 성당 전면은 불규칙스러움 속에 숨어있는 질서가 탁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 미완성이다. 성당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가우디의 뒤를 이어, 후대 예술가들이 건축을 지속하고 있다. 이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그라나다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그라나다로 향했다. 그라나다는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때, 중심이 되었던 도시로 알람브라 궁전이 유명하며, 이슬람 분위기가 물씬 나는 좁은 골목의 알바이신 지구가 인상적이다. 그라나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건조한 사막의 공기가 호흡을 타고 들어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라나다 숙소에 들어가니, 레드와인에 과일을 넣어서 달콤하게 숙성시킨 샹그리아를 병째로 내 입을 향해 따라주는 ‘웰컴 드링크’ 이벤트를 제공했다. 샹그리아가 담긴 유리병에서 나오는 술 줄기가 기다랗게 이어질수록 숙소 직원들과 나머지 여행자들은 박수를 쳤다. 새로 도착한 여행객들을 위한 샹그리아 환영식이 끝난 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여행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알바이신 투어를 가자고 제안했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넘나들면서 알바이신 지구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이번 투어는 상품화된 가이드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여행자들은 서로 자유자재로 질문을 했고, 가이드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끼리 서로 질문에 답하면서 자유롭게 거리를 걷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투어, 그 자체였다. 알바이신 지구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의 허름한 히피 스타일 카페에서 짜이 한잔을 하고, 한때 이슬람 군대가 지배했었던 건조한 도시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여행자들도 자연스럽게 우리 옆으로 모여 함께 이야기 나누었고, 같이 셀피를 찍으며 가이드 투어를 마무리했다. 세비야에서 남긴 순간의 기록 그라나다에서 세비야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도시를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의 모든 풍경은 ‘올리브밭’이다. ‘지중해성 기후지역에서 올리브가 재배된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며, ‘정말 스페인이 올리브의 나라’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세비야를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순전히 ‘노래’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즐겨 들었던 이한철의 순간의 기록이라는 앨범 중 ‘세비야’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했다. 세비야 여행 중, 낯선 아침에 골목과 가게를 지나다가 문득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네가 떠올라 마음이 아련해지고, 그래서 지구 반대편 먼 곳에서 고마웠던 일들, 미안했던 일들이 떠오른다는 ‘평범하지만 소박한’ 가사와 멜로디가 마치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작은 골목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꼭 세비야에 가서, 이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걷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순간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트램의 도시, 리스본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 들어서자 많은 여행객과 상인들, 그리고 대서양의 따사로운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코메르시우는 상업을 뜻하는데, 과거에 테주강 연안부두를 통해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리스본에서는 ‘트램’을 빼놓을 수 없다. 주황색 트램이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리스본 곳곳을 누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트램을 타고, 목적지도 없이 창밖 리스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가 리스본의 야경이 잘 보일 것 같은 곳에서 내렸다. 상 조르제 성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카페에 앉아서 맥주 한잔과 감자튀김을 시켜놓고 노을이 지면서 서서히 바뀌는 하늘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리스본에서도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는데, 특이하게도 먼저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투어가 끝난 후 ‘만족한 만큼’ 돈을 내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가이드 안토니오는 10개 국어에 능통했고,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덕분에 풍부한 해설을 곁들여 줬다. 또한 엄청난 애주가였던 그는 리스본 투어가 끝난 후, 광장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함께 맥주·위스키·와인을 마시며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애 이야기, 결혼 이야기, 그리고 인생 이야기들…. 사실 여행이란 게 반드시 유명한 장소에 들러 유명한 것들을 보는 것만은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지인들을 만나고, 그들이 놀고 쉬는 곳에서 현지인들처럼 지내는 것이 진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날 밤, 리스본의 척척박사 안토니오와 페루·프랑스·네덜란드·아르헨티나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이렇게 여섯 명은 국적·나이·직업은 모두 달랐지만, 서로의 여행을 이야기하며 또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짜 여행’을 했다. Yes! 포르투 리스본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포르투로 이동했다. 상 벤투역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느껴졌다. 역의 하얗고 커다란 벽면에 파란색으로 그려 넣은 청쾌한 아쥴레쥬 벽화가 인상적이었던 상 벤투역을 빠져나오자, 아기자기하면서도 동화같이 아름다운 도시의 광경에 넋이 나갔다. 역에서 숙소까지 이어지는 길은 온통 아름다운 예술작품 같았다. 왜 사람들이 포르투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포르투는 자그마한 도시이지만 골목마다 리스본과는 다른 포르투만의 색깔이 있었다. 포르투는 도시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웬만한 곳은 거의 다 걸어갈 수 있다. 숙소에서 걸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영감을 받았다는 렐루 서점이 있고, 그 반대편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루이스 다리가 나온다.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 테오필레 세리그가 건축해서인지 에펠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루이스 다리를 건너면 모로 가든(Morro Garden)이 나온다.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 대서양의 노을을 바라봤다.
돈을 정말 너무 풀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급했거든요. 그랬더니 세상 모든 것의 가격이 올라갑니다. 서울 중계동 20평대 아파트 가격이 10억 원을 육박합니다. ‘카카오’도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사상 최고가입니다. 폭락 중인 비트코인의 가격은 여전히 3만 달러가 넘습니다. 시가총액이 여전히 6천억 달러가 넘습니다. 우리 돈 660조 원 정도 되니까, 비트코인의 가치가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1년 정부 재정보다 높습니다. 급기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습니다(3월에 WTI는 20달러에도 안 팔렸다). 도대체 쓸데없는 상선을 왜 그렇게 사들였는지 한탄을 하며 해운사를 파산시킨 게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지금은 수출업체들이 배를 구하지 못해 한탄입니다. 해상물류비용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때 살아남은 해운사는 주가가 22배 올랐습니다. 이 위기에 모든 것의 가격이 오릅니다. 급기야 미국의 인플레이션 위기가 고조됩니다. 4월 미국 소비자물가는 4%나 급등했습니다. 허걱,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아무래도 돈을 너무 풀었나 봅니다. 시장에는 ‘경제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게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칙은 거꾸로 갑니다. 물론 그 시작은 유동성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위(FED)입니다. 바이러스에 너무 놀라서 한 달에 막 1천조 원씩 찍어냈었죠. 폭락은 멈췄고 금융시장은 안정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폭등하네요. 아무래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습니다. 미국 국채(TREASURY BOND) 주식투자하는 분들 관심 많으시죠?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오르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돈을 풀면 채권 금리는 올라갑니다. 1.6%라니요. 미국에 대표 기업들, 예를 들어 SP 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이 1년에 배당을 보통 1.4% 해줍니다. 그런데 미국 국채를 들고 있으면 1년 이자로 1.6%를 준답니다. 은행 적금 깨고 미국 국채나 살까요? 채권이라는 게 돈 빌려준 증서잖아요, 미 재무부가 돈이 필요하니까 계속 국채를 발행합니다. 정부가 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겁니다. 장난 아니게 천문학적으로 발행합니다. 그런데 이미 국채를 인수하는 기관의 곳간에 ‘미국 국채(TB)’가 가득가득 찼습니다. 더 이상 미국 국채에 관심이 없습니다. 재무부는 어떻게 하면 국채를 더 발행할 수 있을까요? 답은? “이자를 더 올려줄게요! 국채 좀, 사주세요~” 이렇게 미국 국채금리가 자꾸 올라갑니다. 이렇게 시중금리가 올라가면 연준(FED)이 나서야 합니다. 보통은 기준 금리를 올려서 시중의 돈을 흡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파월 연준의장이 그냥 지켜보겠답니다. 파티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새벽이야 언제든 오겠지만. (해가 뜬다고 파티가 다 망하는 건 아니잖아-Feat by 파월) 물가상승(INFLATION)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화폐가치는 딱 돈이 시장에 과잉 공급된 만큼 하락합니다. 신이 시장경제에 준 십계명 중 첫 번째입니다. 덕분에 어떤 대통령도 돈을 맘대로 찍어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연준의장은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보통 물가인상률을 2%에 맞춥니다. 적당히 좋은 것을 흔히 ‘골드락스’라고 하죠. 연 2% 정도 물가가 오르는 게 제일 좋습니다. 돈을 풀다 풀다 지친 미국 경제에 드디어 인플레 조짐이 보입니다. 그런데 또 연준(FED)은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시장에선 연준이 3%의 인플레이션도 용인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흔히 중앙은행을 인플레이션 파이터(물가인상을 잡는 소방수)라고 하죠. 파이터는 무슨, 이쯤 되면 인플레이션 방화범(ARSONIST)? 물론 경기회복을 위해 그런다고 하니 다 용서됩니다. 우린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은행도 물가를 2% 정도에서 잡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물가가 오르지 않으니 물가인상률을 2%로 억지로 ‘올리기 위해’ 용을 씁니다. 뭐 하는 일이야 바뀔 수 있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가족계획협회가 지금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물가는 어쩌냐고요? 우리의 크루그먼이 “인플레 걱정하지 마라”니까 일단 걱정하지 않는 걸로 정리합니다. 물론 터키 같은 뭐 하나 제대로 수출할 게 없는 나라는 외환시장이 늘 불안하고 그러다 보니 물가가 춤을 춥니다. 터키는 올 들어 소비자물가가 17%나 급등했습니다. 긴축발작 하여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금리도 낮추고 돈도 풀었다면, 그래서 자산시장이 폭등하니 이쯤에서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리면 어떨까요? 이게 어렵습니다. “MR. 파월!, 무제한 돈풀기는 언제까지 하나요?” 이런 질문은 매우 위험합니다. 금융시장에 난리가 날 겁니다. 위기에 풀린 돈에 너무 익숙해진 지구인들이 ‘긴축’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킵니다. 환자가 퇴원은커녕, 진통제를 중단한다는 말만 들어도 기절을 합니다. 이를 긴축발작(taper tantrum)이라고 애써 어렵게 표현합니다. 돈풀기 게임은 언젠가 멈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금씩 규모를 줄여가야 합니다. 테이퍼링(Tapering)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긴축발작’ 때문에 그런 말도 못 꺼냅니다. 블룸버그가 ‘긴’만 보도해도 증시가 폭락합니다. 어떡하죠? 그냥 가보죠, 뭐. 예전에는 어땠냐고요? 2000년대 초에 IT 버블이 꺼지면서 시장은 박살이 났습니다. 2007년에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자산시장이 혼쭐이 났죠. 집값이 폭락에 폭락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주가는 폭락했고, ‘최후의 대부자’라는 연준(FED)은 최후에도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홀랑 지구 경제가 망하고 나서 연준의장의 자서전만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이번에도 그러겠죠. 나비넥타이를 매고 홍콩의 한 대학 강단에 서서 준엄하게 시장을 되돌아볼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그렇게 타오를지 우리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시장경제는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시간입니다.”(실제 파월의장의 임기는 내년 초까지다.) 안전벨트 좀비(ZOMBIE) 영화에선 누군가 감염이 되면 모두 죽어라 달아납니다. 세계 경제는 유동성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뜻하지 않는 바이러스로 4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자산 가격이 치솟고 있습니다. 모두 달아나기는커녕 자산시장에 뛰어듭니다. 매우 위험한 시간입니다. 금리를 올리고, 시중 유동자금을 다시 회수할 시점이 찾아옵니다. 이미 시장은 너무 과열됐습니다. 하지만 ‘연착륙’이라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집값이 과연 안전하게 연착륙할까요? 자산이라는 것은 누군가 사면 나도 사고 싶고, 누군가 팔면 나도 팔고 싶은 것입니다. 순서대로 팔라고 누군가 교통정리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요(백신처럼 비트코인 파는 날을 정해주면…). 그리고 시장에선 늘 이 흐름을 거스르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 부자가 되는 행운을 가져갑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노동을 하고, 약간의 재물이 있는 사람은 머리를 써서 돈을 벌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다시 때를 기다린다. - 사마천 지구 경제는 한차례 또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시중에 풀린 돈을 부드럽게 회수(Smooth Operation)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산시장에서 조금 떨어질 시점입니다. 물론 남이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을 모른 척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요. “안전벨트 착용 등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자리로 돌아가 안전벨트를 매주십시오. 이 여객기는 과거에도 여러 번 불시착한 경험이 있습니다.”
박완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상징적인 식물은 당연히 싱아지만, 이 소설에는 싱아 말고도 많은 식물들이 나옵니다. 7월부터 남색 꽃이 피는 달개비(정식 이름은 닭의장풀)도 그중 하나입니다. 달개비는 소설 앞부분 싱아가 나오기 직전에 나오는데, 먼저 그 대목을 보겠습니다. 뒷간 모퉁이에서 뒷동산으로 난 길엔 달개비가 쫙 깔려 있었다. 청아한 아침 이슬을 머금은 남빛 달개비꽃을 무참히 짓밟노라면 발은 저절로 씻겨지고, 상쾌한 환희가 수액처럼 땅에서 몸으로 옮아오게 돼 있다. 충동적인 기쁨에 겨워 달개비잎으로 피리를 만들면 여리고도 떨리는 소리를 낸다. 서울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쫙 깔린 달개비꽃의 남색이 얼마나 영롱하다는 걸. 그리고 달개비 이파리에는 얼마나 고운 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달개비 이파리의 도톰하고 반질반질한 잎살을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긁어내면 노방(얇은 비단의 한 종류)보다도 얇고 섬세한 잎맥만 남았다. 그 잎맥을 입술에서 떨게 하면 소리가 나는데, 나는 겨우 소리만 냈지만 구슬픈 곡조를 붙일 줄 아는 애도 있었다. 달개비꽃이 볼수록 예쁘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달개비 이파리에 고운 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이 소설에 나온 대로, 달개비 잎살을 손톱으로 긁어내고 잎맥만 남겨 한번 불어봐야겠습니다. 이 소설의 싱아가 나오는 부분에도 달개비가 다시 한 번 나오는데,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고 했습니다. 싱아가 엄마 손에 이끌려 상경한 여덟살 소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하고 있다면 달개비는 그 싱아가 흔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식물로 나오는 것입니다. 노란 더듬이를 가진, 푸른 나비를 닮은 ‘달개비꽃’ 달개비꽃은 7월부터 피기 시작해 늦가을인 10월까지 필 것입니다. 밭이나 길가는 물론 담장 밑이나 공터 등 그늘지고 다소 습기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꽃은 작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예쁘고 개성 가득합니다. 우선 꽃은 포에 싸여 있는데, 포가 보트 모양으로 독특합니다. 남색 꽃잎 2장이 부챗살처럼 펴져 있고, 그 아래 꽃술이 있는 구조입니다. 이 모습을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은 책 한국의 야생화에서 “마치 노란 더듬이를 가진 푸른 나비를 보는 듯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꽃잎이 한 장 더 있지만, 작고 반투명이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달개비꽃의 전체적인 모습은 노란 더듬이를 가진 푸른 나비가 보트 위에 앉은 모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잎 아래로 가운데 부분에 샛노란 수술 4개가 있는데 꽃밥이 없어서 곤충을 유혹하는 역할만 합니다. 그 아래쪽에 길게 나온 세개의 꽃술이 있는데, 이중 가운데 것이 암술, 양 옆에 있는 것이 실제 수술이랍니다. 꽃이 지고 나면 생기는 밥알 모양 열매는 어릴 적 소꿉놀이할 때 쌀 대용으로 사용했었지요. 한승원은 어머니를 추억한 자전적 소설 달개비꽃 엄마에서 어머니를 달개비에 비유했습니다. 작가는 “몇 해 전, 토굴 마당의 잔디밭에서 달개비·바랭이·명아주·비름·환삼덩굴들을 뽑아 동백나무 밑에 쌓아 두었는데, 다른 풀들은 시들어 죽어 갔지만 달개비풀 혼자만 살아남아서 남보라 빛의 꽃을 피워내었다”며 “(어머니는) 달개비 풀꽃처럼 강인하게 세상을 산 한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작가가 그 많은 잡초 중에서도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달개비라는 이름은 꽃이 닭의 볏을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입니다. 이 풀의 정식 이름은 닭의장풀인데, 이 식물이 주로 닭장 주변에 자란다고 붙은 이름입니다. 닭의장풀보다는 달개비가 더 어감이 좋은데 왜 닭의장풀을 추천명으로 정했는지 궁금합니다. 국가식물표준목록은 닭의장풀을 추천명으로, ‘닭개비’만 이명(異名)으로 처리하고 달개비는 이명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가표준식물록에서 달개비를 검색하면 아무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식물을 달개비라 부르는데 최소한 이명으로는 넣어놓고 어느 이름이 더 나을지 차차 논의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닭장 주변에 자라던, 닭의 볏을 닮은 달개비 달개비의 정식 이름을 닭의장풀로 한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2012년 대선 때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달개비를 화제에 올리며 “신비롭고 예쁜 꽃 달개비를 요즘 식물학자들이 ‘닭의장풀’이라 부르는데, 달개비라는 이름이 얼마나 예쁘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음식점 ‘달개비’가) 달개비란 이름을 써서 참 고맙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와 만날 때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음식점 ‘달개비’를 이용했습니다. 그 이후 달개비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이 음식점은 지금은 광화문에 있지만, 서울 계동에 있을 때부터 청와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한 곳이었습니다. 이 음식점은 화단에 달개비를 키우며 달개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는 손님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달개비는 이래저래 참 얘깃거리가 많은 식물입니다. 달개비라는 이름은 화단에 흔한 자주달개비, 수생식물인 물달개비 등에 남아 있습니다. 자주달개비는 북미 원산으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 꽃인데, 달개비보다 훨씬 크고 잎은 넓은 줄 모양이며 자주색 꽃잎이 3장인 것이 달개비와 다릅니다. 꽃은 5월쯤 피기 시작하는데,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에 시듭니다. 자주달개비는 꽃의 색깔로 방사능 농도를 알려주는 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주달개비가 방사선에 민감해 일정량 이상의 방사선을 맞으면 돌연변이가 일어나 꽃색이 분홍색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물달개비는 논이나 얕은 물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입니다. 우리나라 전국의 논이나 연못·저수지의 수심이 낮은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부레옥잠은 물에 떠서 살지만 물달개비는 뿌리는 땅에 박고 꽃과 잎은 물 위로 올라와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9~10월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자루 끝에서 남보라색 꽃이 모여 피는데, 이 꽃이 잎보다 아래쪽에서 달리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비슷하게 생긴 물옥잠은 꽃이 잎보다 위쪽에서 핍니다). 물달개비나 물옥잠은 예전엔 논의 잡초라고 생각할 만큼 흔했지만, 농약 때문인 듯점차 줄어드는 풀입니다.
“급식시간이 제일 걱정입니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는 순간인데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죠. 방역 예산은 물론 각종 인력지원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한국초등교장협의회 한철수 회장(서울대림초등학교 교장)은 2학기 전면등교를 앞두고 걱정이 많다.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게 된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감염 위험에 마음을 졸인다. 그는 얼마 전 유은혜 교육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쓴소리를 했다. 전면등교가 바람직하지만, 그에 앞서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회장은 “현장 교원과 학생, 학부모들은 하루속히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지만, 그 선결조건은 학생·교직원의 안전”이라며 “전면등교를 위한 실질적 안전과 방역 대책·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수도권·대도시 등의 과대학교·과밀학급의 방역이 관건”이라며 “이들 학교·학급은 전면등교로 인해 밀집도가 높아지고 교사의 방역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밀집도 완화 대책과 교사 업무경감방안이 추가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단의 대책 없이 생활방역만 강조하는 것은 결국 학교·교사에게 방역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고, 교사들의 피로도만 높여 교육활동에 차질까지 초래할 수 있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백신 접종 확대도 요구했다. 한 회장은 “교원과 행정직원은 물론 보안관·공무직·청소도우미·방과후강사 등 학교에서 활동하는 구성원 모두가 백신을 접종, 학생들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교사들을 위한 마스크는 물론 각종 방역물품을 제공하고 여기에 필요한 예산 지원도 요구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 반 동안 축적된 원격수업 시스템이 전면등교로 사장되는 일이 없게 효율적인 활용 방안 마련을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국 8개 교장단체 회장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그는 특유의 뱃심으로 거침없이 현장의 소리를 전했다. 한 교장의 결기에 유 부총리도 통 크게 화답했다. “방역 인력은 물론 예산 지원을 적극 검토하라”고 배석한 교육부 공무원들에게 지시했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지난 6월 11일 대림초 교장실에서 만난 한 회장은 “앞으로 교육부뿐 아니라 국회 등 교원들을 위해 필요한 곳이라면 어 디든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장들의 대표라는 한계를 넘어 모든 교육 구성원들을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다. 교직생활 39년, 긴 세월 쌓은 경험을 살려 교육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한 회장. 그는 다시 태어나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교사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지난 5월 28일 제36대 한국초등교장협의회 회장에 선출됐다. 소감은. “어깨가 무겁다. 열심히 봉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장이 되고 보니 과제가 산적하다. 현장 교장선생님들과 소통하면서 주어진 임기 동안 교장회와 교육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한국초등교장협의회장 임기는 2년이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교장회는 단순한 교장들의 친목단체가 아니다. 수많은 학교구성원들의 대표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학교교육이 속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또 교원들에게 주어진 과도한 업무부담과 부당한 책임에 대해서는 과감히 시정을 요구하고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초등교장협의회 회장에 선출되면서 교원 근무여건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보직교사 수당을 현실화해야 한다. 지난 2003년부터 18년째 월 7만 원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너무 힘들어 너도나도 기피하는 게 보직교사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우는 갖춰 주는 게 도리다. 담임수당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6년 2만 원 올라 13만 원이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교감선생님들의 직급보조비도 30만 원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 올해 이것부터 해결해 볼 생각이다. 꼭 관철시키겠다.” 교장선생님들을 위해 고민하는 것은 없나. “위상을 높이고 정당한 권위를 되찾는 일이다. 2022 교육과정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데 일선 학교장들의 의견을 적극 개진할 생각이다. 사실 교장은 평교사부터 부장·교감 등을 두루 거친 것은 물론 전문직 경험까지 가진 베테랑들이다. 이들의 역량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국가교육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교원 휴가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수업일 중 연가를 사용할 때 학교장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데 나이스에 연가 사유를 기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소속 학교장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사례가 많다. 교사가 연가를 내는데 교장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 승인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점은 좀 아쉽다.” 코로나19 이후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두드러졌다.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는데 교육당국의 대처는 너무 안이해 보인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학생의 학력 저하는 학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가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정부는 기초학력보장법을 제정해 정확한 학력진단과 처방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생이 분수도 모른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듯이 기초학력 저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이것은 국가의 의무다.” 최근 유은혜 교육부총리와 2학기 전면등교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아는데. “전국 초·중·고 교장단 8개 단체 대표와 간담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학교구성원 전체로 백신 접종을 확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시다시피 학교에는 교원과 행정직원뿐 아니라 협력교사·두리샘·창체 강사·방과후 강사·배식 도우미·청소용역·보안관·조리원·당직전담원·미화원 등 다양한 직종이 인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뿐인가. 교직원의 병가나 연가 등으로 기간제교사나 강사 등 대체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학교에 상주하는 모두에게 백신 접종이 확대돼야 한다.” 전면등교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방역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인력 충원도 필요한데. “학교보건지원강사가 학생 수 2,000명 이상이면 전일제, 1,000명 이상이면 시간제로 운영된다. 이 배치기준을 전면등교에 맞춰 개선해 달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월부터 학생 수 1,000명 이상 과대학교에 학교당 학교보건지원강사 2명을 지원해오고 있다. 아울러 전면등교 시 학교급식 보조인력을 추가 지원해야 한다는 점도 주문했다.” 학교 근무환경이 달라지는 만큼 교사들에 대한 지원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마스크를 쓰고 일주일 내내 대면수업을 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수업 중 발성과 호흡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많다. 교사들에 대한 마스크를 주기적으로 지원하고 수업용 마스크 개발 등 교사들이 보다 나은 여건에서 수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유은혜 부총리의 반응은 어땠나. “건의사항 대부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교장단이 학교현장의 고충을 진솔하게 전달해 준 데 대해 고맙게 여긴 거 같았다. 그동안 주로 교원단체들과는 대화를 많이 한 것으로 아는데 교장단과도 허심탄회한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올해로 교직생활 39년이다.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 “초임 장학사 시절이 가장 그립다. 당시 현장 교감·부장교사들과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밤낮으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참으로 행복했다.” 끝으로 교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는데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교장회가 주축이 돼 모든 구성원과 소통하며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힘을 모아 달라.”
이미지 정치인의 감성적인 눈물·겸손은 장점 ‘엄마표’ 교육은 아이들 미래에 큰 동력인데 정치 공학적 ‘라떼’ 교육에 매몰된 행보 실망 역대 최악 ‘기초학력’ 추락에 책임감 보여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감성적이다. 잘 웃지만 잘 울기도 한다. 유치원 파동 때도,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 때도, 고3 학생들의 강릉 펜션 참사 때도, 그리고 총선 불출마 선언 때도 울먹였다. “저도 또래 자식이 있다”, “부모님 아픈 마음 누구보다도 잘안다”, “제 터전이었던 일산을 생각하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등등 그의 눈물은 대중의 마음을 녹였다. 함께 울며 눈물을 닦아주는 이도 있었다. 유은혜의 감성 행보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았던 전임(김상곤 장관)과는 달리 겸손했다. 애간장 태우던 ‘유치원 3법’이 국회를 통과해 엄마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그러다 보니 2018년 9월 청문회 당시 치명적이었던 ‘딸 위장 전입’을 비롯한 너저분한 흠결도 지금은 거의 잊혔다. 입각 당시 “청문회에서 시달린 분이 일을 더 잘한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상한 격려를 받더니 취임 초기 1년 남짓 동안에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눈물을 흘렸다. 이미지 정치인의 감성적인 교육 행보다. 그러나 나는 눈물의 진위가 궁금하다. “눈물에는 선한 눈물과 악한 눈물이 있다. 선한 눈물은 오랫동안 자기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정신적 존재의 깨달음을 기뻐하는 눈물이고, 악한 눈물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선행에 아첨하는 눈물이다(톨스토이)”, “눈물은 약함의 표시가 아닌 강함의 표시이며, 만 개의 혀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워싱턴 어빙)”라는 현자의 말도 떠오른다. 눈물은 만 개의 혀보다 설득력 유 장관은 취임 초창기와는 달리 이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역대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임기는 고작 1년 남짓이었다. 그런데 유 장관은 2018년 10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33개월째 장관직을 수행하며 역대 최장수 기록을 깨고 있다. 그런데 문뜩 현자들의 ‘눈물’에 대한 촌철살인이 떠오른 건 유 장관의 교육 행보와 눈물의 진정성이 충돌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우선, 진심으로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자립형사립고와 외국어고 학생들의 마음을 보듬었어야 했다. “자사고 돌려줘”, “학교는 우리 겁니다”, “내로남불 물러가세요”…. 절규하는 학생들의 눈물 속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선한 눈물은 그럴 때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진보교육감을 병풍처럼 세우고, 폐지 가속페달을 밟았다. 법정 소송으로 비화한 자사고 문제에 대해 법원이 모두 자사고의 손을 들어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 자식은 좋은 학교 보내려고 위장전입까지 했던 터에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2025년부터 자사고와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키로 하는데 총대를 멨다. 문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며 괜히 격려한 게 아니다. 법의 심판대에 선 수월성 교육문제는 정권이 바뀌어도 시끄러울 것이다. 10% 아이들은 남의 나라 아이인가. 유 장관의 교육철학도 모호하다. 고교 무상교육과 오락가락 입시는 ‘교육 포퓰리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교 무상교육은 필요하다. 그런데 낭랑 18세 표심잡기 전략이란 오해를 샀다. 고3·고2·고1 순서가 아니라 고1·고2·고3 순서로 했더라면 오해를 피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난 총선 때 일부 만 18세인 고3의 투표로 ‘교실 정치’가 우려됐었는데도 교육부는 초창기에 대상 학생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당시 법이 통과되고 나서야 고교생 유권자는 14만 명이라고 밝힌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애초 정치권이 주장한 5만 명의 세 배에 가까웠다. ‘낭랑 18세=진보 표’라는 정치 공학적 셈법을 교육에 끌어들였던 건 아닌가. 유 장관이 명확히 입장을 냈어야 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입 흔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입을 흔들었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와 정시 수능 40% 반영은 상충하는 정책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내로남불’이 대입을 흔들고 교육의 방향타를 잃게 한 셈이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지금은 연간 출생아 수가 27만 명으로 주저앉은 심각한 저출산 시대다. 재수생을 포함해 30만 명이 입시를 치른다고 가정하고, 30만 명 전원이 20년 후 대학에 간들 현재 대입 정원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다. 30만 명 중 여학생이 15만 명이면, 이들이 모두 결혼해 자녀를 두 명씩 낳아야 30만 명이 유지된다. 유 장관은 자식 둔 엄마로서 누구보다도 잘 알 터이다. 그런 절박한 패러다임 전환기에 대입을 포함한 대한민국 교육 디자인에 헌신하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다. 역사에 남을 명품 교육장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 총선 때 출마를 포기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금배지를 포기한 게 그리 아쉬운가. 적절한 눈물이 아니다. 유 장관은 사실 이번에 눈물을 흘렸어야 했다. 바로 6월 2일 중·고교생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통상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는 교육부차관이 발표했었는데, 이번에 장관이 직접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취임 초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오던 유 장관은 최근 부쩍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차관이 발표하던 학업성취도 평가결과 발표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뭔가 전향적인 계획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등교수업을 확대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초·중·고 수업에 혼선이 빚어지고, 학생 등교를 막는 일에만 매달려왔으니 결과는 이미 예상됐었다. 중·고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역대 최대로 나타나고, 수포자(수학 포기자) 비율은 13%로 치솟았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지역 격차다. 읍면 지역 중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국어가 9.6%, 수학은 18.5%였다. 반면 대도시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국어가 5.4%, 수학이 11.2%였다. 이런 현상은 지역별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기계적인 비대면수업을 진행한 데다 대도시에선 비대면수업의 틈새를 비집고 사교육만 기승을 부린 데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어제 가르친 대로 가르쳐선 안 돼 그렇지만 유 장관은 “학습결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했을 뿐 자성의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교육부는 학습결손 극복 종합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팬데믹 사태 이후 벌써 세 번째 학기가 끝나 가는데, 대체 그동안 무슨 대비를 해왔는지 모르겠다. 학업성취도 성적표는 교육부에는 ‘죽비’나 다름없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하다, 2017년부터는 일부 표집평가로 전환했다. 전교조가 전국 전수 시험을 ‘나쁜 서열 매기기’라고 주장하자, 문재인 정부가 표집평가로 바꾼 것이다. 그 결과가 학생 실력 추락으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중·고생이 이런 상황인데 초등생은 어떨까. 아찔하다. 중·고생의 역대급 기초학력 미달은 물론 코로나19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교사도, 학부모도 한숨이다. 그런 걸 대비했어야 할 교육당국은 ‘코로나’ 뒤에 숨어 학생 실력 문제에 소홀했다. 교육부가 아둔하다면 국가교육회의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한술 더 떠 실력 경쟁을 적대시한다. 게다가 진보교육감들은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서열 매기기’로만 비난할 뿐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대체 대한민국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나. 이럴 때 유 장관이 나서야 한다. 이미지 감성 정치인이 아니라 엄마 마음의 ‘유은혜 교육’을 펼쳐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또 다른 정치적 자리를 탐하지 말고 교육에 혼신을 기울이면 된다. 무엇보다 “나 때는 이랬어(Latte is a horse)”로 상징되는 ‘라떼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진영논리를 떨쳐야 한다.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라떼 교육’을 좇아 간다면, 유은혜 교육은 없다. 존 듀이는 “어제 가르친 대로 오늘도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If we teach today as we taught yesterday, we rob our children of tomorrow)”이라고 강조했다. 유 장관이 이 말을 새겼으면 한다. 학생 미래 걱정하는 눈물이 진짜 눈물 초·중·고 교육의 귀착지인 대학은 더 절박하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계속 내리막이다. 방방곡곡의 대학들은 학생 수가 모자라 아우성이고, 대졸자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가슴 시린 청춘을 보내고 있다. 고등교육의 국제 경쟁력은 계속 떨어져 아시아권에서 계속 중국 대학에 밀린다. 유 장관은 지금 ‘정치 공학적 교육’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교육에는 좌우가 없고 학생만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전공대 하나만 봐도 철학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전국의 대학을 각종 돈줄과 입시로 옥죄면서 한전공대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는 게 과연 옳은가. 대학이 넘쳐나는데 국민 세금으로 더 만들 이유가 있나. 물론 한전공대의 설립인가와 감독 주체는 교육부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다. 산자부 지시를 받은 한국전력은 총대를 메고,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학교 건물 준공 전 인가신청, 입시전형 계획 공표 시기 등 각종 편법 지원을 도맡았다. 그런 상황을 유 장관은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유 장관이 지부상소(持斧上疏)의 결기로 문 대통령에게 “한전공대는 아니 되옵니다”를 간(諫)하면 어떨까. 역사에 길이 남을 장관이 될 것이다. 충신과 간신의 차이는 종이 한 장 두께도 안 된다. 어이없는 망상일까. 링컨 대통령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라고 했다. 그렇다. 미래 창조는 인재 양성이 그 시작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인재역량은 6가지라고 한다. 소통·협업·비판적사고·창의성·인성·시민의식이다. 낡은 교육시스템을 개조하지 않으면 쉬운 과제가 아니다. 유 장관은 그 과제에 마지막 직(職)을 걸어야 한다. 갈수록 떨어지는 학생 실력, 불어나는 사교육비, 두 동강 난 교육계, 고등교육의 국제 경쟁력 추락, 공정의 배신을 걱정하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게 진짜 눈물이다.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올해 우리나라 형사사법제도에 세 가지 큰 변화가 있다. 1월 1일부터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1.21.), 7월 1일부터 자치경찰제 시행이다. 형사사법제도(刑事司法制度)란 형사의 재판 및 그에 관련되는 국가 제도를 말한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선생님들은 “교육과 무슨 상관이냐?” 이런 반문을 할 것 같다. 맞다. 교육자는 교육에만 전념하면 되고, 경찰·검찰·공수처·법원과는 무관하게 사는 게 최고다. 또 많은 선생님이 깨끗한 교직 윤리를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사도 그렇듯이 교직생활도 본인 의사에 반하는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교권 업무를 오랫동안 하면서 평소 선생님들이 갖는 순수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난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야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다 알고 있는데 뭐 △발생하면 그때 고민하면 되지 △학교나 교육청에서 알아서 다해주는 거 아냐?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경찰서에서 조사받으라고 연락이 오는 순간, 그 당당함과 냉정함은 사라지고 멘붕에 빠지게 된다. 또 근거 없는 자신감, 또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라는 시간에 혼자 가서 실수와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선처를 호소하기도 한다. 이후 ‘잘 되겠지’라는 기대가 사라지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검찰 기소 과정에서 학교로 연락이 와 직위해제 등 징계 절차를 밟을 때쯤이나 재판에 넘어갈 때쯤 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교총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요즘 교직사회의 저승사자법이라는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 △성폭력방지법 등 4대 법률 위반 문의 사건이 늘고 있다. 공수처 제1호 사건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교사 특혜채용 의혹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형사사법제도 변화가 교육계와 무관하지 않음이 입증된다. 이런 현실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의 내용과 교직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교원이 꼭 알아야 할 예방 교권 사항을 알아보고자 한다. 검경수사권 조정의 주요 내용 범죄사건은 피해자의 고소·고발 또는 수사당국의 인지를 통해 수사가 시작된다. 지난해까지는 경찰이 사실관계에 대해 심문과 수사를 통해 범죄행위에 대해 ‘기소 의견’ 또는 ‘불기소 의견’으로 관할 검찰청에 사건을 송치하고, 검찰은 송치받은 사건에 대해 기소 여부를 판단해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하거나 공소제기를 해 공판절차를 통해 유·무죄를 다투어 왔다. 즉, 모든 사건은 경찰의 수사종결권이 없어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의 개정(2020.1.13.)으로 올해부터 중요 범죄가 아닌 사건은 경찰이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다. 다만 경찰이 무혐의 종결 처리했는데 고소인의 이의신청이 있으면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하여야 한다. 자치경찰제 도입 많은 국민은 올해 7월 1일부터 자치경찰제 전면 도입 사실과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 교원들도 “그래서 나랑 무슨 상관인지, 치안 서비스가 어떻게 바뀌는데?” 이렇게 질문하곤 한다. 결론적으로 국민 입장에서 볼 때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 자치경찰 도입 후에도 현행과 같이 112로 그대로 범죄 신고하면 된다. 다만 경찰 신분은 장기적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즉, 현직 경찰관의 신분은 초기에는 국가직을 유지하고 단계적으로 지방직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차후에 교직도 지방직화 주장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자치경찰제는 지방분권의 이념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하고, 경찰의 설치·유지·운영에 관한 책임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제도다. 즉,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고 국가경찰은 정보·보안·외사·경비와 112상황실 운영, 수사(광역범죄 국익 범죄 일반형사 등), 전국적 규모의 민생치안을 맡는다. 자치경찰은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지역 경비 등 주민밀착형 사무와 지구대·파출소 운영과 민생치안 밀접 수사(교통사고·가정폭력 등)를 책임지게 된다. 임명권자의 변경이나 시·도자치경찰위원회 설치 등 복잡한 것은 교원의 관심사가 아니라 생략한다. 형사사건 피의자가 되지 않는 방법 검찰의 영향력은 축소되지만, 경찰의 역할과 기능이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무엇보다 경찰 수사단계에서의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해졌다.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가짐에 따라 「교원지위법」에서 규정한 교육활동 침해행위인 상해와 폭행죄·협박죄·명예훼손죄·손괴죄·성폭력 범죄·불법 정보유통·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에 대해 교원과 학교가 고소·고발할 경우 조기에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반대로 교원이 수사대상이 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남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형사사건에 휘말린 교원의 반응은 대개 ‘억울하다. 교권침해사건이니 도와달라’이다. 필자가 전국의 교권 연수 강의에서 “선생님의 하루 일상을 찍어서 뉴스에 내보내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사셔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은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늘 한다. 형사사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실천 수칙은 바로 △문제 될 말 하지 않기 △오해 살 행동과 신체접촉 않기이다. 잘못된 회식문화와 음주운전은 눈물의 씨앗이다. 화가 나도 참고 욕설·체벌·비방·비하·차별·남녀혐오·타인의 병명과 개인정보 유출은 뒤늦은 후회를 부른다. 무엇보다 5대 비위 사건(금품·향응수수·상습폭행·체벌·성 비위·성적조작·음주운전)은 교권침해사건에 해당하지 않아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경찰 조사, 제대로 알고 잘 대처하자 교육자는 임용부터 퇴직하는 날까지 세 가지 책임이 있다. 행정적 책임(징계), 법률적 책임(민·형사상 소송), 도덕적 책임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송사(訟事)에 휘말리면 정상적인 교직생활이 어렵다. 따라서 형사사건의 참고인·피의자가 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갑자기 경찰서에서 고소(고발) 사건 조사받으러 출석을 요구받게 되면 잘 대처해야 한다. 대부분 불안감과 걱정이 밀려오면서 고립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심리적 위축과 징계까지 걱정이 된다. 따라서 출석요구 시 냉정한 단계적 대응이 필요하다. 출석 요구에 무조건 응하기보다는 방어권 보호를 위해 충분한 조사 일정을 확보해야 한다. 고소(고발) 내용 확인이 급선무다. 경찰서 조사 전에 고소(고발) 내용 확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 → 회원가입 → 청구/소통 → 청구신청(청구기관은 해당 경찰서명 기재-제목에 ‘고소장(고발장) 열람 등사신청’ 기재-고소 연월일자 기재후 고소장을 열람하고자 합니다. 기재·공개방법은 전자파일로, 수령방법은 정보통신망) → 열람, 내용 확인 절차 순이다. 경찰 조사에서도 유념해야 할 것은 혐의사실 질의에 대해 순순히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경찰출석 동행도 권장한다. 경찰서는 억울함을 풀어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범죄를 입증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학폭미투·성폭력 피해 공군 여중사 사망 사건 등이 크게 이슈화되었다. 이처럼 사회적인 변화와 요구, 법적 처벌강화가 이어지는데 교직사회도 예외일 수 없다. 형사사법제도의 변경 또한 교육계와 무관치 않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도록 평소 주의해야 하고, 또 행한 잘못을 넘어선 과도한 처벌이 되지 않도록 잘 대응해야 한다. 문제는 형사사건은 교원 홀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총 등 교원단체 등의 도움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교총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초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올해부터 가입 3개월이 지난 회원의 경우 경찰 조사 시 변호사 동행비 지원(회당 30만 원, 동일 사건 최대 3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교권 사건의 경우 소송비 지원(심급별 최대 500만 원) 등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들어 부쩍 교직사회의 부끄러운 사건이나 법원 판결 보도가 늘고 있다. 교권은 부여되는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깨끗한 교직 윤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자연히 발생하는 평가다. 비위나 검경수사권 조정과 상관없는 떳떳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평소 조심하고 예방 교권 수칙을 꼭 실천할 것을 다시 한 번 당부 드린다.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이 무너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고, 수업 듣고, 급식 먹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집에 오던 평범했던 일상을 빼앗겼다. 학교를 안 가서 신나던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외로움과 불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무기력해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뭐라도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지만, 실천하지 않는 자신이 실망스러워졌다. 이러다 나만 뒤쳐질 것만 같은 불안감과 우울감에 빠졌으며, 불규칙한 생활패턴으로 점점 게을러지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자존감도 바닥까지 내려왔다. 아이들은 어른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들도 경험한 적이 없어 우왕좌왕하느라 아이들을 찬찬히 챙겨줄 겨를이 없었다. 부모님은 불어 닥친 경제위기 속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릴 방법을 찾느라, 선생님 역시 변화된 교육환경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다. 그래서 아이들은 본인들이 뭘 감당하고 있는지, 왜 자기 마음이 이렇게 우울하고 불안한지, 갑자기 자존감이 왜 이리 낮아졌는지 영문도 모른 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교육계의 가장 큰 걱정은 코로나19로 인한 학력저하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학력’ 챙기기가 아니라 ‘마음’ 챙기기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코로나블루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01_ 교사의 잔소리가 사라지자 게으름이 피어올랐다 ‘쉼’이 길어지면 ‘나태함’이 치고 들어온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학교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유지되는 집단이다. 어쨌든 학교에만 나오면, 어영부영 시간은 흐른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있어도 선생님들이 찾아와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사탕까지 쥐어주면서 어르고 달래며, 기어이 조금이라도 ‘하도록’ 했다. 친구가 하자니까 대충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학교생활 곳곳에 ‘타자(他者) 찬스’가 존재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변화된 학교환경은 아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자기통제력’과 ‘자기관리능력’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시간 맞춰 온라인에 접속해서 수업을 듣고(시간관리), 시험·수행평가 준비를 하며(자기주도학습관리), 대학입시와 취업도 준비해야(진로계획)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었기에 어느 날 갑자기 부여된 ‘자율성’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타자 찬스’가 사라지자 ‘조금만 있다가 해야지’하며 미뤄놓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아침저녁으로 조·종례시간에 해대던 담임 선생님의 지긋지긋한 잔소리가 사라진 자리마다 게으름이 피어올랐다. #02 _ 불규칙한 생활패턴과 함께 자존감도 무너졌다 최근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평상시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와의 힘겨운 싸움이다. 순간순간 치고 들어오는 귀찮음과 게으름을 극복해야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아이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게을러지기 시작한 일상생활이 어느새 몸에 익숙해졌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데를 외치지만, 나태함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 이러다가 나만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반복되는 불안감에 조급해지고, 짜증이 늘고, 우울해졌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게으른 자신이 한심스럽고 바보 같았다.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왔고, 그러면 그럴수록 일상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어 졌다. 평소 같았다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코인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털어버렸을 텐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규제가 생기면서 그것조차 쉽지 않다. #03 _ 친구의 빈자리엔 외로움이 파고 들었다 수다를 떨며 힘이 되어주던 친구도,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바뀌는 사춘기 마음을 함께 나눌 친구도, 이런저런 이유로 쌓인 스트레스를 함께 날려버릴 친구도 랜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와서 깔깔거리던 친구의 빈자리를 게임으로 달랬다. 하지만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체육대회·수련회·합창대회·체험학습 등 단체활동이 중단되면서 학급의 역동성 형성도 어려워졌다. 친해질 만하면 다시 온라인으로 들어가는 친구들과의 친밀도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다투고, 토라지고, 화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하던 소통능력과 대인관계능력도 점점 약해졌다. ‘관계의 단절’은 생각보다 후유증이 컸다. 친구를 사귀고, 서로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고, 그럴수록 적응력은 더 떨어져갔다. 전면등교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에 겁이 났다. #04 _ 심리적 고통은 백신을 맞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의 몸속에만 침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까지도 은밀하게 침투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심리적 고통을 겪으며 이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2020)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은 ‘온라인 개학실시’, ‘친구들과의 단절’, ‘일상생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불안과 걱정’, ‘화·분노’를 경험하고 있었다. 문제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백신’을 맞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력저하를 끌어올리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기 전에,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세심한 관리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가장 간단하게 해줄 수 있는 심리적 지원은 바로 ‘정서적 지지’이다. “집에서 너무 놀아서 게을러져서는…” 이라는 말 대신에 이렇게 말해보자. “일상이 무너지다보니 느끼는 무기력감이야.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단다. 다시 조금씩 일상생활에 적응하다보면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부터라도 학교 교육이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알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으로 변화되기를 희망해본다.
A가 B와 대화하고 있다. A가 말한다. “그 사람들, 이단 집단이야.” “이단은 아니래.” “이단이라던데?” “이단 아니라니까.” “그럼 뭐야?” “이단 아니고, 삼단이야. 삼단!” 이견으로 긴장이 감도는가 했는데, 급전직하 맥 풀리는 대화로 변전한다. 서로 헛웃음이 번진다. 이단임을 주장했던 A는 B가 ‘삼단’ 운운하니, 너 지금 장난하는 거냐고 역정을 내려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B의 우스갯말에 그 이단을 더 치명적으로 희화화하는 의도(이단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비아냥거림)가 들어 있다. 삼단이라는 말에 묘미가 아주 없지는 않다. 말의 소리나 의미를 엉뚱하게 비틀어서 우스갯말로 만드는 전형적인 예다. 국민이 다 아는 우스갯말을 나는 늦게야 듣고서,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었다. 친구가 가르쳐 준다. “1 더하기 1은 뭐지?” 나는 별생각 없이 ‘2’라고 대답한다. 친구는 ‘너 이런 거, 잘 몰랐지’ 하는 표정으로 말해 준다. “2가 아니고, ‘과로’야 ‘과로’!” “그게 왜 과로야?” “이미 일이 있는 데에 또 일을 더 해야 하니, 그러니 과로라는 거지.” 웃기는 구조는 좀 단순해도, ‘피로 사회’로 치닫던 시대상을 담고 있다. 친구가 다시 말한다. “그러면, 2 더하기 2는 무엇이 될까?” 이걸 ‘4’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겠는데, 언뜻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남은 모르고 나만 알 때는 그 의기양양함을 숨기기 어렵다. “뭐기는 뭐야 ‘덧니’지. 있는 이에 또 이가 덧붙었으니, ‘덧니’가 되는 거지.” ‘2’를 ‘이(치아)’로 살짝 갈아치운 것이다. 그렇구나. 덧니가 되는구나. 요즘은 치과에 가서 유치(乳齒)를 때맞추어 빼니, 덧니 가진 아이들이 없다. ‘과로’는 바로 들어오고, ‘덧니’는 왠지 낯설고 낡은 느낌이다. 현상이 없어지면 말도 조용히 사라진다. 이런 우스갯말은 말소리와 말뜻을 일부러 비뚤어지게 주물럭거려서, 정상적인 말의 쓰임을 살짝 비틀어 놓음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잠시 웃기는 하지만, 생각할수록 재미가 솟아나, 견디지 못하게 빠져드는 유머까지는 아니다. 말 사용의 규범과 질서를 살짝 어겨 보는 데서 오는 가벼운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의가 번뜩이는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식의 유머가 그들의 감수성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다소 억지스럽게 난센스를 만들어 즐기는 이 말놀이가 좀 따분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이를 ‘아재 개그’라고도 한다. 나이 든 아저씨뻘쯤 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유머라는 것이다. 아재 개그도 그 나름의 시대적 진화를 한다. 광복 이후 대중들에게 크게 인기가 있었던 이른바 ‘만담(漫談)’이란 장르에서 웃음을 만들어 내는 패턴이 지금의 ‘아재 개그’와 상당한 유사성을 지녔다. 내가 기억하는 장소팔·고춘자 콤비의 만담이나, 구봉서·배삼룡 콤비의 만담은 아재 개그의 저장고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의 박명수나 조세호의 유머 스타일에도 아재 개그의 전통이 모르는 중에 서려 있다. 내가 40여 년 전 듣고 자못 경탄했던 것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구원받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사람은?’ 정답은 ‘십 원 받은 사람’이다. 자본의 가치를 우선하던 세태를 본다. ‘헌병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답은 엿장수이다. 엿판을 지게에 지고 시골 마을을 돌아나가는 엿장수 아저씨는 돈이 궁한 시골 마을에 빈 병(헌 병)을 다 거두어 가며, 그걸 엿으로 바꾸어 주었다. 궁핍한 시대의 풍경이 아재 개그에 걸려 있다. 지금은 그런 엿장수도 없고, ‘헌병’이란 말도 없어졌으니(‘군사 경찰’이란 말로 바뀌었다.) 아재 개그도 자기의 시대를 증언하고는 수명을 다한다. 어린이들이 잘 쓰는 감탄사 등을 이용하여, 세대 구분 없이 즐기는 아재 개그도 있다. 이런 개그다. “소나무가 삐지면 무엇이 되지?” 정답은 ‘칫솔’이다. 고정관념의 구덩이에 덜컹 빠지게 하는 것도 있다. “20층 높은 빌딩에서 세 사람이 떨어졌는데 부상자가 한 사람도 없다. 왜 그럴까? 모두 사망자이니까.” 이 개그에는 재난 범주에 포함되는 말(부상자/사망자)끼리의 관계를 살짝 몰각하도록 하는 전략으로, 쓴 웃음을 만들어 낸다. 제법 머리를 쓴 우스갯말이다. ‘아재’는 아저씨라는 말의 애칭쯤으로 쓰는 말이다. 아저씨이기는 한데, 아저씨보다는 훨씬 더 정겹고 친숙하여, 마치 형제나 친구처럼 마음 편한 관계임을 담고 있는 말이 ‘아재’이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남자 형제들을 부르거나 가리킬 때, ‘아저씨’를 쓴다. 촌수로는 삼촌(三寸)인데, 요즘은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고, ‘삼촌’이라 부르는 경향을 본다. 언어 규범에 맞게 쓴다고 할 수는 없다. ‘아저씨’ 또는 ‘아재’는 꼭 삼촌 촌수에만 쓰는 말은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촌 형제들 즉, 5촌 촌수의 남자 어른들도 아저씨라 불렀다. 이런 식으로 7촌·9촌 등의 홀수 촌수 남성들은 모두 아저씨라는 말로 불렀다. 촌수가 멀어지면 ‘아저씨뻘’이라는 표현으로 촌수 관계를 나타내었다. 물론 그런 아저씨들도 얼마든지 ‘아재’로 불릴 수 있다. 요지는 이렇다. 아재(아저씨)는 가까운 촌수이든 먼 촌수이든, 나보다 높은 항렬의 어른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재 개그는 그런 어른 세대들이 쓰는 좀 고리타분한 우스개로 인식된다. 참신함이나 영향력(impact)이 2% 모자라는 유머라는 뜻이 은연중에 들어 있다. 아재 개그로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재 개그의 아재는 꼭 아저씨만 뜻하는 건 아니다. 직장의 상사, 학교의 선생님, 동문회의 선배, 고향의 어른 등 폭넓게 적용된다. 꼭 남자만 뜻하지도 않는다. 아줌마 중에도 아재 개그의 달인들이 많다. 아재 개그의 미래는 어떨까. 아재 개그도 미디어 생태와 문화 변이에 따라 눈부시게 진화한다. 유튜브(YouTube)에도 아재 개그는 풍성하게 등장한다. 젊은이들 감각에 맞는 엔터테인먼트 문화로도 자란다. 아재 개그 퀴즈대회도 열리고, 아재 개그 배틀 유튜버도 있다. 인터넷에는 끊임없이 개발되는 아재 개그 아이템 창고도 있다. 젊은이들이 주인공이다. 아재 개그에 몰입하는 여학생들과 초등학생들도 의외로 많다. 아재 개그는 우리말의 음운·형태·의미·어휘 등에서 장난치고 놀 수 있는 소스가 무한정 들어 있음을 잘 활용한다. 그래서일까. 학생들이 접근하기 좋다. 인기 있는 아재 개그 유튜버에서 금세 이런 걸 찾아낸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잡아당기는 자석은 ‘노약자석’이란다. 추장보다 높은 사람은 ‘고추장’이란다. 흑심이 가득한 놈은 연필이란다. 보내기 싫을 때는 주먹이나 가위를 내란다. 가장 빠른 떡은 ‘헐레벌떡’이란다. 설날 세뱃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사람은 ‘설거지’란다. ‘가다’의 반대말은 ‘노가다’란다. 어떤가? 고리타분한가? 오히려 참신하고 현란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이를 만들고 즐기는 이들이 젊은이들이라니, 아재 개그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한다. 정작으로 아재 개그가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바는 따로 있다. 아재 개그가 지탄받는 이유는 아재 개그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아재 개그를 구사하려는 상황이나 심리에 있다. 상하 권력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상황에서 권위적인 윗사람이 구사하는 아재 개그는 자칫 폭탄이 되기 쉽다. ‘나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야!’ 하는 걸 과시하려는 욕구가 앞서면 더욱 그렇다. 아랫사람들은 그 아재 개그가 재미가 있든 없든, 그 아재 개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든 아니든, 윗분의 아재 개그에 무조건 웃어드려야 한다. 권위주의 의식이 강한 분들일수록 성취동기도 강한 편이어서, 반드시 웃기고야 말겠다는 의도가 지나치게 강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억지로 무리하게 웃기려는 것까지도 불사한다. 이런 아재 개그를 듣고, 정말 우스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반응을 보여 드려야 하는, 아랫사람들은 마침내 아재 개그에 대해서 넌더리가 나는 것은 물론 적개심까지 느낀다. 억지로 웃어드려야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연민을 느낀다고나 할까. 이제, 아재 개그의 비극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이런 권위주의 어른들일수록, 그가 가진 권력이 강고하면 할수록, 자기가 정말 좌중을 충분히 웃기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누가 찔러서 눈치채게 해 줄 수도 없다. 그저 예의로 웃어드리는 것을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고 우스워서 웃는 걸로 더욱 굳게 믿는 것이다. 이거 재미없는 거 본인만 모르는 격이니, ‘벌거벗은 임금님’이 따로 없다. 좋은 유머의 순기능은, 좌중 그 누구도 마음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 좋은 유머는 좌중 그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만약 누구 하나를 좀 망가뜨려서 나머지 모두에게 엄청난 즐거움을 선사하더라도, 그 유머는 실패한 유머이다.
2024학년도 고등학교 1학년부터 학생부 축소 및 자기소개서가 폐지되고, 수상경력·독서활동 등이 대입에 미반영 되는 등 입시 환경의 변화가 예상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여전히 주요 전형이며,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독서활용)이 더 중요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한 독서활동이 아닌 교과수업에 학교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는 사서교사의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다. 일반 교실수업과 도서관 활용수업의 차이점 일반 교실수업과 도서관 활용수업의 차이점은 교과서 외에 학교도서관의 다양한 정보자료를 이용하여 수업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또한 학교도서관의 융통성 있는 공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학습집단 편성과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물론 사서교사와 협력하여 공동으로 수업을 전개한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도서관 협력수업은 교과교사와 사서교사가 협력하여 공동으로 계획하고, 공동으로 수업을 전개함으로써 도서관 활용수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학생들의 정보활용능력1 및 교수·학습활동에 필요한 정보자원 및 기기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교는 2018년 도서관을 북카페 형태로 새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서교사의 부재로 학생들의 이용도가 낮았고, 장서의 구성도 고르지 못했으며, 단순한 책읽기를 통한 도서관 활용수업만 진행되고 있었다. 2020년 본교에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장서점검을 비롯하여 장서의 정배열과 보존서고를 만들어 부족한 서가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또한 학기 초 학교도서관에서 이뤄질 수 있는 사서교사와의 협력수업에 대해 연수 및 안내 자료를 배부하면서 간단한 도서관 소개와 함께 교육부의 도서관 협력수업모형인 단순·일반·밀접협력형의 수업방법과 사례를 소개했다. 본교 사례를 구축하기 위해 간접협력으로 특정 교과가 요구하는 자료들을 따로 비치했고, 정보활용교육수업을 진행하고 나니 교과교사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올해 독일어교사와 독일문화를 주제로 총 4반의 6차시 밀접협력형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PART VIEW] 수업 준비 이례적인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수업대상이었던 1학년은 격주 등교를 하고, 잦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수업계획부터 차질이 빚어졌다. 최대한 대면수업 때 진행하도록 미리 일정을 조율했으며, 교과교사와 구글 문서를 활용하여 서로 협업하여 피드백을 주며 준비해나갔다. ● 주제 선정하기 Big6 모형을 활용하여 총 6차시의 수업을 준비했다. 처음 주제 선정은 본인의 중국어문화협력수업 경험과 학교도서관 활용수업2 중·고등 편의 프랑스 문화 책의 저자가 되다를 참고했다. 교과교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사서교사가 과제의 조건들을 피드백하며 주제를 선정해나갔다. 모든 과정이 마찬가지겠지만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사서교사의 역할은 교과지식 전문가인 교과교사의 시선에서 벗어나 학생 관점에서 주제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를 선택할 기회를 주기위한 것이다. 주제는 총 17가지를 선정했으며, 주제에 따른 정보길잡이를 준비했다. ● 관련 도서 구입 학교도서관의 소장 도서와 독일어실에 있는 교과관련 도서로는 효과적인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수시구매로 관련도서를 구매하더라도 모둠별로 주제가 겹쳤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인근 공공도서관을 방문하여 87권의 도서를 기관 대출했다. ● 온라인 매체 활용 정보탐색 및 정리를 위해서 도서관 노트북 6대, 검색용 PC 4대 그리고 독일어교과실에서 준비한 아이패드를 개인에게 나눠주었다. 모둠별 협력이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수업 중에도 학생들의 거리두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온라인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패들렛에 주제를 적어두어 실시간으로 원하는 주제에 댓글을 다는 방법으로 모둠을 짰고, 구글 문서를 활용하여 모둠별 활동지를 미리 만들어두었다. 또한 결과물인 리플릿은 양식을 미리캔버스로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설명을 준비했으며, 인근 도서관에서 실제 리플릿을 가져와 학생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안내했다. 수업 진행과정 ● 1차시 1차시 수업에서는 교과교사가 PPT로 주제를 설명하고, 패들렛으로 주제 선정 및 모둠 구성 그리고 역할 분담을 진행했다. 먼저 17개의 주제와 필수적으로 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해주었다. 한 주제에 편향되지 않도록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이때 사서교사는 주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들을 둘러보며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며, 종이와 사인펜을 나눠주고 모둠별로 주제와 관련된 마인드맵을 작성하도록 지도하였다. 주제 발표 전 나눠준 정보길잡이를 통해 따로 비치해둔 수업 관련 도서에서 책을 찾고, 목차를 살펴보며 알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마인드맵을 작성하도록 안내했다. ● 2차시 2차시는 정보검색방법과 활용 그리고 출처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먼저 학생들에게 Big6 정보활용단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검색기능의 두 유형인 통합검색과 상세검색, 검색 언어 유형인 일상어와 전문용어에 관해 설명했다. 또한 구글 문서로 찾아낸 자료를 기록·관리하는 방법을 안내했다. 정보검색방법으로는 독서교육 종합지원시스템을 이용하여 학교도서관의 도서를 검색하는 방법, 신문기사 및 논문자료 검색 및 이용 방법, 포털사이트의 상세 검색 기법, 협약을 맺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원문 이용 방법 그리고 검색한 자료의 참고문헌 작성법 등을 지도하였다. 또한 1차시에 마인드맵을 완성한 모둠이 거의 없어 독일어교사와 사서교사가 정보길잡이에 나온 책을 함께 살펴보며, 모둠별로 정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목차와 필요한 내용을 보며 발췌독하는 방법과 필요한 내용을 정보분석지에 정리하는 방법 등을 지도했다. 4개 학급 중 2개 학급의 2차시 수업 진행과정에서 교과교사가 코로나19 자가격리되는 변수가 발생하여 혼란스러웠지만, 실시간 ZOOM을 활용하여 무사히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5월에 본교로 교생실습을 온 사서교생 1명과 독일어교생 12명도 수업을 참관하면서 학생들의 모둠별 활동을 지도했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 3차시 3차시 자료조사과정에서는 학생들이 1·2차시에 작성한 마인드맵과 정보분석지를 바탕으로 역할을 나누어 자료조사를 진행했다. 교과교사와 함께 순회를 하다 보니, 많은 모둠이 주제에 대해 세분된 역할을 나누지 못해 동일하게 찾은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료조사 과정에서도 세분된 역할을 나눌 수 있도록 지도했다. 예를 들어 ‘독일 행사’를 조사하는 모둠에는 대표적인 축제를 검색하거나 정보길잡이에 나온 책의 목차를 소개해주고, 행사별로 조사하게 하거나 지역별 축제를 각자 조사하게끔 안내하여 학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 4차시 4차시 수업에서는 최종 제출물인 ‘리플릿 제작’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졌다. 인근 도서관에서 가져온 실물 리플릿을 직접 보여주고, 간단하게 미리캔버스의 ‘리플릿’ 양식에서 편집하는 방법을 안내해주었다. 미리캔버스 사이트를 활용하여 리플릿을 작성하면 모둠별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북아트 기법을 몇 가지 소개하여 학생들에게 최종 제출물에 대한 선택권을 넓혀주었다. 수업평가 4월부터 진행된 이 수업은 코로나19 상황과 5월 교생실습으로 인하여 아직도 끝내지 못했다. 6월과 7월에 걸쳐 5·6차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교과교사와 사서교사가 함께 진행하는 도서관 협력수업은 팀티칭 수업으로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상호보완해가며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의 독서활용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도서관 협력수업이 내실 있게 진행된다면 학생들의 독서활용이 단순한 책읽기가 아닌 도서관의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 정보활용능력의 성장으로 빛날 기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