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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daum.cafe.net/parque) 거대한 군사종교세력의 등장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물론 마호메트이다. 그가 탁월한 종교적, 정치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아라비아 전체를 통일하고 그의 후계자들이 정복사업을 계속하여 거대한 사라센 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가 그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은 이란의 사산 조(朝) 페르시아와 오랜 싸움을 계속하는 바람에 6세기 후반에 들어와 '비단길'과 '바다길'이 거의 막혀 아시아에서 오는 상품이 아라비아 반도로 집중될 수밖에 없없다. 자연히 그 중심지인 메카가 중계무역을 독점하면서 크게 번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호메트는 610년에 이슬람교를 창시했다. '이슬람'이란 아라비아말로 '신으로의 절대적 귀의'를 의미한다. 당시에는 부와 권력이 대상인(大商人)에게 편중된 것이었기 때문에 마호메트의 '알라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사회변혁을 통한 일종의 계급투쟁이었기 때문에 결국 메카에서 메디나(현재의 야슬리브)로 추방을 당하였다. 서기 622년 7월 16일의 이 사건을 '헤지라'라고 하며, 이것이 이슬람력(태음력)의 기원이다. 마호메트 사후,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후계자이며 신도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칼리프를 선출하고 그들의 지도하에서 대 정복사업을 하였는데 이를 지하드[聖戰]라 한다. 이슬람은 정복사업을 통해 급속한 속도로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다. 상권 확대를 위한 정복전쟁 이슬람 군대가 동방에서 이란의 사산 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서방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영토인 이집트와 시리아를 점령함으로써 본격적인 지하드의 막이 올랐다. 한편 제4대 칼리프인 알리가 내분으로 암살을 당하니 서기 661년 무아위야(Muawiya)가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하는 우마이야 왕조를 세우고 인도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걸치는 땅을 정복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4대 칼리프 알리의 암살을 계기로 이슬람 세계는 크게 시아파와 수니파로 분열되어 두 종파 사이의 갈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시아파는 알리와 그의 자손만이 마호메트의 후계자로서의 정통 칼리프로 인정하는 반면에, 수니파는 이슬람교의 신도 누구나 자격만 갖추면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복사업 이면에는 포교보다는 경제적 이익확대, 다시 말해서 상권 확대가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마호메트 시대의 아라비아 반도는 척박한 불모의 땅이었고, 북부를 지나는 풍요로운 실크로드 지역은 그리스도교의 비잔틴 제국과 조로아스터교의 사산 조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어 아랍상인들이 그 지역을 통과하려면 통행세 또는 높은 세금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이슬람은 아라비아를 통일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하면 화도 나고 지금까지 바친 세금이 아까워지기 시작하였다. 자기들이 직접 무력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지배하면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통행세라는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권 확대를 위한 정복사업 결과, 이슬람은 서방 그리스도교 국가의 통치 하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원주민을 해방시키는 존재가 되었으나 반면에 그 땅에 군림하고 있었던 그리스도교를 배척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나중에 십자군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8세기 전반에 이슬람 제국(사라센 제국)은 광대한 지역으로 확대되었는데, 특히 우마이야 왕조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 두었다. 이에 역대 스페인과 포르투갈 왕들은 이슬람으로부터의 국토회복 전쟁에 매달려야 했다. 이슬람 제국의 갈등과 분열 이슬람교는 아랍인에서 시작하여 조로아스터교의 이란인을 개종시키더니 투르크인(터키인) 등 많은 민족으로 확산되어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고 중세의 문명을 이끌어 나갔다. 661년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하는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왕국은 근 1세기 동안 세습적으로 칼리프를 계승하면서 활발한 통상과 문화적 융성시대를 맞이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인도에서 이베리아 반도까지 이슬람의 영향권 하에 두었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반대파가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마호메트 가문이 가장 불만이 많았다(암살당한 알리는 마호메트의 사위). 그들은 남 이라크를 거점으로 하여 마호메트의 조카인 아바스의 혈통을 이은 아바스가 중심이 되어 8세기 중반에 우마이야 왕조를 전복시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다. 또한 수도를 바빌론이 융성하였던 메소포타미아에 '평안의 도읍지'라는 뜻인 바그다드로 옮기고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 키워가면서 약 75년간에 걸쳐서 크게 번창하였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의 설화와 민담을 모은 아라비안나이트(아라비아 야화)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아바스 왕조의 제5대 칼리프인 하룬 알 라시드는 역대 칼리프 가운데 가장 걸출한 군주였다. 아무튼 당시 바그다드는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였고 사라센 대제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중동패권주의와도 연관이 있다. 비록 지금은 미군의 포로가 되어 재판을 받는 신세지만…. 8세기 초에 우마이야 왕조는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를 지나 이베리아 반도,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를 정복하고 그 여세를 몰아 인도 북서부까지 그들의 영향권 내에 두었다. 732년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 반도의 게르만 국가인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계속 북상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을 침략하였으나 메로빙가의 궁재였던 샤를 마르텔에 의해서 격퇴되고 말았다. 패배한 이슬람군은 피레네 산맥의 남쪽으로 후퇴하였지만 서유럽의 세계는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아직 유럽 국가의 틀이 잡히지 않은데다가 프랑크 왕국도 국가로서의 틀이 완전히 여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우마이야 왕조가 망하고 아바스 왕조로 교체되자,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었던 잔존세력들은 코르도바 칼리프국을 세우고 이집트에는 카이로 칼리프국이 성립되어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의 후예인 파티마 왕조가 통치하였다. 한편 바그다드에 있었던 아바스 왕조도 10세기에서 11세기 중반까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는데, 아랍인들은 11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온 셀주크 투르크인에 의해서 페르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지배주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우마이야 왕조는 점령지의 주민들에게 일정한 토지세와 인두세를 부과하였다. 설령 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더라도 면제해주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은 '코란이냐, 칼이냐' 즉 '이슬람교를 믿지 않으면 죽는다'고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 왜곡 과장된 말이다. 이슬람 군대가 파죽지세로 쳐들어오자 서방 그리스교 국가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한 말이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 다시 말해서 유대교나 그리스도교 신도들도 다 같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대우를 받아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이슬람교는 유대교의 토대 위에서 그리스도교적 요소를 기반으로 그들의 경전인 코란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로아스터교에서 개종을 한 이란 민족(페르시아)은 '세금도 내고 개종도 했는데 그럼 우린 뭐냐'면서 불만을 품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란인들의 불평불만을 선동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세력이 다름 아닌 우마이야 왕조에 비판적인 집단이었다. 특히 마호메트의 조카인 아바스의 혈통을 이은 아바스가(家)가 정권을 탈취하여 아바스 왕조가 세워졌는데,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었던 우마이야 왕조의 잔존세력들은 코르도바를 수도로 하는 후(後)우마이야 조를 세움에 따라 756년 이슬람 제국은 동·서로 분열되고 말았다. 새로운 지배자, 셀주크 투르크족 서기 751년에 세계사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바스 왕조의 군대가 중앙아시아의 탈라스에서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는데, 이 때 포로로 잡힌 당나라 병사 가운데 제지술(製紙術)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는 곧 사마르칸트에 연행되어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해주었다. 중국으로부터 배운 제지기술은 훗날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유럽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서양인들도 동양의 선진문명에 감탄하여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쪽 땅을 동경하게 되어 이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 이후 동양과의 교역에 더욱 열을 올리는 요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지리상의 대발견과 대항해시대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아바스 왕조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10세기에 들어와 이집트는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의 후예가 통치하였는데 파티마 왕조는 수도를 알렉산드리아에서 신도시 카이로로 옮김으로써 오늘날 이집트 공화국의 수도가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서기 946년에 이르자 이란의 시아파 군사정권인 부와이흐 조가 동 칼리프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여 아라비아인의 아바스 왕조로부터 정교일치의 대권을 넘겨받았다. 이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옛 조국(사산 조 페르시아)을 멸망시킨 이슬람 세력에게 조상대대로 믿어오던 신앙(조로아스터교)까지 버리면서 개종했지만 찬밥신세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불만이 쌓여있던 터라 아바스 왕조의 쇠퇴를 틈타서 거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전체 이슬람인들의 정서를 고려해서 기존 아랍인 칼리프는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겨 두었다. 하지만 이란인 정권(부와이흐 조)도 11세기 중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바그다드를 지배함으로써 십자군 전쟁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스승의 날과 관련하여 많은 부정적인 논의들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 집단적으로 휴교하는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스승의 날을 아예 없애자든가, 학년 말인 2월로 옮기자는 의견 등이 집중적으로 제기되면서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스승의 날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스승의 날이 기타 여러 원인들로 인해 본질이 왜곡되면서 스승의 날의 존속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중국에서는 스승의 날이 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이 날만큼은 전국적으로 학생 교육에 전념하는 교사들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명실상부한 교사를 생각하는 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9월 10일을 우리의 스승의 날에 해당하는 ‘교사절(敎師節)’로 정해놓고 있다. 교사절은 중국의 교사법(敎師法) 6조에 명시되어 있는데, 교사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한층 더 높이고, 교사의 업무를 사회에서 최고로 존경받고, 흠모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으로 만들며, 스승을 존중하고 가르침을 중시하며 지식을 존중하는 동시에 인재를 존중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법률에 교사절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 날, 법에 명시 중국의 교사절은 1985년 제정된 것으로 1985년 1월 11일 국무원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심의를 제청하여 교사절을 만들도록 하였으며, 1985년 1월 21일 제6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9차 회의에서 동의를 얻어 매년 9월 10일을 교사절로 기념하도록 하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교사절이 되면 그동안 사회적인 관심이 소홀했던 교사들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루어진다. 정부차원에서 모범교사들을 발굴하여 표창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사도의 길을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등의 국가적인 행사들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축하카드와 함께 꽃이나 정성이 담긴 선물 등을 선생님들에게 전하기도 하며, 국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옛 스승을 찾아 스승의 은혜에 감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교사절에는 중국 교육에 공헌이 있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표창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교사들에 대한 장려제도는 ‘교사와 교육종사자 장려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데, 1998년에 제정된 이 규정에 의하면 오랜 기간 교육에 종사해 오면서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긴 교사나 교육종사자들에게 ‘전국우수교사’와 ‘전국우수교육종사자’의 칭호를 수여하며, 이들 중 특별한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국모범교사’와 ‘전국교육계통 선진종사자’라는 칭호가 부여된다. ‘전국모범교사’, ‘전국교육계통 선진종사자’와 ‘전국우수교사’, ‘전국우수교육종사자’는 3년마다 선발하여 교사절에 표창한다. 이들 교사들의 선발 정원은 해당 지역 교직원 총수의 1만분의 2 이내로 제한하며, 그 중 ‘전국모범교사’, ‘전국교육계통 선진종사자’는 해당 지역 교직원 총수의 10만분의 6 이내로 제한하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영예의 상을 수상하게 되는 교사들은 국무원 및 중국 중소학유아교사장려기금에서 제공하는 상금을 받게 되며, ‘전국모범교사’ 및 ‘전국교육계통 선진종사자’의 칭호를 받게 되는 사람들은 국가의 규정에 의해 성(省)급 노동 모범의 대우를 받게 된다. 특히 사립학교 교원으로서 모범교사에 선정된 사람들은 월급에서 우대를 받게 된다. 스승의 날에 대대적으로 표창하는 ‘전국모범교사’, ‘전국교육계통선진종사자’ 표창 이외에도 중국에서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나 집단에게 ‘교학성과표창’을 수여하여 교육종사자들로 하여금 교수·학습에 매진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 표창은 ‘교학성과장려조례’에 근거하여 수여되는 데 국가급과 성(省)급 표창으로 나뉘어 진다. 이 조례에 의하면 국가급 표창은 특등, 일등, 이등의 세 등급으로 나뉘며, 이들 수상자들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증서와 장려금이 지급된다. 교학성과표창을 받는 교사들은 직급 상승 및 봉급 인상에 있어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다. 수업을 특별히 잘하는 교사들에 주어지는 이 표창은 4년에 한 번씩 평가가 이루어진다. 국가가 스승존경 풍토 조성에 앞장 현재 중국에서는 9월 10일 교사절에 교사들에 대한 국가차원의 표창 외에도 국가차원에서 교사들의 사기 진작과 국민들에 대한 스승존경의 풍토 조성을 위한 홍보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작년 교사절의 경우 중국 국영방송인 CCTV에서는 ‘2005-중국의 초석’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인 스승의 날 특집 방송을 했다. 교육부와 CCTV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 날 프로그램은 전국 1200만 명의 교사들에게 존경과 축복을 헌사하기 위해 이브닝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다양한 공연과 더불어 교사 탐방, 11명의 일선 교사들의 우수한 행적에 관한 이야기, 각종 기념행사 상황 등을 방송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교육과 교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중국에서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교사절의 열기와 정부의 교사에 대한 관심은 중국 정부의 교육 중시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 20여 년간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정부는 향후 세계와의 경쟁 속에서 교육만이 중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교육개혁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교육개혁정책은 최근 들어 의무교육법 개정, 교육과정개혁, 교사자격제도 개혁, 빈곤지역 학생들에 대한 지원 강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같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하여 중국교육은 한 단계 발전하고 있다.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최근 호주 10대들의 가장 위험한 환경요소 가운데 ‘마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다. 즉, 학원폭력이나 학업 스트레스, 가정 문제, 이성 관계 고민 등 청소년들을 둘러싼 직간접적인 부정적 영향 가운데 약물 사용에 따른 것이 단연 으뜸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마약에 중독된 10대들의 연령층도 점차 낮아지고 있고 심지어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대는 일이 보도되는 지경이다. 호주 청소년들의 마약 복용률은 16~17세의 경우 약 20%, 18~19세의 경우 30% 선을 웃돌고 있어 이 수치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이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특히 12~15세 연령층에서는 14명당 한 명꼴로 불법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주위에서 보아도 자식이 마약을 하다가 죽었다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마치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사례처럼 흔하게 나돌고, 마약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과 학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른 자녀 문제로 속을 끓이는 부모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식 가진 부모들은 모이기만 하면 ‘마약만 안 해도 효도’라는 말을 할 정도로 호주 청소년들의 마약 복용문제는 가장 가까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와도 같은 요소이다. 그런 중에 지난달 초순 경, 10학년인 작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들려온 소식은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같은 학교 11학년(고 2) 여학생 세 명이 생일 파티를 하면서 마약을 복용하다가 한 학생이 절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접촉한 마약이 치사량에 이르렀는지, 아니면 그 학생의 체질로 인해 특별히 약물 부작용이 있었는지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지만, 말로만 들어오다 아이들이 그렇게 쉽사리 마약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 사건 전에도 학생들이 수업 중에 소위 ‘땡땡이’를 쳤을 경우 일차적으로 마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부터 조사한다는 말이 있긴 했지만, 이번 일은 어린 학생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는 점에서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호주에서는 또래들 몇이 모이기만 하면 ‘마약을 하거나 적어도 한 번 정도는 해 봤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매스컴이나 학부형들, 심지어 당사자 아이들의 입을 통해 자연스레 들어왔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새삼 두려웠던 탓이다. 통계가 보여주듯이 호주 10대들 사이에는 그 나이에 보통 해보는 흡연 경험과 맞먹는 정도로 마약이 흔하게 돌고 우리 돈으로 3~4천 원 정도면 큰 어려움 없이 일정량의 약물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마약으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부모와 학교 측의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약거래 또한 학생들끼리 음성적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며 비밀스런 장소에서 직접 재배를 하거나 조제를 하는 일도 있어 그만큼 적발에 한계가 있다. 호주의 중·고등학생들 가운데는 약물 복용이 사유가 되어 정학을 맞거나 심지어 퇴학을 당하는 경우가 다른 사유에 비해 월등히 많고,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후에도 옛 급우들과 접촉하면서 심할 경우 마약 거래 책으로 나서는 일까지 있어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몇 주 전만 해도 뉴사우스 웨일즈 주의 한 중·고등학교에서 마리화나를 피운 학생 20명에게 무더기로 정학처분을 내리고 이들 중 상습 복용 여부에 따라 퇴학도 고려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학교마다 학생들의 마약 접촉에 대해 강경대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속은 어디까지나 ‘학내 마약 불용인’에 근거할 뿐, 앞서도 말했듯이 마약 사용과 관련하여 제적된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계속 하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하는 형편이다. 실상 뉴사우스웨일스 주는 공립학교를 중심으로 교과과정 중에 마약 방지 프로그램이 운용되고 있고 정기적으로 외부 전문가를 초빙, 학생들에게 마약과 관련한 폐해를 경고하고 있지만 실상 학내 마약 반입 근절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4월 퀸즐랜드 주에서는 점심시간에 환각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향정신성 약물을 집단으로 과다 복용한 남녀 중학생들 15명이 구역질과 심장박동 증가 등의 부작용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학교 측과 학부모들은 의사의 처방전을 통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약물이 교정에서 다량 유통되고 있었던 사실에 충격과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퀸즐랜드주 교육부는 이후 모든 학교에 학생들이 가지고 등교하는 약품에 대한 관리 정책을 도입했지만 실효성 여부에 대해서는 역시 미지수이다. 이처럼 학교 측과 학부모들의 염려가 극에 달해있는 상황에서 지난달 시드니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공립 고등학교의 한 임시 교사가 학생에게 마약을 공급한 사실이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은 마치 내부 소행자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처럼, 학부모들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했으며 학내 마약퇴치에 전력을 쏟고 있던 교육부 또한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더욱 믿기지 않는 일은 부모들 중에 자식에게 아예 마약을 대주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식의 마약 중독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마약을 구하기 위해 절도까지 행하게 될까봐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부모가 나서서 마약을 구입해 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마약 중독 자녀에 대한 그런 식의 대응이 더욱 깊은 중독으로 몰고 갈 것은 자명하다.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부모들의 무기력한 항변에 연민이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지만 자식들이 마약에 손을 대고 중독 지경에 이른 암울한 현실을 통과해 본 경험자들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손을 내젓는다. 이들에 따르면 아이들이 마약을 시작한 것을 알아차린 시점에서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하며, 꾸준한 재활치료를 통해 다시 정상생활을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자녀들이 한번 마약을 접한 것에 대해 지나친 반응을 하는 것을 자제할 것도 권하고 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때에 부모들의 호된 질책을 받게 되면 수치심과 죄의식이 깊어져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더욱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조기 영어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한 달 수업료 100만 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어린이 영어 과외, 해외연수가 유행이다. 아이의 조기 영어교육을 위해 초등학생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발음을 잘하게 하려고 혀 수술까지 한다고 한다. 조기 영어교육은 언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어려서 말을 배워야지, 이 시기가 지나면 '기회의 창'이 닫혀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어른이 된 뒤에도 영어에 많이 노출되고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얼마든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뇌의 불균등 성장이 '결정적 시기' 좌우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은 1967년 미국의 언어학자 에릭 레너버그 교수가 〈언어의 생물학적 기초〉란 책에서 처음 내놓았다. 그는 인간의 언어 습득은 뇌나 발성 기관의 발달 특성 때문에 사춘기가 지나면 어렵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언어학자인 매사추세츠 공대의 스티븐 핑커 교수는 6세부터 사춘기까지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고 〈언어 본능〉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왜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뇌가 불균등 성장을 한다는 데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폴 톰슨 교수는 핵자기공명영상장치를 이용해 3살부터 15살까지 어린이 뇌의 성장 과정을 4년 동안 추적해 뇌 성장 지도를 2000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는 3~6세 사이에는 전두엽이 발달하고 6~13세까지는 두뇌의 성장이 앞부분에서 점차 언어를 관장하는 뒷부분으로 옮겨간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두뇌의 각 부분이 골고루 균등하게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는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톰슨 교수는 6∼13세가 외국어를 배우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기간 동안 뇌 언어 영역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13세 이후에는 뇌 언어 영역의 발달이 급속히 둔화된다. 그렇다고 톰슨 교수가 사춘기 이후에는 외국어를 배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 이전에 배워야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춘기 이전에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뇌에 손상을 입은 경우 이를 다른 영역이 메워 말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에 언어 영역을 다치면 말을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톰슨 교수는 또한 13~15세까지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뇌 회로가 50% 가량 삭제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따라서 운동신경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악기나 운동도 그 이전에 교육이 이루어져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선천적으로 귀머거리가 돼 말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사인 언어인 수화도 배우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 레이첼 메이베리 교수는 나이가 어렸을 적에 귀머거리가 된 사람일수록 나중에 수화를 배우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2002년에 발표했다. 어렸을 적에 언어를 배우면 언어중추가 발달하지만 귀머거리여서 말을 배우지 못하면 언어 학습과 관련된 뇌 영역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나중에 다른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어 습득은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져 결정적 가설을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심리학, 언어학, 교육학 분야에서 만만치 않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신경과학자인 앙겔라 프리데리치 박사는 2001년에 결정적 시기 가설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미국과학아카데미 회보'에 발표했다. 그는 객관적 분석을 위해 '브론칸토'라는 인공 언어를 가르치고 뇌의 활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뇌는 인공 언어를 처리할 때나 모국어를 할 때나 똑같은 활동 패턴을 보였다. 이는 '결정적 시기 가설'을 신봉하는 학자들이 모국어와 나중에 배우는 외국어는 뇌에서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주장해 왔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나이가 들면 외국어를 배우기 어렵다는 주장은 외국어와 모국어는 뇌에서 서로 다르게 처리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 교육학자 겐지 하쿠다 교수는 인구 센서스를 활용해 중국과 스페인계 이민자의 이민 시기별 영어 능력을 조사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일정 나이가 지나 영어 능력이 뚝 떨어지는 현상은 없었다. 그는 "결정적 시기 가설은 근거가 희박하며, 단지 나이가 들수록 완만하게 언어 습득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 뿐이다"고 말한다. 캐나다 맥길 대학 프레드 기니시 교수가 다른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 조사에서는 놀랍게도 어른이 된 뒤 이민한 사람의 3분의 1은 어려서 이민한 사람 또는 미국 본토인과 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그는 외국어 습득 능력은 나이 외에도 가정의 경제력, 인지 능력, 교육 정도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밝혔다. 뉴욕 시립대학 지셀라 시아 교수는 아예 '결정적 시기 가설' 대신에 '주요 사용 언어 교체 가설'을 주장한다. 이민 온 어린이가 어른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어린이의 경우 학교에서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되는 반면 어른은 가정에서 모국어를 계속 쓰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꾸준한 노력만이 외국어 익히는 첩경 〈느림보 학습법〉을 펴낸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언어 능력은 듣기, 쓰기, 말하기, 독해, 문법 등 여러 영역에 걸친 종합적인 능력으로, 각 영역의 발달 시기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발음 능력은 어려서 발달한다. 성인이 된 한국인 또는 일본인이 영어의 'L'과 'R' 발음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어려서 영어를 배운 어린이들은 발음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잘 구별한다. 이에 반해 단어 능력은 뇌의 측두엽이 발달하는 초등학교 때, 언어의 논리성은 초등학교 2∼3학년이 넘어야 터득한다고 한다. 특히 6세 미만에 아이의 인성과 사회성 발달이 대부분 이루어지는데, 이때 아이에게 영어만 강요하면 주체성에 혼란이 생겨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경고다. 외국에 가지 않고 순수하게 국내에서만 영어를 배운 토종 영어 프로그램 진행자 이보영 씨도 영어를 어려서 가르치면 노력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라고 단언한다. 이씨는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분명해야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른들 가운데서도 해외 근무 등 뚜렷한 목적이 생겨 나중에 공부를 한 사람 가운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음을 그 사례로 든다. 특히 어른은 단어, 정보처리 능력 등 선행 지식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한다. 어른은 CNN 방송의 문장을 몇 개의 키워드만 들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이는 그렇지 못하다고 이 씨는 설명한다. 물론 언어는 조기 교육이 좋은 것이 사실이다. 사춘기 이전에 외국어를 배워야 말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찍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난 포기했어"하고 그만두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때가 되면 그리고 필요하면 외국어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뇌가 가진 능력의 대부분을 활용하지 못하고 무덤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커서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정작 가장 큰 장애물은 '꾸준히' 노력하지도 않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서울 J초의 A교사는 학교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온다. 칭찬도 해보고 야단도 쳐봤지만 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반의 권동윤(12·가명) 학생 때문이다.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권 군은 A교사 반의 골칫거리. 본인도 수업에 집중을 못할뿐더러 시도 때도 없이 앞 뒤 학생들까지 방해해 수업 분위기를 흐려놓기 일쑤다. A 교사는 “매년 반에 말 안 듣는 아이들이 꼭 있지만 동윤이한테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면서 “도무지 주의가 산만해서 알아듣게 얘길 해도 그때 뿐”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업 한 시간을 진행하면서 보통 7~8번이 넘게 주의를 줘야할 만큼 신경을 쓰다 보니 이제는 그냥 내버려두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ADHD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중학교 1학년 이한성(14·가명)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왕따였고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이 군의 가장 큰 문제는 분노조절이 안 되는 것. 친구들의 사소한 장난에도 화 조절을 못해 손이 돌아갈 정도였고, 한 단계 더 나아가 공격적으로 변하게 됐다. 이 군은 담임교사의 권유로 최근 ADHD 치료를 시작했다. 학기 초부터 이 군을 유심히 지켜본 담임교사가 학부모에게 치료를 권유한 것. 이 군의 경우 병원에서 약물과 뇌파 훈련 치료를 받은 후 현재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고 성적까지 오른 상태. 이 군에게 치료를 권한 담임교사는 자신의 자녀가 ADHD를 갖고 있어 쉽게 학생을 관찰한 후 증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뇌에 악영향 미치는 환경 늘어나 ADHD 증가 교사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학생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모든 뇌를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기능을 상실해 충동적·무절제·과다행동이 나타나면서 소근육 협응이 안 되고, 학습장애, 정서가 불안정한 질병이다. 한마디로 자기조절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증상이 있는 학생들은 대개 학교 성적이 떨어지고, 특정한 학습의 장애가 심하며, 성적을 올리는 능력이 부족하고, 언어 및 회화의 문제가 있으며, 운동을 조절하는 타이밍이 늦다. 이런 학생들은 교실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정학 또는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문제는 ADHD 아동이 점차 증가 하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 학령기 아동의 5%정도가 ADHD라고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한 반에 두 명 정도가 ADHD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 등 집중력을 떨어트리고, 환경오염과 중금속, 화학성분 등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ADHD가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이 선천적으로 발생한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학생 보다는 남학생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여자아이들은 ADHD라기 보다는 주의력이나 집중조절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ADHD 발견의 적기는 초등학교 1학년(7세) 때. 그 이전에는 발달단계 불균형으로 ADHD 진단이 잘못 판단될 수 있다. 학령기 아동의 5%, 한 반에 2~3명 전문가들은 ADHD를 앓고 있는 학생들은 교사가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ADHD는 주로 단체생활에서 구분될 수 있는데 10분만 지나도 자세가 흐트러진다거나, 다른 수업에 방해가 되는 등 또래에 비해 현저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일단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 증상이 의심되면 병원 치료를 권유하는 것이 가장 좋다. 대부분의 경우 약물치료만으로도 상태가 크게 호전될 수 있으며 여기에 상태에 따라 뇌파훈련과 함께 식이요법 등의 비약물 치료도 받게 된다. 또 교사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마인드메디클리닉의 박형배 박사(정신과 전문의)는 교사의 행동에 따라 ADHD 성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의 생활환경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박 박사는 “교사가 적극적으로 돕고자 한다면 상태도 호전되고, 자연스럽게 반에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ADHD인 것을 알게 되면 바로 낙인찍어 버리는 교사도 있다. 아이에게 선입관을 가지고 바로 그 아이를 고립시켜 버리는 것인데 이것은 아이의 상태를 훨씬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교사 가까이에 앉히고 자주 시선 마주쳐 줘야 교사는 일단 그 학생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고 인식해야한다. ADHD를 가지고 있는 학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자신이 혼란 속에 빠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 도와주려고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 박사는 “되도록이면 교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게 하고 수업 중에 시선을 자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서 “될 수 있는 대로 학교에서는 나쁜 행동이 나타나지 않게 조절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아도 단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꼼꼼하고 섬세하게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이거나 계산적이지 않다. 또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열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직관력이 뛰어나고 창조적이며 헌신적이다. 나쁜 아이로만 보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비생산적인 과잉행동을 생산적인 과잉행동으로 바꿔준다면 또 훌륭한 인재로 자라날 것이라는 것이 전문의의 설명이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교사는 경이로운 직업이다! 학생이나 학부모 심지어는 일부 교사조차도 교직을 단순한 책임과 의무로 점철된 일종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이러한 외침은 다소 생뚱맞은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6년 스페인의 작은 마을 가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는 진정한 교사의 길이 얼마나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삶인가를 작지만 분명한 어조로 보여준다. 평등한 만남이 사람을 만들어 병약하여 조금 늦게 학교에 진학하게 된 몬초는 걱정이 많다. 형의 말에 의하면 학교는 엄한 선생님이 매와 벌로 학생들을 다스리는 무시무시한 곳이기 때문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첫 등굣길에 오른 몬초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아이들의 장난과 담임을 맡은 그레고리오 선생의 농담 섞인 호칭을 야단치는 것으로 오해해 그만 바지에 오줌을 싸고 도망치고 만다. 그날 밤 몬초의 부모는 그레고리오 선생의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는다. 처음 학교에 온 아이의 예민한 마음을 살피지 못해 상처를 주었다면서 몬초에게 직접 사과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 교사는 정색을 하고 몬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순간 여덟 살 아이는 '사람'이 된다. 학생을 훈계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교사 혹은 부모를 포함한 대개의 어른들은 여러모로 다듬어지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의 아이들을 대할 때, 보다 효율적인 가르침을 위해 '명령'과 '지시'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게 된다. 해묵은 세대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고질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의 내용과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이의 관계가 상하의 엄격한 위계(位階) 안에 놓이게 될 때 '억압'은 피치 못할 상황이 되고, 이에 대해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이유 없는 반항'은 필연적인 것이 되고 만다. 교사와 학생 상호간에 맺어진 수평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는 이러한 소모적인 긴장을 극복하는 근본적인 대안이 된다. 몬초의 어린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진지한 태도와 사려 깊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 그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으로 존중하고자 애쓰는 그레고리오 선생의 모습은 그런 평등한 만남의 첫 걸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 잘 보여준다. 그렇게 집이나 거리에서 한 번도 그런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던 아이, 몬초는 그렇게 하나의 존엄한 인격으로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신세계로 이끄는 안내자, 교사 배움을 처음 시작하는 아이의 눈에 비친 선생님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그레고리오 선생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자연은 상상도 못할 지식의 보고야. 너희들은 개미가 가축을 길러서 우유와 당분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니? 또 수백만 년 전에 이미 거미가 잠수함을 발명했고, 무엇보다 나비에게 코끼리 코처럼 길고 시계 스프링처럼 돌돌 말려있는 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몬초의 얼굴은 신비로운 '앎'의 세계에 대한 놀라움으로 가득 찬다. 이를 통해 영화는 묻고 답한다. 학생에게 있어 교사란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바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알지 못했던 수(數)와 언어, 자연과 과학 그리고 시와 예술이라는 낯선 신천지로의 여행을 인도하는 특별한 안내자의 자리로 부름은 받은 존재가 바로 교사인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 '공부'라는 단어는 학창시절 내내 늘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요, 언제나 벗어 던지고 싶던 인생의 사슬 같은 부담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러한 무거움이 불현듯 새털 같은 가벼움을 넘어 신나는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던 짧지만 찬란했던 순간들은 분명 존재했다. 대체 무엇이 이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결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선생님'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가 단순한 의무와 책임의 영역이 아니라 가슴 설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한 것임을 확신하고, 이를 체감할 수 있도록 최선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열정적인 교사와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학생이 만나는 순간, '앎'의 경이로움은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 마음 속 씨앗으로 희망 싹 틔워 영화의 제목이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메타포(은유)로서 '마리포사'는 스페인어로 '나비'라는 뜻이다. 나비는 제 자리에 다소곳이 있을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꽃들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꿀을 빨고 꽃가루를 날라 결국 꽃이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오 선생은 어린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네들 가슴 속에 수많은 질문과 대답의 씨앗을 뿌리면서 언젠가 아이들의 가슴 속에 진정한 자유에의 열망과 의지가 싹트고 열매 맺을 수 있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이런 그레고리오의 소망은 보수우익의 쿠데타에 의한 스페인 내전의 발발로 말미암아 파국적인 결말을 맞는다. 마을은 이내 파시즘의 광풍에 휩쓸리고 애써 가꾸어 놓았던 민주주의의 싹은 자라기도 전에 짓밟히고 만 것이다. 결국 그간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던 동네 사람들은 하나, 둘 체포되어 끌려가게 되고 은퇴한 그레고리오 선생 역시 마찬가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강제로 마을 광장에 모이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끌려가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매도하고, 몬초의 부모 역시 눈물을 머금고 함께 구호를 외친다. 이 모든 광경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고 있던 몬초는 어느덧 떠나는 그레고리오 선생을 쫓아 뛰어가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어른들처럼 욕설을 외치기 시작한다. 한 평생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인격적인 교육을 펼쳐갔던 그레고리오 선생의 비극적 파멸을 끝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가 싶은 바로 그 순간, 몬초는 욕설 후 몇 마디를 더 외친다. "틸로노린코! 프로보시스!" 그렇다. 어린 몬초는 그레고리오 선생이 말한 것과 같은 '증오'와 '잔인함'으로 가득 찬 지옥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어른들의 세계에 쉽게 동화되었지만 동시에 그의 가슴 속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귀한 난초를 바치는 새인 '틸로노린코'와 나비의 긴 혀를 뜻하는 '프로보시스'의 놀라움이 여전히 생생한 감동으로 남아 있었다. 영화는 몬초가 잔혹한 어른들의 삶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그레고리오 선생의 인격적인 삶을 따라 살아갈 것인지 결론지어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 마지막 순간 오직 자신과 그레고리오 선생만이 알 수 있는 암호와 같은 말들을 외치는 몬초의 모습 속에서 관객들은 '프로보시스', 곧 실낱같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경이로운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영화 는 그레고리오 선생 역을 맡은 배우 '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즈'의 기품 있는 연기와 아름다운 시골 마을의 풍광을 섬세한 시각으로 담아낸 영상, 그리고 인생의 빛과 어둠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준 구성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아 스페인 영화비평가 협회 상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신학기의 시작과 함께 시간을 내어 넉넉한 여백의 미가 충만한 영화 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짝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