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9,30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유종슬 | 서울 돈암초 교사 어머니는 원초적으로 태모 때부터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보살피며 사랑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바로 어머니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인류사회는 영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그런데 행정자치부에서는 이런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키려 하지 않고 현행법령만을 핑계 삼아 교원들의 슬픔을 배가시키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1995년에 개정된 재임용 2년 이내에 퇴직금을 반납해야 과거 교직경력을 재직경력에 합산할 수 있도록 개정한 ‘공무원연금법 및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이다. 영원불변인 우리의 모국(母國),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 이 정도나마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 무엇보다도 스승들이 교단에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오직 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교육에 진력해 온 교육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만 하더라도 오랜 동안 교단에 서서 2100여 명에 이르는 제자들을 직접 길러냈다. 42여 성상(星霜) 동안,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영롱한 제자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희망을 갖고 가르쳐 왔다.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 어버이임을 알게 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남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 또한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온 누리를 맘껏 누비며 살아가도록 창의력을 신장시키고, 자기주도적인 홍익인간이 되도록 헌신해 왔다. 담임을 맡아 해가 뜨고 짐을 모르며 지내오는 동안 홍안의 얼굴은 주름진 얼굴로 변하였고, 새까맣던 머리숱은 이제 반백이 되었다. 박봉이었지만 나라 살림이 어려운 시기였으므로 누구를 탓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감사해 하며 ‘내일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우리 교단을 지키고 있는 많은 스승들은 우리나라의 밝은 앞날을 위해 알아주는 이 없을지라도 오직 한 길 소명감을 가지고 자기연찬을 거듭하며, 제자 사랑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스승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퇴직 후에 안정되지 못한 여생을 보내게 한다면 우리 한(큰)나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개혁은 교사들에게 맡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족한 정치가들이 교육개혁을 빙자해 정년을 3년이나 단축한 결과 교사부족이라는 시행착오를 불러왔고, 교사집단을 큰 잘못을 저지르는 집단으로 매도하여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시켰으며,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게 했는가.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행정가나 정치가들은 그 무엇보다도 국민의 편에 서서 한 사람이라도 어려움이 있을 땐 보듬어주고 편의를 제공하려는 태도와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국민의 한 일원으로서 교육 현장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인정을 받아 온 교육자들이 정년 후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숨을 쉬며 살아간다면 나라는 어머니요, 국민은 자식과 같다고 교육시켜 온 우리의 가슴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아니, 어찌 이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 연금을 연장하지 못한 처지를 감안하여 재직기간 합산을 원하는 공직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만 주고 그런 법이 개정되었는지 조차도 몰랐거나, 경제적 부담으로 반납기회를 놓친 공직자를 내팽개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차디찬 얼음판에 자식을 내던지는 몰인정한 어미가 있을 수 없음과 마찬가지 이유인 것이다. 국민연금법에서는 가입기간이 10년만 충족되면 노령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반면, 우리 교육자들에게는 최소 20년을 불입해야 연금을 수령할 수 있게 한 것도 국민 평등권에 어긋나는 처사다. 연금 가입기간도 국민연금 수급 자격기간과 똑같이 적용되어야 옳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행정자치부에서 현행 법령상 ‘재직기간합산을위한공무원연급법’을 개정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동안 한 때 연금을 수령하였다가 시기를 놓쳐 연장하지 못한 많은 공직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현행법이 문제라면 ‘동성동본결혼금지법’을 한시적으로 풀어 해결했듯이, 재직기간의 합산에 관한 특례조치(2000년 12월 공무원연금법 부칙 제5조 개정)와 같이 한시법으로라도 처리해주어야 한다. 스승은 일생을 바쳐 나라의 새싹들에게 큰 꿈을 지니도록 교육하여 국력 신장에 일조를 하였다. 그들이 은퇴 후에 어머니와도 같은 나라에 감사하며 기본 생활 정도는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치가나 행정부에서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어야 마땅하다. 밝은 행정을 펼쳐나갈 때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따를 것이다. 바로 이런 일이 사랑과 기쁨을 나누어 크게 함이요, 슬픔이나 어려움을 나누어 작게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일이며, 어머니의 원초적 사랑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하는 나라는 국민을 자식처럼 사랑하며, 아픔은 기쁨으로 바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큰 역할을 다하길 바란다.
신진규 | 전북 이리공고 교사 실업계 학교 활성화에 대해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에 최근 우리 가족이 겪은 내용을 첨가하면 실감이 나고 이해가 빠를 것 같아 약간 언급하기로 한다. 우선 예전과 달리 극도로 심각해진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편견을 불식해야 한다. 필자의 아들이 전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이후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중학교 1학년생인 조카가 삼촌에게 하는 말, “삼촌은 돌았나봐. 공고가면 나쁜 애들만 있고 깡패 돼서 나오는데….”, 아이 친구들의 말, “너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데 인문계를 가지 않고 왜 공고를 가니, 미쳤냐?”, 복도에서 만난 학교 선생님들은 “신경택, 아깝네….”, 일부 언론에 나온 기사제목을 보면, “우등생이 공고를 간 까닭은”, “중학교 최상위급 학생 공고에 입학, 신선한 충격” 등등 부정적인 생각 일색이었다. 이런 편견은 몇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국가 정책이 양산한 것이다. 실업계 중에서도 공업고의 육성을 위해 1970년대 중·후반부터 ‘공업인은 나라의 초석’이란 구호를 내걸고 많은 공업학교를 만들었다. 실제로 그들이 이 나라의 공업입국에 초석이 된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에 제일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공계의 석학들이 줄줄이 옷을 벗고 자기의 학식과 기술을 사장시키게 된 기막힌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인문계에서 실업계로 전환시킨 학교는 얼마나 많으며, 소도시 인문계 고교에 정보처리와 관련된 학과들을 신설하면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였는가? 그러나 10년도 안 돼서 그들이 설 땅이 없어졌다. 부전공을 이수하여 상업계열에 근무하던 교사들은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되며, 또 다른 부전공 준비를 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속상한 일이다. 이렇게 실업계 학교 붕괴는 달면 먹고 쓰면 뱉는 근시안적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학교에서부터 충분한 직업교육과 진로지도가 이뤄져야 하며 학부모들의 잘못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변화하는 산업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시대의 흐름에 맞는 학과 개편을 통하여 나름대로 전문 분야로의 발돋움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2005학년도 공업고등학교 신입생 접수 상황을 보면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와 학부모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의 특성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성적순으로 1순위는 인문계고, 2순위는 국립 공업고, 3순위는 공립 공업고 등식을 세워 지원하고 있다. 인문계 고교 지원은 논외로 하고 국립과 공립 공고 간의 2분법에서 탈피해야 하는 이유를 들기로 한다. 분명 양교에는 차별화된 학과가 있으므로 특기와 적성에 맞춰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립공고에 없는 건축디자인과, 환경화학공업과, 통신과가 공립 공고인 본교에는 있다. 그렇다면 2순위에 들더라도 건축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으면 당연히 본교에 입학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원서 접수하는 걸 보면 성적순으로 1, 2, 3순위를 따져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구분하려 하는 점이 안타깝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처럼 학교나 학과의 홍보자료를 제작하여 해당 지역에라도 홍보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제도적으로 홍보비 예산을 확보하여 올바른 진로지도가 수험생들에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무지에서 비롯되는 1, 2, 3순위별 일률적 지원은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의 능력과 적성을 고려한 진로 지도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중학교 시절은 인생에 있어서 첫번째 선택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인문계에 다니다 적응하지 못하고 실업계로 전학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 역시 진로 설정을 신중하게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과 상담해 보면 대부분 진학 당시에는 부모님과 담임교사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한다. 모든 학생이 공부를 다 잘 할 수는 없다. 또 잘 한다고 누구나 법관이나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의 의식과 부모들의 의식의 차이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부모들의 생각에 자녀들이 따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 내 아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깊게 생각해야 한다. “아빠, 엄마나 외삼촌은 한의사가 되기를 원하시는데 저는 이공계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요. 아빠 생각은 어떠세요?” 처음에는 생각이 복잡했지만 아이를 믿고 밀어주기로 결심했다. 아들이 잘 적응하여 자신이 생각한 대로 3년 후 대학을 선택할 때, 주변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실업계 고교의 활성화는 우리의 주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좀 더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려는 노력과, 그에 부합하는 학교의 변화 그리고 학부모와 중학교 선생님들의 제대로 된 진로 지도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제2의 실업계 고등학교의 부활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곽해선 | 곽해선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해마다 연말이 되면 직장인들은 연례행사처럼 연말정산을 하게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 국·공립학교 교직원, 그 밖의 공기업과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모두 총무 혹은 경리부서로부터 연말정산을 할 때가 됐으니 소득공제 서류를 내라는 얘기를 듣는다. 서류를 열심히 챙겨 내면 12월 급여액이 대개 전달보다 두툼해지게 마련이다. 연말정산을 한다느니 소득공제를 받는다느니 하는 것은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이야기일까. 연말정산, 원천징수 세액 과부족 정산 보통 직장인들은 매달 월급을 받을 때마다 근로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직장인들이 월급을 받을 때마다 저마다 자기가 낼 근로소득세를 계산해서 낸다고 하자. 내는 이는 물론이고 받는 이로서도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서 생긴 제도가 ‘원천징수’다. 직장에서 임직원에게 내줄 월급에서 임직원 개개인이 내야 할 근로소득세 해당액을 미리 떼어 임직원을 대신해 세무서에 내주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에서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할 때는 직장인들의 월급액이 1년 내내 똑같다는 전제 아래 세액을 계산하고 징수한다. 그러나 실제 직장인의 급여는 한 해를 단위로 보면 잔업수당이 늘거나 줄고 상여금(보너스)을 더 받거나 덜 받곤 하면서 액수가 변하게 마련이다. 실제 급여액이 늘어나면 그만큼 세금도 더 내야 할 것이고, 급여가 줄면 세금을 덜 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한 해가 다 가도록 매달 원천징수 방식으로 똑같은 금액을 세금으로 낸다. 결국 직장인들이 원천징수를 통해 이미 낸 세금액과 그 해 실제로 내야 할 세금액 사이에는 불가피하게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직장마다 연말이 되면 이 차이를 따져서 직장인들이 더 낸 금액(과납분)으로 판명난 부분은 다시 내주고 덜 낸 금액(부족분)은 그만큼 더 징수한다. 연말정산이란 이렇게 직장인들이 이미 낸 세금액과 실제로 내야 할 세액에 차이가 생기는 부분을 비교해서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연말정산 결과는 12월에 받는 월급의 소득세 계산에 반영한다. 소득공제, 법으로 종류와 한도를 정해 세금부과 대상에서 제외 소득공제는 연말정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득공제란 특별히 법으로 종류와 한도를 정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소득세를 매길 대상이 되는 소득액을 계산할 때, 특별히 법으로 부문과 한도를 정한 금액을 세금부과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는 것이다. 소득공제는 꼭 직장인에게만 적용하는 제도는 아니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직장인들을 위한 소득공제 제도는 국가가 직장인들의 생계비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로 시행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소득공제는 어떻게 하고, 소득공제가 연말정산에는 어떻게 관계되는지 알아본다. 보통, 소득에 세금을 매길 때는 세금 종류에 따라 과세표준이라는 것을 정한다. 과세표준이란 세법에 따라 부과할 세액을 계산하는 근거(기초, 표준, 기준)다. 더 정확하게는, 세액계산의 근거가 되는 과세 대상의 수량 또는 금액(가액)을 가리킨다. 보통 ‘과표’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소득세의 과표는 소득액이고 재산세의 과표는 재산액, 물품세의 과표는 판매가액이 된다. 세법은 세금의 세부종류, 즉 세목마다 제각기 과표 규정을 두고, 과표에 세율을 곱해 납세자가 내야 할 세액(산출세액)을 계산한다. 그런데 보통 ‘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1000원을 벌었다고 해서 1000원을 놓고 세금을 매기지는 않는다. 흔하게는, 1000원을 버는 데 보통 100원의 비용이 든다면 실제로 번 돈은 900원일 것이므로, 세금을 매길 때는 이런 비용은 빼 준다. 그래서 900원을 놓고 세금을 매긴다고 할 때 이 900원이 과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표의 크기에 따라 세 부담 크기가 달라진다. 결국 세금을 내는 납세자로서는 자기가 올리는 소득에 대해 과표가 어느 수준에서 결정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표가 중요하기로는 세금을 걷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표를 어느 정도로 정하느냐에 따라 세 징수액, 곧 세금 수입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러 납세자가 올린 소득의 금액이 다 같더라도 그들이 올린 소득의 종류는 다양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처럼 종류가 다른 소득 각자에 대해서는 과표를 제각기 달리 적용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금액이 같은 소득을 올렸다 할지라도, 그들이 올린 소득 각자에 대해 과표를 어느 정도로 정하느냐에 따라 세 징수액, 곧 세금 수입의 크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소득세의 경우는 과표 계산 때 소득공제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소득세의 과표를 계산하려 할 때는 소득액에서 법정 공제가 가능한 금액이 있을 경우 그 해당액을 빼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소득세의 일종인 근로소득세의 과표를 계산하려면 사전에 근로소득액에서 법정 공제가 가능한 금액을 빼야 한다는 얘기다. 연봉이 2500만 원인 직장인 A씨가 올해 별도의 소득없이 근로소득으로 2500만 원을 벌었다고 하자. A씨는 근로소득세를 내야 한다. 원칙은 2500만 원 전액이 과세 대상이다. 하지만 근로소득에는 법정 소득공제 제도가 있다. 근로소득에 대한 현행 소득공제 제도에 따르면 연봉 2500만 원 이하 직장인에게는 최고 각 100만 원 한도 내에서 결혼비용, 이사비용, 장례비용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A씨가 올해 결혼도 하고 이사도 했다 하자. 그리고 결혼하는 데 1백만 원, 이사하는 데 역시 1백만 원을 썼다고 하자. 그렇다면 A씨는 각각 100만 원씩 합계 200만 원을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A씨는 2500만 원의 근로소득을 올렸지만 A씨의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표준은 소득공제분 2백만 원을 뺀 2300백만 원. 즉, 2300만 원만 놓고 소득세를 얼마나 내야 할지 따진다. A씨 입장에서 보면 근로소득 전액을 과세표준으로 설정할 때보다 유리하다. 이런 식으로 법정 소득공제 대상이 되는 소득으로는 현행 소득세법상 종합소득, 근로소득, 퇴직소득, 연금소득, 산림소득 등이 있다. 다만 소득공제 제도는 자동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납세자 스스로 자기에게 해당되는 공제내역이 있는지 살펴서, 해당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내용을 신고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국내 직장인들의 각종 소득공제 신고는 12월분 급여를 받기 전에만 하면 된다. 직장인들이 소득공제 내역을 신고하고 그 내용을 반영하고 나면, 해당 직장인들이 연말에 내야 할 실제 세액은 이전에 그들이 매달 원천징수 방식으로 낸 세액과는 불가피하게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더 낸 금액(과납분)으로 판명난 부분은 그 해 마지막 급여의 소득세 계산에 반영해 도로 내주고, 덜 낸 금액(부족분)은 그만큼 더 징수한다. 곧 앞서 본 연말정산이다. 이렇게 연말정산에서는 소득공제가 불가결한 부분을 이룬다. 그러므로 연말정산을 통해 12월 급여액을 다른 달보다 두툼하게 만들려면 12월이 가기 전에 소득공제 서류를 가능한 많이 제출해 공제를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평소, 연말에 소득공제를 받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증빙자료, 곧 영수증을 꼼꼼히 챙겨놓을 필요가 있다. 소득공제 혜택, 어디서 얼마나 볼 수 있나 소득공제나 연말정산을 보는 직장인들의 관심사는 결국 세테크다. 세테크란 세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세금공제 혜택을 받는 테크닉. 직장인의 처지에서 소득공제, 연말정산 세테크로 챙겨봐야 할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우선 소득공제 혜택이 있는 금융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은행에서 들 수 있는 장기주택마련저축, 증권사에서 들 수 있는 장기주택마련저축펀드나 연금저축·연금저축펀드는 소득공제 세테크가 가능한 대표격 금융상품이다. 장기주택마련저축, 장기주택마련저축펀드는 만 19세 이상 무주택자 혹은 전용면적 85㎡(25.7평) 이하 1주택을 소유한 세대주가 가입하면 연간 불입액의 40% 범위 내에서 최고 300만 원까지 소득공제를 받는다. 즉, 소득액에서 최고 300만 원까지는 빼놓고 나머지 금액을 상대로 내야 할 소득세가 얼마인지 따진다. 단, 7년 이상 가입해야 하고 그 전에 중도해지하면 이전에 환급받은 소득공제액을 한꺼번에 도로 내야 한다. 직장인이 1년 동안 장기주택마련저축펀드에 750만 원을 넣었다고 하자. 소득공제가 가능한 금액이 연간 적립금의 40% 한도이므로 750만 원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300만 원을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본인의 급여 수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매달 급여에서 원천징수 당한 세금을 환급받는 액수가 30만 원에서 많게는 120만 원까지 된다. 그렇다면 적립을 많이 하면 할수록 소득공제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장기주택마련저축·펀드에는 분기별로 300만 원까지만 불입할 수 있다. 장기주택마련저축·펀드는 2006년 말까지 가입할 수 있다. 한투증권의 ‘부자아빠 장기주택펀드’, 삼성증권의 ‘삼성장기주택펀드’, 대투증권의 ‘스마트플랜주택펀드’, 푸르덴셜투자증권의 ‘드림장기주택펀드’, 현대증권의 ‘KB장기주택펀드’ 같은 상품이 있다. 장기 모기지론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도 원금상환 만기가 15년 이상이면 1년간 낸 이자 가운데 최고 1000만 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적게는 100만 원에서 많게는 400만 원 가까이 연말에 돌려받을 수 있다. 2000년 10월 말까지 판매된 주택청약부금도 내년 말까지는 연간 납입액의 40%를 96만 원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소득공제 금융상품들은 중도 해지할 경우 그 전에 받은 공제액을 모두 추징당하므로 수입을 충분히 고려해 가입해야 한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연금저축(연금신탁)은 연말 소득공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240만 원까지 소득공제된다. 불입 한도가 분기당 300만 원이기 때문에 연말정산 전까지 가입해 240만 원만 넣으면 전액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과세표준 1000만~4000만 원(연봉 2000만~6000만 원)인 근로소득자의 소득세율 19.8%를 적용하면 환급액은 약 47만5000원 정도.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10년 이상 장기 납입해야 한다. 그 전에 중도해지를 하면 기타소득세(주민세 포함 22%), 해지가산세(5년 이내 해지 2.2%)를 내야 한다. 지난 1994년부터 2000년 말까지만 판매됐던 개인연금저축도 연간 납입액의 40%는 72만원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증권사에서 시판하는 연금저축펀드는 10년 만기 때까지 매월 100만 원 또는 3개월마다 300만 원 이내에서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다. 주식과 채권 편입비율 등에 따라 국공채형, 채권형, 주식형, 혼합형 등으로 나뉜다. 연간 불입액 중 최고 240만 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으므로 연말정산을 하면 소득에 따라 24∼95만 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 보험의 경우 직장인이 많이 가입하는 종신보험이나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암보험 같은 보장성보험은 연간 납입 보험료 가운데 100만 원까지는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지난 1994년부터 2000년 말까지만 판매됐던 개인연금저축보험과 그 뒤에 판매된 연금저축보험도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개인연금저축보험은 보험료의 40%를 72만 원 한도 내에서, 연금저축보험은 연간 납입금 전액 가운데 240만 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단 개인연금저축보험은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세금을 내지 않지만 연금저축보험에 든 사람이 연금을 받을 때는 연금소득세를 내야 한다. 두 상품 모두 10년 이상 가입해야 하고 그 전에 중도 해지하면 이전에 환급받았던 소득공제액을 한꺼번에 도로 내야 한다. 게다가 해지 가산세까지 물어야 한다. 만약 이들 보험과 함께 연금저축(연금신탁), 개인연금저축도 함께 들었다면 이들 상품 역시 소득공제가 되므로 중복해 공제받지는 못한다. 2004년 연말정산 무엇이 달라졌나 2004년 연말정산부터는 여느 해와 달리 2003년 말 소득세법 개정으로 근로소득자 본인의 의료비에 무제한 소득공제 혜택을 준다(전에는 500만 원이 한도였다). 단, 본인 외 가족에는 본인 총급여액의 3%를 넘는 금액에 대해서만 연 500만 원 한도 안에서 소득공제를 해 준다. 연봉 4000만 원인 직장인의 가족이 의료비로 연간 200만 원을 썼다면 연봉의 3%인 120만 원을 뺀 80만 원에 대해서만 소득공제를 받는다. 또 2004년 연말정산부터 연봉 2500만 원 이하 직장인에게는 결혼, 이사, 장례 비용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같은 해에 결혼하고 이사도 했다면 각각 100만 원씩 200만 원을, 장례비용은 최고 1백만 원까지 공제 받을 수 있다. 단, 공제대상이 본인과 기본공제대상자로 한정된다. 때문에 만 20세가 넘는 형제나 자매의 결혼 혹은 장례에 지출한 비용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없다. 이사 때도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있으면 그 가족과 함께 이사해야 공제받는다. 결혼이나 장례, 이사 등에 따른 소득공제는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 주택매매계약서, 주택임대차계약서 등으로 사실여부가 확인되면 받을 수 있고, 실제 지출한 비용에 대해 별도의 영수증을 보관해 둘 필요는 없다. 예식장 비용이나 식대, 장례비용, 이삿짐센터 비용이 얼마가 들었는지는 소득공제와 상관이 없고, 요건만 갖추면 해당 사유가 발생한 건당 100만 원씩 공제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는 매해마다 전년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의 이용액이 올해 연말정산에 반영된다. 카드 사용액이 연봉의 10%를 초과했을 때 초과분의 20%를 최고 500만 원까지 소득공제 해준다. 카드사에서는 연말이 되면 연말정산에 쓰라고 연말소득공제 확인서를 보내준다. 이 서류를 꼼꼼히 챙겨놓았다가 직장에 내면 연말에 절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단,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일시불과 할부 등 신용판매분에만 적용되고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사용금액은 제외된다. 2005년부터 달라지는 제도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직장인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제도지만 2005년부터는 신용카드 공제액이 축소된다. 2005년부터는 연봉의 15%를 초과한 사용액에 대해서만 소득공제를 해준다. 그 대신 2005년부터는 5000원 이상 현금결제를 한 영수증을 제출하면 신용카드와 똑같은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현금영수증제도’도 도입된다. 예를 들어 연봉이 5000만 원인 직장인이 신용카드로 1000만 원, 현금으로 1000만 원(현금영수증 적용)을 썼다고 하자. 2004년까지 신용카드 소득공제 금액은 100만 원(연봉의 10%를 초과한 500만 원의 20%)에 그친다. 하지만 2005년부터는 현금 사용액도 포함돼 250만 원(연봉의 15%를 넘은 1250만 원의 20%)으로 오른다. 신용카드로 낸 의료비는 연말정산 때 신용카드 소득공제도 받고 의료비 특별공제도 받는 식으로 이중으로 공제받던 혜택도 없어진다. 2005년부터는 병·의원에서 사용한 신용카드 지출분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의료비 공제로만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의료비 지출이 많은 직장인의 세 부담은 다소 늘어난다. 그동안은 부동산과 골프 회원권도 신용카드로 사면 소득공제를 받았지만 2005년부터는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새 차 구입비, 보험료·교육비도 여전히 신용카드 지출에 따른 소득공제 혜택을 못 받는다. 마지막 의문. 연말 정산 때 의료비 등 소득공제용 지출증빙서류를 내지 않으면 공제를 전혀 받지 못하나. 그렇지는 않다. 지금까지 근로소득자라면 누구나 연간 60만 원씩 공제 혜택을 받았다. 이른바 근로소득 표준공제. 이것도 새해부터는 개정 세법에 따라 100만 원으로 공제 한도가 늘어난다. 연간 총급여가 2000만∼3000만 원인 직장인은 5만 원, 총급여 2000만 원 미만이면 1만6000원 정도 세부담이 줄어든다.
조현호 | 울산 향산초 교사 우리나라 사람치고 안동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마도 경주나 제주 다음으로 안동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이 글을 쓰는 저도 열 번은 넘게 다녀온 것 같습니다. 안동하면 ‘양반의 고장’ ‘추로지향’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한 고장’ ‘간고등어나 찜닭의 고장’ 등 다양한 이력이 붙습니다. 둘러볼 곳도 한 두 군데가 아니지요. 이번 호에서는 자존심 센 안동사람들이 만들어낸 화합의 문화를 높이 사고자 합니다. 안동이란 지명은 왕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창(옛 안동의 지명) 전투에서 이 고장 사람들인 김선평, 김행, 장길이 왕건을 도와 견훤을 이겨, 왕건은 이 고장을 안동(安東)이라 부르고 삼태사에게 안동을 본관으로 하사하였습니다. 당시 고창군수였던 김행은 ‘능히 일의 기틀을 밝게 살피고 권도(權道)를 적절하게 결정하였다’ 하여 권 씨 성을 하사받았습니다. 안동 권 씨, 안동 김 씨, 안동 장 씨가 여기서 출발합니다. 안동이란 지명이 탄생할 때부터 세 성의 화합문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서민들의 탈춤, 양반들의 선유줄불놀이 안동에서는 매년 10월초에 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이 축제는 문화관광부 선정 국내 최우수 축제로 인정을 받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데 안동민속축제, 하회마을축제, 봉정사 등축제, 도산별시, 경북과학축제 등이 함께 열려 안동 전체가 축제장으로 바뀝니다. 2004년의 경우 주공연으로 대만, 인도, 터키, 라트비아, 일본, 러시아, 태국 등의 외국탈춤과 고성 오광대, 봉산탈춤, 북청탈춤, 가산탈춤, 동래탈춤 등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탈춤이 공연되었습니다. 이 축제의 시원은 양반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우롱하던 하회 서민들의 하회별신굿탈춤에서 시작합니다. 이 축제기간에 반드시 봐야 하는 행사가 하회마을 부용대와 만송정에서 펼쳐지는 선유줄불놀이입니다. 만송정 솔밭에서 낙동강을 가로질러 병풍처럼 선 부용대까지 다섯 가닥 줄을 길게 연결해 두고 수백 개의 뽕나무 숯가루 봉지를 걸어 점화시키면 숯가루 봉지가 한 마디씩 타올라 가면서 그 불티를 백사장과 강위로 뚝뚝 떨어뜨립니다. 여기다 “낙화야!” 하는 참가자들의 함성소리에 맞추어 부용대 정상에서 어머어마한 불덩이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면 줄불놀이는 절정을 이루며 그야말로 장관을 이룹니다. 불붙인 달걀불이 강위를 떠다니고 배위에선 선비들이 시를 읊조립니다. 저는 선유줄불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백사장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낙화야!” 하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고 줄불 아래 백사장에서 마구 뛰어다니기에 분주한 아이들의 신나는 모습……. 눈을 감았습니다. 환상 같은 현실이 계속됩니다. “낙화야!” 하는 소리가 그치고 줄불들이 부용대를 오르는데 더 힘들어 할 때쯤이면 부용대 정상에서 폭죽이 ‘펑펑’ ‘후더덕’ ‘히지직’ ‘쏴자작’ 온갖 소리를 내며 강위에서 춤을 춥니다. 하마터면 폭죽 소리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깜짝 놀라 떨어질 듯 아슬아슬 합니다. “와!” 하는 탄성 소리가 일시에 들리고 모두가 얼빠진 모습으로 부용대 하늘을 올려다 볼 뿐입니다. 강에도 백사장에도 부용대 절벽에도 부용대 위에도 온통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제 마음 한 켠에는 선유줄불놀이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회마을은 양반들을 비꼬는 서민들의 애환이 탈춤으로 전해 내려오고 넓은 아량으로 그들을 수용할 줄 알던 양반들의 선유줄불놀이가 공존해온 곳입니다. 엄격한 신분을 초월한 상생의 문화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꺼쟁이들의 음식문화 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에 시내 ‘음식의 거리’를 찾았습니다. 음식점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안동의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큰 고등어 조형물로 외부를 장식한 ‘꺼쟁이’라는 식당이 눈에 띄어 가 보니, 이 가게는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간고등어를 주문하고 주인장에게 물었습니다. “아줌마, 식당 이름이 와 ‘꺼쟁이’ 입니꺼?” 그 아줌마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안동사람이 ‘꺼쟁이’ 아닙니꺼?” 순간 내가 물어본 ‘-니꺼?’와 그 주인장의 ‘-니꺼?’에서 직감이 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대구 사람들이 ‘-능교’투를 쓰고, 안동 사람들은 ‘-니껴’ ‘-니꺼’투를 쓰는 사람들 아니던가. 그래서 ‘니껴’나 ‘니꺼’에서 ‘꺼쟁이’, 즉 안동사람들을 지칭하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이로구나.” 대단한 발견을 한 듯 흐뭇해하며 이 꺼쟁이들의 음식문화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안동 사람들은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보통이 아니라는데 음식문화 또한 그런 것 같습니다. 간고등어만 해도 그렇지요. 고등어가 상하지 않게 소금으로 간을 한 것은 전국의 내륙지방에는 다 있었을 텐데 유독 간고등어 하면 ‘안동 간고등어’를 대명사처럼 떠올리게 만든 꺼쟁이들 아닙니까? 그들의 일상이었던 유교문화에서 헛제사밥이 독창적으로 개발되었고 안동한우, 안동찜닭, 건진국시 등 전국 곳곳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들에 ‘안동-’이라는 고유명사를 붙이는 그들의 창조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안동의 음식문화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고지식하고 자기를 소개하면 윗 조상들을 두 줄 이상 거론하며, 안동장과 풍산들이 전국에서 제일 큰 줄로 안다는 그들의 애향심과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일군 ‘꺼쟁이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감이 만든 그들만의 음식문화, 지인에게서 들은 다음 우스개 이야기는 안동 사람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큰 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계상으로 안동의 음식점에 들어가면 주인의 70퍼센트가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사하는 사람은 객지인이 운영하는 관광지 식당이 대부분이라는데 하루는 손님이 안동의 어느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주인: (물 컵을 둔탁하게 놓으면서) 뭐 물라니껴? 손님: 곰탕 하나, 갈비탕 하나 주세요. 주인: (주문된 요리가 나오자 무표정하게 곰탕과 갈비탕의 순서를 바꿔서 놓는다.) 손님: (그릇을 바꾸려다 너무 뜨거워서) 곰탕과 갈비탕 자리 좀 바꿔 주세요. 주인: (퉁명스럽게) 머리는 도따 뭐하니껴, 바꿔 앉으소.” 손님: (기분이 나빠 먹지 않고 나간다.) 주인: 손님 알고 나가소. 안동은 어디가나 똑같소. 손님: ……. 자신감에 찬 꺼쟁이들이 일군 꺼쟁이들만의 독특한 음식문화, 전통을 재창조할 줄 아는 안동 사람들의 저력입니다. 안동시내에서 떠올린 비빔밥 문화 대개들 안동을 찾으면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 봉정사 등 안동 외곽에 있는 유적지를 많이 찾는다지만 안동시내만 해도 볼거리가 상당합니다. 태사묘에 가면 안동 김 씨, 안동 권 씨, 안동 장 씨 화수회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세 성씨가 나란히 한 건물에 현판을 달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 사람의 묘도 서후면 내에 모두 있습니다. 태사묘에서 잠시 우리 정치판을 생각해봅니다.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무관하면 으르렁거리는 사람들, 자신도 모르게 표출되는 지역감정, 국민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라며 저질러지는 기타 구차한 핑계들을 생각하면 씁쓸해집니다. 안동역 한 구석에는 기차 소음에 시달리는 운흥사지 당간지주와 동부동 전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탑은 모두 다섯이 남았는데 그 중 셋이 안동에 있다는 것은 안동이 전탑의 고장임과 함께 불교의 고장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동네 사람들이 굴뚝으로 알았던 동부동 전탑은 이웃한 임청각이나 신세동 전탑마냥 철길에 의해 반 도막난 신세가 되었지만 화려했던 안동의 불교문화를 기억하게 합니다. 태화동에 위치한 관왕묘는 무안왕(武安王), 즉 삼국지에 등장하는 촉한의 명장 관우를 모신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 진린 등이 극진히 관우를 신앙하고 그의 사묘(祠廟)를 세운 데서 조선에 유행하게 되었다는데, 관우는 무력과 재력을 겸비한 신으로 도교에서 숭상받고 있습니다. 서울에 남아 있는 동묘에 비하면 그 규모가 비할 바 아니지만 안동이 관우신앙이 유행했던 곳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안동의 문화를 한 마디로 말하면 ‘비빔밥 문화’라 일컫고 싶습니다. 양반마을 한 가운데 삼신당이 자리하고 있고 양반과 서민의 문화가 공존하며 세계적인 탈춤 축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곳곳에 산재한 안동의 종택은 지금도 안동만의 자존심으로 당당합니다. 봉정사를 비롯한 불교사찰과 불교문화재가 많이 남아있고 게다가 도교의 신앙대상인 무안왕묘 또한 남아있는 곳이 안동입니다. 전통적인 고유의 문화에다 유교·불교·도교의 이질적인 문화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만들어진 안동판 ‘비빔밥 문화’인 것입니다. 각기 성격이 달라 화합되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문화가 안동에 와서 저마다 고유의 맛을 간직한 채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낸 것이 안동의 비빔밥 문화요, 안동의 힘, 한국의 힘인 것입니다. 안동의 화합 문화는 곳곳에서 개인과 단체의 권리만 주장하기에 바쁜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라 하겠습니다. 내가 만난 안동 사람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 그들이 보여주는 친절함에 고장 인심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들의 불친절에 고장 전체 인심을 비뚤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마을 잔치가 있으면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정이 살아있는 고장, 아직은 그런 곳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안동시청 공무원인 권영태 씨는 풍류를 아는 사람입니다.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그는 하회마을 곳곳에서 시를 수십 편 읊어 주는데 절제된 감정이 묻어나는 그의 시낭송은 듣는 이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듭니다. 특히, 색소폰을 비롯하여 빨래판 등으로도 훌륭한 악기 연주를 하는 재미있는 재주를 가진 분이라 형식적이고 경직되었다는 공무원상을 깔끔하게 바꿔주는 분이십니다. 지난 해 병산서원을 찾았다가 날이 어두워 우연히 찾아간 민박집, 그 민박집 주인은 우리를 방으로 안내하고는 무릎을 꿇고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은 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민박집 주인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어쩜 저렇게 깍듯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그분은 서원을 관리하는 류시석 씨였습니다. 크지 않은 몸체지만 곳곳에 배인 그의 깍듯한 예절, 그는 살아있는 조선의 선비였습니다. 남안동 IC로 안동을 드나들 때면 일직면에 이르러 조탑동 전탑이 보입니다. 그 전탑에서 시선을 뒤로 두면 평생을 아이들의 마음으로 사신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집이 있습니다. 언젠가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허름한 집에 너무나 검소한 모습으로 소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전까지의 환상적인 동화관을 현실적인 동화관으로 바꾸게 해 준 적어도 동화계의 거장임은 분명할 텐데 어쩜 저렇게 검소하다 못해 가난한 생활을 하고 계실까. 사뭇 그분이야말로 일직(一直)한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안동을 떠나며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문화는 이제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며 문화의 힘이 곧 나라의 힘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연예인이었던 배용준 씨는 드라마 한 편으로 일본 열도를 뒤흔드는 대스타로 변신했습니다. 그가 입은 옷, 그가 쓴 안경, 그가 하는 말,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상품이 되고 표준이 됩니다. 한국문화가 일본의 안방에서부터 자리를 잡아가고 덩달아 국가 이미지가 엄청나게 좋아졌습니다. 수십 명의 외교관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그가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승부수는 우수한 인재가 가진 기술력, 유구한 역사가 일궈놓은 유무형의 풍부한 한국문화에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각각의 문화가 제 색깔을 가진 채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안동의 화합 문화, 비빔밥 문화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지침이요, 좌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세희 경기 성남 미금초 교사 종례 시간이었다. 불쑥 형준이가 일어났다. “선생님 저, 다음주 월요일부터 학교 못 나와요.” 형준이의 말을 듣는 순간 무슨 일이 있길래 학교에 못 나온다고 하나 걱정이 되었다. “왜, 무슨 일이 있니?” “엄마랑, 아빠랑 중국에 가요.” “응. 그래…. 그런데?” “아빠가 출장 가는데 엄마가 같이 가야 한대요. 저도 같이 가고요.” 말을 다 듣고나니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일주일간이나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사실을 아이가 통보하듯 말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렇게 중요한 일을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려는 형준이의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형준이의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학기 초에도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다. 그 때도 형준이의 부모님은 전화 한 통 없이 아이를 통해 결석을 통보(?)했다. 여름방학이 가까올 무렵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지만 부모님께서 많이 바쁘신가 보구나 하는 생각으로 그냥 잘 다녀오라고만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학교를 오고 싶으면 오고, 싫으면 안 나와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런 일 정도는 아이를 통해 일방적으로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생활에서 학교는 가정 못지 않게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아무리 가정에서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킨다고 해도 학교교육이 부실하면 그 아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온갖 정성으로 아이를 지도해도 가정에서의 뒷받침이 없다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오가는 일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교육활동이다.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성, 준법성을 잘 지키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결석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아이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업결손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해 교사와 상의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 역시도 중요시해야 할 교육의 과정이다. 학교라는 공간을 중시하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수-학습 활동을 귀중하게 생각하도록 일깨워 주는 것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가정에 계신 학부모님의 공동 책무인 것이다. 자녀에게 “선생님한테 학교에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하는 것은, 자녀에게 “학교에 나가나 안 나가나 별 차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은 ‘현장체험학습’이라 하여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하는 일로 학교에 나오지 못하면 이를 결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리 학교에 비치되어 있는 신청서를 내고, 학교에 나올 때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그 만큼 가정에서의 활동도 학교에서의 교육활동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당국의 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런 취지가 아이들이나 학부모에게 그냥 학교에 안 나와도 된다는 정도로 인식되면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가를 궁리했다. 솔직히 몹시 화가 났지만 형준이는 여전히 사랑해야 할 제자이고 아직 어린아이 아닌가. 형준이에게 집에 가서 부모님께 선생님한테 직접 전화를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라고 말하고 귀가시켰지만 퇴근길이 썩 가볍지 않았다. 형준이가 집에 가서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릴 것인지, 또 부모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퉁명스럽게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하래요.”하거나 “선생님이 엄마가 와서 말하래요.”라고 말한다면…. 그래서 부모님이 “너희 선생님 참 까다롭구나.” 하거나 “못 갈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별일이구나.” 하신다면 어쩌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형준이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림장에 “형준이 어머님! 무슨 일인지 자세히 좀 알려주세요”라든가 “저한테 전화 한 번 해 주세요”라고 써서 보내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형준이 어머님! 아이가 부모님을 따라 중국에 잘 다녀온 뒤 건강한 모습으로 등교한 모습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어머님께서도 제 마음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합심해서 백지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어린이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더욱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겠지요.
신호철(한의사) 정신적인 피로와 긴장이 몹시 심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육체의 피로는 잘 쉬면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함으로써 얼마든지 회복이 되지만, 정말 골치 아픈 것은 글자 그대로 ‘골치 아픈’ 증상이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다 보니 경쟁심, 시기심, 억울함, 분노, 강박증, 부적절한 대인관계, 업무의 부담 등으로 인해 두뇌가 시달리다 못해 죄어들면서 무거운 통증이 나타나게 된다. 초기에는 두통약 몇 알로 가라앉는 것 같으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파지고, 오래도록 낫지 않는다 싶어 걱정이 되어 CT 촬영을 해보면 머릿속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CT 촬영으로 못 잡는 만성 두통 현대인의 만성 두통, 견딜 만하면서도 견디기 어려운 두통의 많은 부분이 긴장형 두통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마치 ‘헬멧을 쓴 것 같다’, ‘머리띠로 단단히 죄어진 것 같다’, ‘누름돌을 얹어놓은 것 같다’는 등의 호소를 한다. 머리 전체가 아픈 경우가 많지만, 통증의 중심이 머리의 앞쪽이나 뒷쪽, 관자놀이 등에 치우치는 경우도 있다. 통증은 지속되는 경우가 많고, 하루 종일 또는 여러 날 지속되는 사람도 있다. 긴장형 두통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긴장성 두통’으로 불안, 우울 등 심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어 머리나 목덜미가 긴장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 ‘근수축성 두통’으로 컴퓨터 작업, 자동차 운전, 상반신을 앞으로 구부린 자세 등이 직접 근육에 영향을 미쳐 머리나 목덜미가 뻐근해지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영향을 미쳐서 겹쳐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둘의 공통점은 어느 것이나 머릿속이 아니라 두개골 밖에서 일어나는 통증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두통의 원인인 스트레스는 뇌 안에 있지만 통증의 소재는 밖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정밀검사를 받아 봐도 잡히는 게 없는 것이다. ‘머리 뜨거워짐’ 방지로 예방하자 두개골을 잘 살펴보면 골을 따라 얇은 근막이 서로 겹쳐져 있고 그 근육이 수축하거나 혈류가 나빠져 피로나 통증을 일으키는 물질이 쌓여 통증이 일어나는 것 같다. 뇌출혈, 뇌종양, 수막염, 만성 경막하혈종 등의 질병시에도 이와 비슷한 두통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가볍게 보아 넘길 일도 아니다. 평소와 약간 다른 통증을 느끼거나, 통증이 심하거나 돌발하거나, 구역질, 심한 현기증, 발열 등이 있다거나, 증상이 더해진다고 느껴지면 곧바로 전문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특히 노인이나 어린이의 경우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치료법으로는 근육이완제, 혈액순환개선제 등과 항우울약도 사용하게 되지만, 약물의 장기 복용에 따른 두통의 만성화가 우려되므로 일상생활에서 주의를 기울여 두통의 원인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겠다. 무엇보다 심신의 긴장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 가벼운 운동, 체조, 산책 등이 좋은데, 그러나 지나치게 끈기가 필요하거나 절차가 복잡한 운동은 금물이다. 어깨를 주무르거나 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칠정성(七情性) 두통에 해당되는데, 칠정에 의해 내상(內傷)이 생기게 되면 풍화(風火)가 생겨 이것이 상승하여 머리를 침범하게 된다. 예부터 두냉족온(頭冷足溫)이라 하여 머리는 서늘하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건강 원칙이 있는데, 어떻게든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게 긴장형 두통을 피해가는 요령이라고 하겠다. 한의원에서는 침, 부항, 약물치료를 시행하는데, 백회, 풍지, 사관, 대추, 견정 등의 요혈이 선정되며, 청상견통탕, 소요산, 반하백출천마탕 등을 써서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김계현 | 경남 통영 도산중 교사 오랫동안 고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중학교에 왔을 때 처음에는 아이들을 너무 예사롭게 대한 것 같다. 저 아이들이 내가 하는 말이나 생각을 얼마나 이해하고 또 얼마만큼 근접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생기더니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건성으로 대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이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든, 초등학생이든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즉, 나의 주관적 주체가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언제나 장난기 많은 영식이가 방학 과제물을 해오지 않은 데다가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중 영어교과서에 열심히 만화를 그렸다. 처음에 영식이는 내 생각의 스키머(Schema) 속에 학습능력이 부족하고 의욕도 없는 소위 ‘문제아’로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세심히 관찰해보니 영식이는 학습능력이 부족한 대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물을 응시하거나 펜을 놀리는 손짓 하나하나에는 기발한 ‘생각의 깃털’이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 뒤로 ‘영식이는 장차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화가나 만화가 또는 만화 영상물 제작자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라는 확신과 함께 이제는 성공하는 영식이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아이들에게 희망의 모습을 시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히 꿈을 이루게 된다. 1968년,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Rosenthal)과 제이콥슨(Jacobson)은 교육학 관련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 결과의 요지는 교사가 어떤 학생에게 ‘저 아이는 장차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 그런 기대를 받은 학생은 실제로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 학생 65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였다. 그 학생들은 전 학년에 걸쳐 읽기 성적을 기준으로 우수반, 보통반, 열등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열등반에 속한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 형편이 아주 어려웠고 주로 멕시코계였다. 먼저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하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지능검사의 목적을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물론 이것은 교사와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 계획된 거짓말이었다. 지능검사가 끝난 뒤 각 반에서 약 20%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선택했다. 그리고는 명단을 교사들에게 돌리면서 ‘지능검사 결과,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이것도 역시 실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꾸민 거짓말이었다. 무작위로 선택했으므로 지능검사 결과와 명단에 오른 학생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명단에 오른 학생들이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지도를 하였다. 8개월 뒤에 똑같은 지능검사를 실시한 결과 실험 집단 학생이 일반 학생 집단보다 8개월 전에 비해 향상된 수치가 3.8점 높게 나왔다. 특히 1학년과 2학년에서 차이가 크게 나타났으며 저소득 계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의 점수가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 그들은 이러한 연구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기대감은 실제로 성적 향상을 가져오는데, 이러한 기대 효과는 저학년 그리고 하류 계층 학생들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의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러 선생님들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모든 선생님들 앞에서 한결같지 않다는 느낌을 한번쯤은 가지게 된다.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공연히 주눅이 들거나 위축되고,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행동거지가 단정해진다.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친구에게는 굉장히 너그러우나 어떤 친구에게는 사납게 군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대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행동이 그렇게 되는 듯하다. ‘저 선생님은 나를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 앞에서는 늘 단정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다가 어쩌다 단추가 떨어진 옷을 입고 오면 꼭 그 선생님에게 지적을 당하게 되는 식이다. 반대로 ‘저 친구는 나를 참 의젓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로 그 친구 앞에서 만큼은 더할 수 없이 의젓해진다. 그런 경험 법칙을 되살려 보면 교사의 기대가 학생들의 성적을 실제로 향상시키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연구자의 의도를 모른 채 학생의 지능과 잠재 능력을 신뢰하게 된 교사는 그 학생에게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쏟게 될 것이다. 교사의 기대감과 신뢰는 눈빛과 말씨, 행동에 그대로 드러나고 학생은 그것을 느낀다. 설혹 그 학생이 당장 좋은 결과를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교사는 그 학생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실망치 않고 계속 격려하고 애정을 기울일 것이다. 그 학생에게 기대감을 가지기 전이라면 ‘넌 어쩔 수 없구나’하고 포기할 일도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런 기대와 격려를 받는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신뢰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저학년과 멕시코계 학생들에게서 그러한 기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저학년은 ‘나는 어쩔 수 없어’라는 생각이 아직 굳어지기 전이라 교사의 기대감에 따라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기가 훨씬 수월한 조건 아래 있는 것이다. 또 극빈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은 아마도 교사의 기대와 신뢰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에 대해 체념하거나 부정적인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선생님의 신뢰와 애정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없던 힘도 생겨나지 않겠는가. 두 사람의 연구는 이른바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검증한 것이었다. ‘자기 충족적 예언’ 이론이란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주위의 예언이 행위자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이론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그리스 신화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에서 유래했다는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라고 한다. 즉, 장래가 불투명해 보이는 학생도 정성을 다하여 지도하면 모범생이 된다는 이론이다. 그 상대적인 개념으로 ‘스티그마(Stigma) 효과’가 있다. 낙인이란 의미의 스티그마 효과는 사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접근하면 결과도 기대치 이하로 나타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교사란 피그말리온 효과를 항상 기대하고, 진정으로 즐거운 교사란 스티그마 효과에 대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