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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추석 명절이 지나면서 여성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접대하느라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시간이 가면 해결된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니까. 그러나 늘 피곤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있다. 자신감도 없고 살맛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디 보니 입맛도 없고 잠도 깊이 들 수 없다. 성욕도 없고, 재미있는 일도 보이지 않는다. 쉬어 보고 잠을 원 없이 자 봐도 몸은 피곤하기만 하다. 이를 정신의학에서는 가성 피곤이라 부른다. 높은 지위에 앉은 사람도 이럴 수 있다. 돈 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에 빠져있으면 스스로 너무 억울하다. 한마디로 정신력이 바닥난 사람들이 이런 상태에 빠진다. 정신력의 누수 현상을 막는 길은 없는가이다. 정신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주된 것은 인생의 스트레스이다. 인간의 주된 스트레스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포기할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방은 ‘포기를 잘 하라‘이다. 두 번째로 많은 스트레스는 미움이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미움 받는 것 보다 더 큰 스트레스다. 그래서 처방은 ‘용서하라이다. 미움은 병을 만든다.’이다. 분노는 자율 신경을 자극해서 갖가지 병을 만든다. 억울한 일을 당한 것만 해도 분하고 괴로운 일이다. 그런데 신체적인 아픔까지 당해야 하다니 너무 큰 희생이다. 마음 속에 미운 사람을 갖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증오심이 자신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스트레스는 열등감이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오해를 잘 하고 매사를 더 괴롭게 받아들인다. “역시 나는 못난 놈이라 되는 일이 없어”이런 식이다. 그래서 처방은 ‘열등감을 벗고 자존감을 갖는 것’이 해답이다. 열등감은 마음의 세균이다. 인간 자신이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자기가 자기를 보는 이미지가 자화상(self-image)이다. 호숫가에 독수리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발에 덫을 달고 수 킬로미터를 날다가 지쳐 떨어진 것 이었다. 부정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덫을 달고 나르는 독수리와 같다. 남편이 외도한 부인, 학벌 열등감의 여 사장님, 한 번도 크게 웃어 보지 못한 고위직 공무원 등 부정적 자아상은 어릴 때 만들어 진다. 초등학교 때 어떤 놀림을 받은 기억이 있는가? 혹시 ‘갈비 씨’라고 놀림 받은 기억은 없는지. 가정은 self image factory이다. 비난과 천대는 부정적 이미지를 만든다. “내 아이는 대학시험에 떨어졌어요. 그래도 나는 그 애가 자랑스러워요.” 실패했지만 아이의 성실성, 착한 성품, 건강한 사고방식 등 자랑스러운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이 없어도 부모에게 자식은 살아있어만 주어도 고맙고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철저히 구박하며 소외 시키는 가정이 있다. 이런 부모의 기준은 공부, 지능이고 출세이다. 자식이 슈퍼스타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가정에서 아이들은 못난 자신이 한심하다. 부정적 자아상이 형성된다. 이런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패배자로 본다. 열등감 속에서 일생을 보낸다. 문신으로 ‘타고난 패배자’를 새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마음 속에 이미 이 말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부정적 사고방식이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오늘도 한심한 일만 일어 날거야. 지겨운 하루가 시작됐구나.’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오늘도 새날이구나. 멋진 하루를 만들어야지.’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가장 많다. 왜 현대인들, 특히 서구인들은 신체적 매력, 외모에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성과 관능을 중요시하는 풍토 때문이다. 성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치약이나 껌 광고에도 성적 매력이 생긴다고 선전한다. 여성들은 ‘섹시하다’는 말을 자랑스러운 찬사로 듣는다. 그러나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반드시 행복할까? 예쁜 아이들은 유혹이 많아 불행해 지기 쉽다. 또한 거만해 지기 쉽다. 결혼 후 25년이 된 부인들을 대상으로 흥미있는 조사를 하였다. 대학 다닐 때 더 매력적이었던 여인들이 결혼 생활에서 더 행복하지 못했다. 성적인 매력을 가진 몸매를 가지고 단 한 사람, 남편에게만 메여 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젊어서 예뻤던 여인들일수록 늙어가는 것을 더 못 견딘다는 결과도 나왔다. 사람의 가치를 외모로 측정하는 것은 잘못이며, 행복은 결코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존경하는 학부모님께 그간 안녕하십니까? 건강한 모습으로 2학기를 시작한 귀여운 1학년, 사랑이 많은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담임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의젓하게 자라는 모습 깨달음의 기쁨으로 커지는 눈동자 잘 웃고 다정한 아이들의 모습에 저는 날마다 젊어지는 샘물을 마십니다. 글자를 잘 몰라도 알아가는 속도가 더디어도 아이들의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어른들보다 착하고 건강하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추억을 설레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많이 많이 놀아주십시오. 어린 시절에 많이 논 아이들이 먼 후일에도 행복하게 산다고 합니다. 힘든 일이 생겨도 그 아름답던 추억을 더듬으며 사랑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잘 견딘다고 합니다. 1학년 시절은, 초등학교 시절은 평생 동안 먹어도 될 마시멜로를 마음 속 깊은 속에 저장하는 시기랍니다. 영어 단어 하나 맞추는 것보다 책 속에 파묻히게 하는 것보다 수학 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가족과 나눈 행복한 기억이랍니다. 부디 가족 모두 행복하고 건강한 한가위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4년 9월 5일 담임 장옥순 드림
학교 안전에 빨간 불이 켜졌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14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전체 참여 학생(초등 4학년~고등 3학년 재학생) 456만 명 가운데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6만2000명(1.4%)으로 조사됐고,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장소는 ‘학교 안(67.9%)’이라고 나타났다. 교내 후미진 곳과 교실, 복도 등에서 주로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한다는 건 이제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뿐 아니라 교내에서 학생 안전을 책임지는 교사도 언제 어디에서 사건이 일어날지 몰라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이런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대안이 나왔다. 시스템 일체형 학생지킴이 안심카메라 ‘쌤아이(SSEM-i)’가 바로 그것. 아큐픽스가 출시한 쌤아이는 200만 화소 고화질 센서를 사용했다. 기존 폐쇄회로(CCTV)는 화질이 낮아 사고가 일어나도 상황을 판단하거나 증거로 채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쌤아이는 고화질 센서 덕분에 사건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스템 일체형으로 제작된 점도 눈길을 끈다. 기존 폐쇄회로를 설치할 때 겪었던 번거로움 없이 전원만 연결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덕분에 장소 구애 받지 않고 설치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정보 보호와 인권 침해 방지에도 신경을 썼다. 학생의 얼굴이나 행동이 노출되는 만큼, 제품 잠금 장치와 파일 암호화 기능 등 이중 보안장치를 탑재, 해당 영상에 대한 접근을 허가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열람이 가능하다. 아큐픽스 관계자는 “쌤아이는 교내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 예방은 물론 학생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참 아름다운 길이다. 화사한 벚꽃 길이 아니다. 불타는 단풍 터널도 아니다. 생동감 넘치는 길이다. 희망찬 길이다. 바로 청소년 학생 유치원 어린이들의 등굣길이다. 9월 새 학기를 맞이한 상쾌한 이른 아침이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힘차게 걷는 중고생들 여학생들의 머릿결이 찰랑댄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학교를 향해 힘차게 걸어간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가기도 한다. 한 고등학생에게 “몇 시에 등교하느냐”고 물었다. 7시 50분이라고 했다. 몇몇 남자고등학생들은 학교 통학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7시다. 한 중학교 교문 앞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고 등굣길 지도를 하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노란 신호 깃발이 요란하다. 8시가 지나자 교문은 적막감마저 돌았다. 등교시간이 끝난 것이다. 이제 초등학교 교문이 분주해졌다. 형형색색 예쁜 가방을 메고 재잘대며 교문을 들어서는 어린이들이 세상을 밝게 꾸며주고 있다. 한 어린이가 교문 앞 근처 아파트 길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왜 우느냐?” “배가 아파요.” 책가방의 이름표를 보니 1학년이다. “몇 시까지 학교에 가야 하지?” “8시 30분이요.” 전화를 해주려고 했더니 “하지 말라”며 일어나서 학교를 향해 힘겹게 걸어갔다. 초등학생 등교시간이 지나자 유치원 어린이가 손잡고 걸어온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몇 시까지 가느냐?” 고 물었더니 “9시요”라고 했다. 아직 30분전이다. 유치원 어린이가 스스로 30분 전에 등교하는 참으로 기특한 현장이다. 6․4 지방선거 후 이른바 진보성향 교육감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맞벌이 부부 곤란” 등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생 등교시간을 2학기부터 9시로 하라”고 지시했다.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도 “30분씩 늦추어가는 점진적 방법으로 9시 등교를 추진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고3 학생은 일률적으로 하지 말고 학교장 자율적 판단에 맡기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반대하는 학부모 측에서는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이며 자율이 아닌 강요이고 하향식 관치행정이라”며 “교육근본과 학교의 근간을 흔드는 9시 등교는 철회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바야흐로 9시 등교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다. 등교시간이 8시든 9시든 다 같이 장단점이 있다. 한 인문계고등학교장은 9시 등교에 대하여 냉소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49조에는 등교시간은 학교장의 고유권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 이전에 교육적 관점에서 등교시간을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야간 근무자가 아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이 근면 성실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서양격언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고 했다. 등교시간을 늦출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하교시간’을 앞당길 일이다. ‘날이 밝자 배를 풀고 돛을 달았으나…’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만일 늘어지게 늦잠 자고 아침 9시에 돛을 달았다면 어찌되었을까? 세종대왕은 새벽 4시 경(寅時)에 일어나 해 뜰 무렵(平明)에 군신(群臣)의 조회를 받았다고 한다.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동상이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니다.
최근담뱃값을 인상한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흡연자들사이에의견이 분분하다.이참에 담배를 아예 끊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인상안에 정부의 또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겠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비흡연자에겐 반가운 소식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히 그 인상안의 이유 중 하나가 점점늘어나고있는청소년의흡연율을줄이기위한대책이라고발표한정부의담뱃값인상안에 한편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담배를 피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 듯 담배를끊는다고하는것은그어떤것보다힘든 일이다. 초등학교 때부터담배를피워온한아이에게흡연하게된이유를물어본적이있다.호기심 때문에피운담배가지금은습관이되어하루에한 갑이상을피운다고하였다.그리고한 달에 담뱃값으로약5만 원 이상이지출된다고하였다.담배피우는장소로학교화장실이나학교 주변노래방등이라고 하였다. 담뱃값이인상되면담배를끊겠느냐는질문에노력은하겠지만끊지는못할것이라고답해놀라게하였다.담배를피우고싶을때가언제냐는질문에스트레스받을때라며자신의고민을털어놓았다. 즉 그 아이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담배를 선택한 것이었다. 담뱃값 인상이 흡연자들에게 단기간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멀리 내다보면 그다지 큰 실효성은 거두지 못하리라 본다. 한때 학교를 포함해 공공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정부 발표 이후, 담배를 끊은 일부 선생님들이 있었으나 결국 담배를 다시 피우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이 감돌았다. 이렇듯 담뱃값 인상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있어 일시적인 금연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아이들 스스로 담배를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아이들이 담배를 끊는 데는 기성세대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흡연하는 청소년을 위해 학교 차원에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폭력과 마찬가지로 교내 흡연도 추방해야 하는 대상으로 포함시켜 간접흡연으로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람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 이에 학교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전 교직원과 아이들이 참여하는 교내 흡연 추방 캠페인을 주기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 보건교사가 중심이 되어 근처 보건소의 협조를 얻어 금연교실을 열고 지속적인금연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특히 담배를 끊기 힘든 학생들을 위해 금연침을 맞게 하는 등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금연에성공한청소년을초빙하여그들의 금연 담(談)을직접 들음으로써 자신 또한 금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흡연 관련 시청각 자료를 보여줌으로써 흡연의 나쁜 점을 극대화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금연일지를쓰게 하여금연을꾸준히실천한학생에게포상을주는것도좋은방법이 될 수 있다. 아무쪼록 우리 아이들이 담배 연기 없는 건강한 학교에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기도교육청의 9시 등교에 이어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 사립고 취소를 놓고 또다시 시끄럽다. 정말 교육 이 무엇이고. 교육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분명한 것은 우리 교육을 보다 잘 하려고, 잘 가르쳐서 학생들의 행복한 삶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보 교육감들이 취임하지마자 학교를 흔들고 학부모들과 대립하여 혼란만 부추기는 상황이니 교육감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 일이다. 모름지기 교육은 조용히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리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함께 중지를 모아야 보다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는 우리의 선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은 교육의 내용인 학파 간의 논쟁은 있었어도 지금처럼 교육의 본질을 벗어난 일에 목숨을 걸진 않았다. 물론 과거와는 교육환경이 변한 것은 이해하지만 2학기 시작과 함께 학교현장은 혼란의 수렁에 빠져있다. 아무리 학생을 위한 교육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이고, 교사가 미성숙자인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래서교육을 통해 학생의 바람직한 행동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이다. 그러함에도 최근 일련의 일들은 학생중심이란 이름으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교육행정을 강행하고 있다. 마치 속도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릴레이로. 이들로 인해 학교는 혼란하고 더 피로하다. 사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 자체부터 싫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특히 청소년기는 호기심이 많고 자극적이어서 모든 것이 신기하고 관심거리다. 그래서 지루한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나 학생들이 건강한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 교과목은 반드시 이수해야 하고, 당장 대학을 가기 위해서 다양한 공부도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원하지 않는 교과목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의바람직한 행동변화라면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이 교사의 의무와 책임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만은 교육할 수 없으며, ‘학생중심의 교육’을 너무 확대 해석하면 방관된 교육, 무책임한 교육이 되기 쉽다. 우리 교육, 학교현장에 맡겨야 한다. 책임있게 잘 할 수 있다. 현장 교사들을 믿고 신뢰할 수 있어야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도 현장 교사들의 지지나 호응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용히 있다고 모든 교육정책을 찬성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비는 싫어도표출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교육수장이 휘두른다고 모든 교사가 그대로 따라온다는 생각은 잘못된 전근대적 사고이다. 이젠 교사를 믿고 학교를 신뢰하자. 우리의 교육현장 모두 잘 하고 있다. 그리고 교사들의 사기와 열정을 위한 지원행정을 적극 펼쳐라. 그래야 위기의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다. 학교공동체가 소리 없이 오순도순 만들어가는 교육은 정말 좋은 교육이며 진정한 교육성과가 창출된다. 이게 우리 교육이 나아갈 다양성, 창의성 교육이다. 지금처럼 무차별적이고 강압적인 교육정책엔 우리 교육의 득보다 실이 많음을인식해야 한다.
수원 칠보초, 전교 어린이 임원 선거로 새 학기의 기틀 마련 경기도 수원 소재의 칠보초등학교(교장 김석진)는 오늘 9월 4일 목요일, 2014학년도 2학기 전교 어린이 임원 선거를 실시하였다. 전교 어린이 임원 선거 후보자들과 도우미들은 9월 1일부터 9월 4일 오전까지, 등교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뜨거운 홍보전을 펼쳤고 입후보자 소견발표시간에는 학교를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을 진심을 담아 발표하였다. 이번 전교 어린이 임원 선거에서 김진영 학생 외 2명의 학생이 전교 어린이 회장으로 입후보하였고, 6학년 부회장에는 성지영 학생 외 3명, 5학년 부회장에는 정재이 학생 외 1명으로 총 9명의 학생이 참여하였다. 투표권은 4학년부터 행사할 수 있었으며 이들은 입후보자의 열띤 소견 발표를 들은 후 무기명 1인 1투표로 투표에 임하였다. 개표결과 기호 3번 김단비 학생이 총 286표 중 117표를 얻어 전교회장을 당선되었고, 성지영 학생은 105표를 얻어 6학년 전교 부회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정재이 학생은 154표를 얻어 5학년 전교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전교회장에 선출된 김단비 학생은 “많은 학우들이 칠보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장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즐거운 학교, 꿈을 키우는 학교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에 전교회장으로 선출된 김단비 학생은 전교 방송을 통한 선거 유세에서 차가운 물을 직접 뒤집어쓰는 등의 전교회장 후보로서의 본인의 각오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2014학년도 칠보초등학교를 위해 부지런히 봉사하겠다는 칠보 전교 어린이 회장단을 보니 금학년도가 끝날 때 즈음 역시나 부쩍 성장해있을 칠보인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아마 이들의 마음속엔 입 안에서 금세 녹아버리고 마는 막대사탕보다는 누가 2014학년도를 이끌어 갈 칠보의 일꾼이 될 것인지가 더 달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칠보 학생들의 소중한 한 표가 모여 이룬 오늘의 결과가 2014학년도 행복한 칠보초등학교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되었기를 소망해본다.
예술은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 배우, 방송인, 연출가 등 우리 주변에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예술을 배부른 자들의 사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선진국일수록 문화가 발달했다. 문화의 핵심이 예술이라 예술가들의 사회적 기여도 또한 높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행동 양식이나 구조가 예술이고 문화다. 예술가들은 등 따습거나 배부른 것보다 예술에서 영혼을 찾는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 역사는 영원불멸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끊임없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 늘 활력이 넘친다, 예술인들과 가깝게 지내면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도 실감한다. 운보와 정원이 있는 형동리 가까이에 청강도예, 서원도예, 토지도예, 예담 등 공방이 많아 시간을 맞추면 일반인들도 공예를 체험하며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다. 참 예술인들에 의해 예술이 일반인들의 생활 속으로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마을길을 중심으로 숲길(상당산성), 물길(초정약수), 들길(증평 율리)을 테마로 스토리텔링 문화를 재구성하는 세종대왕 100리 길 조성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운보와 정원을 둘러보고 호야 형님의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청강도예로 갔다. 형님에 의하면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강의승 도예가는 전국체전 레슬링 부문에서 메달을 땄을 만큼 유명한 운동선수였고 대학에서 임업을 전공해 도예와는 무관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30여 년 전부터 야외에 묻혀 홀로 물레를 굴리며 어느 분야든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보이면 누구나 예술인이 될 수 있다는 장인 정신으로 지금의 위치를 확보한 입지전적의 예술인이다. 청강도예가 위치한 형동리는 시내와 가깝지만 강원도 산골처럼 한적한 시골이다. 본인의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부끄러워할 만큼 순박한 도예가와 정에 넘치는 인사를 나눈 후 1층의 작업실에서 물레위에 놓인 백자토를 이용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보거나 초벌구이를 하지 않은 그릇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2층에서는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품들을 감상하며 점토의 질감에 푹 빠진다. 인생이 예술이라고 현대의 예술세계는 우리네 생활과 밀접하다. 전시실을 둘러보노라면 작가의 혼이 깃들어 값을 얘기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다기세트 등 실생활에 유용한 작품들도 많다. 이날 작가가 직접 만든 다도세트를 구입했는데 요즘 다도를 배우고 있는 아내가 매우 좋아했다. “유명한 도예인이 되기보다는 도자기 하나하나 숨결을 불어넣어 그냥 흙을 굽는 게 아닌 혼이 살아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명함에 써있는 청강 강의승 도예가의 각오에서 도자기를 빚는 예술가들의 혼이 느껴진다. ▣청강도예▣ 전화 : 010-5462-9464 주소 :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형동1길 40-24
얼마 전 근무하는 직장이 바뀌었다. 의정부시에 있는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에서 남양주시에 있는 구리남양주교육청이다. 평화교육 담당 장학관에서 중등교육지원과장이다. 무보직 장학관에서 과장이라는 직위를 부여 받았다. 상대하는 대상은 경기도 전역에서 구리시와 남양주시로 바뀌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와서 6개월 만에 전보신청을 한 것이다. 수원 인근으로 오기를 바랐으나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집과 조금은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게 어딘가? 수원에서 의정부와 수원에서 남양주. 느낌이 다르다. 통근하기에 부담이 덜 된다. 통근 시간은 70분에서 50분으로 단축되었다. 아침 시간 20분 단축이라면 큰 시간이다. 아침 6시 30분 출발에서 6시 50분으로 늦추어졌다. 더 큰 소득은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같이 삭막한 세상, 가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지난 일요일 아내와 같이 부임할 중등교육지원과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이삿짐을 나르고 책장을 정리하고 유리창을 닦았다. 물행주와 휴지로 닦다가 물을 뿌리며 닦았다. 실외에 모기가 많아 얼굴, 다리, 팔 등 몇 군데 물렸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내가 근무할 환경, 내가 개선해야 한다. 아내는 말한다. 근무환경이 의정부보다 좋아졌다고. 우선 근무책상이 쾌적하다. 장학사들과 맞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떨어져 있어 개인 프라이버시가 유지된다. 손님이 오면 차 한 잔 마시며 대화할 공간이 있다. 과장으로서 품격을 지킬 수 있다. 고개를 돌려 보면 하늘이 보인다. 또 초록의 나무들이 보인다. 사무를 보면서 마음만 먹으면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장학사 한 분은 산책 코스도 있다고 알려 준다. 점심 식사 후 산책은 삶에 여유를 준다. 지역교육청이 위치한 곳은 교통도 좋다.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1.6km다. 시내 중심지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이 좋다. 출퇴근 시 건너야 하는 강동대교(江東大橋), 강동구 강일동과 구리시 토평동을 잇는 1126m의 교량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직장으로 이어진다. 말이 강북이지 강남과 이어진 곳이다. 첫 출근일. 수능모의고사 시험지가 도착하였다. 우리과 장학사는 물론 초등 장학사, 경영지원과 주무관들이 지하실로 짐을 나른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자기 부서 일이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서로서로 도와주는 좋은 문화 풍토이다. 이틀째 출근일은 오늘, 커다란 행사가 있다. 바로 ‘제11회 구리남양주 학생예능 발표회 미술부문 전시회’다. 교육청 국과장과 장학사들이 출동하여 일을 거든다. 관내 초중고 교장, 교감들도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여 작품을 감상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세상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가 있다. 긍정적인 눈과 부정적인 눈. 어느 것이 인생에 도움을 줄까? 긍정적인 시선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불평과 불만이 쌓인다. 마음도 불편해진다. 교장 시절 학생들에게 강조한 것도 첫 번째가 긍정적 사고였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아라”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의 대가 당선으로 학교 현장이 변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혁신, 개혁, 개선보다 학교 혁장의 실정을 간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재고가 요구되고 있다. 그 한 사례가 학생들의 교육평가 폐지 내지 감축이다. 이번에 취임한 교육감들이 소속된 많은 시‧도교육청에서 당장 이번 학기부터 초등학교의 중간평가, 기말고사, 학업성취도평가 등 일제식(一齊式) 지필고사를 전면 폐지하고, 수행·서술형평가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나아가 연차적으로 중학교 1학년까지 중간·기말고사 등 일제식 평가를 폐지하겠다고 교육청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교육평가는 교육목표-교육내용-교육방법-교육평가 등 일련의 순환적 시스템과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의 한 영역, 꼭지이다. 교육평가에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기본적 철칙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교육평가 폐지는 교육과정의 부실과 직결되는 사안인 것이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특히 현대 교육과정에서는 단위 학교에서 설계·실행(편성․운영)되는 학교교육과정이 학교교육의 주류이고 골격이다. 따라서 학교교육과정은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평가를 거쳐 다시 교육목표로 순화되는 환류(feedback) 과정을 거쳐야만 정상적인 체제이다. 이 네 과정 중에 교육평가가 제외되고 나머지 세 과정으로 이어지는 교육과정의 모습은 정상적인 체제 내지 체계는 아닌 것이다. 물론 초등학생 시절부터 과중한 평가(시험) 부담에서 해방시켜서 건전한 심리적, 신체적 발달을 도모한다는 측면은 일변 동의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지엽적 문제가 교육이라는 거대한 본질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교육은 현재의 삶을 바로 세우는 활동이자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휴식과 놀이와는 다른 활동이다. 더러는 학생들의 고뇌와 집중력이 필요한 활동이고, 인내와 노력이 가중되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인생관과 철학의 기반을 다지며, 인생의 참 의미와 진솔한 삶을 재음미하는 것이다. 분명히 교육평가가 없는 교육이 훌륭한 교육이 아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가르칠 것은 반듯이 가르치고, 배울 것은 오롯이 배워야 하며, 그 과정에서 목표 달성도와 성취도를 중심으로 한 교육평가를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평가의 존폐에 대해서는 학생, 학부모들의 여론과 설문 조사 등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교육에서 평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육평가가 없는 교육과정은 겉으로는 미끈한데, 남는 것이 전혀 없는 공허한 교육으로 전락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학력 저하, 학력의 하향평준화는 명약관화한 것이다. 교육평가가 없다면 학력신장은 고사하고 학력저하가 우려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섣부른 정책으로 기초·기본교육과 학력의 약화는 공교육의 학생 학력 저하를 유발할 우려가 큰 것이다. 객관적인 학력 파악도 문제가 된다. 각급 학교 학생들은 단위 학년에서 도달해야 할 학력수준과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교수·학습을 전개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초 존 듀이(J.Dewey)를 중심으로 한 진보주의, 실용주의 교육 사조가 풍미하여 ‘생활이 교육이고 경험이 곧 교육이다. 노는 것이 참 교육이다.’라고 하여 1957년 소위 스푸트니크(Sputnik) 사건이 발생하여 민주주의 교육이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뒤에 학문중심교육의 사조가 등장한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기초 기본이 바로 서지 않은 교육은 한낱 사상누각(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최근 ‘교육의 제자리 찾기, 기초 기본 교육으로 돌아가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창의력 등 고급사고력(high level thinking)은 기초기본지식을 튼튼히 한 가운데 형성되는 것이다.물론 그동안 교육평가의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교육평가가 수많은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꿋꿋하게 이어져 오는 것은 이를 대체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평가, 특히 일제식 평가가 갖는 역기능을 줄이고, 발달적 평가관(評價觀)에 터한 순기능을 근대화할 수 있는 교육평가 방법을 모색해 봐야지 역기능이 있다고 아예 폐지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 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것이다. 교육평가는 부정적 면과 긍정적 면을 함께 보아야 하는 것이다. 분명히 교육평가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그 시행 방법과 결과 활용 측면이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점을 우리 모두는 자성해야 할 것이다. 교육평가 폐지 내지 감축에 즈음하여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이에 대한 여론 수렴 등 공론화 과정이 생략됐다는 아쉬움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인 것처럼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 취임한 교육감들도 조급함에서 벗어나 넓고 장기적인 입장에서 교육평가의 개선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 다른 시‧도 지역 등의 변화, 개선 등도 참고하여 보다 많은 교육공동체, 국민들이 공감하는 교육정책을 수립, 추진했으면 한다. 중간평가, 기말평가 등을 일제평가, 일제고사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들춰내 공론화 과정도 없이 폐지시키는 것은 학생들의 정확한 학력수준 파악과 보정교육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는 또 교육부의 교육과정 고시인 성취 기준과 성취 수준과도 상치되는 교육행정이다. 특히 학생들의 교육평가 존폐 여부는 궁극적으로 교육구성원의 충분한 논의가 전제돼야 할 중요한 사안으로 교육감이 단독으로 결정할 일도 아니다. 학생, 학부모, 교원의 충분한 여론수렴 등 공론화 과정의 부족, 정책변경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으로 인해 폐해는 고스란히 학교현장의 몫이고 결국은 학생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밀어부치기 교육정책의 폐해 역시 학생들에게 귀착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환언하면, 교육평가를 폐지하고 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 평가를 얼마나 바람직한 방법, 방향으로 올곧게하는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교육에서 막연한 대안 제시 내지 대안도 없이 마구 폐지, 감축하는 교육 정책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결국 일부 시․도 교육청의 일제식 교육평가 폐지는 우리 학교 현장의 여건을 고려하여 재고돼야 한다. ‘일제식’이라는 공동 평가가 좋지 않다면 얼마든지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좀 더 시간을 갖고 공청회 등 여론을 수렴하여 현실에 적합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교육정책은 ‘빨리빨리보다 차근차근으로’ 나아가야 한다.
5.31 공과 짚고 인성교육 중심으로 재정립 상위법 상충되는 정책, 교육법 따라 해결해야 양성·임용체제 개편…교원을 최고의 전문가로 황우여 장관 답변 ◇인성교육 강화=지금까지의 교육은 경쟁중심이었으나 요즘 같은 변화의 시대에는 그 중심에 인성교육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모여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교총과도 이 부분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겠다. 발달단계별 특성을 고려한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때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 생명을 지키는 안전에 대한 내용을 교육받았으면 한다. 다시 말해 적어도 우리나라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생명에 대한 교육은 확실히 받았다는 인식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학교는 예민하면서도 인간과 자연에 대해 눈을 뜨는 때다. 이 시기에는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으므로 자긍심을 갖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길 바란다. 고등학교부터는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함께 교육해야 하며 대학시절에는 희생과 봉사정신 함양에 집중했으면 한다. 경쟁, 경제, 자유를 중시한 5.31 교육개혁의 공과를 점검하면서 인성교육을 가운데 두고 실현할 수 있도록 재정립 할 것이다. ◇교육 법치주의 확립=교실은 이념의 갈등이나 분열을 심는 장소가 아니라 순수한 상태의 교육 현장이어야 한다. 교실은 선생님과 학생이 눈을 마주치며 미래를 그려가는 신성한 곳이다. 그럼에도 요즘 교육 현장은 한번 갈등이 생기면 교장의 중재나 동네 어른의 훈계와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은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헌법 가치를 따라야 하듯 우리 교실도 헌법 가치를 중심으로 질서와 평화가 유지돼야 한다. 이와 관련, 행․재정 수단을 동원해 반강제적으로 시행하는 정책은 펴지 말아야 한다. 그 여파는 결국 교사의 자긍심을 상실시키고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이 받게 된다. 상위법과 상충되는 각종 정책들도 교육법에 따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생각이다. 교육 법치주의가 확립되려면 먼저 교육 주체들의 자긍심부터 찾아줘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감, 교장, 교사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학교행정을 할 수 있다. 헌법 중심의 풍토를 교육계에 정착시켜 세상에 눈을 뜨는 학생들에게 철저하게 법을 지키고 헌법가치를 존중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교원양성·임용·연수 개편=IMF 당시 우리나라는 권고와 달리 오히려 교육투자를 늘렸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 IMF를 가장 빨리 극복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어려울수록 교육에 대한 투자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해야 한다. 교원양성에 모든 국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식위주로 교사를 양성하는 현 체제에 대한 문제인식에 공감한다. 지식은 조금 뒤쳐져도 열정과 사랑의 마음, 물불 안 가리는 희생으로 학생을 키우는 담대한 교사들이 필요한 시대다. 단지 임용고사에서 몇 점 더 받는다고 훌륭한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번 본 시험 점수만을 가지고서는 제대로 된 교사를 뽑기 어렵다. 4년 과정 전체를 지켜보면서 학생을 키우듯 교사도 키워야 한다. 교원양성과정에서부터 교사로서의 인성이 자연스럽게 배양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재구조화에 관심 갖겠다. 또 우수교사들을 교수요원으로 보내는 것은 현행법상으로는 방법이 없지만 입법 등 다른 방법은 없는지 심도 있게 검토 하고 답변하겠다. 교원양성기관에 대한 행․재정투자 강화에 대해 동의하는 바, 전문가들과 토론을 통해 중지를 모을 것이다. 검찰청에 가면 애국검사의 표상인 이준 열사 동상이 있다. 교육부에도 국민들이 뽑은 스승상으로 동상을 세울 생각이다. 교사들에 대한 예우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교육이 바로 선다. 고등교육, 규제에서 지원 중심으로 전환 교원 현장연구 인정․지원 방안 마련하겠다 평교사가 장학관으로 승진, 대책 논의 중 ◇지원 중심 고등교육 정책 전환=대학행정이 규제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많은 대학들이 전전긍긍 하고 있다. 이제 고등교육 정책은 대학 스스로 노력하는 부분에 대해 격려하고 거들어주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립대 성과급적연봉제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것이나 족쇄가 된다면 과감하게 고쳐서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남수 전 장관의 뜻을 이어받아 정리하겠다. 또 사이버대학, 폴리텍대학 등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등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데 관련된 업무가 고용노동부, 산업부 등으로 흩어져 있어 밀접한 연관이 힘든 부분도 있다. 전체를 모아 고등교육의 기본 틀을 다시 짜는 것도 검토하겠다. 고등교육에 대한 부분은 정식으로 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의견을 수렴해 그림을 그려보려 한다. ◇교원 현장연구 활성화=교실 현장은 교사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성역에 준하기 때문에 연구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교사들이 현장에 대해 연구하고, 현장을 하나의 실험실과 같이 생각하며 교수법 등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성공사례를 만들어낸다면 교육역사에 큰 획을 그을 것이다. 물론 성공하려면 벤처사업에 성공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100 중 99.9가 실패하고 0.1이 성공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연구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 결과 및 평가를 성패에만 둔다면 교사들이 연구에 첫발을 디디기가 힘들 것이다. 논의를 통해 연구과정에 대해 비용 등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 연구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격려하는 분위기 마련에 힘쓰겠다. 교사들 스스로가 ‘생활지도는 이렇게 하면 효과적’이라며 자신들의 연구를 동료들과 공유하고 널리 퍼뜨리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교사들이 연구에 보다 활발하게 매진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검토와 대안마련에 힘써 현장과의 갭을 줄이도록 하겠다. ◇코드 人事 개선=일부 시‧도에서 평교사가 장학관으로 두 단계 이상 승진하는 등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돼 많은 교원들이 놀랐을 것이다. 인사에 대한 관행이 있어왔기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평교사를 장학관이나 연구관으로 전직, 특별 채용하는 것에 대한 교육계 전반의 여론을 꾸준히 듣고 있고, 제기되는 문제 또한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재 대책 마련을 논의하고 있다. 현장 전문가 및 교원들과 무릎을 맞대고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이 잘 정리된 것 같다. 그동안 축적된 현장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면서 교육부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전체가 교육부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국민을 향해 나아가는 교총과 교육부가 됐으면 한다.
인천시교육청의 초등학교, 중학교 1학년 중간 및 기말고사 폐지 방침에 대해 한국교총과 인천교총이 기초기본교육을 약화시키는 비현실적인 방식이라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한국교총과 인천교총은 1일 성명을 통해 “기초학력 형성시기인 초·중학교는 총괄평가와 진단평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초등학교부터 과정평가인 수행․서술형 평가만 시행한다는 것은 비현실적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또 교총은 “초등학생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은 사실적 지식습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기초 기본지식도 없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학생이 도달해야 할 학업수준과 목표를 위해 교사들의 협력 수업과 공통으로 출제한 중간․기말고사를 ‘일제고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시켜 공론화 과정도 없이 폐지하는 것은 학생들의 정확한 학업수준 파악과 보정교육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등배 인천교총 회장은 “학생들의 중간, 기말고사를 폐지하면 도대체 학생들의 객관적인 학업성취도 수준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 인천시교육청은 인천시민과 교육계에 답해야 할 것”이라며 “교육감 공약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시행에 앞서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정책 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이 2011년 전국 초․중․고교 교원 465명을 대상 ‘학생평가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9%가 초등학교 중간․기말고사 폐지와 수시 평가 체제에 대해 반대 한 바 있다. 한편 인천시교육청은 7월 올 2학기부터 초등학교의 지필고사 형식의 중간·기말고사를 전면 폐지해 수행·서술형 평가로 전환하고, 중학교는 고입전형에 내신이 반영되는 것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8월 27일, 사진동호회 설레임 회원들이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형동리에 위치한 명품예술원 ‘운보와 정원’에 다녀왔다. ‘운보와 정원’은 故 운보 김기창 화백의 예술혼이 깃든 운보의집을 비롯하여 분재공원, 미술관, 조각공원, 수석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보는 7살 때 장티푸스에 걸려 청각장애자가 된 역경을 이겨내고 18살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연 4회 특선하여 조선미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33세의 늦은 나이에 서양화가인 우향 박래현과 결혼한 후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국화단의 대가로 우뚝 선 운보가 생전에 잊지 못했던 두 여인이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보내 미술계로 이끈 어머니와 동반자였던 부인 우향이었다. 운보는 1976년 우향과 사별한 후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어머님의 고향에 운보의 집을 짓고 1984년부터 2001년 타계하실 때까지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작품 활동을 하며 노후를 보냈다. 운보와 정원은 3만여 평의 부지에 회화와 건축, 분재와 수석이 하나가 된 종합예술공간이다. 입구에서 운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세운 기념비를 만난다. 운보가 앉아있는 모습을 닮은 기념비에는 ‘다만 고인이 된 아내의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게 원망스럽고 또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한이다. 예술가는 늙으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창조주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날더러 마지막 소원을 말하라면 도인이 되어 선(禪)의 삼매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등의 어록이 새겨져있다. 솟을대문을 지나 정원과 2개의 중문을 통과하면 운보의집이 나온다. 집에 들어서면 수려한 자연경관과 우리 고유의 전통한옥이 잘 어우러진다. 한옥은 안채와 행랑채, 한적한 정자, 예스런 돌담, 아담한 정원수, 소박한 정원석, 연못의 비단잉어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들며 자연의 순수를 생각하게 한다. 정원 주변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명품분재들도 만난다.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고 한옥 마루에 오르면 운보의 소지품과 일상을 볼 수 있도록 안채의 문을 열어 놓았다. 조용히 내부를 둘러보고 한옥 마루에 걸터앉아 정원을 바라보면 한옥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이 새롭게 느껴진다. 스스로 바보 화가라 부른 운보는 천진난만한 바보산수부터 세밀한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그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근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 만원짜리 지폐가 떠오른다. 만원 지폐에 담긴 세종대왕 초상이 바로 운보가 그린 작품이다. 운보미술관에서 운보의 독창적 예술세계와 전 생애에 걸친 주옥같은 작품, 부인 우향과 월북작가인 동생 김기만 화백의 작품을 만난다. 미술관 옆으로 가면 국내 유명작가들이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표현한 조각품들이 연못 주변의 수려한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수석공원에 전시된 초대형 야외 조형석들은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극치다. 특히 코끼리, 모자양, 여인상, 백경, 명상의돌 등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명석들이 자연을 병품 삼아 묵묵히 서있는 모습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관람안내(043-213-0570/216-0570, 010-6287-3690)▣ -주소 :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형동2길 92-41 -인터넷 : www.woonbo.kr -관람시간 : 주중(월~금요일) 09:30~17:30, 주말.휴일(토.공휴일) 09:30~18:00 -관람요금 : 어린이 2,000원/ 청소년.경로(65세이상) 3,000원/ 성인 4,000원 -단체요금(20인 이상) : 어린이 1,000원/ 청소년.경로 2,000원/ 성인 3,000원 -비고 : 5세미만 무료(개인에 한함) * 관람은 연중무휴
우리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신세대젊은이들의 잦은 비행과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마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살기가 너무 편리하고 좋아졌는데도 일부 청소년들의 마음과 영혼이 너무 나약하고 사람의 본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과 인성을 저버린 행동으로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 군에서 병영생활을 하면서도 그대로 연장되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군 생활을 견뎌내지 못하고 우울증까지 겹쳐 자살하거나 총기사고로 국민을 놀라게 하더니 집단구타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문제의 원인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소홀히 해 온 것 같다. 유치원에서 글자를 가르치거나 영어를 가르치기보다 자연 속에서 인성을 배우도록 해야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숲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꽃과 곤충을 관찰하고, 시냇물에서 노니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모래성을 쌓으며 자연을 배우는 교육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화로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생존경쟁과 황금만능사상을 우선시 하는 어른들의 삶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친구를 경쟁자로만 여기고 1등만 강요받으며 자랐지 않았는가? 같이 자라는 세대들을 적대시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컴퓨터, TV, 스마트폰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사람사이의 정을 멀게 하고 비인간화로 가는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문명을 잘 이용하며 살아가려면 인간성을 회복하고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성현들의 말씀이 담긴 고전을 가르치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은 옛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느라 옛것을 무시하고 버리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교육에 소홀히 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비슷하다.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다간 조상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주옥같은 고전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우리조상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사자소학이나 명심보감 같은 문장하나라도 가르치는 정책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심보감의 문구를 가르쳤더니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필자 앞에서 머리 숙여 반성하는 학생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경험이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해야 인성이 싹트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주위사람에게 시키지 마라! (己所不欲 勿施於人)만 가르쳤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성을 간직하지 않았을까?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마음이 황량해져가는 신세대들에게 부족한 마음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성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아이들의 9시 등교를 강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수업시간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할 것이다. 현행 교육과정에서의 단위 수업 시간은 학생 발단단계를 고려해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등학교 50분을 기준으로 정했다. 점심시간, 아침활동시간등 파행 필자가 전에 재직하던 학교 수업 운영방식은 8시 40분 등교, 9시에 1교시 시작이다. 20여 분 간 담임교사의 출석 점검, 간단한 아침 훈화 등을 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이는 학생 가정환경, 즉 도시와 농촌, 맞벌이 부모 비율, 교통난 등에 따라 편차가 많기에 확인 차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9시 등교를 한다면 이러한 시간을 포함해 9시 30분 정도 1교시 수업을 들어갈 수밖에 없다. 9시 30분에 1교시를 운영하면 초교는 1 단위 교과 시간 40분, 10분 휴식 3번, 4 교과 시간 운영을 하도록 돼있어 190분을 오전 시간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점심 식사는 12시 40분이 된다. 중학교의 경우 1 단위 수업시간 45분이니까 오후 1시, 고등학교의 경우 오후 1시 20분에 점심식사를 하게 된다. 학생이 원한다 해서 9시 등교를 해야 한다는 말은 그럴 듯하나, 그 학생들에게 점심시간 여부를 놓고 질문을 다시 던져봐라. 어떤 반응이 나올까? 점심시간 마친 뒤 쉬는 시간 없애도 되겠니? 마지막 수업 시간 늦춰도 되겠니?’ 등에 대해 같은 반응이 나올지 의문이다. 학교는 교과수업 시간이 점심시간 이상으로 충실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해 수업시간을 조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교실배식을 하는 학교보다 급식실 배식을 하는 학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현재는 이른 등교로 무리 없이 급식실 배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9시 등교를 강행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교육과정 단위시간 준수라는 고민과 점심시간 확보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 학교의 아침시간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있다. 독서활동, 건강달리기, 자치활동, 교내봉사, 한자공부, 방송영어 등 다양하다. 그런데 학교가 9시 등교를 강행한다면 기초교육과 인성교육이 가능한 이런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9시 등교 강행으로 인해 교과 수업시간을 위한 획일적 학교운영이 될 것은 뻔하다. 학생 수면부족 문제도 못 풀어 9시 등교를 주장하는 사람은 청소년기 수면부족이 정서적인 면과 학습 효율적인 면에서 나쁘다는 연구 이론을 들어서 합리화한다. 10대들의 뇌는 9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학생들이 최상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수면시간과 패턴은 가정환경, 학습 부담, 인터넷과 스마트기기 중독, 운동 습관 등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등교시간이 아니라 부모의 공부 강요, 방과 후 학원 및 과외공부, 스마트폰, 게임 등이 더 큰 이유인 것이다. 진정 학생들에게 공부라는 굴레를 벗겨주려면 사교육에 몰입하는 제도를 바꿔줘야 한다. 주지교과 점수 위주의 줄 세우기 입시 제도를 바꾸면 저절로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학교 스포츠, 예술 활동, 자치활동 등 학교 활동의 성과를 반영하고 교과 수업 시간을 줄여주는 제도적 뒷받침 마련이 훨씬 필요하다.
올해 대입전형이 6일 수시모집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60만 명 수험생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 12년간의 기나긴 여행 끝에 목적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된다. 서울대 정책방향에 모두가 흔들려 그러나 학생들은 ‘스카이, 서성한이, 중경외시’ 등 전국 200여개 대학 서열부터 생각하게 된다. 대학 서열화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갖은 폐단을 낳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그동안 고교 현장에서는 3500여 명을 선발하는 서울대의 대입 정책 방향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국 대학교 모집인원의 1% 정도의 서울대가 수능에서 제2외국어 반영과 한국사 필수 등을 이야기 할 때 고교 교육과정은 소수 학생들을 위해 1학년 때 배웠던 교과를 3학년으로 변경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현 대입전형은 일부학생들을 위한 방식이며, 고교 교육현장에서 학생 선택을 제한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학년도부터 도입된 수시지원 횟수 6회 제한 문제만 봐도 그렇다. 물론 지난 2010학년도 한 수험생이 61회나 지원하는 등의 문제를 경감하고 실질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복수 지원한 학생이 여러 곳 합격한 경우 합격날짜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서열에서 밀리는 학교는 최초 합격자보다 예비 합격자가 더 많이 나오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 학생들은 시작부터 패배감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또 현재 일반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또는 평준화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비평준화지역 소재 고교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을 고려해 입학이 가능하지만,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평준화지역 소재 고교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정된 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런 경우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과가 다양하지 못하고 정해진 일부 교과를 이수할 수밖에 없다. 학교 상황에 따라 교과이외 활동으로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이 매우 차이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일부 고교의 경우 상위 10% 학생들이 주요활동들을 주도하고 수상 실적에서도 각종 교내 경시대회 수상을 독점하고 있다. 이처럼 고교 교육현장은 여건에 따라 많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지만 학생선택은 매우 제한적이고 무시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입전형과 학교 교육에서 대다수 학생들은 소외되고 일부 상위권 학생들이 교육의 과정과 결과를 독점하는 문제는 하루빨리 해결되야 한다. 대학 서열화가 더욱 강화될수록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한 진로 결정보다는 대학의 이름을 보고 진학을 결정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진로진학상담교사 역할에 큰 기대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학교 교육이 정상화 돼서 학생들이 개개인에 적합한 진로를 계획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꿈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데 있다고 사료된다. 다행히 지난 해 전국 중고등학교 5520개교 중 5215개교(95.4%)에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배치됐다. 각 학교는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 성과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제라도 학생들을 교육의 패배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과 끼를 생각하고 자신이 결정하는 미래를 일궈갈 ‘꿈의 디자이너’로 양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 “언제 밥이나 한번 합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말을 한두 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말을 하는 쪽에서는 이 말의 친화적 효능을 상당히 믿는 눈치이다. 그러니까 이 인사법이 이처럼 널리 만연되어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듣는 쪽에서는 이 말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저 말로만 던져 보는 립 서비스(lip service) 정도의 관심일 뿐, 실제로 밥을 먹자고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말처럼 맥 빠지는 거짓말이 없다고 한다. 이를테면 ‘빈말 인사’라는 것이다. 서로가 그렇게 되지 않을 줄 다 알면서 주고받는 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어떤 영어 신문의 칼럼 (editorial)에서 보았는데, 미국인들도 친밀해지려는 의도를 이런 표현으로 한다고 한다. “Let’s have lunch someday” 하고 당장이라도 같이 밥 먹을 듯 말해도, 그 someday는 언제일지 모르는 someday일 뿐이라는 것이다. “We’ll have to do lunch someday”라고 말하면 제법 강한 의지가 표명된 것 같지만, 이 경우도 실제로 함께 밥을 먹게 되는 장면에 이르게 되는 것을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친화적 매력을 주는 인사말로 다가오는 것은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특별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한번 봅시다”라고 하거나 “언제 한번 연락합시다”라고 하는 것에 비해서 ‘언제 한번 밥을 먹자’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서로 공유하게 되는 일, 즉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일이 암시하는 ‘상대와의 진한 일체감’, ‘상대에 대한 강력한 대화지향의 태도’가 각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 밥이나 한번 합시다”라는 인사말대로 실제 식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장면을 상정해 보면 이 말의 친화적 효과를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이 잘 지켜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이 인사말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상대가 믿음을 주는지 안 주는지 살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내 진정성만 강조하여 ‘언제 밥이나 한번 하자’는 인사를 오늘도 남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빈말로서도 일정한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인사말을 버리지 않고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요컨대 ‘밥’이 소통이나 대화에 어떤 활성 효과를 불어넣는 힘은 크고 중요하다. 그런 뜻에서 밥의 힘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 둘째 인문학적 물음으로 바꾸어 보자. ‘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산다. 우리들의 생물학적 삶을 담보하는 ‘밥’의 가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니, 그 이상의 가치로 밥은 하나의 이데아를 이룬다. 밥은 소중하다. 배가 고플 때는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소중하고, 배가 부를 때에 밥에 관해서 명상을 해 보아도, 밥은 나의 욕구와 상관없이 소중하다. 이런 인식은 인간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과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이 먹을 것(밥) 가지고서 장난치면, 철이 나지 않았다고, 철딱서니 없는 짓이라고 야단을 쳤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을 웃긴답시고 출연자로 하여금 밥에 얼굴을 처박게 하거나, 밥으로 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르신들은 혀를 찬다. 그뿐인가. 밥은 먹거리 그 이상의 가치, 영양 효과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이렇게 믿었다. 밥을 남겨서 버리게 하면 죽어서 아귀가 있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밥은 어쩔 수 없이 사회성을 띠기도 한다. 보릿고개 허기 기운으로 가물가물하던 그 가난하던 시절에 “밥 먹었니?”, “밥 먹었느냐?”, “진지 드셨습니까?” 하고 오로지 밥으로만 인사나 안부를 묻던 관습이 바로 그러하다. 밥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던 때의 인사말이다. 지금도 경상도 사투리로 “니, 밥 묵었나?” 하고 말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밥 안부를 인사로 앞세우던 그 배경에는 밥 못 먹은 사람에 대한 밥 대접을(비록 한 덩어리의 찬밥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사회적 실천 덕목으로 여기던 우리네 가치관이 스며있는 것이다. 이처럼 밥은 사회적 나눔의 의미를 강렬하게 표상하는 것이었다. 움치고 뛰어도 우리는 밥의 영토를 벗어날 수 없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밥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비루하게 여기는 것은 허영심의 일종이다. 밥은 삶의 굴레이기도 하지만, 밥이야말로 삶의 실존을 담보하는 매우 거룩한 조건이다. 누가 밥을 무시하랴. 그럴듯한 위엄도, 명예로운 의식(儀式)도, 강렬한 이념의 실천도, 그 어떤 거룩한 전쟁(聖戰)도, 그것을 막아내는 지혜로운 외교도, 아주 고상한 교육도, ‘밥’으로 지켜지는 삶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이렇게 밥의 총체성을 좀 너그럽고 따뜻하게 이해하려고 든다면, 즉 우리들 삶과 밥의 상관성을 좀 더 다채롭게 연결하고 이해하면서, 삶과 밥 사이를 상호 통섭의 생각으로 다가가면,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하는 이분법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전자 안에 후자가 들어 있고, 후자 안에 전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의 결정적 경지란 무엇일까. 밥으로 소통을 삼고, 밥으로 감사를 느끼고, 밥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경지이어야 하리라. 그러기 위해서라도 밥을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셋째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선생님은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갓 스무 살의 총각 선생님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가난한 시골 농촌학교였는데,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마음에 품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진학률이 30% 정도 되었을까. 선생님은 가끔 저녁 무렵에 어린 제자들을 당신의 하숙집으로 불러서 저녁상을 차리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책도 읽어 주고, 역사 이야기도 해주고, 수학공부도 가르쳐 주며, 우리의 공부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이 여의치 않던 우리에게 실력을 길러 어떻게 해서든 중학교를 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는 공부도 공부지만 선생님과 함께 밥상에 앉아서 먹은 저녁 밥맛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하숙집 주인에게 별도의 부탁을 하여 어린 제자들의 밥상을 차리게 했을 것이다. 그 해 늦가을 선생님이 군대에 가던 날, 우리들 모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런 이별 경험은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PART VIEW] 대학시절 은사이던 K 교수님은 당신의 ‘문학’ 강의가 종강되는 날, 대학생 제자들을 학교 앞 음식점으로 불러서 밥 한 끼를 사주셨다. 우리는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을 드리며 그 밥을 먹었다. 선생과 제자 사이에 놓인 밥이란 무엇인가. 그 밥을 매개로 사제가 서로 자유로운 인격으로 친화하여 무언가를 나누게 하는 것이다. 훗날 제자들의 마음에 흘러갈 풍경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선생님에 대한 그 친숙함이란 얼마나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그날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자유로움은 우리들의 자존을 저만큼 고양시켰다. 나도 선생 된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선배 교수 중에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노모에게 드릴 용돈과 제자들에게 밥 사줄 돈은 내 벌이에서 미리 떼어 놓아야 한다. 내가 아껴 쓰고 남으면 그때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될 것 같지만, 이 두 가지 일은 그렇게 해서는 좀체 이뤄지기 어렵다.” 얼마나 아름다운 실천의 지혜가 담긴 말인지. 제자에게 대접한 한 그릇의 밥은 나중에 열 그릇도 넘게 나에게 돌아온다. 제자에게 열 그릇의 밥을 되돌려 대접받았다는 뜻이 아님은 누구나 이해하리라. 제자를 위해 베푸는 밥 한 그릇, 그것이 스승과 제자의 일생을 아름다운 소통으로 묶어 주는 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년의 스승과 장년의 제자가, 가르치고 배웠던 세월을 까마득히 뛰어넘어, 밥상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생 전체로 보면, 이렇게 세월을 더해가며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제자는 오로지 스승의 복이다. 그 복을 감사히 여기는 스승은 제자에겐들 복이 아니 될 수 없다. 전통사회에서와는 다른 현대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사제 모델을 이렇게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밥의 힘은 이래저래 위대하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큰 도전은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 급감이다. 세계 최저 합계출산률로 연간 신생아 수는 40만 명대로 떨어졌고, 이 추세대로라면 2060년에는 약 20만 명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읍·면지역, 농·산·어촌 지역의 출생아 수는 아주 적어 지역 생활 및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 최근에는 도시에서도 도심 공동화 및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소규모학교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소규모학교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출생아 수 급감에 있으나, 인구 유출과 전출생 증가, 관할 경계지역 학생들의 학교선택권 제한, 학구 설정의 경직성, 민선 교육감들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소규모학교 유지 정책, 지역주민과 동창회의 학교 통폐합 반대, 학제와 교원양성 운용제의 불일치 등 인위적인 요소도 적지 않다. 2013년 우리나라 초·중·고 학교 수는 11,408개인데, 전교생 60명 이하 초등학교는 1,200개교, 100명 이하 중등학교는 700개가 넘는다. 지난해 전국 6,203개 초등학교 가운데 입학생이 1명도 없는 학교는 121곳이었다. 초등학생 1인당 연간교육비를 비교해보면 서울의 경우 508.2만 원인데 반해 소규모학교가 많은 전라남도의 경우에는 874.2만 원이다. 학생 수가 적을수록 학교시설 유지비, 교원 인건비 등의 지출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소규모학교 정책, 근본적 인식 전환과 대책 마련 필요 각 학교 급의 20% 정도는 학교를 꾸려가기에 규모가 너무 작다. 소집단 협동수업이 중요한 교과수업은 학급당 학생 수가 결정적이고, 대집단 협동학습이 중요한 교과외 활동(단체행사활동, 예체능활동, 체험활동 등)은 학년당·학교당 학생 수가 적정 규모가 되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 특히 의무교육 시기에 해당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공통필수 교육과정을 적용받는 시기로, 이들 기초기본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교의 시설과 설비가 완비되어야 하고, 교사 수급이 원활해야 하며, 교육과정 운영이 충실해야 한다. 기초기본교육은 누구나 차별 없이 균등하게 교육 복지적으로 책임 운영되어야 한다. 도서지역은 학생이 한 명만 있더라도 교사를 파견해 이를 뒷받침해야 하지만, 육지로 연결된 학교는 근본적으로 소규모학교가 없어야 한다. 특히 진학과 직업 등 진로별 교육을 하는 고교는 학생들의 장거리 통학이나 기숙사 운영이 가능하므로 소규모학교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학생 수용과 적절한 학습기회 제공에 유념해야할 것이다. 소규모학교에 대한 정부정책은 1982년 이후 상당기간 동안 학생 수 감소, 분교장 격하, 재정지원과 통폐합을 통한 적정규모 학교 육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됐지만, 최근 들어 정부는 연중돌봄학교, 전원학교, 기숙형고교, 통합운영학교 등 교육 복지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소규모학교 살리기 운동이나 작은 학교 희망 찾기, 혁신학교 지정 등으로 극히 일부 학교는 활력을 되찾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소규모학교 정책에 대한 정부와 교육계의 보다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규모학교의 대안, 마을학교와 기본학교 취학 전 3년과 초·중학교 9년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일관교육을 지향하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6-3-3제의 학제, 6-6제의 교사 양성 운용제, 9-3제의 의무교육제 등 기본교육제도 간 불일치 상황을 끝내야 한다. 어느 나라가 국가의 기본교육제도를 이렇게 서로 어긋나게 운영하도록 방치하면서 교육이 잘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소규모학교가 힘든 것은 이런 기본교육제도 자체가 잘못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의무교육, 무상교육을 확장하면서 진작 바꾸었어야 할 불합리한 제도가 지속되고 있다. 결국 소규모학교를 개선하려면 기본적으로 학제 등 학생수용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중, 중고, 초중고, 유초중고 등의 통합운영학교는 학생의 발달단계나 교육과정의 계열상 상당히 어긋난 정책이다. 가령 초중통합은 학생발달상, 중고통합은 교육과정상 잘못된 이종결합이다. 급성장기에 어린이와 사춘기 학생을 한 울타리에 두는 것이 잘못이고, 공통필수 교육과정기와 진로별 상이선택 교육과정기를 한 울타리 내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무모하다. 결국 소규모학교 문제는 육지로 연결된 학교들에서 취학 전 3년과 초중학교 9년, 총 12년에 걸쳐 학생들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행 초등학교 6년제가 아니라, 취학 전 3년의 누리과정을 공교육화하면서 초등 저학년 3년과 합쳐서 6년제 ‘마을학교’를 새로이 도입 육성해야 한다. 마을학교는 멀리 통학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6년제 작은 학교, 기초학교를 말한다. 부모가 취학을 늦춘 어린이들에게는 4~5년제 학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학교는 30명이어도 괜찮다. 학교가 수용하는 어린이들의 발달단계도 유사하다. 교육과정도 활동 중심, 미분화 통합 중심, 교과학습보다 돌봄 중심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규모를 보면 이해할 수 있듯이, 어느 누구도 마을학교를 소규모학교니까 폐지하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부 아이들을 위해서 마을간 통학용 미니버스를 교육청에서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런 작은 마을학교가 3~4개 모여서 조금 먼 거리를 통학할 수 있는 초등 고학년 3년과 중학교 3년을 수용하는 6년제 기본학교(basic school)를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은 읍지역이나 중소도시의 일부를 포함하는 생활권으로 큰 학구를 잘 규정하면 일정 규모를 항상 유지할 수 있다. 기본학교는 마을학교와 달리 학년단위, 학교단위 단체 활동이 늘어나므로 규모가 더 중요해진다. 9학년 기본학교 졸업까지는 생활인, 교양인, 상식인 육성에 집중해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자유학기제 같은 취지의 교육과정의 획기적 개선도 필요하다.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올 마을학교[PART VIEW] 취학 전 3년과 초등 3년의 6년제 작은 마을학교, 초등 고학년 3년과 중학 3년의 6년제 적정 규모 기본학교가 수립되면, 정부의 소규모학교의 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를 위해 중학교까지 학생들은 시·도간, 시·군 구간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로 취학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계지역 거주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학교선택권을 부여하여 최근거리 취학이 가능하도록 해야 소규모학교도 줄어든다. 이런 학교제도의 도입은 교육공동체의 분열을 낳고 있는 소규모학교 통폐합정책을 개선하고, 취학전 교육을 교육복지 차원에서 공교육화하여 그 질을 개선하며, 국가의 기본교육제도간 불합치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마을학교 개념 도입은 산업사회 대규모 공장식 대량 획일 생산모델인 프러시안 학교체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프러시안 학교체제는 클수록 효율이 높다고 보지만, 마을학교는 그렇지 않다. 마을학교는 학생 수도 적지만 교실, 각종 시설과 설비, 운동장, 체육관 등이 작고 아기자기해도 된다. 이를 위한 새로운 학교건축모델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민간에 맡기지 말고 교육복지 차원에서 취학 전 3년의 공교육화를 서둘러 마을학교로 흡수해야 한다. 취학전 교육의 공교육화는 계층 간 교육출발점 격차를 줄이는 데 첫걸음이 된다. 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은 가까운 집에서 부모님의 돌봄을 받고 자연생태친화적 체험을 할 수 있으며, 또래들과 평화롭게 어울리며 생애 첫 공동체를 왕따 없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학교에서는 아이들의 활동성, 운동성을 존중하고 자연 속의 직접경험을 통해 오감을 발달시키도록 복지형 교육과정의 혁신이 요청된다. ‘넘나들이형’ 교사양성제도로의 전환 절실 무엇보다 제도적으로 교사양성제도를 일관교육이 가능하도록 넘나들이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취학 전과 초등 저학년,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를 넘나들면서 가르치는 두 가지의 6년제 교사자격증제를 신설 도입해야 학교급 간·학년 간 연결이 원활하게 된다. 교원대나 이화여대 등에서는 이런 자격증제를 당장 도입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교사들은 농산어촌 소규모학교 운영에 단비가 될 것이다. 마을학교는 교장공모제, 교사초빙제 등을 활용하여 뜻있는 교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학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감, 교장을 모두 배치할 필요 없이 수석교사, 교감, 교장 중 한 사람이 학교를 책임지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이런 학교는 지역주민들의 자치학교로 뜻있는 교사들이 오래 머물도록 하고, 오직 학생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각종 공문 작성 등 잡무에서 교사들이 자유롭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을학교나 그 다음 단계인 기본학교가 성공적인 학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학교구성원의 자구적 노력에 더해 정부나 지자체는 전원학교, 온종일돌봄학교, 공동체학교, 혁신학교 등에 추가적인 행·재정적 지원, 인적?물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소규모학교 문제를 새로이 꾸리는 거점형·복지형 마을학교로 접근할 때 이 문제는 해결 가능성이 보인다.
나는 작은 농촌학교에 근무한다. 2012년 3월, 폐교 위기에 처해있던 학교였는데 불과 2년 사이에 학생 수가 34명에서 7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아이가 친구 때문에 많이 괴로워하여 전학을 시켜야 될지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학교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학부모들은 감사해한다. 지역사회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지난 해 폭력 없는 학교로 선정되었다. 학생들이 몰려오는 이유 중 하나이다. 교사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며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 진심어린 상담을 통해 신뢰를 쌓고, 생활지도와 인성교육을 지속적으로 함께 해나가다 보면, 학부모와의 관계도 두터워지고 학생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학교에서의 교사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책임감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교사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 화장실 갈 틈도 없는 소규모학교 교사의 열악한 현실 일반적으로 소규모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교사들이 시간 여유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규모학교라고 해서 일이 종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서 개별 교사에게 주어지는 평균 업무량은 학교의 규모에 반비례해 많아진다. 업무량이 방대한 방과후학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대규모학교에서는 돌봄교실, 강사 관리 등 영역을 나눠서 여러 교사가 업무를 분담한다. 그러나 전체 교사 수가 적은 소규모학교에서는 방과후학교 업무 외에 다른 업무들이 더 추가된다. 대규모학교 교사 5~6명이 담당할 일을 소규모학교에서는 한 명의 교사가 맡아서 처리하다보니 언제나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 아침에 출근하여 업무포털에 접속하면 결재 대기, 공람 공문이 나를 기다린다. 학생들이 통학버스에서 내릴 시간, 운동장으로 마중을 나가면 바람처럼 달려와 품에 와락 안기는 아이들을 보며 ‘쉬는 시간에 함께 놀아줘야지’ 다짐해보지만 산재한 일들이 허락하지 않는다. 일기장, 과제물을 꼼꼼히 읽어보고 칭찬과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는 일만 하는데도 쉬는 시간 10분이 쏜살같이 가버린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마음에 수업에 몰입하고 나면, 4교시가 끝난 후엔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듯하다. 점심시간이면 편식이 심한 학생들 급식 지도하느라 밥맛도 제대로 못 느끼고 급하게 먹을 때가 많다. 방과 후 학급업무를 비롯한 각종 업무와 공문처리를 하느라 퇴근시각을 지켜본 날이 거의 없다. 교사가 학생에게 몰입할 수 있어야 학교가 산다 [PART VIEW] 이것이 소규모학교 교사의 현실이다. 학부모들은 공문서 작성과 각종 업무처리에 온갖 에너지를 다 써버려, 정작 중요한 수업의 질은 저하되고 있는 소규모학교의 교육환경을 알고 있을까? 만약 알게 된다면 자녀를 소규모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교사들은 업무에 대한 부담 때문에 소규모학교에 부임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나 역시 50학급의 대규모학교에 근무할 때는 업무가 적어서 수업과 생활지도에 몰입할 수 있었고, 방과 후에도 학력이 낮은 학생들의 학습지도와 상담으로 뜻 깊은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작은 학교에 근무하니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을 만큼 분주한 일상이 계속되어 학생들과 마음을 나눌 겨를이 없다. 교사가 학생에게 몰입할 수 있고, 수업준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교육환경이 조성되어야 학생이 살고 학교가 산다. 소규모학교일수록 교사의 업무가 경감되어야 학생들의 학력향상과 생활지도, 인성교육에 전념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선 학교에 연차적으로 배치될 계획인 교무행정사는 대규모학교가 아니라 소규모학교부터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들이 잡무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수업과 생활지도에 몰입할 수 있다면,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많은 학교교육 관련 문제는 쉬이 해결될 것이다. 아이들이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머무르는 교실을 둥지처럼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끼면서 행복해한다면,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학부모 역시 아무 걱정 없이 아이를 선생님께 맡긴 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다면 통학시간이 다소 길고 불편하더라도 그 학교에 보내고 싶을 것이다. 야생화와 수목, 초록잔디로 어우러진 농?산?어촌 작은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며 행복물결에 가슴 출렁이는 해맑은 동심을 그려본다. 교정 여기저기에 움트는 사랑의 싹이 소규모학교를 살리는 숨이 되고, 노래가 되어 방황하는 학생들의 영혼을 안식케 하는 둥지로 자리매김하길 빌어본다.
매동초의 2014년 현재 전체 학생 수는 263명이다. 총 14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당 평균 학생 수는 18.7명이다.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전국 초등학교 평균 학급당 학생 수 22.8명에 비해 아주 적은 숫자다. 또한 1학년(3학급)을 제외한 전 학년은 두 학급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교직원 수도 45명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학교에 비해 상당히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은 것은 굉장한 장점입니다. 교사 수가 적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교사의 마인드가 바뀌면 오히려 더 가족처럼 뭉치기 쉽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를 잘 살릴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김휘경 교장은 소규모학교가 갖는 장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전했다. 모두가 가족 같은 지역·학부모·학교 공동체 매동초는 소규모학교의 장점을 살리되 어려운 부분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 중에서도 특수학급 학생들을 포함한 전교생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참여하는 국악동아리 활동은 매동초의 자랑으로 꼽힌다. 1·2학년은 택견이나 소고를, 3~6학년은 가야금, 판소리 등 국악 관련 8개 종목 중 희망하는 분야를 정해 한 해 총 20시간 동안 배운다. 갈고 닦은 실력은 가을 발표회 때 학부모와 외부손님을 초청해 선보인다. 작년에는 문화예술교육 영역 우수학교로 선정돼 교육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국악동아리 운영에는 종로구청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종로구 문화교육지원사업에 채택돼 꾸려나갈 수 있었다. 교사 수가 적은 탓에 외부의 지원 없이는 프로그램 운영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매동초에서는 학부모 공동체의 역할도 크게 두드러진다. 다른 학교에 비해 ‘아버지회’의 활약이 크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매년 근로자의 날에 학교 뒤 인왕산에서 개최되는 ‘매동 산행대회’에서 아버지들은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진다. 매동초 아이들이 1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인 ‘매동캠프’ 또한 아버지들이 주축이 돼 이끌어 온 프로그램이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1박 2일 동안 캠핑을 하는데, 세부 프로그램 중 ‘담력훈련’ 때는 아버지들이 직접 귀신 분장을 하고 교실에 숨어 아이들을 맞이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몹시 즐거워하는 행사다. 어머니들 또한 학교가 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예절교육을 담당하는 명예교사로 활동 중이다. 매동초는 2012년에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예절실을 설치했다. 어머니들은 전통예절 교육기관인 예지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아이들에게 직접 한복 입는 법, 절하는 법, 차 대접하는 법 등의 예절을 가르친다. 첫 해에 6시간 운영하던 것을 반응이 좋아 현재는 10시간으로 늘렸다. 어머니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전통예절 교재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학부모들의 참여도가 높은 이유는 학생 수가 적은 만큼 모두가 ‘내 아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는 덕분이다. 그 결과 ‘2013년 학부모 학교 참여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도 받았다. 엄마들의 입소문 타고 도심 속 소규모학교로 자리매김 김 교장은 프로그램 운영에 지역사회, 학부모 공동체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결국 교사들의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외부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것은 교사들입니다. 학생들을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죠.” 지역, 학부모, 학교 모두 아이들에게 내실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역시 소규모학교만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게다가 매동초 근처 지역 재개발로 인해 학생 수가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매동초의 학생 수는 작년에 비해 16명이 늘었다. 매동초의 노력이 엄마들의 ‘입소문’을 탄 결과다. 매동초는 공립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사립학교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성이 높다. 그만큼 교육의 질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모든 일의 목적으로 두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에는 특별프로그램으로 영어, 과학, 체육 교과 무료강좌를 하루 두 시간씩 운영했다. 강사비는 종로구청 지원을 받았다. 기존에 운영하던 수익자 부담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방학 동안에도 하루 4시간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또한 매동초에서는 방학식, 개학식에도 급식을 제공한다. 소수일지라도 학교에서 밥을 주지 않으면 굶을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서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매동초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같은 소규모학교라고 해도 개별 학교가 처한 상황은 다 다릅니다. 도시와 농촌의 환경이 다르고 학교마다 지역·계층적 특성과 문화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를 면밀히 고려해야 합니다. 단순히 타학교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서는 효과가 없어요. 각각의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적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효과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김 교장의 소규모학교 운영 철학이자 매동초가 작지만 내실 있는 학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