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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여고생들의 아침 교실은 늘 시끌벅적하다. 기밀시험이 끝난 후론 더하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가방을 책상 위에 던져놓곤 난로가로 모여든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열여덟의 숙녀들은 금세 참새처럼 종알댄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밤새 숨겨둔 언어들을 쏟아낸다. “야, 들었니? ○○이 남친하고 깨졌데.” “뭐야, 엊그제 100일 됐다고 자랑하고 다니던데… 가시나 자랑깨나 하고 다니더만….” “아침 등교하는데 ○○ 없데. 으이구 그 눈초리. 보기만 해도 몸이 오싹하다 오싹해.” “맞아. 걸릴 것 없는데도 뭐가 꼭 꼬투리 잡아 ‘너 이리와!’ 할 것 같아.” “야, 말도 말아. 난 어제 단추 하나 풀어졌다고 걸렸는데 가슴이 턱턱 막히고 오금이 저리더라. 그리고 꼭 이런다. 다 너희들 위해서라고. 말이나 말지.” “맞아 맞아. 왕재수야 정말!” “흐흐, 우리 담임 잘 삐지는 것 같지 않냐?” “삐지긴 한데 쪼깨 귀엽징. 콕 깨물어주고 싶을 때도 있어야. 깔깔깔.” “징그런 가시나. 늙은 남탱이 깨물어서 뭐하게. 나처럼 포동동 하면 모를까.” 아이들의 말은 직설적이다. 빙빙 돌려서 하지 않는다. 거칠기도 하고 때론 비어들이 섞여 조금 거북하기도 하지만 듣고 있노라면 은근히 재미도 있다. 물론 숨어서 지들끼리 하는 얘기엔 더욱 노골적인 표현들이 있지만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목소릴 죽인다. 또 하나, 요즘 얘들은 아침에 만나면 먼저 인사를 안 한다. 먼저 ‘얘들아, 안녕!’ 하면 마지못해 ‘안~녕하, 세요.’ 한다. 억지춘향이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인사를 하는 아이들이 예뻐 보인다. 왜? 안면 몰수하고 안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으이구, 속 터져’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이 선생한테 맞추는 시대가 아니라 선생이 아이들에게 맞추는 시대가 됐으니 말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점차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해마다 다르다. 1년 터울을 가진 아이들일지라도 생각하는 거 행동하는 거 말하는 거 엄청 차이가 난다. 그리고 예전처럼 후배들은 선배들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2학년은 1학년을, 3학년은 2학년을 무서워한다. 자기들은 착실한데 후배들은 그렇지 않다는 식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그랬어. 너희 1학년 때 니 선배들이 무섭다고 했어 임마!’ 하면 피시식 웃는 걸 볼 수 있다. 가끔 교실이 무너졌다는 소릴 한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들이라면 피부로 느끼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 무너진 교실, 아니 무너진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부딪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무너지고 엎어지고 하다 보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2007년 여성 교원 관리직 세부현황’을 발표하였다. 전체 여성 교원 비율은 지난해 65.8%에서 올해 66.9%로 1.1%포인트 올랐다. 전체 교원 30만2848명 가운데 20만2519명이 여성이다. 초등 교원의 72.8%, 중학 교원의 69.2%, 고교 교원의 48.7%를 여성이 차지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여성 교원 비율은 전체 교원의 3분의 2 이상이어서 여초(女超) 현상이 심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부모가 올린 다음과 같은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아들이 초등4학년인데요, 여자선생님반은 아예 체육을 안한답니다. 유일하게 남자선생님이 가르치는 반만 체육시간에 공도 차고 재미있게 논다며 이젠 자기도 제발 남자선생님한테 배웠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이다. 교총 설문결과 여교사의 58.5%가 여성화를 우려하고 있고 현장에서도 학생 생활지도, 교육활동 상 애로를 느끼는 게 사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스와스모어대학 경제학자인 토머스 S.디이 교수가 지난 1998년부터 2만명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분석해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발간한 논문에 의하면 남학생은 남자 교사에게, 여학생은 여자 교사에게 배울 때 학생들의 학습참여는 물론 학업성적도 상당히 올라간다고 하였다. 여성 교장과 교감 비율은 전체의 14.1%로 2003년 9.7%, 2005년 11.8%에서 해마다 증가했다. 초등학교에선 14.2%, 중학교에서 19%, 고교에서 5.5%의 교장 교감이 여성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여교사의 승진이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교육전문직 진출도 활발해졌다. 연구사의 30%와 연구관의 11.3%가 여성이다. 교육장의 8.3%가 여성이다. 앞으로 사회는 3F시대라고 한다. 감성(Feeling), 상상력(Fiction), 여성(Female)이다. 그 만큼 여성들이 더욱 활동하여야 하고 앞으로 여성들의 더 많은 역할에 따라 우리 나라가 4만불 달성이 더 당겨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학교의 경우 교장, 교감, 교원의 전부가 여성이라고 한다. 또 인사철만 되면 남자교사 모시기 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앞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남성교사들이 더 많이 배치되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겠다.
이번 대선에서 절반에 가까운 지지로 경제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는 경제가 살아나가기를 바라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운 것은 경제에서만 찾기보다는 우리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사회양극화가 심해지고 청년실업자가 많아 젊은 인재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하니 국력의 손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경제가 튼튼하게 성장하고 윤택한 나라살림을 꽃피우며 국민이 행복한 알찬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토양에 맞는 밑거름인 교육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밑거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좋은 경제는 이룰 수 없다. 훌륭한 농사꾼은 수확의 결실을 높이기 위해 먼저 좋은 토양을 조성한다. 경제를 살리려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밑거름인 교육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그 동안 흐트러진 우리교육의 맥을 정확히 짚어서 100년 대계의 밑그림을 그리고 30년 10년의 중 단기 계획을 구상한 다음 5년 임기 내에 튼튼한 기반을 조성한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우선순위를 정하여 하나하나 바로잡아 나가는 일을 하면서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을 병행해야만 그토록 바라던 성공한 경제대통령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정치, 행정, 사회, 복지, 환경, 어느 것 하나도 교육을 외면 한 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의사당에서 몸을 날려가면서 의장석을 점거하려는 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교권을 바로 세워주어야 아이들의 교육이 올바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학교를 맡기려는 무자격교장 공모제를 서두르고 교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가르치려는 의욕을 꺾어 놓은 현 상황으로는 이 나라의 교육은 희망을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교육을 바르게 세우는 크고 튼튼한 밑그림부터 그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교육대통령이 되겠다며 장밋빛 공약을 내걸어 놓고 교육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우리교육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교원들의 사기는 많이 저하되어 있어 안타깝다. 5년 임기 중에 교육부 수장의 임기가 평균 1년도 못가는 정책으로 교육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은 교육자들에게 맡기되 경제논리로 교육을 풀어나가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란다. 지금의 학생들이 자라서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이며 경제발전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보면 새 대통령께서는 경제에만 전력하기 보다는 경제가 활성화되는 밑거름인 교육에 먼저 투자하고 교육을 살리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을 모든 교육자들의 소박한 소망이라는 것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요즈음 학교현장은 뒤숭숭하다. 연말이 되어서도 아니고 인사 철이 다가와서도 아니다.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되면서 교육부의 조직개편이 아닌 발전적 해체방안이 심심찮게 거론되는데다가 교육부가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어서 불안하다는 것이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동안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장관도 부총리로 격상한 것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교육에 달렸다는 중요성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교육부가 너무 많은 권한을 쥐고 통제한다는 지적도 있어왔고 교육부의 조직이 비대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교육전문직인 장학사, 연구사, 장학관, 연구관의 수에 비해 일반직의 조직이 너무 늘어나면서 비대해 졌다고 생각한다. 교육계의 많은 사람들은 비대해진 교육부의 조직을 개편하여 군살을 뺄 필요는 있지만 국가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인재육성을 총괄하는 교육부를 없애려는 발상은 의무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며 국가존립의 기둥이 되는 민족의 정체성에 크나큰 손상이 올 수 있고 역사, 문화, 예술, 평생교육 등이 홀대를 받고 선진국대열에 다가가는 길이 점점 멀어질 것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중앙통제 형태로 비대해진 교육부의 군살을 빼는 조직 개편에는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교육부를 해체하여 흩트려 놓으면 국익에 도움보다는 해(害)가 많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 첫째, 초중등교육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완전 이양을 하면 민족의 정체성이 분산된다. 남북한을 합쳐도 미국의 한개 주보다도 작은 나라에서 평생을 살아갈 기본인성과 기초기본학력을 정착하고 민주시민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기초공사를 지방으로 완전히 넘기려는 것은 국가의 주춧돌을 수평이 어긋나게 놓으려는 것과 같기 때문에 선별하여 이양할 것은 하되 국가차원의 교육정책과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부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이다. 둘째, 평생직업교육을 과학기술부와 노동부로 이관하려는 발상은 기능면에서 보면 그럴 듯할 수도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면 교육과 관련이 없는 부서는 하나도 없다. 그러면 교과목별로 관련 있는 부서로 모두 찢어 벌린다면 교육은 그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고 이 나라의 백년대계인 교육은 실종되고 국가의 발전과 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두 번째 이유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대학이 국제 경쟁력에서 처지고 있는데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자기소속대학과 관련이 있는 업무를 과연 세계의 명문대학으로 육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협의회에 대한 감투싸움과 이해타산에 얽혀서 집안싸움으로 세월만 허비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에 반대한다. 넷째,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해 초중등교육과정과 교원정책업무를 맡게 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같은 정부조직이라도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교육과정과 교원정책업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 의문이 생긴다. 교육부 정책을 자문하는 기구로서는 존재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교육개혁을 위해 많은 위원회를 구성하여 일해 왔지만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낸 성공한 정부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다섯째,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남과 북이 통일이 되면 우리는 산산이 흩어진 교육조직으로 북한의 교육에 그대로 흡수되는 상황이 만약에 온다면 교육부를 해체한 우리나라의 위정자는 땅을 치며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통일을 대비한 원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가 가장중요하다고 강변하지만 경제도 결국은 교육이라는 토양과 좋은 씨앗이 근본이 되어야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지 교육의 근본 바탕을 흩트려 놓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차기 정부에서 명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며 국민과 교육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발전적이고 비전이 있는 현명한 교육부 조직개편 안(案)이 나오길 기대한다.
소규모학교 교감조차 없다면 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하루 업무 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이 가장 길다. 초등교사 고학년 담임들은 거의 매일 6교시의 수업을 해야 한다. 오후 4시가 되어야 학생들을 귀가시키고 조용한 교실에서 쉴 수 있다. 그러나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는 없다. 다음 날의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교재연구를 비롯해서 학습자료 준비 등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각종 공문에 의한 행정 업무 추진, 보고 공문서 작성, 각종 자료조사 및 실적보고 등 등 수업이외의 산적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시급을 요하는 업무 때문에 본연의 교수·학습 준비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학교의 2007년도에 접수된 공문은 무려 4426건이며 자체생산 문서는 4413건으로 거의 비슷하다. 하루 평균 20여 건의 공문을 접수하고 20여건의 문서를 생산한 셈이다. 업무를 처리하는 교직원은 일반 행정공무원 2명과 교원 18명이다. 전 교직원들이 하루 1건씩은 공문을 접수하고 생산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말이 1건이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공문에서부터 처리 시간이 3-4시간씩 걸리는 공문도 매우 많다. 우리학교는 13학급 규모이다. 5학급이하의 학교에 비하면 두 세배의 큰 규모이다. 5학급이하 소규모학교 교직원들은 우리학교에 비해 3배 정도의 행정업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긴급을 요하는 공문처리를 위해서는 본의 아니게 학생들을 자습시킬 수밖에 없다. 수업을 마친 뒤에도 교수·학습에 대한 사전 준비는 아예 생각지도 못할 때가 많다. 매일 공문처리 때문에 무척 힘들어한다. 농산어촌의 특성상 방과후에도 학생들을 돌보고, 부진학습을 보충해주고, 특기적성이나 취미생활 및 정서 순화 등을 위한 대화시간 놀이시간 등이 필요하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오직 공문처리에 매달려야 한다. 교감은 학교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한다. 물론 특별한 업무를 담당하면서 교사들의 업무를 덜어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시급을 요하는 공문처리를 담당자를 대신해서 처리하기도 한다. 담임교사들의 학습결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유기공문을 관리하면서 상급기관의 보고 요구에 충실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학급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 교감의 학교 전반적인 업무 처리 및 협조는 실로 많은 교사들에게 작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수업 결손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교감의 역할은 소규모학교일수록 더 크고 더 필요한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이제 5학급이하의 소규모학교에는 교감을 배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연 소규모학교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당국에 묻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농산어촌의 교육 황폐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고향을 등지는 현상이 늘어가고 있는데, 학교에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교감마저 배치하지 않는다면 어쩌자는 것인가! 대규모학교에 복수교감의 필요성보다 소규모학교의 교감 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백년대계인 학교교육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교육본연 외의 업무 때문에 교사들의 수업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 받지 않도록 교육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수 때 귀로 듣기만 하는 선생님들, 어떻게 하면기록까지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연수 발표자 요약본 배부 등여건을 마련하고중요사항을 메모하는선생님들의 문화풍토 조성을 요구하는 교장의 교육철학에 교감이 아이디어를 짜낸다. 학년말 바쁜 선생님들의 업무부담도 줄이고 발표자의 심적인 부담을 줄여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연수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교감은 교장과 선생님들의 윈윈(Win-Win)전략을 취해야 한다. 발표주제와 발표자명을 적고 아래 빈 메모 공간을 마련한 유인물이 바로 그것! 그리고 여분 필기도구(사진 참조)까지 준비하라고 담당부장에게 지시한다. 12월 28일(금) 13:30, 방학과 동시에 안성수덕원으로 1박2일 교직원 연수회를 떠났다. 첫 프로그램이 '2007 교육계획 평가 및 반성'이다. 120분 프로그램. 연수 시작 전, 소강당으로 가 보았다. 입구에 유인물과 필기도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교직원에게 친절을 베풀며 연수 발표를 경청하게만들고 기록하는 문화를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문득 떠오르는 말 한마디! "이래도 안 적을래?" (이렇게 했는데도 빈손으로 듣기만 할 터인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와, 무서운(?) 교감과 교장이다.
새 정부에 바란다. 왠지 낯설다.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 이게 더 어울린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동안 대통령의 의중대로 밀어붙이거나 오락가락 하는 정책을 많이 봐왔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이 얼마나 대단하면 당선자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먹고살기 힘들다, 일자리가 없다’는 게 국민들의 고충이다. 도덕적으로 흠집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흠집은 눈감아 줄 테니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 달라’는 국민들의 바람이 표심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가 다른 것은 제쳐두고 경제에 올인 할 확률이 높다. 경제만큼이나 중요한 게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교육이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경제와 하나의 선상에 놓고 보면 어울리지도 않는다. 교육은 과정이 중요해 눈에 보이는 결과를 잣대로 평가하거나 경제적인 가치를 환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교육은 경제적인 논리로 풀어갈 수 없다. 2007년 한 해를 정리하며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다. 분수를 모르는 탐욕과 도덕 불감증을 비꼰 말이다. 자승자박이라고 대통령 주변의 정치인들이 제 새끼줄로 제 목을 매며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게 했고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한 지식인들이 사람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갈 길은 먼데 난제가 가득해 길이 보이지 않는 형국인 산중수복(山重水複)도 후보로 뽑혔다. 현재 교육계가 처한 상황과 닮아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추락한 교권을 추스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상대후보와 경쟁을 해야 하기에 선거과정에 내건 공약은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밖에 없다. 공약(空約)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되기 전 백지상태에서 선거기간에 내건 공약(公約)들을 냉철히 분석해야 한다. 상대 후보의 공약도 검증해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정책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효과가 나타난다. 몇몇 입안자들의 말만 믿고 무작정 밀어붙이는 정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권력이나 여론을 앞세우는 정책도 혼란만 가중시킨다. 이것저것 일을 벌려놓기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교육발전에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정책을 찾아내고 분석해당사자들이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작심삼일이 되는 게 문제지만 해마다 새해 아침을 맞으면 각오를 새롭게 한다. 국가의 정책을 책임져야 하니 대통령 당선자의 각오는 남다를 것이다. 압도적으로 지지를 했으니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나 바람도 클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든 ‘처음처럼’하면 된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하면 크게 잘못될 것도 없다. 그런데 떠받드는 사람들 때문에 생각이 바뀌고 그 틈새로 오만과 독선, 아집과 편견이 자리 잡는 게 문제다. 훗날 권력의 무상함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잘못을 통감하고 후회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 같다. 대통령 당선자도 5년 후에는 누구에겐가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국민들로부터 잘잘못을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자리를 떠나는 날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한다. 공교육이 제자리를 찾게 하고 박수 받으며 떠나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바람이 이뤄지길 고대한다.
12월 말이 되면서 일선학교의 대부분이 방학에 들어가고 있다. 방학에 들어가기전 교사들은 마무리 작업과 새학기 준비작업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방학이 시작되면 학교가 차분해지고 새학기 준비를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어 새학기에는 더욱더 발전되고 창의적인 학교교육활동이 이어지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올해의 겨울방항은 다른 때보다 어수선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이미 학생지도가 통제불능이 되어가고 있는 상태이고,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중학생들까지도 교사를 폭행하고 두발단속에 반기를 들어 수업을 거부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제는 심각하게 '인권'과 '학생지도'라는 두 가지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인권과 학생지도 모두가 중요한 만큼 모두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새학기가 되면 어떤 상황으로 발전해갈지 염려스럽다. 방학을 맞이하고 있지만 결코 편하지 않은 이유이다. 외고의 입시문제유출, 수능등급제의 문제점 제기, 수능 복수정답인정 등이 연말이 다가오면서 터져나온 교육계의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가 터질때마다 재발방지라는 대책없는 대책을 내놓지만 일시적인 효과일뿐 제2, 제3의 문제가 터질 개연성은 충분히 잠재하고 있다. 특히 수능등급제 도입으로 일선고등학교에서는 진학지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 한창 대학입시철인데, 방학에 들어가고 있지만 역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새정부의 탄생에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명박 당선자가 교원의 방학중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전면 계약직으로 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교원들의 불안감은 더해만 가고 있다. 물론 정확한 근거제시는 되지 않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우기 인수위원회에서 교육분야 간사를 이주호의원이 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더해가고 있다. 그동안 이주호의원이 내놓은 각종 교육정책들이 현실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교육부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한다. 지방교육자치를 위해서는 어느정도 개편방향이 맞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꺼번에 많은 것을 각 시,도교육청으로 권한을 넘기게 되면 국가차원의 교육은 이루어지기 어렵게 된다. 또한 권한이양을 교육부의 해체수준까지 몰고 가는 것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육행정기관이 교육부임을 감안한다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교육부에서 해야 할 일과 각 시,도교육청에서 해야할 일의 구분을 명확히 한 후에 이루어져야 할 문제들이다. 교육부의 직제개편을 정부의 작은정부실현에 묶어서 대폭 축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아무런 사전연구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옳지 않은 방향이다. 이런전런 여러가지 이유로 일선학교는 방학에 들어가고는 있지만 그 어느해보다 어수선하다. 특히 교원의 신분을 위협할 수 있는 소문까기 합세하면서 더욱더 어수선한 상태이다. 현실적인 대안없이 이루어지는 교육정책의 개선방향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교사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 후에 개혁을 하거나 그래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무런 여건조성없이 행동의 제약만 증폭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현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의 추진을 기대해 본다.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e Seagull) 1970년대 중후반, 서울 거리 곳곳에는 책을 파는 노점상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노점상? 이렇게 말하면 제법 좌판을 갖추고 리어카라도 미는 형편의 책판매상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니 급히 정정한다. 널따란 비닐이나 신문지 조각들을 대강 펼쳐서 그 위에 책을 얹어놓고 파는, 그저 꾀죄죄한 행색의 보따리 책장수였다고…. 하지만 필자는 거기서 종종 근사한 세계명작들을 만나곤 했다. 톨스토이의 부활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입센의 인형의 집, 헷세의 데미안, 여기에 모파상의 목걸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까지, 세계 명작들이 카바이드 불빛에 일렁거리던 길바닥은 보통 사람들의 어엿한 서점이요, 도서관이었다. 조악한 종이에 엉터리 활자들로 어지러운 싸구려 책들이었지만 그들은 늘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들던 세계 명작들이었고, 바로 거기서 필자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발견했다.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의 비상(飛上) 갈매기의 꿈의 원제는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Jonathan Livingston Seagull). 번역 제목이 원래 제목보다 더 좋은 경우다. 어느 특별한 갈매기의 이름을 ‘내세우는 단순함’보다는 ‘꿈’이라는 작품 주제를 ‘드러내는 함축성’이 더 근사하게 다가오니까. 맨 처음 우리말로 옮긴이의 작품 해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이 경우는 바흐라 부르지 않고 바크라 하는지 궁금하다). 당시 마흔 정도에 불과한 나이에 갈매기의 꿈을 썼다니 놀랍다. 더구나 무려 열여덟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한 작품이 1970년에 나온 지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의 길바닥 세계 명작 Top 10에 끼어들다니! 당시에는 세계화의 물결도 없었는데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은 어떻게 날아 왔으며, 어떻게 갈매기의 꿈으로 금세 우리나라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갈매기의 꿈은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이라는 갈매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진정한 삶의 의미와 세상 현실에 대해 깊이 파고든 명저이다. 간명하게 시작하면서도 심오하게 마무리되며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와 가치, 개인과 공동체, 인습과 혁신 등의 주제를 찾아낼 수 있는 작품이다. 중간 중간에 갈매기의 다양한 사진들을 넣어 대단히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다가오는 얇은 책인 것이다. 갈매기의 꿈은 갈매기를 의인화한 알레고리의 세계가 기본 배경이다. 바로 여기서 주인공은 그 자신, 기존의 인습에 적응하며 생존하는 갈매기들, 나아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한 갈매기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인간 세상의 구체적인 쟁점이나 현안들을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가장 근본적인 갈등의 단짝들인 안주와 변혁, 개인과 사회, 현실과 초월 등의 주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대표하는 문장은 단 하나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이는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노인과 바다의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러브 스토리의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야”에 맞먹는 정도다. 이렇게 작품 전체를 관통하여 독자들의 머릿속에 남는 궁극의 문장, 이런 문장을 남길 수 있다면…. 모든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을 때 늘 품는 소망이 틀림없다. 물론 여기서 ‘새’는 불가(佛家)의 오랜 화두인 “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내지?”나 데미안의 빛나는 대목, 즉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와 다르다. 물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식의 어쭙잖은 ‘신자유주의에 중독된 새’와도 분명 격이 다르다. 해변으로부터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고기잡이 배 한 척이 먹이를 가득 던져 주며 물고기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아침먹이를 찾고 있던 갈매기 떼에게도 그 소식이 바로 전해졌고, 그러자 수천 마리의 갈매기들이 몸을 던져 한 조각의 먹이를 얻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그렇게 또 하루의 분주한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9쪽) 갈매기의 꿈의 첫머리는 늘 일용한 양식을 위하여 생존 다툼을 반복하는 지루한 현실에서 시작한다. 스스로 먹이를 찾아내지 못하고 그저 외부의 손길에 기생하여 근근하게 연명하는 불확실한 세계. 그렇다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근사하게 살 수 있나?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실과 세계는 요즘 식의 표현대로라면 ‘블루 오션’이 아니라 ‘레드 오션’(red ocean), 즉 무한 경쟁이 벌어지지만 결코 모든 구성원들이 만족할 수 없는 차원의 한계 상황 그 자체다. 하지만 갈매기 조나단은 자신들의 또래 집단과 전혀 다르다. 다르기에 그는 손가락질 받지만, 동시에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다. 그는 ‘저 너머’의 세상에서 ‘혼자서 나는 연습’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존재의 진정한 독립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고기잡이배와 해변 저 너머에서,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혼자서 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30미터 상공에서 물갈퀴 달린 두 발을 구부려 몸에 바짝 붙이고, 부리를 쳐든 채, 두 날개를 가지고 고통스럽고 힘든 선회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선회는 곧 속도를 줄여 천천히 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바람이 그의 얼굴에서 속삭이며 불어올 때까지, 바다가 그의 아래에서 고요히 누워 있을 때까지 천천히 날았다. 그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호흡을 멈추고 한 번, 또 한 번, 조금이라도 더 선회하려고 애를 썼다.(9쪽) 갈매기의 꿈의 첫대목은 이렇듯 갈매기 조나단이 다른 갈매기들과 달리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찾고자 열심히 비행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에게 비행이란 삶의 존재 이유다. 이는 대부분의 갈매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자세이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곧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부터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갈매기에게는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무엇보다도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10쪽) 갈매기의 꿈은 현실의 완벽한 알레고리다. 존재와 현실의 허무와 무의미를 극복하며 진정한 자신의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는 주인공의 노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알레고리를 읽으며 세상을 떠올릴 수 있도록 저자는 의인화를 기본 전략으로 삼는다. 갈매기 조나단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자기 극복과 해방, 실현에 두면서 남들과 다른 비행(飛行)에 몰두하는 대목은 갈매기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인간 이야기임을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포기의 순간 내면의 소리를 듣다 그 결과 이 책의 초반부는 끊임없이 기존의 갈매기 집단과 이제 막 비행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갈매기 조나단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러나’라는 부사가 자주 끼어든다. 이는 집단의 안주에 저항하는 개인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실제로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그러나’와 같은 역접의 부사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이미 어휘 차원이 아니라 존재, 즉 갈매기 조나단 차원으로 변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신에 단락 전체가 갈매기 조나단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주는 식으로 비중이 현격하게 강화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갈매기 조나단의 노력은 여느 갈매기들에게서 동의와 호응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부모에게서조차 공감과 지원을 받지 못한다. 조나단의 아버지가 하는 말은 요즘의 평범한 부모들과 다를 바 없다. 그의 아버지가 타이르듯 말했다. “겨울이 멀지 않았다. 고기잡이하는 배들도 거의 없어질 것이고, 수면에서 놀던 물고기들도 깊은 데서 헤엄칠 것이다. 만일 네가 꼭 배우고자 한다면, 먼저 먹이를 구하는 법부터 배우거라. 물론 네가 원하는 비행 기술도 다 좋지만, 나는 것만으론 먹고 살 수가 없다는 걸 너도 알 것이다. 네가 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먹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11~12쪽) 조나단은 부모와 기성의 요구에 순응하고자 나름대로 애쓴다. 그 역시 자신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운명이나 신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보통 사람들을 뜻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 난 한 마리의 갈매기일 뿐이다. 난 나의 본성에 의해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고민하는 모습은 평범한 갈매기, 아니 보통 사람의 인간적인 몸부림을 잘 보여준다. 조나단은 반항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로 그 후 며칠 동안 다른 갈매기들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갈매기 떼와 더불어 선창가와 고기잡이 배 주위에서 꽥꽥거리고 다투면서 물고기와 빵조각들 위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는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그렇게 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무의미한 짓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힘들게 획득한 멸치를 자기를 추격하는 굶주린 늙은 갈매기에게 일부러 떨어뜨려 주었다. “이런 시간을 모두 나는 연습을 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울 것이 너무도 많은데!”(12쪽) 다행히 갈매기 조나단은 마지막 안주의 순간에 자신의 내면 깊숙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안주하는 대신에 스스로의 한계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다양하게 시도를 거듭하고, 다시 그 이상으로 거듭거듭 태어나며 성장한다.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이러한 경험을 줄 수 있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거듭 나는 모습들로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거듭 나게 돕기’는 모든 교사들이 늘 마음에 두어야 할 소명이 아닐까. “이제 삶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게 되었는가! 하찮은 먹이를 얻기 위해 끝없이 고기잡이배와 해변 사이를 단조롭게 오가는 대신, 삶의 이유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우리 자신이 탁월하고 지성적이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존재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나는 법을 배울 수가 있다!”(32쪽) 마침내 갈매기 조나단은 스스로의 벽을 깬다. 하지만 조나단은 여기서 만족하는 대신에 다른 갈매기들에게 자신이 발견하고 깨달은 것들을 나눠주고자 한다.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워지는 것! 갈매기 조나단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전해 주려 애쓰는 덕목들이다. 늘 그렇듯이, 기성의 집단은 그러한 조나단에게 격리와 추방을 싸늘하게 선사한다. 그의 노력과 성과는 모든 갈매기들의 따뜻한 안주를 방해하는 위험한 도전으로 취급 받는다. 새로운 시도를 통한 노력의 빛나는 성취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 사회, 주변 사람들의 세태를 잘 보여준다. 이제 조나단은 ‘육체뿐만 아니라 똑같은 내적 통제력을 갖고서’, 짙은 바다 안개 너머의 ‘눈부시게 맑은 하늘로’, ‘해안에서 멀리 들어간 내륙까지 날아갈 줄도 알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맛있는 곤충들을 잡아먹는 법도 터득했다.’ 그는 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치러야 했던 대가를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조나단 시걸은 지루함과 두려움과 분노가 갈매기의 삶을 그토록 짧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자신의 생각에서 사라지게 함으로써 참으로 길고 훌륭한 삶을 살았다.(44쪽) 현실의 한계와 초월의 방법 모색 조나단의 성취는 완벽하다. 하지만 또한 조나단의 성취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가장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조나단이 바라던 바는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다. 그는 갈매기 전체를 위해 소망했을 뿐 자신만을 위해서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조나단을 찾아온 두 마리의 갈매기들은 조나단과 함께 완벽하게 비행함으로써 그들이 조나단과 같은 형제들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힘 있고 부드럽게 말한다. “우리는 너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려고 왔어. 너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바로 이 순간부터 갈매기의 꿈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든다. 그전까지의 작품 공간이 단지 알레고리를 배경으로 인간 사회를 그려내었다면 이제 작가는 알레고리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알레고리는 현실을 대단히 그럴듯하게 그려낸다. 이솝 우화를 읽으면서 인간 세상의 요지경과 인물 군상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알레고리의 힘이다. ‘신포도’를 놓고 중얼거리는 여우를 그리면서 곧바로 얄팍한 욕망에 사로잡히고 다시 어쩔 수 없이 버리는 인간을 근사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알레고리는 현실을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알레고리의 한계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알레고리로 그려진 세계가 아무리 근사해도 구체적인 현실 그 자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여우와 신포도’는 실제가 아니라 만들어진 실재, 가상의 인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실에 실존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실존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훌륭한 알레고리는 현실을 매우 그럴듯하게 보여주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갈매기 조나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피워 올린 허구의 꽃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든 알레고리는 현실을 적극 지향하지만 동시에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작가 리처드 바크는 이러한 알레고리의 한계를 풀어내고자 애쓴다. 작품의 현실이 기존의 인간 세상과 근본적으로 일치할 수 없는 한계를 관념과 영혼의 초월적 차원으로 바꿔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는 작품 속에서 ‘천국’과 ‘관념’, ‘영혼’ 등의 어휘로 나타난다. 현실의 구속을 풀어내고자 종교를 꿈꾸는 사람들처럼 작가 역시 알레고리에 갇힌 갈매기 조나단에게 천국과 관념, 영혼의 세계를 부여하는 것이다. 조나단에게서 발견한 교사의 모습 이는 종교적 시도와 같은 맥락으로서 찬반의 격렬한 논쟁을 낳을 수 있는 지점이다. 갈매기의 꿈이 발표되자 성직자들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의 죄로 가득한 작품’이다”라고 비난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서가 아닌 다른 작품이 천국과 종교를 추구하면 이단인가 보다. 독자들이 이 작품에 뜨겁게 반응한 것은 작가와 같은 종교적 구원의 시도였는데…. 지상의 행복과 달리 천상의 행복은 비할 나위 없는 ‘너머’의 차원이다. 천국의 삶은 어떠한가? 갈매기 조나단의 삶은 어떠한가? 천국은 과연 천국인가? 이곳의 갈매기들은 그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 각자에게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 일에 있어서 완전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51~52쪽) “그럼 이곳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나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천국과 같은 장소는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요?” “그렇다. 조나단.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은 하나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도 아니지. 천국은 완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념과 영혼, 초월의 사고는 갈매기 조나단이 추구해온 속도의 세계 역시 관념과 영혼, 초월의 세계에 녹아들어야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맺게 한다. ‘속도’를 통하여 시작한 현실 극복의 노력 또한 현실에 대한 집착 차원을 벗어날 수 없으며, 완벽한 극복은 현실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관념과 영혼, 초월의 힘은 현실의 문제와 한계 속에서 언제나 영원하다. 그런데 갈매기 조나단에서 바로 우리 교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지나칠까?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 갈매기의 꿈은 바로 인간의 꿈, 바로 우리 교사의 꿈이 아닐까. “만일 그곳으로 돌아가면, 혹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갈매기가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고기잡이배로부터 빵부스러기를 얻으려고 날아다니는 것 이상의, 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 고독하게 싸우고 있는 갈매기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곳엔 갈매기 무리의 면전에서 자신의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추방당한 갈매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자비에 대해 더 많이 배워나갈수록,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수업을 받을수록 조나단은 더욱더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왜냐하면 그의 고독했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조나단 시걸은 교사가 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그 자신의 방법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의 어떤 것을 스스로 진리를 깨달을 기회를 얻고자 원하는 다른 갈매기에게 주는 것이었다.”(63쪽)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 휘하의 몽골군, 1240년대 초에 빈과 프라하를 지나 계속해서 서진하다.” 몽골족이 중원을 더 오래 지배하고 중앙과 서남아시아 그리고 동유럽 일대를 보다 확고하게 장악했을 경우, 또 헝가리평원을 지나 오스트리아·독일 등 중부 유럽까지 진격했을 경우 세계사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 유럽은 중앙아시아로부터 내습한 훈족(흉노족으로 보기도 하나 확실치 않다)에 의해 이미 4세기 중엽 이후 살육과 약탈이라는 일대 참극을 한 차례 경험했다. 그로 인해 흑해연안의 동·서 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족의 로마제국 영역으로의 침략 내지 이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결국 노쇠한 로마제국이 멸망한 사실을 역사는 비교적 소상히 전하고 있다. 동유럽을 향한 징기스칸의 대약진 징기스칸의 몽골족은 중원을 차지하고 원나라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중앙·서남아시아 일대를 장악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동유럽으로 진출한 그들은 모스크바 지역을 경유해 헝가리 평원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유럽의 십자군과 이슬람세계가 각축을 벌이던 1250~1260년대에는 시리아와 레바논까지 진출해 십자군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 여기서는 바투군의 동유럽정복을 중심으로 몽골족 대약진의 일단을 살펴보기로 하자. 징기스칸은 금을 공격해(1211년~1215년) 동아시아를 장악한 후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1218년에는 부장 제베에게 2만군을 주어 서요를 정벌한 후 이듬해 가을에는 카스피해 남쪽의 호레즘샤왕국을 공격케 했다. 술탄 무함마드는 수도(사마르칸드)를 버리고 서쪽으로 도주했고(1221년) 왕국은 무너졌다. 이후 호레즘샤의 잔당을 쫓아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몽골군은 1백만의 무슬림을 살해했다고 한다. 그때 무함마드를 추적하라는 징기스칸의 명을 받은 제베와 수베에테이의 별동대는 아제르바이잔을 지나 킵차크 지역을 포함한 남부 러시아를 석권했다. 당시 루시, 곧 러시아에는 바이킹의 일파인 바라크족이 9세기 중엽에 세운 노보고로드왕국이 있었다. 이후 슬라브족에 동화된 그들은 9세기말에 드네프르강 중류에 키예프공국을 건설하고 비잔틴제국과 교류하는 등 상당한 세력으로 성장했지만 13세기 초에 몽골에 정복되었다. 러시아는 15세기 말에야 200여 년 간의 몽골지배를 벗어났다. 수베에테이의 몽골군이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루시(러시아)를 석권할 무렵 루시의 노보고로드 연대기는 1224년의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우리들의 죄악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족이 찾아왔다. 그들이 도대체 누구일까? 어디서부터 와서, 어떤 말로 야기하고, 어떤 인종이며, 어떤 신을 믿을까? 누구 한 사람 알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을 타르타르라고 부르고 있다.”(타르타르(Tartar)는 ‘명계·지옥’을 의미한다). 러시아 전역을 폐허로 만든 몽골 그 십 수 년 후 몽골은 다시 서방정벌군을 일으켰다. 금을 멸하고 남송을 압박한 태종 우구데이는 조카 바투(징기스칸의 장자 조치의 둘째)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유럽원정군을 일으켰다. 킵차크초원(카스피해-카프카즈-흑해 북부 일대)을 장악해 근거지로 삼아 서쪽으로 더 진출하기 위한 원정군이었다. 남송정벌을 위해 같은 시기에 남방정벌에 나선(1236년) 우구데이의 셋째 쿠추의 동방원정대는 큰 전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서방정벌은 다대한 전과를 올렸다. 바투의 원정대는 우랄강을 넘어 킵차크초원으로 향했고, 결국은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진격해 흑해연안·러시아·동부 유럽을 5년 가까이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다. 원정군 사령관은 조치가(家)의 수장 격인 바투였지만 다른 황족들도 참전했다. 후일 몽골 황제가 된 구육(우구데이의 장자), 뭉케(징기스칸의 넷째 톨루이의 장자)도 출전해 그들의 부대를 지휘했다. 그밖에 징기스칸의 서방원정 때 공을 세운 수베에테이도 부장으로 참가했다. 바투군은 제베와 수베에테이가 일차 정벌한 킵차크를 다시 공격했다. 일부 저항하거나 서쪽으로 도주한 자들을 제외한 주민의 대부분은 바투군에 흡수되었고, 바투군은 일거에 대규모 군단으로 탈바꿈했다. 더욱이 킵차크족은 모두 유목민이라 몽골군에 편재됨으로써 뛰어난 기병이 될 수 있었다. 킵차크를 손에 넣은 바투의 원정군은 루시로 진격해 정복했다. 그 무렵 루시는 공국들로 분열해 대립·반목했으므로 몽골 침략군에 결속해 항전하지 못했다. 몽골군은 루시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고, 그로부터 러시아의 불행, 곧 ‘타타르의 멍에(몽골의 잔혹한 지배)’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 사가들은 그것은 몽골이 애용했던 ‘공포전략’에서 비롯한 소문일 뿐 과대하게 선전되었다고 평가한다. 말하자면 몽골군이 적의 전의를 꺾기 위해 퍼뜨린 소문에 불과했을 뿐 루시가 입은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체의 마을’된 참담한 유럽의 패배 노보고로드에서 키예프로 남하한 바투군은 거기서 동유럽으로 방향을 돌렸다. 키예프 부근에서 2대로 나뉜 후 주력 부대는 헝가리로, 다른 부대(별동대)는 폴란드로 진격했다. 차카다이(징기스칸의 둘째)의 넷째 바이다르가 이끈 별동대는 바르샤바 남쪽 크라코우를 거처 1241년 4월 9일 리그니츠 동남쪽 10㎞ 지점의 평원에서 폴란드·독일 연합군과 조우했다. 실레지아공(公) 하인리히 2세가 이끈 폴란드·독일군 3만은 바이다르의 별동대에 완패했다. 하인리히 2세를 포함해 다수가 전사했다. 사료에 따르면 전사한 적군의 수를 계산하기 위해 몽골군이 한 쪽씩 잘라낸 귀가 9개의 자루를 채웠다고 한다. 유럽연합군이 참패한 ‘리그니츠전투’는 ‘발스타트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독일어 발스타트는 ‘사체의 마을’을 의미한다. 그 후 바이다르의 별동대는 몰다비아(모라비아)를 거쳐 본대와 합세했다. 그때 교황은 대(對)몽골 십자군을 제창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사가들은 리그니츠전투 자체를 의문시한다. 이는 당시의 문헌에 없는 전투이야기가 15세기 문헌에 갑자기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시기에 폴란드 귀족인 공(公)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가 2백~3백 정도였다는 사실을 들어 전쟁이 있었다고 해도 큰 전투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한편 바투의 주력군은 리그니츠전투 이틀 후에 티소강변에서 헝가리 국왕 벨라 4세의 군대를 무찔렀다. ‘티소강전투’로 불리는 전투를 위해 벨라 4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 원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티소강전투 후 다뉴브강변의 헝가리 수도 부다와 페스트(후일 통합되어 부다페스트가 되었다)를 비롯한 헝가리는 몽골의 수중에 떨어졌다. 원정 후 ‘킵차크한국’ 건설한 바투 헝가리를 정복한 몽골군은 1241년부터 다음해까지의 겨울을 헝가리평원에서 보냈다. 그때 바투군의 한 부대는 헝가리군을 추격해 빈 부근인 빈 노이슈타트까지 진격했고 또 다른 부대는 아드리아해의 한 섬으로 도주한 벨라 4세를 추격해 달마티아해안으로 출동했다. 몽골군은 그때 이탈리아 침공을 꾀하기도 했다. 그 무렵 헝가리 서북의 독일과 달마티아 건너편의 이탈리아 등지에는 폴란드와 헝가리 피난민들이 넘쳤다고 한다. 훈족의 살육과 약탈의 역사를 기억하는(‘훈(hun)’은 ‘문명의 파괴자’와 ‘야만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럽 사람들에게 몽골의 동유럽 침공이 준 충격이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유럽으로서는 다행이었지만 바투의 몽골군은 더 이상의 서진을 포기하고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242년 3월에 우구데이가 타계했다는 소식과 서방정벌군의 귀환명령이 바투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서방정벌군의 대부분은 몽골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곧바로 빈에 이른다는 사실과 빈은 프라하나 베를린 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몽골군의 서진 중단이 유럽 역사와 관련해 갖는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벨라 4세는 몽골의 재침에 대비해 방어력을 강화하는데 노력했지만 몽골군의 서진은 더 이상 없었다. 그처럼 원정군을 구성했던 황족의 부대들은 회군했지만 조치가(家) 군단, 즉 바투의 직할부대만은 헝가리 등지를 약탈하면서 서서히 동진했다. 1243년경에 바투는 전부터 본영지로 삼아온 볼가강 하류 사라이초원으로 회향한 후 킵차크한국(汗國)을 세웠다. 이후 그들은 후계자 선출을 둘러싸고 내분에 휩싸인 몽골 본토를 멀리서 보면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킵차크한국은 14세기 초 우즈베크칸과 자니베크칸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안으로 모스크바대공을 통해 러시아 영주들을 지배하고 밖으로는 비잔틴제국과 교류했으며 이집트와 통혼하는 등 국기를 튼튼히 했다. 킵차크한국은 특히 흑해무역을 독점하여 경제적으로 번영했으며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받아 학문과 예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자니베크칸 사후 내란이 일어나고 티무르제국의 침공을 받아 약화의 길을 걷다 15세기말 모스크바대공 이반 3세에게 망했다. 몽골의 분열로 유럽역사 달라져 잘 알려져 있지만 몽골은 그밖에도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인도 서북부를 지배한 차카타이한국과 외몽골 남부 알타이산맥에서 알마타 북쪽의 발하시호(湖)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한 오고타이한국을 세워 킵차크한국 등과 함께 4한국 시대를 열었다. 반(半)독립적 한국들은 세조(쿠빌라이)가 원(元) 중심 체제를 강화하면서 완전히 독립했다. 그것은 물론 몽골세계의 분열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투의 서방정벌이 중단되지 않았을 경우 세계, 특히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의 역사는 어느 행로를 걸어왔을까? 몽골군이 회군하지 않았더라면 알렉산드르의 유업, 즉 동·서 세계의 융합이 크게 진척되었을 것이다. 몽골이 유라시아를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었다면 동양과 서양 사이의 간격을 크게 좁혔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몽골은 아랍인을 관리로 채용하고 그들의 상인조합 ‘오르타크(Ortaq)’에 무역상의 특권을 부여하는 등 색목인(色目人:중앙아시아인)을 우대했고, 초원길을 비롯한 동·서 교역로를 개척했으며, 역참제를 도입했다. 이슬람제국의 과학과 기술이 중국에 전래되고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와 모로코 여행가 이븐 바투타 등 서양 선교사와 여행가들이 몽골을 왕래하던 당시가 바로 이때였다. 나아가 바투군이 서진을 중단되지 않았을 경우 유럽 기독교세계는 아마도 현재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몽골족을 비롯한 아시아계 인종들이 유라시아의 주도권을 잡고 있거나 적어도 유럽과 아시아의 혼혈인들이 주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 경우 기독교 문화만이 아니라 비(非)기독교적 문화 또한 유럽의 주류 문화의 하나가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