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7,37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경기도교육청 제2청이 최근 위치선정심의위원회를 열어 제2교육청 신설 후보지 순위를 1위 의정부시, 2위 양주시 등으로 결정한 가운데 양주시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반발하고 나섰다. 양주시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장설명회에서 의정부시는 제2교육청 후보지로 제공할 미군 반환기지 캠프 에세이욘이 금년중으로 반환돼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투표에 앞서 증빙자료 검토를 통해 의정부시의 설명을 확인한 뒤 투표를 해야함에도 곧바로 투표가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양주시는 이어 "공여지를 지자체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환경오염 치유 등 상당한 기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의정부시는 마치 국방부가 환경오염 치유비용 1천억원을 편성한 것처럼 설명, 잘못된 결정을 이끌었다"며 "제2교육청은 후보지 최종결정에 앞서 이 같은 내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2교육청은 유치를 희망한 의정부시와 양주시, 고양시, 포천시 등 3개 시군을 대상으로 제안서를 받아 지난 19일 현장설명회와 함께 위치선정위원회 후보지 순위 결정 투표를 실시해 의정부시-1위, 양주시-2위, 고양시-3위, 포천시-4위로 결과를 발표했다. 제2교육청은 위치선정위 투표결과를 토대로 다음달 중 최종 후보지를 결정할 예정인데 투표에서 양주시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의정부시가 다소 유리한 입장이다. 의정부시와 양주시는 제2교육청 외에도 의정부지법.지검, 경기경찰청 4부, 제2소방재난본부 등을 각각 조성할 예정인 광역행정타운내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유치 대상 행정기관들 중 제2교육청이 가장 먼저 부지를 선정할 계획으로 있는 등 다른 행정기관 유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제2교육청 유치를 놓고 두 지자체간 남다른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북부 10개 시.군 8개 교육청을 관할하는 경기도교육청 제2청은 2005년 4월 25일 의정부시 의정부동 경기북부교육관에 임시청사를 마련, 개청했으며 2009년 청사 신축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경기지역으로의 인구유입이 꾸준히 늘어남에 따라 경기도교육청은 특수학교와 일반학교의 특수학급 신.증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2010년까지 도내 신설되는 장애인 특수학교는 남양주시의 경은특수학교, 용인시의 용인심전학교, 파주 운정택지구 내의 파주특수학교 등 3곳이다. 또 지난해 1천21개였던 일반 초.중.고등학교내 특수학급도 올해 3월 1천197개로 17% 늘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택지개발 등으로 인구가 대규모로 유입되는 지역 뿐만 아니라 지역의 요구나 장애학생 현황에 따라 특수학교와 학급 수를 늘려 장애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7년 3월 현재 도내 특수학교는 23개로 3천200여명의 장애학생이 재학중이고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은 842개교, 1천197학급으로 7천800여명의 학생이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
EBS가 최근 방송된 KBS ‘추적60분-교육부의 비밀병기, EBS 수능강의의 실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23일 오후 9시 50분 방송된 ‘긴급진단-EBS 수능강의 왜 흔드나’에서 EBS는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2004년 이후 3년여 동안 무료로 시행돼 온 EBS 수능강의가 KBS의 지적처럼 문제가 있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고 방송이유를 밝히고 ‘추적60분’의 지적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프로그램은 ‘추적 60분’과 같은 방식으로 신도시의 한 고교를 찾아가 EBS인터넷 강의 이용여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 ‘추적 60분’의 결과와는 다른 33명 중 20명의 학생이 이용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추적 60분’이 34명 중 7명만이 EBS 수능방송을 이용한다고 밝힌 조사방식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 제작진은 “‘추적60분’ 자체 조사에서도 54.4%의 학생이 EBS수능강의를 이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며 “전체 고교생의 54.4%는 90만 명에 이르는 많은 수인데도 이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또 ‘추적 60분’이 실시한 뇌파실험에 대해서도 EBS는 “‘추적 60분’이 저울로 키를 재는 오류를 범했다”고 밝혔다. 뇌파 실험은 간질이나 뇌손상 등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이며 집중력과 무관하다는 것. 이 같은 지적은 신경정신과, 뇌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로 ‘추적 60분’이 의뢰했던 학습클리닉 뇌파 실험 전문가마저도 “8명의 실험으로 학생들의 학습능력으로 일반화 하는 것을 위험한 것이라고 KBS PD에게 말했다”고 방송했다. 아울러 EBS는 EBS수능강의가 온라인 사교육 시장만 키웠다는 ‘추적 60분’의 지적과 관련해 M사의 지난 매출액 추이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전문가의 진단으로 이 같은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M사의 경우 EBSi가 출범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성장을 거둘 수 있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실제로 M사의 매출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매출액이 42억원에서 412억원으로 급상승했으나 2004년 EBS 수능방송이 시작되던 해에는 1.9% 성장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EBS제작진은 “한 해 교육예산 30조원 중 EBS 수능강의에 지원되는 164억원으로 모든 교육비 전체를 방어해야 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집방송 편성과 관련해 EBS는 “‘추적 60분’은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이윤추구가 목적인 사교육업체와 EBS간의 무리하게 비교를 시도해 결국 사교육업체만 이익을 보게 됐다”고 유감을 표시하고 “앞으로 EBS는 지역간, 소득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사교육비 경감으로 교육복지를 구현하려는 기본적인 역할과 목적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내 학교정화구역을 금연구역을 지정하는 내용이 포함된 조례안이 시의회에 제출됐다. 서울시의회 남재경 의원(한나라당·종로1선거구)은 22일 김덕배 의원(한나라당)등 14명과 함께 '서울특별시 금연장소 지정조례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조례안에 따르면 시장 또는 구청장이 어린이보호구역을 비롯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도로와 공원, 버스정류소 등을 금연장소로 지정하고 경찰과 함께 연 2회 이상 사전예고 없이 단속활동을 펼치도록 했다.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은 학교의 보건·위생 및 학습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1967년 학교보건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으며, 절대정화구역은 학교출입문으로부터 500m, 상대정화구역은 학교경계선으로부터 200m까지이다. 남 의원은 "무엇보다도 어린이보호구역 및 학교정화구역은 청소년을 흡연으로부터 보호해야하며, 바람직한 교육환경의 조성을 위해서도 일반인의 흡연제한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초등학교 6년생과 중학교 3년생 약 240만명 전원을 대상으로 한 전국학력테스트가 24일 문부과학성 주관으로 일제히 실시된다. 학교별로 실시되는 이번 테스트는 '교과조사'와 생활습관 및 학습환경을 묻는 '설문 조사' 등 2종류로 나눠 치러진다. 학년 전원이 치르는 학력테스트로는 43년만의 부활이다. 문부과학성은 학교의 서열화와 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피하기위해 전체적인 학력 경향을 보여주는 결과만을 공표하기로 했다. 학생 개개인의 성적 등 방대한 양의 개인 정보에 대해서는 외부로 새나가지않도록 철저히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의 학력테스트는 이전 문부성이 1956년부터 초.중.고생의 5-10%를 추출하거나 중 2.3년생의 경우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도 했으나 학교와 지역간 경쟁이 심화돼 '학력 콩쿠르'가 되고 있다는 비판에 따라 1966년 폐지됐었다. 그러나 주 5일제 등 '여유있는 교육' 노선이 학력저하를 초래하는 문제점이 드러남에 따라 지난 2004년 문부과학성이 "어린이들에게 경쟁의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재개를 결정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재개되는 학력테스트에 대한 반발도 여전히 만만찮다. 교토(京都)시의 중학생 9명은 지난 16일 학력테스트가 "프라이버시 권을 침해하고 가정교육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개입은 위헌"이라며 시 당국을 상대로 테스트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중 3년생의 경우 학급과 출석번호를 기입하며, 초등학교는 이름도 적도록 하고 있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수험산업으로 흘러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서다.
교육개발원이 작성한 대학입시정책 보고서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3불 정책’을 두고 정부와 대학이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본지를 비롯 주요 신문과 방송이 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보도한 게 발단이다. 언론사들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교육개발원이 대학입시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이후 교육개발원은 보고서 내용이 ‘3불 정책’을 비판한 게 없는데 언론사들이 각색하고 왜곡했다며 정정 보도를 요청하는 가하면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겠다고 벼르고 연구위원협의회 이름으로 언론사들에게 보고서 보도에 신중을 기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사립대학 총장들과 OECD 보고서가 교육부의 ‘3불 정책’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하고 이에 대해 대통령까지 나서 총력 방어전을 펴고 있는 마당이어서 교육개발원이 처한 난처한 입장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지만 ‘정부의 대학입시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는 게 오보 시비의 핵심 내용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자가 보고서 곳곳에 현행 대입제도의 문제점을 적시하고도 결국 자신은 ‘3불 정책’을 비판하지 않고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나 이번 소동으로 교육개발원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구조적으로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교육개발원은 스스로 중립적 연구 수행을 다짐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을 ‘정면’ 비판하는 연구의 수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마저 하게 된다. 지금 다수 국민들은 ‘3불 정책’ 뿐만 아니라 고교평준화 체제 전반의 수술기획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견인해야할 국책 교육연구기관인 교육개발원이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이나 밝히고 있으니 안타깝다. 교육개발원은 코드정책의 산실이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독립적인 위상을 갖춘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선 주자들은 초정권적 교육개혁 기구를 논하기 전에 초정권적 교육연구기관 구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학교장의 새로운 리더십 발현과 학교혁신을 위해 교육경력 15년 이상의 교원들을 대상으로 일반 초·중·고교에 교장공모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현재의 승진제 교장 임용 방식만으로는 학교를 변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공모’라는 말만 접해도 뭔가 학교가 확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무자격 교장공모제의 도입 취지부터가 허상이다.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육 체제는 국가가 통할하고 책임지는 중앙집권적 구조로서,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과정편성 및 운영, 인사, 복무, 학교예산 운영 등이 국가에 통제되어 있다. 이러한 제도는 묶어두고, 단순히 교원 인사제도의 변화만으로 새로운 교장의 리더십과 학교혁신을 부르짖는 것은 연목구어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공모교장에게 해당학교 교원 정원의 30% 이내에서 초빙 교원을 요청하는 권한만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공모된 교장이나 현행 승진 임용된 교장 간의 역할 상에 큰 차이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공모교장이 교육구성원들의 요구로 학교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려고 하면 이는 학교간의 경쟁력으로 이어져 평준화 정책의 틀을 깨야 하거나 학부모들의 학교선택권 등을 보장해야 가능한 것이다. 도입 기준이 되는 교육경력이 왜 15년인 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자료도 제시 못하는 이 정권의 아마추어적 정책 집행 태도, 이제 막 내릴 때도 되질 않았는가.
지난 4월 17일,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일어난 끔찍한 총격사건! 33명을 줄지어 총살하고 이를 저지하려든 76세의 노교수가 목숨을 잃었으며, 29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대학 캠퍼스 강의실에서 그도 23세의 젊은 한 학생이 어떻게 그처럼 잔인한 살인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정신적 장애가 있었다고는 하지마는 그의 의도적 범죄 행위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다. 정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한 가정이 불과 15년 만에 그 꿈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은 짧은 인생 경험으로 모세의 기적처럼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망상이 단 하나 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들을 순식간에 앗아가고 말았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온 동료 대학생들, 그리고 그들을 힘들게 뒷바라지해온 부모와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자신이 처한 환경이 마음에 좀 들지 않는다고 막연하게 가진 자에 대한 불만과 증오심으로 수많은 생명을 무자비하게 죽이다니 이가 말이나 되는가. 정제되지 못한 한 인간의 사고! 자신보다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건가? 왜 그런 끔직한 사고방식이 한 젊은 청년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일까? 전 세계인들이 바른 진단을 하고 그 대안을 내 놓아야 한다. 자칫 뉴스를 접하다 보면 또 다른 젊은이들이 이를 모방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날로 발전해 가는 물질문화! 그기에 기생하는 얄팍한 상혼은 물질이 행복의 최선인 것처럼 사람들을 정신없이 몰아가고 있으며, 밀려오는 정보화 사회는 사람들을 점점 외톨이로 만들고,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를 박탈해 가고 있다. 누구나 외롭게 살면서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소유하려 치열한 경쟁을 하며 물질의 노예로 전락되어 학벌과 지위를 높이고,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에 무한 경쟁이라는 슬로건이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먹고 살기 위해, 남보다 뒤쳐지면 생존이 어렵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혀 더불어 살아가는 인성보다는 혼자 생존하려는 심성을 키운다. 그러다 보니 인간성은 점점 상실되어 간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도 사람됨의 교육은 밀리게 되고 오로지 점수, 출세, 결과 중심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비인간적 언행이 사회 전반적으로 묵인되면서 이를 틈타 일탈 행위와 폭력, 범죄 행위가 난무하고 있다. 사회는 바른 중핵적 가치관을 잃어버려 사회 정화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가치의 부재, 가치의 혼동 속에 서로 힘들게 살아간다. 자신만은 예외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어느 날 자신이 살아온 삶이 비열하고 치졸했다는 것을알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자식이 이를 모방하고 한 수 더하여 새로운 일탈을 자행하고 있음을 알고는 놀란다. 발달된 통신매체를 통하여 어른들이 만든 건전하지 못한 폭력 영화나 게임 그리고 음란물들이 정보의 바다를 통해 일탈을 부추기고 범죄를 만들고 있으며 그 기법과 수법도 대담해 졌다. 사람됨의 교육을 소홀하게 한 대가가 끔찍한 범죄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9.11 테러, 영국의 지하철 테러, 스페인의 열차 테러,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의 테러, 19일 일본나가사키 시장의 총기 피습 사건, 20일 모 군부대에서 동료 총기 살인 사건. 21일 모 고등학교 학생의 엽총 사건, 역주행을 하고도 스릴을 즐긴다는 뉴스 보도 등 최근 며칠 사이 일어났던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교육 아니 세계교육이 이제는 확 달라져야 함을 절실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작금에 세계 도처에서 발생되고 있는 총기사건들을 보면서 그 발생 원인을 바르게 진단하고 그 대안을 시급하게 모색해야 한다. 인성교육을 서두르고 강화해야 한다.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됨의 교육을 서두르자. 사람을 죽이고도 이를 정당화하려는 인면수심의 심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착한 심성으로 태어난 아이들! 그들의 심성을 바르게 키워주어야 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 까지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사람됨의 교육을 바르게 해 나가야 한다. 바른 심성이 어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마는 사람다운 사람이 대접을 받고 그를 따르는 문화가 조성되고 지속되면 이루어진다.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타이르고 설득하여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교육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답지 않은 언행을 묵인하다 보면서로 힘들게 살아야하고 나중에는 목숨마저도잃어버릴 수 있다. 어른들이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인간성을 잃어버리면 자식들의 심성은 더욱 거칠어지고 어른보다 한 수 더한 일탈과 범죄를 행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른들이 뒤집어써야 한다. “무한경쟁의 시대 이겨야만 산다.는 슬로건을 자제하고,무한협동의 사회 더불어 살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먼저 엘리트들부터 절제된 욕망으로 바른 삶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승희 조 라는 한 청년이 빚어낸 비인간적인 총격 살인 사건! 과연 그만의 책임 일까?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개척자 미국 시민들이 또 다른 한 인간의 무분별한 자유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과연 이는 미국만의 고 고민일까?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 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옛 조상들이 강조한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교육을 고전으로만 덮어둘 것인가. 서로 용서하고 배려하는 인성교육이 세계평화의 지름길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먹히지 않는 쓸 데 없는 질문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일이며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을 바람직하게 성장․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실상, 학교 현장을 들여다볼라치면 이러한 본질은 온 데 간 데 없고 사이비 교육만이 판을 치고 있다. 백년하청, 조금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입시중심의 교육체제 하나만 놓고 생각해 보자. 세속적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것이야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기에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한 개인의 행복과 불행, 현재와 미래가 오로지 대학 들어가는 성적 하나로 좌우되고 명문대 졸업 여부 하나로 결판나고 마는, 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대한민국만의 병리적 사회풍토 속에서 학교가 단순한 입시교육기관으로 전락한 지는 이미 오래이다. 안타까운 것은 입시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교육수요자들의 맹목적 의존으로 인해 급속히 팽창하는 사교육시장의 위세에 밀린 나머지 본래적 기능의 하나였던 지식전수기능마저도 불신을 받기에 이른 학교가 이제는 단순히 학생들의 학적관리나 해주는 곳으로 비쳐지는 현실은 자연스럽게 학교교육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에를 가나 학교에를 가나, 어른들이 하는 일이라곤 경쟁을 부추기고 극도의 이기심을 부추기기는 것뿐인 우리의 교육현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인간으로 자라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사는 인생,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인간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한창 꿈을 키우고 몸을 기르는 가운데 인간과 사회에 눈을 뜨고, 정의와 양심, 도덕적 가치를 내면화해야 할 소중한 시기에,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도 없이, 좋고 나쁨을 가리지도 않고,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욕망에 눈 먼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아이들. 그들의 행복지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언젠가 한 언론에서‘전쟁 및 국가 위기 시 행동에 대한 한중일 청소년 의식 비교 조사’를 한 적 있는데‘전쟁이 나면 싸우겠다.’는 학생이 일본의 경우 41%인데 우리는 1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흔히 있는 일이고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것쯤으로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내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중국의 경우 60%인데 우리는 38%에 그치고 있다면 이게 과연 제대로 된 학생들의 의식일까? 서울 강남 지역 초등학교에서 한 개에 10만원이 넘는 루이뷔통 머리방울이나 헤어밴드를 하는 아이들 수두룩하고. 중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면 페라가모 구두니, 카르티에 지갑 등으로 수준이 높아지는 현실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먹고 아무데나 버리는 통에 학교가 온통 쓰레기로 넘쳐나고 어쩌다 선생님이 회초리라도 들라치면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그 현장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려 덤벼드는 아이들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단 말인가. 지금 일선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입시위주 교육에만 혈안이 되다보니 국․영․수 점수의 높고 낮음에만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될 뿐, 제대로 된 통합적 인성교육이나 사회교육은 찾아보기가 힘든 실정이다. 도덕이나 윤리 교과목, 혹은 사회와 역사 교과목을 배우고는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이수과정의 하나로서 존재할 뿐 실천적 가치 덕목으로서 내면화된 교육활동은 실종되고 만 것이다. 결국 교육다운 교육의 부재가 초래한, 학생들의 이 같은 무규범적 행동, 비도덕적이고 몰사회적인 인격형성이 학교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오래 방치된다면 그것은 결국 아이들 영혼의 황폐화로 이어져 개인적 삶의 불행은 물론이려니와 사회적 불안과 혼란까지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잘못된 교육, 얼빠진 교육으로 아이들의 영혼이 썩고 병들어가고 있는데.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면 무엇 할 것인가. 아이들의 장래와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이의 바람과 지혜를 모아 이제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혼이 있는 교육, 철학이 있는 교육으로. 가르칠 것을 마땅히 가르치고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는, 지식과 인간성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교육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가르치는 방법이나 요령 등에서 가르치는 일의 의미를 찾으려고 열심히 가르치는 행동에 치중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열심히 가르치는 행동을 반복하여도 학생들에게 학습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다. 왜 그럴까? 진정한 ‘가르침’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인간적 자질이 가르치는 일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과의 올바른 관계가 우선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가르치는 방법이나 요령, 즉 교수법과 같은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교사의 인간적인 면모에서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가르치는 행위는 한마디로 ‘창조적 행위’이다. 즉 가르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질을 통해 교사는 가르침이라는 ‘예술’을 창조해내는 존재이다. 또한,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방법과 자료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바탕에 있어야 자료가 보이고 시간 투입이 가능하다. 그러기에 우수한 교사는 선천적이라기 보다는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형이 성공적인 교사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교육의 행위란 어느 무엇보다도 남을 위하고 제자를 위한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필요한 자질인 학습, 권위, 도덕, 질서, 상상, 연민, 인내, 인격, 즐거움을 소유하여야 한다. 교사는 새로운 지식을 쌓기 위해 늘 학습을 해야 하며, 수업 효과를 올리기 위해 권위도 세워야 한다. 또한 도덕적이고, 외적·내적 질서를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상상, 연민, 인내를 통해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을 이해하고, 또한 자신의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인격을 꾸준히 다듬고, 수업을 즐거운 놀이로, 교실을 즐거운 배움의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가르치는 과정에서는 자신이 소유한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자질을 총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지식뿐 아니라 인간의 바람직한 자질을 학생에게 전달하며, 이를 통해 교사는 학생을 변화시키고, 학생의 삶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무거운 월요일입니다. 가장 부담이 되는월요일입니다. 월요일 아침 되면 한 짐을 안고 출근합니다.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문제출제도 해야 합니다. 교재연구도 해야 합니다. 수업도 해야 합니다. 학생지도도 해야 합니다. 청소지도도 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 없습니다. 거기에다 날씨까지 흐리니 더욱 무겁습니다. 그러해도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했으면 하는 아침입니다. 그래야 한 주를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매일 출근을 하면서 학교 주변을 둘러봅니다. 학교가 깨끗한지 어떠한지, 주민들이 쓰레기 봉지를 버렸는지 아니한지, 유리창이 파손이 되었는지 그러하지 않은지를 눈여겨봅니다. 우리학교는 당직하시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인해 학교 안팎이 매우 깨끗함을 보게 되어 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눈에 띕니다. 교문 밖에는 쓰레기 봉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교 안에 쓰레기 봉지를 모으는 창고를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에는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 봉지가 몇 개 보였습니다. 아직도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싶어 매우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 아침은 우리 모두가 학교를 보호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학교를 파괴하는 주민들이 있다면 그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학교에 피해를 주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학교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피해만 주는 분들은 하루 속히 자신을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양심에 손을 얹고 반성했으면 합니다. 쓰레기 규격 봉지를 돈으로 사기가 아까운지 아무 봉지에 넣어 그것도 학교 창고 앞에 놓아두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하라고 그럽니까?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계속 참아보려 합니다. 그분들이 스스로 뉘우칠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학교 봉지로 넣어 버리도록 할 것입니다. 또 며칠 전 불량 학생인지 불량 청소년들인지 모르지만 밤에 담을 넘어강당에몰래 들어와서 강당에 있는 소화기를 바닥에 다 뿌려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가 찼습니다.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참고 또 참아 치우고 또 치우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 학생들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교육을 계속 시킬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민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학생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러해야 합니다. 교직원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학교를 애용하는 모든 분들이 그러해야 합니다. 학교를 내 집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학교 안에 집에 있는 쓰레기를 버릴 수 있습니까? 학교 안에 꽃을 심어주어 향기를 선사하지는 못할망정 쓰레기를 갖다버려 악취 나는 냄새를 풍겨서야 되겠습니까? 학교에 청소는 못해 줄망정 학교에 있는 기물을 파손해서야 되겠습니까?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야 합니다. 잘못이 있어도 말을 해야 합니다. 돌아서서 불평해서도 안 됩니다. 돌아서서 잘못된 행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든지 학교에 와서 이야기 하세요. 언제든지 우리 선생님들에게 말씀하세요. 언제든지 우리 교직원들에게 말씀하세요. 귀담아 듣겠습니다.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굴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쁜 행동은 자제해야 합니다. 옳지 않은 행동은 금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많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마구 행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질서가 파괴되면 안 됩니다. 교통질서가 파괴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망 내지 대형사고가 늘 도사리게 되지 않습니까? 학교질서가 파괴되면 역시 학교도 망하고 학생들도 망하고 관계되는 모든 분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학교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주민들도,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교직원들도 그러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꿈을 키우는 행복한 학교가 되게 했으면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10대의 젊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게 했으면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10대의 열정을 가지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배움터가 되게 했으면 합니다.
4월 21일(토). 충남교수학습지원센터는 '에듀스충남'(www.edus.or.kr)의 '온라인 논술·면접 준비 OK'를 발족시켰다. 충남교수학습지원센터는 2005년 5월부터 EBS와 경북도교육청에 이어 세 번째로 충남 교육포털사이트인 '에듀스충남'(www.edus.or.kr)의 '온라인 논술·면접 준비 OK' 시스템을 활용해 초·중·고 학생들에게 무료로 논술 첨삭지도를 실시하고 있다. 충청남도교육과학연구원은 이 시스템을 통해 논술과 심층면접 관련 입시 정보가 부족한 농어촌의 수험생들에게 양질의 논술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각종 논술과 심층 면접에 관한 자료를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논술 첨삭 지도와 심층 면접에 참여할 마흔 한 분의 선생님들은 모두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로 논술에 관한 한 내로라 하는 논술전문가들이다. 이곳에서 첨삭지도를 받으려는 학생은 우선 '에듀스충남(www.edus.or.kr)'에 접속해서 회원 가입을 한 다음, 게시판에 직접 글을 작성하여 온라인 또는 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러한 무료 논술 첨삭 및 면접 지도를 통해 도·농간의 지역별 학력격차와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충북도교육청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6월 중에 90여명의 영양교사 선발을 위한 제한경쟁 시험을 실시한다고 23일 밝혔다. 도교육청은 이를 위해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3일 동안 원서를 교부.접수하고 6월 24일 1차 필기시험을 거쳐 최종합격자는 7월 20일에 발표한다. 응시 자격은 도내 각급 학교와 교육행정기관의 식품위생직으로 3년 이상 근무 중인 자로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검정.수여한 영양교사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선발 인원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90여명선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도교육청은 선발에 따른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달에 공고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양성평등교육 활성화 계획'을 산하 교육청에 시달하면서 각급 학교별로 이행 방침을 독자적으로 세워 운영하도록 주문했다. 전혀 새로울 것은 없다. 이미 수년전부터 각급학교에서는 양성평등교육과 관련한 계획을 세워서 이를 시행해 왔다. 담당자도 지정되어 있다. 남,여공학교의 경우 특별히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교육을 실시한 경험이 거의 없다. 도리어 서울시내의 거의 모든 중학교들이 남,여공학으로 개편되면서 남학생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일단 학급회장만 보더라도 남학생의 독주시대는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학교급에서는 어떤지 알수 없지만 중학교의 경우는 남,여학생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도리어 여학생이 더 많은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있다. 그런데 이번의 양성평등교육 활성화계획을 보면 모든 촛점이 여학생에게 맞추어진 느낌이다. "`남성은 의사 여성은 간호사'라는 등의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교육 관행과 여학생은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일선 교육 현장에서 점차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보도내용이 있었다.언론에서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만일 서울시교육청의 보도자료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부분은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다.이것이야말로 양성평등을 해치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의사, 여성이 간호사라는 고정관념은 교육을 통해서 해소가 가능하고 또한 현실적으로 비율이 엇비슷해진다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부분이다. 그런데 여학생은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등의 규정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미 오래전에 그런 규정을 폐지하도록했었다. 상당수 학교가 여학생에게 치마만 입도록 강요하지 않고 있다. 자율에 맡기고 있다.그런데도 학부모들의 인식이나 사회적 통념에서 여학생들이 치마를 입는 것이다. 바지를 입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임교는 물론 현 근무교도 여학생에게 치마를 입도록 하는 규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서울시내중학교들이짧은시간에 남,여공학으로 개편되면서 성비 불균형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사립학교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학교나 여학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남,여공학을 추진한 결과 남학생대 여학생의 비율이 엇비슷한 경우보다는 어느 한쪽이 많은 경우가 많다. 우리학교가 속한 관내에는 여학생의 숫자가 많은 학교들이 더 많다. 우리학교의 경우도 각 학년의 여학생대 남학생의 비율이 2:1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양성평등교육활성화 계획을 여학생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유감스런일이 아닐 수 없다. 도리어 남학생들이 소외감을 나타내고 있다. 학급당 인원이 39명인데, 이중 남학생은 대략 12-15명선이다. 수많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남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의 차원이 아니다.수행평가등에서도상위에 오르는 남학생은 10위권에 1-2명 정도이다. 정규고사 성적도 마찬가지이다. 수행평가의 영향이 크기도 하겠지만 남학생들의 숫자가 적다보니 그들만이 뭉치는 이상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위적인 남,여공학 개편이 가져온 문제점이다. 양성평등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을 위한 양성평등교육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양쪽모두 공평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의 서울시교육청계획도 양쪽을 공평하게 교육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질지 관심이 간다. 확실한 것은 이로인해 도리어 소외되는 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는 양성평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지금 버지니아 공과 대학 조승희씨의 총기 사건으로 온통 시끄럽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예방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시점에서서 일어난 사건이라 각 학교 및 교육청에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학생 지도가 학교 자체의 규정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교내 경찰을 주둔하게 하는 위탁된 학생 지도가 병행되고 있는 시점이요, 통합 교육이 더불어 시행되고 있는 지라 학내에서 정신지체아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결손 가정에 대한 배려가 상담 교사 뿐만아니라 담임 중심 생활지도, 나아가서는 교과 담임 교사들의 학생 지도에 관계 부서는 더욱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학생 지도는, “참고, 생각하고, 그런 후 행하는 것”이어야 교육학자 짤즈맨은 참아라, 생각하라 그런 후 행하라고 하였다. 통통 튀는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요즘 학생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통통 튀기에 이들의 내면을 잘 읽어내면 수업을 아주 신나게 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남아도는 대학에, 넘치는 교사에, 개성적으로 공부하기를 바라는 학생에. 참으로 삼박자를 맞추어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교사를, 너무나 많은 교실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금의 교육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부르짖고 있으면서 수요자에게 만족스럽게 베풀어 주지 못하는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적인 문제가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학교 간에 충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전문 상담자가 될 수 있는 마인드를 구축하는 데 온갖 성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내면에 나타나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읽어 낼 시간을 그들에게서 얻어 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로서의 권위를 지켜가기에 급급하여 학생 이 다가와 질문을 하는 것에 래포를 형성하여 그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기 마련이다. 통합교육으로 정신지체아가 정상아와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할 때면 때로는 정신 지체아 때문에 수업이 안 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말로 꾸짖어 지도시킬 수 있는 상황도 못 된다. 그러기에 교사로서 그들을 같은 반에서 공부시키면 안 된다고 불평으로 일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는 정신지체아에 대한 담임교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특수반 담임이 따로 있기에 그 선생님께 이야기하면 되겠지 하는 사이에 어느 새 위험은 미국 버지니아 공과 대학 조승희씨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정신 지체아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교사 자신은 그들을 품안으로 끌어들이는 수업 기술과 생활 지도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것도 교사로서 지켜가야 하는 마음 자세가 아닌가 싶다. 조승희씨의 총기 난사 사건이 단순이 어느 민족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정사의 불행으로 일어난 분풀이도 아닌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가 주는 냉대에서 또는 자신에 대한 비하에서 나타나는 열등의식으로 해석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수아와 열등아에 대한 관심은 비례되어야 교사로서 학생을 대하는 일반적인 편견이라면 공부 잘하면 행동도 바르게 보이고 또 그렇게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싶고, 열등아에 대해서는 공부도 못하면서 자잘한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싶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크나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우수학생이기에 가정사나 주변의 자잘한 것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기에 교사는 이 학생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이럴 때 이 학생에게 가정사나 친구관계의 고민이 있는 데도 담임이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다면 자신에게 관심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싶고 이것으로 인해 사건은 생각보다 강하게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에 열등아는 지나치게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교사는 자신을 미워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 싶다. 그러나 수평을 이루는 상담과 지도를 하는 데는 여간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노하우를 터득해 가는 교사라면 이런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할 것이다.
세계화가 가속화 되면서 지식, 정보, 사람의 흐름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식정보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지식노동력의 확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하나로 노동력의 질적 분포와 지식의 수요를 계산하여 선별적 이민 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한 마디로 ‘근육의 유입’은 억제하는 대신 ‘두뇌의 유입’은 활발하게 추진한 것이다. 이제 선진국들이 요구하는 것은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잘 훈련된 아이디어가 있는 두뇌를 원하고 있다. 이처럼‘두뇌’라고 함은 필요한 부문에서 필요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의미할 정도로 선진국들은 지식 노동시장의 요구에 유연하고도 체계적으로 대처해 온 것이다. 인재의 유치와 유지전략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의 인재를 흡수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인재의 흡수에 가장 앞선 부문은 기업이며,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이 이에 대한 충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이민제도는 미국의 지식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만한 인력의 유입에 대하여 매우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다. 유럽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인재의 유치와 유지전략을 채택하게 된 것도 미국의 압도적 선점효과로 생긴 공백 때문일 것이다. 유럽은 오랫동안 누려왔던 지식강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본격적인 인재유치 전쟁에 뛰어들었다. 먼저 세계의 인재들이 유럽의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브뤼셀에는 유럽공동연구소를 세워 유럽의 연구개발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경제권에 공동 교육 및 연구단지를 조성하는 구상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도쿄대학을 비롯한 일본 대학들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해외 사무소를 설치하여 외국의 인재들을 모으기에 노력하고 있으며, 각종 장학금을 지급하여 학생들을 유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쪽에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대학에서 3년간에 학부 과정을 수료하고 1년 동안에 석사과정을 수료하게 한 다음 박사과정까지 입학시켜 인재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한국의 우수한 대학들이 현재 어떤 노력들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돌아 볼 시점이다.
'저 까치집을 옮기면 까치도 이사할까?' '까치도 집 옮기는 것을 좋아할까?' '플라타너스도 까치집 옮기는 것을 좋아할까?' 운동 삼아 아파트 인근의 일월(日月)저수지 공원을 자주 찾는다. 공원 근처 플라타너스 다섯 그루에 까치집이 5개가 있다. 한 그루에 까치집 하나씩 있으면 보기에도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한 그루에만 무려 4개, 또 한 그루에 1개, 나머지 세 그루에는 까치집이 없다. 까치는 왜 한 쪽 나무에만 치우쳐 집을 지었을까? 그 나무가 집짓기, 살림살이, 새끼치기 등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다. 생존과 생육 조건이 맞는 나무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게 그들의 본성이다. 나무 입장이 되어본다. 까치집이 많은 나무는 버거울까? 까치집이 없는 나무는 억울하거나 소외감이 들지 않을까? 버겁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다. 운명 또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그대로 순응하지 않을까? 4개의 까치집이 있는 나무는 까치의 집짓기와 생육 조건에 맞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플라타너스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수령을 비롯해 나무 모양, 크기, 굵기, 높이, 전망, 옆 나무와의 간격, 나뭇가지 상태, 영양 상태, 병충해 상태, 뿌리를 박고 있는 토양, 뿌리의 활동력, 광합성 작용, 성장 속도 등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이 플라타너스가 다 똑같은 줄 안다.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섯 그루의 나무에 까치집을 하나씩 옮겨 놓으려 한다. 4개의 까치집이 있는 나무는 너무 많다고 하여 3개를 빼앗아 없는 나무에 주려 한다. 그게 ‘균형’이라고 한다. ‘국가균형발전’과 ‘복지’라는 미명 아래 버젓이 이루어진다. 까치가 좋아하는지, 나무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나무 하나에 하나의 까치집을 올려놓는 것을‘복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로지 인간 중심이다. 까치와 나무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인간이 보기에 다섯 나무에 까치집이 각각 하나씩인 것이 그럴 듯하다. 평등, 불균형 해소, 골고루 잘 살기, 복지라는 용어를 들이대니 얼핏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분명 잘못된 것이다.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복지’라는 개념과 잘못된 출발을 지적하는 것이다. 각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다. 그 여건에 맞게 발전하는 것이 순리다. 한 쪽의 자연적인발전을 인위적으로 막고 다른 한 쪽을 억지로 끌어올리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잘 사는 사람을 미워하고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못 사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다함께 못살기’에 다름 아니다. 못 사는 사람에게 국가에서 돈 몇 푼 보태어 준다고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입에 풀칠하는데는 요긴하지만 근로 의욕을 꺾고 자립을 더욱 어렵게 하는 나쁜 정책인것이다. 임시땜방 정책이지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활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낙후 지역과 못 사는 사람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낙후지역은 그 지역 나름대로 여건을 살리면 되는 것이다. 더욱 발전해야 할 지역을 ‘균형 발전’이라는 억지 논리로 성장을 가로막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발전할 곳은 더욱 발전시키고,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 살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공부 못 하는 학생은 못 하는대로, 잘 하는 학생은 잘 하는대로더욱 잘 할 수 있게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골고루모두 공부 잘하게 하기, 이론적으로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달리기 잘 하는 학생에게, 못 하는 학생이 쫒아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잠시 멈추라고 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수월성 교육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글로벌 지도자의 마인드인 것이다.
오늘은넷째 일요일입니다. 오늘은 선생님들께서 편안하게 쉴 수 있어 좋은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들에게 오늘과 같이 쉬는 날이 없다면 교육의 능률은 엄청나게 떨어지고 교육의 질도 떨어지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주간 학생들을 위해 진액을 다 쏟아 부었는데 회복과 충전을 위해 쉼이 꼭 필요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런 쉴 수 있는 날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일로, 직장의 일로, 기타 다른 일로 쉬지 못하고 계속 시간을 빼앗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런 짐은 오히려 가벼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기쁨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축하하며 축복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학교 한 여선생님께서 결혼을 하게 되니 가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축하를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축복을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시간을 쪼개서라도 갈 것입니다. 우리학교에는 젊은 처녀 선생님들이 너무 많은데 이분들이 하루 속히 좋은 사람 만나 좋은 가정을 이뤄 행복한 삶을 꾸려나갔으면 합니다. 오늘 결혼하시는 선생님께서도 좋은 사람 만나 새 출발을 하는데 좋은 출발이 되었으면 합니다. 힘찬 발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선생님이기에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될 것입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님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김 선생님의 가정이 돋는 햇볕처럼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렀으면 합니다. 교총이 올해 창립 60년을 맞게 되는데 그 동안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 험로(險路)를 잘 개척해 왔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 되게 하는 일을 잘 감당하리라 봅니다.‘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선생님들의 희망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선생님’이 ‘좋은 교육’을 시키면 ‘좋은 학생’이 되고 ‘좋은 학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좋은 선생님'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여섯 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보다 자신의 시간을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중에 내 개인의 일에, 내 가정의 일에, 내 자녀의 일에 최우선을 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쏟을 시간마저 빼앗기게 될 것 아닙니까? 언제나 시간이 없다고 할 것 아닙니까? 다른 선생님을 도울 시간은 더욱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은 ‘좋은 선생님’이란 언제나 다른 선생님의 필요를 돌아보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중에는 다른 선생님의 도움이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컴퓨터가 잘 되지 않는 선생님은 컴퓨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미적 감각이 떨어져 환경미화가 잘 되지 않는 선생님은 환경미화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일거리가 갑자기 많이 쏟아져 혼자서 하기가 버거우면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학생지도 하기가 버거우면 학생지도에 능력이 탁월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언제나 선생님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젖습니다. 좋은 선생님이란 자신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늘 자신을 과소평가합니다. 학교를 세워나가는데 자신은 늘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늘 제외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학교를 위해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고 관심 있고 열성 있는 몇 분만 열심히 하면 학교는 저절로 잘 돌아가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학교는 몇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모두의 힘으로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모든 교직원들의 힘으로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래야 학교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그래야 학교다운 학교가 됩니다. 그래야 좋은 학교가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좋은 선생님’이란 모든 일에 똑같이 힘을 쓰는 선생님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고 수업만 하는데 힘을 쏟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수업은 소홀히 하면서 업무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수업을 하는 일과 업무에는 관심을 갖는데 학생들의 사람됨 교육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하면 안 됩니다. 모든 분야에 함께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균형 잃은 교육을 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수업, 업무, 사람됨교육, 청소 등등 모든 일에 고루고루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찮은 일은 하지 않고 귀찮은 하지 않고 힘든 일은 하지 않고 해서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찮은 일이든 귀찮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궂은일이든 무슨 일이든 모든 일에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좋은 선생님’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끝까지 잘 감당하는 선생님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성실이 필요합니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을 놓아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가 맡은 구역 청소가 많고 힘들어도 끝까지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청소구역이 바로 나의 얼굴이라는 생각으로 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좋은 선생님’이란 늘 낮은 자세를 갖는 선생님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남에게 낮추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자꾸만 높이려고 하면 더 벽에 부딪힙니다. 자신이 자꾸만 잘난 체하면 더 많이 밀립니다. 자신이 최고인양 뽐내면 최하가 됩니다. 서로서로 상대방을 높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른 선생님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좋은 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자신부터 ‘좋은 선생’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섯 가지 다 부족함을 느낍니다. 한 걸음씩 진보가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이 바라고 여러 교직원들이 바라고 여러 학생들이 바라고 여러 학부모님들이 바라는 좋은 선생 되기를 다짐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로정보센터에 진로 및 직업에 관한 연구를 의뢰하여 오고 있다. 진로정보센터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커리어넷(http://www.careernet.re.kr)을 통하여 약 5만 3천여건의 진로상담을 사이버로 실시하여 오고 있다. 지난 8여년간의 5만 3천여건의 커리어넷 사이버 진로상담은 진로와 관련된 웬만한 고민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판단된다. 이번에 그 동안 상담한 사례를 사이버 진로상담 가이드를 발간하였다. 커리어넷의 사이버 진로상담을 통해 드러나는 여러 가지 진로문제를 크게 정보문의와 조언요청의 2개 영역으로 분류하고, 각 영역을 다시 13개, 17개의 문제유형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별로 3-5개의 세부유형별로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하여 총 140여개의 문제와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정보문의에 관한 것으로 직업에 관한 정보, 교육훈련정보, 자격정보 등이 있다. 먼저 직업정보로는 직업그 자체. 직업에 필요한 능력 및 기술, 준비경로 및 방법, 수입, 직업전망, 채용정보, 기타로 다시 구분할 수 있다. 직업 그 자체는직업명 자체는 알고 있으나 각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모르는 경우(예 [ ]는 무슨 일을 하나요?), 가족 및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거나 TV,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직업이지만 업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경우(예 드라마에 나오는 [ ]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업무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경우(예[ ]는 위험한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등 진로문제 유형별 질문을 예시하고 답변을 예시하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교육훈련정보는 입시 및 진학, 학교, 학과 및 계열, 직업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격정보로는 자격증 안내, 자격시험, 국가고시가 포함되어 있다. 둘째, 조언요청 분야이다. 이에도 진로탐색, 진로선택을 위한 갈등, 진로결정에 대한 장애요인 등이 있다. 먼저 진로탐색에는 내적요인에 따른 탐색, 외적요인에 따른 탐색, 검사결과에 따른 탐색, 기타가 포함되어 있다. 진로선택을 위한 갈등에는 진학/취업, 직업선택, 학교, 학과, 계열선택, 진로변경이 포함되어 있다. 진로결정에 대한 장애요인으로 내적장애요인(성적 및 과목흥미, 적성, 능력, 성격, 나이, 신체조건, 자아존중감, 자아 효능감), 외적장애요인(주위의 반대, 의견차이, 경제적인 문제, 경쟁률, 사회인지, 성역할, 전망, 계열불일치)이 포함되어 있다. 사이버 진로상담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활용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진로문제 유형별로 구체적인 질문과 답변예시 및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상담의 숙련도에 따른 답변의 편차를 감소시키고 진로지도 및 진로상담의 접근방식을 체계화하기 위함이다. 둘째, 신규 상담자의 교육자료 및 경험을 갖춘 전문 상담자의 상담 틀을 검토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기존 상담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정리함으로써 진로정보센터의 사이버 진로상담 내용의 질을 향상시키고, 진로지도 및 진로교육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자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전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1부씩 발송하였다. 학교에서 이 책자를 전체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초등학교에는 이 책자를 발송하지 못하였는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로정보센터로 공문을 보내면 선착순으로 보낼 수 있는 여분이 약간 있다. 167쪽이 되는 이 책자가 학교현장의 진로상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비효과란 뉴욕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다음 달쯤 서울에서는 태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기상학적인 연구에서 비롯된 말로 모든 결과는 처음엔 감지조차 되지 않은 작은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 교육계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방과후학교의 경우도 그렇다.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방과후학교는 어느 새 대입시에 필요한 과목 중심 수업으로 탈바꿈되어 버렸다. 좋은 취지로 출발하려고 해도 사회적 상황에 적용되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 수명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방과후학교 위탁은 학생의 자율권 보장 지금 일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방과후학교는 그 취지가 이미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로 영․수․국 교과 중심 학습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어느 학교라고 지칭할 필요도 없다. 현실에 맞게 학교도 그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단위학교 중심의 학교운영이라고 하여도 방과후학교는 교육부의 의도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 같다. 단위학교 중심으로 각 학교의 실정에 맞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방과후학교가 왜 정도를 벗어나고 있는 가에는 여러 각도로 생각의 여지가 있다.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다는 명목이 있지만, 아무리 사교육비만 줄인다고 그것으로 학생들을 억지 춘향 꼴로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방과후학교에 대한 위탁이 서서히 고개를 들게 되는 것도 학교가 학생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사들이 행정 업무 수행에 아직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데 있다. 진정 한 시간의 수업을 하기 위해서 교사가 교재 연구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것은 각 교사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교재 연구는 얼마나 많이 다양성 있게 하느냐에 따라 교사마다 시간의 투자 분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방과후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억지 춘향 꼴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들 또한 찬성하는 쪽보다는 반대하는 쪽에서 말이 많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각 학교가 처한 방과후학교에 대한 위탁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각 학생들의 개별화 교육이 현재 학교의 환경에서 이루어지기에는 각 학교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학생들의 수준도 수준이거니와 교사 자신들의 노하우도 문제가 된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를 거듭하는 데, 학교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방과후학교는 현장 교원으로 하기 어려운 과목은 위탁으로 돌려 위탁받은 교사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오히려 이것이 현장 교사와 위탁 교사와의 경쟁이 될 수도 있다고는 하나, 현장 교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의 수도 생겨날 수 있다. 한 번 학생들에게 위탁된 교사가 현장 교사보다 좋다든지 또는 잘 가르친다든지 하는 것은 당연히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교사에 대한 평가절하 또는 평가절상의 부담도 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두려워 교사들의 입장만 두둔할 처지가 지금으로서는 아닌 것 같다. 교육부는 교사의 전문성 향상에 연수 강화를 지금의 방과후학교는 수업의 연장선에서 행하는 일제학습에 지나지 않다. 진정한 개별화교육과 탐구학습은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대입체제를 두고서 논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만족 방안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수수방관하는 자세로 언제까지 이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도 없다. 수요자 중심의 학교를 만들고 능력 중심의 개별화 교육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위탁으로 인해 나타나는 노하우를 학교 현장 교사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나비효과처럼 부풀어 올라야만 바꾸어가는 시늉을 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위탁 교육에 대한 방안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빈약한 교육부의 재정으로 수요자 교육에 만족도를 채워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위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보완해 가면서, 교육부는 정책학교를 선정해 교육의 새 정책을 펼쳐 가는 것도 고려할 단계가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고서 후에 나타날 학생들의 목소리와 학부모의 아우성은 또 한번 학교를 도마 위에 올려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