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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첫째, 꿈과 희망을 불어넣자. 교사는 학생들이 멋진 꿈을 꾸도록 격려하고 동기 유발에 힘써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며 꿈을 가꾸는 ‘꿈터’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주지시켜야 한다. 사람은 학교교육을 통해서 도덕과 학문을 배우고 생활의 지혜와 능력을 기르게 된다는 것을 일깨우고 공부는 꿈을 이루는 지름길임을 가르쳐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다양한 소질과 재능을 계발하고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용기와 의욕을 북돋우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학생의 리더요, 멘토로서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 올바른 가치와 덕목을 심어주자. 교육의 목적은 전인적 인격을 갖춘 사람을 육성하는 데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진위, 선악, 미추를 옳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진 • 선 • 미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와 덕목을 내면화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본적인 삶의 규범과 질서를 잘 준수하는 교양 있고 품위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다. 가르쳐야 할 가치와 덕목은 많지만 우선 학생들이 정직하고 선량한 심성을 가꾸며 근면하고 절약하는 자세를 가다듬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서로 베풀고 양보하며 이해하는 태도와 협동하고 봉사하는 공동체의식의 함양도 요구된다. 올바른 예의범절을 익히며 건전한 생활 습관을 기르도록 꾸준한 관심과 지도가 필요하리라.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도덕적 품성을 도야시키는 일은 학력 신장보다 훨씬 중요하다. 셋째, 교수효능감(Teaching-Efficacy)을 고양하자. ‘교수효능감’이란 교사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촉진하고 여러 측면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말한다. 교수효능감을 높이려면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기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교사의 전문성은 탁월한 교과 지식, 뛰어난 수업 기술, 그리고 남다른 열정으로 평가된다. 전공 교과목의 성격, 목표, 내용, 교수 • 학습 방법, 평가 등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교과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파악해 가르칠 핵심 내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는 학생의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더해 학생의 눈 높이에 맞춘 다양한 수업 기술을 익혀야 한다. 넷째, 리더십을 기르자. 학생들에게 호기심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능력과 학습 의욕을 북돋아 그들의 행동에 힘을 실어 주는 능력.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과 그들을 이끌어 목표를 달성시키는 능력, 즉 리더십을 교사는 지녀야 한다. 학생들을 장악하지 못하면 학습지도 • 생활지도 • 학급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교사로서의 건전한 교직관과 가치관, 미래에 대한 비전, 의사 전달 능력, 자신감과 추진력 등을 갖추고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 즉 카리스마를 갖추어야 한다. 지도력의 원천은 존경과 신뢰에 있다. 교사가 존경과 신뢰를 얻으려면 설득력, 인내심, 수용력 친절함, 자제력, 일관성, 성실함 등의 자질을 구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직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인성교육, 학력신장, 진로교육, 학급관리 등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다섯째, 관계와 소통의 기법을 익히자. 성공적인 교직 생활을 위한 조건으로 명랑한 인간관계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들 수 있다. 교사는 선후배 및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와 소통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와의 관계와 소통도 매우 중요하다.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을 잘하는 데 있어서 기본은 예의와 경청, 존중과 이해라 생각된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주장이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공감적 이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활동도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지며 학부모에게 학교의 교육활동과 자녀의 학습 활동에 대한 정보 제공도 잘 이루어져야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도와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끝으로 긍정에서 희망이 나온다. 교육의 가치와 학생의 장래를 절대로 부정적으로 단정하지 말라. 모든 성공은 긍정적인 관점의 산물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사는 나라와 겨레, 나아가 인류의 행복과 진보에 기여할 인재를 육성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교육에 고뇌하고 헌신해야 한다.
지난 호에 소개한 형사소송의 절차와 대응방법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민사소송의 절차와 대응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교총 교권국에 따르면 최근 사실 관계를 따지지 않고 교사들에게 형사고소를 제기한 후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형사재판에서 승리한 경우 ‘한번 죄가 없다고 판결이 났는데 민사라고 해서 문제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형사재판의 결과가 반드시 민사재판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형사소송과 민사소송 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은 개인 대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벌을 부과할 것인지 여부를 다루는 반면, 민사소송은 개인 간의 권리나 법률관계에 다툼이 발생했을 때 국가에 분쟁을 해결해 줄 것을 청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친구들끼리 일상적인 장난을 치던 중 우연히 휘두른 팔에 이빨이 부러졌을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은 된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민사소송 절차 그럼 본격적으로 민사소송 절차를 살펴보겠습니다. 민사소송은 원고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면 시작됩니다. 법원은 이를 받아 소장심사를 한 후 소장의 부본(副本)을 피고에게 송달하는데, 피고인은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때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거나 원고가 제출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하면 법원은 피고에게 선고기일을 피고에게 통지한 후 변론 없이 판결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민사소송에 피소되어 답변서를 작성할 경우에는 대략 12가지 내용을 기재해야 합니다. 기재사항은 소송당사자의 성명과 주소, 대리인을 지정한 경우 대리인의 성명과 주소, 사건의 표시, 피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방법과 원고의 증거방법에 대한 의견, 덧붙인 서류의 표시, 작성일자, 법원의 표시, 청구의 취지에 대한 답변, 소장에 기재된 개개의 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 항변과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사실, 모든 입증자료, 입증이 필요한 사실에 관한 중요한 서증의 사본 등입니다. 피고가 법원에 답변서를 제출하면 법원에서는 변론기일을 지정하고 피고의 답변서 부본을 원고에게 송달합니다. 이어지는 변론준비절차에서는 소송당사자의 주장에 대한 상호 서면공방 및 법정이외의 장소에서 출석조사가 이뤄집니다. 다음은 기록심사 및 사건분류 단계인데, 이때는 소송당사자가 특별히 준비할 사항이 없습니다. 다음 단계는 변론기일입니다. 변론기일은 ‘쟁점정리기일’과 ‘집중증거조사기일’로 나뉘는데, 쟁점정리기일에는 소송 당사자가 법원에 출석해 사건의 쟁점을 확인하고 변론과 반박을 진행하며, 집중증거조사기일에는 증인신문, 소송 당사자 신문 등 증거조사가 이뤄집니다. 집중증거조사절차를 마치면 재판장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화해 • 조정 시도 여부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변론종결 후 재판장은 판결내용을 확정 • 선고합니다. 판결은 원칙적으로 소가 제기된 날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되어야 하며, 선고기일은 위 변론종결 단계에서 재판장이 지정합니다. 판결효력은 선고한 날부터 발생하며, 법원사무관 등이 판결서를 받은 날부터 2주 이내에 당사자에게 정본을 송달합니다. 당사자가 제1심 법원이 선고한 판결에 불복하고자 하는 때에는 판결서가 송달된 날부터 2주 이내에 항소장을 제1심 법원에 제출하면 됩니다. 소액 민사분쟁 해결을 위한 소액심판제도 한편, 2000만 원 이하의 소액 민사분쟁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소액심판제도가 있습니다. 소액심판은 대략 2~3개월에 걸쳐 진행되는데, 소장이 접수되면 즉시 변론기일을 지정해 통보하고 재판을 단 1회로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므로 모든 증거를 첫 재판일(변론기일)에 제출해야 합니다. 원고는 법원의 출석요구에 대해 2회 불출석하고 그 후 1개월 내에 기일지정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소송이 취하된 것으로 간주되며, 피고의 경우 재판에 불출석하고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으면 즉석에서 원고승소판결이 선고되므로 반드시 모든 증거를 첫 재판일에 제출해야 합니다. 변호사 선임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민사소송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소송 당사자가 직접 대응할 수도 있지만, 비전문가가 충분한 법률적 지식을 갖추고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가급적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는 것이 좋습니다. 원고의 경우는 소장을 작성할 때 바로 선임하고, 피고의 경우는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은 뒤 변호사를 선임해 답변서를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진중한 드라마와 스타의 조합 가을소나타 연극 가을소나타는 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해온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동명의 1978년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샬롯과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딸 에바가 7년 만에 재회한 뒤 빚어지는 갈등을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핵심은 어머니와 딸 간에 핑퐁게임처럼 길게 오가며 펼쳐지는 애증의 대화들이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상황이기에 무대 위의 두 여인이 만들어내는 불꽃 튀는 긴장감은 객석을 때로는 차갑게 만들었다가도 어느덧 따뜻하게 이완시켜준다. 47년 동안 무대를 지켜온 연기파 배우 손숙이 엄마 샬롯 역을 맡았고, 시티홀, 내 여자 등의 작품에서 열연한 추상미가 딸 에바 역에 캐스팅됐다. 배우 박경근은 에바의 남편 빅토르 역으로, 피카소의 여인들에서 뛰어난 연기로 주목받은 신예 이태린이 샬롯의 또 다른 딸 ‘엘레나’ 역을 맡아 작품을 탄탄하게 채운다.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연극열전 2004년 연극열전으로 17만 명의 관객을 모은 후 지난해 연극열전 2로 다시 27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 연극열전은 명실상부한 대학로의 블록버스터이다. 이번에는 연극열전 3이라는 시리즈가 12월 1일 개막작 에쿠우스를 필두로 2011년 1월까지 14개월간 총 9편의 작품 라인업을 갖추고 관객들과 만난다. 연말, 연초 시즌을 책임지는 피터 쉐퍼의 원작 에쿠우스는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의 클래식 명작으로 배우 조재현이 연출가로 데뷔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인 마틴 다이사트는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 스트랑의 치료를 부탁받는다. 알런이 병원을 찾은 날 밤부터,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던 다이사트는 알런의 분노와 두려움이 매일 밤 꾸는 악몽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왠지 모를 의혹을 품는다. 한편 알런은 다이사트를 신뢰할수록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이 싹트면서 감출 수 없는 분노와 예민함으로 매번 그와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뒤틀린 인간 내면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출연자는 다이사트 역의 송승환/조재현, 알런 역의 정태우/류덕환을 비롯해 장신의 남성 조연 배우들이 반라로 말(馬)을 연기한다. 아마도 최근에 공연되는 작품들 중 가장 남성호르몬이 넘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 이어서 연극열전 3의 두 번째 작품 엄마들의 수다는 2009년 12월 18일부터 국내 초연된다. 이 작품에는 1978년 KBS 드라마 봄비로 데뷔, 달동네의 똑순이로 기억되고 있는 배우 김민희가 함께한다. 이 작품은 실제 아이를 키우는 캐나다 주부 6명이 겪은 출산, 육아에 대한 리얼한 체험담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극화한 작품으로, 김민희 이외에도 한국 연극계의 연기파 여배우 정재은, 김로사, 염혜란, 이선희 등이 출연한다. 뉴욕주립대를 졸업하고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연출가로 활동, 동서양의 정서를 가장 조화롭게 표현할 김영순의 한국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PAGE BREAK] 스테디셀러 그대를 사랑합니다 Vs.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웹툰 작가로 거듭난 강풀의 순정만화 세 번째 시리즈인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지난 2008년 4월 초연된 후 그동안 많은 재공연을 거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해왔다. 새벽에 낡은 오토바이로 동네 사람 모두를 깨우며 우유배달을 다니는 괴팍한 할아버지 김만석. 이름도 없이 칠십 평생을 ‘송씨’로 불리며 살아온 ‘송이뿐’ 할머니. 이들은 아침마다 늘 마주치기만 하다가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뒤 서로를 걱정하는 사이가 된다. 매일 아침, 골목길 모퉁이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나 송씨에게 우유 한 통을 건네거나 산동네 비탈길을 내려가는 송씨의 리어카를 잡아 주는 만석과 만석이 써준 편지를 읽기 위해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송씨는 점점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작품은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 일변도인 대학로에서 드물게 노부부의 진솔한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는 지상 최고의 로맨스를 소개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연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이 작품은 부모님 세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늙은 부부 이야기의 연출을 맡은 바 있는 위성신의 노련하고 섬세한 연출과 더불어 연기자들의 생생한 연기,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소재와 스토리도 흥행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마니아층 사이에서 ‘백사난’으로도 통하는 또 다른 스테디셀러 연극이 있으니 바로 9년째 장기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동화 ‘백설공주’ 이야기를 일곱 번째 난장이의 시점에서 재창작한 작품으로 말 못하는 난장이 ‘반달이’를 통해서 말없이 행하는 큰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짝사랑의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점이 장기 공연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말초적인 언어유희와 사생활 폭로로 도배된 요즘의 TV 오락 환경에 어느덧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이제 이러한 ‘잔잔한 감동’이 주는 재미의 강도가 다소 약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극장을 나서고 나서도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 구석에 뭉클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해준다. 유쾌함을 선사하는 코믹 연극들 연초가 되면 늘 있는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직장 동료들과의 건전한 회식 프로그램으로 함께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코믹 연극들도 빼놓을 수 없다. 룸넘버13은 여당 국회의원과 야당 총재비서의 스캔들에서 빚어진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린 코미디극으로, 정치인이 등장하는 심각한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해석해 영국 ‘로렌스올리비에 베스트 코미디상’을 수상했을 만큼 이미 연극계에서는 흥행작으로 꼽힌다. 또한 코믹쇼 로미오 줄리엣은 국내 최초로 시도된 관객맞춤형 연극으로 매회 관객의 선택에 의해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이 결정되며, 관객들이 도중에 주인공도 바꿀 수 있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각각 네 가지 버전으로 준비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객들이 그 자리에서 투표로 선택해 총 16개 조합 중 하나가 공연되는데, 로미오는 웨이터, 모델, 짐승남, 점쟁이로 구분되며 줄리엣 역시 호박씨, 킬러, 치어리더, 시골로 구분된다. 연극 그남자 그여자는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아름다운 101가지 사랑이야기로 인기를 모았고, 각각 다른 테마의 도서 3편으로 출판돼 150만 명의 독자에게 감동을 전해준 데 이어 연극으로 각색되었다. 처음 사랑을 시작한 기억부터 이별까지의 과정을 그려 연인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높은 편이다. 현재 대학로와 강남에서 동시에 공연 중이다. 1999년 연우무대 초연 당시 유쾌한 만화적 상상력으로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은 락희맨쇼도 작가 고선웅의 연출로 다시 돌아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멈추지 않는 천방지축 코미디라는 평가를 받으며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장수 코미디이다. [PAGE BREAK] 명동에서 보는 베니스의 상인 연극에서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가 남긴 수많은 희곡이 있지만, 그중 사랑의 운명을 가르는 단 한 번의 ‘함 고르기’와 살 1파운드를 빼앗기 위해 벌이는 희대의 재판이 어우러진 치밀한 상황극 베니스의 상인은 지성과 감성이 결합된 낭만희극의 수작이다. 배경은 베니스, 밧사니오는 포샤에게 청혼하기 위해 떠날 여비를 안토니오에게 부탁하고, 전 재산이 바다에 나가 있는 안토니오는 기꺼이 유태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기로 한다. 샤일록은 기한 내 돈을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떼어내는 조항을 제시하고 계약은 성립된다. 한편 부와 지성을 겸비한 포샤는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남편감을 찾기 위해 벨먼트에서 ‘함 고르기’라는 관문을 내걸었다. 밧사니오는 포샤의 초상화가 들어 있는 함을 고르는 데 성공하고, 포샤와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안토니오의 배들이 난파를 당해 빚을 못 갚아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재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은 빚을 못 갚은 안토니오에게 살 1파운드를 요구하며 진퇴양난의 길로 접어든다. 캐스팅은 호화롭다. 포샤는 중견 연극인 윤석화와 김소희가 나눠맡게 되며, 파렴치한 악인 샤일록은 노배우 오현경이, 선함과 동시에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안토니오는 정호빈이 맡았다. 특히 이번 프러덕션은 원작의 사랑과 종교, 더 나아가 인종에 대한 세대 간의 갈등에 연희단거리패 연출가인 이윤택의 시각이 가미되어 새로운 음악극의 형태로 소개될 예정이라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공연이 열리는 곳 역시 오랜 복원공사를 마치고 올해 재개관한 명동예술극장이어서 도심을 나들이하면서 함께 들를 수 있어 추운 겨울에도 화사하고 가벼운 나들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그 외의 기대작으로는 일본작가 나카타니 마유미의 원작을 각색한 뷰티풀 선데이 의 재공연을 꼽을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패션모델로 잘 알려진 김영광이 20대 초 • 중반의 미대 대학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이청년 준석 역을 맡았다. 김영광의 큰 키와 미소년 같은 외모는 여심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된다.
스타벅스로 간 은둔형 외톨이(이소베 우시오 저. 대숲바람)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는 더 이상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집계가 나오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다. 등교거부를 하는 학생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학생 중 상당수가 은둔형 외톨이 전조증상을 보이고 있어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 책 스타벅스로 간 은둔형 외톨이는 은둔형 외톨이와 청소년기 정신병을 전문으로 다뤄온 저자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설명과 탈출방법을 소개한다. 증상과 계기, 가족의 대응 방법, 의료기관 이용방법 등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예쁜아이(토리 헤이든 저. 아름드리미디어) 이 책은 특수교육 교사 토리 헤이든이 특수학급 아이들과 함께한 1년간의 여정을 생생히 담고 있다. 저자가 실제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불굴의 노력과 서서히 자신들의 껍질을 깨고 성장해가는 특수학급 아이들의 모습은 큰 감동을 준다. 여기에 더해 그들의 생활을 통해 읽을 수 있는 교육방식, 교육제도, 사회 시스템, 그리고 여기에 연관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역학관계는 읽는 이로 하여금 교육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이승원 저. 휴머니스트) 글로벌시대의 도래로 언제부터인가 해외유학은 이미 특별한 것이 아닌,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처럼 여겨지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조선시대에도 생존을 위해 세계로 떠난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조선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당시 조선과 서구열강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대한 역사 해석과 각각의 인물들이 남긴 기록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유길준, 민영환, 윤치호, 서재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입장과 머문 나라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내놓은 세계에 대한 인식이 볼거리. 떠나든 머물든(베르나르 올리비에 저. 효형출판 1만 2000㎞에 달하는 실크로드를 두 발로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나는 걷는다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전하는 은퇴 이야기. 은퇴 후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저자는 걷기를 통해 은퇴와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했다며 “그럼 도대체 언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평생 동안, 사람들은 부모님을, 선생님을, 사장을, 배우자를, 자식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일했고, 이성의 이름으로, 집세와 국가의 이름으로 땀을 흘려왔다. 그만, 그만하면 됐다. 자신을 위해 일할 권리를 찾을 때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묻는다. 모자란 남자들(후쿠오카 신이치 저. 은행나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쉽게 설명해놓은 대중적 과학서.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정작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여자에 비해 불완전한 존재라며 남자를 ‘모자란 여자’라고 표현한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과학서임에도 자신의 유학시절 에피소드나 17세기 아마추어 과학자인 레이우엔 훅, Y염색체를 발견한 네티 마리아 스티븐슨 같은 과학 속 인물이야기가 적절히 곁들여져 있어 에세이처럼 부드럽게 읽힌다. 문화편력기(요네하라 마리 저. 마음산책)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는 시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은 세계문화에 대한 71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여러 나라의 문화를 유쾌하고 톡톡 튀는 문체로 소개해 놓아 많은 재미를 주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통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찾기도 하고 개인신상과 관련한 애틋한 이야기도 풀어놓아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감상에 빠지게 한다. 우리나라 역시 점차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1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좀 기다려 봅시다.” 그러면, 아버지는 또 노상 같은 대답으로 처받았다. “십년이 넘었어, 이제는 구정을 내버려야 해요.” 십년이라는 것은 윤정이 대학을 졸업한 이후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딸 윤정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대학에서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짝을 만나는 것이라고 귀가 아프도록 그 얘기를 우겨넣었다. 대학 졸업식에 근사한 놈 하나 달고 와라, 그러면 졸업식장에서 혼례를 올려버리자 하는 게, 입에 붙은 구호처럼 돼 버렸다. 그런데, 아버지의 소원은 졸업식날, 그게 얼마나 허망한 소원인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사진 같이 찍자고 딸내미 곁에 얼씬거리는 놈팽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입이 건 아버지는, 딸의 남친을 놈팽이니 작대기니 그렇게만 불렀다. 아버지 강정구 영감의 놈팽이 타령은 집안일이 있을 때마다, 명절날이면 날마다 윤정의 감각을 어지럽히고 의식을 옥죄었다. 이제는 노이로제가 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새해가 다가오는 것이다. [PAGE BREAK] 2 지난 달, 할아버지 제사까진 그런대로 잘 넘겼는데, 설날이 만만치 않은 고비가 될 게 틀림없었다. 더구나 서른세 살을 헤아리는 시점이었다. 요새 그 나이 넘기는 처녀가 한둘이라고, 삼십삼천 꼭대기에 올라서기라도 한 것처럼 닦달이 말이 아니었다. 이제는 거의 막말에 가까운 이야기를 서슴없이 깔아놓는 아버지 강정구 영감이었다. “딸 시집 못 보내고 죽으면, 귀신이 눈도 못 감는단다.” 귀신이 뭔 눈이 있어, 감고 말고 할 것인가 싶었지만 그게 예사로 들리지 않는 것은, 결혼이라는 것은 어차피 생애의 과업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내 눈에 흙 들어가고 난 뒤, 어떤 작대기를 골라다가 살겠다고 망설이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참아내기는 골치가 지끈거리고 머릿살이 내둘렸다. 남들은 아버지 성에다가 어머니 성을 이어붙여 별별 이상한 이름을 달고 살아도 아무 소리 없고, 허연 머리를 생머리채로 휘두르며 처녀라고 설치고 돌아가도, 그래 너 알아서 해라 하는 식인데, 이 집안은 결혼에 대해서만은 좀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하늘이 쨍쨍 개어 올라가고, 잔잔한 바람이 쌀랑하니 상쾌했다. 그런데 연말을 하루 앞두고 날씨가 돌변했다. 칼바람이 불고 하늘이 잔뜩 흐려 눈을 한바탕 퍼부을 것처럼 가라앉았다. 과연 밤사이 천지를 흰 눈으로 뒤덮고는 하늘은 맑게 개어 올라가고, 바람도 잠잠했다. 신년의 서설이라고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더구나 범의 해, 눈 덮인 산 능선을 포효하며 넘어 치달릴 호랑이를 생각하면 서설이 틀림없었다. 설은 눈이 푸근히 와야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놈팽이 타령이 눈바람처럼 속을 휘저을 생각을 하면, 어디 외국여행이라도 떠날 걸 잘못했다 싶었다. 무엇보다 양력설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글로벌 시대에 무슨 음력을 찾느냐, 그런 귀신 붙을 소리 하는 작자들, 어딘지 머리가 이상이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일제시대도 아닌데, 양력으로 설을 쇠는 희한한 집안이 되었다. 윤정의 아버지 강정구 영감은 형제가 무려 일곱, 이른바 칠형제패다. 형제들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거나 하면, 맏형의 불호령이 나기 때문에 설날은 온 집안이 모여들어 잔칫집처럼 북적거렸다. 옷은 한복으로 차려 입어야 했다. 차례를 지내는 데 필요한 제수를 장만하는 데만도 몇 백은 착실히 깨지는 모양이었다. 식구들이 떡국이나 끓여 먹고 만두나 빚어서 삶아 먹으면서 새해를 맞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삼촌과 조카들이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는 데만도 하루를 꼬박 부엌에서 동동거려야 한다. 그런 어머니를 몰라라 팽개치고 휑하니 나돌기는 맘이 안 놓였다. 하기는 그렇게 나가도 막상 갈 만한 데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를 거들다가 방으로 들어온 윤정이를, 아버지 강정구 영감이 불렀다. 면도를 곱게 한 민틋한 턱을 슬슬 쓸면서, 저어, 거기 하다가 내놓는 이야기는 아니나 다를까, 그 단골메뉴 놈팽이 타령이었다. “새해에는 아주 구정을 내야지.” 윤정은 입을 다물고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면도를 곱게 해서 그렇지 피부에 검버섯 자국이 돋기도 하고, 머리털은 한결 성글어져 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데, 아버지의 얼굴이 슬그머니 일그러지는 걸 보고는 참고 앉아 있다가, 주눅이 들어서는 한마디를 달았다. “구정을, 어떻게 내라구요?” 순간 아버지의 미간이 꿈틀하며 찌푸려지다가는, 버럭 화를 돋우었다. “지금, 어떻게 구정을 내느냐고, 나한테 구정의 방법론을 묻는 게냐?” 위기를 모면해 두는 게 상책이었다. 대들거나 말대꾸를 하다가는, 나 죽어서 눈에 흙 들어가지 전에, 그렇게 시작되는 장광설의 설법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공연히 성깔을 돋우어 놓았다가는, 연휴 내내 구정을 내라고 시달려야 할 게 뻔했다. 친구들은 그렇게 얘기했다. 너도 삼십이 넘었으니 부모와 거리를 유지하라고. 마침 직장도 멀고 해서, 집을 나가 자취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번 했다가는 혼쭐이 났다. “시집을 가라구, 그러면 안 나간다고 버텨도 등을 밀어 내보낼 판인데, 자취를 해?” 그러면서, 늬 에미 성해서 돌아다닐 때까지는 에미한테 따뜻한 밥 얻어먹는 게 행복인 줄 알아, 무슨 청승으로 처녀애가 자취를 한다고 들뜨느냐, 오죽하면 처녀라는 게 제 손으로 밥 끓여 먹는다느냐, 이 한심한 화상아. 지청구와 구박이 자심했다. “잔꾀 부리지 말고, 딴 거 가릴 거 없이 신체 건강한 총각 하나 붙들어 와라.” “몸만 튼튼하다고 그게 단가요?” “그 말고, 무에 또 있길래? 네 속맘을 얘길 좀 해 봐라.” 옳거니, 아버지가 좀 누그러졌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조건이 안 맞아서 총각 못 데리고 온다는 이야기를 하자. 화를 돋우지 않고 안추르면서 딸의 의견을 구하는 듯한 아버지의 표정은 우습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잔양스럽기도 해 보였다. 전에 타박을 놓았던 대안들을 들이대야 할 판이었다. “능력도 있어야 하고요.” “능력? 포텐샤 말이냐? 사회적 능력이야 필요하지.” 이건 말이 달라지는 게 아닌가? 전에 법대 졸업한 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는, 판검사 하는 사람들, 이른바 율사(律師)들은 생리적으로 싫다고 하던 아버지가 아닌가. 그렇다니까요, 내가 능력과 품위와 환경을 두루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몇인데, 신체가 건강하다고 아무나 만나면 되겠느냐고 슬그머니 질러 보았다. “말이 길면 쓸 말 별로 없는 법이다. 좌우지간, 금년에는 구정을 내자.” 사람이 늙으면,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자꾸만 되풀이한다. 지적인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징조가 그렇게 나타난다. 자기통제를 못하는 인간의 되풀이하는 말은 멀미를 일으킨다. 달리는 버스가 굽이를 돌 때마다 몸이 옆으로 실리고 하기를 반복하면, 그것이 의식으로 파고들어 차가 다시 굽이를 돌려고 하면 울컥하고 넘어오는 것. 그것처럼 같은 말을, 요기쯤에서는 그 말 나오지, 하고 있으면 톡 내뱉는 그 말을 그 굽이에서 다시 들으면, 뱃속에서 멀미가 울컥 밀고 올라온다. 구정을 낸다는 말은, 결판을 낸다, 일을 마무리한다, 끝장을 낸다, 그런 뜻으로 아버지가 자주 쓰는 일테면 개인방언이다. 구정을 내자는 말을 들으면 이제는 그런 구역질이 밀고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딸을 향해 적의를 내뿜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멀미를 참으면서 아버지 겨드랑으로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PAGE BREAK] 3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것은 이용을 당하는 사람은 물론, 이용하겠다고 나서는 편에서도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본래 이용이라는 게 물질을 두고 하는 말이지 사람은 그러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정이 차홍걸을 만나기로 한 것은, 그를 이용해서 문제를 풀어 보자는 속셈, 아버지의 결혼 강요를 피해 보자는 내심이 없었던바 아니나, 전적으로 그러한 셈을 가지고 달려든 일만은 아니었다. 삼십이 넘으면서, 어떤 시인이 그 자발머리없는 말,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선언을 했기에 그런지, 삼십이 넘으면서 혼담이랄 만한 게 걸려오질 않았다. 윤정이 편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그야말로 몽달귀신 되는 게 두려워 쫓아오지 않는 한, 사방을 휘둘러도 작대기에 걸려들 총각이 없었다. 법대를 졸업하고 아직도 총각으로 남은 놈팽이 하나를 걸어다가 내놓았더니, 강정구 영감, 아버지가 한 마디로 불가야(不可也)라, 퇴자를 놓았다. 한번은 어수룩해 보이는 축산과 신출내기 교수라는 사람을 사귀어 천거를 했는데, 이번에는 어머니 편에서 불가 판정을 내렸다. 왈 그 집에 바람피우는 내력이 있어서, 네 생애를 초라하니, 공방살 낀 여자 만들기 싫다는 게, 딸을 끔찍이도 아끼는 어머니의 마련이었다. 신년하례식이 있던 날이었다. 사장이 신년사를 하는 가운데, 올해가 경인년(庚寅年), 범의 해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자어로는 인사유명(人死遺命)이요, 호사유피(虎死留皮)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무엇을 남기지요? 잠시 말을 쉬다가, 이득을 남깁니다. 말이 되나 모르겠는데, 회사유리라고나 할까. 아무튼 여러분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이득을 올려, 글로벌화에 동참하는 회사로 성장하게 노력을 배가합시다. 입을 벌리고 듣고 있던 사원들은, 한참 지나서야 흐물거리며 웃었다. 회사유리, 회는 죽어서 이득을 남긴다? 사장의 신년사가 우습게 끝나고, 맥주랑 음료수 같은 것을 들면서, 사장의 신년사를 두고 꿍덜대는데, 기획실의 차홍걸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도 있었는데, 호랑이 얘기 아무러면 어때요.” 하면서 금년도는 호랑이 해라고 해서, 특별히 호랑이 그림 민화를 컨셉으로 하는 달력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지랖도 넓어, 평소 제비족이라는 별명이 붙은 차홍걸이었다. 어떤 친구는 제비족, 족제비…. 그러다가 어이 족제비씨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그럴라치면, 차홍걸은 제비도 내공이 있어야 하느니 하고 맘 좋게 웃곤 했다. 회사에서 나누어준 달력 1월 그림에 호작도(虎鵲圖)라는 게 있었다. 잘 자라 올라간 소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지저귀고, 그 아래 호랑이가 느긋하게 나무 위를 바라보는 그림이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왜 호랑이와 까치가 같이 있는지 윤정이 물었다. 차홍걸이 나서서 설명을 했다. 민화는 대개 민중들의 소망을 담고 있는데, 소나무는 장수를 비는 마음이, 까치는 기쁨이 넘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호랑이는 보은(報恩)의 의미라며, 그 뜻을 알겠느냐고 물었다. 그 대목은 맥이 닿지를 않았다. 기왕 이야기를 할 바에는 자세히 해 보시지. 차홍걸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아득한 옛날, 어떤 가난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대관령을 넘고 있었답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산은 깊고 벼랑은 가파르고 해서 산세가 험하고 바람까지 웅웅대는 통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이 헛놓이고 해서, 등에 진땀이 죽죽 흘렀죠. 그런데, 길 저쪽에 호랑이가 어흥 어흥 하며 이쪽을 향해 절을 하는 시늉을 하는 거예요. 가난했지만 담력 하나로 버텨온 선비는 호랑이를 향해, 잡아먹지 말라는 뜻으로 맞절을 했겄다요. 호랑이가 절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눈꼬리에서는 눈물이 지멀거리고, 그리고는 발로 자꾸만 입가를 더듬는 게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말 못하는 짐승 불쌍해요, 제가 산에서 왕노릇 해보아야 말도 못하는 주제에 별거 있나요. 암튼, 필시 무슨 연고가 있는 모양이라고, 호랑이에게 다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입가에 피가 묻어 있고, 입을 제대로 다물지를 못해요. 그래 죽을 각오로, 턱을 제치고 입을 벌려 보니 목에 사람 뼈다귀가 걸려 있어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걸 알게 되었고, 호랑이 입에 손을 넣어 뼈를 빼 주었대요. 속알머리 없는 친구, 그냥 놔 두고 구경하면 호랑이를 통째재로 잡는 건데, 츠츠츠. 호랑이가 굽신 절을 하고는 선비에게 등을 돌려대더랍니다. 호랑이는, 비호같이, 날개 달린 호랑이 날 듯이, 선비를 업고 주막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데려다 주었어요.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주막을 나서는데 댓돌 앞에 무슨 쪽지가 있기에 펴보니, “호랑이도 은혜를 잊지 않는다.” 한자로 虎君亦不忘恩(호군역불망은) 그렇게 여섯 글자가 선명한 거예요. 그런데 과거장에서 받은 글제가 “은혜를 아는 짐승들”, 즉 報恩之獸(보은지수)라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일필휘지 갈겨써서 써억 냈는데, 금방에 이름이 터억 걸렸다는 이야그 옳습니다요. 사람들이 와글와글 박수를 쳤다. 차홍걸은 굽신 절을 하고는, 저 뒷장 12월에 너덜바위에 앉은 쌍호도 보이지요? 바위에 앉은 호랑이 두 마리, 그게 암놈과 수놈인데, 왜 그렇게 정이 뚝뚝 넘치는 시선으로 느끼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아세요? 제가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호랑이는 정력이 너무 세고, 성행위가 어찌나 격렬한지 여름에 교미를 하다가는 양근(陽根)이 흐물흐물 다 녹고 만다는 겁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 꽁꽁 언 바위 위에서 교미를 하는데, 한번 시작하면 보름은 거뜬히 간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력 좋은 분들 겨울에 결혼하세요, 하는 통에, 그래서 또 한바탕 웃었다. 호랑이 이야기 재미있게 잘 들었다, 그 턱으로 커피 살 테니 만나자는 윤정의 제안을, 차홍걸은 기다렸다는 듯이 좋지요, 해서 드림 커피집에서 단 둘이 어울리게 되었다. 윤정은 차홍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사람이 겉보기와는 달리 속이 트이고, 지혜가 있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것은 물론 유머감각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 한번 들이대 보는 것도 좋겠다는, 좀 아그똥한 발상이 뾰조록이 머리를 들었다. 뒤는 어떻게 판이 돌아가든지, 형편 돌아가는 대로, 감장을 하면 되겠거니 하는 심사였다. 윤정은 차홍걸의 어깨에 팔을 걸고 비주인사를 해 보냈다. [PAGE BREAK] 4 시간을 길게 잡고 충그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한 이야기를 어머니 편에서 퇴자를 놓는 경우는 없으니, 아버지에게만 이야기가 통하면 그걸로 대개의 일은 끝이었다. 다른 날보다 좀 일찍 퇴근을 해서, 식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엄마의 생태 매운탕은 생태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음식 뺨칠 정도였다. 그것은 아버지도 흔쾌히 인정하는 어머니의 실력이었다. 아버지 왈, 얼굴 예쁜 여자와 결혼하면 삼년 행복하고, 능력 있는 아내 얻으면 한 십년 잘 지내고, 그런데 음식 잘 하는 마누라 얻으면 죽을 때까지 잘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여성을 평가하는 부동의 준칙이었다. 생태찌개에다가 반주를 한 잔 해서 얼굴이 벌개진 아버지가, 민틋한 턱을 쓸며 하는 얘기는, 또 그놈의 구정을 내는 일이었다. “신년초에, 구정이 좀 안 나겠느냐?” 어머니는 딸 편을 들었다. “애가 숨 쉴 틈도 주어야지 그렇게 닦달이래요, 닦달이.” 윤정은 아버지가 늘 하던 얘기, 건강하기만 하면 능력, 외모, 가문, 국적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아버지를 슬근이 낚아 보았다. 제비족 차홍걸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였다. “건강하려면, 아무래도 젊어야 하겠지요?” “그야, 그렇지. 나이를 먹으면 몸이 마음을 배반하는 법이야.” “연하도 괜찮아요?” “대가리에 젖비린내 나는 것만 아니면.” 윤정은 쿡쿡 웃었다. 차홍걸이라는 친구에게서는 어딘지 모르게 젖비린내가 나는 느낌이었다. 치즈냄새 비슷하기도 하고, 잘 익은 바게트빵에서 나는 밀 향기 같기도 한 그런 냄새가 연하게 풍겼다. 차홍걸, 회사 신입사원 가운데 당차고 빠릿빠릿한 친구인데, 누나 누나 하면서 곁으로 파고드는 녀석이었다. 군대를 어떻게 어떻게 다녀와서 졸업하자마자 취직이 되었으니까 27세. 윤정은 아버지의 의중을 슬그머니 떠 보기로 했다. “이제 겨우 스물일곱인데, 괜찮을까요?” 아버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고누어 보더니, 윤정에게 다시 물었다. “밥벌이를 뭘로 하는 애냐?”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싶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한번 어쩌나 보자는 식으로, 말을 조금 꾸며댔다. “대학원에서 창조공학을 공부한대요.” “창조공학? 내 처음 듣는 전공이다,” 요새는 융합학문이니 복합학문이니 해서 대학에도 퓨전이 유행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공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학문이라고, 윤정은 자기도 모르는 이야기를 꾸며댔다. 아버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는 셈이었다. 아버지는 안경너머로 윤정을 흘금 넘겨보았다. “아직 학생이라 싫으세요?” “직장도 없는 놈을 어떻게 하려고? 마누라 등쳐먹는 등처가라던가, 그런 작대기 아니냐?” “아버지 싫으시면 그만두지요, 뭐. 할 수 없지 않아요.” “꼭, 마다하는 건 아니다만, 정말 건강한 놈이냐?” 물론 아버지 뜻대로 건강하니까 내놓는 물건이라면서, 만날 것인가 말 것인가 확답을 재촉했다. 윤정이는 왜 자기가 차홍걸에게 빨려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에게 거짓을 가미해서 제안을 하고 있었다. 이건 완전히 지는 게임인데, 하면서 속으로 한편 웃음을 감추고 있었다. 윤정은 아버지를 흘긋 쳐다보며, 어느 사이 등이 굽어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일을 서두는 품이, 아버지가 혹여 꺾이기라도 한다면? 눈앞을 아득하니 눈발이 날리는 느낌이었다. [PAGE BREAK] 5 기왕 만날 거면 근사한 데서 만나야 사람이 돋보인다는 것이 윤정의 계산이었다. 사실 차홍걸은 외모로 본다면, 윤정의 눈에 찰만한 구석이 요만큼도 없는 인물이었다. 얼굴은 볼품없이 작고 눈은 옆으로 찢어져 올라가서는 자주 깜박거리는 편이었는데, 사내가 눈가에 주름을 잡고는 눈웃음을 잘잘 흘렸다. 거기 비하면 윤정은 몸매가 훤칠하고 얼굴은 수려하기까지 했다. 삼십이 넘었다는 티는 한군데 눈 씻고 보려야 그런 구석이 없었다. 차홍걸이 누님 누님하고 따르는 속셈은 모르면 몰라도 윤정의 외모에 미혹된 것일 터였다. 서울시내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남산 언덕에 자리 잡은 헌팅턴호텔 양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윤정이 차홍걸에게 가족들과 만나 달라고 했을 때, 차홍걸은 눈가에 잔주름을 잡으며 정말이냐고 몇 차례나 다짐을 받았다. 홍걸 씨한테 뭐 나온다고 거짓말을 해? 그렇게 만나는 거야, 알았지? 그렇게 어설피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기 때문에, 정작 호텔에 도착해서는, 윤정 편에서 마음이 자꾸 졸폈다. 윤정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동하고 식당 홀에 들어섰을 때, 차홍걸을 언제 왔는지 먼저 와서 이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윤정이 다가가도 전화에 몰두해서 자세를 바꾸지 않고, 그게 논리가 서는 얘기야? 그렇게는 설명이 안 되는 거란 말야, 뭐어, 헤겔은 그렇게 설명한다구? 전화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네가 만난다는 애는 어디 있는 게냐?” 윤정은 전화에 빠져 있는 차홍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요새 것들은, 보이 녀석이 제 할 일을 모르누만.” “복장이 보이가 아닌데, 당신두.” 어머니가 신칙을 했다. 일이 묘하게 꼬일 조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차홍걸이 전화를 끝내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윤정은 아버지 어머니를 차홍걸에게 소개하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어리뻥해 있던 차홍걸이 분위기를 알았다는 듯이, 눈웃음을 치면서 선배님의 어른들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인사를 닦았다. 윤정은 검정 싱글에 받쳐 입은 흰 와이셔츠가 눈부시다는 생각을 했다. 옷이야 어디 눈부실까만, 젊음이 눈부신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포크며 나이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긴장된 공기에 파장을 일으켰다. 조용한 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이 이리저리 바닥으로 구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벌써 와인을 석 잔째 비우고 있었다. 저런 작대기를 사내라고 데리고 왔느냐는 눈치였다. 보이가 저쪽으로 간 사이 차홍걸이 와인 병을 들고 아버지에게 권했다. “아버님, 제가 한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하, 자네 같은 자식 둔 내력 없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섭하지요.” “어디라고, 어디대고 말대꾸야, 말대꾸가.” “입이란 게, 말대꾸 하라고 뚫린 입이 아니던가요?” “이런 싸가지 봤나.” “그러셔도, 저는, 어른한테 화 안 냅니다.” 차홍걸은 부진부진 윤정 아버지 잔에다가 와인을 따라 부었다. 잔 가에 병이 부딪쳐 달강거리면서, 쟁그런 소리를 냈다. “내가 왜 네놈 잔을 받아, 너나 처마셔.” 윤정 아버지는 와인잔을 들었다. 벌컥거리며 단숨에 마시려니 하고 지켜보고 있던 윤정은, 잠시 숨이 멎는 듯했다. 윤정 아버지는 차홍걸을 노려보다가는 눈가에 잔주름을 잡는 그의 얼굴을 향해 와인을 끼얹었다. 차홍걸의 얼굴이며 하얀 와이셔츠가 온통 피칠을 한 것처럼 뻘겅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허허, 허허, 허허….” 차홍걸은 천정을 쳐다보며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가는 생뚱맞게, 한잔 더 드릴까요? 하며 눈웃음을 흘렸다. “홧김에 오입질이라더니, 저년이 꼭 그 꼴이구먼.” 눈을 새초롬히 뜨고 앉아서 상황 돌아가는 것을 주시하고 있는 윤정을 보고 하는 얘기였다. 어디서 저런 작대기, 놈팽이를 끌고 왔느냐, 질책이 섞인 말투였다. “병자구입이랍디다, 그 입, 좀, 조심해요.” 윤정의 어머니는, 목소리는 낮았지만, 아예 내심으로 들들 떨며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 봤지 않소. 배알까지 병이 들었어요, 저 애가.” “고정하시고, 남은 와인 더 드시지요. 그리고, 식사 끝나면 제 옷이나 세탁해 주세요. 아버님.” “또, 또, 그놈의 아버님!” “피로써 세례를 베푸셨나이다, 아버니임….” 윤정의 아버지는 흐크, 흐크 그렇게 묘한 소리를 내며 헛웃음을 웃었다. 일순 윤정과 그의 어머니가 숨을 죽이고 윤정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좋다, 일단 식사는 끝내고, 사우나에 내려가자.” 식구들이 자리를 정돈하고 다시 식사를 하는 동안, 아무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차홍걸과 윤정의 아버지 사이에만 와인 잔이 오가며 부딪치는 소리가 쟁강 쟁강 침묵으로 휩싸인 공기를 흔들어 놓았다. [PAGE BREAK] 6 차홍걸의 와이셔츠를 세탁해 달라고 올려보내 놓고는, 강정구 영감은 달랑 한 손에 들릴 것 같은 놈팽이 하나를 끌고 사우나로 들어갔다. 젊은 놈이, 어른한테는 화를 안 낸다? 끝까지 참는다? 곱집어 생각할수록 기특하기도 한 일이었다. 그런데 윤정이란 애가 정신이 홀딱 빠져 달아나지 않았으면 저런 놈팽이를 달고 와서 소개를 한다고 납들 까닭이 없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온탕에서 열탕으로 옮겨 들어갔다. “어어, 시원하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차홍걸이 열탕으로 따라 들오면서, 말을 걸었다. “아버님, 아버님처럼 탕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하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간 아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애들한테야 뜨겁겠지.” “아버님도 신식 분, 아시는 모양이네요,” 강정구 영감은 그 아버님 소리를 막아야 한다면서도, 눈웃음을 살살 흘리는 얼굴에 들이댈 말이 달리 없어서 꾸역꾸역 참았다. 차홍걸은 윤정 아버지의 말투를 알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들놈이, 탕 안에 들어간 아버지가 시원하다니까, 풍덩 탕에 들어갔다가는, 으앗, 뜨거워, 씨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네, 욕질을 했고, 뿔이 난 아버지는 아들 대가리를 마구 쥐어박았겄다, 그러니까 아들놈이 한다는 소리가, 열라 조져 봐라, 아프면 제 새끼 아프지 내가 아파? 그러다가는 엉엉 울음이 터졌고, 그래도 자식이라 안쓰러워 빵집에 가서 빵을 세 개 사서 애비 둘, 아들 하나 그렇게 정 있게 나누어 먹었겄다, 애비 왈, 배부르지? 아들놈 대왈, 하나 먹은 놈이 배부르면, 두 개 먹은 놈은 배때지 꿰져 뒈졌겠네, 그랬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해서어? 나를 두고 믿을 놈 못 된다는 건가?” “아버님한테,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합니까. 말이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강정구 영감은 크흐, 크흐 배를 쥐고 웃다가 탕을 나왔다. 등이 근질거려 이태리수건으로 등을 밀었으면 좋겠는데, 호텔이 워낙 고급이라 그런지, 사우나탕 안에는 그런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샤워 앞에 앉아 비누질을 하는데, 차홍걸이 쫓아와 등을 밀어 준다고 달려들었다. 강정구 영감은 차홍걸에게 등을 맡기고 앉아서는 이놈이 어떻게 나오나 보자 하면서 기를 살피고 있었다. 차홍걸은 혼자말인 듯, 들으라는 듯 주절거리며 등을 시원하게 밀었다. 어느 때밀이한테 그렇게 시원하게 등을 맡겨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딸만 셋을 두어 목욕탕행은 언제나 썰렁한 혼자걸음이었다. 아버님은 젊어서 운동을 많이 하셨나, 등판에 근육이 탄탄하고, 어깨가 널찍한 게 보디빌딩을 한 분 같기도 하고, 대퇴부가 참나무처럼 탄탄하네요, 이런 체격은 정력도 끝내준다던데요, 새장가를 들어도 충분하시겠어요…., 요새 신문이니 텔레비전이니 남성의 자존심을 세우라고, 송이버섯이 동나게 생겼는데 아버님은 그런 걱정 저리가라 하고, 없어서 못 먹는다 하실 분입니다. 이놈 봐라, 어디까지 가나 보자하고 있는데, 자아 물 끼얹습니다, 가만 계세요, 하고는 강정구 영감의 머리에서부터 찬물이 동이째로 쏟아져내렸다. 강정구 영감은 기겁을 해서, 뛰쳐 일어났다. 술기운이 더해서 그런지 머리가 휭하니 휘둘렸다. 푸우 푸우 입으로 흘러드는 물을 품어대며 눈을 훔치는데, 차홍걸이 수건을 받쳐 들고 다가왔다. 강정구 영감은 못 볼 것 보았다는 듯이 얼굴을 돌렸다. 차홍걸의 물건이 한 자는 되어 보이는 게, 검으티티 하니 문자속으로 주장군이 되어 뻣대고 서 있는 것이었다. 강정구 영감은 자기 하초를 내려다보았다. 쪼그라든 곶감만한 게, 주름진 절벽에 가까스로 걸려 있었다. 머주하니 서 있는 강정구 영감에게 다가가, 등이며 겨드랑이며 수건으로 물을 훔쳐내 주는 차홍걸의 팔뚝이며 장딴지 같은 데에 불끈거리는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자네, 거어, 아래 좀 가리지 그러나?” “아버님도 옛날에는 이랬지요?” “하긴… 남자끼리 가리고 자시고….” 저런 정도면, 되었다. 사내가 사내구실 잘 하는데 마다할 며리가 있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인데, 세탁물이 다 되었다고 관리인이 연락을 해 왔다. 술이 말짱하게 깨고 정신이 말갛게 밝아오는 느낌이었다. 윤정이가 저놈 저런 속을 알았을까. 7 식구들은, 서둘러서 상견례를 하자고 나오는 강정구 영감의 속셈을 짐작할 수 없었다. 윤정은 윤정대로 차홍걸이 정말 자기 짝이 될 만한 인물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극단은 다른 극단을 부르는 법이 아니던가. 아버지가 널 찾는다고, 너 마음 단단히 먹고 아버지 말에 기죽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 거듭 당부를 하는 어머니로 봐서는, 아버지의 생각은 백팔십도 역전을 한 듯싶었다. “차홍걸이 그 총각 말이다, 창조공학인가 무시깽인가 그거 해서 먹고 살 수 있다더냐?” “별 걱정을 다 하세요. 먹고 사는 거야, 내가 벌어도 충분해요.” “그럼 되었다.” “그런데 무얼 보고 그렇게 쾌락을 하시는 거죠?” “너 호랑이란 놈이, 왜 한겨울 너덜바위 위에서 운우지정을 희롱하는지 아느냐?” “어? 모르겠나이다.” “모른다니 다행이다만….” 네가 겨우 그런 놈팽이 골라 시집가겠다고, 그 동안 속을 그리 썩힌 모양이라면서, 내가 보니 후회는 않고 살겠더라고 이야기하는 아버지 강정구 영감 앞에서, 윤정은 웃음을 속으로 구겨 넣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뒷골을 띵 하고 울리며, 눈앞에 아득한 안개 같은 것이 피었다. 정작 차홍걸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는 형편이 아니던가. 사람의 길이 이렇게 결정되는 구석도 있구나 싶었는데, 차홍걸 편에서 전화를 해 왔다. 어른께 사죄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집에 들르겠다는 것이었다. 윤정은 쌍호도를 떠올렸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이고, 너덜바위는 경진년 신년 추위로 꽁꽁 얼어 있을 터였다. | wookong@snu.ac.kr